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회전 단두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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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회전 단두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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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회전 단두대 (2)
2022.05.31.
“그런데 말로만 들어서는 정확히 어떤 구조인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머리가 나쁜 건가? 너희는 상상이 딱 되냐? 잘 알고 무슨 1안이니, 2안이니 하고 있었던 거야?”
보안관이 물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삼식이가 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못 나오게 하고 목을 자른다는 거잖아, 회전톱으로. 위이잉― 아으, 끔찍하다.”
“아이…… 야, 그러니까 어떤 구조로 그렇게 되냐고 묻는 거 아냐.”
유빈이 좀비 이동 시간표용 유성펜을 가져와서 쪼그려 앉았다.
“아, 그거…… 내가 대충 설계도 그려 놓은 게 있기는 한데, 내 방에 놔두고 왔거든. 일단 여기다 대충이라도 그려볼게.”
유빈은 옥상 바닥에 비뚤비뚤한 선을 몇 개 그렸다. 그리고 각 부위 옆에 숫자를 기입했다.
모두 조용히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보안관이 제일 처음 질문을 던졌다.
“이게 어느 쪽이야? 코스트코 문이 어디에 있는 건데, 지금?”
“아, 그러네. 그걸 안 써놨네. 여기 뒤쪽이지. 이 그림에서 앞쪽이 우리 있는 방향이고, 코스트코 문 앞에 셔터를 먼저 붙여 놓을 거야. 좀비들이 위쪽으로는 넘어오지 못하고 아래쪽으로만 기어 나오도록.”
유빈은 다시 펜 뚜껑을 열어 화살표를 쓰고 메모도 추가했다. 그러고는 가운데의 둥근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12인치 회전톱이고, 여기에 손잡이를 달아서 양쪽으로 밀고 당기고 하는 거야.”
“으음, 콘크리트 절단하는, 그런 거 말이지? 위에 고정하는 틀을 만들어서 끼우고 아래쪽에 바퀴를 하나 더 달면 되려나? 바퀴가 꽤 커야겠네. 흔들거리다가 빠지면 안 되니까.”
보안관이 턱을 쓸면서 중얼거렸다. 유빈도 동의했다.
“응. 그렇기도 하고, 아예 튀어 오르지 못하도록 위쪽으로 틀을 만들어서 눌러 놓으려고 해. 그러면 좀 더 안정적이겠지. 손잡이는 틀에다 연결해 둘 거고.”
태권소녀는 좀비들이 회전 단두대 자체를 엎을까 봐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이게 전체적으로 고정이 될까? 이 자체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좀비들 미는 힘이 장난 아니던데. 여러 놈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통째로 밀고 나올 거야. 아, 기어 나오는 거니까 그만큼 걱정하지 않아도 되려나?”
“그거는 1번을, 그 기둥으로 쓰는 섀시 두 개 있잖아, 그걸 코스트코 문틀에다가 나사못으로 박아서 고정을 시키면 돼. 다 만들어 놓으면 이거 무게만 해도 물론 상당하기는 할 거야. 섀시에, 파이프에, 전동 기계에 다 더하면 보안관도 혼자서 못 들지 싶어.”
유빈은 그림의 숫자를 짚어가며 설명을 하고, 친구들의 궁금증은 계속 이어진다. 신입도 문제를 제기했다.
“야! 전에 내가 도로 위에 지나가는 좀비 새끼들 다 톱으로 자르면 될 것 같다니까, 네가 안 된다고 했잖아! 뭐, 날이 무뎌지고 어쩌고 갖은 핑계를 다 갖다 붙이더니, 이건 왜 된다는 거야?”
“그건 천 마리가 넘었잖아. 이번에 죽여야 하는 건 대충 스물 몇 마리뿐이야. 그리고 회전톱의 날은 그냥 톱하고도 완전히 다른 물건이고.”
“그리고 전에 내가 무기로 쓴다고 전기톱 달라니까 위험해서 안 된다며! 잘못 들어가면 팍, 튄다며!”
“이것도 들고 설치면 위험하지. 그래서 고정시키려는 거잖아.”
열심히 설계도를 바라보고 있던 제니가 그림의 아랫부분을 짚으며 물었다.
“여기로 좀비들이 기어온다는 거잖아요, 오빠. 딱 한 마리가 지나올 수 있는 높이로 맞춰서.”
응, 맞아.
유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는 질문을 이었다.
“그러면 맨 처음 들어온 놈들을 다 죽이고 나서 어떻게 해요? 시체에 막혀서 뒤의 좀비들이 못 들어올 것 같은데요? 시체를 옆으로 빼내요?”
“아니야. 그러면 시체 빼는 그 공간으로 다른 놈들이 기어 나오려고 할 거고, 금방 엉망이 될 거야. 시체를 일일이 치워가면서 하면 시간도 꽤 걸릴 거고. 시체는 일단 그냥 둬. 한 번 싹 다 잡고 나면 섀시 기둥에 고정시켜 뒀던 회전톱이랑 파이프 틀을 한 칸 올려서 새로운 틈을 만들 거야. 여기 1번 기둥에 구멍들 보이지? 거기에 볼트로 끼워서 고정하고 풀고 할 거니까 한꺼번에 네 명이 한 귀퉁이씩 잡고 올리면 돼. 그다음에 셔터도 한 칸 더 위까지 여는 거지.”
유빈은 설명을 하면서 선반 자체를 들어 올리는 시늉을 곁들였다. 하나, 둘, 셋…… 손을 꼽으며 수를 세본 태권소녀가 물었다.
“그러면 다섯 사람은 최소한 거기 붙어 있어야 되네. 나사를 조일 사람이 필요하니까.”
“응. 다섯 명도 좋은데, 양쪽에서 동시에 볼트를 조이는 편이 훨씬 안정적일 거야. 사고 위험도 확 줄고. 그럼 오늘 보안관처럼 따로 뒤에 빠져서 경계만 보는 역할을 규영이가 해줘야 돼. 이 동네에 코스트코 좀비랑 우리만 있는 건 아니니까.”
태권소녀와 유빈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입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 끼어들었다.
“잠깐만! 나도 그거 같이해야 한다고?”
“그럼, 당연한 거지. 아까 뭐라고 했어? 남자한테 맡기라며?”
태권소녀가 팍 쏘아붙인다.
아니, 그러기는 했는데…….
신입은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별로 할 말이 없다.
저 혜주라는 길쭉한 계집애는 하여간 말도 싸가지 없이 하고, 때로는 말보다 발이 더 먼저 나와서 상대하기가 영 껄끄럽다.
이럴 때는 그냥 입을 다무는 편이 이득이다. 태권소녀 앞에서 도무지 기를 펴지 못하는 신입에게 유빈이 말했다.
“맨 처음, 가시방석으로 좀비들 잡을 때도 우리들 다 힘 합쳤잖아. 그때랑 같아. 전부 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서로 이야기해 가면서 도우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 그리고…… 그 고비만 넘어서면 코스트코 진입이야. 저기에 있는 거 다 우리 거라고. 저 안에 있는 거 전부 다!”
“거미베어!”
태권소녀가 주먹을 꽉 쥐며 또 동기부여를 했다. 제니와 삼식이도 분위기를 맞추며 외쳤다.
“목욕!”
“양주!”
“뭐, 뭐야, 이놈들? 갑자기 왜 이래? 미친놈들처럼.”
그저께 무빙워크에서 있었던 대화에 대해 모르는 신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혹스러워했다. ‘양주!’를 외치던 삼식이가 신입을 보며 웃었다.
“하하하! 동기부여야! 신입! 포기하고 싶고 힘들 때, 그걸 생각하면서 기운을 내라고. 너도 원하는 걸 외쳐 봐!”
잠시 생각해 보던 신입은 입술을 떼려다가 말을 삼켰다. 솔직하게 ‘제니와 혜주가 비키니 입고 목욕해라!’라고 외쳐 봐야 괜히 엉덩이나 한 대 걷어차일 뿐이다. 그래서 그냥 삼식이를 따라 외쳤다.
“그, 그럼 나도…… 씨발, 코스트코 다 내 거!”
“하하하! 좋아, 신입! 힘내는 거야! 오늘 시체 만지는 연습도 했잖아!”
삼식이가 으샤으샤 분위기를 띄우는 동안 유빈과 보안관은 회전 단두대의 세부적인 부분들과 거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어디에서 구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섀시는 당장 공구 가게 진열대도 그걸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구하는 데 문제없을 거고. 거기에서 가져와야 하는 게…… 아시바랑 클램프. 클램프는 90도 꺾인 게 많이 쓰이겠지……, 이거는 양이 많으니까 아예 요 앞 건물 공사하는 데 만들어 놓은 비계를 뜯어오는 편이 낫겠다. 전동 드릴 가져와야 하고, 나사못이랑…… 볼트, 렌치, 바퀴…… 야, 이거 다 기억 못 하겠다. 좀 써서 체크해 가면서 해야 실수가 없지. 야, 이거, 이 회전 단두대인지 뭔지 앞에 막는 건 뭘로 할 거냐?”
“그건 그냥 방범창 같은 걸 떼어 와서 붙이려고. 따로 만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그러면…… 신입이랑 삼식이 차 있는 데로 보내서 세녹스 두 통 가져오게 하고, 공구 가게에 엔진오일은 있을 거고. 선반용 섀시하고 셔터는 오늘 아예 작업을 다 해두는 게 낫겠네. 그밖에 꼭 필요한데 내가 말 안 한 게 뭐 있어, 유빈아?”
“꼭 필요한 거…….”
유빈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인내심일 거야. 지금 말로는 이렇게 하고 있어도 막상 톱날이 위이잉― 돌면서 좀비들 머리나 목을 잘라 들어갈 때 보는 건 정말 끔찍할 것 같아. 당기는 사람은 그 감촉까지 진동으로 다 느끼면서 파이프를 당겨야 하니까 더 힘들겠지. 내가 생각해 내긴 했지만, 회전 단두대라는 게 워낙에 끔찍한 물건이라서…….”
유빈은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의 아래쪽에 ‘회전 단두대’라고 쓰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림을 바라봤다.
인내라……. 보안관과 태권소녀도 이마를 찌푸렸다.
그때까지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제니가 어깨 뒤쪽에서 팔을 뻗어 유빈의 유성펜을 빼앗아 쥐며 말했다.
“오빠는 참, 자꾸 회전 단두대라는 끔찍한 이름으로 부르니까 그렇죠. 이름만 바꿔도 훨씬 덜 소름이 끼칠걸요. 자, 봐요.”
유빈이 써놓은 글씨 위에 크게 X표를 찍찍, 그은 제니는 자신이 명명한 새 이름을 적고 마침표까지 딱 찍었다.
- 안전 수호자.
그러곤 유빈과 보안관, 태권소녀의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어때요? 느낌이 확 다르죠?”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잠시 후, 삼식이와 신입이 선로 쪽으로 떠나고, 유빈과 보안관, 태권소녀는 공구 가게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제니, 규영은 옥상에서 대기하라고 시켰다.
무지개 색 좀비들의 행렬이 다시 돌아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잘 알지만, 언제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망을 보다가 호루라기 불어주는 사람은 꼭 두어야 한다.
짐이 많을 거라서 일행은 가던 길에 새 리어카 하나를 장만했다. 노점상들이 사용하던 노점에서 가판대를 치워 버리면 되니까 리어카는 여유가 있는 자원이다.
보안관이 턱 나서서 리어카를 끌자 태권소녀가 뒤에 걸터앉는다.
왠지 재미있어 보여서 유빈도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나름 낯선 경험이어서 둘은 깔깔거리며 발을 끌다가 들어 올리기를 반복했다.
“야, 뭐해? 내려와. 내가 무슨 소인 줄 알아?”
보안관은 툴툴거리면서도 오히려 속도를 높이는 서비스까지 해준다.
하하하하, 리어카가 빨라지면서 태권소녀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승차감은 꽝이지만, 보도의 경계를 지날 때마다 엉덩이가 통통 튀는 것까지도 재미있다. 색다른 맛이 있는 라이딩은 금방 끝났다.
공구 가게 앞에 멈춰 선 보안관은 천천히 리어카의 손잡이를 내려놓았고, 태권소녀와 유빈은 여전히 웃음기가 남은 채로 발딱 일어났다.
“너 이거 잘한다. 인력거 장사해라.”
태권소녀의 말에 보안관이 코웃음을 쳤다.
“재능을 인정받으니까 엄청 좋네. 근데, 백번 양보해서 이걸 한다고 해도 누가 타?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야 손님도 있는 거지.”
“내가 매일 타줄게.”
“아이고, 감사한 말씀이신데요…… 한 분만 태워서는 목구멍에 풀칠도 못 합니다. 저도 먹고살아야죠. 에…… 어디 보자, 일단 회전톱부터 챙기고…… 엔진 오일이랑…….”
공구 가게 앞에 쳐둔 청테이프를 뜯으면서 보안관이 건성으로 대꾸했다.
한번 자물쇠를 연 가게에는 청테이프로 테두리를 쳐둔다. 그래야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 편히 들어갈 수 있다.
“먹고사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너는 왜 운동 안 했냐?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 텐데.”
태권소녀가 묻자 보안관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나보다 약한 놈들한테 뭘 배우라고.”
그런 후, 보안관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반응이 너무 냉담해서 멈칫해 있는 태권소녀에게 유빈이 귀엣말을 했다.
“운동한 적 없는 척 저러지만, 쟤도 한때 열심히 배웠어. 시합 나가서 자기보다 약한 애한테 실격패로 지고, 그러니까 성질나서 그만둔 거야. 자기 떨어뜨리고 우승한 놈 얼굴을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판정으로 이긴 새끼가 시상대에 올라갔을 때 얻어터진 얼굴이 공개돼야 한다나. 하여튼 그래. 그 이야기 하면 괜히 저렇게 발끈해.”
“……암만 그래도 아깝네, 저 실력에. 하긴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올림픽 금메달을 받았어도 다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공구 가게에 들어가 필요한 연장들을 챙기면서 태권소녀가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보안관의 실력이 아까운 모양이다.
그건 유빈도 동감이다. 원래 네 친구의 계획은 돈을 모았다가 전부 제대하고 난 뒤, 보안관에게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잘 먹이고 훈련을 시켜서 외국 종합 격투기까지 간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심지어 네 사람은 보안관이 챔피언이 되면 얼마나 수익이 날지, 최하 스폰서 계약 금액은 얼마로 해야 할지, 그런 것까지도 자기들 마음대로 계산해 뒀었다. 그 꿈속에서 유빈은 회계 담당이었다.
아, 여보세요. 세계 챔피언 남광훈 사무실입니다. 나이키요? 저희 챔피언과 스폰서 계약을 하시고 싶다고요? 네? 2억이요?
월간 스폰서인가요? 네? 하하하, 연간 그 금액으로는 안 되죠. 크게 한 장은 쓰셔야 됩니다.
메인 스폰서가 되시려면 한 장 더 쓰셔야 하고요. 저기, 고민하실 거면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지금 아디다스 홍보 담당자랑 이야기 중이어서요.
……그런 꿈.
실제로 이룰 수 있을지 어떨지 몰라도 네 명이 방 안에 앉아 맥주병과 과자를 앞에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은 좋았다.
투자해 볼 수 있는 친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도 좋았고, 그 우정이 한 사람의 성공 따위로 깨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행복했다.
후우~
공구 상점 안으로 들어가며 유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런 꿈을 꾼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까.
정말 운이 좋아서 좀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다고 해도 전 세계로 격투기가 중계되는 호사를 금방 다시 누릴 수 있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낭만적인 꿈이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지금 그들은 생존하는 것이 곧 꿈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다음 날 오후, 보안관 일행 일곱 명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코스트코 앞에 서 있었다. 이제 아주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몇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 넘어서면 달콤한 보상이 찾아올 거다. 적어도 몇 달은 더 생존할 수 있을 만큼의 풍요로운 음식과 물자들이 이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 흔들어봐.”
유빈의 말에 보안관과 삼식이가 양쪽에서 회전 단두대를 잡고 힘을 줘본다.
이미 여러 번 튼튼하다는 걸 확인했지만, 톱에 시동을 걸기 전에 한 번 더 확실히 짚어두려는 것이다. 섀시에 연결된 파이프 선반은 튼튼하다. 나사가 느슨한 곳도 없다.
“그럼, 톱 시동 건다.”
파이프 선반 위에 올라선 유빈이 손잡이의 스위치를 꾹 누르고 쓰로틀을 당겼다.
푸륵― 푸륵―
두 번 만에 시동이 걸려서 콘크리트용 원형 톱날은 맹렬한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유빈은 공구 주머니에서 절연테이프를 꺼내 스위치를 친친 동여맸다. 손을 떼도 톱이 계속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위이이이잉―
빠르게 돌고 있는 회전톱을 그대로 두고 유빈은 선반 아래로 내려섰다.
쿵― 쿵―
문 안쪽에서는 좀비들이 쉬지 않고 강화유리를 머리로 들이받고 있다. 어제 섀시 고정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저놈들이 이따금씩 저렇게 소리를 내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랐었다.
그르르르― 그롸아아―
바닥을 기고 있으면서도 좀비들은 엄청난 기세로 포효해 댔다.
“그래, 실컷 울어둬라. 이제 그 짓도 얼마 더 못할 테니까.”
유빈은 어두운 그림자 속의 좀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회전톱 조종을 맡은 삼식이와 보안관은 길게 뻗어 나온 손잡이를 잡고 회전톱을 좌우로 움직여 본다.
돌돌돌―
손잡이를 움직일 때마다 회전톱 아래에 달아둔 바퀴는 제법 잘 따라 움직여 준다. 이 정도면 큰 문제 없다.
“괜찮지? 열까?”
유빈이 셔터를 내리면서 물었다. 보안관과 삼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빈은 셔터를 파이프 선반과 묶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제 이 셔터는 선반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함께 따라 오르내릴 것이다.
셔터의 고정 부위를 확인한 뒤, 유빈은 망치를 들어 강화유리문을, 좀비들이 그렇게도 두드려 대던 문을 힘껏 내려쳤다.
콰창―!
유리 조각들이 떨어져 내리고, 곧바로 좀비들이 열린 틈으로 기어 들어온다.
그롸아아아아― 그롸아아아―
좀비들은 미친 듯한 기세로 파이프 아래를 기었다. 놈들의 몸이 부딪칠 때마다 그렇게 무겁던 선반도 가볍게 흔들린다. 그리고 좀비들은 그들 앞에 놓인 장벽을 만났다.
턱, 좀비의 손이 단두대 앞쪽을 막아둔 방범창에 걸렸다.
그롸아아―
놈들은 어떻게든 그 너머까지 가기 위해 방범창을 밀치고 파이프를 깨문다.
“후우우우~”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삼식이가 더 많은 놈들을 꾀기 위해 불붙은 담배를 깡통 안에 던지고, 그걸 앞쪽에 가져다 뒀다.
깡통 모서리에는 배터리용 싸구려 미니 선풍기가 열심히 돌면서 담배 연기를 코스트코 내부로 들여보내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네 마리네. 슬슬 시작해 볼까?”
함정 안으로 들어와 난동을 치던 좀비들의 수가 네 마리까지 늘어났을 때, 삼식이와 눈빛을 교환한 보안관은 반대편 구석에서 돌고 있던 회전톱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위이이이잉―
날카로운 톱날이 회전을 하며 선반을 가로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