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91화 (291/449)

3장 돌이킬 수 없는 밤 (1)

“저거 봐, 저거 말하는 게… 아직도 잘못했다는 걸 몰라. 강 소위님, 억지로 무마하려고 하지 마요. 이렇게 넘긴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이 원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렸다. 박 소위도 지지 않고 턱을 치켜들며 눈을 부라린다.

“끝을 보고 싶다고? 응? 내가 끝을 내줘?”

달빛이 유일한 조명인데도 녀석의 흰 자위는 확연하게 번뜩인다. 평소에도 다혈질적인 면이 있었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이 녀석, 뭔가에 아주 단단히 취해 있다. 그런데도 술 냄새는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무섭다. 강 소위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단순한 애정 문제라고 보았던 게 실수다.

“야, 박 소위.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고 감정 좀 가라앉혀. 네 말대로 우리가 먼저 갈게. 괜찮지?”

강 소위는 박 소위를 달래며 이 원사를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이 원사에게 먼저 계단을 내려가라고 손짓을 했다. 일단 이 자리를 떠야 한다. 박 소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녀석이 비무장 상태일 때 신병을 확보해 놓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 총을 겨누는 기미라도 보였다가는 놈도 그렇게 할 테고, 그러면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은 다 죽는다.

“이 일, 떠벌였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다 죽는 거라고, 이 개새끼야!”

박 소위는 입에 거품을 물고 악을 쓴다. 강 소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내가 아까부터 말했잖아. 여기에서 있었던 일 다 싹 잊자고. 약속할게.”

이 원사는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강 소위는 이 원사의 팔을 꽉 잡은 손아귀의 힘을 이용해 아래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결국 이 원사도 이해했는지 잠자코 뒷걸음질을 쳐서 계단을 내려간다. 그가 계단참을 돈 것을 확인하고 강 소위도 천천히 뒤를 따랐다. 박 소위는 여전히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둘을 노려보고 있다.

“흑! 흐윽… 흐윽.”

강 소위와 이 원사가 막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을 때, 가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밀회 현장이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눈물을 흘리라던, 육만배의 평소 지시를 따른 연기였다. 하지만 박 소위는 그 어설픈 연기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왜… 왜 그렇게, 울어? 응? 괜찮아, 가희야. 울지 마.”

“아뇨… 그냥 더러운 년 취급을 당하는 게 너무 서러워서요. 그리고 이제 가희는 박 소위님이랑 헤어져야 할 테니까요. 흑!”

가희는 박 소위의 품에 안기며 애절하게 울어 댄다.

“그런 일 없어! 저 새끼들, 나한테 쫄아서 찍 소리도 못한다고! 지금 봤잖아! 걱정하지 마!”

“아뇨! 이 순진한 사람! 저놈들이 박 소위님을 속인 거라고요! 당장 여기에서 나가면 저놈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당신을 체포할 거예요! 그럼, 그럼… 박 소위님은 다른 부대로 쫓겨나고, 가희는… 가희는 저 역겨운 인간들의 노리개가 되겠죠. 조금 전에도 강 소위라는 사람이 가희를 보던 눈빛 봤어요? 위아래로 징그럽게 훑으면서…….”

박 소위의 가슴을 두드리며 신파극을 찍고 있던 가희는 갑자기 그의 대검을 확 빼 들며 뒤로 물러났다.

“왜, 왜 이래! 무슨 짓이야, 가희야!”

“죽을 거예요! 저 인간들에게 짓밟히느니, 그냥 깨끗한 가희인 채로 죽는 게 낫다고요!”

가희는 대검으로 자신의 목을 찌르는 시늉을 한다. 박 소위가 만류하려 다가갈 때마다 가희는 뒷걸음질을 쳐서 피한다.

누가 봐도 유치한 상황이지만, 아직 약기운에 취해 감정이 과잉되어 있는 박 소위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위기처럼 느껴졌다.

“제발 그만둬! 그러다가 큰일 난다고! 그러지 마!”

“가희가 죽는 게 싫으면 저 사람들 입을 막아요! 그것도 못하잖아요!”

박 소위가 망설이는 것을 느낀 가희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안녕… 가여운 사람, 가희는 박 소위님을 정말로 사랑했어요…….”

말을 마친 가희는 눈을 질끈 감고 대검의 날을 얕게 찔렀다. 그녀의 흰 목덜미에 붉은 피가 흐른다.

“으아아아! 안 돼, 기다려! 할게! 할게! 제발!”

박 소위는 미친놈처럼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 원사와 강 소위는 쉘터 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뒷모습이 서치라이트의 광원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박 소위는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면서 K―2의 총구를 겨눴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강 소위님, 저거… 어떻게 하시려고 이렇게 물러나는 겁니까? 애들 몇 명 무장시켜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금이라도 체포합시다. 저놈 가만히 놔뒀다가는 줄초상 날 겁니다. 저는 저런 놈이 애들 지휘하는 거 못 봅니다.”

이 원사는 자꾸 뒤를 돌아보려 한다. 강 소위는 그런 그를 만류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돌아보지 마십쇼, 이 원사님. 그런 행동이 다 자극이 됩니다. 체포는… 저 녀석 무장하지 않고 있을 때,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빨리 쉘터로 가는 것만 생각하십쇼,”

강 소위의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쉘터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60여 미터 남짓. 세상에 겨우 60미터인데 왜 이리 까마득하게 멀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 원사가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놈 눈빛 보셨죠? 정말 돌아도 단단히 돌았습니다. 미안한 기색도 없어요!”

“네, 그것뿐이면 다행인데… 쟤 꽤 잘 쏩니다. 아시잖아요. 어… 이 원사님, 환한 데로 가지 마세요. 이쪽, 그늘 안으로 들어오세요.”

강 소위는 길의 중앙 쪽에서 걷고 있던 이 원사를 당겼다. 어둠 속에라도 숨어야 한다. 못 이기는 척 당겨져 오며 이 원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진짜로 쏘기야 하겠습니까… 제 놈도 사람인…….”

타아앙―!

총성에 묻혀 이 원사의 마지막 말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원사의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큭!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이 원사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터져 나온 그의 내장이 바닥에 쏟아졌다.

“이, 이런 씨발!”

강 소위는 욕설을 내뱉으며 응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타앙―

또 한 발의 총성, 강 소위의 몸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으아아!”

강 소위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기었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 불이 붙은 것 같다. 더 치명적인 것은 총을 놓쳐 버렸다는 사실이다. 강 소위는 1미터 뒤쪽에 떨어진 자신의 K―2를 집기 위해 몸을 틀었다.

끄으윽! 조금만 움직여도 말로 다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이 허벅지를 쥐어뜯는다. 온몸이 고압 전류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찌릿하게 울린다.

“하아~ 하아~”

강 소위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기었다. 깜빡, 깜빡, 수명이 다한 형광등처럼 정신이 끊어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으으~ 강 소위는 자신의 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상하다.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은데 좀처럼 닿지가 않는다. 심지어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다.

“끄으으~”

강 소위는 신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허벅지를 잡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렇게라도 하면 좀 진정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타오르는 것 같은 통증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커진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진 강 소위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쉘터의 병사들도 분명 이 총소리를 듣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현 위치를 고수하도록 교육한 것은 바로 강 소위 본인이다. 그러니 병사들이 달려올 리가 없다, 지금 당장은…….

끄르르르―

바로 곁에서는 원사가 피 끓는 소리를 내며 경련하고 있다. 이 원사의 눈앞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어젯밤 문 대위의 계획을 들으며 꾸었던 아름다운 꿈이었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올려 큰 솥에 넣고, 다 함께 매운탕이 끓기를 기다리는 모습. 아무도 슬프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웃는 삶.

그렇게 살 수도 있었는데…….

그 생각을 끝으로 이 원사는 두 눈을 홉뜬 채 숨을 거뒀다.

“어떡해… 사람을… 사람을 쏘면 어떻게 해요…….”

이 원사와 강 소위가 모두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가희는 박 소위의 곁으로 다가가 중얼거렸다. 육만배가 시켰던 대로 총의 뒷부분을 꽉 잡고 눌러서 함부로 방향을 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네가 쏘라고 했잖아?”

“아니… 아니에요, 박 소위님. 가희는 그저 입을 다물게 해달라고 했어요. 죽이라는 말이 아니었는데…….”

예상밖의 반응에 박 소위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흥분과 자책과 두려움이 그를 한꺼번에 뒤덮는다. 그가 이성의 끈을 조금이라도 잡기 전에 가희는 얼른 말을 계속했다.

“죽었을까요? 둘 다?”

“강 소위는… 잘 모르겠어. 맞추기는 했는데.”

“큰일이네요. 우리 빨리 도망쳐요. 잡히기 전에……. 가희는 박 소위님만 있으면 돼요.”

약 기운 때문에 꽉 막힌 박 소위의 뇌에도 비로소 뒷일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둘이나 쐈다. 그리고 아마 둘 다 죽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죄수를 죽였던 것처럼 대충 덮고 넘어가기 쉽지 않다. 정말로 큰일을 저질러 버렸다.

어떻게든 벗어날 방도를 생각해야 되는데… 머리가 묵직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식은땀만 계속 흐른다.

하아~ 하아~ 그의 숨이 가빠지려는 순간, 뒤쪽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이게 대체 무슨 난리입니까… 그 사람들은 왜 아무 죄도 없는 박 소위님을 괴롭혀서…….”

“뭐야? 누구야?”

박 소위는 대뜸 총부터 겨누려고 했다. 하지만 가희가 딱 달라붙어 방해를 한다.

“제발, 그만! 박 소위님! 그만요! 총 내려요! 당신이 죄를 짓는 거, 더는 못 보겠어요!”

“놔! 이제 돌이키기엔 늦었다고!”

박 소위는 거품을 물고 악을 썼다. 어둠 속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박 소위님. 저는 당신 편입니다.”

“…내 편이라고? 왜?”

박 소위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제는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자신과 가희만의 밀회 공간에서 왜 갑자기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단 말인가…….

뭔가 대단히 기괴한 악몽 속에 빠진 것 같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옆방 문 뒤에 몸을 숨긴 채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

육만배 사장이다……. 워낙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인기인이라 박 소위도 기억한다. 총구가 자신에게로 향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육만배가 이야기를 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박 소위님이 가장 우수한 군인이니까 그렇죠. 박 소위님이 안 계시면 당장 우리 목숨도 위태롭다는 걸 저 정도 되는 사람들은 다 파악할 수 있거든요. 박 소위님, 강 소위가 말다툼 끝에 저 사람을 죽인 걸로 하세요. 그리고 박 소위님은 말리려다가 강 소위를 쏜 걸로 합시다. 그러면 당신은 아무 죄가 없어요.”

“아무도 안 믿을 거야… 강 소위는 여우같은 놈이라… 누구하고 척 지는 성격이 아니었어.”

박 소위가 고개를 젓자, 육만배는 자신 있게 말했다.

“아뇨, 믿을 겁니다. 믿을 수밖에 없어요. 저도 그렇고, 여기 이 녀석들도 그렇고, 증인이 있으니까요. 제가 봤다고 하겠습니다. 강 소위가 사람 죽이는 모습을, 그리고 박 소위님이 말리려고 했다는 것도 다 말이죠.”

육만배의 곁에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들이 둘이나 더 있다. 박 소위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하아~ 증언을… 한다고요?”

“네. 그게 사실이잖습니까? 그것만 기억하세요. 강 소위가 이 원사와 다퉜던 겁니다. 그리고 박 소위님이 말리려고 하는데 먼저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렇게만 말하면 서로 좋은 겁니다.”

“그렇게 해요, 박 소위님.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매일 볼 수 있어요. 저는 박 소위님 없으면 안 돼요. 죽어버릴 거라고요!”

가희도 곁에서 거들며 박 소위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박 소위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강 소위가 쐈어… 내가 아니라… 그래서 나는 말리려고 강 소위를 쏜 거고…….”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그게 사실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멍청한 놈, 완전히 넘어왔군…….

육만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이랑 먼저 분위기를 잡을 테니까, 준비 다 하고 천천히 내려오세요. 옷매무새도 좀 바로 하시고… 지퍼도 올리시고요.”

그렇게 말한 육만배는 갑자기 창밖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강 소위가 사람 죽였다! 살인 사건이다!”

그러자 바깥의 어둠 속에서 몇 명인가가 약속한 듯이 그 말을 고스란히 따라 소리친다.

“강 소위가 사람 죽였다! 살인이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큰 합창을 들으며 육만배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끼리만 입 맞추면 아무도 모릅니다. 본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 말을 남기고 두 명의 사내와 함께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육만배의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미인계는 애초 문 대위를 잡기 위해 꾸몄던 함정이지만, 가희 년이 물고 온 소식에 의하면 지금은 그가 없다고 하니 이런 놈들부터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문 대위는 돌아온 후에 다른 술수를 꾸며 죽여 버리면 된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이 모든 상황을 다 듣고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옥상에 숨어 있던 고 하사와 임수정이다.

“살인이다! 강 소위가 사람 죽였다!”

어둠 속에서 울려오는 외침을 들으며 고 하사는 임수정을 돌아보았다. 당혹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다 보고 들었다.

이 원사와 강 소위가 어둠 속을 걸어 이쪽으로 올 때에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놈들이 있었다는 것도, 박 소위와 이 원사의 멱살잡이도, 그리고 가희와 육만배의 간교한 말들도… 전부 다.

“으윽! 으윽!”

어둠 속에서 매질하는 소리와 강 소위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미리 와서 몸을 숨기고 있던 놈들이 아직 살아 있는 강 소위를 둘러싼 채 두드려 패고 있는 것이다.

총도 맞은 사람을… 저런 식이면 얼마 못 가 숨이 끊길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다.

“미안해요.”

고 하사가 임수정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왜요? 뭐가 미안해요?”

“이런 일에 얽히게 해서요. 그런데…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고 하사는 그 말을 남기고 재빨리 계단의 난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스으읏―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 자신이 꽤 날래다고 했던 말이 허풍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임수정은 신발을 벗어 들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고 하사는 어느새 2층까지 도달해 있었다.

“가희야, 저 육만배라는 사람을 믿어도 될까?”

박 소위는 가희에게 그런 이야기를 묻는 중이었다. 가희는 박 소위의 얼굴과 가슴을 쓸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 가희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아요.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저분 믿을 수밖에 없어요. 그것 외에는 길이 없어요.”

“후우~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일단 나가자. 너는 사람들 사이에 숨어. 증언도 하지 말고.”

계단 쪽으로 발을 내딛던 박 소위는 인기척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봤다. 위층 계단의 어둠 속에서 떨어져 내리는 형상!

사람이다…라는 것을 온전히 다 깨닫기도 전에 고 하사의 두 무릎이 박 소위의 어깨를 찍는다.

“크윽!”

박 소위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꺄아아아―

가희가 비명을 지른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고 하사는 박 소위의 얼굴을 한 번 더 걷어차고, 그의 총을 빼앗았다. 그리고 계속 비명을 지르는 가희의 배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흑― 가희는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뒹군다.

“이 개 같은 것들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박 소위의 얼굴에 총을 겨누며 고 하사가 외쳤다.

그때, 바깥쪽에서 또 매타작하는 소리와 함께 강 소위의 비명이 들려왔다. 사내들의 낄낄대는 소리도 들린다. 그중 한 놈의 목소리는 익숙하다. 기동이라는 새끼…….

뒤쪽에 임수정이 따라온 것을 확인한 고 하사는 그녀와 함께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지금은 저 조폭 새끼들로부터 강 소위의 생명을 건져 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어둠 속을 내달려 간 고 하사는 쓰러져 있는 강 소위를 향해 빗자루를 휘두르고 있는 조폭들에게 총을 겨누며 외쳤다.

“손들어! 이 개새끼들아! 그 사람한테서 떨어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