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06화 (306/449)

1장 Deus Ex Machina (2)

30여 미터를 내달린 제니는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선로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좀비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그녀가 한 마리도 남김없이 꾀어낸 모양이다.

보안관은… 아직도 처음 쓰러졌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그 자리에 누워 있다. 부릅뜬 눈도, 핏줄이 도드라진 얼굴도 그대로다.

“아니… 아냐. 왜… 왜…….”

제니는 급하게 차단벽을 기어올라 건너편의 인도로 넘어갔다. 그러고는 보안관의 코와 가슴에 귀를 대봤다. 숨결도 심장박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 대체 왜? 10분은 벌써 지나고도 남았을 텐데…….

제니는 고개를 저으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커다란 상실감과 불안이 밀려와 눈물이 왈칵 솟는다.

뭐가 잘못된 걸까? 보안관 오빠의 말처럼 이건 그냥 독약이나 그런 거였을까? 다시 되살아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제니는 눈물을 훔쳐 내며 보안관의 배낭을 풀고 커다란 몸을 똑바로 눕도록 당겼다. 그의 가슴에는 아직도 D.E.M.의 바늘이 그대로 박힌 채다.

“이익!”

붉은 D.E.M. 캡슐을 잡고 바늘을 뽑아낸 제니는 두 손을 겹쳐 보안관의 가슴에 대고 세게 눌렀다. 영화에서 보았던 대로나마 심폐소생술을 해보려는 것이다.

“뛰어! 뛰라고! 숨 쉬어! 제발!”

보안관의 가슴을 콱콱, 누르며 제니는 기합 대신 소망을 외쳤다.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은 기세로 눌러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워낙 근육이 두꺼워서 그녀의 작은 손과 약한 힘으로는 제대로 된 압박조차 하기 어렵다.

체중을 실어 수십 번을 눌러 대던 제니는 보안관의 고개를 젖히고 입에 숨을 불어넣었다.

“후우욱! 후우욱! 오빠! 숨 쉬어요! 눈떠요!”

인공호흡과 흉부 압박을 번갈아 하는 동안,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리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만 눈물이 솟아난다.

“안 돼요! 안 된다고요! 제발! 후우욱! 후우욱!”

울며 보안관의 입에 숨을 내쉬고,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치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크으윽! 커허헉!”

보안관이 긴 비명을 지르며 몸서리를 친다. 제니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보안관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아흐윽! 고마워요! 고마워요, 오빠!”

“…켁, 켁! 끄으으! 제, 제니야…….”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지만, 보안관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는 계속 눈을 껌뻑거리면서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누군가 몸 안에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꽉 쥐고 흔드는 것처럼 아프다. 박동이 이상하다. 갑자기 엄청나게 빨라졌다가, 돌연 그 속도가 확 줄어든다. 그럴 때면 가슴이 꽉 막혀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렵다.

“일어나야 돼요. 오빠, 우리 피해야 돼요”

고통스러워하는 보안관의 얼굴을 보면서도 제니는 그를 잡아 일으켰다. 좀비들을 잠시 떼어놨다고 하지만, 가둔 것은 아니다.

불과 30여 미터 거리에 놈들이 있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야 한다. 이제는 그 빨간 캡슐도 없다.

“아으으! 여… 여기가…….”

제니에게 의지해 걸음을 떼는 동안에도 보안관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가슴은 쥐어짜는 것 같고, 지독한 두통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팽팽해진 혈관 때문에 눈이 터질 것 같다. 아프다. 지금까지 앓았던 모든 병의 고통을 압축해서 몸 안에 풀어놓는다 해도 이만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으윽! 우웨에엑!”

보안관은 바닥에 허물어지며 토사물을 쏟아냈다. 참아보려 했지만, 치밀어 올라오는 구토를 견딜 수가 없다.

“괜찮아요? 오빠, 넘어지면 안 돼요…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가서 쉬어요. 네?”

등을 두들겨 주던 제니는 자꾸만 까부라지는 보안관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원을 했다. 저 멀리서 하나둘씩 새로운 좀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선명한 색깔의 페인트를 덧입은 놈들. 분명히 오전에 이 앞으로 지나갔던 놈들이다.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좀비들이다.

“제발! 제발 일어나요! 끄으응!”

제니는 보안관의 가슴 밑으로 파고들어 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다. 꿈쩍도 안 한다. 무겁기도 정말 엄청나게 무거워서, 바위를 미는 기분이다. 한 손에는 보안관의 배낭까지 들고 부축을 하려니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제니의 정성이 통한 것일까… 휘청거리던 보안관이 겨우 다시 몸을 추스르고 걷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라면 멀리는 못 도망간다. 제니는 고개를 들어 코스트코 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저기인데… 여기에서 훤히 보이는데…….

제니의 시선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코스트코에 있는 친구들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볼 가능성은 없다. 남자 셋은 지금쯤 좀비 시체를 치우느라 한창 땀을 빼는 중일 것이고, 나머지도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미 좀비가 지나간 뒤니까 밤이 올 때까지는 특별히 거리를 노려보고 감시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오빠! 조금만 더 힘내요! 주유소까지만 가요! 거기에서 사다리를 타고 선로로 넘어가요. 끄응!”

불과 건물 하나만 지나면 주유소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보안관은 대답 없이 비척거리며 걸었다. 그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는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내리는 엄청난 양의 땀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롸아아아―

좀비들의 포효. 제니는 겁에 질려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규모가… 더 커졌다. 조금 전 40마리 정도의 좀비들도 많다고 느꼈었는데, 지금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좀비들은 그보다 서너 배는 된다. 마음이 급해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렇게 속도를 올리자 보안관은 더욱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주르륵, 그의 양쪽 콧구멍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미안해요… 미안한데… 이렇게 해야 돼요. 조금만 참아요, 오빠.”

제니는 눈물을 삼키면서 보안관을 잡아끌었다. 드디어 건물을 다 지나고 주유소 부지 안에 들어섰다. 사다리를 달아놓은 곳까지 불과 20여 미터를 더 걸어가는 것인데도 진이 쪽 빠진다.

마지막 순간에 보안관이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중간에 두 사람 다 허물어져 버렸을 것이다.

“나… 조금 괜찮아졌어. 이제 괜찮아… 저기… 좀비들… 위험한데…….”

보안관은 비틀거리면서 사다리에 팔을 걸쳤다. 제니는 그의 다리를 붙잡아 올리고, 엉덩이를 받쳤다.

불안하다. 몇 미터 되지도 않는 낮은 사다리지만, 중간에 뚝 떨어져서 뒤통수를 찧을 것만 같다.

“올라가요! 꽉 잡고 올라가요!”

제니의 말을 들은 보안관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흥건하게 흘러나온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워 두 번이나 떨어질 뻔했다.

그래도 아슬아슬한 사다리 타기는 겨우 성공했다. 좀비들이 주유소 앞까지 도달했을 때, 겨우겨우 보안관과 제니는 차단벽을 넘어 선로 아래로 떨어져 내릴 수 있었다.

“우우욱! 으윽!”

보안관은 다시 심장을 움켜쥐고 뒹군다. 조금 전,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그 정도의 운동마저도 지금의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격렬한 것이었나 보다.

끄으, 끄으, 끄으, 숨을 제대로 들이쉬지 못하는 보안관의 호흡이 점점 더 빨라진다. 제니는 그의 가슴을 다시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직 제 기능을 하는 것 같지가 않다.

“손 치우고 크게 숨 쉬어요! 후우~ 크게! 후우~!”

잔뜩 웅크리고 있는 보안관의 두 팔을 억지로 벌리게 하고 제니는 그의 심장을 콱콱, 눌렀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아직 코피와 토사물이 묻어 있는 보안관의 입술에 대고 숨을 불어넣어 줬다.

후우욱~! 후우욱~!

하긴… 심장을 즉각 멎게 하고 강제로 10분 동안이나 뛰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약에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다.

“흐으으~”

제니의 인공호흡을 수십여 차례 받고 나서야 보안관은 비로소 제대로 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사람이 코로 숨을 들이쉬는 그 당연한 소리가 이렇게나 반갑다니… 제니의 눈에 또 눈물이 맺힌다.

“아아~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오빠.”

제니는 보안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나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 조금 전 너무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뻔했다.

“나… 그 이상한 주사… 맞았었는데…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하아~ 제니, 너 괜찮아?”

보안관은 아직도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으로 제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에, 네, 흑, 전 괜찮아요. 오빠가 선로 쪽으로 던져 줬었잖아요.”

제니는 머리를 들고 보안관의 얼굴을 쓸어주며 대답했다. 1초 정도 만에 보안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다행이다. 하아… 응? 너 옷이… 왜 그래? 진짜 괜찮아?”

보안관은 깜짝 놀라 물었다. 제니의 상의가 없어지고 속옷만 입은 채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제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눈물을 씻어냈다.

“괜찮아요. 좀비들 꾀느라고 벗어서 불을 질렀어요.”

“아… 그랬구나. 나, 나를 구해준 거네… 기다려, 내가 내 옷을 줄 테니까… 끄으응.”

셔츠를 벗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려던 보안관은 다시 털썩 누워버렸다.

“내가 지금… 하아아~ 힘이 안 들어가. 저기… 조금만 있다가 벗어줄게. 으아, 그 주사 진짜… 다시는 안 맞아. 정말이야.”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하는 보안관을 보면서 제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녀가 아는 보안관으로 돌아왔다. 뭐든지 해주겠다고 말하는 그 사람으로.

“목마르죠?”

제니의 질문에 보안관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 모래를 잔뜩 채운 것같이 까끌거린다. 제니는 보안관의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그의 머리를 받치고 조금씩 부어줬다.

그의 갈증을 조금 달랜 뒤, 입 주변의 토사물과 인중에 말라붙은 코피도 닦아냈다. 그런 다음에야 자신도 한 모금을 마셨다.

하아아~ 너무도 긴 20분이었다.

그롸아아아―

길가의 좀비들이 내뱉는 포효가 실감나게 들려온다. 조금 벌어져 있는 차단벽의 이음매를 통해 보이는 수가 더 늘었다. 놈들은 코스트코 방향으로 행진 중이다. 보안관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중얼거린다.

“하아~ 뭐지, 저 새끼들? 웬 낯선 놈들이 저렇게 떼로 몰려와서…….”

“저거… 오전에 지나갔던 그 좀비들이에요. 페인트칠되어 있는 거 보면 확실해요.”

“응? 그놈들이 지금 왜? 또 오려면 멀었잖아? 방향도 다르고.”

“그건 모르겠어요……. 아, 맞다! 저거 경고해야 하는데! 유빈 오빠는 까맣게 모르고 있을 거예요!”

제니가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보안관이 힘없이 중얼거린다.

“내 가방에… 무전기 있어… 그걸로… 얘기해. 셔터 내리라고. 잘 잠그라고…….”

응! 제니는 배낭에서 무전기를 꺼내 송신 버튼을 누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답 좀 해주세요! 이거 들려요? 대답해 주세요!”

두어 번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때, 저쪽에서 답이 들려왔다.

― 치익~ 제니? 제니니? 치이익~ 왜? 무슨 일이야?

태권소녀다. 제니는 곧바로 대답했다.

“좀비들! 100마리도 훨씬 넘는 좀비들이 지금 코스트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말고, 셔터 단단히 잠가둬야 해요!”

― 치이익~ 진짜? 무슨 일이야? 하여튼 알았어. 내가 지금 뛰어 내려가고 있으니까… 치이익.

잠시의 사이를 두고 태권소녀가 다시 물었다.

― 너는 어디야? 제니야? 너희는… 치익― 괜찮아?

“네, 저랑 보안관 오빠 지금 선로에 피해 있어요. 둘 다 무사해요. 언니, 조심해요.”

무전을 끊은 뒤, 보안관의 얼굴을 보던 제니는 갑자기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눈이며 이마, 코, 볼, 입을 가리지 않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둘 다 무사하다는 그 간단한 대답을 하마터면 하지 못할 뻔했다는 게 갑자기 너무나 통렬하게 실감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사신의 낫이 옷깃까지만 잘라내고 지나갔다.

“고마워요, 오빠. 이렇게 살아줘서 고마워요.”

우와아~ 보안관은 지옥 뒤에 곧바로 극락을 맛보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니의 맨다리를 베고 누워 그녀의 입맞춤을 받고 있다.

그 부드러운 입술이 스치고 지나가는 곳마다 감각이 되살아나고 전율이 돋는다. 게다가 한쪽 볼을… 제니의 커다랗고 탄력 있는 가슴이 꽉 누르고 있다.

그것도 속옷 차림으로!

이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으… 아오! 으…….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눈이 반쯤 감긴 보안관은 이 갑작스런 애정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 심장이 멎는 주사를 맞고 난 후에는 피가 도무지 순환되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바지 속 어딘가로 피가 잔뜩 모여들고 있다.

보안관의 이마에 축복을 담아 입을 맞추는 것으로 제니가 수십 번의 키스를 마무리하고 눈물을 닦을 때, 보안관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볼을 감싼다.

그리고 보안관의 입술이 처음으로 제니의 입술을 덮었다. 길고도 진하게, 보안관은 눈을 꾹 감은 채 제니의 부드러운 입술을 느꼈다.

그녀의 고른 치열과, 촉촉하고 수줍어하는 혀와, 잇몸까지도 모두 탐했다.

“하아아~!”

한참 만에 입술을 뗀 보안관은 제니의 눈을 보았다.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거절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보안관은 다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조각 같은 팔과 어깨를, 작은 새의 뼈처럼 가녀린 쇄골을, 그리고 매끄러운 등과 허리를 쓸었다.

쿵쾅! 쿵쾅! 쿵쾅!

심장이 빠르게 뛴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도 쥐어짜듯 아팠던 통증은 깨끗이 사라졌고, 이제 기쁜 두근거림만이 남았다.

보안관의 오른손은 더 욕심을 부린다. 옆구리를 따라 올라온 그의 손가락이 제니의 브래지어 끈을 쓰다듬고 있다.

비슷한 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주저하던 보안관은 결국 손바닥을 펴서 제니의 가슴을 감쌌다.

찌리릿, 전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뇌까지 흔든다.

“하아~ 하아~ 괜찮아?”

보안관은 입술을 떼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 때문에 심하게 갈라져 있다. 제니는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보안관을 마주 봤다.

가슴에 올려진 그의 손을 통해서 지금 그가 얼마나 흥분했고, 또 두려워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이 순간이 오게 되면 이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이미 수백 번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때가 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니는 대답 대신 보안관의 뒤통수에 손을 얹고 천천히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허락을 받은 보안관의 손은 벌써 브래지어를 풀어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보안관의 입술이 가슴에 닿을 때, 제니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데도 이 순간, 자꾸만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그러나 그를 잊고 지금은 이 사람에게 집중하고 싶다.

보안관의 입술은 제니의 목덜미와 가슴 사이를 바쁘게 오간다. 허리를 훑던 그의 손이 반바지의 단추를 풀었다.

열려 있는 단추와 지퍼 사이에서 그의 손이 또 머뭇거린다, 제니는 그의 머리를 쓸어주는 것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보안관은 흥분 때문에 미치는 것 같았다. 심장이 1분에 200번은 뛰는 것 같다. 목 주변의 혈관에 피가 쏠려서 숨이 벅차올 지경이다.

이런 순간이 오다니… 내가… 제니와…….

반바지 속에서 라인을 따라 미끄러지던 그의 손이 마침내 결심을 하고 속옷을 끌어내렸다. 벗겨낸 반바지와 속옷을 곁에 내려놓은 보안관은 잠시 입술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제니의 나신이 바로 눈앞에 있다. 상상 속에서도 제대로 본 적 없었을 만큼 적나라한 나신의 고운 선이… 너무도 희고 아름다워서 눈이 부시다.

상처 입은 무릎과 허벅지의 핏자국조차도 누군가 붉은 꽃잎을 살짝 얹어둔 것처럼 예쁘다.

보안관은 손가락으로 제니의 가느다란 발목부터 종아리와 무릎, 허벅지, 그리고 허리를 천천히 따라 올라갔다.

이 순간을 언제나 꿈꿨었다. 강렬하게 욕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절대로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이 지금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제니의 턱과 입술을 만지고 그녀의 긴 갈색 머리를 쓰다듬던 보안관은 자신의 셔츠를 벗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니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하아… 왜 그래?”

제니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향해 있다는 걸 깨달은 보안관이 물었다.

응? 제니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보안관은 조금 전 제니가 바라보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단벽의 이음매 사이로 좀비들의 머리통과 손이 휙휙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간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놈들은 선로 너머 두 사람의 존재를 느끼고 어떻게든 차단벽을 넘기 위해 뛰어오르는 중이었다.

“신경 쓰지 마요, 그냥 좀비들이에요… 아무것도 몰라요.”

혹시라도 보안관이 화를 내 뛰어 내려가기라도 할까 봐 제니는 얼른 그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돌리고 입을 맞췄다.

그러나 제니가 입술을 떼었을 때, 보안관의 표정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하아~ 저 새끼들이 저렇게 하는 걸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그냥 나 하는 대로 받아들여 주고 있었던 거야? 내가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보안관은 벗어놓은 자신의 셔츠로 제니를 감싸주며 중얼거렸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부끄럽다. 그의 꿈은 실현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자신이 욕망과 타협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보안관의 상상 속에서 제니와 사랑을 나누는 공간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좀비 구경꾼들이 엿보는 뜨거운 선로 자갈 위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아직 한 번도 제니에게 사귀자고 고백하지 않았다. 아직 고백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제야 보안관의 눈에 제니의 손에 남겨진 상처들이 보인다. 베이고 긁히고 피멍이 든 그녀의 작은 손…….

그 모든 상처는 전부 그를 구하려다가 입은 것들일 게 빤하다. 보안관은 얼굴을 감싸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안해, 제니야. 이런 짓을 해서…….”

“미안해하지 마요. 이리 와요. 괜찮아요.”

제니는 보안관의 머리를 꼭 끌어안아 줬다. 굳건하게 살아남아 준 이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다.

오늘 깨달았다. 안전하고 풍요롭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의 목숨은 언제나 살얼음 위를 걷고 있었다는 걸.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죽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방법은 없다.

“아니야, 안 괜찮아. 너랑 하고 싶어서… 그냥 그 생각뿐이었어. 네 기분 같은 거 생각도 안 하고, 이런 황량한 데서…….”

보안관은 제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힘없이 말했다.

“그럼 해요.”

“할 거야!”

보안관은 몸을 일으키고 제니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언젠가 세상이 안전해졌을 때, 너를 찾아가서 사귀자고 하고, 네가 동의해 주면 그때! 정말로 아름다운 침실에서 너랑 사랑을 나눌 거야. 처음은 그렇게 시작하고 싶어.”

“왜 그렇게 복잡해요? 만약에 그때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제니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묻자, 그녀의 속옷과 반바지를 집어 들던 보안관이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지금 못한 걸 평생 후회하고 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사랑이라고 믿으니까. 어휴, 아주 작은 상처도 주고 싶지 않았는데… 이게 뭐람…….”

제니는 잠시 보안관의 눈을 바라보다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춰줬다. 여자의 옷을 다 벗긴 후에 제멋대로 그만두는 바보지만, 이 사람은 미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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