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84화 (284/449)

1장 Big Picture (5)

진우는 불길이 타닥거리는 나무 사이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남는 것밖에는 머릿속에 없었는데, 그 위기가 지나자마자 바로 미련이 떠오른다.

탄약, 실탄, 총… 내가 얼마나 바라던 것들이었는데… 그걸 얻었을 얼마나 기뻤었는데… 이제 아마 조금 뒤에는 그 잔해들만 찾게 될 것이다.

“조심해. 그쪽 아직 뜨거운가 보다.”

한층 더 울퉁불퉁해진 길을 걸으며 진우가 개에게 말했다. 전차의 궤도가 휩쓸고 간 자리는 깊게 파여 있고, 폭탄이 직격한 곳마다 커다란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웅덩이 주변의 풀은 새까맣게 타서 아직도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멀쩡한 곳이 없다.

마치 지옥의 입구에 그와 개만 단둘이 뚝 떨어져 내린 것 같은 풍경이다. 그나마 시체가 눈에 띄지 않아서 시각적인 폭력이 좀 덜할 뿐이다.

“한 대는 박살 났구나…….”

멀리 언덕 너머에 불타오르는 전차의 모습이 들어온다. 무한궤도는 끊어져 있고, 열린 해치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난다.

그렇게 강력하게만 보이던 녀석도 산 전체를 뒤덮었던 포화에는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몇 분 뒤, 진우는 아까 자신이 개의 줄을 끊었던 곳에 도달했다. 폭발로 인해 튄 흙 때문에 지형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그 지점을 찾을 수는 있었다.

“허…….”

진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방과 들것이… 모두 너무나 멀쩡하게 그 자리에 있다. 갈색 흙더미를 덮어쓰고는 있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그가 버리고 떠났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전차들이 그 난리를 치며 이동하고, 사방에 폭탄이 비처럼 쏟아졌는데도…….

너무 거짓말 같은 기적이라 진우는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가방의 흙을 털어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운명 같은 건가… 아니면 인생에 세 번 온다는 기회 중 하나를 쓴 걸까?”

지퍼를 열어본 진우는 반가운 마음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깨끗하게 보존될 수가 있었다니… 이 근방이 온통 다 홀랑 뒤집히고 불타 버렸는데.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한 번 전차가 휩쓸고 지나갔으니 언제 보병들이 그 뒤를 따라 진군해 올지 모른다.

진우는 서둘러 들것의 나일론 줄 한 겹을 풀어냈다. 아까 너무 급해 줄을 잘라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양쪽에서 짧게 묶어야 개에게 연결할 수 있다.

“이리 와. 이거 묶어야 돼.”

진우는 개에게 손짓을 했다. 잠깐이나마 개가 한숨을 쉰 것처럼 보였지만, 진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개의 가슴에 엮여 있는 매듭과 나일론 줄을 연결하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채 피가 아물지 않은 손가락으로 매듭을 묶고 있던 진우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너 지금 뭐하냐?’

응? 실탄 챙기잖아… 라고 대답하려던 진우는 갑자기 자신이 얼마나 바보처럼 굴고 있는지 깨닫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불과 몇 백 미터도 마음대로 이동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던 그 무거운 짐을, 다급한 순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짊어지려 하고 있다니. 대체 얼마나 멍청한 거냐…….

“그러네…….”

진우는 저격소총이 든 가방을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무서운 존재는 좀비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강력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지난 며칠 동안 그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1킬로미터 밖에서 몸을 꿰뚫는 소총, 기관총을 흩뿌리며 날아가는 헬리콥터, 그 헬리콥터를 박살 내는 대공 발칸, 그리고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전차에 산 전체를 뒤엎는 곡사포까지…….

실탄 만 발이 아니라 10만 발이 있어도 그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는 없다. 그런 것들은 처음부터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기 위해 만들어낸 무기들이다.

바로 조금 전에도 이 개인화기들을 가지고 숨어 있던 인간 덤불들이 모두 전차에 의해 처참하게 목숨을 잃는 것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내가 대체 왜 이렇게 욕심을 부리지…….”

진우는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저격소총을 꼭 쥐면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애초에 그가 이 총을 욕심냈던 것은 자신의 시야 밖에서 목숨을 위협하던 적 저격수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신이 가장 증오했던 그 저격수와 닮기 위해 이 저격소총의 사격술을 익히고 있다니……. 바보 같은 짓이다.

콰아앙―

산의 북서쪽에서 다시 폭발음이 들려온다.

타타타타타―

요란한 총성도 그 뒤를 따른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달아나려면 지금이 둘도 없는 기회다. 무거운 건 다 벗어 던지고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멀쩡히 남아 있잖아. 차라리 박살 나버렸다면 나도 미련을 가지지 않을 텐데…….”

머리를 감싸 쥔 채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다음에야 진우는 지난 며칠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건 애당초 그가 왜 이 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그래… 나는 서울로 가던 길이었어. 총알을 가지는 게 목적이 아니었지. 총알은 그냥 내가 서울까지 도달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했던 거잖아.”

신기한 무기들에 홀려 정작 가장 중요한 목표가 뒷전이 되어 있었다. 어금니를 꽉 문 진우는 저격소총의 레일에서 조준경만을 떼어냈다.

다 가지고 갈 수는 없다. K―2의 레일에 이놈만 부착해서 봐도 400미터 이상 떨어진 표적쯤은 우습게 명중시킬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가 이 무게 때문에 하루를 지체하면, 그가 기억하는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진다. 지금 그의 상황에서 이 가방들은 무장이 아니라 족쇄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족쇄.

차고 있던 MP5도 벗었다. 어차피 구경이 작은 총이라 탄약 호환도 안 되니까, 이놈만을 위한 예비탄창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 역시 사치다. 탄창은 5.56㎜에 맞춰서 한 종류만 가져가는 게 효율적이다.

“배낭이랑 가방 하나, 그렇게 딱 두 개에 채울 만큼만 짊어지자.”

진우는 배낭의 절반을 탄창으로 채우고, 전투식량과 망원경, 플래시, 조준경을 담았다.

MP5용 예비 탄창 따위는 모두 빼버렸다. 권총용 탄창 다섯 개를 더 집어넣은 진우는 배낭을 닫고 들어봤다. 그 정도의 무게 조정만으로도 한결 가뿐하다.

또 다른 가방 하나에는 총기 수입 도구와 탄창, 전투식량을 넣었다. 가방 두 개를 다 꽉 채우지 않았는데도 60개 이상의 탄창이 들어간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너는 어쩌지…….”

자신의 낡은 K―2, 총번 927307을 들고 잠시 망설이던 진우는 하부 총몸만 분리해서 가방 안에 넣었다. 총열은 이미 소모될 대로 소모되어 버렸지만, 그 외의 부품은 아직 건재하다.

사실 그런 이유보다도 더 큰 것은 함께한 시간과 기억이다. 이 총을 꼭 쥐고 넘겼던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생각하면 2킬로그램쯤의 불필요한 하중이 더해지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읏차!”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난 진우는 가방을 오른쪽으로 비껴 메고, 그 위에 다시 왼쪽으로 K―2의 멜빵을 비껴 멨다. 이렇게 하면 여차할 때 가방을 벗지 않고도 편하게 사격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무게를 덜어낸 만큼 몸은 가벼워져서, 뻥을 좀 보태면 날아다닐 수도 있을 태세다.

얼―

매듭을 풀어주자 개가 가볍게 짖는다. 진우가 혹시 자신을 버리겠다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진우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이 아무 죄도 없는 녀석에게까지 무거운 걸 지우고 거품을 물 만큼 힘든 이동을 시켰었다.

“응, 넌 짐 없어. 이제 그냥 가면 돼. 가자.”

진우는 개의 머리를 한 번 쓸어준 후,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가방과 진우를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해하던 개는 결국 뭉뚝한 꼬리를 달랑거리며 진우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험하던 산길도 짐을 벗어놓고 나니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40분 정도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간 뒤, 진우는 전차와 보급부대가 빠져나간 도로에 도착했다.

물론 그 가방들을 다 끌고 왔다면 아직 1/3도 채 지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다들 간 건가?”

진우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고개만 내밀어 도로의 상황을 살폈다. 무한궤도에 파여 나간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도로는 조용했다. 뭐, 처음부터 그렇게 붐빌 만한 길도 아니었지만.

“없는 것 같지? 네 생각은 어때?”

인적 없는 도로를 바라보던 진우가 개에게 물었다. 덤불들을 미리 감지했던 그 신통력을 생각하면 이놈에게 어느 정도 권위를 인정해줘도 될 것 같다.

개는 머리를 빳빳이 들고 킁킁거리다가 잡초 더미를 풀쩍 뛰어넘어 도로 위에 내려섰다.

서너 걸음을 사뿐사뿐 내딛던 개가 뒤쪽의 진우를 돌아보며 얼― 하고 낮게 짖는다. 갑시다, 라고 알려주는 것 같은 소리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녀석의 뒤를 따랐다. 그의 등 뒤, 산의 북서쪽에서는 아직도 요란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려온다.

죽고 죽이는 군인들을 뒤로하고 진우와 개는 탁 트인 길 위로 또 한 발을 내디뎠다.

☆ ☆ ☆

잠실 쉘터의 장교 숙소이자 사령부가 위치한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는 문 대위가 대기하고 있었다.

복도에 배치된 긴 의자에 앉아 있던 문 대위는 시계를 보았다. 기다리기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났다.

가벼운 한숨이 난다. 대대장의 얼굴을 보기까지도 이렇게 긴 기다림이 필요한데, 하물며 준장을 직접 알현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지 그것이 두렵다.

마음 같아서는 김 준장에게 직접 계획에 대해 보고를 하고 싶지만, 군에는 계급과 체계가 있다. 그렇게 몇 단계를 훅 뛰어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를 각별하게 여겨주는 것이 여단 사령부 작전 참모라고 해도 어차피 소령.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하기 쉽지 않은 계급이다.

그러니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워도 단계별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문 대위가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을 때, 앞쪽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몇 명의 병사들이 서류철을 들고 나간다. 그 뒤를 따라 나온 오 중령이 손짓을 한다.

“들어오게.”

경례를 올리려는 문 대위를 오 중령이 만류했다.

“그냥 됐어, 그런 거는. 아까도 인사했잖아.”

오 중령은 방 안으로 문 대위를 인도하고는 소파의 상석에 턱 걸터앉는다.

문 대위는 자신의 직속상관인 대대장 오 중령의 집무실을 둘러봤다. 그야말로 별게 없다. 전화를 받는 당번병조차도 자리에 없다.

“앉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아,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것 중에서 아무거나 마셔도 돼.”

오 중령은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두어 번 연기를 내뿜고 나서 오 중령이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지? 서류 업무가 뭐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어. 일은 늘었는데 애들이 모자라서 당번병까지 서류 들고 뛰어다녀. 그러니 어색하고 답답해. 대대장 되고 나서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뭘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여단장님 명령이니 거역할 수는 없지만… 아이구, 너무 힘들어. 내 손으로 커피 타고 무전 돌리고 서류 들춰보는 거.”

문 대위는 가벼운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오 중령이 물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어떻게 지냈어? 건대 셀터는 잘 돌아가나?”

“배려해 주신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문 대위의 대답을 들은 오 중령이 피식 웃었다.

“하긴 자네야 뭐, 워낙에 실력도 좋고 인망이 높으니까… 그래서 나도 별걱정 없이 거기를 자네한테 맡긴 거고. 후우~ 그래도 힘들지? 보급 끊긴 지 얼마나 됐나?”

“오늘도 도착하지 않으면 나흘째 지연되는 겁니다.”

“으음, 안 올 거야. 이제 안 온다고 보고 작전을 수립하면 편해. 그 새끼들 하여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지 오 중령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문 대위는 기회다 싶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의심이 더 굳어집니다. 이렇게 찾아뵙겠다는 부탁을 드린 것도 실은 그 문제 때문입니다.”

“설마, 당장 보급을 지원해 달라는 거면 그건 어려울 건데… 여기도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어서 말이지.”

오 중령은 대뜸 엄살부터 떨었다. 그러나 문 대위는 그 엄살보다 ‘당장’이라는 어휘에 관심이 생겼다.

당장은 어렵다?

그렇다면 그 뒤에는 무슨 수가 있다는 의미다.

“보급 요청은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이 발생하겠지만, 외부 물자 징발을 추진하면서 몇 주 정도는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래? 그건 다행이구만. 몇 주 정도 버티겠어?”

“5주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고, 6주 차는 힘겹게 넘길 것 같습니다. 그 뒤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문 대위는 이 원사의 계산보다 2주를 줄여서 보고했다. 어차피 그만큼의 식량은 그의 중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외부로 나가 획득해 온 것들이니 셈에 넣을 필요가 없다.

6주라… 오 중령은 수염을 긁적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어찌어찌 되겠는데? 잘 버티고 있으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한데 설마 우리 문 대위가 공연히 앓는 소리를 하러 일부러 이렇게 찾아왔을 리는 없고… 용건이 뭐였지? 내가 벌써 들었나?”

“아닙니다. 제가 아직 보고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 그래. 내가 요새 영 깜빡깜빡한다니까. 마흔다섯 고개 넘어가니까 그다음부터는 확 다르더라고. 이런데도 당번병 애를 빼버렸으니 내가 더 정신이 없지. 말해봐.”

오 중령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문 대위는 서류철을 열고 지도를 꺼내 오 중령이 보기 좋도록 돌려서 내밀었다.

“주제넘지만, 보급이 중단된 이후 제가 몇 가지 생각을 좀 했습니다. 주로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딴에는 꽤 괜찮은 계획이 떠오른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대대장님께서 한 번 지도를 해주시면 제가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것들을 깨닫고, 부족한 부분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허, 그 사람 참……. 아, 내가 이… 안경이 어디 갔는지…….”

오 중령은 문 대위의 겸양이 싫지 않다는 듯 웃으며 지도를 들고 팔을 멀리 뻗으며 눈을 찌푸렸다. 초점 조정을 마치고 잠시 더 지도를 훑어보던 오 중령이 물었다.

“용산이랑 여기랑 빨간 줄로 그어놨네? 자네가 한 건가?”

“그렇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야? 에, 또… 보니까 상암이랑도 이어졌고.”

“용산역까지 안전한 철책을 구축하고 그곳에서 선로를 통해 이동하면 어떨까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보급이 중단된 마당에 서울을 더 사수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기도 하고, 또 물리적으로도 여러 가지 난점이 있기 때문에 든 생각이었습니다.”

문 대위의 말을 들은 오 중령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울을 버린다고? 그럼 어디로 가겠다는 건가?”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있고, 인구가 적은 곳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최적지는 충남과 전북의 경계였습니다. 워낙에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었으니 이동하는 좀비들의 규모도 작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뒤로 문 대위는 이 대규모 이주 계획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오 중령은 다시 수염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좋은 이야기긴 해. 음… 내가 몇 가지 보완만 하면 훨씬 더 나아지겠지만… 그런데 말이야, 이건 아직 잠시 유보해 둬야 할 것 같아.”

테이블에 늘어둔 음료수 중 하나를 따서 목을 축인 오 중령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첫째, 지금 시국이 시국이라… 병력 이동을 할 때에는 신중해야 돼. 자네, 제주도 이야기 들었지? 높으신 분들 다 한꺼번에 천국 가셨어. 그 일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는지, 하여튼 연대장 이상 급들은 대부분 반쯤 돌았다고 보면 돼. 그런데 이런 때에 전차들을 용산역 부근으로 집결시킨다? 안 돼. 그러다가 큰 오해 생겨. 겁 많은 사람이 보면 그걸로 자기 친다고 생각하지, 누가 사람들 시골로 이동시킨다고 보겠나.”

“그렇습니까?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문 대위는 대답을 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신의 대대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도 잘 알고 있다.

오 중령이란 군인은 문 대위의 평가에 의하면 ‘신중하신 분’이고, 다른 이들의 평에 따르면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언제나 남들의 행동을 다 지켜보고 나서 그제야 갈 방향을 정한다. 오 중령은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다려 보라고 하는 이유는, 지금 연대 사령부가 태양 그룹이랑 딜에 들어가 있어. 국방부를 통한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보급품들 대부분이 거기에서 오는 거니까 말이야. 차라리 번거롭게 국방부를 통하지 말고 직접 납품해라, 뭐, 이런 거지.”

“태양 그룹에서 그 제안을 받겠습니까? 우리 연대가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씀입니다.”

문 대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 중령이 빙긋 웃으며 대답해 준다.

“아니, 사실 걔들도 다급하긴 마찬가지야, 순망치한이라고, 쉘터들 다 빠지면 그때는 좀비들한테 태양 그룹 본사가 에워싸이는 형국이 되니까 말이야. 방어선이 사라지는 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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