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92화 (292/449)

3장 돌이킬 수 없는 밤(2)

“억! 뭐… 뭐야?”

강 소위를 후려갈기던 놈들이 주춤거린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총까지 겨누는 바람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고 하사는 박 소위의 총을 들어 보이며 한 번 더 악을 썼다.

“물러나라고, 이 개새끼들아! 이 총 안 보여?”

기동이를 포함한 네 놈의 조폭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놈들과의 거리가 3미터 이상 벌어졌을 때, 고 하사는 강 소위를 불렀다.

“강 소위님! 정신 차리세요! 일어날 수 있습니까?”

“끄으으으… 누구야? 고 하사? 나… 다, 다리가… 끄으으…….”

강 소위는 제대로 말을 맺지 못하고 연신 신음만 내뱉었다. 고 하사는 강 소위의 다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깜깜한 어둠 속이라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온통 피로 번들거린다는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저렇게 출혈이 심한데 매타작까지 당했으니, 쉽게 제정신을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강 소위님! 총 어디 있습니까? 강 소위님 총 말입니다!”

고 하사의 질문을 받은 강 소위는 힘겹게 손을 들어 주변 어딘가를 지목한다.

“저… 저기… 떨어뜨려서… 끄으으~”

고 하사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내장이 터져 나온 이 원사의 시체가 있다. 맥을 짚어보지 않아도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시체, 죽음, 목숨을 건 싸움…….

고 하사의 맥박이 빨라진다. 임수정에게도 이야기했듯 그는 전투병이 아니다. 사격 훈련을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지금 총을 들고 위협을 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맞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무작정 총을 빼앗아 달려오기는 했지만, 현재 탄창에 몇 발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좀비 사태 이후에도 사람 모양의 표적에 방아쇠를 당겨본 적이 없다. 줄곧 빨간 약만 발라주고 붕대나 감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상황에 뚝 떨어져 버린 것이다. 조금 전 박 소위의 얼굴에 총을 겨눴을 때, 고 하사는 분명히 깨달았다. 사람의 아구창을 날리는 배짱과 머리통에 구멍을 뚫는 배짱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전사가 아니라 힐러였으니까.

방아쇠울 안에 집어넣은 고 하사의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두렵다. 사람을 쏘는 것도 두렵고, 그렇게 쏴서 맞추지 못할 만큼 사격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들킬까 봐도 두렵다.

피가 끓어서 뛰어들기는 했지만,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난 지금은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머리의 한계다. 이래서 엄마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었던 건가…….

“응?”

다시 시선을 조폭들에게 돌리던 고 하사는 기동이 놈의 눈빛에서 이상한 기색을 읽었다. 놈이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뭔가와 눈빛을 교환하고 있다. 고 하사는 얼른 뒤쪽으로 몸을 틀었다.

깜깜하다. 아무것도 단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신경을 집중한 뒤에야 고 하사는 자신의 여덟 시 방향에서 세 놈이 접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후다닥― 세 놈의 윤곽은 서둘러 철제 구조물 뒤로 모습을 감춘다. 워낙 어두워서 누구인지 알아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야! 오지 마! 뒈지고 싶냐? 응? 총알 몇 방 먹여줘?”

세 놈은 꽁꽁 숨은 채 아무 대답도 없다. 위협이 될 만큼 가깝지는 않지만, 뭔가를 던질 수도 있다. 그리고 사라진 강 소위의 개인화기도 신경이 쓰인다.

고 하사는 미친 사람처럼 총구를 앞뒤로 돌려가며 두 방향의 적들을 겨누고, 곁에 있는 임수정을 불렀다.

“수정 씨! 수정 씨! 저한테 바짝 붙어요! 움직이는 놈들은 다 쏴버릴 겁니다!”

임수정이 바짝 다가서는 것을 느끼고 고 하사는 다시 속삭였다.

“수정 씨, 이제부터 강 소위님에게 갈 겁니다. 저한테 바짝 붙어 걸으면서 뒤쪽 좀 신경 써주세요. 움직이는 게 있으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네… 그럴게요.”

임수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두 사람은 천천히 강 소위 쪽으로 다가갔다. 그 방향에 있던 네 놈은 더 뒤로 물러난다. 그러는 동안에도 총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가져가 버린 모양이다.

씨발, 가뜩이나 불안한데 총까지 신경 써야 되나… 고 하사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강 소위가 사람 죽였대!”

“뭐, 강 소위가 누구야?”

저 멀리에서는 아직도 헛소문을 퍼 나르는 놈들과 거기에 휘말린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다. 이제 그걸 들은 병사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건가…….’

병력 지원만 오면 이까짓 깡패 새끼들은 문제도 안 된다. 다 잡으라고 해서 대가리 박아를 시킨 다음에 곡괭이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두들겨 패줄 거다. 그건 망설이지 않고 잘할 자신이 있다.

개새끼들… 고 하사가 그런 희망에 가득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뒤쪽 철제 구조물에 숨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군인 양반, 왜 살인범을 감싸는 거요? 당신도 한패인가? 음… 그런가 보군.”

혼자 묻고 답하고 다 한다. 지랄하네… 고 하사는 욕설을 내뱉었다. 초희에게 이름을 들은 뒤 줄곧 유심히 관찰해 왔던 요주의 인물이라 갈라진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겠다.

육만배…….

이를 악문 고 하사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소리를 질렀다.

“개소리하지 마, 이 새끼야! 네가 누군지 다 알아! 꼴 같지 않아서 가만 내버려 뒀더니 조폭 새끼가 끝 간 줄 모르고 깝치네! 어디서 뭔 협잡질을 하려고!”

“허~ 세게 나오시네. 그런데 당신이 불리해. 이쪽에는 증인이 많거든. 하지만 당신들 편은 누가 들어줄 건가? 지금 저 건물에서 당신이랑 떡치고 나온 그년? 그년은 음침해서 친구 하나 없어. 아무도 그년 편 들어주지 않는다고.”

“아가리 닥쳐, 개새끼야! 확 쏴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

일단 윽박을 질러서 입을 다물게는 했지만, 고 하사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대체… 이 미친 짓의 범인이 박 소위라는 것과, 처음에 말을 옮겼던 증인입네 하는 놈들이 다 한패거리의 조폭이라는 걸 어떻게 밝힌단 말인가.

강 소위가 사람 죽였다는 말은 이미 수십 명의 입을 타고 옮겨졌다. 그걸 뒤집기 위한 증거 같은 건 하나도 없고…….

“포기해! 이 새끼야!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죗값을 받아!”

건물 2층의 박 소위가 소리를 지른다. 이제야 좀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코뼈가 뭉개졌는지 목소리가 꽉 막혀 있다. 놈의 곁에 있던 가희라는 계집애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아마 그년이 범행 시간 동안 쉘터 내에 있었다는 걸 증명해 줄 가짜 증인도 어딘가에서 또 툭 튀어나올 것이다. 고 하사는 입술을 깨물며 고심했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 같은 문 대위는 지금 자리에 없고, 눈치가 빠삭한 이 원사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다. 결국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형국이 되어버렸는데, 저 쪽은 사건 현장을 봤다고 나설 놈들이 열 명도 넘는다.

“…망했네.”

힘없이 중얼거린 고 하사는 강 소위에게 말을 걸었다.

“강 소위님! 일어날 수 있습니까? 좀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요! 강 소위님이 뭐라도 말을 해줘야 우리가 삽니다.”

“저 새끼… 박 소위 잡아. 저 새끼가 이 원사님 쐈어… 끄으으.”

“그건 알아요. 근데 저만 압니다. 다른 놈들은 모른다고요! 다른 놈들은 강 소위님이 범인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증거 같은 거… 없습니까? 어휴!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이러다가 우리 다 좆 됩니다!”

고 하사가 끌어 일으키려고 해도 강 소위는 자꾸 까무룩 넘어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몸 상태라는 걸 아는데도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

“저기… 총에 든 총알 개수 같은 게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이분 총은 아직 발사되지 않았잖아요. 그걸로 결백을 주장하면 안 될까요?”

임수정이 조용히 의견을 낸다. 침착하게 생각했다는 점은 가상하지만, 채택할 수 없다. 고 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총이 지금 없어요. 그리고 총알은 아무 때나 쏴버리면 그만이에요. 언제 어디서 쐈는지, 그런 기록 같은 건 안 남으니까.”

에에에엥―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

갑자기 북쪽 게이트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려온다. 고 하사는 시간을 짐작해 봤다.

어느새 새벽이 깊어서 그 얼룩덜룩 페인트를 뒤집어쓴 대규모의 좀비들이 올 때가 된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총을 쏴댈 이유가 없다.

놈들이 이 부근을 돌아나가는 데만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 수천 마리가 좁은 길목을 돌아 나가면서 발생하는 병목 현상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앞으로 한 시간 동안 병사들이 이쪽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한 시간… 이 긴장을 유지하며 한 시간을 버틴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총도 진짜 존나게 못 쏘는데…….’

더 안 좋은 소식은 그 한 시간이 지난 뒤, 병사들이 이곳으로 온다고 해도 누명을 벗을 만한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 하사는 떨림을 감추기 위해 다리에 힘을 꽉 주며 버텼다. 약해 보이면 저 새끼들이 기어오를 거다.

사사삿― 전방의 뒤로 물러나 있던 놈들이 건물 벽 쪽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러고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신경을 긁는다.

“자수해! 살인자 새끼야!”

“아까 쐈어야지, 등신아! 넌 이제 죽었어!”

총소리에 야유까지 섞여 정신이 홀랑 빠지는 것 같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팍―!

잠시 후, 임수정의 발밑에 벽돌 조각이 떨어져 반으로 갈라진다. 놈들이 던진 게 분명하다. 워낙 캄캄해서 바로 눈앞에 올 때까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안 돼, 이대로는…….’

고 하사는 강 소위와 등 뒤의 어둠을 번갈아 보았다. 강 소위의 상처도 지혈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손에서 총을 놓을 수가 없다. 적들을 한 방향에서 상대할 수 있는 곳으로 피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리고… 박 소위의 손에 깡패 새끼들이 빼돌린 강 소위의 소총이 들어가기 전에 엄폐물을 찾아야 한다. 박 소위는 개 같은 놈이지만, 사격 솜씨만큼은 꽤 괜찮은 수준이다.

얼마 전에 좀비들에게 물린 수감자 작업반장을 처리할 때도 머리를 깔끔하게 날렸다고 하는 걸 들었다.

‘젠장… 아까 그냥 쏴 죽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스스로를 책망하던 고 하사는 임수정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이동해야겠어요. 강 소위님 왼쪽 어깨 좀 부축해 줘요. 내가 오른쪽을 들게요.”

“어디로 가요?”

“우리 달 보던 건물 옆에 작은 게이트가 있어요. 건대 캠퍼스랑 이어져 있는 문인데, 거기로 빠져나갈 거예요. 거기는 열쇠 없으면 지나오지도 못하는 데니까 최소한 뒤통수 맞을 일은 없어요. 여기는 탁 트인데다 사방에 신경을 써야 해서…….”

“열쇠는 우리도 없잖아요.”

“아뇨. 끄응차! 강 소위님이 가지고 있을 거예요. 게이트 관리는 장교들만 하니까……. 맞죠? 강 소위님, 열쇠 가지고 있죠?”

고 하사는 강 소위의 어깨를 떠메면서 물었다. 임수정도 얼른 부축을 하며 도왔다.

“으윽, 있어… 내 윗주머니에… 오른쪽… 끄으으! 윽!”

총에 맞은 오른쪽 다리가 끌리자, 강 소위는 이를 악물고 진저리를 쳤다.

팍―!

그러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 날아온 벽돌이 주변을 때리는 소리가 난다. 개새끼들, 집요하고 악랄하다. 서둘러야 한다.

“미안합니다! 좀 참아요! 안 그러면 죽게 생겼으니까.”

고 하사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 사람은 삼인 사각을 하듯 천천히 발을 맞춰가며 건대 캠퍼스와 이어진 게이트 쪽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도무지 못할 것 같았는데, 점차 요령이 붙으면서 자연스럽게 속도도 올라갔다.

투투투투― 투투투―

타아앙― 타아앙―

아직도 총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저 시끄러운 총성 중에 박 소위가 쏘아대는 권총의 발사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머리 위로 권총 탄환이 스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열쇠! 수정 씨, 열쇠 꺼내요! 오른쪽 웃옷에 들었다고 했어요!”

게이트에 등이 닿자 고 하사는 다급하게 외쳤다. 임수정은 몸으로 강 소위를 지탱하며 힘겹게 열쇠꾸러미를 꺼냈다. 무리한 이동을 참느라 강 소위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열렸어요!”

임수정은 어둠 속에서 손을 벌벌 떨면서도 몇 개의 열쇠 중에서 맞는 것을 찾아 자물쇠를 열었다. 세 사람은 게이트 밖으로 나가 다시 자물쇠를 잠갔다.

“이제 어디로 가요?”

캄캄한 대지 위에 펼쳐진 넓은 대학 캠퍼스를 돌아보며 임수정이 물었다. 고 하사라고 해서 답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일단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도망쳐 온 것뿐이다.

“모르겠어요……. 그냥 가까운 건물에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강 소위님 상태도 영 안 좋고…….”

“좀비가 있지 않을까요?”

“아니요. 이 부근에는 좀비 없어요. 행진하는 놈들 중에서 몇 십 마리씩 매번 끈질기게 떨어져 나오기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싹 다 잡아 죽여요. 오늘 낮에도 그랬으니까… 지금 저 북쪽에서 총질하는 것도 제 갈 길 안 가고 떨어져 나온 놈들 때문에 시끄러운 겁니다.”

세 사람은 안간힘을 써가며 가까운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플래시 불빛 몇 개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게이트 쪽으로 가까워져 온다.

고 하사는 자세를 낮췄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몸을 감춰야 한다는 게 서럽다.

“뭔 소리입니까, 대체? 이 원사님이 돌아가셨다는 게… 아니, 그리고 소대장님들 다 어디에 계십니까? 아니, 지금 비상이 걸려도 모자랄 판에…….”

플래시를 든 병사 둘이었다. 그중 하나가 묻는다. 그들을 끌고 온 민간인이 목청을 높여 호들갑스럽게 떠든다.

“아니, 그걸 왜 안 믿어요! 강 소위가 이 원사랑 싸우다가 그냥 쏴버렸다니까! 내가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저기 있네, 저기! 저 사람들 봐요! 저 사람들도 다 같이 봤어! 얼마나 무서웠을 거야, 대체! 도망도 못 치고!”

플래시 불빛이 비춰진 방향에는 이 원사의 시체가, 그리고 그 뒤에는 기동이와 세 남자가 서 있다.

헉! 시체를 눈으로 확인한 병사들이 동요하는 소리가 들린다.

“야! 가서 애들 더 데려와! 범인이 셋이야! 저쪽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따라와! 싹 다 잡아 죽여야 돼!”

어느새 건물을 빠져나온 박 소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런 뻔뻔한 개새끼… 고 하사는 이를 빠득, 갈았다. 코가 박살 나 피투성이가 된 박 소위의 얼굴에 놀라 멍해 있던 병사가 외친다.

“박 소위님! 지금 병력 여유가 없습니다! 북쪽 게이트에 난리 났습니다! 김 중사님이 박 소위님 모셔오라고 해서 온 겁니다!”

“뭐? 똑바로 막고 있으면 되잖아!”

“그게… 다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말입니다…….”

병사는 말을 삼킨다. ‘씨발, 지휘를 하지 않아도 전투가 잘 수행될 것 같으면 장교는 왜 있는데?’라고 외치고 싶었으리라.

“으음…….”

박 소위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놈들을 놔두고 가자니 영 뒤가 찜찜하다. 하지만 게이트가 뚫리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랬다간 다 죽는 거니까.

‘일단 이것만 막고 곧바로 돌아오면 되겠지…….’

박 소위는 어둠 속 어딘가에 숨었을 강 소위를 한 번 노려보고 나서 걷기 시작했다.

“가자! 그리고 너! 저분들이랑 여기 지켜! 서치라이트 불빛 안으로 들어오는 건 무조건 다 쏴버려!”

병사 한 명에게 명령을 내려놓고 박 소위는 육만배를 돌아보며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철컹, 남쪽 내부 게이트가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플래시 불빛들이 멀어져 가는 걸 보며 고 하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어지간한 묘수가 떠오르기 전에는 저 게이트 가까이 접근하기는 텄다. 경비를 보는 병사 하나는 어찌 말로 구스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옆에 바짝 붙어 있는 독사 같은 놈들은 무조건 달려가서 박 소위에게 이를 테니까…….

상황이… 점점 더 난감해진다. 이제 쉘터로 돌아가기는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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