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04화 (304/449)

6장 Heart(3)

좀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도 20분 이상이 흐른 뒤에야 코스트코 옥상에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돌아왔다.

“아래층에서 먹을 것 좀 가져다 놔야겠다. 아… 맥주도 좀 더 가져다 놓을까? 우리 술 엄청 마시네.”

담배에 불을 붙인 삼식이가 빈 술병들을 휴지통에 담으며 말했다. 사실 그중의 절반 정도는 녀석이 다 마신 거다. 신입이 벌떡 일어나 합류한다.

“같이 가자. 나도 먹고 싶은 거 있었는데.”

“그러면 일단 무빙워크에 있는 좀비 시체들부터 좀 치우고 가자. 그거 계속 썩고 있을 생각하면 심란하다.”

유빈이 끼어들어 삼식이와 신입을 중노동의 늪으로 끌어들여 버렸다.

에? 오늘?

삼식이와 신입이 동시에 귀찮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딱히 싫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디다 버릴 건데? 꽤 많잖아.”

“일단 팔레트로 밀어서 밖에라도 내놓자. 그리고 무빙워크 청소도 좀 하고. 언제까지 주차장으로 빙빙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그럼 1층에서 고무장갑이나 마스크, 이런 거 먼저 찾아야겠네. 에… 내가 고글을 어디에 뒀더라?”

삼식이는 아래층에서 끌고 온 자동차를 뒤져 필요한 장비들을 카트에 담았다. 세 사람이 주차장 통로를 따라 내려가기 직전에 보안관이 그 뒤를 쫓아가며 불렀다.

“야, 삼식아. 잠깐만 나 차 열쇠 주고 가.”

“무슨 차?”

“산책로에 세워둔 차들 있잖아. 배터리 방전되기 전에 시동 한 번 걸어두려고.”

“아, 그거. 두 대 다 운전석 햇빛 가리개 안에 넣어놨어. 문 열려 있으니까 꺼내서 시동 걸면 돼. 근데… 혼자 가면 무서울 건데, 이따가 나랑 같이 가든가 하지.”

삼식이의 말에 보안관은 같잖다는 듯 대답했다.

“괜찮아, 금방 갔다 올게. 너나 껌껌한 데서 좀비 시체 만지다가 오줌 싸지 마라.”

유빈이 잠시 주저하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보안관인데다가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니까. 사실 선로 위는 비교적 안전하다. 그래도 유빈은 두 가지 당부를 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혹시 모르니까 귀찮더라도 배낭은 메고 가. 응? 무전기도 챙기고.”

안전화로 갈아 신은 보안관이 배낭을 메고 있을 때, 제니가 다가와 묻는다.

“보안관 오빠, 어디 가려고요?”

“응, 산책로에 세워둔 차도 좀 보고. 겸사겸사.”

“혼자요? 에이, 외롭게 왜 혼자 다녀요? 그럼 저랑 같이 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니는 슬리퍼를 벗고 운동화를 신는다. 얇은 트랙 톱에 짧은 반바지 차림의 그녀를 보고 보안관이 물었다.

“그렇게 입고?”

“왜요? 너무 자극이 심한가요?”

제니는 트랙 톱의 지퍼를 조금 내리며 도발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보안관의 홀린 얼굴을 보며 또 까르르 웃었다.

잔소리쟁이 유빈이 있었다면 당장 난리를 치면서 긴 바지와 양말을 주문했을 테지만, 보안관은 제니와 함께 웃으며 그녀의 배낭을 챙겨준다.

“어떤 게 네 거였지?”

“그거요. 볼라 달려 있는 거.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두 사람은 태권소녀와 규영, 임수정에게 인사를 하고 코스트코를 나왔다.

도로를 따라 10여 분을 걸은 보안관과 제니는 주유소 지붕 위에 미리 연결해 둔 사다리를 타고 선로로 올라갔다.

“으아, 덥네요. 확실히 여기는 다른 데보다 조금 더 뜨거운 기분이에요.”

달궈진 선로 위를 걸으며 제니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알루미늄 배트를 빙글빙글 돌리며 걷던 보안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제니를 돌아본다.

“생각해 보니까 너랑 이렇게 둘이서만 산책하는 게 거의 처음인 것 같아.”

“음, 그런가요? 아닌데? 우리 전에 있던 동네 마트에서 장 볼 때도 둘이 같이 돌았고, 자동차도 우리 둘이 같이 탔었는데.”

“그렇기는 한데, 그때는 바로 근처에 다른 애들이 있었잖아. 지금은 근방 몇 십 미터 안에 우리 단둘뿐이고. 그런 게 차이지. 오붓함…이랄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서…….”

쑥스러워하는 보안관의 등을 탁, 치며 제니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게 뭐야. 이상해요! 엉큼해 보여!”

“아… 나는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어. 으아, 이거 지금 감점 발언?”

보안관의 얼굴이 조금 빨개지자 제니는 얼른 웃음을 그치고 그의 커다란 손을 살며시 잡았다.

“아뇨. 오빠는 감점 같은 거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언제나 백 점이에요.”

두 눈을 바라보고 그렇게 말해주는 제니의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보안관의 머릿속에서는 잠시 불꽃놀이가 벌어졌고, 얼굴은 더 빨개졌다.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제니의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이래도 백 점이란 말이야? 정말로? 그럼 이거는?’이라고 할 뻔했다.

“아후우~!”

상상을 한 것뿐인데도 너무 짜릿해서 보안관은 가볍게 도리질을 한 뒤에야 다시 제니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손… 조금만 더 잡고 걸어갈까? 꼭 사귀는 것 같아서 나 엄청 기분 좋은데.”

보안관의 말에 제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연인처럼 손을 꼭 맞잡고 이글거리는 선로 위를 지나 두 대의 자동차를 세워 둔 산책로에 도착했다.

줄사다리를 타고 먼저 내려간 보안관이 제니를 받아준다.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사심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손길이었다.

“좀 줄어든 거 같기는 한데… 아직 지나가기는 좀 힘들겠다. 며칠만 더 이렇게 쨍쨍하면 어찌어찌 갓길에 바짝 붙여서 통과할 수 있으려나?”

막힌 배수구 때문에 생긴 호수를 보며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찰랑거리는 물의 경계에 산책로의 가장자리가 얼핏 보인다.

야구 배트로 깊이를 재봤다. 50센티미터 가까이 된다. 차를 몰고 들어가기에는 무리다. 보안관은 배트의 물기를 털어내고 자동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갔다.

“으아! 숨 막혀. 이 안에도 푹푹 찌는구나.”

자동차 문을 열자마자 내부의 열기가 확 덮쳐 온다. 창문을 조금 열어뒀었는데도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보안관은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시동을 걸었다.

위이잉― 다행히 배터리에는 별 문제가 없는지 한 번에 엔진이 돌기 시작한다.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치지직거리는 잡음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빠! 이거 봐요!”

라디오의 주파수를 바꾸고 있을 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니가 부른다. 보안관은 고개를 들었다. 제니는 B급 영화 속의 히치하이커처럼 한쪽 다리를 내밀고 엄지손가락으로 세워 달라는 신호를 하고 있었다.

하하… 보안관은 웃었다. 도저히 태우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타시죠.”

1미터 정도를 전진해 다시 멈춰 선 보안관은 조수석의 유리를 내리고 말했다. 제니는 조수석에 앉고 나서도 낯선 여자의 연기를 계속하며 물었다.

“이 차는, 어디로 가는 중이죠?”

“네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보안관은 최대한 낮고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니는 빵 터져서 보안관의 어깨와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며 웃었다.

“아하하하! 뭐야! 그 말투! 너무 느끼해요! 완전 아저씨! 감점! 이건 진짜 감점!”

“응? 감점 없다며!”

잠시 함께 깔깔대고 나서 조용해졌을 때, 보안관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왜 잠실이라고 안 해?”

“네?”

제니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걷힌다. 보안관은 찌직거리는 라디오를 끄고 말했다.

“테라가 잠실에 살아 있다는 거 알았잖아. 그런데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꺼내니까.”

“당연히 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테라를 데려오고 싶어요. 하지만…….”

제니는 곤란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냥 아무 때나 휙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 마음대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지금만큼 안전해지기 위해서 오빠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아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요. 거기까지 가려면 또 위험한 일을 잔뜩 해야 할 테고… 그냥 지금은… 살아 있어줘서 고맙고, 거기에서 안전하다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미안하다는 듯 제니는 두 손을 꼭 움켜쥐고 있다. 보안관은 눈가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젯밤에 유빈이랑 삼식이랑 이야기했었어. 네가 테라를 만나도록 돕고 싶은데, 아직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목숨 걸지 않고도 잠실까지 갈 수 있는, 좋은 묘수가 분명히 있을 거야. 물론 그걸 생각해 내는 건 아마 유빈이겠지만, 나도 최대한 머리를 굴려는 볼게.”

“아니, 저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후우~ 코스트코 들어간 지도 며칠 안 됐잖아요. 이제 겨우 먹을 것 걱정 안 하고 편하게 잠들 수 있게 된 건데, 그렇게 제 생각만 할 수는 없어요.”

제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속으로는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티내지 않으려고 계속 웃었던 건가……. 제니가 안쓰러워져서 보안관의 미간에도 주름이 잡힌다.

“미안해하지 마.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해.”

보안관은 제니가 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친구 진우 기억나지? 그 군대 간 녀석 말이야. 만약에 걔가 강원도 어느 산골짝이 아니라 잠실에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간다고 했을 거야. 겨우 10킬로미터 남짓이니까 가능성이 보이잖아. 그리고 아마 너도 별 반대하지 않고 도와줬겠지.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야. 진우에게 별로 몰입이 안 되면 유빈이라고 가정해 봐. 걔랑 헤어졌었는데 알고 보니 잠실에 있더라. 그렇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그냥 당연한 일이야. 잠실 쉘터라는 데에서는 최소한 안전은 보장 받는다니까 큰 손해도 아니고… 조금만 기다려. 같이 가자.”

제니는 당혹스러운 마음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창밖을 보며 눈가를 찍어냈다. 이런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 마음만으로도 엎드려 절을 하고 싶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을 하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될까 봐 섣불리 감사의 말을 꺼내기가 두려워진다.

다들 그리운 사람이 있지만 꾹 참고 있는 걸 텐데 자신만 그렇게 친구를 찾아 나선다는 게 과연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가슴속에는 그리움이 끝없이 차오른다.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어지럽다. 혹시 나 때문에 모두가 불행해지면 어떻게 하지? 제니는 그게 무서웠다.

“기운 차려. 그렇게 기죽어하지 말고.”

제니의 어깨를 다독여 준 보안관은 두 번째 차의 시동을 걸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가 일어난 운전석에는 빨간색 캡슐이 떨어져 있었다. 어제 임수정이 준 그 이상한 약이다.

“이거요, 오빠. 아까 떨어뜨렸더라고요.”

코스트코로 돌아가는 길에 제니는 D.E.M.을 보안관에게 건넸다. 보안관은 그 뚜껑은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먹한 사이에 주는 선물이라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어째 별로 신용이 안 간다.

“근데 제니야, 너는 이거 믿기냐? 10분간 심장마비가 온다니… 그게 정말일까? 너무 황당한 이야기 아니야? 이거, 그냥 독약이면 어떡해? 그 누나도 누군가한테 전해 들었다고 했잖아.”

“재질이나 만듦새 같은 걸 보면 꽤 공들인 물건 같기는 한데… 선물 받은 거니까 그냥 가지고만 있어요. 저도 그런 거 쓸 일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치, 응? 내가 비뚤어진 게 아니지? 아, 맞다! 나 그거 해보고 싶었는데.”

먼저 도로로 내려가 제니를 받아주던 보안관이 삼거리에 있는 가게를 돌아본다. 코스트코로 가는 방향의 반대쪽이다.

“뭔데요, 오빠?”

“저 복권 가게 안에 있는 즉석복권. 그거 몽땅 다 가져가서 긁어보고 싶었어.”

“하하, 그런 일을 해서 뭐해요. 1등이 돼도 돈 줄 사람이 없는데.”

“응, 돈이야 뭐 그렇긴 하지. 근데 보통 저런 가게 안에 있는 복권을 다 사버리려면 얼마나 드는지, 그걸 다 긁으면 몇 원이나 당첨되는지 옛날부터 궁금했거든. 오늘 밤에 애들이랑 같이 한 번 긁어보자. 어때?”

훗, 그래요. 제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자동차 안에서 엄청 듬직한 오빠였던 남자가 지금은 어린애처럼 들떠서 아무 소득 없는 바보짓을 해보고 싶다며 허락을 해달란다.

조금 멀리 돌아가야 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이것밖에 없나? 즉석복권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많지가 않네. 순 로또 용지밖에 없고.”

복권 가게 안에 들어선 보안관은 비닐봉지에 닥치는 대로 즉석복권을 담았다. 물론 그런 짓을 해도 손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응?”

가게를 나선 보안관이 삼거리의 우측을 돌아보며 제니를 감싼다.

“왜 그래요, 오빠?”

“아니… 별거 아니고, 저기 뭐가 슥 지나갔어. 그날 골목 안으로 들어왔던 좀비 중에서 아직 못 잡은 놈들 있잖아. 그놈들 중 하나인 모양인데… 여기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나?”

보안관은 복권이 든 봉지를 제니에게 넘기고, 배트를 두 손으로 잡았다. 제니는 보안관의 웃옷을 살짝 잡았다.

“지금은 그냥 가면 안 돼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와서…….”

“그래도 되긴 하는데, 이놈이 여기 계속 있어준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괜찮아, 어차피 그놈들 다 합쳐 봐야 몇 마리 안 돼.”

보안관은 호기롭게 웃었다.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다섯 마리다. 껌이다. 그는 좀비가 모습을 감춘 코너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슬쩍 거리를 두고 고개를 내밀던 보안관의 얼굴이 이내 굳는다.

‘왜 이렇게 많아?’

그롸아아아―

보안관과 눈이 마주친 좀비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도로 위를 배회하던 수십 마리의 좀비가 일제히 방향을 튼다.

“으아아아!”

보안관은 재빨리 뒤돌아 제니의 손을 꽉 움켜잡고 뛰었다.

“뭐예요? 왜 그래요?”

코너 저편의 상황을 보지 못한 제니는 열심히 달리면서도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복권 봉지가 풀썩거리며 달리는 데 방해가 된다.

“제니야! 복권 버려! 좀비야! 존나 많아!”

보안관의 말을 들은 제니는 봉지를 뒤로 던졌다. 복권들이 정신없이 휘날린다. 보안관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좀비들은 어느새 바짝 뒤쪽까지 따라붙었다.

확실히… 달리기로 이놈들을 뿌리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가발 가게든 코스트코든, 안전한 곳까지는 너무도 멀다.

“이쪽으로!”

보안관은 제니를 잡아끌며 방향을 바꿨다. 선로로 올라가야 한다. 좀비들은 높은 데를 기어 올라오지 못하니까 그 주유소까지만 가면… 거기에 사다리가 있다.

“윽!”

멈춰 서 있는 자동차가 장애물처럼 달리기를 방해한다. 보안관은 몇 번이나 호되게 무릎을 부딪쳐야 했다. 아픈 것은 괜찮은데 자꾸 속도가 줄어든다.

이제는 주유소까지 가는 것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선로와 이어진 곳, 아무 데라도 가야 한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막혔어요!”

선로의 높은 차단벽을 보며 제니가 비명을 지른다. 보안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다.

그롸아아아―

바짝 따라붙은 좀비가 손을 뻗어온다. 보안관은 제니의 손을 놓고 배트를 꽉 움켜잡으면서 허리를 힘껏 돌렸다.

까앙―!

관자놀이를 직격당한 좀비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쓰러진다. 그리고 또 한 마리. 보안관은 두 번째 좀비의 정수리를 힘껏 내려쳤다.

빠직―

타격은 제대로 들어갔지만, 배트는 해머보다 약하다. 단번에 죽이지 못한다.

‘미쳤지… 내가 뭐한다고 이딴 거를 들고 와서…….’

보안관은 목이 꺾인 좀비의 가슴을 걷어차 뒤로 날려 버렸다. 불과 20여 미터 뒤에는 또 대여섯 마리가, 그 뒤에는 더 많은 좀비가 달려오고 있다. 끝이 안 보인다.

“제니야!”

보안관은 제니 쪽으로 뛰어가 배트를 버리고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 행동의 의미를 눈치챈 제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젓는다.

“아뇨… 오빠… 같이…….”

보안관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야아압!”

보안관은 있는 힘껏 두 팔을 휘둘러 제니를 위쪽으로 던졌다. 제니는 눈물이 맺힌 상태에서도 용케 선로 차단벽의 끝을 잡고 몸을 끌어 올렸다.

그녀가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보안관은 곧바로 뒤돌아섰다. 처음에 죽이지 못한 좀비에 여섯 마리가 더해져 한 뭉텅이로 달려온다.

“으아앗!”

배트를 집어 든 보안관은 놈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가슴을 걷어차고, 다리를 부러뜨리며 버텼다.

필사적으로 길을 터보려 했지만,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쓰러지는 놈의 등 뒤에서는 그보다 몇 배나 되는 좀비들이 달려오고 있다.

빠아악―

일곱 마리 째의 좀비를 뒤쪽으로 날린 보안관은 급히 장갑을 벗고 바지주머니를 더듬었다.

‘독약이더라도 해보는 수밖에 없다.’

D.E.M.의 뚜껑을 젖힌 보안관은 튀어나온 바늘을 왼쪽 가슴에 힘껏 찔러 넣었다.

찌리릭―

빠른 속도로 주입된 약물이 지독한 통증을 남기고 뇌를 향해 치닫는다.

화아악―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더니, 이내 가슴이 콱 막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끄으윽!”

보안관은 핏줄이 도드라진 얼굴을 어떻게든 돌려보려 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면… 제니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좀비의 갈퀴 같은 손이 뻗어오고 있는데… 피해야 하는데…….

그리고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

쿵!

통나무처럼 허물어지는 보안관을 내려다보며 제니가 울부짖었다.

“오빠아―!”

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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