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08화 (308/449)

1장 Deus Ex Machina (4)

빌라의 문을 열고 들어간 진우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뭐가 갑자기 확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조금 전 보았던 양평 레저 광고 현수막의 글씨들이 선사한 이미지. 특히 이미지 쪽이 더 강력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파란 수면 위에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튀어 오르는 바나나 보트… 수영복을 입은 젊은 남녀들이 즐거워서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기에 타고 있는 장면이 상상됐다.

자신은 그 이미지 속의 주인공이 되어본 경험이 없다는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생각해 보니까 그런 거 한 번도 타본 적 없네. 그냥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느라.”

카트를 입구에 세워두면서 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모터 해양 스포츠, 스키와 스노보드, 다 안 해봤다. TV에서 그런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보면서도 왠지 자신의 형편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나중에, 나중에, 하고 미루기만 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뭔가 억울하다.

“그거 한 번 안 탄다고 해서 떼돈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젠장.”

진우는 탄창이 든 가방을 옆으로 비껴 멘 뒤 핏자국이 말라붙은 계단을 올랐다. 삼식이가 계속 코를 킁킁대고 앞장서 걸으며 첨병 역할을 해준다.

물론 이놈은 좀비에 대한 감지 및 경고는 전혀 못하는 녀석이다. 가뜩이나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이는데, 밑창이 갈라진 신발이 몇 번이나 계단 모서리에 부딪쳐서 중심을 흐트러뜨렸다.

“으아… 어쩐지 아까부터 냄새가…….”

2층 복도에 엎어져 있는 시체를 본 진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삼복더위 속에 오래 방치되어 있던 터라 멀쩡한 구석이 별로 없지만, 특히 머리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주변의 핏자국들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당시의 그림이 쉽게 추측된다. 이놈에게 물린 채 도망쳤던 사람들도 결국 다 변해서 더 큰 피해를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한눈에 훤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네…….”

옥상의 옥탑방 위까지 기어 올라갔는데도 동네 전체가 온전히 조망되지는 않았다. 그리 큰 규모의 마을이 아니지만, 4층 정도 높이로는 부족한가 보다.

그래도 평지에서 위험을 감수해 가며 몸으로 체득하는 것보다야 이 방식이 훨씬 낫다는 걸 알기에 진우는 사방으로 시선을 돌려가며 막혀 있는 건물들 사이를 열심히 살폈다. K―2 레일에 새로 부착한 고배율 조준경을 눈에 대자, 몇 백 미터 앞까지 훤하게 보인다.

하아암― 옥탑방 앞을 지키고 앉은 삼식이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찾았다. 멀리도 있네. 에… 여기에서 나가면 오른쪽인 건가?”

한참 만에 등산 용품 가게를 겨우 하나 발견한 진우가 방향을 따져 보았다. 새로 개발이 시작되려는 동네였는지, 상가 전체에 부동산과 건축 자재상, 식당, 이렇게 세 업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집을 짓는 사람과 그걸 팔려는 사람, 그들에게 밥을 팔려는 사람들만 모여 살았던 셈이다. 진우가 마음이 급해서 가게를 찾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그롸아아아―

그 순간, 멀리 마을의 반대쪽 끝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또 다른 좀비 무리의 등장이다.

흠, 진우는 총구를 그 방향으로 돌렸다. 건물 사이로 좀비들의 머리통이 지나고 있다.

“이 동네 좀비 많네…….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들 가고 있냐, 이놈들아.”

좀비들의 움직임을 따라 총구를 돌리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놈들은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뒤, 천천히 도로를 따라 이동 중이다.

하나, 둘, 셋… 진우는 놈들의 수를 헤아리며 한 놈, 한 놈의 모습을 살폈다. 총수는 70마리가 넘는다. 그중 군복을 입은 좀비가 다섯 끼어 있었다. 인근에 군부대들이 많으니, 신기할 일은 아니다.

“나를 잡으러 오는 거냐? 허… 이놈들 봐라? 근데 왜 뛰지 않고 걷지?”

좀비들이 일직선으로 행진하는 걸 보며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딱히 좀비가 총소리에 끌리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게다가 이 70마리는 그렇다 쳐도 아까 처리했던 그 35마리는 대체 뭣 때문에 자신을 쫓아왔단 말인가. 그간 좀비에 대해서는 철저히 꿰고 있다 자부했었는데, 이놈들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놈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이쪽에서도 대비를 해야 한다. 진우는 자신이 숨은 빌라 건물로부터 50여 미터 떨어진 사거리에 가상의 선을 긋고, 좀비들이 거기를 넘는 순간부터 발포하기로 했다.

우회로가 있는 지점에서 처리를 해야 이동할 때 시체를 피하느라 애를 먹지 않아도 된다.

“여기는 이 정도라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네. 당장 양평까지만 가도 여기보다 훨씬 동네가 클 텐데…….”

다가오는 좀비들을 눈으로 쫓으면서 진우는 도심을 횡단해야 하는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시 단위로 올라갈 경우, 밀집된 높은 건물들 때문에 시계는 더 불량해질 터이고, 좀비들의 규모는 몇 배나 커질 것이다.

진우가 그런 걱정들을 하고 있을 때, 좀비들의 선두가 100미터 이내로까지 접근해 왔다. 효율적인 사격을 위해 슬슬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진우는 어떤 좀비부터 먼저 처리할지 방향과 순서를 정했다.

“네가 1번이구나.”

맨 앞줄 가장 우측에 서서 걷는 남자 좀비의 머리를 조준경에 담았다. 갈비뼈가 드러난 여자 좀비가 두 번째다. 70마리가 조금 넘지만, 일단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면 금방 끝날 터였다.

뛰어오는 놈들이 아니라 마음도 편하고, 거리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진우는 방아쇠울 안에 검지를 넣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직진하고 있던 좀비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천천히 왼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좀비 무리들은 지금까지의 속도를 유지하며 다른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응? 뭐야… 나를 목표로 하고 오는 게 아니었어?”

난데없이 좌회전을 하는 좀비 무리들을 보며 진우는 조준경에서 눈을 뗐다. 늘 맹렬하게 일직선으로 돌진해 오는 좀비들만 봐왔던 터라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가 멍해져 있는 동안에도 놈들은 쉬지 않고 걸으며 두 번째 좌회전을 했다. 이제 좀비 무리는 한 블록 옆으로 이동해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게 뭐지? 다시 돌아가는 건가?

진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좀비들을 지켜봤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많은 좀비들의 머리를 박살 낸 그였지만, 그 거의 대부분은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좀비를 저지하는 상황에서의 사살이었다.

이렇게 넓은 건물 밀집 지역에서 좀비들의 행동을 지켜본 건 처음이다. 이후 한 시간 동안이나 진우는 놈들이 원을 그리며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꼴을 구경했다.

“이상한 짓을 하네… 빙글, 빙글… 딱히 목표가 있어서 몰려다니는 것도 아니고…….”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총구를 겨눴다. 지금 당장 자신을 노리고 몰려오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몇 백 미터 내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 놈들이다. 신발을 구하러 이동할 거라면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진우는 놈들이 도로의 직선 구간에 들어서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타앙― 탕― 탕―

재빨리 총구를 돌려가며 단발로 끊어 쐈다. 머리를 잃은 앞줄의 좀비들이 차례로 허물어진다. 역시나 뒤의 놈들은 별 반응을 하지 않고, 계속 직진하는 중이다.

진우는 놈들의 미간에도 총알을 한 방씩 박아 넣고 탄창을 갈았다. 그러고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타앙― 탕― 탕― 탕―

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부지런히 타깃을 쓰러뜨렸다. 총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는 몇 분이 지나고, 진우는 옥상에서의 네 번째 탄창으로 갈아 끼웠다.

멀리 도로 위쪽에는 좀비 시체가 가득 쌓였고, 이제 좀비 무리 중에 살아남아 있는 놈들은 다섯 마리뿐이다. 군복을 입은 다섯 마리.

“후우~”

다섯 마리가 더 가까이 올 때까지 잠시 한숨을 고른 진우는 다시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탕―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하이바를 쓴 좀비의 얼굴이 팍, 터져 나간다. 놈은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롸아아―

그 순간, 나머지 좀비들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진우가 위치한 빌라를 향해 내달려온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뭔가 느껴지나 보네.”

진우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총구를 아래쪽으로 내렸다. 이후 다섯 발의 총성이 더 울렸고, 총 다섯 마리의 군복 입은 좀비는 다른 좀비들과 30여 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모두 도로 위에 쓰러졌다.

마지막 놈이 고개를 숙인 채 달려오는 바람에 녀석에게는 두 발을 쐈다. 어깨를 맞춰 뒤로 자빠뜨리고, 젖혀진 얼굴에 또 한 방.

“삼식아, 이제 내려가자.”

사격을 마친 진우는 총열이 식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옥탑에서 내려왔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삼식이는 기지개를 한 번 쭈욱 켠 뒤, 부르르 몸을 털고 나서 계단 쪽으로 향한다.

“잠깐만. 기다려, 삼식아. 얘네 실탄 좀 수거해야 돼.”

카트를 끌고 신발 가게로 가던 도중에 진우는 군복 입은 좀비들 시체 곁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시체의 전술 조끼에서 남아 있던 예비 탄창을 빼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이 다섯 마리만 다른 놈들보다 더 끌어들여 따로 사살했다. 그렇게 해야 시체 더미를 뒤지지 않고도 놈들의 장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넉넉하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총알이 많이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쟁여놓을 수 있을 때 비축해 두어야 한다. 살이 닿았던 옷이나 신발, 하이바 따위는 건드리고 싶지 않지만, 탄창을 보충하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다섯 마리의 시체에서 탄창 열두 개를 얻었다. 오늘 예정에 없던 실탄 소모가 100여 발이었으니, 정산해 보면 250발 정도가 플러스된 셈이다.

“매일 이만큼씩 생기면 좋겠다, 기분은 더럽지만…….”

전술 조끼의 비워졌던 칸을 채우고 난 뒤, 여분의 탄창을 가방에 넣으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그가 좀비 시체들을 뒤집고, 주무르는 동안에도 삼식이는 대체 일행이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야, 삼식아. 이거 봐. 냄새 심하잖아. 왜 만날 안 짖어? 이 악취를 못 느끼겠어?”

목을 잡고 억지로 좀비 근처로 끌고 와서 냄새를 맡게 해도 녀석은 여전히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킁킁, 두어 번 냄새를 맡아보지만, 그걸로 끝이다.

하긴 못하는 것도 있어야지, 너라고 어떻게 모든 걸 다 잘하겠냐…….

진우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다시 카트를 밀기 시작했다.

“음…….”

등산 용품 가게에 카트를 끌고 들어선 진우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새삼 놀랐다.

넓은 전신 거울 속에는 총을 든 거지가 커다란 개와 함께 서 있었다. 여러 개의 보따리를 담은 카트까지 끌고 다니는 중이니 더욱 구색이 맞는다.

손질 없이 제멋대로 자란 수염이며 땟국물 흐른 자국이 고스란히 보이는 얼굴과 목, 넝마가 된 군복, 살은 쪽 빠진데다가 햇볕에 그을려 궁한 티가 아주 줄줄 흐른다.

그나마 방탄 전술 조끼가 좀 새것이지만, 그 정도 소품으로는 전체적인 이미지에 별 영향을 주기 어렵다. 며칠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 정도였냐, 삼식아?”

조금 슬퍼진 진우가 삼식이를 돌아보았다.

얼― 삼식이는 거울과 진우를 번갈아 보며 좋아한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인마. 이게 멋있는 게 아니라고. 이 바지 무릎에 구멍 난 것 좀 봐. 네 눈엔 괜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여자들은 엄청 싫어할 거야…….”

진우는 수염이 삐죽삐죽 돋아 있는 턱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보니 신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왕 왔으니 싹 다 갈아입지, 뭐. 하긴… 군복 입고 돌아다녀 봐야 좋을 일도 없어. 탈영병 소리나 듣지.”

하이바를 벗고 전술 조끼의 벨크로를 풀면서 진우는 매장 내부의 옷과 등산화들을 훑었다. 이왕이면 주머니가 많으면서도 시원하고 편한 옷이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덜 띄게 회색인 것으로.

군복 웃옷을 던져 버리려던 진우가 멈칫한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또 막상 버리려고 보니까 추억이 많다. 잠시 망설이던 진우는 소금기가 찌든 군복을 접어서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30분 뒤, 매장을 나서는 진우는 깔끔한 새 옷에 새 신발을 신고 있었다. 거름 냄새가 나는 비옷 대신 입을 새 방수 재킷과 여분의 신발 한 켤레도 챙겼다.

거울에 다시 한 번 자신을 비춰 본 진우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염은 여전히 자라 있지만, 이제는 거지가 아니라 탐험가처럼 보인다.

“이것 봐. 이제 인물이 좀 난다. 역시 옷이 날개라더니…….”

진우는 새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고 제자리걸음을 해봤다. 새 등산화라 아직 뻑뻑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카키색 카고 바지도 꽤 마음에 든다.

떠나기 전에 진우는 슈퍼에 들러 생수를 몇 병 카트에 담았다. 물 외에 다른 먹을 것은 며칠 치쯤 가지고 있으니까 욕심내지 않았다.

그런 것에 집착해 봐야 무게만 늘어나고, 시간을 허비하면 결국 지치는 건 그 자신이다.

“삼식아, 오늘은 양평 번화가 직전까지만 가자. 국도에서 높은 건물들 딱 보이면 거기에서 멈추는 거야. 대략 10킬로미터니까 그렇게 무리하는 거 아니야.”

머리에 물을 부어 열기를 식힌 뒤, 시간을 확인한 진우가 삼식이에게 말했다. 그 정도면 녀석의 발바닥도 큰 고통 없이 버텨줄 수 있을 것이다.

얼― 녀석이 신뢰와 애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나란히 걷는다. 두 친구는 아까 동네를 정찰했던 빌라를 지나서 마을의 진입로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양평 레저 광고 현수막은 그때까지도 계속 펄럭이고 있었다.

웨이크 보드, 바나나 보트, 제트 스키, 초보자 환영

그 후로 두 시간이 흘렀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걷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힌다. 발에 익지 않은 신발은 조금씩 불편해져 오고, 전술 조끼를 덮어쓴 가슴과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대낮의 트래킹은 힘들다.

“…덥다. 또 좀 쉴까?”

길가 절벽의 나무 그늘에 카트를 세우고 삼식이에게 물을 준 진우는, 하이바를 벗고 손으로 부채질을 해 대며 물병을 기울였다. 그래봐야 더위는 별로 가시지 않는다.

“바람이나 좀 불어라.”

진우는 무미건조하게 쭉 뻗어 있는 6번 국도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잠시 후, 정말로 그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그의 오늘 목적지인 양평 쪽으로부터 시원한 미풍이 불어온다. 진우는 눈을 감고 두 팔을 쫙 펼치며 바람을 환영했다. 축축했던 겨드랑이 속까지 개운해지는 기분이다.

“아아~ 정말 시원하다. 흐으읍~ 흐읍… 응?”

크게 숨을 들이켜고 있던 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눈을 떴다.

어째…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이 희미한 냄새… 단순한 거름 냄새가 아닌 것 같다.

진우는 계속 의심스런 눈초리로 전방을 주시하면서 코를 실룩거렸다. 악취는 느껴지는데, 보이는 범위 내에는 별 이상이 없다.

“삼식아, 이거 냄새… 아니다. 너한테 물어봤자 소용없는 문제지, 이거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진우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도로 위를 내달렸다. 그가 움직이자 삼식이는 신이 나서 덩달아 뛰어온다.

한참을 뛰어 완만한 오르막의 정점에 오른 진우는 손 그늘을 만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도로 저 멀리 뭔가 꼬물거리고 있다.

진우는 조준경의 배율을 끝까지 올려 눈에 가져다 댔다. 그제야 악취의 범인들이 시야에 잡힌다.

좀비들,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그를 마주 보고 전진해 오고 있다. 군데군데 서 있는 차량들 사이로 속속 새로운 썩은 얼굴들이 등장하는 중이다.

거리는 600여 미터. 진우는 총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놈들의 이동 방향을 살폈다.

“너희들은 여기까지 올 거냐, 아니면 아까 그놈들처럼 중간에 돌아갈 거냐?”

진우는 이를 꾹 깨물며 좀비들을 노려봤다. 뒷일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놈들이 지나가 버려주는 쪽이 낫다. 그렇게만 해주면 멀리 피해 있다가 놈들이 휩쓸고 간 다음에 안전하게 이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전진하면 되니까.

만약 이놈들이 아까 마을에서 봤던 좀비들처럼 양평의 번화가와 자신이 서 있는 이 6번 국도 사이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거라면… 문제가 조금 골 아파진다.

그렇게 진우가 긴장된 상태에서 바라보고 있는 동안 400여 미터 앞까지 전진해 왔던 좀비들은 교차로를 따라 양평 번화가 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역시… 진우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해결되는 일은 별로 없다.

진우는 컴퓨터 퍼즐 게임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애물들의 패턴을 읽고, 전진했다가 멈추기를 반복해야만 클리어할 수 있는 횡 스크롤 게임들.

이제 자신 역시도 좀비 무리들의 이동 방향과 시간을 미리 알고 있다가 그 패턴에 맞춰서 도로가 비어 있는 시간대에 몰래 전진해야 한다.

문제는 이 장애물들은 움직이는 불기둥이나 떨어지는 단두대 따위의 단순한 움직임을 가진 도트가 아니라 엄청나게 빠른 좀비들이라는 데 있었다.

자칫 놈들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잘못 발을 들이면 놈들은 전속력으로 그를 쫓아올 것이다.

진우는 시계를 보고 좀비들이 시야 밖으로 사라진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다시 좀비들이 등장하기까지 여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부릅뜬 채 그 자리를 지켰다.

휘이잉―

얼마 후, 불어오는 바람이 또다시 악취를 전해 준다. 진우가 조준경에 눈을 바짝 붙인 채 전방을 주시하는 동안, 그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길가의 절벽 위에서도 수십 개의 다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우는 자신의 팔뚝에 돋아 오른 소름이 전방의 좀비 떼들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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