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85화 (285/449)

1장 Big Picture (6)

‘아, 그래서였나…….’

문 대위는 큰 충격을 받고 지도를 다시 들여다봤다. 태양 그룹 본사는 용산역 부근의 삼각지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첫 쉘터인 잠실을 제외하면 나머지 후발 쉘터들은 전부 다 삼각지를 빙 두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우연일까… 문 대위는 오 중령에게 물었다.

“건대나 한양대, 상암 쉘터의 입지와 태양 그룹이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야 뭐 당연한 거지.”

오 중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태양 그룹이 정부 대책 회의 때 아예 처음부터 같이 들어갔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후보지를 몇 개 추천했다더군. 거기로 정해야 보급품을 납품하거나 할 때 동선이 합리적이라면서 말이야. 그런 거야 걔들이 전문가겠지. 물류도 다루고 있잖아.”

문 대위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황망함이 동시에 차올랐다. 지난 고민의 과정에서 그는 굳이 건대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에 소규모 쉘터들을 분산 배치한 것이 그저 국방부의 엉성한 행정 처리 때문에 일어난 일종의 방치였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유가 따로 있었다. 각 소규모 쉘터들은 모두 태양 그룹 본사로 좀비들이 모여들지 못하도록 막고 분산시키는 방파제였던 셈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입지를 승낙했기 때문에 애꿎은 어린 병사들이 쉘터를 방어하다 목숨을 잃었다. 처음부터 남쪽으로 생존자를 이동시켰다면 잃지 않았어도 될 아까운 목숨들을…….

‘대체 무슨 벌을 받고 싶어서 이런 짓을…….’

문 대위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분한 것과 별도로 이주 계획을 추진해야만 하는 간절함이 그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태양 그룹과의 딜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된 상태입니까, 대대장님?”

“음, 계속 대화 중인가 봐. 나도 내일 오전 회의에 들어가 봐야 좀 더 정확한 진전 사항들을 알겠지만, 그쪽에서 단번에 대답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 같아. 며칠 더 여유를 달라고 했다는 것도 같고. 하긴 큰 액수기도 하잖아? 그렇지? 걔들이 삼만 명 하루 부식비로 이만 원 씩만 요구해도 육억 원이야. 매일 먹는 걸로만 육억 원씩이 까진다고. 한 달이면 180억 .”

오 중령은 태양 그룹의 태도를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문 대위의 생각은 달랐다. 억이라는 숫자에 기가 죽을 수도 있지만, 사실 군의 입장에서 그 정도는 부담스러운 액수도 아니다. 그렇게 반년을 버틴다고 해도 전투기 한 대 가격에도 못 미친다.

태양 그룹이 시간을 끄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날짜를 보내겠다는 거다. 이 협상은 시간이 갈수록 이쪽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모양새로 되어 있다.

남은 식량이 줄어들수록 쉘터는 간절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점점 더 많은 요구 조건을 수용할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제 소견으로는 시간을 끄는 것이 그다지 유용한 전략이 아닐 것 같은 우려가 듭니다, 대대장님.”

문 대위의 말에 오 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여단장님 생각도 비슷한 것 같아. 일주일 내로 답을 안 주면 독자적인 생존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씀하셨다니까, 그쪽에서도 생각해 보고 답을 해주겠지. 하지만 말로는 일주일이라고 해봐야 막상 당일에 다시 연락해서 뭐 이런저런 조율이 들어가고 그러면 실제로 보급이 재개되는 건 3주나 4주 지나야 되지 않을까?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된다고 해도 말이야. 문제는 탄약인데, 그것도 태양 그룹 군수공장을 통해서만 지원 받아야 해. 그게 안 좋아. 걔들이 모든 종류의 탄약을 제조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제한적이거든.”

문 대위에게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이렇다 할 대안이 없었다면 자신의 탈출 계획에 대해 대대장도 더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그것이 여단장에게까지 보고될 가능성도 더 높았을 텐데, 지금은 일단 여단장이 직접 추진하는 사업이 가장 우선이 될 터였다.

사실 지금 문 대위는 태양 그룹과의 딜이 체결되는 것조차 그리 반갑지 않았다.

어차피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소모되는 것은 자신의 병사들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너무 늦기 전에 남쪽으로의 이동을 결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그러니 일단은 건대로 다시 돌아가서 답답함을 꾹 누르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직 두 달의 여유는 있으니까.

“그래도 말이야…….”

오 중령이 문 대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전 자네가 했던 이야기는 괜찮은 면이 있었어. 때로는 지혜로운 일보 후퇴가 더 효율적일 수 있지. 음, 피난 가는 것 같아서 이미지가 좀 흐려지는 게 흠이기는 한데… 일단 독자 생존이 가능할 거라는 게 제일 좋더라고. 누군가가 주는 것을 받아먹는다는 게 아무래도 항상 뒤가 불안한 거잖아. 좀비가 적은 곳으로 이동한다… 난 솔직히 그런 건 생각도 안 해봤었거든. 그래서 말인데… 자네, 여기 며칠 더 있어봐.”

“네? 어떤 이유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뜻밖의 제안에 놀란 문 대위가 묻자, 오 중령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은밀하게 대답했다.

“여단장님께서 불시에라도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태양 그룹 애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심기가 틀어진다거나 하는 경우에 말이야. 원래부터 좀 돌발적인 면이 있으신 분이니까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그럴 때에 내가 이 계획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그래.”

“아,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음, 하지만 내가 이 긴 이야기 다 기억하겠나? 그러니까 일단 내가 여단장님께 ‘아, 제가 계획을 하나 수립해 둔 게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린 다음에 자네를 보고자로 삼는 걸로 하지. 그때를 대비해서 자네는 언제라도 이 계획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쳐 둬. 알지? 여단장님께서 좋아하시는 규격. 궁서체로 20포인트, 그림 많이 넣고, 잘 만들어 보라고. 자네, 그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쓸 줄 아나? 그걸로 해야 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문 대위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계획을 보고할 수만 있다면 며칠 더 기다리는 것쯤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오 중령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댔다.

“나가서 복도 끝까지 쭉 걸어가면 사령부 행정실이거든. 거기 노트북 남는 것 있을 거야.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고 준비해 둬. 방도 하나 배정해 달라고 하고. 그러면 이런 거 하나 줄 거야.”

오 중령은 목에 걸고 있는 신분증을 들어 보였다. 사진과 계급, 이름이 적혀 있다.

“알겠습니다.”

문 대위가 경례를 하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오 중령이 부른다.

“아! 그래, 저기… 1207호로 달라고 해. 거기가 공실이 됐다. 저녁 때 내가 양주 한 병 가지고 가지.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멀리 가지 말고 항상 행선지 행정실에 밝히고 다니라고.”

문 대위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문을 닫았다. 왜 공실이 되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느 장교인지 최근에 전사한 것이다. 후우, 문 대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은 딱 대한민국 군의 스타일로 마무리되었다. 된 것도 없고, 안 된 것도 없다. 그저 초조하게 희망고문을 당하면서 매일 시간을 보내야 하게 생겼다.

명령을 받았으니 임의로 현 위치를 이탈해서도 안 된다. 최상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나마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

‘잘 부탁합니다.’

복도를 걷던 문 대위는 외부 창을 통해 보이는 한강 너머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이 원사에게 기원했다. 건대 쉘터를 비운 지 이제 겨우 반나절, 벌써부터 불안하다.

☆ ☆ ☆

코스트코 옥상의 새 하루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 시작됐다.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삼식이. 햇살이 따가워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기대 누워 있었다.

“음… 어후, 여기가 어디야?”

간밤 늦게까지 달렸던 터라 기억이 돌아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아, 그래. 목욕하고… 술 진창 마셨지… 음, 맞아.”

삼식이는 눈을 비비며 자동차 내부를 돌아보았다. 뒷자리에는 태권소녀가, 조수석에는 제니가 잠들어 있다.

이불 삼아 덮어준 비치 타월은 바닥에 떨어뜨려 버리고, 둘 다 자기 팔로 자기 몸을 꼭 감싸 안은 채 잠들어 있다. 아마 새벽에 추웠나 보다.

하긴 물놀이하던 차림 그대로니까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 내부는 이미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라 있다.

부우욱―

삼식이가 힘차게 모닝 방귀를 뀌자 태권소녀와 제니가 동시에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린다. 자동차 안에 냄새를 남겨두고 삼식이는 밖으로 나왔다.

“음… 다른 애들은?”

삼식이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일단 담배부터 한 대 피워 물고 승합차 쪽으로 걸어갔다.

“어이구…….”

보안관이 큰대자로 뻗어 승합차의 공간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고, 규영과 신입은 한쪽 구석으로 내몰려 잔뜩 움츠린 채 구걸하는 포즈로 잠들어 있다.

“유빈이가 없네?”

삼식이는 눈곱 때문에 달라붙은 눈을 깜빡거리면서 주위를 돌아봤다. 그물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유빈이 보인다.

“음, 끄으응, 콜록, 콜록, 응?”

삼식이의 담배 냄새를 맡은 유빈이 몇 번 기침을 하다가 눈을 떴다. 삼식이는 유빈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안 추웠어?”

“아… 일어났네… 몇 시야?”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유빈이 묻는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병들을 들어보던 삼식이가 반 이상 차 있는 샴페인으로 목을 축이면서 대답했다.

“한 시 넘었어.”

“진짜? 으아… 일어나자마자 담배 피우고 또 한잔하는 거야? 난 물 좀 줘.”

그물 침대에서 휘청거리며 일어난 유빈이 자신의 머리를 꾹꾹 눌러 댔다. 숙취인지, 감기가 온 건지 아주 머리가 묵직하다.

“풋, 너 얼굴! 하하하하.”

물병을 건네던 삼식이가 배를 쥐고 웃는다.

응? 유빈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

“얼굴이 왜?”

“하하하, 그물에 눌린 자국이 그대로 다 남았어. 이쪽 얼굴 전체가 다 그래. 아니네, 팔이랑 다리도 다 그러네. 아우, 배야. 하하하하! 유빈이, 너 햄 됐어.”

“진짜?”

유빈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얼굴을 문질러 봤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풀릴 자국이 아니었다.

“그러게 왜 이런 데서 자?”

“그러면 어떻게 해. 보안관은 팔 쫙 벌리고 통나무 같은 다리를 아무 데나 척척 얹지. 혜주, 쟤는 똑바로 앉히기만 하면 옆으로 눕지. 자리가 없었어. 새벽에 아무 데라도 가서 누운 게 여기야. 좀 지워졌어?”

“아니, 전혀. 아마 저녁때까지는 갈 것 같은데. 하하하.”

두 친구는 달궈진 바닥에 주저앉아서 물과 샴페인을 마시며 아직 남아 있던 잠을 떨어냈다.

어제 오후부터 저녁까지 그들의 행복한 놀이터였던 세 개의 풀은 때가 좀 떠다니긴 하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저기에다가 토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좀 꿈같네.”

유빈이 중얼거리자, 삼식이가 물었다.

“응? 뭐가?”

“아니, 우리 좀비 처음 보고 복지 센터로 도망쳤을 때랑 비교하니까 말이야… 그때는 이러다가 꼼짝없이 갇혀서 굶어 죽지 싶었었는데, 저 풀이랑 비싼 술병들 굴러다니는 거 보니까 좀 신기하달까.”

“응, 그렇지? 아참, 너 어제 새벽에 좀비들 지나가는 거 보고 잤어?”

삼식이의 질문에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무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좀만 누워 있다가 일어나야지 한 게 지금까지 퍼질러 자버렸네.”

“피곤할 만하지. 요새 계속 강행군이었잖아. 나도 어제는 술이 잘 안 받고 졸리더라.”

유빈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삼식이를 돌아봤다. 샴페인이랑 맥주를 그렇게 퍼 마시고 나서 추가로 양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운 주제에 술이 잘 안 받았다고? 무슨 알코올 분해 기계도 아니고.

“슬슬 애들 깨우자. 쟤들 화상 입겠다.”

달궈진 차체에서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보고 있던 유빈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아으, 머리야… 씨발, 샴페인 좆같네. 몸도 축축 늘어지고.”

주차장 램프를 통해 옥상에서 내려오는 동안 신입은 계속 숙취를 호소했다. 제니도 그 못지않게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목덜미와 어깨를 주무른다.

“몸살 난 것 같아요… 진짜 그 샴페인 상했었나 봐.”

“후후후, 술은 멀쩡했어. 문제는 너무 달린 너희들한테 있지. 모텔 편안한 침대에 가서 푹 자. 그러면 좀 나을 거야.”

규영이를 업고 걸어가며 삼식이가 말했다. 이 괴물 같은 놈은 자기 땟국물로 칵테일을 만든 맥주에, 샴페인에, 양주까지 다 섞어 마시고도 말짱하게 깼다. 뇌의 용량이 작으면 숙취의 크기도 줄어드나 보다.

“근데 우리 매번 이렇게 왔다 갔다 해야 되냐? 그냥 침대를 이쪽으로 옮겨다 놓으면 안 돼? 여기 먹을 것 다 있고, 수영장도 만들어 놨잖아.”

신입이 걷기도 귀찮다는 듯 두덜댄다. 유빈이 대답했다.

“무빙 워크랑 그 주변에 쌓여 있는 좀비 시체부터 치우고 이사를 오든 뭘 하든 해야 돼. 지금은 찜찜하고 냄새가 나서 안 되지. 지하에 있는 썩은 것들 다 안 치우면 병 걸릴 수도 있고.”

“풋! 오빠, 그런 얼굴로 엄청 진지하시네요. 후후후.”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제니는 또 유빈의 얼굴에 난 그물 자국을 보며 웃는다. 보안관도 한 수 거들었다.

“너 보니까 햄 먹고 싶어진다. 스팸 쌈장에 찍어서 즉석밥이랑 먹어야지.”

훗, 그래. 마음껏 놀려라. 유빈은 대꾸해 주지 않았다.

“근데… 우리 이런 차림으로 다녀도 되나?”

태권소녀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슬리퍼에 래시 가드, 비키니 하의 차림.

날씨에는 딱 맞는 복장이지만, 좀비 세상이라는 상황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괜찮아, 괜찮아. 이게 있으니까 안심해. 그리고 뭐, 사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잖아. 이 주변에 누가 있다고 그런 걱정을 해. 아무도 없다고.”

보안관이 해머를 부웅, 휘두르며 큰소리를 뻥뻥 내지른다. 그때, 주차장 셔터의 창살 사이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땡그렁― 땡그렁― 땡그렁― 땡그렁―

모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이건… ‘덫’이다. 깡통에 줄을 엮어 그들이 묶어놓은 것이다. 태권소녀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본데.”

일행은 재빨리 진입로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셔터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바깥쪽을 살폈다.

좀비들이다. 세 마리의 좀비가 발목에 덫을 여러 개 매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휘적휘적 걸어 다니고 있다.

“원래 다섯 마리 아니었냐? 세 마리뿐이네.”

일전에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던 좀비들이라고 생각한 유빈이 말했다. 보안관이 기지개를 쭉 켜며 배낭에서 장갑을 꺼내 꼈다.

“잘됐다, 이 새끼들. 계속 불안하게 숨어 다니더니. 근처에 왔을 때, 일단 저것들만이라도 잡아야지.”

“잠깐만 기다려. 나도 신발 갈아 신고 같이 가.”

태권소녀가 만류하려 든다. 보안관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많은 것도 아니고, 겨우 세 마리잖아. 후딱 잡고 끝내자. 너 옷 입고 그러는 동안에 또 도망가 버리면 찾아다니기 힘드니까, 너희는 여기 있어.”

그렇게 말한 보안관이 셔터를 들어 올리기 위해 허리를 굽혔을 때…….

끄롸아아아아!

난데없이 튀어나온 다른 두 마리의 좀비가 셔터 철창을 덮치며 포효한다.

“으앗! 씨발, 놀래라!”

보안관은 뒤로 훌쩍 뛰어 피하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이 개새끼들, 다 와 있었네. 이러면 다섯 마리 맞지?”

철렁거리며 철창을 흔드는 두 마리의 좀비를 보며 보안관이 물었다.

“야… 이거, 걔들 아니야.”

유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렸다.

“응? 그게 또 뭔 소리야? 아니라니? 여기 둘, 저기 셋. 다섯 마리 딱 떨어지잖아.”

“하…….”

유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색깔이 다르잖아. 이 두 마리는 까만색 페인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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