2장 나비효과 (3)
19시 정각부터 19시 30분까지, 30분간 이어진 문 대위의 보고를 다 듣고 나서 여단장실 내부는 잠시 술렁임으로 채워졌다.
서울을 버리고 중부 이남의 농경지로 이주해 간다니……. ‘정말 그래도 되나?’ 하는 의문 때문에 다들 자신의 옆자리를 돌아보며 수군거린다. 서울을 버린다…는 개념 자체가 낯선 것이었다.
전통적인 군사전략에서 수도는 반드시 사수하거나 탈환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세가 그다지 밀리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쉽게 내던져 버릴 만큼 만만한 지역이 아니다.
그러나 문 대위의 제안을 듣고 난 지금, 다들 새로운 시각이 열렸다. 그동안에는 자신들이 좀비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들이 하고 있던 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아군 중 그 누구도 좀비를 공격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방어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절대 포기하지도, 먹지도 않는 적들을 상대로 농성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 이후부터 그들 모두는 타성에 젖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보급이 끊어지려는 지금에 와서는 그나마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음? 이놈들, 벌써 왔나?”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김 준장이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쪽에서 밀려오는 좀비들이 잠실 쉘터의 철책에 달려들 시간이다.
매일 총격을 가하고 있지만 그 수는 어째 점점 더 불어나기만 할뿐, 줄어들지 않는다. 공격 시간도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
놈들이 한 번씩 난리를 치고 돌아갈 때마다 아군 병사들이 조금씩 소모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공격하는 시간대에 있다.
지금은 그래도 사방에서 몰아치는 좀비들이 각기 다른 때에 몰려오니까 그 방향으로 화력을 집중해서 막아낼 수는 있다.
그런데 만약에… 우연히든, 뭐든, 어떤 이유에서든 네 방향으로 한꺼번에 좀비들이 들이닥친다면…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커진 좀비들이 일시에 달려든다면, 그날 잠실의 병력들이 입어야 할 피해 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그래, 내가 계속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그게 뭔가 했더니 이제 알 것 같아. 애초부터 이놈의 전쟁을 언제까지 한다는 목표가 없었어.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면 우리의 승리다, 하는 것도 없었고… 생각해 보면 체계적인 지휘라는 것 자체가 깡그리 없었다는 말이지. 그래, 그런 것 때문에 이상했던 거야. 서울을 버리고 인구가 적은 곳으로 간다라……. 저 지긋지긋한 좀비 울음소리 듣지 않고,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으로…….”
한참 웅얼거리던 김 준장이 코에서 손을 떼며 단언하듯 말했다.
“나는 마음에 든다, 오 중령. 이 계획 자체는 썩 괜찮아.”
칭찬을 받은 오 중령은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를 내세워 이 작전을 여단장에게 전한 문 대위의 가슴 역시 벅차올랐다.
희생을 치러가며 건대 쉘터를 비운 보람이 있다. 이제 비로소 수만 단위의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야…….”
김 준장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뭔가 하면, 얼핏만 생각해 봐도 이게 엄청나게 큰 사업이라고. 어쩌면 잠실에 쉘터를 구축하는 것보다 더 규모가 클지도 몰라. 그렇지? 엄청나게 큰일이라고.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야. 응, 간단한 게 아니지.”
문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장에 병력을 투입해 좀비 청정 지역이 될 때까지 클리어하고, 주변의 생존자들을 호위해 이동시켰던 것도 물론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일정한 구역으로 작전 범위가 한정된 거였다.
반면,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은 민군을 합쳐 적어도 6만 이상의 인원이 250킬로미터를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대장정이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을 마친다고 해도 정착지를 찾아내서 실제로 정착을 하게 되기까지는 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드는 의문인데… 자네들은 이거 사전 준비에 어느 정도 규모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게 제일 궁금하다고. 병력이 너무 많이 필요하면 허가해 주기가 쉽지 않아. 차출 때문에 생기는 공백이 위험하다고. 응, 지금도 방어하는 데 꽤 힘에 부친단 말이지. 얼마나 필요하려나… 어휴~ 여기서 용산역까지 길을 내려면…….”
김 준장의 넋두리가 계속된다. 오 중령이 문 대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여단장의 기분이 좋은 동안 빨리 대답해 주라는 의미이다.
발언 허락을 받은 문 대위는 슬라이드에 떠 있는 지도 화면 옆에 가서 섰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여기에서 용산역까지 철책을 세워가며 이동로를 확보하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다행히 저희들에게는 한강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요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쉘터는 한강 주변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영역은 선로로 오를 때 필요한 한강철교 주변뿐입니다.”
“그러면 이동을 어떻게 해? 그냥 거리로 민간인들을 내몰면 자살행위라고. 준비를 미리 해야지.”
김 준장의 질문을 들은 문 대위는 지도 화면의 한강 위에 잠실 쉘터부터 용산역까지를 잇는 대각선을 그었다.
“준비가 완료되고 이동이 정식으로 시작되었을 때, 민간인들과 그들을 호위하는 병력은 한강을 통해 이송됩니다. 기존의 유람선을 이용할 수도 있고, 보급용 수송선을 이용해도 무방합니다. 이 방법을 채택하면 노력과 자원을 확실히 절약할 수 있습니다.”
“오오, 한강으로… 그건 괜찮네, 괜찮아. 그렇게 하면 다른 쉘터들까지 다 길 터놓느라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겠어. 철책 박고 경비 서는 그게 아주 골 아프다고. 전에 건대니 한양대니 분산 쉘터 만들어놓으라고 해서 길은 터야 하는데, 아주 죽겠더구만.”
김 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도 한 시간 이상 회의가 계속되었다. 쉬운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6만의 인원이 250킬로미터. 그중 대부분은 민간인. 하루에 20킬로미터 전진도 어렵다. 그리고 6만의 인원이 길게 늘어서면 그걸 관리하는 것만도 엄청난 일일 터였다.
그 많은 사람들을 호위해서 보름 이상을 이동하며 물과 음식, 덮고 잘 것, 생리 현상을 해결할 장소들 따위를 준비해 줘야 한다.
그리고 이동 지역 부근에 주둔하고 있는 군 병력과도 미리 연락을 취해서 불필요한 긴장이나 마찰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게 또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조금 가까운 데는 안 되나? 경기도나 뭐, 이런… 음, 안 되겠지? 거기도 여기처럼 좀비들 천지일 테니까. 그래, 아주 좀비들 천지일 거야. 그러니까 아무래도 인구가 적은 데로 찾아가는 게 맞아. 음, 가까운 데가 이동하기는 좋겠지만, 방어하기에는 영 안 좋을 거라고…….”
장고에 장고를 고민한 끝에 김 준장은 문 대위의 계획을 승인했다.
“오 중령, 자네가 애를 써봐. 병력 차출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는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겠다고 약속은 못해. 응, 여기를 지키는 것도 등한시 할 수 없으니까 그쪽으로 완전히 힘을 몰아줄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활로를 만들어는 봐야지. 다른 사람들도 다 최대한 협력해 주라고.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야. 이젠 비축된 식량이 한 달치도 안 남았어. 큰 문제 없이 가려면 일주일 이내에 출발해야 돼. 그래도 또 이동하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김 준장이 부하 장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떠오른다. 일주일이라는 구체적인 기한이 거론되자, 막연하게 느껴지던 작전이 한층 실감된 것이다.
또라이에게 발동이 걸린 이상, 안정적으로 한 달을 버티면서 미래를 도모한다는 선택지는 사라져 버렸다. 작전참모가 오 중령과 머리를 맞대고 가용 전차들의 수효와 병력의 규모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서울 시내의 모든 쉘터 병력과 수용자들을 다 이끌고 중남부 지역으로 옮기는 대이동의 첫 번째 단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유빈은 삼식이, 태권소녀와 함께 코스트코 옥상에서 어두워진 거리를 바라보았다. 낮에 밀어닥쳤던 좀비들의 행렬은 저녁 늦게까지도 좀처럼 완전히 사라져 주지를 않고 거리를 배회하며 울부짖어 댄다.
물론 아까 오후에 한창 몰렸을 때처럼 수천이 빽빽하게 몰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눈에 들어오는 것만 백 단위는 훌쩍 넘었다.
“쟤들 계속 돌아다니네. 길을 잃었나? 저러면 곤란한데.”
도로 중앙에 버티고 서 있는 좀비들을 보며 유빈이 말했다. 선로는 왼쪽, 코스트코는 오른쪽, 그 가운데에 6차선 도로가 있다. 한마디로 유빈 일행과 보안관 일행은 좀비들의 장벽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쪽은 석조 건물 내부에 있는데다가 먹을 것도 풍부하니까 별 위험이 없지만, 선로로 도망간 보안관과 제니는 사정이 다르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배낭 속에 든 물과 식량만으로도 버틸 수 있고, 자동차 트렁크에도 여분의 음식이 있을 테지만, 만약 이 상황이 장기화돼서 다 소진하면… 보안관은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동네로 음식을 찾으러 나서야 한다.
“빠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해. 속도가 영 안 나서 그렇지.”
태권소녀가 손가락으로 대충 수를 헤아려 보며 중얼거렸다. 노을 때문에 주변의 경치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이제 한두 시간만 지나면 거리는 어둠에 묻히게 될 거고, 이렇게 육안으로 좀비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근데…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도 또 큰 무리가 이 앞으로 지나가기는 하겠지? 그때는 또 얼마나 남겨놓으려나.”
태권소녀의 표정에 근심이 어렸다. 이 좀비들이 오늘 이렇게 갑자기 규칙을 깨고 돌아온 걸 보면, 그들의 이동 경로 어딘가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좀비들은 이제 예전처럼 크게 원을 그리며 돌 수 없다. 그건 놈들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패턴이 생겨난다고 해도 그 패턴을 파악하는 데만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보안관? 나야, 삼식이. 들려?”
삼식이는 무전기를 잡고 보안관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 가끔씩 음성이 뭉개져 들리기는 해도 장난감 무전기치고는 꽤나 요긴하다. 아마 보안관이 피해 있는 곳이 앞뒤로 뻥 뚫린 선로 위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수신 감도라도 유지되는 모양이다.
― 치이익, 그래, 잘 들려. 왜? 치익―
“하아, 그냥 전화했어. 좀비들 아직 안 빠지고 있다는 거 알려주려고. 넌 지금 어디야?”
― 치익, 더운 거 좀 지나가서 나랑 제니도… 치이익― 이 근처에 와서 보고 있어. 주유소 앞이… 치익― 젠장, 저 좀비 새끼들, 왜 저렇게 기웃거리고 있지? 얼른 안 빠지고? 치이익―
“초조해하지 말라고 해, 삼식아. 아직 시간 충분하니까 안전한 데 있으라고.”
유빈이 삼식이에게 말하고, 삼식이는 그걸 그대로 보안관에게 전달해 줬다.
― 치이익, 야! 내가 왜 초조하겠냐? 제니랑… 치익― 같이 있고, 먹을 거 있고, 자동차도 있는데… 생각해 보니까 필요한 건 다 있는 셈이네… 치이익― 그런 걱정 하지 마. 어쨌든 오늘 밤 내로는 못 들어갈 것 같다.
“참, 보안관! 배터리 있어? 이거 무전기 약 다 닳았을 것 같은데…….”
― 취잇, 아, 배터리 있어. 유빈이가 배낭 안에다가 억지로 다 챙겨 넣어놨잖아. 걱정하지 마. 치익― 걱정하지 말고, 너희도 자라. 치이익― 아침까지는 차에 가 있어야겠다. 이젠 너무 어두워져서 뭐가 잘 안 보인다.
보안관이 호기를 부리며 무전을 끊으려 할 때, 곁에서 제니가 과장되게 밝은 목소리로 잘 자라고 인사를 한다.
“그래, 너도 잘 자.”
제니에게 인사를 해준 삼식이가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좀비 세상이 온 뒤에 여러 일을 겪었지만, 친구와 떨어져서 밤을 보내게 되는 일은 처음이다.
“미안해. 잘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온 뒤에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서…….”
임수정이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유빈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예? 아니에요, 그런 거. 무슨 그런 말씀을… 그냥 우리가 좀비들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다고 생각해서 방심했던 거죠. 이건 누나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그래요, 언니. 그런 말 하지 마요. 갑자기 좀비들이 들이닥쳐서 그런 건데…….”
태권소녀도 임수정을 달랬다. 하지만 임수정의 마음은 무거웠다. 따지고 보면 보안관이 자동차들을 살펴보려고 나갔던 일 역시 잠실에 테라가 살아 있다는 것을 자신이 알려줬기 때문인 거나 다름없다.
그냥 모른 채 살아갔더라면 이들은 이 낙원 같은 곳에서 오늘 하루도 무사하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오늘 왜 좀비들이 갑자기 돌아온 걸까? 전에 봤던 총구멍 난 좀비들도 그렇고, 그냥 감으로는 뭔가 건대 쉘터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누나는 혹시 뭐 짚이는 거 있어요?”
유빈의 질문에 임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민간인은 그냥 철책 안에서만 생활했으니까 그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몰라. 아…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있어.”
말하던 도중 임수정의 머릿속에 푸른 옷을 입고 공사를 하러 나가던 수감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쉘터 북쪽의 어린이대공원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가 땀에 절어 돌아오곤 했다.
“그래… 외곽으로 나가서 공사를 한다고 그랬어. 북쪽 외곽이니까, 이쪽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그리로 탱크도 계속 지나다녔고… 혹시 무슨 방벽을 쌓거나 한 건 아닐까?”
“방벽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되네요. 좀비들이 되돌아왔던 시간대도 대충 맞아떨어지는 것 같고……. 그럼 거기 공사가 끝나서 길이 완전히 막힌 건가?”
유빈은 어둑해진 도로 위, 페인트 묻은 좀비들을 노려보았다. 벽을 쌓아 좀비들을 돌려보낸 군인들을 원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뿐이다. 유빈 역시도 능력만 됐다면 높고 단단한 벽으로 좀비들을 아예 차단했을 테니까.
문제는 이제 이 좀비들의 미래 행동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서 버렸다는 데 있다. 그게 걱정이다. 힘들게 겨우 한 덩어리로 묶어놓았지만, 앞으로도 이놈들이 계속 함께 다니게 될 것인지도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만약 좀비 무리가 또 잘게 나뉘어서 5분이 멀다 하고 이 앞을 어지럽힌다면… 그걸 정리하기 위해 또 긴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그동안 보안관과 제니는 계속 고립되어 있어야 한다.
“야, 뭔 수를 좀 내봐. 아, 이런 분위기 답답해. 초상집 같다고. 담배도 못 피우는데… 스트레스 받아! 아우, 썅!”
신입이 찡찡대며 잔소리를 한다. 그래봐야 무슨 뾰족한 수가 확 떠올라 줄 리가 없다. 상대는 거리에 넓게 흩어져 있는 100마리가 넘는 좀비들이다.
태권소녀와 보안관이 아무리 날고 긴대도 둘이서 그만큼을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라도 물리면…….
그러니 뭔가 좀 더 안전한 수를 생각해 내고 싶은 거다.
그렇다고 예전의 복지 센터 때처럼 유인해서 가시방석으로 잡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워낙 넓게 퍼져 있어서 놈들을 가까운 데로 모은다는 것 자체가 큰일이 되었다.
지금 생각나는 유인책이라고는 코스트코 앞에다가 담뱃불을 크게 피우는 정도인데, 그건 너무 위험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좀비들이 이 부근에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놈들까지 끌어들였다가는 문제만 더 키우는 꼴이 된다.
셔터로 막아두고 있다지만, 수십,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몸무게를 실어서 밀면 무너지는 것도 금방일 거고.
“일단 지금은 밤이니까…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 보자. 그사이에 저놈들이 빠져 주면 좋은데, 쯧.”
유빈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어서 돌아가며 밤새 도로를 감시하기로 했다. 만약 새벽녘에라도 좀비들이 빠지면 보안관을 불러들여야 한다.
“제가 먼저 할게요.”
규영이가 첫 번째 감시 역을 자청했다.
“괜찮겠어? 졸리지 않아?”
“아뇨.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이 정도뿐이니까 도울 수 있을 때 돕고 싶어요. 형아랑 누나들 좀 자요. 좀비 수가 좀 줄어들면 깨울게요. 어차피 밤이 되면 그나마도 잘 안 보이겠지만…….”
녀석의 의지가 확실해서 유빈도 두 번 말리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평소랑 다른 소리가 나거나 하면 그때만 플래시를 켜서 비춰봐. 어차피 전체적으로 도로를 다 밝힐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밤이 시작되었다. 유빈은 새벽 1시경에 깨서 태권소녀와 교대를 했다. 캄캄한 도로를 노려보고 있어봐도 별로 좋은 소식은 없었다. 좀비들이 포효하는 소리와 그들이 지나면서 자동차를 건드리는 소리 정도만이 암흑 속을 울려 댈 뿐이다.
새벽 4시, 유빈은 마침 깨어난 삼식이와 교대를 했다. 그리고 불안 속에서 겨우 잠이 들었다.
“유빈아, 일어나 봐. 지금 좀비들 꽤 많이 빠졌어. 찬스야, 찬스!”
삼식이가 흔든다.
응?
유빈은 빨갛게 충혈된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5시 반이 조금 지났다. 눈을 감자마자 깬 것 같은데, 그래도 한 시간이 넘게 잔 모양이다.
“정말? 좀비들이 없다고?”
유빈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난간에 기대어 보니 어젯밤에 보았던 수효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있다. 그래도 50마리는 된다. 실망한 유빈이 얼굴을 긁적였다.
“아직도 너무 많아. 저거 다 못 죽여.”
“다 죽이자는 소리가 아니야. 잠깐 유인해 보자는 거야.”
삼식이가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