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05화 (305/449)

1장 Deus Ex Machina (1)

“하아~ 하아~ 안 돼… 안 돼…….”

차단벽 위에 엎드린 채 매달린 제니는 고개를 저었다.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보안관 오빠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힘센 보안관 오빠가 눈을 부릅뜬 채 바닥에 쓰러져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서성인다. 단 한 번이라도 숨을 내쉬면 곧바로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을 기세다.

그롸아아― 끄르르르―

또 다른 좀비들은 그녀를 노리고 열심히 몸을 날려 팔을 휘저었다.

쿵― 쿵―

4미터가 훨씬 넘는 높이어서 닿을 염려는 없지만, 놈들이 부딪칠 때마다 얇은 철판으로 된 차단벽이 휘청거렸다.

“어떡해… 어떡해……. 오빠, 흐으윽!”

제니는 두 팔과 다리에 힘을 꽉 준 채 버텼다. 이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데, 시선은 보안관에게 꽂혀 움직일 줄을 모른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계속 눈물만 솟았다.

저대로 그냥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이미 되살아날 수 없는 것 같다는 걱정만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아냐! 정신 차려! 생각해! 생각!”

제니는 자신을 향해 빽! 소리를 지르고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바보처럼 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둬야 한다.

그래야 임수정이 말했던 것처럼 10분 뒤에 보안관이 다시 깨어났을 때, 함께 달아날 수 있다. 10분 뒤에도 깨어나지 못하면…….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런 걱정 말고 현실에 집중하라고!

제니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아래쪽 인도를 노려봤다. 서른 마리가 넘는 좀비들이 부근에 모여 있다. 이 상태로 시간만 흐른다면 보안관이 정말로 깨어난다 해도 곧바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좀비들을… 다른 데로 끌고 가야 해. 일단 여기를 다 깨끗이 정리해 둬야… 하아~”

제니는 차단벽의 모서리를 두 팔과 두 다리로 꼭 끌어안은 채 앞쪽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노리며 점프하던 좀비들도 게걸음으로 따라 이동한다.

하지만 아직도 보안관 주변에 남아 멍하니 서 있는 놈들이 많다. 제니는 그놈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손바닥으로 차단벽을 두들기며 소리를 질렀다.

“여기야! 여기로 와, 바보 새끼들아! 나를 잡아먹어 보라고!”

쿵―

여러 마리의 좀비가 한꺼번에 몸을 날리자 차단벽이 휘청한다. 제니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으윽!”

양손을 쫙 벌려 어떻게든 차단벽의 틈을 움켜잡았다. 힘주어 오므린 허벅지에 생채기가 나면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더 아픈 것은 심장이다. 순식간에 모두 다 타버리고 지금 재만 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하아~ 하아~ 제니는 다시 중심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찌익, 발이 밀려 나가며 인도 쪽에 걸쳐진 왼쪽 다리가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롸아아아―

높이 뛰어올라 휘젓는 좀비의 손가락이 아래로 미끄러진 제니의 발 바로 근처를 스치고 지나간다.

제니는 얼른 왼쪽 다리를 위로 끌어 올리며 중심을 잡았다. 하마터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그랬다가는… 그녀만 죽는 게 아니다. 보안관도 같이 죽는 거다.

쿠웅― 쿵―!

그러는 사이에도 좀비들은 계속 차단벽을 들이받고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중이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어깨가 탈골되어도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다.

제니는 최대한 몸을 밀착시키며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등에 메고 있는 배낭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아슬아슬하다.

그냥 매달려 있는 것 정도는 어찌어찌 버텨낼 수 있겠지만, 좁은 차단벽의 모서리를 타고 이동하는 게 어렵다.

손을 뗀 순간 벽이 흔들리면 또 방금 전처럼 휘청거리며 목숨을 건 서커스를 해야 한다. 매끄러운 재질이라 편히 잡을 만한 데도 별로 없다.

“여기라고! 이리 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에서도 제니는 차단벽의 좁은 윗면에 엎드린 채 운동화 뒤축으로 벽을 때리면서 아직도 따라오지 않은 좀비들을 유도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직도 보안관과의 거리는 불과 3미터 정도. 진행은 턱없이 느리다. 이래서야 10분이 지나도…….

“시간!”

제니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게 뭔지 뒤늦게 깨달았다. 보안관이 쓰러진 정확한 시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몇 분이나 지났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제니는 떨리는 팔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시 7분… 제니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대체 몇 분이나 지난 거지? 이 좀비들을 멀리 끌고 도망가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지?

매달린 채 기어서 전진하느라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 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그게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

“아냐… 이런 식으로 질질 끌어서는 해결이 안 돼.”

제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냉정히 계산을 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1분을 기어도 채 2미터를 전진하지 못한다.

그나마도 몇 마리는 아직까지 보안관의 주변에 남아 있다. 더 적극적으로 더 빠르게 놈들을 먼 곳으로 꾀어내야 한다.

“저 정도면 꽤 먼데… 근데 저기로… 어떻게 가지?”

제니는 멀리 떨어진 가전제품 대리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3층짜리 건물. 창문도 많고 계단도 좁다. 좀비들이 따라 들어와 주기만 하면 꽤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건물들과 이어져 있어서 의식을 잃은 보안관 쪽이 가려지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일단 저기까지 기어서 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 방식으로는 안 돼…….

“익!”

제니는 일단 선로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재빨리 가전제품 매장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위치까지 뛰어가 배낭을 벗어 바닥에 대고 털었다.

“하아~ 하아~ 망치, 드라이버, 라이터… 담배… 물, 기름… 등산용 로프, 칼… 플래시… 볼라, 음식은 됐고…….”

표준 장비라고 해서 언제나 메고 다녀야 했던 가방인데, 그다지 대단한 건 없다. 제니는 정신없이 눈을 굴리며 자신이 가진 것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저 건너편의 인도로 가서 좀비들을 그곳까지 유인한 뒤, 자신은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걸 앞으로…….

시계를 봤다. 바늘 시계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시 8분. 그사이에 또 1분이나 지났으니까, 그 모든 작업을 앞으로 6분 내에 다 해내야만 한다. 그 정도밖에는 여유가 없다.

그녀를 따라와 차단벽을 두드리는 좀비들의 소리가 약해지는 게 불안하다. 놈들이 다시 보안관에게 돌아가 버리면 안 된다.

제니는 선로에 깔린 자갈들을 주워 비운 배낭에 채우기 시작했다. 작은 배낭은 이내 자갈로 가득 차서 불룩해졌다.

“끄응~!”

제니는 배낭의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려봤다. 꽤나 묵직하다. 이 정도면 30킬로그램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무게를 가늠한 후, 등산용 로프의 매듭을 풀어내서 볼라의 한 가운데에 묶었다. 볼라를 두어 차례 돌려 중심이 제대로 잡혔는지를 확인한 제니는 그걸 목에 걸고, 차단벽 중간 높이의 틈에 드라이버를 박아 넣었다.

깡! 깡! 까앙―!

제대로 고정시키기 위해 드라이버 뒷부분을 망치로 때려 깊숙하게 박았다.

아악―! 망치가 헛 나가 왼손 엄지를 내려친다. 엄지가 터져 나가는 것 같았지만, 제니는 비명을 삼키고 곧바로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울면서 손가락을 빨 때가 아니다.

“됐어, 됐어. 이 정도면 안 빠져.”

드라이버에 무게를 실어본 제니는 그걸 밟고 올라가서 다시 차단벽 위에 걸터앉았다. 한쪽 발등을 드라이버에 걸어놓고 무게를 지탱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전 그냥 매달려 있을 때보다 자세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시간이… 하아~”

제니는 등산용 로프를 왼손에 쥐고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1시 11분. 이제 여유 시간은 3분. 실수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볼라를 쥐고 팔을 높이 들며 빙빙 돌렸다.

“걸려라! 제발!”

볼라를 힘껏 던지며 제니는 안타까운 기도를 했다.

부웅― 붕― 붕―

원을 그리며 날아간 볼라는 앞 건물 3층의 에어컨 실외기 거치대에 걸리며 휘리릭 감겼다.

감기는 순간에 당겨지는 힘 때문에 하마터면 그녀까지도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제니는 드라이버에 건 발등에 힘을 주어 겨우 중심을 잡고 버텼다.

“읏차!”

자세를 다시 잡은 제니는 볼라에 연결한 로프를 당겨봤다.

피잉― 로프가 팽팽하게 당겨지자 볼라가 친친 감긴 실외기 거치대에서 까드드득거리며 쇠가 울린다. 단단히 묶였다.

“왼쪽 맨 끝 창문…….”

볼라를 감아둔 실외기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제니는 선로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볼라와 연결된 로프를 조금 전 자갈을 가득 채운 배낭에 묶었다.

“담배… 담배… 라이터!”

제니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두 갑의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라이터 기름을 집어 트랙 톱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다 챙긴 건가? 마지막으로 확인을 마치고 나서 다시 드라이버를 밟고 차단벽 위로 뛰어올랐다.

“…1분…….”

시계를 확인한 제니는 차단벽에서 인도 쪽으로 뛰어내렸다. 높이가 꽤 됐지만, 매달려서 조심조심 내려올 여유 따위는 없다.

탁, 바닥에 내려서면서 제니는 한 바퀴 앞으로 굴렀다.

“끄으으으! 아으!”

제니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곧바로 일어나 좀비들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나왔다. 무릎의 살갗이 벗겨지고 손바닥이 긁혔지만, 그 정도면 감사하다. 발목이 멀쩡하면 뛸 수 있으니까.

“야! 이것들아! 이리 와! 너희들이 좋아하는 거잖아!”

제니는 좀비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트랙 톱을 벗어 들고 라이터 기름을 그 위에 뿌렸다. 잡고 있는 소매 외의 부분이 기름으로 흥건해질 때쯤 제니는 라이터를 켰다.

화르륵!

기름을 잔뜩 먹은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옷은 금방 불길로 뒤덮였다. 트랙 톱 주머니 안에 든 담배에서도 특유의 냄새와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으윽! 아으으!”

속옷만 입고 있는 상체에 화염의 열기가 덮쳐 오자, 땀이 증발하고 솜털이 그을린다. 뜨겁다. 제니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깨져 있는 자동차의 뒷좌석으로 불붙은 옷을 던져 넣었다.

그롸아아아아! 끄와아아아!

담배 연기, 불의 열기, 움직이는 사람, 소리… 여러 가지 유혹을 한꺼번에 받은 좀비들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포효하며 달려온다. 놈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다.

30여 미터의 거리는 금방 확확 줄어들었다. 제니는 곧바로 뒤돌아서서 가전제품 매장을 향해 뛰었다.

탁탁탁탁탁―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가 바로 등 뒤에까지 따라붙는 느낌이다. 매장 안으로 재빨리 들어간 제니는 좌우를 둘러봤다. 계단은 좌측 끝에 위치해 있었다.

으지직― 콰장창!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몸을 날리자 유리문이 박살 난다. 엎어진 좀비들의 몸을 밟고 수십 마리의 좀비가 일제히 뛰어 들어온다.

이제 미리 걸어놓은 밧줄을 타고 선로 쪽으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도로 위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동차에 관심을 보이는 놈들도 몇 마리 모여 있다.

두려움 때문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상황 속에서도 제니는 열심히 매장 내부를 내달렸다. 그러고서 매대 위에 진열되어 있던 밥솥과 선풍기를 닥치는 대로 밀어 넘어뜨리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쿵당탕―

뒤쪽에서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와 좀비들의 포효가 함께 울린다.

“하아아~ 하아아~”

가슴이 벅차도록 속도를 높여 2층에 들어서자 어둠이 진하게 내려앉는다. 여기는 전면창이 없다. 제니는 비로소 자신이 챙겨 오지 않은 물건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플래시. 중요한 거였는데…….

설상가상으로,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3층은 별도의 계단을 통해 오르게 되어 있는 구조인가 보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되지?”

당황해서 망설이는 동안에도 좀비들은 계단 위로 뛰어 올라오고 있다. 제니는 앞뒤 잴 여유 없이 매장의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진열된 물건들이 모두 커다란 냉장고뿐이어서 그녀의 힘만으로는 넘어뜨려 시간을 끌 수도 없다.

“사무실!”

사무실 문을 발견한 제니는 무조건 손잡이를 돌려 잡아당겼다.

콰당탕!

뒤쪽에서 냉장고가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제니는 선로 쪽을 행해 난 커다란 창문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문을 잠갔다.

찰칵, 그 작은 쇠붙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녀에게 안전을 보장해 준다.

쿵― 쿵―

뒤늦게 쫓아온 좀비들이 쇠문을 향해 쉬지 않고 몸을 날려 대고 있다.

“하아~ 여기가…….”

제니는 창문에 달라붙어 자신이 설치해 둔 밧줄을 찾았다. 볼라를 묶어둔 실외기는 그녀가 숨은 사무실에서 사선으로 한층 위에 위치해 있고, 자갈을 넣어둔 배낭과 연결된 밧줄이 차단벽 쪽으로 이어져 있다.

“여길 어떻게 나가지?”

창문이 하부만 비스듬히 들어 올릴 수 있는 구조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제니는 의자를 들어 올렸다. 의자를 던져 창문을 깨고… 중간 창틀을 밟고 뛰면…….

콰자작!

그렇게 그녀가 계산을 하고 있을 때, 문과 직각인 벽이 뚫리며 좀비의 머리카락이 얼핏 비친다.

뭐지? 왜 벽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의자를 들어 올리려던 제니는 바짝 얼어붙었다. 그쪽 벽이 그저 합판으로 막아둔 간이 격벽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콰자작― 콰자작―

그동안에도 좀비들은 열심히 몸뚱이를 던져 합판을 쪼개고, 벽에 바른 석회를 떨어뜨린다. 갈라진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잡아 뜯어내는 놈들도 있다.

“후우~ 후우~ 어떡해… 어떡해.”

제니는 두려움에 떨면서 의자를 들어 올려 창문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와장창―!

커다란 창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콰당―

날아간 의자가 2층 아래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그 뒤를 이어 들려온다.

책상 위에 있던 감사패로 틀에 걸려 있는 유리 조각들을 털어낸 제니는 창틀을 밟고 올라섰다.

“아얏! 아야야!”

틀을 짚었던 손가락에서 금방 빨간 피가 솟았다. 깨진 유리에 베인 것이다. 늘 장갑을 끼라고 잔소리를 하던 유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간다.

와지끈― 와지끈―

합판 벽은 이제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몸뚱이의 반 이상이 사무실 안으로 파고든 좀비들도 몇 마리 보인다.

“아냐, 아냐… 여기에 집중해. 이거… 이거 못 잡으면 너는 죽어… 끝이란 말이야… 하아~ 하아~”

제니는 계속 뒤를 돌아보고 싶은 본능을 꾹 눌러 참고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는 로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거리나 높이, 그리 멀지 않다. 제대로 점프만 하면 충분히 팔을 뻗어 잡을 수 있는 정도다. 다만… 놓치면 2층하고도 절반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거다. 그때는 더 이상 탈출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계속 자기 최면을 걸고는 있지만, 두려움이 완전히 떨쳐지지를 않는다.

우지지직, 벽이 완전히 다 무너져 내리고 여러 마리의 좀비들이 일제히 방 안으로 고꾸라져 들어왔다. 이제는 시간 여유가 정말로 0이다.

“꺄아아! 엄마!”

제니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두 손을 뻗어 로프를 콱 움켜쥐었다. 팽팽했던 로프가 약간 느슨해진다.

찌릿! 조금 전 유리에 베인 손가락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은 그 고통을 견뎌내고도 남을 쾌감을 그녀의 뇌에 제공했다.

“아으으윽! 으윽! 끄으응!”

제니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로프를 좀 더 제대로 고쳐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금처럼 손끝만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어서는 저기 차단벽까지 건너가지 못한다.

몇 번이나 몸을 챈 끝에 제니는 손바닥 전체를 이용해서 로프를 꽉 움켜잡을 수 있었다. 11자 복근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못살게 굴던 개인 트레이너가 모처럼 고맙게 느껴졌다.

제니는 배에 힘을 꽉 주고 양손을 번갈아 바꿔 잡아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뒤쪽에서는 요란한 포효와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혼을 쏙 빼놓을 것처럼 울려 대고 있다.

그롸아아아―

창틀 위로 몸을 날린 좀비가 허공에서 두 손을 휘젓다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애초에 선로 안에 설치한 무게 추는 돌을 채운 작은 배낭이 전부다. 그녀보다 더 무거운 것이 로프에 매달리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콰작!

바로 등 뒤에서는 무모하게 몸을 날린 또 다른 좀비가 바닥에 떨어지며 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팔을 옮겨 잡으면 된다.’

차단벽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가슴이 두근댄다. 제니는 길게 팔을 쭉 뻗어서 차단벽의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그녀가 차단벽으로 체중을 옮긴 것과 거의 동시에, 수많은 실패를 딛고 좀비 한 마리가 로프 위로 뛰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촤라라라락―

실외기에 감겨 있던 볼라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까가각, 배낭이 끌려 올라오며 차단벽을 훑는다.

제니는 재빨리 두 손으로 차단벽을 잡고 목을 움츠렸다. 자갈을 채운 배낭은 모서리에서 한 번 텅, 튕겼다가 좀비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쏜살같이 떨어져 내린다. 로프에 걸려 있던 좀비도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하아~ 하아~”

내장이 터지고 뼈가 꺾인 좀비들이 바닥을 기며, 닿지 않을 높이에 위치한 제니의 다리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제니는 있는 힘껏 차단벽을 걷어차면서 그 탄력을 받아 건너편의 선로 위로 뛰어내렸다.

“하아~”

제니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이것으로 보안관을 둘러싸고 있던 좀비들을 가전제품 매장 쪽으로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늦었어! 늦었어!”

아얏! 제니는 급히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자갈밭 위를 뒹굴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나 곧바로 보안관이 쓰러져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몇 분이나 되었는지 시계를 볼 틈도, 용기도 그녀에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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