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280화 (280/449)

1장 Big Picture (1)

이 원사는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대체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겁니까, 중대장님? 누구 편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안다고 해도 그가 해결할 수 없는, 저 하늘 높은 곳의 문제지만, 최소한 자신이 왜 굶어 죽어야 하는지는 아는 채로 죽고 싶다.

“저 같은 일개 대위가 뭘 알겠습니까마는…….”

문 대위는 막 끓어오른 물을 부어 커피를 타 주며 말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들은 아주 흉흉합니다.”

이 원사는 커피 잔을 받아 들고 아직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은 그 까만 액체를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막 자대 배치를 받은 이병들에게 고참이 상투적으로 던지던 농담이 떠오른다.

― 눈을 감아라, 뭐가 보이나?

―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캄캄합니다!

― 그것이 네 군 생활이다.

…그런데 그 농담이 이제 자신의 현실이 되었다. 캄캄하다. 보급이 끊긴다. 길게 버텨야 두어 달.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분명 탄약이 더 먼저 바닥날 것이다.

“여단장님께서 꼭 그렇게 세게 나가셨어야 했을까요? 그냥 대충 얼버무리실 수도 있었을 텐데.”

“최소 인원만 남기고 병력을 차출하겠다고 왔던 거랍니다. 선택의 여지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래도 저래도 민간인들은 다 죽을 상황에 놓였던 거다. 김 준장은 민간인들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고.

“…그러면 혹시 잠실이나 상암 쉘터에서 이쪽으로 보급 지원을 해줄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 원사의 질문에 문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거기는 또 거기대로 난감할 것이다. 수용자의 수도 훨씬 많고, 병력도 수천에 달하니까. 이 원사도 애초에 큰 기대 없이 던져 본 이야기였다.

수용 인원이 오백일 때는 슈퍼마켓 하나만 털어도 며칠 넉넉하지만, 만 명일 때는 그 정도 가지고는 표도 안 난다.

“그럼 중대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음…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처음엔 정말로 난감하더군요.”

“난감한 게 당연하지요. 노골적으로 다 죽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잖습니까?”

“그런데 어젯밤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대체 여기를 왜 지키고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문 대위는 커피 잔을 들고 다가와 앉는다. 이 원사는 이 위중한 때 별걸 다 묻는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야, 중대장님께서 여기에 쉘터를 구축하고 민간인 수용자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으셨으니까 그렇죠.”

“네, 이 원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여기냐는 겁니다. 왜 규모 넷, 규모 오처럼 대규모 좀비들이 가득한 이 서울 시내에서 소모적인 농성을 하고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문 대위는 언제나처럼 힘 있는 눈빛으로 이 원사를 바라본다. 이 원사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문 대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전쟁이라면 어떤 지점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적에게 한 점만 뚫려도 전선 자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좀비들을 더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우리 후방의 사람들이 퇴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무 목적도 없이 이 무의미한 지점을 지키고 있을 뿐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 목적이 없다고까지 하시는 건… 사람들을 지키고 계시잖습니까? 여기 있는 민간인 수용자들은 중대장님만 믿고 목숨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겁니다. 왜 민간인들을 여기에서 지켜야 하지?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도 지킬 수 있는데…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겁니다. 만약 제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가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이런 서울 도심보다 전술적으로 유리한 지역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 원사는 문 대위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서울에서 발생한 난민들이니까 서울에서 수용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말입니다.”

“잠실 쉘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 원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상암도 그렇고요. 초기에 만들어진 쉘터들은 부근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그 자리에 세워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여기는 아닙니다. 돌이켜 보면 건대나 한양대에 소규모 쉘터를 건설하라는 명령은, 포화 상태의 잠실 수용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 중에 최악이었던 겁니다. 국방부에서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런 곳을 지정해 줬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장기적인 계획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무슨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이 원사가 묻자, 문 대위는 커피 잔을 옆으로 치우고 지도를 테이블 위에 폈다. 한강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문 대위가 말했다.

“당연히 강을 이용해서 수용자들을 남쪽 지방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남쪽 해안 지역에서는 아직도 공장이 가동될 정도로 안정적이라고 하더군요. 여기까지 길을 뚫고 철책을 쌓는 것보다 그편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겁니다.”

에… 그렇군. 이 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에도 그게 더 나았을 것 같다. 늘 보급품을 싣고 오는 배가 돌아가는 길에 사람을 태우고 가면 되는 거였다.

꾸준히 그렇게 했으면 지금쯤 잠실도, 그리고 여기도 훨씬 홀가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해봐야 뭐하겠나.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이 원사는 조심스레 물었다.

“중대장님, 말씀하시는 데 자꾸 딴죽만 거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이제 이 방법은 못 씁니다. 보급품이 안 오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국방부에서 우리를 포기했단 의미죠. 저나 이 원사님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민간인들을 전부 다. 그리고 잠실의 수만 명까지도… 여기를 지키기 위해 보급을 유지하는 게 전술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거겠죠. 그러니까 우리도 생존 모색을 위해 자의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위수 지역이란 게 해제되어 버렸으니까요.”

이 원사는 문 대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보급이 끊겼는데도 이 사람은 어째 이리 당당한 거지? 왜 자신을 버린 위쪽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지?

암만 도덕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이어도 그렇지, 현실 감각이 부족한 건가? 이 원사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여깁니다.”

문 대위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쯤 되는 곳이었다. 이 원사는 눈을 껌뻑였다. 점점…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왜 하필 거기를…….”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구밀도입니다. 이쪽이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었을 겁니다. 사람이 없으면 좀비도 없겠죠. 그리고 두 번째는 땅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식량을 보급 받지 못합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밭이라도 일궈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도시에서는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없으니까요.”

“경작… 그렇게까지 멀리 내다보시는 겁니까? 몇 달이나 그런 게 아니라?”

이 원사의 말에 문 대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들 오래 살아야죠. 그래야 좋은 날 오는 것도 볼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야 다 도시 사람들인데요. 만날 펜대 굴리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잘하겠습니까? 저 같은 촌놈도 아니고.”

“그거야 이 원사님이 가르쳐 주시면 되죠.”

하아~ 전부 산골로 옮겨가서 농사를 짓는다고? 이 원사는 조금 전 문 대위가 짚었던 지점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하긴 거기야 이렇다 할 시설도 없고, 좀비 떼도 그리 크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정도의 화력으로도 어찌어찌 버티는 게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농사라… 감자도 심고, 내년 봄에는 모내기도 하고, 상추, 고추 심고… 이 원사는 잠시 행복한 꿈에 잠겼다.

애기 같은 병사들이랑 같이 모를 심고 있으면, 여자들이 찐 감자를 내온다. 그걸 나눠 먹고 또 힘을 낸다. 쑥국, 천렵…….

어린 시절이 떠오른 이 원사의 눈앞이 흐려진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절로 돌아간다는 건 꿈이다. 중대장이 말한 이 원대한 계획에는 너무도 큰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눈가를 훔친 이 원사가 그 허점을 지적했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아주 마음이 따뜻해졌었습니다. 그런데요, 중대장님. 대체 거기까지 어떻게 가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당장 5킬로미터 떨어진 잠실까지 이동하는 것도 헬기를 띄워서 좀비들 눈치를 보고, 장갑차를 타고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해도 가끔 사고가 나고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과 병사들을 다 끌고 저 먼 데까지 가신다고요? 300킬로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는 곳인데요.”

이 원사의 지적을 듣고도 문 대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선을 따라 움직이며 말했다.

“우리 중대 단독으로서는 물론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잠실과 상암의 여단 병력이 합세한다면, 그때는 아주 실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기를 보세요.”

문 대위가 가리킨 것은 용산역이었다.

“여기에서부터 상암까지의 거리와, 잠실까지의 거리가 거의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서 양쪽 모두에서 지원이 가능하다는 의미죠. 두 쉘터의 병력 규모에서 대대급 정도를 차출한다고 하면 보름이 걸리지 않아서 기차 선로까지 길을 틀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만 하면 그 뒤에는 고생스럽기는 해도 위험하지 않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전차들이 선봉에 서서 길을 트고, 병사들이 민간인을 호위한 채로 이동하면 됩니다. 하루에 30킬로미터씩만 걸으면 열흘 뒤에는 우리가 목적했던 곳에 닿는 겁니다. 그보다 더 전에 정착할 만한 장소를 찾을 수도 있고요.”

이 원사는 홀린 사람처럼 문 대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확실히 고속도로보다는 안전한 것처럼 들린다. 거기까지 길을 낼 수만 있다면… 그 뒤로는 문제도 안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도시의 건물 내부에서 좀비들에 에워싸인 채 굶어 죽게 될 거라고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하면 살 수 있다니.

300킬로가 아니라 3,000킬로라도 걸어야 할 판이다. 출발한 사람 중에서 반만 무사히 도착해도 남는 도박이다.

“그런데 중대장님, 왜 서쪽입니까? 강원도도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텐데요. 경상도 지역도 있고요.”

“강원도는 지금… 민간인들을 데려갈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경상도 쪽 철도는 해안과 아주 멉니다.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더 길고요.”

이 원사는 납득했다. 이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사람도 아니고, 거짓말은 더더욱 못할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윗분들에게 제안해 보셨습니까?”

이 원사가 물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채택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일은 군뿐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비일비재했다.

“참모께 말씀드려 봤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이 계셔서요.”

“그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유선으로 해서 될 이야기가 아니니, 나중에 정식으로 보고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 좀 낫지 않겠냐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이 원사님께 드린 겁니다. 아무래도 제가 잠실로 찾아뵙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준비를 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 원사는 문 대위의 얼굴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니까, 남들도 자신처럼 입 밖으로 흘리는 말과 생각이 일치할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참모가 한 말은 그냥 듣기 좋은 거절이었을 뿐이다. 나중에 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이 원사의 마음을 안다는 듯 문 대위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려울 것 압니다. 무슨 걱정 하시는지도 잘 알고요. 하지만 이대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배를 곯고 있느니, 시도라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쪽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니까요.”

“뭐… 중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어쨌든 말은 한 번 꺼내봐야 죽을 때 후회라도 없겠죠. 그러면… 잠시 자리를 비우실 수밖에 없군요.”

“네. 그래서 이 원사님께 이렇게 다 말씀을 드린 겁니다. 믿을 수 있는 분이라서. 우리 소위들, 이제 임관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친구들이라 많이 힘들어할 겁니다. 제가 여단 사령부에 다녀오는 동안 잘 좀 도와주십쇼. 그 친구들에게는 쉘터를 다시 합치기 위해 사령부에서 호출했다고 해두겠습니다.”

문 대위는 진지한 얼굴로 부탁을 했다. 이 원사는 허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아이구,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야죠. 제 목숨도 걸려 있는데. 그런데 잠실까지 어떻게 이동하시려고요? 그리고 며칠이나 가 계셔야 합니까?”

“전차를 쓰려고 합니다. 저를 내려놓고 전차는 다시 돌려보낼 테니까 그건 크게 우려하지 않으셔도 될 텐데, 돌아오는 날짜요… 그건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제일 좋은 건 물론 첫날 면담 기회를 갖는 건데, 워낙에 바쁘신 분이니까 그런 행운이 따라줄지… 그래서 좀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문 대위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 원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문 대위님이 가만히 계셨다면 두 달 뒤에 우리 모두 다 백 퍼센트 죽었을 겁니다. 이 이상 책임을 다하실 수는 없어요. 잘 말씀하시고 돌아오십쇼. 여기는 별일 없을 겁니다.”

☆ ☆ ☆

다음 날 아침, 잠실 쉘터 상공에는 두 번째 신호를 매단 드론이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첫 번째 드론을 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하늘로 든 채 드론 뒤에 달린 문자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② 3RG, OL, G2U

이번에도 패턴은 같았다. 무슨 의미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동일했다. 사람들은 대체 저 약자들이 무슨 암호일지에 대해 수군거렸고, 저런 걸 띄우는 주체가 누구일까에 대해서도 열심히 의견을 주고받았다.

워낙 새로운 구경거리나 낙이 없는 상황이어서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지적 자극을 주는 요소였다.

“저 사람들, 무슨 말들을 하고 있나, 테라 양. 응? 알려줘.”

드론 덕에 잠시 산책을 멈추게 된 젠킨스가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테라에게 물었다.

“그냥 예상하시는 대로예요. 저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그걸 제일 궁금해하는 중이에요.”

“큭큭큭, 저급한 인간들이 머리를 막 쥐어짜 내며 고생들 하고 있겠군. 큭크큭, 하지만 안 돼. 절대로 모를 거라고. 애초부터 풀라고 낸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젠킨스는 오만한 태도로 킬킬거린다. 낮은 목소리로 테라가 경고했다.

“제가 말씀드린 적 있죠, 젠킨스 씨.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저 귀찮아서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 척하는 것뿐이라고요. 하지만 만약에 그게 경멸이나 모욕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때는 아마 그냥 지나쳐 주지 않을 거예요. 젠킨스 씨, 부디 고향에 있을 때와 똑같은 매너로 행동하세요. 당신을 위해서 하는 충고예요.”

“아니, 머리가 나쁘다는 게 모욕이라고? 그건 그냥 상태에 관한 이야기잖아. 저 사람은 말랐군, 저 사람은 뚱뚱하군, 음… 저 사람은 머리가 나쁘군. 이런 거란 말이야……. 오, 테라 양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알겠어. 귀하를 위해서라면 말조심도 할 수 있지. 비록 그게 필요 이상이라고 해도 말이야.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산책 친구니까.”

뻔뻔한 소리를 지껄이던 젠킨스가 테라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문다. 테라는 젠킨스의 가슴에 비수를 한 번 더 꽂아주었다.

“게다가 젠킨스 씨의 지금 반응을 보니까 저 암호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건가 보네요. 부메랑이라는 게 또 먼 곳에 설치되었나요?”

끄응~ 젠킨스가 얼굴의 땀을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런 상황이 맞아. 하지만 뛰어난 알고리즘으로 위치를 선정하고 있으니까 점점 오차가 줄어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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