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Deus Ex Machina (3)
제니가 보안관의 커다란 셔츠를 입고 있을 때, 무전기에서 다급한 유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치익, 난데! 너희 지금 선로에 있다고? 치익― 괜찮아? 먹을 건 있어?
“응, 괜찮아.”
뒤돌아서 있던 보안관이 무전기를 들고 대답했다. 사실은 그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행복을 느끼고 있었지만… 보안관은 차단벽 틈으로 좀비들을 힐끗 살핀 후에 물었다.
“너희, 셔터 단속 잘했어? 지금 길거리에 좀비들 엄청 많아. 젠장, 점점 더 많아지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 치이익― 응, 혜주가… 치익― 무전 듣고 와서 부랴부랴 잠그고, 앞에 카트도 쌓아뒀지. 치익― 아직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 좀비들 다 빠질 때까지 너희 당분간 거기에 있어야 돼. 여기 안전하니까 위험한 일 하지 마. 알았지?
“그래, 그럴게. 무슨 일 있으면 또 연락하자.”
무전을 끊은 보안관은 좀비들로 가득 찬 도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아침에 멀쩡하게 제 코스를 밟고 지나갔던 좀비들이 왜 갑자기 급선회를 해서 이 난리를 부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니야, 어쩌면 오늘 밤 내에 코스트코로 못 돌아갈지도 모르겠어. 쟤들 걸어 다니는 속도가 영 느려 터지네. 술 취한 새끼들처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좀비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보안관이 말했다. 제니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행진을 하던 때와 달리 어딘가 어수선하고 우왕좌왕해 댄다. 방향감각을 잃은 놈들 같다.
“오빠, 나 올려줘 봐요. 밖에 좀 잘 보고 싶어요.”
보안관의 손을 밟고 차단벽에 매달린 제니는 상체를 최대한 내밀고 멀리 내다봤다.
도로의 끝자락에서는 아직까지도 더 많은 좀비들이 속속 밀려들어 오는 중이다. 아무리 봐도 이 난데 없는 소동은 한두 시간 내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자, 이제 오빠 차례! 밟고 올라가서 봐요.”
차단벽에서 내려온 제니는 두 손을 모아 내밀고 허리를 숙인다.
저 조그만 손 위에 내 이 커다란 안전화를 올려놓으라고? 게다가 상처까지 입었으면서?
보안관이 거절하기 위해 손사래부터 치자, 제니는 또 까르르 웃으면서 그의 손바닥을 탁, 쳤다.
하… 하하……. 보안관은 멋쩍게 따라 웃는 시늉을 했다. 조금 전의 일 때문에 어쩌면 한동안은 서먹서먹해질 수밖에 없을 거라 걱정했었는데… 얘는 이렇게 변함없이 장난을 걸어준다. 다행이다…….
“보니까 오늘 저녁 되기 전까지는 좀비들 계속 돌아다닐 것 같아요. 우리 전에 지어놨던 움막 쪽으로 잠시 가 있을까요?”
“움막? 그… 처음 선로에서 자리 잡았던 데 말하는 거야?”
“네. 어차피 더운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거기엔 그늘이 있잖아요. 거기에 우리가 주워 온 물건 아직 남아 있으려나? 오빠도 뭐 좀 입어야죠. 밤 되면 추워질 건데.”
보안관은 그렇게 하자고 했다. 옷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무기가 배낭 안에 넣고 다니는 작은 망치뿐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둔 도끼라도 하나 챙겨놔야 마음이 좀 편할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여분의 해머가 남겨져 있을 수도 있다.
“가자.”
보안관은 배낭을 집어 들고 제니와 함께 다시 선로 위를 걸었다. 아까 이미 한 번 지나갔던 길이지만, 그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아까는 손을 잡고 걸어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녀와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벌리게 된다.
보안관이 벽 쪽에 붙어서 이따금씩 차단벽 틈으로 시선을 던지는 걸 보고 있던 제니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맨살인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등 쫙 펴요.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리지 말아요. 오빠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요.”
“응? 아니… 그게 말이지 좀…….”
보안관은 멋쩍어하면서 입을 열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생각해 보니까 오늘 내가 어지간히 꼴불견이었다 싶은 거야. 비틀거리면서 너한테 기대서 걷고, 막 토하고… 젠장, 그러고 보니까 내가 토한 입으로 뽀뽀하자고 했던 거네……. 하여간 그런 게 슬슬 하나씩 생각이 나니까 부끄러워서 그렇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죽다가 살아났으니까 힘들어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 약이 원래 그런 건가 봐요.”
“근데 말이야… 아까 내가 그냥 그 좀비들 다 잡았으면 그딴 거 쓸 일도 없는 거였잖아. 그랬으면 눈 까뒤집고 쓰러지는 꼴도 안 보여줬어도 되는 거고, 너 그렇게 다칠 일도 없었는데……. 그래서 그냥 나한테 좀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하고 그런 거야. 내 한계는 이 정도구나 싶어서.”
“아까 오빠를 둘러쌌던 좀비가 40마리 가까이 됐어요. 그런 상황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있죠, 오빠는 엄청 강해요. 그리고 오늘 현명한 선택을 했고요. 오빠가 우리 두 사람 다 살린 거예요.”
제니의 위로를 들은 보안관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특히 현명한 선택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보안관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 그런 건가?”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가슴 쫙 펴요.”
“이 정도? 됐어?”
“더 쫙! 나처럼 이렇게!”
제니가 허리를 활처럼 휘며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차단벽 너머의 도로에는 아직도 좀비들이 배회하며 울부짖어 댄다. 조금 전에 보았을 때보다도 그 수가 훨씬 더 늘어나 있었다.
☆ ☆ ☆
“뭐지? 아까부터 자꾸 불편하게…….”
진우는 발을 들어 밑창을 살폈다. 어딘가 이질감이 들고 걷기가 불편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이런 젠장… 왜 너까지 말썽이냐?”
진우가 혀를 찼다. 전투화가 뜯어져 바닥과 갑피 사이로 양말이 보인다. 너덜거리면서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더 틈이 벌어진 모양이다.
“와, 이건 완전 거지 신발이 됐네. 하긴… 어지간히 험하게 부려먹기는 했지.”
진우는 여기저기 뜯기고 닳아버린 전투화를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을 신고 바위를 타고, 돌바닥을 기고, 비탈길을 내달리고, 하루에 몇 십 킬로미터를 걷고 뛰었다. 망가지는 게 당연하다.
킁, 킁, 삼식이는 벌어진 틈 사이에 코를 대고 열심히 진우의 발 냄새를 맡는다. 엉덩이 냄새에 이어 이것도 마음에 들었나 보다.
“서울까지 67킬로미터라…….”
멀리 보이는 국도의 표지판을 확인하고 나서 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 들뜬 마음에 좀 오버 페이스를 했더니 신발이 먼저 퍼져 버렸다. 하긴 그 뙤약볕 속에서 3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으니…….
“가만… 야, 삼식아. 너는 발 괜찮냐? 그러고 보니 아스팔트 엄청 뜨겁게 느껴질 텐데. 손 줘봐, 손!”
진우는 귀찮아하는 삼식이의 앞발을 들고 발바닥을 살펴봤다. 곰발바닥처럼 커다랗고 푹신한 녀석의 발바닥에도 여기저기 갈라진 부분이 보인다. 흙길을 걷는 것과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은 차이가 큰 모양이다.
“아팠겠네. 좀 쉬자. 내가 너를 너무 무리시키고 있나 보다.”
삼식이의 머리를 쓸어준 진우는 카트에서 물과 그릇을 꺼냈다.
“자, 마셔.”
삼식이 물그릇에 물을 부어 준 진우는 입술을 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빨리 새 신발을 구해야 한다. 국방부에서 지급해 줬던 것보다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것으로.
옷은 누더기가 된 이후에도 걸치고 다닐 수 있지만, 신발은 그게 안 된다. 여차할 때 발이라도 걸려 넘어지면 너무 치명적이니까. 게다가 아무리 급해봤자 아무 사이즈나 대충 걸칠 수도 없다.
“에… 어디서 구하냐. 저런 데도 신발 가게는 없어 보이는데.”
국도 주변의 인가들을 바라보던 진우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지도를 폈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가까운 인구 밀집 지역을 찾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양평이네. 이 부근이… 그럼 상가가… 터미널 주변에는 있겠지. 어휴, 왜 이렇게 한참 들어가야 되냐. 여기는 너무 멀어서 안 되겠다.”
지도를 짚어 대강의 거리가 10킬로미터 이상이나 된다는 걸 확인한 진우는 양평 터미널로 가는 선택지를 지워 버렸다. 지금 그의 신발이 그렇게까지 버텨줄 것 같지가 않다.
대신에 그는 멀리 보이는 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여섯 동 정도밖에는 안 되지만, 그래도 수백 세대다. 저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니 설마 신발 가게 하나가 없을까.
드르륵― 드르륵―
카트 바퀴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진우는 열심히 밀다가 잠시 그 위에 올라타기도 하면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폭의 내리막길을 따라 걸었다. 바로 옆에 삼식이가 따른다.
“있지, 생각해 보니까 이왕 신발 가게까지 가는 건데 두세 켤레 정도는 챙기는 게 나을 것 같아. 다른 모델로. 어차피 카트에 싣고 가는 거니까. 네 생각은 어떠냐, 삼식아?”
얼― 삼식이는 고민하지 않고 경쾌한 대답을 해준다. 진우는 마치 자신이 개의 언어를 안다는 듯 대화를 이어간다.
“아니, 멋을 내려는 게 아니라…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 어떤 신발은 발에 잘 맞아서 신자마자 편하지만, 어떤 거는 영 불편할 수도 있거든. 예전에 안전화 신을 때도 그랬어. 똑같이 발목 올라오고 앞코에 쇠 들어간 신발인데, 발에 안 맞는 거 걸리면 뒤꿈치 다 까지고 난리난다니까. 그러면 곤란하잖아.”
그렇게 개와 대화를 나누며 논밭을 지났다. 길가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들은 제대로 물을 공급 받지 못해 바짝 말라붙어 있다. 드문드문 인가들이 나타났지만, 굳이 그 안으로 들어가 신발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느니 조금 더 가서 새 신발들 중에 고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야… 삼식아, 여기 좀 긴장된다. 동네가 꽤 크네.”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간 후, 면 단위의 마을을 만난 진우가 멈춰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삼척 시내에서 특임대와 함께 작전을 펼쳤던 때 이후, 그가 만나는 가장 큰 규모의 인구 밀집 지역이다.
들이받고 자빠진 차량들로 난장판이 된 도로만 봐도 한때 이곳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좀비가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후~ 길은 또 왜 이렇게 복잡해? 갈림길이 많네.”
마을 입구에 선 진우는 세 갈래로 나뉜 도로를 노려보았다. 그동안 계속 산골짜기만 헤매고 다녔더니, 2, 3층짜리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조차 낯설다.
“어느 쪽으로 갈까? 이쪽?”
삼식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우는 가운데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그럼 여기가 더 나을까?”
그렇게 개에게 자문을 얻어 길을 선택한 진우는 천천히 좌우의 가게들을 살피면서 카트를 밀었다. 음식점, 미장원, 부동산, 인테리어… 가게들은 잔뜩 있는데 정작 그가 찾는 등산 용품 가게나 신발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휘이잉―
깨진 창문들 사이로 커튼이 나부꼈다. 낯선 곳이라서 그 정도만으로도 진우는 멈칫하게 된다. 언제 저런 곳에서 좀비들이 뛰어 내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째… 기분이 영 별로다. 그냥 돌아갈까? 이 신발로는 잘 뛰기도 어려울 텐데…….”
진우는 바쁘게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육점에 쌓인, 부패한 고기의 악취 때문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몇 번의 교차로를 지났더니 슬슬 방향 감각도 무뎌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신발 가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동네다. 어떻게 부동산 중개소만 이렇게 잔뜩 있는 거지? 이 동네 사람들은 신발이나 등산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나 보다.
“가자, 삼식아. 아무래도 이 동네 너무 후지다.”
감이 영 좋지 않다고 느낀 진우는 카트를 돌렸다. 이 동네가 문제가 아니다. 빽빽하게 들어찬 낮은 건물들과 길거리에 방치된 채 썩어가고 있는 시체의 불길함이 싫은 것이다.
이만큼 시간이 걸리고 불안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냥 논밭 옆의 인가들을 뒤지는 편이 나을 뻔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롸아아― 끄르르―
진우가 두 블록을 돌아 나왔을 때, 대각선 방향에서 좀비들의 포효가 들려온다. 건물들에 가려져 정확한 규모는 모르겠지만, 그 우렁찬 소리로 미루어볼 때, 꽤 많은 것 같다.
아, 젠장…….
진우는 카트 미는 속도를 올렸다.
차부닥― 차부닥―
이제는 아예 다 떨어져 나간 신발의 밑창이 덜렁거리며 바닥을 때린다. 그렇게 애를 쓰며 달리던 진우는 삼거리에서 좀비들과 맞닥뜨렸다. 놈들도 골목을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거리는 약 40미터.
끄롸아아아―
포효의 메아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좀비들은 전속력으로 진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이, 젠장! 이런 예감은 좀 틀려도 된다고!”
진우는 카트를 옆으로 밀어두고 재빨리 K―2를 잡았다. 헤어 살롱 간판을 밀쳐 넘어뜨리고 뛰어오던 바짝 마른 좀비가 첫 번째 타깃이 되었다.
탕―
진우의 첫발이 바짝 마른 좀비의 미간을 관통한다. 뒤통수가 날아가 버린 좀비는 그 자리에 쓰러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탕― 탕― 타앙―
연달아 네 마리째의 좀비를 쓰러뜨린 진우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삼식이는 자기 친구가 대체 뭐랑 싸우고 있는 건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
진우의 시선이 후방 건물들을 빠르게 훑었다. 만약 저 골목 코너 너머의 좀비들이 너무 많다면 저 건물들 중 하나로 피신해야 한다.
탕― 탕탕― 탕― 탕탕―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 진우는 달려오는 좀비들을 쓰러뜨렸다. 이제 열 마리. 지금까지는 별 어려운 게 없었다. 대가리를 관통당한 좀비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얼굴을 갈며 쓰러진다.
탕― 탕탕― 탕―
진우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며 사격을 계속했다. 한적하던 상가 주변은 금세 총성과 좀비 시체들로 가득 덮였다.
“얼마나 더 있는 거냐? 응?”
진우는 바닥 난 탄창을 갈고, 곧바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째 탄창의 실탄이 다섯 발 남았을 때, 코너에서 달려 나오던 좀비들의 등장이 뚝 끊겼다.
그래도 진우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K―2를 겨눈 채 전방을 노려보았다.
“뭐, 뭐야… 겨우 이게 다였는데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 댔던 거야? 설마… 아니겠지.”
도로 위에 널브러진 좀비들의 시체를 보며 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헤아린 게 맞다면 대략 서른다섯 마리 정도.
“난 또… 엄청 많은 줄 알고 괜히 놀랐었잖아. 젠장, 쓸데없이 가슴 졸인 거 생각하면……. 어휴우~”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 새로운 좀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 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카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삼식이를 향해 투덜거렸다.
“네가 이쪽이 더 낫다며? 네 말 들었다가 놀랐잖아. 좀비 울음소리는 들리는데 건물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지, 몇 마리나 되는지도 전혀 모르겠지… 길은 복잡하지…….”
농담처럼 삼식이를 탓하던 진우가 입을 다물었다. 녀석에게 불평하다 보니 자신의 도심 접근법이 어떤 면에서 허술했던 건지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 이렇게 길도 잘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는 게 아니었네. 일단 마을 입구에서 제일 높은 건물로 올라가서 동네 정세 파악부터 하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안전하겠다.”
하나 배웠다. 앞으로 서울까지 닿으려면 이것보다 훨씬 더 큰 도시도 몇 개나 지나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무모하게 사전 조사 없이 아무 골목이나 들어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
“그래도 이렇게 몇 마리 안 되는 놈들하고 만났을 때 배워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치, 삼식아?”
얼― 삼식이는 또 경쾌하게 짖는다. 진우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불안했다. 도심지 같은 곳은 가능하면 지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 저기에 올라가서 천천히 찾다 보면 신발 가게도 보이겠지.”
부근에서 제일 높은 3층짜리 빌라의 옥탑방을 보며 진우가 말했다. 빌라의 우측에는 반쯤 떨어져 나간 현수막이 바람을 타고 너풀거리고 있다.
진우는 무심하게 현수막에 적힌 글자들을 따라 읽었다.
“양평 레저… 웨이크 보드, 바나나 보트… 제트 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