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공존 (3)
“오호호호호! 너무 유치하고 한심해. 그럴듯한 소리를 잔뜩 늘어놨지만 결국은 루저라는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이잖아? 닥터 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네?”
마녀는 미친 듯이 웃으며 오 박사를 경멸하는 눈으로 깔봤다. 오 박사는 차분하게 미소 짓는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녀가 몸을 일으킨다.
“미스터 배, 한 번만 더 데몬스트레이션할까? 우리의 환타스틱한 미라클을? 이 우매한 인간들에게 말이야.”
“아… 그 짓을 또 해야 합니까?”
면역자는 한숨을 내쉰다. 마녀가 다가가 그의 머리를 쓸며 속삭였다.
“씨잉 이즈 빌리빙! 많은 인간들은 자기가 본 것만 믿거든. 특히 지능이 낮고 상상력이 빈약할수록 그렇지. 후후후,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 줘.”
마녀가 요염한 척 웃어 댄다. 그 행동이 사나운 그녀의 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오 박사는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비싼 옷으로 치장을 하고 있어도 섹시함이나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여자다.
그리고 골도 어지간히 비었다. 아무리 면역자의 면역 능력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제 시간을 굳이 투자해 가며까지 잘난 척을 하다니…….
이렇게 허영이 가득하니 손대는 사업마다 말아먹었던 게 너무나 당위적이다.
“뭐 어쩌겠습니까? 하라면 해야죠.”
면역자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좀비에게 팔을 물리도록 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피를 뽑아가기는 하지만, 이 미친년 덕에 그의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
시큼한 땀 냄새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땅개가 요즘은 밤마다 미녀들을 품고 호의호식하고 있다. 게다가 경호원들의 삼엄한 호위까지……. 그러니 이런 부탁쯤은 순순히 들어줘도 된다.
“어디 있습니까, 좀비?”
면역자는 제법 호기로운 목소리로 오 박사에게 물었다. 호가호위라더니… 마녀가 비위를 맞춰주니 놈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지위라도 가진 것처럼 굴고 있다.
오 박사는 당장에라도 녀석의 몸에 독극물을 주입하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누르며 인터폰으로 준비를 시켰다.
오 박사 역시 면역자가 좀비에게 물리고 생존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걸 실제로 보고 나면 앞으로의 연구와 실험에 득이 될 것이다.
아니면 놈이 그냥 좀비로 변해주는 것도 괜찮다. 이 마녀 년이 기가 죽은 채 돌아가는 모습 역시 속이 후련해질 장관일 테니까.
“이쪽입니다. 들어가시죠.”
오 박사는 두 개의 방이 강화유리로 연결된 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건너편 방의 철제 틀에는 좀비의 갈비뼈와 쇄골, 골반을 나사못으로 고정시킨 채 세워뒀다. 팔과 다리 역시 단단히 묶여 있다.
이 연구소에서 작은 회장의 식사 재료들이 생명을 잃자마자 조처하는 기본적인 형태다. 다만, 깨물 수 있어야 하므로 머리의 철망은 벗겨둔 채이다.
“백 퍼센트 세이프한 거 맞아?”
마녀가 물었다. 오 박사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믄요. 당연히 안전합니다.”
“훗, 그러면 닥터 오부터 먼저 들어가 볼까? 호스트니까 그 정도 안내는 해줘야지.”
마녀는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어지간히 의심도 많은 년이다. 오 박사는 넌더리를 내며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뒤로 메이저와 경호원 둘, 면역자가 따랐다.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서자 좀비는 난리가 났다.
끄롸아아아―
놈은 크게 포효하면서 입을 쫙쫙 벌린다.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거기뿐이다.
“아, 다들 물러나세요. 보통 사람은 스치기만 하면 끝장이니까.”
면역자는 여유를 부리며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뒤로 비켜선 경호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과 달리 면역자는 긴장한 기색조차 없다. 좀비의 근처에만 가도 다리가 얼어붙는 보통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좀비는 작은 회장의 식사가 늘 그렇듯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여자네? 꽤 젊은데?”
좀비에게 다가서면서 면역자가 중얼거린다.
“이건 왜 이래요? 상태가 아주 안 좋네? 무슨 병 있었던 거 아니에요?”
여자 좀비의 몸 여기저기에 나 있는 피멍들을 가리키며 면역자가 묻는다. 오 박사는 구조될 때부터 워낙 부상이 컸던지라… 라고만 대답하며 넘겼는데, 메이저는 마른침을 삼킨다.
하필이면 자신이 두들겨 패다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작은 회장에게 넘겼던 여자가 샘플로 뽑혀 나온 것이다. 이렇게 상태가 안 좋은 걸 먹이면 어떻게 하냐는 질책을 받을까 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음… 뼈가 부러졌던 거구나. 어휴, 끔찍하네.”
퍼렇게 죽은 여자의 갈비뼈 주변을 보며 면역자가 중얼거린다. 먹이가 가까이 오자 좀비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몸을 챈다. 하얗게 변한 그녀의 눈동자는 면역자를 노려보고 있다.
“이 정도면 닿으려나?”
면역자는 아슬아슬한 거리로 팔을 내밀었다. 깊이 물리기는 싫은 모양이다. 하긴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갈 것을 빤히 아는데 팔뚝 전체를 내미는 놈은 없을 테니까.
좀비는 어떻게든 닿아보려고 목을 쭉 뻗으며 이를 딱딱 부딪쳐 댔다. 면역자가 좀 더 가까이 팔을 붙이자, 마침내 좀비의 이빨이 그의 살갗을 찢는다.
“웃! 스읍~! 아야야!”
다 부러지고 빠져서 몇 개 남지 않은 좀비의 이빨이 살 속에 박히자마자 면역자는 팔을 뺐다.
딱, 소리가 나고 좀비의 위턱과 아래턱이 맞부딪친다. 면역자의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자마자 경호원들이 손수건을 상처에 대주었다.
“자, 보셨죠? 분명히 물렸습니다.”
면역자는 생생한 상처를 오 박사 쪽으로 돌려 보여준다.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상처는 아니지만, 좀비의 이빨에 찢겼다는 건 확인했다. 이제 이놈이 변하지 않으면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격리 시간은 얼마로 할까요?”
오 박사가 물었다. 마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되묻는다.
“얼마나 지켜보면 인정하겠어요? 원 아워? 투 아워?”
사실 어떤 좀비는 예외적으로 아주 긴 잠복기를 가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30분 내에 결판이 난다. 그동안에 구토를 하지만 않아도 이야기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오 박사는 한 시간만 지켜보자고 했다.
“그럽시다. 두 사람, 옆에 같이 있으면서 말벗이라도 해드려. 미스터 배, 수고했어요. 원더풀 퍼포먼스였어. 한두 번 본 게 아닌데도 볼 때마다 마이 하트가 터지는 것 같아. 감동적이어서. 드링크나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알려줘요.”
경호원 둘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명령한 뒤, 마녀는 면역자를 향해 가증스런 미소를 지어 보인다. 면역자는 경호원이 가방에서 꺼내 건네준 알코올 솜으로 상처를 닦으며 말했다.
“그럼 커피나 한 잔 주세요. 말보로 레드하고.”
“커피 준비시키겠습니다.”
오 박사가 벽에 걸린 전화의 수화기를 들려 하자, 마녀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흔들었다.
“노노노노! 네버! 미스터 배 먹을 것은 언제나 최고로 엄선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만 제공해요. 오 박사는 신경 쓰지 마요. 어이, 커피.”
경호원 중 한 녀석이 캐리어를 들어 테이블 위에 놓고 연다. 먹을 것, 마실 것 따위가 잔뜩 들어 있다. 오 박사는 속으로 그런 마녀를 비웃었다.
독이라도 탈까 봐 의심하나 보군……. 미친 년, 더럽게 용의주도한 척하네.
어쨌든 경호원 둘과 면역자는 그 방에 남겨졌고, 면역자는 캔 커피를 기울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머지는 건너편 방에 앉아 유리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오 박사는 기대와 호기심, 질투가 섞인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면역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처음으로 보는 신기한 인간이다.
“닥터 오, 그렇게 멍하니 구경만 하지 말고, 나한테 보고해요. 어차피 여기 비지트한 목적이 그거였잖아. 그래, 잠실 쉘터에서 리퀘스트한 토탈 액수는 얼마 정도라고요?”
마녀의 잔소리에 오 박사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곁눈질로 면역자를 힐끔거리며 오 박사가 서류철을 내밀었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액수는 딱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잠실의 군인들은 일단 매일 삼만 명분의 식사와 기름을 조달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후에 탄약에 대해서도 말하자고는 했고요.”
“식사라… 그래서 한 끼당 유닛 프라이스는 얼마로 책정했는데?”
마녀는 손끝으로 서류를 뒤적거리는 시늉만 하며 물었다.
“현재 공급가보다 30퍼센트 인상해서 세 끼와 간식을 포함한 가격을 2만 6천 원으로 말해뒀습니다. 아무래도 보급망이 달라지는 거라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고요.”
오 박사가 대답했다. 그쯤 되면 원가의 다섯 배를 넘겨 파는 셈이다. 하지만 마녀는 만족하지 않는 눈치였다.
“닥터 오가 확실히 비즈니스 네고시에이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구나. 있죠, 비즈니스에서 프라이스라는 건 바이어가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그 잠실의 솔져들은 우리한테밖에 의지할 곳이 없잖아. 절박하다고. 그럴 때엔 좀 더 하이 프라이스를 불러도 되지 않겠어요? 음, 단가는… 매일 삼만으로 해요. 그래도 그쪽에서는 억셉트할 수 밖에 없을 거니까.”
“그렇게 말은 해보겠습니다만, 저쪽도 배짱이 보통이 아니라서 말이죠.”
“아이 돈 케어! 그 조건이 익스큐즈 안 되면 비즈니스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거겠죠. 당연한 거잖아.”
마녀는 미친년처럼 손가락을 흔들어 댄다. 그리고 이따금씩 건너편 방의 면역자를 향해 웃어준다. 오 박사가 그러겠다고 하자, 마녀가 다시 물었다.
“그렇게 우리가 서플라이를 제공하고 나면, 저쪽에서는 뭘로 갚는다고 해요? 골드도 없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이야 갚을 능력이 안 됩니다. 다만, 이 일이 수습되고 난 뒤에 국방부 예산을 최우선으로 돌려서 이쪽의 빚을 갚는 데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 관계를 유지해 줘야 우리 쪽에서도 민간인들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이 연구는 샘플을 얼마나 풍부하게 갖고 진행하느냐에 성패가 달렸으니까요.”
“그 정도로는 낫 이너프! 사태 수습 후에 연고자가 없어서 국유지로 귀속되는 서울 땅의 하프를 달라고 해요. 어차피 오너도 없는 땅, 놀려서 뭐할 거야. 쓸 사람이라도 쓰게 해야지. 그리고 지금 서바이브해야 정산이든 뭐든 하지. 사우스 에어리어에서는 다 그런 방식으로 비지니스하고 있어요.”
마녀는 어지간히 잘난 척하며 조잘댄다. 오 박사는 그 조건을 포함시키겠다고 말했다. 마녀는 다시 한 가지를 더 추가로 요구했다.
“그리고 일주일마다 200명씩은 남부로 샌드해 줘요. 어차피 저희들이 끼고 있어봐야 다 입이잖아. 식량만 축내는 거라고. 뭐, 고통분담이라고 하든가, 복지 정책이라고 하든가, 우리가 케어해 준다고 해. 핑계는 적당히 만들어내면 될 거고.”
“일주일에 200이면 꽤 많은 규모인데요. 그건 받아들여 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푸드도 없는 거지. 왜 별 이득도 없는 일에 빅 머니를 투자해야 하는 거죠? 액수도 작지 않잖아.”
마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오 박사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걸 다 종합해 보면, 엄청나게 가혹한 조건입니다. 군인들이 자칫 거래를 하지 말자는 소리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마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 돈 케어. 오해든 이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지? 어차피 물자를 쥐고 있는 쪽은 우리니까. 손해 볼 일은 없지. 닥터 오, 밀리터리 포스는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사우스 에어리어에만도 수만의 병력이 있어. 우리는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는 쪽과 손을 잡으면 돼. 여기라고 특별할 게 없다는 말이야.”
“하지만 군인들이나 쉘터가 다 없어지면 여기 본사 건물도 위험해질 텐데요.”
“그것도 아이 돈 케어. 방어해 낼 자신이 없으면 여기 다 비우고 당신도 사우스 에어리어로 와요. 연구소 과장 자리 하나 정도는 준비해 놓을게. 이까짓 빌딩, 잠깐 비워둔다고 무슨 빅 프라블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알겠죠? 내가 말한 조건들, 그거 다 지켜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프라미스할 수 없어요. 그게 우리 그룹의 공식 입장입니다.”
“여기 남아 있는 소중한 데이터나 자료들은…….”
오 박사가 머뭇거리자, 마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닥터 오가 만든, 그 잘난 데이터 없어도 우리는 백신 개발 금방 성공할 수 있어. 남부 지방… 아니 사우스 에어리어에서 독자적으로 말이지. 왜냐하면 우리한테는 살아 있는 미라클, 미스터 배가 있으니까. 무슨 소린지 알아요? 두 유 언더스탠?”
오 박사는 면역자가 있는 방을 돌아보았다. 물린 놈이나 그 옆에서 맞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경호원 놈들이나 전혀 긴장하는 빛이 없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일이라 무덤덤한 모양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제 당신 리서치는 그닥 대단한 것도 아니야. 어쩌면 지금부터가 메인 게임이지. 미스터 배와 내가 이룰 성과 말이지.”
마녀는 교만한 표정을 지으며 경호원이 꺼내준 와인 잔을 기울인다. 오 박사는 아니꼽다는 걸 굳이 감추려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 계집애의 마음속 청사진에는 서울 본사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럴 때에 아부를 한다고 해서 별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이 미친년이 쉽게 생각을 고쳐먹을 리도 없다. 얼마나 불신이 크면 음료수와 식사까지도 따로 짊어지고 다니겠는가.
“닥터 오.”
약속된 한 시간이 거의 다 경과했을 때, 마녀가 선글라스를 다시 걸치며 웃었다.
“미스터 배가 안 변해서 유감스러운 얼굴이네? 막 토하다가 꽤애액― 하고 좀비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아닙니다. 그저 대단한 걸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
“저 사람은 수많은 실험을 다 무사히 통과했어. 좀비가 아무리 달려들고 깨물어도 멀쩡해. 그러니까 미라클이지. 이제 내 앞에 무릎 꿇고 싶은 생각 안 들어?”
네 싸대기를 후려갈긴 다음, 메이저에게 넘겨주고 싶다, 이 재수 오지게 없는 년아…….
오 박사는 차오르는 욕망을 억지로 꾹 눌러 참았다.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동안은 마이 브라더를 미끼로 대디한테서 이것저것 펑펑 끌어다 썼겠지만, 더 이상은 안 돼. 이제는 내가 컨트롤을 하거든. 나는 마이 브라더나 대디하고 달라. 훨씬 더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지금까지처럼 어설픈 방식, 나는 용납 못해. 어이… 가자. 미스터 배한테 돌아가시자고 해.”
파멸의 마녀가 탄 헬기를 배웅하고 난 뒤, 옥상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오 박사는 눈을 꾹 감고 주먹을 부르르 떨며 화를 삭였다.
돌대가리 같은 년이 탯줄 하나만 믿고 감히… 왜… 면역자 같은 행운이 그년한테 가서… 오 박사의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다른 직원들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언제 화풀이 대상이 될지 모른다.
“아까 그 좀비 입에서 면역자 세포 회수했어?”
오 박사가 묻자 곁의 연구원들이 고개를 조아린다.
“네. 지시하신 대로 면역자 세포, 다 회수해서 보존액 속에 넣어뒀습니다.”
“좋아, 일단 연구실로 돌아가서 대기해. 내가 가기 전에 아무도 손대지 말고.”
연구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건물 내부로 돌아가자, 오 박사가 메이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메이저, 전에 말했던 그 건… 그거 있잖아.”
“무, 무, 무슨 건 마, 말하는 거야?”
“쉘터에 가서 민간인들 데려오겠다고 한 거 말이야. 백 명 이상도 가능하다고 했었지?”
아, 그거. 메이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 그, 그렇지. 어, 어차피 구, 군인 애들은 자, 자기 책임만 아니면 돼. 뒤, 뒷일은 신경 안 써.”
“그거 부탁 좀 하자. 우리 지금 심각한 위기야. 저 미친년이 저렇게 설치고 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여기 본사도 슬슬 망조가 들었어. 빠른 기한 내에 무슨 성과를 내야 돼. 백신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샘플로 쓸 놈들 잔뜩 잡아와.”
“그, 그러려면, 이, 일단 이, 이, 인심을 좀 사야 되는데… 며칠 전부터 야, 야, 약품 지원을 해달라고 아우성인데 계속 쌔, 쌩깠거든.”
메이저의 말에 오 박사는 두 팔을 벌렸다.
“그렇게 해. 달라는 거, 큰돈 들어갈 거 아니면 다 줘버려. 사람만 데리고 오라고. 씨발, 저 개 같은 년이 풀이 죽은 꼴을 좀 봐야겠어!”
오 박사의 발작적인 태도에 메이저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 그, 근데 그 머, 멍청한 년이 배, 배, 백신을 만들기는 하, 할까?”
“흥, 그럴 리가 없지.”
오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년은 멀쩡한 연구까지 다 중지시킨 뒤에 제 연구 말아먹고 나서 ‘웁스! 안 되네. 이게 왜 이러지?’ 할 년이야. 달리 파멸의 마녀가 아니지. 저년 권한이 더 커지면 단순히 우리만 죽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