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96화 (296/449)

4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4)

말을 고르느라 잠시 머뭇거리던 테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직접 찾아가면 화를 내실까 봐… 그래서 귀여운 아기에게 부탁을 한 거예요. 워낙에 사랑스러운 아이라서 얼굴이랑 행동을 보시면 기분이 좀 풀리실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차츰 가까워지려고…….”

“얘 엄마도 이런 걸 아나?”

민구가 보따리같이 작은 꼬마를 가리키며 물었다. 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게 고마운 분이 지금 아프신데, 이 아기에게 간식을 전달시켜서 깜짝 놀라게 해드려도 될지 여쭤봤어요. 기꺼이 허락 해주셨고요.”

“그래?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민구가 찌푸린 얼굴을 테라에게 바짝 가져다 대며 물었다.

“그 아픈 놈 직업이 칼잡이라는 것도 말해줬나? 사람 모가지 따는 일로 먹고살던 말종 또라이한테 네 새끼 좀 심부름 보낼게, 라고 말했냐고? 그래도 허락을 하던가?”

“아뇨… 안 했어요. 그런 분이 아니니까요. 왜 그렇게 무서운 거짓말을…….”

민구가 겁을 주는 동안에도 테라는 물러서거나 눈을 피하지 않는다. 민구는 낮은 목소리로 윽박지르듯 내뱉었다.

“아니, 그게 사실이야! 그런 놈이라고! 네 멋대로 날 뭐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착한 놈도 아니고, 이렇게 조그만 애새끼 보면서 기분 좋아지는 보통의 인간도 아니라고! 알겠어?”

테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이 남자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1미터가 넘는 칼을 휴대하고 다니다가 좀비들의 목을 자르는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평범한 인간은 뿜어낼 수 없는 난폭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해칠 만큼 나쁜 사람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기를 데려온 건… 잘못했어요. 그냥 저는… 이 아이 웃는 모습을 좋아하실 거라고만 생각했었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아기가 위험에 빠지거나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어요. 경솔했습니다.”

사과하고 돌아서려는 테라의 앞길을 민구가 막았다.

“내 꼬라지를 보고 동정하는 것도 그만둬. 더 기웃거리면 그때는 곱게 안 끝낼 거야.”

“…왜 곱게 끝날 수 없는 건가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던 테라가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민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동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도울 수 있으니까 돕고 싶어요. 아저씨도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저씨를 도울 수 없다는 건 너무 이상해요.”

“내가 볼 땐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 너는 그때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랐고,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 네게 남는 음식 몇 가지 던져주고서 함부로 동정이 아니라느니, 돕겠다느니 하는 소리 하지 마. 그냥 내버려 둬. 그리고 그때 일은 잊어버리라고 했잖아. 우리는 서로 빚진 거 없어.”

민구는 차갑게 내뱉고 등을 돌렸다. 이쯤 했으니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더는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라는 달랐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아저씨도 실은 알고 계신 거예요. 제가 진 빚이 훨씬 더 큰 거라는걸요. 그러니까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산을 하실 수 있는 거고, 저를 윽박지르시는 거겠죠.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셔도 저는… 고마운 은인을 외면하지 않을 거예요.”

고개를 돌린 민구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런 은인 같은 게 아니야! 마음에 빚진 걸 따지자면 오히려 내 쪽이 더 커. 왜냐하면! 나는…….”

입안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맴맴 돈다.

나는 네가, 그리고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갇히도록 만든 놈이야! 내가 그 안경잡이를 고문해서 비밀번호를 토해내도록 만들었어!

그놈이 그렇게 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었는데도… 애초에 그 트럭이 열리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도 잘살고 있었을 거고, 그런 놈들에게 봉변을 당할 일도 없었다고! 그런 눈으로 보면서 고맙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민구는 터져 나오려는 속내를 애써 다시 삼켰다. 여기에서 이 계집애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호의를 가지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싫지만,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모습도 원하지 않는다.

“테라 씨, 괜찮으십니까?”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곁을 지나던 병사들이 다가와 묻는다. 테라는 민구가 반응하기도 전에 얼른 표정을 바꾸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네, 저 괜찮아요. 이분이… 아, 이분은 전에 저희 기획사 계시던 강 실장님이세요. 근데 이번에 심하게 다치셔서요. 부상당한 이야기 듣고 있는 동안 제가 아마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나 보네요. 너무 무섭고 아프겠더라고요. 오빠들도 항상 다치시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테라는 두 손을 모으고 깊이 허리를 숙였다. 옆에 있던 아기도 그녀를 따라 배꼽 인사를 한다. 병사들이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돌아간 뒤, 테라는 다시 조금 전의 표정으로 돌아와 조용히 민구의 말을 기다렸다.

“너희 기획사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강 실장이라는 소리는 어떻게 나왔어?”

“여기 떠나시던 날에 초희 선배가 아저씨를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어요. 누가 구해준 건지 이름도 몰랐으니까 그 정도라도 잘 기억해 두자고 생각했었고요.”

초희 선배? 그렇게 싸가지 없는 말을 잔뜩 퍼부어 댔던 상대에게 선배라고? 암만 같은 연예인이라지만 일하는 분야도 다르고 인기는 하늘과 땅 차이였을 텐데…….

이상한 계집애다. 아무에게나 꾸벅꾸벅 잘도 고개를 숙이고 스스로를 낮추는데, 비굴해 보이지 않는다.

“깍까깍까까.”

어른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아기는 테라의 손을 잡고 뭔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다. 저 혼자 흥분했다가 웃다가… 아주 기분이 좋다.

“후우~”

민구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계집애와 얽히면 자꾸 감정이 북받쳐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동안에도 환상 속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게 무섭다.

하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이야기 역시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너랑 말씨름 하는 거 지친다. 끝날 것 같지도 않고… 이렇게 하자.”

한동안 뜸을 들이던 민구가 입을 열었다.

“네 도움이 필요해지면 내가 찾아가서 부탁을 할게. 그때까지는 굳이 아는 척을 하지 마. 따로 신경을 쓰지도 말고. 네가 그 발가락을 붕대로 싸놓은 것처럼, 나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어. 그게 바로 지금이야. 네가 정말로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라면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테라는 커다란 검은 눈으로 민구를 보았다. 이 남자가 이보다 더 양보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제 도움이 필요할 때 정말로 말씀해 주실 거죠?”

“그래, 약속하지.”

민구는 진심으로 약속을 했다.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가지만 더… 이름을 알려주세요. 알고 있고 싶어요.”

“아니, 그건 됐어. 찾아가는 건 나니까. 얼굴 다 알잖아.”

그렇게 말하고 민구는 돌아섰다. 어차피 여기에서 끊을 인연, 실 한 가닥이라도 더 보태고 싶지 않다.

☆ ☆ ☆

저벅, 저벅.

가까워지는 발소리. 전투화 소리다. 지하철역 지하 1층, 캄캄한 물탱크실 안에 숨어 있던 강 소위와 임수정은 숨을 죽였다.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강 소위는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서 총을 고쳐 잡는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는 물탱크실 앞에 멈춰 섰다. 문틈으로 플래시 불빛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노크가 울렸다.

통통통― 통통―

미리 약속했던 대로 세 번, 그리고 두 번.

하아~ 강 소위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접니다, 고 하사입니다.”

문을 열기 전에 고 하사는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준다. 임수정은 잠겨 있던 문을 열었다. 고 하사는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우와, 숨 차라. 진짜 이렇게 뛰어보기는 또 오랜만이네. 괜찮으세요?”

고 하사는 플래시로 방 안을 비추며 물었다. 임수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강 소위는 도리질을 한다.

“젠장… 괜찮을 리가 없잖아……. 아파. 아주 죽는 것 같아.”

“그럴 때가 좋은 겁니다. 아직 의식이 멀쩡하다는 거니까요. 피가 생각보다는 많이 빠져나가지 않은 모양입니다.”

고 하사는 옆으로 비껴 메고 있던 가방을 벗으며 말했다. 아까 지상으로 올라갈 때에는 가지고 있지 않던 물건이다. 강 소위는 씁쓸하게 웃었다.

“흐흐흐… 얼마나 더 빠져나갔으면 좋겠냐? 이 바지에 피 말라붙은 것 좀 봐라. 지금도 빙글빙글 돈다. 그래… 위쪽은 좀 어때?”

“뭐… 자세히는 못 봤습니다. 약이랑 음식 구해 오는 것만 해도 후달려서 죽을 뻔했지 말입니다. 약국이 강 소위님 설명해 주신 거랑 좀 다른 골목에 있어서 그거 찾느라고…….”

“로데오 골목 끝자락 길 건너에 있다고 했잖아. 그… 무슨 보쌈집인지 그런 거 큰 거 보고 들어가면 놓치기가 어려운데. 다음 징발할 목표였기 때문에 다 기억하고 있어.”

“그게 설명 들을 때랑 막상 눈으로 보면서 돌아다니는 거랑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여기 며칠이나 있었지만 저는 외부 나가본 게 처음 아닙니까? 그래도 길을 헤매는 바람에 먼발치서 몇 가지는 몰래 봤습니다. 쉘터,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게이트 철책이 몇 군데 무너지기는 했지만, 애들 나와서 평소처럼 벽 쌓고 있고요. 수감자들은 좀비 시체 치우고 있습니다. 이거 드십쇼.”

고 하사는 강 소위에게 알약을 몇 개 집어 주고 가방 안에서 붕대와 소독약을 꺼냈다. 약을 씹어 삼킨 강 소위가 물었다.

“전차는 봤어? 김 소위랑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친구가 약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박 소위처럼 악질은 아닌데… 으으, 따갑다, 따가워. 으윽!”

상처를 소독하는 고통에 강 소위가 몸부림을 친다. 이렇게 소리를 내면 곤란하다. 고 하사는 붕대 한 뭉치를 내밀었다.

“자요, 이거 물고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전차는 병사 애들 작업하는 부근에서 호위하니까 거기까지 접근한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으음! 으! 읍! 저기… 고 하사, 아니, 고 하사님. 악의가 없다는 건 알겠는데, 좀 살살해. 아니면 소주 같은 거라도 입에 물려주든가. 네, 고 하사님?”

강 소위가 입에서 붕대 뭉치를 빼고 고통을 호소한다. 고 하사는 피식 웃었다. 이 정도 농담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당장 죽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두 병 챙겨 오기는 했는데… 좀 드시겠습니까? 근데 많이는 안 됩니다. 우리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요.”

고 하사는 가방에서 소주병을 꺼냈다. 강 소위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꿀꺽, 꿀꺽, 두 모금을 크게 들이켠 강 소위는 인상을 쓰며 입술을 닦는다.

총성을 듣고 깨어나서 이 원사를 쫓아간 이래, 밤새도록 처음으로 섭취한 수분이자 음식이다.

“자요, 수정 씨도 좀 드세요. 반짝 기운이 날 겁니다.”

고 하사가 다른 병을 내민다. 임수정은 순순히 받아 마셨다. 맨 정신으로 버티기가 너무 힘든 하룻밤이다.

“…어우, 쓰네요.”

임수정은 한 모금을 겨우 넘겼다. 좀비 사태 이후 처음으로 마셔보는 술은 전에 없이 짜릿하고도 독했다. 고 하사는 주섬주섬 먹을 것 몇 가지를 꺼냈다.

“약이랑 물 챙기느라고 다른 거는 많이 못 가져왔어요. 무겁게 짊어지면 빨리 뛰지를 못하니까. 이거 드시고 마저 이동해야 합니다. 여기는 지상에서 너무 가까워요.”

고 하사는 크래커 봉지를 뜯어 임수정과 강 소위에게 나눠 주고 플래시를 껐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 붙어 앉아 바스락거리며 크래커를 씹어 먹고 있자니 분위기는 공연히 우울해진다.

“혹시… 제가 먼저 자수해서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요? 잘돼서 오해가 풀리면 곧바로 두 분을 찾으러 오면 되는 거고요.”

임수정이 물었다. 강 소위는 크래커를 삼키고 나서 우울하게 대답했다.

“어제도 보셨겠지만, 증인이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웬만한 목소리는 묻힐 겁니다. 세상에… 이 쉘터에 그렇게 많은 놈들이 한패거리로 숨어 있는 줄은 또 몰랐네. 아,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그놈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저랑 이 원사님이 언성을 높이는 걸 봤지 말입니다. 이 원사님이 흥분하셔서 제 손을 막 뿌리치고 그러셨거든요. 진짜 싸운 건 아니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오해하기에 딱 좋겠죠. 게다가 거기에 증언도 있으니.”

“그렇게 돼서 제가 쉘터에 다시 갇히더라도 최소한 제 몫의 음식이랑 물이 아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두 분은 좀 더 편하게 숨어 계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나중에 오해가 풀리고 나서 절 구하러 와주시면 되죠.”

임수정의 말에 이번에는 고 하사가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아뇨, 수정 씨.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박 소위가 소리 지르는 거 들으셨잖아요. 싹 다 잡아 죽여야 한다고……. 그놈은 우리 입이 제일 무서울 거예요. 자수한다고 두 손을 들고 나가도 무조건 서둘러 죽이려고 할 겁니다. 우리 어디에 있는지 불라고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고요. 지금 나가시는 건 찬성할 수 없습니다. 불안하고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그렇군요. 알겠어요.”

임수정은 더 고집을 피우지 않고 얌전히 크래커를 씹는다. 고 하사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이런 일에 말려드시게 해서… 차라리 제가 고백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이런 고생은 안 하셨어도 되는데…….”

“아니에요. 저도… 고 하사님이 데이트하자고 하셨을 때, 굉장히 기뻤어요. 매일 총소리를 들으면서 불안해하고 떨 때마다 그런 생각 했었거든요.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살려고 발버둥을 칠까? 날 기억하는 사람들도 다 죽어버렸을지 모르는데… 그냥 나도 죽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러면 더 이상은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을 테니까요.”

“아니, 그건 정말 안 되는 이야기죠. 죽어버린다니요. 왜 죽습니까?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야지.”

고 하사의 말을 들은 임수정은 쓸쓸하게 웃었다.

“후후, 네. 잘하는 짓 아니라는 거 알아요. 근데 한 번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나니까 점점 그것도 괜찮겠는데 싶어지더라고요. 그만큼 허무했어요. 그럴 때, 고 하사님이 말을 걸어주신 거예요. 그날 밤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맙고 기뻤던 것만으로도 이 정도 고생할 가치는 충분해요. 다시 선택을 하라고 해도 저는 이쪽을 택할 거예요.”

고 하사는 감격해서 임수정의 손을 꼭 잡았다.

큼! 큼! 두 사람이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부스럭거리자, 강 소위는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자신이 지금 방해 거리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다리만 멀쩡했다면 당장에라도 자리를 피해주고 싶다. 아니면 잠시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도 괜찮고.

애애애애앵―

위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확성기로 떠드는 말소리가, 그 뒤를 이어서 총성이 잇달아 울렸다.

타탕― 타아앙― 타아앙―

옥상 저격조가 사격을 미리 예고하고 방아쇠를 당길 때의 패턴이다. 대규모 교전은 아니지만, 또 좀비 무리들이 접근해 온 모양이다.

고 하사 일행에게는 더 깊은 지하로 숨어 들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외부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동안은 혹시 지하의 좀비들과 마주치더라도 총을 쏴서 놈들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 1층은 너무 아슬아슬하다. 지하철을 지목해서 수색을 하기 시작하면 언제라도 발각될 수 있다.

핏―

고 하사가 플래시를 켠 뒤,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임수정과 함께 강 소위를 부축해 일으켰다.

“어느 쪽이었죠? 아, 한 번 나갔다가 왔는데도 헷갈리네요.”

어두운 미로처럼 얽힌 지하철역을 둘러보며 고 하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임수정이 그들을 아래층 계단까지 인도했다. 집이 이 부근이었던 그녀는 자주 이용하던 역이다.

“근데 참 이상하네요.”

캄캄한 계단 아래쪽으로 플래시를 비추던 고 하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중얼거렸다.

강 소위는 총을 손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물었다.

“뭐가 이상해?”

“좀비들 말입니다. 어떻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구 근처에는 한 마리도 없었던 걸까요? 울음소리 들리는 거 봐서는 저 밑 어딘가에서도 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인데 말입니다.”

“모르겠어. 사실은 궁금하지도 않아. 입구 근처에 있던 놈들은 다 밖으로 나가 버렸나 보지, 뭐.”

강 소위가 말하는 동안에도 어둠 속에서는 포효가 울린다.

그와아아― 그롸아아―

고 하사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부르르 몸을 털었다.

“아, 젠장 꼭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은데… 저 아래를 내려가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볼까요? 다들 의견이 어떠십니까?”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다. 이곳에 머무르는 게 위험하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아래가 더 안전하다는 보장은 되지 못한다. 당연히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때, 멀리서 복도를 울리며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너희 넷, 이쪽으로! 그리고 너희! 너희들 넷은 반대쪽으로 가!”

세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 수색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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