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86화 (286/449)

2장 공존 (1)

“까만색 페인트?”

보안관은 철창을 흔드는 좀비들과 유빈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래. 전에 행렬에서 빠져나온 놈들 중에 페인트 묻은 놈들은 파란색이랑 분홍이들, 두 종류뿐이었다고. 해물낙지집인가 거기로 저놈들 뛰어 들어갔을 때, 왜 혜주 발 삐었던 그날, 얘가 칠해진 패턴이랑 그런 것도 다 알려줬었잖아.”

유빈이 삼식이를 가리키며 설명하자, 삼식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그런 똑똑한 소리를 했다고?”

“그럼 이놈들 정체는 뭐라는 거야? 어제 새로 떨어져 나온 놈들이라는 건가? 아… 아니다,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일단 이놈들부터 좀 잡고 뭘 하든 해야지. 시끄러워서 안 되겠다. 아… 냄새도 진짜 존나 구리네.”

철창을 뒤흔들고 포효해 대는 좀비들을 보며 보안관이 해머를 쥐었다. 자물쇠가 단단히 걸려 있으니 쳐들어올 위험은 없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깡통을 매단 세 놈도 어지간히 쨍그렁대며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유빈아, 장갑 끼고 셔터 올려. 저기 세 마리 이쪽으로 합류하기 전에 이 새끼들 먼저 잡자. 너희들은 뒤로 좀 빠져 있어.”

일행들이 위로 피하고 나서 유빈이 장갑을 찾아 끼우고 있을 때,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보안관이 갑자기 해머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음… 생각해 보니까 무작정 다 죽여 버린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네. 야, 유빈아.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뭐가 이상해?”

“좀비들 말이야. 나는 그동안 계속 이해가 안 됐어. 뭔가 찜찜하기는 한데 머릿속에서 정리가 다 안 되니까 흐릿한… 뭐, 그런 느낌이었달까? 근데 지금은 대강 알 것 같아. 하여튼… 이걸 생각해 봐. 이 동네는 좀 이상했어. 좀비들이 계속 지나가기는 하는데, 흘리고 가는 좀비가 없었어. 길거리에 어슬렁거리는 좀비 못 봤잖아. 처음 왔을 때부터.”

그게 정말 신기한 일인가 싶어 유빈은 기억을 되짚어봤다. 하긴, 어디를 가도 놈들은 자신들이 지나는 길에 몇 마리씩 좀비를 떨어뜨려 놓고 갔던 것 같다. 무슨 홀씨나 포자를 퍼뜨려 놓는 것처럼…….

복지 센터 앞 번화가에서 좀비들의 행렬이 떠나갔을 때도 몇 마리인가는 거기 멍청히 남아 있었다고 했다. 유빈의 얼굴에서 납득한다는 표정을 읽은 보안관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렇지? 맞지? 그러니까 이 동네에 좀비들이 들어온 건 며칠 전에 우리가 길 막다가 너무 정체가 길어졌을 때밖에 없어. 그나마도 다 어딘가로 도망가 버렸고.”

“음, 확실히 그러네. 왜 그랬던 거지?”

“내 생각에는…….”

보안관은 주차장 진입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

“응? 뭔 소리야? 코스트코 때문에 그랬다고? 아……!”

순간, 유빈의 머릿속에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보안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들의 파티 다음날 저렇게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 그거야! 하, 이 자식. 역시 눈치 빠르다니까. 여기 있던 좀비들! 그 새끼들이 있는 동안에는 지나가던 좀비 무리들도 따로 몇 마리를 버려두고 가지 않았던 거야. 왜냐! 이미 여기에 수십 마리가 와글거리니까 걔들 구역이라 이거지!”

보안관이 간만에 두뇌 풀가동을 하며 신나게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위쪽에서도 뭐라고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안관은 삼식이와 혜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야, 너희는 또 왜 그래?”

“얘가 자꾸 신입이랑 나 구박해, 보안관! 우리가 담배 피워서 좀비들 왔다고!”

삼식이가 볼멘소리로 대답한다. 태권소녀도 지지 않고 신입을 가리키며 받아친다.

“내가 언제 구박했어? 그냥 담배 피워서 왔나 보다, 한마디 하니까 저 녀석이 괜히 제 발 저려서 생난리를 친 거지! 그리고 담배 피우면 좀비들 오는 건 사실이잖아! 너도 자전거 타고 나가서 실험했을 때, 네 입으로 말했었잖아. 좀비들이 담배통 주변에 모여 서 있었다고.”

“어휴~ 그런 거 아니야. 너희들, 왜 그런 걸로 싸우고 그러냐. 가뜩이나 골치 아픈데.”

보안관이 답답해한다. 유빈이 도왔다.

“진정해. 만약에 담배 피운 자리에 좀비들이 멈추는 거면, 저 앞 사거리 지나서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그 주변에 멈춰 서 있었어야 돼. 삼식이랑 신입이 거기에서 실험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는 않았잖아.”

“그럼 네가 생각하는 이유는 뭐야?”

태권소녀가 대답을 듣기 위해 다가오자 나머지 일행들도 우르르 다 따라 내려왔다. 그사이에도 좀비는 계속 철창을 잡고 흔든다. 삼식이의 등에 업힌 규영이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근데 이 얘기 꼭 여기 서서 해야 되는 거예요?”

응? 보안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

“그럼 다시 올라가자. 일단 한잔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도 되잖아. 오늘 나가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삼식이가 보안관과 유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긴 안 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어차피 그들은 풍부한 물건들이 가득 찬 요새 안으로 들어와 있고, 바깥에 좀비 몇 마리가 돌아다닌다고 해봐야 그 정도의 힘으로는 안으로 치고 들어올 수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옥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전체적인 조망을 하기에도 거기가 훨씬 좋다.

“다섯 마리가 전부가 아니었네.”

옥상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며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좀비들은 당장 눈에 띄는 것만 해도 열한 마리. 골목 안쪽에서 쨍그렁 소리가 울려 대는 걸 보면 거기에도 몇 마리인가는 더 있다는 뜻이다. 역시 높은 곳에 와서 조망하기를 잘했다.

“여기서 이렇게 좀비들 보고 있으니까, 폐경전철역 옥상에서 번화가 좀비들 걸어가는 거 구경하던 생각이 난다. 차이라면 그때는 엄청 배가 고팠었는데, 지금은 손만 뻗으면 먹을 거 천지라는 거네.”

“다행이지 뭐. 자, 들어봐. 내 생각은 이래…….”

보안관은 모두에게 왜 저 좀비들이 갑자기 여기 남겨지게 된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들 과자를 씹고 음료수나 맥주를 기울이면서 신중하게 들었다.

지금 그들에게 닥친 상황이 커다란 위협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더 안전하게 지내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니까. 보안관의 가설을 다 듣고 난 뒤, 태권소녀가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저 좀비들이 어떤 텔레파시 비슷한 게 있어서 한 구역에 일정한 놈들 이상은 반드시 남겨두려고 한다는 뜻이야?”

“텔레파시라고 거창하게 표현하니까 좀 우스워지기는 하는데… 뭐, 대충 그래. 저 새끼들이 지금까지 저렇게 몇 마리씩을 떨어뜨려 놓고 가지 않은 건, 이 안에 좀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던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좀비들을 다 죽이고 이틀도 되지 않아서 갑자기 저렇게 몇 마리나 떨어져 나왔다는 게 설명이 안 돼. 너무 공교롭잖아.”

보안관이 이유를 설명한다. 유빈은 꽤나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규영이 예리한 척하며 물었다.

“그럼 저 좀비들을 다 죽여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네요? 어차피 금방 또 저만큼이나 그 이상의 좀비들을 놔두고 갈 테니까요.”

“응, 바로 그거야. 매일 그 짓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 며칠 꾸준히 수고해서 다 죽일 수 있다면야 또 이야기가 다르지만, 저쪽은 수천이라고.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일 년 내내 매일 열댓 마리씩 때려죽여도 끝이 안 나.”

다들 보안관의 말에 100% 공감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좀비들과 싸우고 또 머리를 자른 경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괴롭고 힘들다.

게다가 아직 코스트코 내에 치워야 할 좀비 시체들이 남아 있는데, 거기에 또 시체들을 추가한다고 해봐야 좋을 건 거의 없다. 감정도 조금은 쉬게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저렇게 좀비들이 돌아다니게 둬서는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잖아.”

태권소녀가 질문을 던지자, 신입이 되물었다.

“야, 근데 왜 꼭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냐? 여기 먹을 거 잔뜩 있는데… 그냥 청소만 쉬엄쉬엄 하고, 당분간 여기에서 살자. 아래층에 소파랑 침대 매트리스 다 있더구만. 여기가 천국인데 어딜 자꾸 나가려고 그래.”

얼핏 듣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딱히 말이 안 될 것도 없다. 어차피 좀비 세상. 생존이 최고의 목표인데 지금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장비를 거의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니까.

안전한 석조 건물, 자물쇠가 달린 셔터, 풍부한 음식, 믿음직한 동료… 제니도 신입의 의견에 동조했다.

“만약에 저 좀비들 다 죽여도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면, 저도 일부러 위험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당분간 이 안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 나는 반대야. 여기가 좋기는 하지만, 그냥 이 건물 하나만 믿고 살 수는 없어. 식량이랑 물도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데다가 옮겨놓고 잘 숨겨야 된다고 생각해. 그런 일 하려면 밖에 좀비들이 돌아다니면 안 되지.”

유빈이 말했다. 이번엔 보안관이 물었다.

“음식을 다른 장소에 옮겨놓는다고? 어디에?”

“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 지하철역으로 한 정거장 정도면 적당하려나? 돌아다니면서 차차 알아봐야지.”

“그렇게 멀리까지?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해?”

뜻 모를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유빈에게로 향한다. 유빈은 아직도 마름모꼴의 그물 자국이 그대로 남은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물건 많다는 거, 누구나 다 알아. 우리도 맨 처음에 왜 이리로 오게 된 건지 기억할 거야. 코스트코에 끌린 거잖아. 여기뿐만 아니라 대형 마트들은 대부분 비슷하긴 하겠지만, 하여튼 그러니까 사람들이 음식을 구하고 싶으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이 여기나 저 길 건너에 있는 저 대형 마트일 거라고.”

“그런데?”

“살아남은 사람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어쩌면 우리보다 몇 배나 더 규모가 큰 생존자 무리도 있을 수 있지. 그런 사람들도 먹을 걸 찾다보면 이쪽으로 올 테지.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야.”

“그런 걸 왜 대비하냐? 그런 새끼들 껍쭉거리면 두들겨 패서 쫓아내면 되지.”

보안관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유빈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비슷한 수라면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쪽에는 너도 있고, 혜주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자기들 힘만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나름 뭔가 능력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버티지를 못했을 테니까. 총 같은 무기가 있다면 암만 주먹이 세도 소용이 없을 거라고. 꼭 그런 경우만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여기에서 더 못 버티고 우리가 도망갈 수도 있어. 앞날은 모르는 거고, 죽는 것보다는 배 좀 곯는 게 나으니까.”

이야기를 듣던 제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유, 귀여워. 뭔가 되게 다람쥐 같은 소리잖아요. 먹을 걸 몰래 숨겨놓는다니……. 어쩌면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태권소녀도 무표정하게 대꾸한다.

“음, 그게 약한 애들 특징이기는 한데… 이거는 나도 찬성이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미친놈들도 이미 질리도록 봤고, 인철이네 무리들이 도통 눈에 안 띄는 것도 은근히 신경은 쓰여. 얼마나 따로 빼둘 계획인데?”

“한 달치 정도. 그 정도 식량만 미리 확보해 놓아도 고비를 넘기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유빈이 걱정쟁이의 전공을 살려 대답하고 있을 때, 아래쪽을 굽어보며 맥주 캔을 기울이던 삼식이가 골목 안에서 나타난 좀비를 가리켰다.

“와, 저거 봐. 쟤… 저거, 어디에서 저렇게 다친 걸까?”

“야, 다쳤으니까 좀비가 됐지. 물렸으니 변한 거잖아.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보안관은 귀찮아하며 상대해 주지 않으려 들었다. 어차피 뭔가 또 징그러운 걸 발견하고서 혼자만 보기 아까워 저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식이는 한 번 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게 아닌데… 페인트칠해 놓은 위로 살점이 다 날아갔어. 우와, 너덜너덜.”

“진짜?”

모두가 고개를 들어 건물 아래를 돌아본다. 삼식이의 말이 맞았다. 새로 등장한 녀석은 빨간색 페인트를 몸 전체에 뒤집어쓴 좀비였고, 녀석의 등짝에는 커다란 구멍이 두 개나 뚫려 있었다.

아주 거칠게 헤집어놓은 상처라서 살점이 너덜거리지만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나서 생긴 상처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뭐지? 좀비끼리는 안 싸우는 것 같던데…….”

“누군가 우리처럼 좀비들이랑 싸우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뭘로 어떻게 하면 저런 상처가 나? 그리고 왜 저기를 저렇게 해놨지? 어차피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안 죽는데 공연히 힘만 빼는 거잖아.”

그렇게 다들 한마디씩 의견을 떠드는 동안, 문제의 너덜너덜 좀비가 돌아섰다. 녀석의 앞쪽 복부에는 아주 작은 구멍 두 개가 뻥 뚫려 있을 뿐이다. 커다란 상처가 난 등 쪽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총인가 보네.”

규영이가 말했다. 총? 보안관과 유빈이 묻자, 규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왜,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 못 들어봤어요? 총알이 이렇게 빙글빙글 돌아서 날아가기 때문에 몸 안에 들어간 구멍보다 빠져나간 구멍이 몇 개나 크다고. 이렇게… 내장을 휘저으면서 팍 터뜨리고 나가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은 있는데, 실제로 본 건 영… 저기 큰길에 매달려 있는 자… 거시기 날아간 놈 상처는 그렇지 않던데? 그냥 뻥뻥 뚫려 있더라고. 그놈, 총 맞은 거라고 했었잖아.”

보안관의 질문에 규영은 잘난 척하며 대답해 준다.

“그거는 산탄총이니까 회전이 없어서 그렇죠. 이거랑은 총알 종류가 달라요.”

“씨발, 그러면 정말 총을 가진 놈들이 이 좀비들 다니는 길목 어딘가에 있기는 하단 말이잖아. 군인들일까, 아니면 그냥 어떤 새끼들이 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어휴, 그건 좀 좆같네. 어디에 있는 거지? 너무 가까우면 안 되는데.”

신입이 투덜거린다. 유빈이 말했다.

“그야 모르지. 열댓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 바퀴 도는 놈들이니까 진짜 멀리까지 돌아다니는 거야. 하지만 그 길목 어딘가에 누군가 있다는 건 분명하네. 우리가 식량을 어디 몰래 쟁여놔야 할 필요성도 더 높아진 거고.”

그렇게 해서 다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식량을 숨길 장소를 물색하고 운반하기 위해서는 저 바깥에 돌아다니는 열 몇 마리의 좀비들을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로 봐서는 놈들을 다 죽인다고 해도 내일이나 모레 다시 또 그만큼의 좀비들이 여기에 남겨질 것이다. 좀비들은 요소마다 몇 마리씩 꼭 포자를 뿌리고 가니까.

일이 귀찮아졌지만 두 가지의 소득은 있었다. 하나는 이 지역에서 더 이상 좀비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놈들을 다 죽일 수는 없으므로 이제 놈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또 하나는 이 좀비들의 동선 어딘가에 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만약 적이라면… 가뜩이나 편하지만은 않던 삶은 더 팍팍해질 것이다.

‘사는 게 내 뜻대로 만은 안 되는구나…….’

동네를 배회하는 좀비들을 보면서 유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유빈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삼식이가 미소를 지었다.

“뭘 그렇게 한숨까지 쉬어. 일단 천천히 생각해, 유빈아.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를 벌고 싶어서 계속 빡세게 좀비들이랑 싸우고 죽이고 그랬잖아. 이제 여기에 갇힌 지 겨우 하루라고. 아니지, 갇힌 게 아니야. 여기로 휴양 온 지 이제 하루 지난 거라고 하자. 그치, 신입? 와, 덥다.”

규영이를 의자에 앉혀둔 삼식이는 웃옷을 벗고 다시 맥주 풀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 좀 전까지 머리가 깨진다고 찡찡대던 신입도 그새 의자에 앉아 샴페인을 따고 있다.

“하긴 그러네요. 그럼 우리 오늘도 파티인 건가요?”

제니도 환하게 웃으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 한다. 하긴… 유빈은 자신들에게 허락된 것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좀비 세상에서 이 정도로 안정적인 삶이라는 건 꿈꾸기도 쉽지 않다.

“오빠! 방법 생각해 놔요. 물에서 기다릴게요.”

제니와 태권소녀가 유빈의 얼굴에 난 그물 자국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결국 맨 마지막에는 유빈과 보안관만 난간에 남았다.

“저 좀비들 안 죽이고 돌아다니려면… 가둬두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내일도 이것보다 수가 늘어나지 않으면 한 번 가둬놔 보자.”

유빈이 말했다. 보안관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두지? 저렇게 지랄 맞게 팔팔한 새끼들을?”

“미끼를 써야지, 뭐.”

“미끼라…….”

보안관과 유빈의 시선이 동시에 삼식이와 신입에게로 향한다. 마침 두 녀석 다 담배를 꺼내 물려고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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