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나비효과 (2)
민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군복을 노려보았다. 걸음걸이만 봐도 제법 실력이 있는 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꽤나 빠르겠군. 주먹도 묵직하겠어. 호기롭게 혼자 나설 만해…….
민구는 검은군복의 검게 그을린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왜 이럽니까, 시끄럽게? 무슨 일 났어요?”
소란스러워진 상황을 보고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대민 지원 센터에 있던, 그 낙타 닮은 놈이다.
사람들로부터 설명을 듣던 낙타는 이내 민구를 알아보았다. 하긴 그의 커다란 흉터는 어지간해서는 잊기 어려운 특징이기는 하다.
“저 인간은 혼 좀 나야 됩니다. 버릇 좀 고쳐 주세요. 아주 질이 안 좋은 깡패 새끼예요.”
낙타는 팔짱을 낀 채 뒤로 물러섰다. 군인의 개입에 잠시 멈칫했던 메이저는 당당히 허락을 받고 나서 다시 민구를 향해 걸음을 뗐다.
민구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메이저의 전술 조끼에 부착된 대검에 꽂혀 있다.
“뒤, 뒤늦게 거, 거, 겁이 났나 보네. 그, 그러게 왜 마, 마, 말썽을 피, 피워.”
메이저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거리를 좁혀온다. 그가 볼 때 이 흉터남자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힘도 부족하고, 몸의 균형도 어딘가 엉망이다.
제법 주먹이 빠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레벨의 움직임이다.
메이저의 계획은 간단했다. 먼저 이 미치광이를 슬쩍 위협하는 척해서 놈이 먼저 공격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놈이 덤벼들면 그 공격하는 팔의 관절을 꺾어 제압한다.
그리고 놈에게 지속적으로 고통을 주면서 사람들에게 민간 수용소의 치안이 얼마나 안전할지에 대해 알린다.
물론 그의 성질대로라면 이 미치광이 놈의 얼굴을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패도 시원치 않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난폭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여기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태양 그룹 본사 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계집년들에게 풀면 된다. 때리기 좋도록 수갑으로 묶어놓은 계집년들.
민구는 왼손을 쓸 생각이었다. 옆구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오른손보다는, 갈비뼈가 욱신거리더라도 왼손 쪽이 낫다.
“이, 이, 이리 와! 시, 시끄럽게 굴지 말고!”
메이저가 민구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민구는 그 손을 피해 놈의 콧잔등에 왼손 잽을 빠르게 꽂아 넣었다.
팟―
정확하게 들어간 공격이었다. 메이저가 움찔하며 황급히 뒤로 피했지만, 코끝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찡하고 전해진다. 메이저의 눈이 커진다.
이놈, 조금 전에 쉐도우 실드 요원을 때릴 때 최선을 다한 게 아니었나…….
“음?”
이상한 기운을 느낀 메이저가 자신의 코를 쓰다듬는다. 붉은 피가 가죽 장갑 위로 묻어 나왔다. 주르륵, 흘러내린 코피가 입술 위까지 타고 흐르며 비릿한 피 맛을 전한다.
“네가 대장이냐? 근데 어째 영 시원치가 않다?”
주먹을 적중시킨 민구가 비아냥거렸다. 메이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 씨! 이게 대체 무슨 개망신이지? 대원들 보고 있는 앞에서 저렇게 비리비리한 놈에게…….
코피를 훔쳐 낸 메이저의 눈에 살기가 어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구는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창피해하지 마라. 애초에 너 같은 놈이 넘볼 수준이 아니야.”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놈이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폭력을 휘두르기를 바랐다. 그래야 따라가려던 사람들이 정나미가 떨어질 테니까.
“하하하! 미, 미, 미쳤구나.”
메이저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웃음소리가 그치기도 전에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조금 전의 잽을 날릴 때에도 이놈의 발은 땅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빠른 주먹에 비해 풋워크가 엉망이다. 발을 쓸 줄 모르는 놈을 잡는 건 어렵지 않다.
“아니지!”
민구의 왼손 잽이 가드 사이를 비집고 날아와 메이저의 눈두덩을 때린다. 메이저의 눈앞에서는 불이 번쩍 튀었다.
두 대째. 구경하던 사람들의 술렁임이 커진다. 뒤로 물러난 메이저는 빠득 이를 갈았다. 폭력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발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는 부득이하게 몇 대 차줘야 할 것 같다.
파악―
메이저는 거리를 유지한 채 주먹으로 한 번 페이크를 쓰고 로우 킥을 날렸다.
‘훗, 내가 그따위 유치한 속임수에 걸릴 사람처럼 보이냐…….’
민구는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려 가볍게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총 맞은 오른쪽 옆구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몸이 비틀댄다.
빠악!
메이저의 로우 킥은 살짝 들린 민구의 발목에 적중했다.
“읏!”
타격을 받은 민구의 몸이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메이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뻐억!
메이저의 오른 주먹이 민구의 턱을 때린다. 민구는 재빨리 고개를 틀었지만,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이렇게 빤히 다 보이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피하지를 못하다니…….
휘익―
턱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그 회전의 기세를 실어 민구는 왼 팔꿈치로 놈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하지만 허리가 온전히 돌아가 주지를 않는다. 팔꿈치 공격은 녀석의 눈썹을 스치며 무산되었다.
젠장, 한쪽 옆구리의 근육이 없다는 게 어지간히도 많은 제약이 된다.
“자, 자, 잡았다! 가, 가만있어! 파, 파, 파, 팔 부러져!”
비틀거리는 민구의 왼쪽 어깨와 팔을 움켜쥔 메이저가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그는 관절을 꺾으려 하고, 민구는 버티는 대치 상황. 이쯤에서 메이저가 더 주먹을 쓰지 않고 이 싸움이 봉합되면 당연히 놈이 돋보이는 그림이 된다. 말썽을 부리던 또라이가 사설 경비 업체 직원에 의해 제압되는 그림.
그건 곤란하다. 때깔 좋은 옷으로 가리고 있지만, 이 새끼들의 맨얼굴이 실제로는 얼마나 상스러운 양아치인지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
“야, 너희 애들 강서병원 옥상에서 세 명 죽었던 거 알아?”
민구는 어깨가 반대로 꺾이지 않도록 용을 쓰면서 메이저에게만 들리도록 말을 걸었다. 세 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메이저의 관심을 끌었다.
놈의 표정이 변하는 걸 확인한 민구는 도발을 계속했다.
“그거… 내가 한 짓이야. 칼로 스윽~! 한 놈씩, 한 놈씩… 아주 천천히 목을 따줬지. 마지막 놈은 존나게 징징 짜더라. 살려 달라고… 윽!”
분노한 메이저가 민구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금이 간 갈비뼈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고통스럽다.
후우~ 후우~ 민구가 콱 막힌 숨을 억지로 내쉬려 애쓸 때, 메이저는 그의 어깨를 한 번 더 세게 당겼다. 그러고는 고통스러워하는 민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개새끼야, 너, 너한테도 또, 또, 똑같이 해줄게. 데려가서 꺼, 꺼, 껍데기를 까, 까주마.”
이걸 기다렸다. 놈이 귓속말로 마주 도발하기 위해 바짝 다가오는 순간을…….
민구는 놈에게 안기다시피하며 체중을 실었다. 그와 동시에 재빨리 오른손을 뻗어 아까부터 눈여겨봐 왔던 놈의 대검을 잡아 뺐다.
메이저가 낌새를 알아채고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민구가 칼을 훔치는 게 더 빨랐다.
쉭―! 민구가 내리그은 대검의 날 끝이 메이저의 겨드랑이 부근을 지났다. 하지만 얕다.
젠장, 힘줄 정도는 끊으려고 했는데…….
회심의 일격을 실패한 민구는 혀를 찼다. 역시 지금 몸 상태로 이런 동작들은 무리인 모양이다.
“이, 이, 이런 개새끼가! 가, 가, 감히 누, 누구한테!”
겨드랑이에 실낱같은 상처를 입은 메이저가 분통을 터뜨리며 민구의 등짝을 걷어찬다.
윽! 민구는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땡그렁―
놓친 대검이 바닥에 뒹군다. 이제 신나게 두들겨 맞을 일만 남았다. 애초부터 그렇게 되고 싶어서 도발했던 것이긴 하지만, 저놈에게도 뭔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한 건 영 아쉽다.
젠장, 그랬어야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건데…….
옆으로 쓰러진 민구는 메이저를 노려보며 두 팔과 무릎으로 옆구리와 갈비뼈를 감쌌다. 채 준비를 끝마치기도 전에 제2타가, 제3타가 날아왔다.
“봐, 봐, 봤지? 이, 이 새끼가 카, 카, 칼 휘두르는 거?”
주변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에게 메이저가 외쳤다. 자신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걸 확인 받고 싶어서였다.
“주, 주, 죽어! 죽어!”
다시 민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 메이저는 닥치는 대로 걷어차고 밟았다.
이 별것도 아닌 개새끼 때문에 하마터면 큰 부상을 입을 뻔 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비록 찰나이긴 해도 심장이 오싹했다는 것 역시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끅! 윽… 끅!”
민구는 비명을 삼키면서 놈의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았다. 갈비뼈가 터지는 것 같이 고통스럽다. 그 새끼… 참 모질게도 찬다.
요령 없는 놈이 맞았더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코 말고 눈알을 노리는 거였는데……. 민구는 찌릿찌릿하게 전신을 울리는 통증을 꾹 참았다.
“이제 그만 때려요! 정신도 온전하지 않은 사람을! 그러다가 죽겠어요. 군인 아저씨! 아저씨도 좀 말려요!”
꼬마의 엄마가 끼어든 것은 민구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다른 여자에게 맡기고 뛰어와 메이저의 팔을 잡았다.
낙타는 말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대들던 깡패 새끼가 초주검이 되도록 밟히는데, 그 좋은 구경을 끊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응?”
피와 폭력 때문에 잔뜩 흥분해 있던 메이저는 반사적으로 자신을 방해하는 여자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평소 자신의 방에서 여자들을 대하던 버릇이 고스란히 튀어나온 것이다.
“아야야! 왜 이래요?”
여자의 비명을 들은 메이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얼굴을 짓찧은 꼬마엄마의 입술에서 피가 터졌다. 메이저는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젠장…….’
민구는 이를 악물고는 바닥에 떨어진 칼을 향해 기었다. 꼬마 엄마가 끼어들어 다치는 것은 그의 계획 속에 없던 일이다. 이러면 꼬마에게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빚을 지게 되는 꼴이 된다.
턱―
민구의 손이 칼에 닿았을 때, 메이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후, 메이저는 크게 스텝을 밟으며 오른쪽 허벅지를 뒤로 끌어당겼다. 무방비로 노출된 민구의 턱에 사커 킥을 꽂아 넣을 심산이었다.
“야! 이게 뭔 짓이야!”
야구장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호령이 모두의 동작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메이저와 민구,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본다. 거기에는 한 무더기의 장교들과 병사들이 서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이 새끼야!”
가운데에 서 있던 바짝 마른 군인이 메이저를 향해 소리친다. 그의 계급장에 달려 있는 별 하나. 이 쉘터의 책임자, 김 준장이다.
가장 들키지 말았어야 할 상대에게 미친 짓의 현장을 들켜 버린 메이저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헬기장으로 하도 안 나와서 올라와 봤더니 이 지랄을 하고 있네! 이런 개새끼가!”
민구와 꼬마 엄마를 한 번씩 쳐다본 김 준장은 메이저에게 바짝 다가와 얼굴에 침을 튕기며 지휘봉으로 배를 쿡쿡, 찔렀다.
“누가! 이 새끼야! 누가! 너희들한테 민간인 구타해도 된대? 그것도 내 쉘터 안에서! 응? 이 새끼야! 대답해 봐! 확 쏴 죽여 버리기 전에!”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김 준장은 권총집까지 끌러가며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평소의 웅얼거리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메이저가 아무 대답도 못하자 김 준장은 참모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송 계획 취소해! 이 새끼들한테 안 보내! 최고로 모시겠다고 해서 허락을 해줬더니… 내가 끝까지 이분들 지킨다! 한 분도 빠짐없이 내가 지켜! 잠실 벗어나기도 전부터 이 지랄 하는데, 내 눈에 안 보이는 데에서는 오죽하겠냐? 응? 내 눈에 안 보이면 얼마나 개지랄을 떨겠냐고? 저 사람 봐, 저거. 아주 송장 됐어.”
김 준장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민구를 가리켰다. 여기저기 발바닥 자국이 나 있는 그의 트레이닝복이 모든 상황을 다 말해주는 것 같다.
아까부터 슬그머니 칼을 놓고 있던 민구는 이때다 싶어 끙끙거리며 앓는 척을 했다. 바닥에 얼굴을 묻어 흉터도 숨겼다. 이럴 때 그 커다란 흉터가 보이는 건 여러모로 불리해진다.
“저… 그… 그분이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그래서… 질서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거는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남색 양복을 입은 태양 그룹 직원이 벌벌 떨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김 준장은 그를 돌아보며 차갑게 내뱉었다.
“내가 너한테 말해도 된다고 했냐?”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남색양복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김 준장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질서유지를 하는 데 저렇게밖에 못한다고? 겨우 생각해 낸 핑계가 그거야? 저… 저 비쩍 마른 남자 하나를 제압하는 데 개잡듯이 발길질을 했냐고? 대답해 봐!”
“아니… 저 남자분이 의외로 힘이 셉니다. 저희 직원도 두 명이나 부상을 당했고… 게다가 칼까지 빼 들고 덤비는 바람에…….”
“칼?”
김 준장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대검으로 향했다. 칼집이 비어 있는 메이저의 전술 조끼를 슥 훑어본 김 준장이 물었다.
“저 대검이 누구 건데?”
아뿔싸… 말실수를 깨달은 남색양복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의 표정에서 이미 확신을 얻었지만, 김 준장은 계속 다그쳤다.
“누구 거냐고? 응? 야!”
갑자기 입을 굳게 다문 남색양복 대신 주변의 구경꾼들이 메이저를 지목한다.
“그 칼, 저 검은 옷 입은 사람 거예요.”
‘역시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은 김 준장은 지휘봉으로 다시 메이저의 배를 쿡쿡, 찔렀다.
“어떤 개새끼가 군부대 내에 들어오는 민간인더러 무장해도 된다고 하디? 응? 야! 대답해 보세요! 민간 보안 업체 직원님아! 응? 대체 무슨 깡으로 여기에 대검을 차고 들어왔냐고? 간이 부었어? 출입하게 해주니까 여기가 우습냐? 아후~ 진짜 너 같은 새끼도 민간인이라서 내가 정말 꾹꾹 참는다! 당장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 이 새끼들아! 그리고 너희 사장한테 전해! 한 번만 더 음식 지원하면서 분산 수용 같은 개소리 지껄였다가는 탱크로 건물 다 부숴 버릴 거라고! 알았어?”
한참 동안 메이저를 다그치던 김 준장이 손을 휘저었다. 분한 얼굴의 메이저를 비롯한 태양 그룹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린 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따라 걷는다.
소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낙타는 얼른 허리를 굽히고 기어서 도망쳤다.
“어이! 어이! 거기 서! 너희들 다 멈춰!”
메이저 일행이 첫 번째 계단으로 내려섰을 때, 김 준장이 다시 그들을 불러 세웠다.
“너희들은 안 돼, 안 되겠어. 한 번 봐 주려고 해도 도저히 구제할 수가 없네, 너희들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이번엔 또 뭘 트집 잡으려고 저러는 거지?
메이저는 불만스러워서 빨라지는 호흡을 꾹 눌러 참으며 김 준장을 돌아봤다. 김 준장은 민구와 꼬마 엄마를 가리켰다. 둘 다 병사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 있었다.
“이분들한테 사과를 하고 가야 될 거 아니야! 사람 새끼라면 그 정도는 알려주지 않아도 해야지! 뭘 잘했다고 모가지를 빳빳하게 세우고 걸어가? 응? 왜 모가지 굽히지를 않느냐고! 말 안 해주면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해? 응? 야! 외부 경비대대에 연락해서 이 새끼들 헬리콥터 다 잡아놓으라고 해! 압수야!”
압수? 헬리콥터를?
메이저 일행들뿐만 아니라 참모들과 부하 장교들까지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무슨… 산적도 아니고…….
하지만 토를 다는 장교는 없었다. 그들의 상관이 현재 또라이 모드인 것이 너무도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 그럼 저희는 어떻게…….”
남색양복이 공포에 질려 물었다.
혹시 여기에 구금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법이고 체계고 다 무너진 상황이니까. 애초에 태양 그룹과 다리를 놓았던 참모는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걸어가든가. 가다가 좀비들 만나면 때려죽이면 되잖아? 당신들, 싸움 잘하더구만. 기운도 펄펄 넘치고.”
김 준장이 말했다.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어진 메이저 일행은 우두커니 멈춰 서서 김 준장의 입만 바라보았다.
“다른 헬기 오라고 해서 그걸 타고 가든가 난 그건 몰라. 하여간 저 헬기는 압수야. 이 지랄을 떨고 민간인들을 다치게 한 거에 대한 배상이라고 생각해. 징벌적 배상. 그러니까 헬기 값만큼 식량 가지고 와서 찾아가. 알았어? 야! 그 새끼들 내 눈 앞에서 빨리 치워! 이분들 치료해 드리고!”
참모가 나서서 민간인들에게 소란과 부상에 대해 사과를 하고 민구와 꼬마 엄마는 의무실로 옮겨졌다.
“후우~”
아직도 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김 준장은 칼날 같은 콧대를 문지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게 불안했다고, 이게. 아무래도 내가 다 끌어안고 있는 게 나은데… 괜히 허락을 했다 싶어서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 새끼들이 저 지랄을 하고 있네. 그래, 맞아. 내가 끌어안고 있어야 해. 끌어안아야 하는데… 아~ 그놈의 보급 때문에……. 처음부터 그러려고 이 쉘터를 만든 거잖아. 내가 괜히 저 새끼들을 믿어 가지고… 어휴~”
한참을 웅얼거리던 김 준장이 부하 장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전부 다 안고 갈 수 있는 방안 있어? 저 깡패 같은 새끼들한테 손 벌리지 않고 민간인들 계속 보호할 수 있는 방법!”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내놓으란다고 없는 아이디어가 뚝딱 나오지는 않는다.
모두가 별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오 중령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단장님, 제가 복안을 하나 마련해 둔 게 있습니다. 아직은 좀 부족하지만…….”
“괜찮아! 없는 것보다 부족한 게 낫지. 내 방으로 와서 보고해! 지금 시간이…….”
김 준장은 시간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오 중령, 19시까지 준비 가능하겠어?”
오 중령은 곁눈질로 문 대위의 반응을 살폈다. 문 대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오 중령이 대답했다.
“네, 여단장님.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