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1)
“나… 나 좀 눕고 싶은데…….”
고 하사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비지땀을 흘리던 강 소위가 미안한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아… 내 정신 좀 봐…….
고 하사는 강 소위를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눕히고 상처도 좀 봐야 한다.
“끄으으~ 고마워… 면목이 없다. 너한테는… 저분한테도…….”
바닥에 누운 강 소위가 신음을 섞어가며 중얼거린다. 고 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못난 놈입니다. 아까 박 소위 그냥 쏴버렸어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미안합니다.”
“미안하기는… 내가 미안하다. 끄으으… 너보다 나한테 먼저 쏠 기회가 있었어……. 젠장, 그냥 말로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전우고 뭐고 그냥 제압했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이 원사님도 안 돌아가셨을 텐데… 끄으으…….”
강 소위는 자책하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마를 쥐어뜯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아까 그 박 소위라는 사람을 죽였더라도 우리가 쫓기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아요. 어쨌든 총을 가진 건 군인들뿐이니까 현장에 있던 두 분한테 혐의가 갔겠죠. 증인도 잔뜩 있었고요, 가짜기는 하지만.”
임수정의 말을 들은 두 군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더라도 쏘는 게 나았을 거라는 후회는 남는다.
“상처부터 보겠습니다.”
고 하사는 강 소위의 전술 조끼에서 플래시를 꺼내 손바닥으로 가리며 상처에 바짝 붙인 뒤 켰다. 군복 바지는 피에 흠뻑 젖어 검게 물들어 있었다.
피! 피를 생각 못했다.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을 잠시 멍하게 보고 있던 고 하사는 세차게 고개를 저은 뒤, 허리띠를 풀었다.
지금은 딴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지혈을 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묶자, 강 소위가 가벼운 신음을 흘린다.
“쪽팔린데… 너무 아파, 씨발. 아흐으으…….”
고 하사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쉘터에 가면 오늘 새로 들어온 약이 잔뜩 있는데… 임수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통제라면 저한테 있어요. 이거 드셔도 되는 걸까요?”
그녀가 트레이닝복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고 하사 자신이 줬던 바로 그 진통제다. 네 알 중에 아직 세 알이 남아 있다.
고 하사는 잠시 망설였다. 출혈이 멎는 걸 방해하면 어쩌지? 이부프로펜 성분… 아스피린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용혈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고 하사… 나… 먹을게. 먹어도 된다고 좀 해줘…….”
강 소위는 벌써부터 손을 벌리고 기다린다. 하긴 총알이 생살을 휘저으며 찢고 지나갔으니 어지간히 아프기도 할 것이다.
진통제 몇 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있어서 안 먹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게다가 지금부터 이동도 해야 하니까…….
고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거 드시고 숨만 좀 돌린 다음에 곧바로 또 이동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 못 있어요.”
“응? 왜?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모를걸? 쉘터 내에 숨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진통제 두 알을 물도 없이 씹어서 삼키던 강 소위가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다. 고 하사는 플래시를 켜서 그들이 지나온 자리를 비췄다. 강의실의 대리석 바닥 위에 뚝뚝 떨어진 핏자국이 드러난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다 알려줬어요. 금방 찾아낼 겁니다. 북쪽 게이트 좀비들 정리하고 이리로 돌아오기 전에 피해야 돼요. 우리는 이동하는 속도가 느리니까.”
고 하사의 말에 강 소위는 한숨을 내쉰다. 또 움직일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진다.
“하아~ 하아~ 그래, 어디로 가자고?”
“모르죠.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일단 핏자국 흘리고 다니지 않을 방법부터 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두 군인의 대화를 듣던 임수정이 조심스럽게 끼어든다.
“그냥… 강 소위님 소대원들에게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방법은 어떨까요?”
“그러면 좋기는 하겠지만, 끄으으~ 꼭 제 소대원들이 쫓아오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아마 박 소위도 제 소대원들로 추격대를 꾸리지는 않을 겁니다. 멍청하다고 해도 그 정도 생각은 할 테니까요. 후우~”
“계속 피해 다닐 수밖에 없네요. 그럼, 근처의 다른 쉘터까지 갈 수 있을까요?”
“아뇨. 그렇게 운이 좋을 리도 없고, 너무 힘들죠. 그냥 중대장님 복귀하실 때까지 며칠만 숨어 있으려는 겁니다. 그분이라면 박 소위가 둘러대는 이야기를 다 믿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러면 다시 조사를 하실 거고… 그때는 우리도 순순히 잡혀서 다 솔직히 말하면 됩니다.”
고 하사의 설명에 임수정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믿을 만한 분인가요?”
“끄으으~ 네. 문 대위님 판단은 확실히 보장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서 모신 제가… 잘 압니다.”
강 소위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임수정의 불안은 온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그… 그러면 언제 복귀하시는 건가요?”
“…모릅니다. 쉘터 통합 회의 참석이니 어쩌니 핑계를 대셨는데 그건 아닌 것 같은 눈치였고, 하아~ 하아~ 하여간 며칠 내로 전차가 남쪽 게이트를 통과해서 한강 쪽으로 갔다 돌아올 겁니다. 그때 복귀하셨다고 보면 됩니다.”
며칠… 버틸 수 있을까? 부상자와 여자, 그리고 형편없는 사격 솜씨의 군인이라는 허술한 조합이…….
추격해 오는 군인들뿐 아니라 좀비들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고, 식량이나 의약품도 조달해야 하는데…….
고 하사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강 소위님은 사격 잘하십니까?”
“그저 그래. 끄으으~ 여자분 앞이라 보통 때 같으면 엄청난 명사수라고 뻥뻥거리겠지만… 지금은 그런 허세 부릴 상황이 아니니까.”
“그럼 좀비들을 만나도 위험해지겠네요. 무조건 꽁꽁 숨는 수밖에… 후우~ 강 소위님, 애들 데리고 외부 징발 많이 나가셨었죠? 이 근처에 아직 물품 남은 약국 어디에 있었는지 좀 기억해 보십쇼. 그리고 잡화점 같은 것도요. 식량을 구할 만한 곳이 있어야 합니다.”
고 하사가 물었다.
“약국은… 아마 여기서 남동쪽으로 한… 모르겠어. 대충 열 블록 정도 떨어져 있을 거야. 음식은… 에, 그게….”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맑지 않은 머리를 최대한 굴리려고 노력하던 강 소위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 대 피우고 나면 그래도 생각이 날 것 같다.
“어,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강 소위님.”
고 하사의 만류에 강 소위는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알지. 부상에 별 도움 안 되는 거… 그런데 한 대는 좀 봐줘라. 속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다.”
“아뇨, 그런 것 때문에 말리는 게 아닙니다. 담배 냄새를 맡으면 좀비가 온다고 해서 그래요.”
“뭐? 어디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강 소위가 어처구니없어 하자 고 하사는 그의 입에서 담배를 빼며 말했다.
“저도 쉘터 안에서 처음 그 이야기 들었을 때는 안 믿고 곧바로 담배에 불붙였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철창 밖으로 나오니까 그저 흘려 버리기에는 너무 신경이 쓰여요. 좀 안전한 데를 찾을 때까지 만이라도 참아주십쇼.”
“하아~ 그래… 뭐, 나 때문에 이 지경에 빠진 사람 말이니까 듣기는 하는데… 그거는 진짜 웃기는 이야기다.”
강 소위에게 좀 더 휴식을 준 고 하사는 창가로 다가갔다. 어느새 밤의 짙은 어둠이 걷히고 새벽 어스름이 희미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다.
투투― 타아앙― 타아앙―
총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다. 이제 정말로 달아나야 할 시간이 왔다.
“강 소위님, 일어나세요. 가야 합니다.”
탈진해서 눈이 가물거리는 강 소위를 부축하고, 고 하사와 임수정은 캠퍼스의 잔디 위를 걸었다. 지혈 덕에 피가 멎어 핏자국이 그들의 행선지를 알려줄 염려는 접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침이 밝았다는 것은 서쪽 방향에서 접근하던 좀비 행렬이 슬슬 이 부근을 지나갈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단 지하철역으로 갈 겁니다. 두 분은 거기 숨어 계세요. 제가 약을 구해 올게요. 이 상태로 다 같이 다니는 건 속도도 안 나고, 너무 눈에 띄기 쉬워요.”
정문을 벗어나면서 고 하사가 말했다. 운이 좋으면 지하철 매점에서 물이라도 몇 병 건질 수 있을지 모른다. 깜깜한 지하철의 입구를 보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
이제 민구라는 사내가 말해줬던 서바이벌 가이드가 정말로 올바른 것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 ☆ ☆
“야, 킹.”
나무 뒤에 숨어 바깥을 엿보던 진우가 불렀다. 대답이 없다.
개새끼…….
진우는 개의 옆모습을 한 번 흘겨봐 줬다. 오로지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있을 때만 이름에 반응을 해준다. 게다가 지조 없이 아무 이름이나 불러도 얼― 얼― 거린다.
킹이라고 해도 얼― 썬더라고 해도 얼―
하지만 그때뿐이다. 음식을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봐 주지도 않는다.
“야, 인마…….”
진우는 개의 볼을 잡아 시선을 자신의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가도 되겠냐고… 응? 저기에 총 가진 군인들 있어, 없어?”
진우가 가리킨 것은 전방 100여 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다 찢어져서 풀풀 날리는 비닐하우스들 너머에 한때 사람들이 살던 집이 모여 있다.
해가 뜨기 전이라 주변은 아직 캄캄하지만, 시선을 피해 이동해야 하는 진우에게는 이런 때가 오히려 더 낫다.
얼―
개가 해맑은 톤으로 작게 짖는다.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진우는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있다고?”
얼―
“없는 거 아냐?”
얼―
그래… 내가 나빴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만 똑똑한 개라고 해도 이 정도의 고등 대화가 가능할 리가 없는데, 녀석이 워낙 별난 재주를 많이 보여주다 보니 이따금씩 착각을 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허리띠를 물고 가지 못하게 경고해 주는 것만 해도 정말 엄청난 재주다.
“좀비는 없는 것 같아. 냄새가 그래.”
흐음~ 진우는 폐 가득 숨을 들이켜 봤다. 특유의 지독한 악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소름이 돋지 않는 걸로 봐서도 좀비가 잔뜩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군인이다. 어쩌면 군인들이 좀비보다 더 무섭다. 위협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죽여야 할 때의 기분도 몇 배나 더럽고 힘들다.
“안 잡으면 간다. 우리 물이랑 음식 찾아야 돼. 밤에 걸칠 것도 있어야 하고.”
진우는 개의 눈치를 보면서 한 발을 뗐다. 녀석은 말리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군인들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녀석이 따라나서는 것을 확인한 진우는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너, 물그릇으로 쓸 만한 양재기도 하나 챙기자. 언제까지 계속 하이바에다가 물을 마실 수는 없잖아.”
가뜩이나 땀 냄새에 찌든 하이바에 개 침 냄새까지 더해지니, 그걸 쓰고 다니는 것도 꽤 고역이었다. 물론 녀석도 매번 물을 마실 때마다 진우의 머리 냄새까지 함께 마셔야 한다.
며칠 껴안고 자는 동안 냄새가 서로 옮아서 이제는 내가 개인지, 개가 나인지 모를 정도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개선하고 싶다.
“어느 집부터 들어가 볼까? 어디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냐?”
마을 어귀에 들어선 진우가 개에게 물었다. 개는 킁킁거리며 바닥의 냄새를 맡다가 일단 담벼락에 다리부터 척 걸쳤다. 저렇게 아무 때나 찔끔거릴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대단하다. 물도 그렇게 넉넉히 마시지 못했는데.
얼―
오줌을 다 갈기고 난 개는 오른쪽 모퉁이의 집으로 뛰어가 대문 앞에서 진우를 돌아본다.
거기에 먹을 게 있다, 이거냐?
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박박박박, 몸을 일으킨 개는 닫혀 있는 마루문을 긁어 대고 있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열어줄게.”
진우는 유리문 안쪽을 한 번 슥 훑어보고 손잡이를 당겼다. 위험요소가 없는 것 같다고는 해도 조심해야 한다. 감이라는 게 언제나 100퍼센트는 아니니까.
탁― 탁―
문을 열자마자 개는 마루 위를 가로질러 구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음식물 썩은 악취가 집 안 전체에 퍼져 있다. 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개와 좀비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그 부분은 진우 스스로 대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야… 어디 가냐, 주방이 이쪽인데… 천천히 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를 말라고. 윽! 냄새!”
잔소리를 하며 문지방을 넘으려던 진우는 팔을 내저으며 악취와 달려드는 파리를 쫓았다. 작은 우리 안에 토끼들의 시체가 들어 있다.
얼마나 오래전에 죽은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미 꽤나 많이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토끼의 눈 주변에는 온통 구더기가 들끓는다.
보기에도, 또 냄새를 맡기에도 괴로웠지만 개의 입장은 달랐나 보다. 녀석은 진우가 우리를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저기… 나는 이런 거 못 먹어. 이런 거 말고… 너 먹었던 것 같은 음식을 찾으라는 의미였어. 나와, 빨리.”
진우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개를 억지로 잡아끌고 나와서 문을 닫아버렸다.
끄으응~ 개는 조금 기죽은 소리를 낸다. 진우는 옆으로 비껴 멘 가방에서 전투식량 한 봉지를 꺼내 녀석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이런 거를 찾으라는 말이야. 아니, 지금 먹자는 게 아니고, 찾으라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개는 닫혀 있는 방문을 긁는다.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경고했다.
“이번에도 또 시체 나오면 나 화낼 거다. 알았지?”
얼― 개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짖는다. 좋아, 진우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손잡이를 살짝 돌렸다.
끼이익―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틈을 비집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 개는 이내 커다란 건빵 봉지를 물고 나온다. 정말 전투식량 비슷한 걸 잘도 찾았다.
“그래, 맞아. 그런 거야. 이제부터는 썩어가는 토끼 같은 거 찾지 말고 그런 거만 골라. 알았지? 아니면 더 맛있는 걸 찾아도 되기는 하는데…….”
건빵 봉지를 건네받은 진우는 녀석의 머리를 쓸어주며 칭찬을 해줬다. 이렇게 말귀를 잘 알아먹는 놈인데 왜 이름 훈련만은 그다지도 안 되는 건지 이상하다.
“이거, 네 물그릇 할래? 어때? 아닌가? 너무 큰가?”
주방의 찬장을 열어 스테인리스 그릇들을 뒤적이던 진우가 냉면 그릇을 하나 집어 들고 물었다. 개는 그저 좋다는 듯 헥헥거리고 있다.
진우는 바닥에 놓여 있던 물병 중 하나를 집어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은 뒤, 살짝 입술을 축여봤다.
“물 맞다. 자, 마셔라.”
진우는 개의 새 물그릇에 물을 가득 부어줬다. 그러고는 자신도 꿀꺽꿀꺽 들이켰다. 웅덩이를 떠나 산속을 해매고 다니는 동안, 배고픔보다도 목마름을 참는 게 훨씬 더 힘들었다.
물통은 몇 개 챙겨야 한다. 수통 하나만으로는 성인 남자와 대형견 한 마리의 갈증을 채울 수 없다.
찹찹찹―
열심히 혀를 놀려 물을 마시고, 진우가 부어준 건빵을 깨물어 먹던 개가 갑자기 번쩍 고개를 든다.
얼―
녀석이 높고 큰 목소리로 짖는다. 경계가 아니라 기쁨의 감정이 가득 담긴 ‘얼―’ 이었다.
“왜 그래? 뭔데?”
건빵을 우물거리던 진우가 물었다. 개는 진우를 한 번 힐끗 돌아보더니 다시 짖었다.
얼―
이번 짖는 소리는 더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 후, 녀석은 곧바로 집 밖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세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진우는 목소리를 낮춰 부르며 녀석의 뒤를 따라 뛰었다. 저 처먹는 거 좋아하는 놈이 건빵을 고스란히 내버려 두고 달려 나갈 정도면 굉장히 중요한 일일 게 분명하다.
녀석은 맹렬한 속도로 마을을 가로질러 건너편의 도로 쪽으로 달려간다. 가방을 두 개나 멘 채로 녀석을 쫓으려니 진우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아~ 하아~ 너~ 이 새끼~ 대체 왜, 하아~”
마을의 끝자락에 멈춰 선 개를 보며 진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이내 풀렸다.
개들이다. 스무 마리가 넘는, 꽤 큰 규모의 들개 떼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진우와 개를 보고도 그리 경계하는 기미는 없었다.
얼!
개는 천천히 걸어가 개들의 무리에 섞여 들어갔다. 발걸음도 엄청 가볍다. 진우는 녀석이 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따라오기 위해 무리의 대장 지위도 초개처럼 던져 버렸던 녀석이 지금은 왜 다른 개들을 보고 저리도 흥분한 걸까? 이제 이만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가자는 의미인 건가?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섭섭하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녀석은 꽤나 덩치가 큰 잡종견의 곁으로 다가가 다짜고짜 엉덩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허―!”
진우는 한숨 섞인 실소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녀석을 향해 손짓을 했다.
“야, 인마. 좀 천천히 다가가야지, 다짜고짜 그렇게 치대면 싫어해! 네가 아직 여자를 잘 모르는 구나. 이리 와! 내가 전투식량 햄이라도 줄 테니까 그거라도 같이 나눠 먹으면서 호감을 줘… 허!”
진우의 두 번째 ‘허’는 감탄의 의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녀석에게는 싸구려 햄 따위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