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83화 (283/449)

1장 Big Picture (4)

“일어나! 도망쳐야 돼!”

가방의 지퍼를 올린 진우는 개에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자신도 서둘러 두 개의 가방을 양쪽 어깨에 멨다.

달아나야 한다. 전차들이 그들이 위치한 곳까지 도달하기 전에, 전차가 오지 않을 만한 곳으로…….

진우는 주변을 둘러보고 좌측의 골짜기를 목표로 삼았다. 건너편의 골짜기와 적어도 20여 미터 이상 떨어진 깊은 협곡으로 분리되어 있다. 저기라면 일부러 돌아오지 않는 한, 전차가 닿지 않을 것이다.

골짜기까지의 거리는 대략 250미터 남짓. 위아래로 오르내려야 하므로 실제 거리는 그보다 좀 더 될 것으로 보인다.

서둘러야 한다. 진우는 가방의 무게를 못 이겨 휘청거리면서도 개를 돕기 위해 들것을 잡아 당겼다.

“끄으으!”

미친 사람처럼 용을 써가며 걷고, 또 개를 도와 들것을 끄는 진우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가방은 무겁고, 잡초들은 무성하다. 도무지 빨리 전진할 수가 없다.

키리릭― 키리리릭―

그러는 사이에도 전차들의 엔진 소리는 점점 커져 온다. 속도가 얼마나 되는 걸까… 진우는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잡아끌면서 계산을 해봤다.

평로가 아닌 야산을 가로지르는 것이니까 시속 20킬로미터? 아니면 15킬로미터?

막연히 생각했을 때는 느리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거리와 시간을 대입해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다.

망원경으로 확인한 거리가 1.3킬로미터 정도였으니 시속 15킬로미터면 5분 만에 도착한다. 그리고 일단 한 번 눈에 띄고 나면 달아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바로 앞의 언덕 능선에만 올라도 여기까지 훤하게 시야가 확보되는 상황. 그러면 쓸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든다.

진우는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시계와 전방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벌써 몇 십 초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개도 입에 거품을 물며 용을 쓴다. 지지직! 힘겹게 움직이던 들것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턱 멈춰 버린다. 손잡이가 덤불 사이에 걸렸다.

진우는 대검을 빼 들고 엉켜 있는 덤불을 쳐냈다. 왜 이렇게 질기고 또 복잡하게 휘감겨 있는지, 좀처럼 잘리지가 않는다.

끄응! 잡초를 뽑아내려고 이를 악물던 진우는 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하아, 하아…….”

날카로운 풀에 배인 손바닥에서는 피가 흐르고, 아직 아물지 않은, 손톱 없는 속살의 더께가 채 덮이기도 전에 또 뜯겨 나갔다.

진우의 얼굴은 조바심으로 일그러졌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된다… 두 다리의 힘이 풀려 뒹구는 동안에도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있다.

탄약들… 이 아까운 탄약들… 다 가져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움직이지 마…….”

마침내 결심을 한 진우는 대검을 들고 개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녀석의 가슴에 묶어뒀던 밧줄을 잘라내 버렸다.

순식간에 속박에서 풀려난 개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진우를 올려다본다. 진우는 숨을 헐떡거리며 자신의 가방 두 개 중에서도 하나를 벗어 던졌다.

“가자! 빨리!”

홀가분해진 진우와 개는 속도를 높여 좌측으로 달려갔다.

키리리릭― 키리릭―

와지끈, 우지직―

무한궤도가 돌며 자그마한 나무들을 넘어뜨리고 짓뭉개는 소리가 턱밑까지 가까워졌다.

진우는 필사적으로 골짜기를 향해 뛰었다. 비스듬히 둘러맨 탄약가방이 들썩거리면서 옆구리를 계속 때린다.

“엎드려! 엎드려!”

몇 개의 높고 낮은 구릉을 구르듯 내달린 진우는 잡초들 사이로 몸을 내던지며 개에게 손짓을 했다. 사삿, 개가 자세를 낮추고 진우의 곁으로 기어온다.

헥― 헥― 헥―

녀석도 어지간히 숨을 헐떡이고 있다. 둘은 나무와 풀들로 모습을 감춘 채 전방을 노려보고 기다렸다.

쿠르르르릉―

간발의 차였다. 30초도 지나지 않아 나무들을 밀어 넘어뜨리며 전차들이 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는 것만 총 여섯 대.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다.

그중 한 대가 진우가 숨어 있는 골짜기 쪽에서 접근하다가 길이 끊어진 것을 발견하고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키리리릭― 우우우웅―

요란한 엔진 소리, 엄청난 차체. 백 미터 이상이 떨어져 있는데도 그 위용에 기가 죽는다.

“움직이면 안 돼. 얌전히 있어.”

진우는 개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속삭였다. 물론 개는 그런 충고 이전부터도 아주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출렁거리면서도 꽤나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전차들은 조금 전 진우가 개의 매듭을 잘랐던 자리 부근을 지난다.

키 작은 나무들은 무한궤도 아래로 빨려 들어가 순식간에 짓뭉개져 버리고, 높다란 아름드리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나간다.

수십 톤에 달하는 K2 전차 여섯 대가 열을 지어 지나간 자리에는 언덕과 숲이 다져져서 꽤나 널찍한 길이 만들어졌다.

‘저 근처에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꼼짝없이 죽었겠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서 진우는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만약 그가 무기 가방에 대한 미련을 조금만 늦게 버렸어도 아마 그는 지금 탱크들이 지나친 바로 그 위치쯤에 숨어 있다가 봉변을 당했을 것이다. 탱크가 직접 깔아뭉개지 않았더라도 기총 사수들이 그를 내버려 뒀을 리가 없다.

쿠르르르르―

첫 여섯 대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2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두 대. 앞서 지난 전차들이 다져 놓은 길 위로 내달리는 두 대의 K2 전차는 거침이 없다.

진우는 멀어져 가는 전차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총알 가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목숨을 건지고 위기를 잘 넘어섰다.

“어… 저놈들, 저거 왜 저러지?”

고개를 돌린 채 전차들의 뒷모습을 쫓던 진우의 입에서 불안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두어 개의 언덕을 넘어가 능선 부근에 오른 전차들이 제자리 회전을 하거나, 횡으로 이동을 하면서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근처의 나무들은 다 꺾이고 쓰러진다. 여덟 대나 되는 커다란 전차들이 그 짓을 하고 있으니, 주변은 순식간에 평평한 개활지가 되어버렸다.

위이이잉―

벌려선 전차들의 포탑이 일제히 북쪽을 향한다.

“설마… 여기서?”

진우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긴… 저 지점쯤이면 북쪽 산의 중턱을 때리기에 딱 좋은 위치이긴 하다.

진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동안, 전차들은 첫 번째 발을 일제히 발사했다.

콰아앙!

쓔우우웅―

120㎜ 주포가 불을 뿜자 잠시 후 음속을 돌파한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쿠쿵―

북쪽 산에 명중한 포탄의 굉음이 이쪽으로 전해지기도 전에 K2 전차들은 다시 두 번째 발을 쏘아 올렸다.

콰아앙― 쓔우우우―

그리고 전차의 포탑에서는 한 대당 다섯 개씩의 작은 알들이 위쪽으로 일제히 튀어 올라 분산된다. 그 알들은 이내 폭발하며 커다란 녹색 연막을 만들어 주변을 뿌옇게 어지럽혔다.

위장 연막 뒤에 숨은 전차는 조금 뒤로 물러나 위치를 바꾼 다음, 재차 사격을 가했다.

콰아앙―

같은 동작을 두어 번 반복하고 나니 사방은 다 녹색의 연막으로 뒤덮였고, 물러난 전차들은 진우로부터 100여 미터 떨어진 선까지 근접해 왔다. 그리고 진우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쓔우우우― 콰쾅!

북쪽 산의 병력들도 얌전히 죽여주기만을 기다릴 리가 없다. 그쪽에서도 곡사포인지, 자주포인지 모를 포탄들을 사정없이 쏘아댔다.

콰아앙―

대구경의 포탄들이 떨어져 내린 산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고, 튀어 오른 돌가루와 흙더미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이 포격에 비하면 예전에 수류탄이 터졌을 때 느꼈던 충격은, 애교 섞인 장난 수준이다.

키리리리릭―

전차들은 바쁘게 움직여 포격을 회피하며 포탑을 돌려 응사했다.

콰콰아아앙―

어지럽게 쏟아지는 포탄의 비를 피하기 위해 진우는 개를 끌고 일어났다. 얌전히 모습을 숨기고 있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언제 머리 위로 155㎜ 곡사포가 떨어져 내릴지 모른다.

“따라와!”

진우는 개와 함께 달렸다. 모습을 숨기는 것보다 화망의 범위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지금 전차의 승무원들은 대각선 뒤쪽의 그를 보지 않는다.

둘은 가능한 한 전차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숲 속을 내달렸다.

콰앙―

산의 아래쪽에서 울려오는 커다란 포격 소리! 진우는 본능적으로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기관총의 사격.

타타― 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

‘뭐지? 무슨 소리지?’

풀숲에 쓰러진 채 진우는 공포에 얼어붙은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예상치 못했던 총성이 울리자 그게 또 사람을 당황시킨다.

그사이에도 여전히 포격은 산을 뒤흔들며 쏟아져 내리고 사방으로 파편을 튕긴다.

화악― 근처에서 터진 포탄의 열기에 진우는 낮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 얼― 얼― 개가 겁을 먹고 진우의 주변을 돌며 냄새를 맡는다. 아마도 그가 피격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일어날게…….”

전투 조끼의 어깨를 물고 잡아끌려는 개를 달래며 진우는 다시 일어났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포격의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그 덤불들, 어제부터 자리를 잡고 길목을 털던 그 저격수들을 전차가 처단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아홉 번째 전차가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최대한 달아나서 모습을 숨겨야 한다.

진우와 개는 계속 달렸다. 이제 주변은 더 이상 위장 연막탄을 터뜨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짙은 흙먼지와 불타오른 나무들의 연기로 뒤덮여 버렸다.

쓔우우웅― 쓔우우우웅―

그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점을 향해 북쪽의 병력들은 또 쉴 새 없이 포탄을 쏘아 올린다. 한 번만 걸려라 하는 식의 무차별적인 지향 사격인 셈이다.

반면, 전차들은 그 와중에도 뭔가가 보이는지 포탑을 돌려가며 조준 사격을 때려 댔다.

양쪽 산은 2.5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 그 먼 곳에 있는 무언가를 노리고 서로 쏘아대고 있는 것이다.

“하아… 하아…….”

이제 더 이상은 뛸 수 없을 만큼 지쳤을 때, 진우는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 때문에 일어나기도 버겁다.

몇 개의 언덕을 구르듯이 내달렸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여기서는 비탈에 가려져 전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얼― 얼―

개가 진우의 어깨에서 가방 끈을 벗겨내 자신이 물고 끈다. 진우는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쓸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개와 함께 가방을 끌고 비탈 아래 나무 숲속까지 겨우 전진했다.

“하아… 이제 여기에 숨자. 하아… 우리 멀리 온 거 맞겠지?”

나무에 등을 기대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지축을 흔드는 충격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직접적인 폭발이 보이지 않는다. 한 번씩 땅이 흔들리고 나무가 진동할 때마다 진우의 심장은 멈칫멈칫 한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켁! 쿨럭!”

숨이 턱 막히며 목이 뜨거워져 온다. 수분이… 물을 너무 마시지 못했다.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수통을 열고 두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개를 돌아보았다.

개는 얌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녀석의 맑은 눈동자에는 보챈다거나 의심한다는 마음 자체가 없어 보인다.

“잠깐만.”

진우는 하이바를 벗고 고정 끈 사이에 끼워뒀던 핑크 펀치의 사진을 뺀 후, 거기에 남은 물을 거의 다 부었다. 그런 후에 개에게 내밀었다.

찹찹찹, 개 역시 어지간히 목이 말랐었는지, 엄청난 속도로 혀를 움직이며 물을 먹는다. 진우는 한 모금도 안 되는 나머지 물을 입안에 담고 음미하며 아주 천천히 조금씩 삼켰다.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 야.”

물이 사라지고 개의 침만 남은 하이바를 닦아 다시 핑크 펀치의 사진을 끼우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 사진을 바라본다. 녀석을 보고 웃으며 진우가 물었다.

“예쁘지? 얘가 테라고, 얘가 제니야.”

개는 그저 물끄러미 지켜만 보고 있다. 하이바의 냄새를 한 번 킁킁, 맡아본 후 머리에 쓰고 턱 끈을 조인 진우가 말해줬다.

“내 애인들이야. 둘 다 나만 좋아해…는 뻥이고, 그냥 예전에는 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도 존재했었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서 가지고 다니는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꿈이었던 것 같지만.”

쿠쿵― 콰아아앙―

굉음이 울릴 때마다 나무가 흔들리고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렸다. 진우는 등에 기댄 나무의 진동으로 폭발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달아날 기운도 없고, 달아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일단 포격이 시작되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몇 십 킬로미터까지도 닿을 수 있다.

현대 화력전 앞에서 그의 신체 능력 같은 것은 개미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여기가 놈들의 목표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진우의 손이 떨리는 것을 눈치챈 개가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기댄다. 진우는 불안을 달래듯 녀석의 목덜미를 쓸고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웃던 시절로…….

“응?”

먼 산을 보며 진동과 소음을 참아내고 있던 진우는 갑자기 확 온몸을 뒤덮는 오한에 고개를 돌렸다. 어제 덤불들이 트럭을 불태울 때부터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요소, 좀비들이다.

십여 마리의 좀비들이 천천히 비탈길을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거리는 50여 미터.

“하아… 너희들도 참 어지간하다. 대체 어떻게 알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해도 좀비들에게 뒷덜미를 물려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진우는 K―2의 모드를 단발로 놓고 가늠자 안에 좀비의 머리가 들어오도록 조준했다. 어차피 이 정도의 총소리쯤은 완전히 묻힐 만큼 사방이 시끄럽다.

콰아아앙―

새로운 폭발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진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좀비의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뒤통수가 확 터져 나간다.

진우는 곧바로 총구를 돌려 두 번째 놈의 미간을 겨냥했다.

타아앙―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타아앙― 타앙―

진우가 침착하게 열두 마리의 좀비를 모두 처리하는 동안, 개는 충성스러운 얼굴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더 없나?”

불안한 눈초리로 주변을 확인한 진우가 개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아주 영리한 척 진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야…….”

진우가 녀석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잘난 척할 일이 아니잖아. 저기 좀비들 오고 있었는데, 왜 안 짖어?”

얼― 개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진우는 좀비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저기, 좀비들 있었잖아. 너 냄새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놈이 왜 그건 몰라? 이 악취 모르겠어? 인마, 썩은 내가 화약 냄새를 뚫고 들어오잖아.”

콰아아앙―

근거리에서 터진 폭탄 소리에 진우는 다시 자세를 낮추고 앉았다. 여건상 개 교육은 조금 이따가 시켜야 할 것 같다. 물론 둘 다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게 괴롭고 두려운 시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콰아아아앙―

커다란 폭음에 고막이 울린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폭발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끝난 건가… 진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 300을 세었다. 전차의 엔진 소리를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그의 청력으로는 무리였다.

귀에서는 계속해서 폭발의 여파 같은 울림이 윙윙거리고 있다. 실제의 소리와 울림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진우는 한 번 더 300을 헤아렸다.

“…298, 299, 300!”

고개를 끄덕인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탈을 기어 올라갔다. 개도 그의 뒤를 따른다.

산 전체는 화약의 연기와 불타오른 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 그리고 아직도 다 걷히지 않은 위장 연막탄의 녹색 안개로 뒤덮여 있다. 전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 가방들… 다 작살났겠네…….”

엉망으로 파헤쳐지고 부서져 잿더미가 된 숲을 바라보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살아남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그것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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