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2)
“와… 저놈 봐라?”
감탄사를 내뱉고 나서 진우는 고개를 돌렸다. 개들이 연애하는 장면을 빤히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다. 몇 걸음 물러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우의 입에서 갑자기 한숨이 푹 새어 나온다.
“하아~ 저 개새끼도 연애를 하는데, 나는…….”
하이바를 벗은 진우는 거기에 끼워둔 핑크 펀치의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꽃다운 나이에 천 날, 만 날 얘네들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으아~ 이거, 뭔가 굉장히 불공평한 기분이다.”
물론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사진 속의 제니와 테라는 여전히 아름답다. 후우~ 진우는 한숨과 신음이 섞인 소리를 내뱉고 나서 다시 하이바를 썼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중에 연애 엄청 많이 할 거다……. 나는 외롭지 않다…….”
멍하니 개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 동안 진우는 주문을 외우며 마을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가져가야 할 것, 꼭 필요한 것들을 다시 되짚어가며 확인했다.
“…끝났냐? 그럼 이제 가자.”
녀석의 헥― 헥― 거리는 소리가 그친 것을 확인한 진우는 오라는 손짓을 했다. 녀석은 본 척도 안 하고 다른 개들 사이를 기운차게 돌아다닌다.
이 무리의 대장 격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덩치 큰 개 한 마리는 벌써 아까부터 다른 개들 사이로 숨어버렸다.
“완전히 독무대구만……. 야, 시비 걸고 다니지 마. 킹! 이리 와.”
하지만 녀석은 돌아보지 않는다. 개들 사이에서 매의 눈으로 번득이던 녀석은 덩치가 크고 털이 긴 흰 개에게 다가갔다.
주변에서 펄쩍거리며 흰 개의 관심을 끈 녀석은 킁킁, 냄새를 맡고, 뭉뚝한 꼬리를 흔든다.
새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개에게…….
진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이 바보 같은 놈아, 그게 통할 리가 없잖아! 그 개도 네가 아까 저 누런 개와 어울리는 거 다 봤다고! 그렇게 껍죽대다가 물려도 난 모른다. 여자들 화나면 무섭단 말이…….”
녀석의 어리석음을 비웃던 진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절감해야 했다. 녀석은 벌써 흰 개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초스피드! 녀석이 자신을 힐끔 돌아본다. 빤히 응시하는 그 눈이며 표정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응? 뭐라고 했어? 통할 리가 없다고?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 번 말해볼래?’
마주 보기 싫어서 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섰다. 아니,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다른 개랑 놀아나는 걸 빤히 다 보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뭐지? 될 놈은 뭘 해도 되는 건가?
“훗, 진정하자. 그냥 저 새끼가 오늘 운이 엄청 좋았던 거야. 우연히 이 무리에 저렇게 못생긴 새끼가 이상형이었던 개 두 마리가 있었던 거지. 뭐, 살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 그런 경험을 하지 않나? 소개팅에 나갔는데 여자들이 다 자기한테만 반해서 관심을 보이고 그러는…….”
혼잣말로 자존심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실패다. 생각해 보니 그랬던 적 없었다. 지금까지 소개팅으로 만나본 여자애들 열에 아홉은 삼식이만 쳐다보고, 삼식이에게만 말을 걸었었다.
젠장!
그래서 삼식이를 제외한 세 친구는 나머지 10퍼센트 정도의 여자애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만의 마이너 리그에서조차 자신과 유빈은 보안관에게 밀렸었다. 키와 덩치라는 보안관의 두 무기가 제법 강력하게 작용했었으니까.
하긴 저 녀석의 덩치도 어지간히 크니까 인간으로 치자면 보안관급일 것이다.
쿠우웅― 쿠우웅―
멀리 몇 개의 산 너머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들려온다. 아직도 싸우고들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멀어져 있다. 공중전이 개입되지 않으면 여기까지 전선이 확대될 것 같지는 않다. 진우는 폭발음의 메아리가 울리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
어느새 익숙해진, 낮게 짖는 소리. 녀석이다. 녀석은 그동안 흰 개와 실컷 놀아났는지, 근처로 와서 진우를 향해 한 번 짖었다. 자신을 봐달라고 자랑하는 것 같다.
“그래, 알았으니까 잘난 척 그만해. 이제는 정말 가자.”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진우가 말했다. 녀석은 아직도 좀 더 자유를 갈망하는지 진우의 손짓을 보고도 다시 개들 사이로 뛰어가 버렸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오늘의 세 번째 여자 친구와 사이좋게 서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두 번째까지는 그러려니 했던 진우도 더 이상은 눈꼴시어서 봐줄 수가 없다. 저렇게 밝히는 놈도 말 그대로 개새끼지만, 그런 바람둥이를 받아주는 상대도 문제다.
“아… 젠장, 그냥 쓱 다가가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되는구나. 젠장, 꼭 삼식이를 보는 것 같네.”
얼―!
진우가 넋두리를 늘어놓던 중간에 녀석이 갑자기 크게 한 번 짖는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인지 봐달라는 것 같다. 진우는 언성을 높였다.
“안 봐! 이 난봉꾼 새끼야! 페르몬이 막 뿜어져 나오는 거냐? 여자를 함락시키는? 네가 무슨 삼식이도 아니고!”
얼―!
개는 또 한 번 크게 짖으며 돌아본다. 이건 꼭… 이름을 불렀을 때의 반응 비슷하다. 세상에 온갖 이름을 다 갖다 붙여봐도 돌부처 같던 놈이 갑자기 저렇게 나오다니!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진우는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어? 무슨 단어에 반응한 거야? ‘페르몬’? 아니면 ‘뿜다’?”
녀석은 조용하다. 진우는 자신이 했던 말을 되짚어봤다.
“새끼? 여자? 난봉꾼? 에… 함락?”
반응이 없다. 그러면 남은 단어는… 진우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삼식이…는 아니지?”
얼―!
녀석이 펄쩍펄쩍 뛴다.
진짜? 삼식이라는 이름이 좋다고?
진우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다시 외쳐 봤다.
“삼식아!”
얼―!
폭발적인 반응이다.
짝! 짝!
진우는 손뼉을 두 번 치고 두 팔을 쫙 벌렸다.
“삼식아! 이리 와!”
녀석은 혀를 내두르며 빠르게 달려왔다. 진우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감동적인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다.
따라라~ 라라~ 옛 친구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의 상봉 장면에서 틀어주던 BGM이 들려오는 것 같다. 녀석은 그 커다란 덩치를 부웅 날려 진우에게 안긴다.
윽―!
50킬로그램은 족히 될 것 같은 놈이 무작정 기대는 바람에 진우는 휘청대며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배낭과 옆으로 맨 가방이 보조 추 역할을 해주지 않았으면 뒤로 넘어갔을 것이다.
“오! 그래, 삼식이! 잘했어! 잘 왔어!”
진우는 녀석의 머리와 가슴을 쓸어주며 웃었다. 녀석과 함께한 이래, 처음으로 이름에 반응하는 모습을 본 것이 꽤나 기뻤다.
이제야 처음으로 녀석과 온전한 친구가 된 기분이다. 녀석도 어지간히 좋은지 곰발 같은 커다란 앞발을 진우의 가슴에 척 얹고, 진우의 목과 얼굴을 핥으려고 난리가 났다.
“읍! 퉤! 퉤! 아으… 야! 너, 그 혀, 좀 전에 다른 개들 똥구멍 핥던 혀잖… 읍!”
하지만 녀석은 막무가내다. 사방으로 튀는 침 공격에 난감해하던 진우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삼식이, 앉아! 앉아!”
척. 신기하게도 녀석은 그 말에 따랐다. 이럴 수가, 무슨 매직 키워드도 아니고… 그저 삼식이 라는 단어 하나 붙였을 뿐인데, 진우는 마술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 그 이름 정말 마음에 드나 보구나……. 좋아, 넌 지금부터 삼식이다. 객관적으로는 킹이 더 낫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 제 이름이니 자기가 좋다는 걸 불러줘야지.”
얼굴과 목에서 녀석의 침을 닦아낸 뒤 진우는 몇 가지 명령을 실험해 봤다.
손! 엎드려! 일어서!
…다 통한다!
이놈, 전문적으로 교육 받은 모양이다. 진우가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시켜보는 동안 들개 무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하고 있었다.
끄으응~!
기다려! 명령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삼식이가 떠나가는 개들을 힐끔거리며 앓는 소리를 낸다. 세 번째 여자 친구와 일을 마저 치르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훗, 지치지도 않는구나. 진짜 삼식이 같은 놈이네…….
진우는 코웃음을 쳤다.
“가서 놀다 와, 삼식아. 가.”
진우의 허락을 받자마자 삼식이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그러고는 자기가 콕 찍었던 그 여자 친구의 옆으로 다가가 또 슬슬 수작을 건다.
녀석의 구애가 이뤄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진우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진짜 삼식이 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저 짓 못해서 반쯤 미쳤을 것 같은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다른 여자랑 어울리고 다니던 놈이……. 하긴, 연애가 다 무슨 배부른 소리야. 살아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데.”
진짜 삼식이의 근황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자 갑자기 심란하다.
친구들, 내가 아는 사람들, 죽었다면… 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를 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녀석이 다시 돌아와 진우의 곁에 착 달라붙어서 헥헥거리고 있다.
“…설마!”
진우의 눈이 커진다. 별로 흔하지도 않은, 삼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가 자신과 이렇게 만나고 또 자신을 좋아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거기에 그 개가 지독한 색광이고 그게 또 잘 통한다는 희박한 확률도 더해야 한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하아~ 하늘을 보고 있던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삼식아, 너… 혹시 진짜 삼식이냐? 죽어서 개로 태어난 거야?”
욕망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개가 해맑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 말이 되는 것 같다. 진우는 녀석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개가 되어서 찾아온 거구나. 내 옆에 있어주려고……. 응? 그런 거야? 아휴, 이 자식아!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어?”
눈물이 핑 돌려 하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이 스친다. 개의 얼굴을 잡고 빤히 보던 진우는 무덤덤해진 어조로 중얼거렸다.
“근데… 삼식이는 이렇게 똘똘한 놈이 아닌데… 유빈이라면 몰라도.”
결국 지능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 삼식이가 개 삼식이로 다시 태어났을 거라는 가설은 기각되었다.
이 녀석은 그냥 삼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는 그 이름을 좋아하는 별난 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아암―
진우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 개 삼식이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진우는 쯧쯧, 혀를 찼다.
“피곤하셔? 당연히 그렇겠지. 자, 일어나. 이 동네에서 해야 할 일 많아. 빨리 다 하고 챙겨서 나가야 돼. 뭐… 너는 이미 많은 일을 하기는 했지만.”
삼식이를 데리고 동네 주변을 천천히 걷던 진우는 어느 집 마당에 멈춰 서 있는 자동차를 발견했다.
“여기 동네가 청운면이라는 데구나.”
진우는 대문 옆에 붙은 주소를 확인한 뒤,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서 자물쇠를 열고 차의 내부를 뒤졌다.
“지도가 어디 있나… 지도야…….”
첫 번째 차에는 지도가 없었다. 차의 운전자가 네비게이션에만 의존하던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지도 따위 없어도 이 주변을 훤히 꿰고 있던 사람인지는 몰라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진우는 글러브 박스를 뒤져서 1회용 라이터와 티슈를 챙겼다. 그 두 가지는 큰 무게가 나가지 않으면서도 아주 요긴한 물건들이다.
“다음 차로 가보자. 지도를 찾아야 돼. 가자, 삼식아.”
두 대의 자동차를 더 뒤진 끝에 원하던 크기의 지도를 찾은 진우는 자동차 보닛 위에 걸터앉았다.
타탁, 삼식이도 풀쩍 뛰어올라 옆에 앉는다. 진우는 횡성 주변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중얼거렸다.
“청운면… 청운면… 어디에 있는 거냐, 이 동네가…….”
곁에서 함께 지도 보는 흉내를 내던 삼식이가 앞발을 올려 지도의 한 점을 턱, 짚는다. 자기도 뭔가 참여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냐, 거기… 지도 볼 줄 아는 척하면 내가 속을 것 같아?”
진우는 삼식이의 발을 치우고 다시 지도를 살폈다. 횡성 부근 어딘가라는 것 외에는 근처의 지리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
진땀을 흘리며 한참을 투자하고 나서야 진우는 자신이 있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산을 타고 다니는 동안 횡성 밖으로 다 빠져나왔었네…….”
진우는 새삼 스스로가 대견해져서 자신이 왔던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난 며칠간 그가 온갖 고생을 하며 헤치고 나온 산들이 멀리 겹겹이 서 있다.
“에… 이게 이 방향인가? 여기가 서쪽이면… 아닌데, 저 산이 이거고…….”
지도의 그림과 주변의 경관을 비교해 가며 동서남북을 짐작한 진우는 청운면 위쪽의 선 하나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6번 국도… 양평, 팔당, 구리를 지나면 서울에 닿는다. 망우리, 상봉동, 동대문…….
두근대는 마음으로 거기까지 짚어가던 진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만있어 봐. 상봉동이면 보안관이랑 다들 마지막으로 공사했던 데 근처잖아. 걔들도 태릉 부근 어딘가라고 했었는데… 아, 어디였지? 주소가… 기억이 날 듯하면서도 가물가물하네. 하긴 뭐, 계속 옮겨 다니니까…….”
기억을 살려내고 싶어서 머리를 통통 두들기던 진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야, 너 진짜 단순하다. 거기 알아서 뭐할래? 거기에서 공사했었다고 계속 거기에 있겠어? 바보 아니냐? 당연히 그 쉘터인지 수용소인지로 피해 갔겠지. 그치, 삼식아?”
얼― 개는 멋도 모르고 그저 좋아서 대답을 한다. 진우는 녀석의 얼굴을 한 번 쓸어주고서 다시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보급품을 실어다 주던 헬기 조종사가 수용소는 잠실에 있다고 했었지. 그러니까… 구리까지 들어갈 게 아니라, 차라리 여기에서 한강을 건너가지고 미사리로 넘어가자. 그런 다음에 강변을 따라서 쭉 가면 잠실이네… 간단하구만!”
진우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지도를 탁, 두들겼다. 지도에 그려진 선을 따라 가보는 길은 너무도 쉽고 가깝다.
거기에는 수만 마리가 떼를 이루어 지나가는 좀비 무리들도 등장하지 않고, 전차까지 동원해서 전쟁을 벌이는 군인들도 없다.
복잡하게 그려진 등고선을 아무리 숙지하고 있어도, 직접 산을 타는 동안 느껴야 하는 육체적 고통은 시각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현 위치로부터 잠실까지의 거리는 대략 80킬로미터 정도. 거기에 산으로 피신하거나 우회하는 경우를 더하면 실제 이동해야 하는 총거리는 100킬로미터 남짓이 될 것이다.
“허! 세상에, 겨우 10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니…….”
진우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100킬로미터. 그 거리가 너무 짧고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 같다.
지난 보름 가까이 동안 그에게 서울은 너무나 멀고 아득한 곳,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꿈까지 불과 100킬로미터만이 남았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도달하는 거리.
“우와…….”
진우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내쉬어야 했다. 다 이뤄진 것 같다고 미리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지금부터 서울에 도달하기까지 자신이 돌파해야 하는 지역은 경기도. 거긴 강원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당연히 좀비들도 많을 테고, 경계를 차단하는 초소에는 병력들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또 어쩌면 서울에 도착하고 나서부터가 정말 힘든 일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음… 짐도 있고 가끔 산길도 있고 하니까 한 시간에 넉넉하게 3킬로미터 걷는다고 치고, 그러면 대충 34시간 정도네……. 34시간이면 하루에 여섯 시간 걷는다고 했을 때, 5일이나 6일… 에, 뭐가 계산이 잘못된 거 아닌가? 겨우 100킬로미터를 6일 동안이나 걸쳐서 가야 한다고?”
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계산을 해봤다. 그래도 답은 일치한다.
아냐, 아냐… 이건 안 돼. 좀 더 페이스를 올리자…….
진우는 계산해 놓았던 것을 볼펜으로 직직 그어버리고 다시 숫자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하루에 24킬로미터 이동으로 설정했다. 여덟 시간씩만 걸어가면 나흘 만에 서울까지 도달한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나흘 밤만 자면…….
“우와! 좋아! 좋아! 기운을 바짝 내는 거야!”
진우는 가방을 열어 남아 있는 전투식량의 개수를 파악했다. 녹색의 봉지를 보자마자 개는, 아니, 삼식이는 신이 나서 앞발을 휘젓는다.
총 네 봉지가 남아 있다. 이 한 봉지는 이 자리에서 먹어 치운다고 가정하고, 앞으로 적어도 나흘 치의 식량은 확보해 둬야 서울까지 쉬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자, 이거 먹어. 그리고 같이 먹을 것 찾자. 알았지?”
진우는 늘 하던 것처럼 삼식이에게 햄과 빵과 강정을 주고, 자신은 초코바 두 개만을 가졌다.
그리고 삼식이는 늘 하던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세 종류의 딱딱한 음식을 먹어 치우고 진우의 초코바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이거 달라고, 킹?”
얼― 녀석이 꼬리를 친다. 초코바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녀석이다.
훗, 진우는 마지막 남은 초코바 조각을 보란 듯이 자신의 입에 넣고서 녀석의 볼을 쥐고 흔들었다.
“너 삼식이잖아. 이제 다 알아, 인마. 그리고… 지금보다 적게 먹어도 될 것 같아. 보니까 대낮부터 아주 기운이 펄펄 넘치더구만.”
끄으응―
녀석이 기죽은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도 진우의 눈치를 살핀다.
치밀한 놈…….
진우는 손을 탁탁, 털고 보닛 아래로 풀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속도를 올려 뛰며 소리쳤다.
“음식이랑 점퍼 찾으러 가자, 삼식아! 서울까지 얼마 안 남았어!”
삼식이는 금방 진우를 앞질러 달리며 맑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