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공존 (2)
“그럼, 쟤들 담배 연기 피우게 해서 미끼로 쓴다고 치고, 장소는 어디로 정해?”
보안관이 물었다. 글쎄… 유빈은 좀비들을 가둬둘 곳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봤다.
첫째는 견고한 곳이어야 한다. 기껏 다 가둬놨는데 그롸아아― 하고 갑자기 뚫고 나와 버리면 안 가둔 것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으니까.
두 번째는 함정을 만들고 미끼가 빠져나오는 데 큰 어려움이나 위험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작업의 난이도가 너무 높은 계획을 짜면 안 된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는 것, 그것이 걱정쟁이로서 그가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이다.
세 번째는 열댓 마리의 좀비들과 미끼가 안전하게 격리될 수 있는 공간까지 모두 확보할 만큼의 넓이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조건일 수도 있는데…….
코스트코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너무 먼 곳이면 좀비들을 그곳까지 몰고 가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좀비 무리들이 근처에 저희들 동료가 없다고 판단해서 또 새로운 좀비들을 홀씨처럼 떨어뜨려 놓고 갈지도 모른다.
유빈은 그런 조건들을 간략히 보안관에게 설명하고 함께 부근의 상가들을 눈으로 훑었다. 의외로 만만해 보이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상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의 모든 면적을 유리로 개방시켜 뒀다. 모텔이라고 해도 커다란 창이 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 데는 언제 좀비들이 유리를 깨고 나올지 모르니까 안 된다. 고민하던 보안관이 제법 커다란 트럭을 가리켰다.
“저런 트럭은 어때? 그… 시체들 채워놓았던 것처럼 좀비들도 가둬둘 수 있지 않을까?”
“넓이는 그렇다 치고, 좀비들 다 들어온 다음에 쟤들을 어떻게 빼내?”
“음… 그러면 저기는 안 되는 건가…….”
잠깐만 생각해 보고 보안관은 이내 포기했다. 트럭 짐칸만으로는 애초에 좁기도 너무 좁았다. 유빈이 의견을 제시했다.
“이왕이면 지하 상점 같은 곳이 어떨까 싶은데. 계단 문만 잠가둬도 좀비들이 빠져나올 수가 없잖아. 계단이 좁으니까 여러 놈이 한 번에 부딪치거나 밀어 댈 수도 없을 거고…….”
“계단 문을 닫으면 완전히 꽉 막히는 건데, 그러면 쟤들은 어떻게 빠져나와?”
“음, 그러니까 엘리베이터 구멍도 같이 있는 곳이어야지. 미끼로 쓰던 애들은 그리로 끌어 올려주면 되니까.”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 지하… 계단 출입구는 모두 잠글 수 있어야 하고… 그거 은근히 까다로운데? 이 주변에 엘리베이터 있는 건물 자체가 많지가 않아.”
보안관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린다.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두 친구가 그나마 적절하다고 판단한 곳은 두 군데였다.
대각선 방향의 대로변 5층 건물, 반대편의 고층 주상 복합 빌딩. 그런데 두 건물이 굉장히 대조적이다.
고층 주상 복합 빌딩 지하는 수백 평이 넘는 넓은 상가, 반대로 대로변 건물의 지하는 달랑 유흥업소 하나.
택하라면 당연히 유흥업소 쪽이다. 대여섯 개에 달하는 주상 복합의 입구를 다 막으려면 일주일은 공사를 해야 할 거다. 보안관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근데 제 발로 순순히 지하까지 들어와 줄까? 좀비 새끼들, 지하철 쪽으로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잖아?”
“응. 나도 좀비들이 그리로 내려가는 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생각해 보니까 첫날에 지하 통로까지 우리 쫓아오던 놈들 말고는 진짜 못 봤어. 왜 그렇게 지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네… 껌껌한 걸 싫어하나?”
두 친구가 다시 좀비와 지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골목 쪽에서는 쨍그렁대며 깡통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리듬으로 봐서는 두어 놈 밖에 안 되는데, 소리는 엄청나게 요란하다. 온 동네 깔아둔 깡통들을 전부 다 발목에 걸고 다니는 모양이다.
쨍그렁, 쨍그렁―
“아, 저 새끼들 존나게 시끄럽네. 저 새끼들은 일단 죽일까?”
듣다 못한 보안관이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유빈은 말렸다.
“다음 번 좀비 행렬 지나갈 때까지는 참아. 일단 그놈들이 몇 마리나 떨어뜨리고 가는지 보고 결정하자.”
“근데 만약에, 존나 많이 남겨놓고 가면 어떡해?”
“‘존나 많이’가 몇 마리 정돈데?”
“한 200마리? 300마리? 하여간 엄두도 안 날 만큼 많이.”
보안관의 대답을 듣던 유빈의 눈빛이 흔들린다. 위이잉― 유빈의 걱정 엔진이 풀가동되기 시작한다.
휴우~ 한숨을 내쉰 유빈이 말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자.”
말을 하는 유빈도, 듣는 보안관도 목덜미와 겨드랑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오늘도 역시 어지간히 더운 날씨다. 풀장 튜브에 들어간 친구들을 물끄러미 돌아보던 보안관이 웃옷을 벗었다.
“그래, 그러면 그때까지 우리도 좀 시원하게 담그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물속에 들어가 보겠냐.”
“그사이에 좀비들 지나가면 안 되는데, 유심히 봐야 하잖아.”
유빈이 머뭇거리자 보안관은 녀석을 덥석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거는, 맨 정신에는 모를 수가 없어. 그 새끼들 근처에만 와도 벌써 코가 썩는데.”
보안관이 유빈을 옆구리에 낀 채로 풀에 다가오자 태권소녀, 규영과 함께 생수 풀 안에 들어 있던 제니가 물었다.
“아이디어 다 짰어요, 오빠?”
맥주 풀 안에서 신입과 샴페인을 기울이고 있던 삼식이가 유빈을 가리키며 말했다.
“후후,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니까. 우리는 그냥 쟤 말하는 거 잘 듣고 따라주기만 하면 돼. 여태까지 그렇게 해서 잘해왔잖아.”
낮술에 그새 기분이 좋아진 신입도 고개를 끄덕인다.
“응, 저 새끼 잔대가리는 인정. 존나 얌시러운 놈이니까 손해 볼 짓은 안 하지. 그대로 따른다에 나도 한 표!”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던 유빈은 신입과 삼식이에게 새 샴페인 병을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음, 그래서 그 계획 말인데… 만약에 그걸 실행에 옮기게 되면 너희 둘을 미끼로 쓸 거야.”
“뭐어? 미… 미끼? 씨발, 그게 뭔데?”
신입이 눈이 똥그래져서 묻는다.
“뭐긴, 철창 안에 들어가서 좀비들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좀 무섭겠지만 잘 부탁해. 젤 중요한 역할이니까.”
“와~ 중요한 역할! 주연이다, 주연!”
제니, 태권소녀, 규영이 동시에 짤깍짤깍, 손뼉을 쳐주며 계획을 확정시켜 버린다. 이렇다 할 반응을 할 틈도 없이 환호를 받은 신입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말했다.
“오늘?”
“아니,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어휴~ 한숨을 푹 내쉰 신입이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양주병들을 가리키며 삼식이에게 물었다.
“야! 이 중에 어떤 게 젤 비싼 거라고 했냐? 씨발,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인데 죽기 전에 존나 비싼 술이나 퍼 마셔야지.”
☆ ☆ ☆
태양 그룹 본사의 헬기 착륙장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의 간부들이 도열한 채 서 있었다. 오만방자한 성격의 오 박사도, 미치광이 메이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후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지만, 그들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늦는군…….”
시계를 들여다본 오 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말끝에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개년.”
메이저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하늘을 보고 있다. 그들을 불러내서 기다리게 만든 것은 태양 그룹 황 회장의 장녀, 황나연. 태양 그룹 내부에서는 본명보다 ‘파멸의 마녀’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불리는 여자다.
파멸의 마녀라는 별명은 그녀가 손을 대는 모든 사업이 전부 다 끔찍하게 실패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IT면 IT, 유통이면 유통, 패션이면 패션, 증권이나 금융,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까지… 멀쩡하게 굴러가던 회사도 그녀가 손을 대기만 하면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예외적인 경우조차 없었다.
태양 그룹 작은 회장이 천하의 개망나니라도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은 따지고 보면 이 파멸의 마녀 덕이다.
작은 회장이 아무리 미친 짓을 하고 돌아다닌대도 사업적 측면에서는 파멸의 마녀보다 몇 백 배 나았다.
결국 그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고, 근래 몇 년간은 중간 마진 정도나 떼어먹으며 버티는 신세로까지 전락했다.
태양 그룹 소유의 모든 계열사 매점에 납품하는 사업체 따위가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특별한 재주가 없이 그저 중간에 서류 한 장만 끼워 넣으면 되는 일.
하지만 작은 회장이 좀비가 되어버린 후, 그녀는 상속자의 왕좌가 공석이 되어버린 틈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황 회장조차도 파멸의 마녀가 남부 지방에 머물며 슬금슬금 업체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꼬라지를 방관했다. 어쨌든 멀쩡한 자식이라고는 이제 그거 하나가 남았으니까…….
그리고 오늘, 그 파멸의 마녀가 태양 그룹 본사에까지 마수를 내밀려 하고 있다. 잠실 쉘터 지원 액수 증액에 대한 감사라는 명목 하에…….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투투투투―
그녀를 태운 아구스타 AW109가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다가온다. 과거, 작은 회장의 전용기였던 그 하얀 헬기가 헬리포트에 내려앉고 경호원들이 먼저 내려 문을 열었다.
“아, 많이 기다렸어요? 더웠겠네?”
헬기에서 내린 파멸의 마녀가 거만하고 재수 없는 말투로 지껄인다. 오 박사는 깊숙이 숙인 허리를 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글쎄… 영광일지 쉐임이 될지는 지켜보자고, 닥터 오.”
마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호원들이 우르르 그 뒤를 따른다. 오 박사는 똥 씹은 표정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런 거 필요 없고, 마이 브라더부터 보고 싶은데… 걔 컨디션이 아주 시리어스하단 말만 들었거든. 걔 전용 피딩 룸이 있다고 했지?”
커피를 내오자 마녀는 휘휘 손짓을 해서 물리고 작은 회장부터 보고 싶단다. 오 박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작은 회장님 문제는 제가 회장님께 허락을 받아야…….”
“노노노노노, 그게 아니지. 닥터, 그 생각 해봤어요? 둘 있던 자식 중에 하나가 그 꼴이 됐는데, 대디가 이제 누구한데 의지할 것 같아? 그래, 맞아. 나야. 그러니까 당신은 내가 원하는 걸 하면 돼. 대디한테 따로 컨택할 필요 없어. 아니면… 한 번 시험해 보든가?”
오 박사는 속으로 분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본사에 2인자 전용 헬기를 타고 왔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방문할 것이라는 통보도 회장 의전 비서실에서 보내온 것이다.
“이쪽입니다.”
오 박사는 황나연을 식사실로 안내했다. 마녀는 경호원들까지 모두 대동하고 들어와 아래층의 문을 열라고 했다.
오 박사가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열리고 쿠션으로 덮인 방에 작은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층에서 풍겨 나오는 사람 냄새에 흥분한 작은 회장이 그륵, 그륵,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풀쩍풀쩍 뛰어오른다.
“오우, 쉣! 지금 디스 룸 카메라로 찍고 있나?”
마녀는 코를 막는 시늉을 하면서 물었다. 아닙니다, 오 박사가 고개를 젓자, 마녀는 흥미를 숨기지 못하고 선글라스를 들어 올린다. 그러고는 괴물로 변한 자신의 동생을 들여다보다가 미친년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 오우, 마이 브라더! 너 리얼리 디스거스트해졌구나. 아하하하하!”
마녀는 자신의 앞쪽 발판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게이트 오픈해요. 더 생생하게 볼래.”
“위험합니다. 조심하시는 게…….”
“두 잇! 나우!”
마녀는 영어를 섞어 쓰는 특유의 짜증스런 말투로 명령하며 손가락을 탁, 튕겼다. 연구원들은 곧바로 게이트의 문을 열었다.
그롸아아아―
사람 냄새가 더 진해지자 작은 회장의 포효는 더욱 커진다. 천천히 열린 발판 부근으로 다가간 마녀가 그 꼴을 내려다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지껄인다.
“오우~ 유, 어글리 몬스터!”
‘씨발 년, 어지간히 잘난 척하네. 확 밀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오 박사는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 경호원이나 뒤처리만 해결된다면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다. 이 잡놈, 잡년이 서로 엉켜서 잡아먹고 돼지처럼 비명을 지르는 꼴은 정말 볼만할 것이다.
“퉤―!”
갑자기 작은 회장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은 마녀가 홱 돌아서며 말했다.
“실컷 봤어. 이제 닫아.”
회의실로 돌아간 마녀는 중앙의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오 박사에게 물었다.
“닥터, 당신이 대디한테는 저 몬스터를 인간으로 리턴시킬 수 있다고 했다며? 그게 진심이었어? 아무리 봐도 그냥 좀비인데? 무슨 실적이 나온 것도 없잖아?”
“지금 한창 실험이 진행 중이니까 전부 다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최초로 백신이 만들어질 곳은 바로 이곳이 될 겁니다. 그런 기대를 하셔도 좋을 만한 물적 증거들도 충분히 존재하고…….”
“뭘 믿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지? 그 면역자 혈청인가 뭔가, 그거를 트러스트하는 거야? 그 사람 얼레디 죽었잖아?”
“네, 중간 관리자의 관리 미숙으로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연구소에는 그 사망한 면역자의 혈청과 신체가 보존 중이니까 곧…….”
“그거 알아? 지금 우리 그룹에서 유어 파트의 실적이 가장 배드하다는 거? 다들 프로핏을 내고 있는데 당신네 연구소만 돈을 펑펑 쓰고 아무것도 거둬들이지 못하고 있단 말이야. 면역자의 혈청? 그게 그렇게 대단해? 어이, 미스터 배. 이리로 와봐요.”
마녀가 손가락을 딱딱, 튕기자 경호원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온다. 아까부터 다른 경호원들과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사내다. 덩치도 작고, 딱 봐도 오래 운동을 한 사람의 몸이 아니다. 마녀가 교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여 드려요.”
그러자 사내는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를 열어젖혔다. 이빨 자국. 오 박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승모근 주변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에 사람의 이빨 자국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 아문 것으로 보아 꽤나 오래된 상처인 것 같다.
목을 젖혀 상처를 드러내던 사내가 이번에는 양복 웃옷을 벗고, 팔뚝을 들어 올렸다. 아직 딱지가 남은 새 상처가 또 모습을 드러낸다. 서너 개나 된다. 여기에도 역시 이빨 자국이 남았다. 으스대며 상처를 보여주던 사내가 씨익 웃으며 다시 양복을 걸친다.
“봤지? 닥터 오, 뭐 느끼는 것 없어?”
마녀가 물었다. 오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만, 그걸 자기 입으로 저 개 같은 년에게 확인시켜 주고 싶지 않다. 오 박사의 분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녀는 깔깔대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뭐야? 어째서 갑자기 말을 잃었어? 왜? 프라이드가 상해?”
자리에서 일어난 마녀는 미스터 배라는 사내의 얼굴을 손등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영광으로 알아. 지금 당신은 홀 월드에서 유일할지도 모르는 항체 보유자를 만난 거니까. 우리가 여기 있는 미스터 배와 함께 인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리서치를 하게 될지 상상이 돼? 응? 이 기적 같은 사람을 보고도 당신은 이 연구소에 무슨 가치가 있다 할 수 있나?”
오 박사의 눈이 질투심과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른다. 할 수만 있으면 저 경호원들과 개 같은 마녀 년을 모조리 X―10으로 마비시켜 좀비 밥으로 줘버리고, 면역자를 빼앗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불안감이 밀려온다.
살아 있는 면역자라니… 이러다가 백신 개발에서 뒤처지기라도 하면… 그러면 지원은 끊길 것이고, 여기에서 왕 부럽지 않게 지내던 그의 지위도 무너질 것이다.
오 박사는 경련이 일어나려는 눈꺼풀을 움직여 가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황 사장님.”
“글쎄…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나? 당신이 내 보스야?”
마녀는 오 박사의 눈을 보고 빙글거렸다. 미스터 배라는 남자가 살아남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원래 포항 방어 부대 소속의 군인이었고, 외상자라는 이유로 처형당할 뻔했다.
하지만 작업 때문에 처형이 하루 이상 지연되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다른 우리의 부상자들이 모두 좀비로 변한 다음에도 이 남자만은 멀쩡히 인간인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며칠간이나 좀비로 변하지 않았으므로 남자의 혐의는 벗겨졌고, 고열에 시달리고 한쪽 눈이 붉게 충혈된 채 단순 부상자로 분류되어 태양 그룹 남부 지사에 넘겨졌다.
그리고 몇 개의 과정을 더 거쳐 이 특이한 남자의 이야기는 마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를 처음 얻었을 때 마녀는 세상을 손에 쥔 것처럼 기뻐했다. 이제는… 이제는 마음껏 활개를 치고 잘난 척을 할 수 있다.
“보스가 누구인지야 잘 알고 있죠. 저는 단지 이 세상에 사기꾼 같은 놈들이 많아서 황 사장님처럼 고귀한 분을 속일 수도 있다는 걸 알려 드리려는 겁니다. 사실 이빨 자국을 만들 수 있는 게 좀비들만은 아니잖습니까? 저 같은 인간이 살을 잘라 끊어도 같은 모양의 흉터가 남지요. 저 사내의 상처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도발하는 오 박사의 뱀 같은 눈이 번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