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97화 (297/449)

5장 엇갈린 운명(1)

“젠장! 왜 벌써 여기까지. 서둘러요.”

고 하사가 신호를 보내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더라도 이제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어졌다.

“조심하세요, 조심!”

강 소위가 발을 헛디딘다. 휘청, 임수정이 몸으로 버텼다. 세 사람은 비틀거리면서도 최대한 속도를 냈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그래도 용케 구르는 것만은 면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그들은 계단 뒤쪽에 몸을 숨긴 채 플래시를 껐다. 그러고는 잠시 숨을 돌렸다. 부축한 채 걸어보니 높은 계단이라는 건 힘겹고 위험한 장애물이다.

“하아~ 하아~ 어떻게 딱 여기를 알고 쫓아온 겁니까? 우리도 나름 머리를 썼는데…….”

고 하사가 중얼거렸다. 네 명에 또 네 명. 지시를 받은 것만 해도 여덟 명이다. 명령을 내린 목소리를 더하면 아홉이나 된다. 그만큼의 병력을 차출해서 여기를 뒤진다는 것은 어지간히 확신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 하사 일행은 오늘 새벽 총성이 울리는 틈을 타서 한 정거장을 더 와서 몸을 숨겼었다. 벌써 건대 지하철역과 그 주변 수색을 마쳤다는 이야긴가?

건대역은 환승역이어서 엄청 크고 복잡하던데… 그건 말이 안 된다. 너무 빠르다.

“그냥 동시에 주변 역들을 다 뒤지고 다니는 건 아닐까요?”

임수정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아니요. 그건 너무… 주변 역으로 세 개만 잡아도 거의 서른 명이 필요한데, 그만큼의 병력이 빠지면 쉘터 방어가 안 됩니다. 가뜩이나 어젯밤을 꼴딱 새웠을 텐데, 아홉 명이나 열 명 정도가 수색으로 돌릴 수 있는 최대치일 겁니다.”

“너, 약 찾아오는 길에 뒤 밟히거나 했던 것 아니야?”

강 소위가 속삭인다. 고 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구, 제가 무슨 띨띨입니까? 계속 돌아보면서 왔습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젠장, 그럼 뭐지? 하긴 지금 이유를 알게 된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빨리 다음 역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어. 조금이라도 불 켤 수 있을 때, 빨리 가자.”

한숨 돌린 강 소위는 신음 소리를 흘리며 먼저 발을 뗐다. 오늘 새벽 여기로 오는 선로 안에서 좀비들을 사살할 때 새삼 확인했다. 자신은 대단한 명사수가 못된다. 9대 1의 교전이 펼쳐지게 되면 승산이 전혀 없다.

설사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아무 죄도 없는 병사 애들을 쏴 죽여야 끝이 난다. 죄도 없는데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도망 다니기 싫다고 어린 병사들을 다치게 해야 한다면… 그러느니 좀비들과 맞닥뜨리는 게 훨씬 낫다.

“수정 씨, 방향 한 번 다시 확인해 주세요. 혹시라도 잘못해서 건대 쪽으로 돌아가면 큰일 납니다.”

선로에 내려서기 전, 고 하사가 재차 확인을 했다. 임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 하사가 먼저 내려가 좌우를 비춰보고, 강 소위를 어깨로 업었다.

임수정은 제일 늦게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에 수색대의 발소리는 벌써 꽤나 가까운 곳까지 쫓아왔다. 셋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윽!”

선로에 다리가 끌린 강 소위가 비틀거린다. 애초부터 세 명이 나란히 걸어가라고 만들어놓은 공간이 아니라서 이런 식으로 부축하면서 걷는 게 힘이 들고 불편하다.

결국 임수정이 앞으로 나서서 플래시를 비추고, 고 하사와 강 소위가 뒤따르는 형태로 바꿨다. 고 하사에게만 의존해 걸어가는 동안 강 소위의 고통은 더 커졌다. 세 사람의 힘든 도피는 선로 옆 도피 공간을 만나면서 잠시 멈췄다.

“하아~ 하아~ 타임! 타임! 조금만 쉽시다. 나, 나 죽을 것 같아.”

강 소위가 먼저 간절하게 휴식을 요청했고, 고 하사도 두말 않고 도피용 공간의 벽에 기대앉았다. 그러고는 임수정에게 플래시를 꺼보라는 손짓을 했다.

핏, 플래시의 불빛이 사라지자 주변은 완전한 어둠 속에 묻혔다. 고 하사는 삐죽 고개를 내밀어 뒤쪽을 살폈다. 승강장 위쪽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어이, 거기 다 꼼꼼히 살핍니다! 어이! 직접 가서 보라고! 멀리서 대강 비추지만 말고!”

“하… 하지만 여기 너무 어두운데요……. 뭐라도 휙 튀어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무기라야 달랑 이 몽둥이 하나인데…….”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엄호해 주지 않습니까? 빨리 이동합니다!”

응? 고 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화가 뭔가… 이상하다. 왜 명령 받는 녀석들은 몽둥이로 무장을 하고 있다는 거지? 개인화기는 어디에다 두고?

탁탁탁, 승강장을 걷는 발소리가 울린다. 그러고 보니… 저 발소리는 전투화 소리가 아니다. 훨씬 가벼운 운동화 같은 거다.

설마… 고 하사의 뇌리에 가설이 떠올랐다. 박 소위, 그 미친놈이 민간인들을 수색에 동원한 건가?

그렇다면 이 미칠 듯 빠른 추격속도도 이해가 된다. 병력들은 3인 1조 정도로 나누고 동원한 민간인들을 앞세운다면, 1개 분대 병력으로 30명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민간인을 군 작전에 동원한다니…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게다가 이렇게 멀리까지 거의 무방비로 나온다는 건 민간인에게도, 군인에게도 모두 위험한 일이다.

만약 좀비 떼라도 만나게 되면 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작전을 짠단 말인가.

고 하사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발소리는 저벅거리며 승강장 위를 가로질러 오다가 선로에까지 내려섰다. 뒤쪽은 이제 수색대가 비추는 플래시 불빛으로 훤해졌다.

‘선로까지 내려오면 어쩌지? 걷기 시작하면 여기 도착하는 것도 금방인데… 민간인을 때려서 제압해야 하나?’

세 사람의 심장이 긴장감으로 두근거릴 때, 수색대 민간인들 중 한 사람이 속삭였다.

“야, 그만 걸어가. 됐어, 씨발. 그 새끼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잡는다고 우리한테 뭔 이득이 있다고… 그냥 제자리걸음 하면서 발소리 내고 플래시만 멀리 비춰. 어차피 안 보여. 니미, 가로수 절단 작업 빼준다고 했을 때, 괜히 좋아했네. 이게 훨씬 위험하구만.”

선로에 내려서서 앞을 비추던 사람이 자신의 동료들에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들은 일제히 발소리를 내는 척을 했다.

‘가로수 절단 작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박 소위는 수감자들을 동원한 것이다. 평소부터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던 놈답다.

“에이, 더러워서 진짜… 우리는 뒈져도 그만이라는 거야, 뭐야? 형님, 우리 차라리 도망쳐 버릴까요? 이 길로 내빼면 설마 저희들이 쫓아오겠습니까?”

수감자 중 한 녀석이 속삭인다. 조금 전 제자리걸음을 하라고 했던 놈이 곧바로 윽박을 지른다.

“미친놈아, 정신 차려! 그래도 저기에서는 밥도 주고 편하게 잘 수도 있어! 옛날 같은 줄 알아? 탈옥해도 개뿔, 너 맞아줄 건 좀비들밖에 없는데 내빼긴 어디로 간다는 거야? 그냥 얌전히 시간 보내다가 돌아갈 생각이나 해.”

그 말이 어지간히 설득력이 있었는지, 더 이상 도주 제안을 하는 녀석은 없었다.

‘그래, 너희 말이 맞다. 그냥 시간만 보내다가 꺼져 줘라.’

고 하사와 강 소위는 긴장한 채 간절하게 빌었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가 울리지만,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플래시의 불빛은 그들이 숨은 곳 부근까지 밝히고 있다.

“저기… 고 하사님, 저기…….”

임수정이 다급하게 고 하사를 잡고 흔들며 속삭였다. 목소리가 제법 크다.

“예? 왜 그러세요? 쉿! 쉿!”

뒤쪽을 살피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고 하사가 임수정을 진정시키려고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임수정이 멀리 앞쪽 선로를 가리킨다.

“저기에… 저기에 좀비가…….”

네? 고 하사는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새까만 암흑뿐이다.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아니요. 조금 전에 저 사람들 플래시가 비치고 지나갔을 때… 언뜻 비쳤어요. 저 앞쪽에 두 마리가…….”

임수정은 뒷말을 삼켰다. 더 설명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롸아아아―

멀리에서 좀비의 포효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있다.

“야, 저거 좀비 소리 아니야? 어휴, 옘병. 무서워.”

수감자들이 웅성거린다. 고 하사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사라졌다. 앞쪽에는 좀비, 뒤쪽에는 수색대… 대체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내몰리는 건지 모르겠다.

“기다려요. 좀비는 저 뒤에 수색대 놈들 가고 나면 처리하면 됩니다. 그때까지만…….”

고 하사가 임수정과 강 소위의 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없었다. 바로 코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 속, 좀비들이 지금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전혀 모르겠다.

혹시 벌써 바로 몇 미터 앞까지 와 있는 건 아닐까? 이러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물기라도 하면… 그때는 후회해도 너무 늦는다.

세 사람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두려움이 온몸을 덮는다.

“어이, 후배님! 군인 아저씨!”

그때, 선로 위의 수감자들이 승강장으로 돌아가 감시하고 있는 병사를 불렀다.

“한참 들어가 봤는데, 여기에는 없어요. 이제 올라갈게요. 이 길로 반대편 역까지 가라는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지하철역만 수색하는 게 아니고, 건물들 다 뒤질 거라면서? 이러다가 해 지기 전까지 다 못 끝냅니다. 인제 좀 돌아갑시다. 좀비 우는 소리도 들리고 하던데.”

“얼마나 가봤습니까?”

병사들이 묻자 수감자들 중 우두머리가 느물거리며 둘러댄다.

“얼마나라니, 그걸 내가 뭐라고 설명해야 되나… 내가 무슨 인간 줄자도 아니고… 거리를 어떻게 알아? 하여간 여태까지 계속 걸어갔다가 온 겁니다. 그런 말 하려면 애초부터 어디어디 가면 무슨 표시가 있다. 그걸 딱 찍고 와라, 라고 구체적으로다가 말을 해주든가.”

대답을 들은 병사는 말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이는 모양이다. 녀석이 머뭇거리는 1초, 1초가 암흑 속에서 떨고 있는 임수정 일행에게는 피 말리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올라와요!”

수감자들이 가벼운 환호를 하며 승강장으로 기어 올라간다. 그 소리를 들은 임수정 일행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발소리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임수정은 플래시를 전방으로 향하고 스위치를 눌렀다. 검은 그림자가 확 어른거린다. 좀비들은 이미 10여 미터 떨어진 곳까지 접근해 와 있었다.

“젠장! 더럽게 가깝네! 아직 총소리를 내면 안 되는데!”

강 소위가 혀를 찬다. 으읏차! 고 하사는 용을 쓰며 강 소위를 부축해 일어섰다.

“반대쪽 선로로 해서 그냥 도망가 보는 걸로 하시죠! 뿌리칠 수 있으면 뿌리치는 게 나으니까요!”

“그, 그게 될까요? 우리… 속도가…….”

임수정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탁상공론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멀어지는 게 도움이 된다.

“끄으응차! 끄응차!”

고 하사는 이를 악물고 한 발, 한 발을 뗐다. 그에게 기댄 강 소위도 신음 소리를 흘려가며 걸음을 서두른다.

플래시로 전방을 비추면서 앞서 걷고 있는 임수정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앞쪽을 살폈다.

맞은편 선로로 걸어오고 있던 좀비들은 천천히 방향을 바꿔 다가온다. 지상에서 봤던 것들과 비교하면 좀비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리지만, 문제는 이쪽이 더 느리다는 데 있었다.

두 사람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도무지 속도가 붙지 않는다. 좀비들과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8미터, 7미터, 6미터…….

“안 되겠어! 이젠 안 돼! 쏴야 돼!”

5미터도 남지 않았을 때, 강 소위가 주저앉으며 사격 자세를 취했다. 고 하사가 다시 그를 일으키려 했다.

“안 됩니다! 지금 소리를 내면… 다 들릴 거예요.”

“야! 어차피 물리면 다 죽어! 두 마리나 되는데, 그렇게 빨리 맞출 자신이 없다고! 임수정 씨! 저쪽 비춰주세요!”

고 하사도 더 말릴 수가 없었다. 강 소위는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가빠오는 숨 때문에 총구가 계속 부들부들 떨린다.

타앙―

엄청난 메아리를 만들어내며 발사된 첫 발은 앞서 있던 좀비의 턱을 박살 냈다.

털썩―

좀비가 뒤로 나가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강 소위는 총구를 돌렸다. 두 번째 좀비는 어느새 팔을 들어 올린 채 다가오고 있다.

탕―

두 번째 발도 커다란 소리가 났다. 좀비는 뒤통수가 터져 나가며 날아가 버렸다. 두 마리 좀비는 죽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여기야! 이쪽! 야! 지원 요청해!”

멀리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그리고 바쁘게 울리는 발소리. 위치가 노출됐다. 수색을 종료하고 돌아가려던 병력들이 급하게 돌아오고 있다.

“젠장! 다 들렸나 보네!”

강 소위가 고 하사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한탄을 한다. 고 하사는 그를 부축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임수정도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 강 소위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을 했다.

다들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썼지만,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토끼와 경주하는 거북이가 된 심정이다.

“오지 마! 이 개새끼들아! 다 쏴 버릴 거야!”

뒤쪽으로 플래시 불빛이 어른거리자, 강 소위가 몸을 돌리며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딱히 누군가를 겨냥하고 쏜 건 아니지만, 제압사격으로서의 효과는 확실했다.

추격자들의 발소리는 얼어붙었다. 아마 납작 엎드려 있는 게 분명하다.

“이틈에 거리를 벌려놔야 돼요! 저 새끼들, 지원 병력 올 때까지 바짝 못 쫓아올 겁니다. 강 소위님! 힘내세요! 다음 역까지만 가면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격려해 가며 지하철 한 정거장을 돌파했다. 도중에 또 네 마리나 되는 좀비를 만나 3점사를 퍼붓느라 한참 시간을 잡아먹었고, 위치도 적들에게 각인시켜 줬다.

“하아~ 하아~ 드디어 왔다! 여기에서 올라가면 됩니다. 역에 숨으면 모를 거예요.”

탈진하기 직전까지 내몰린 고 하사가 강 소위를 승강장 위로 올리려고 한다. 임수정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힘을 보탰다.

“끄으으! 으으! 아이고, 나 죽는다, 진짜!”

승강장 바닥에 앉혀진 강 소위가 총상 입은 부위를 감싸 쥔 채 이를 악문다. 고 하사가 정성을 쏟아 지혈해 놓았던 부위에서는 다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계단만 올라가서 숨으면 절대로 못 찾을 겁니다!”

고 하사는 최면을 걸듯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며 기어 올라오다가 강 소위가 흘린 피에 미끄러진 임수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아~ 이러면 안 돼요. 100퍼센트 걸릴 거예요. 우리 발소리가 안 들리면… 당연히 이 역에 숨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고 하사와 강 소위의 표정이 당혹스러워진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저 몸이 너무 힘드니까 외면하려고 했던 문제다.

“후우~”

강 소위가 한숨을 내쉬며 고 하사에게 개인화기를 내민다.

“자, 이 총 가지고 가. 너랑 저분, 둘만 뛰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도망갈 수 있잖아. 이만하면 너는 할 만큼 다 했어.”

“아뇨! 강 소위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럴 것 같았으면 애초에 끼어들지를 않았을 겁니다! 다 같이 삽시다!”

고 하사는 총을 다시 강 소위의 품으로 밀어 넣고 그를 들어 올리려 용을 썼다.

임수정은 생각을 해봤다. 고 하사의 말이 맞다. 그들이 고난을 겪어야 했던 건 강 소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여기에서 포기하면 지금까지 했던 그들의 모든 행위가 부정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대로 셋이 몰려다녀서는 결코 승산이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두 명이 숨는 동안 누군가 한 사람은 미끼가 되어 저 수색대를 끌고 돌아다녀야 한다.

“고 하사님.”

임수정은 고 하사의 손을 꼭 잡았다. 네? 고 하사는 지칠 대로 지친 얼굴을 돌린다. 임수정은 간곡하게 말했다.

“미끼는 있어야 돼요. 발소리를 내줄 사람 말이에요. 제가 할게요.”

“네? 그건 안 됩니다! 정 그래야 하면 차라리 제가…….”

“아뇨. 제 힘만으로는 강 소위님 부축하고 저 계단 못 올라가요. 그리고 지혈도 못하고요. 고 하사님은 강 소위님 곁에 계셔야 돼요.”

임수정은 펄쩍 뛰는 고 하사를 만류하며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선은 자꾸 지나온 선로를 살피게 된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시간이 없다.

“이 역에 숨어 계세요. 다 따돌리고 나서 다시 돌아올게요. 그렇게 약속해요.”

대답하려는 고 하사의 입이 채 열리기도 전, 임수정은 그 말만을 남기고 승강장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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