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회전 단두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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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회전 단두대 (1)
2022.05.30.
시체를 다 치운 뒤에도 일행은 장갑을 벗지 못하고, 정문 주변의 넓은 마당을 청소해야 했다. 희석한 락스를 뿌려가며 열심히 비질을 해도 시체가 누워 있던 자리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냄새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일단은 살균이 목적이어서 유빈은 더 공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몇 번인가 더 비가 오면 저 거무튀튀한 자국도 결국은 씻겨 나갈 것이다.
“후와~! 더워. 이거, 진짜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 같아. 탈진해서…….”
삼식이가 물로 얼굴을 씻어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장착하고 있던 모자와 고글, 장갑, 앞치마, 마스크, 긴팔 옷을 다 벗어 던지고 나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한여름의 대낮에 할 만한 일은 진짜 아니긴 하다. 고무장갑 안에 고여 있던 땀을 모으면 소주 한 컵은 나올 모양새다.
“신발도 여기에다 버려. 바지도 벗고.”
유빈은 커다란 비닐 봉투를 들고 다니며 삼식이와 신입이 입고 있던 것들을 다 한군데로 모았다.
병균 범벅과 씨름을 할 때 입었던 옷이니 따로 모아서 버려야 한다. 애초부터 그러려고 허름한 옷과 신발 차림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세 명은 알코올 적신 솜으로 몸을 닦고, 보안관이 가방에서 꺼내 주는 새 옷을 입었다. 그 정도만 해도 뭔가 제법 정화된 기분이 든다.
다만, 코는 예외다. 아무리 물로 씻고 코를 풀어내도 안쪽에 시체 썩는 냄새가 남아 있다.
“와…… 이거, 밥을 어떻게 먹지? 내장 흘러나온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 냄새랑…….”
유빈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길가 모텔 옥상까지 가는 동안에도 계속 킁킁대며 자기 손 냄새를 맡게 된다.
“많이 힘들었죠? 괜찮아요?”
옥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물었다. 태권소녀도 불편해하며 한마디 했다.
“나도 같이한다니까, 왜 힘든 일을 너희들만 하겠다는 거야?”
“됐어! 됐어! 여자가 할 일이 못 되더라. 그런 건 남자가 하면 되지, 뭘. 아우~ 담배나 한 대 피워야지. 일을 열심히 했더니 목이 그냥 칼칼하네!”
신입이 뻐기며 잘난 척을 한다. 여자들에게 점수를 따고 싶은 마음에 방금 전까지 토할 것 같다느니 뭐니 했던 걸 다 잊어버린 모양이다. 유빈과 삼식이도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줬다.
“남자 어쩌구 할 일은 아니지만, 너희들도 좀 쉬어야지. 그제 아주 애썼잖아.”
삼식이는 캔 커피를 따서 마시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좀비 무리들을 하나로 다 몰아놓고 나니 나머지 시간에는 편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어서 좋았다.
“꼬맹아, 망 잘 봤어?”
삼식이가 머리를 쓰다듬자 규영이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도 이제 형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 같다.
“근데…… 흠흠, 이거 무슨 냄새야? 누가 요리했네?”
삼식이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물었다.
옥상 중앙에 놓인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서 뭔가가 바글바글 끓고 있다. 냄새만 맡았는데도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규영이 제니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제니 누나가 솜씨 발휘한댔어요. 형들 일하고 오면 배고프고 힘들 거라고.”
헐, 삼식이가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가뜩이나 입맛 없는데…….”
“에이, 무슨 말이 그래요? 제니 누나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다고요. 천하의 대스타가 직접 요리를 해주는 건데, 무조건 맛있을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규영은 신이 났지만, 삼식이는 그런 녀석을 동정했다.
뭐, 어차피 한입 딱 떠 넣는 순간 알게 될 거니까 미리 언질을 할 필요는 없다. 대신에 친구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킬 의리는 발휘해야 한다.
“제니가 요리했대.”
그 말을 들은 유빈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등신 같은 보안관은 ‘와우―!’ 환호성을 지르며 또 좋아하는 척 연기를 한다. 그게 진심이라면 미맹이다. 보안관은 활짝 웃으며 제니에게 물었다.
“제니야, 메뉴가 뭐야?”
“후후, 비밀이에요. 오빠가 먹고 맞춰봐요.”
제니는 애교가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수저와 즉석밥을 하나씩 나눠 준다. 일행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다. 제니가 뿌듯해하며 냄비 뚜껑을 열어 보인다.
“짠! 드셔 보세요.”
정체가 모호한 붉은 액체에 가장 먼저 수저를 댄 것은 규영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기쁜 듯이 크게 외치고 한입을 크게 떠 넣은 규영은 잠시 얼어붙었다. 유빈은 그런 녀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알아, 문화 충격이지?
마음 같아서는 등이라도 토닥여 주고 싶을 정도다.
두 번째 용자는 당연히 보안관이다. 보안관은 크게 한 숟갈을 푹 떠서 입안에 집어넣고서 곧바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맛있어! 맛있어! 그렇지? 규영아!’를 외치면서.
어찌 보면 이놈이 제일 나쁜 놈인지도 모르겠다.
“……으응, 마, 맛있어요, 누나.”
규영이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제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디…… 나도 한 번.”
태권소녀가 참전했다.
음?
국물을 맛본 태권소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보안관을 향해 물었다.
“너…… 이게 진짜 맛있어?”
“응! 당연하지!”
보안관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태권소녀는 규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규영이, 너도 맛이 있고?”
“아…… 네, 네. 맛있어요.”
흐음~ 그래?
태권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두어 번 더 국물을 떠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지,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보안관은 국물을 퍽퍽 떠서 즉석밥과 함께 입안에 욱여넣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권소녀가 제니에게 물었다.
“뭐, 뭐 넣고 어떻게 끓이면 이런 맛이 나와? 나는 요리를 안 해봐서…….”
“아니…… 저기, 일부러 배울 필요까지는…….”
유빈이 양심의 소리를 내보려다가 보안관의 눈빛이 번뜩이는 것을 보고 말을 삼켰다. 제니는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후후, 별거 없어요. 그냥…… 통조림 햄이랑 참치 넣고, 고추장 풀어서 끓인 거예요. 아, 야채가 없으니까 피클을 좀 넣었어요. 그게 비결이었을까요?”
으음, 그래서 이 찌개가 이렇게 시큼하면서도 달았구나……. 뻘겋기만 하지, 간도 제대로 배지 않았고.
비밀을 깨달은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맛이 납득이 간다. 삼식이와 신입은 아예 햄만 건져 내서 밥과 함께 먹고 있다.
“음, 피클…… 너희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태권소녀는 아직도 진지하게 맛을 보면서 비법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다.
그냥 잊어버리는 게 더 좋을 텐데…….
유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태권소녀를 바라봤다. 만약 그녀까지도 이렇게 기괴한 요리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면, 그때는 몰래 따로 챙겨 먹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다들 찌개를 반찬으로 삼아 밥 한 그릇을 먹어 치우기는 했다. 독재자 제니가 다른 반찬을 아예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코스트코 들어가는 문제인데…….”
밥그릇을 치우고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난 다음, 유빈이 입을 열었다.
“……아직 저기 남아 있는 놈들 다 정리해야 하잖아. 그래서 생각해 놓은 방법이 두 가지 정도 있어. 그중에 어떤 걸 택할지 잘 판단이 안 서.”
“그렇게 고민할 만큼 어려운 문제야? 어차피 남아 있는 놈들 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망가져 있잖아.”
태권소녀가 묻는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 멀쩡하게 뛰어다니는 놈들 상대하는 거랑은 비교도 안 되게 쉬워. 이건 할 수 있을까나 안전하게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인데?”
“음, 뭐라고 해야 되지?”
유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골랐다.
“꾸미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자면 이런 거야. 내일 우리가 코스트코에서 해야 하는 일은 승패를 모르는 싸움이라기보다는, 처형에 가까워야 해. 우리는 절대로 다치지 않으면서 남은 좀비들은 확실히 죽이는, 그런 방식의 싸움 말이야. 딱히 어쩔 수 없으면 맞서 싸운다지만, 그저께 다들 잘 싸워준 덕에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거든.”
“그러면 좋은 거 아니냐? 안전하다는 말이잖아. 그냥 싹 다 죽여 버리지 뭐, 저 개새끼들.”
신입이 허세를 부리며 떠들어 댔다. 어차피 자신은 끼지 않아도 될 것이라 믿고 있으니까 두려운 게 없다. 보안관이 물었다.
“처형 방식이라고? 그게 정확하게 어떤 거야?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
“그냥…… 둘 다 원리는 같아. 코스트코 정문에 섀시하고 굵은 파이프로 좁은 통로를 만드는 거야. 문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길이지만, 기어야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높이의 통로지. 그 앞은 창살문이나 그런 걸로 막아놓고, 좀비들을 꾀서 거기로 오게 만든 다음에…… 정리하는 거지.”
“꾀는 거는 담배로 하면 된다 치고, 죽이는 건 어떻게 죽여?”
“응. 머리를 날린다는 원칙은 같은데…… 하나는 목을 자르는 거고, 하나는 머리를 아예 터뜨리는 거야. 내가 말했던 건 그 둘 중에서 어떤 방법을 택할지 고르라는 거였고.”
유빈은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목을 자르는 것과 머리를 터뜨리는 것 중에서 택일을 하라니, 이런 건 사이코패스들이나 하는 대화가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태권소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말하는 유빈 자신도 소름이 끼치는데.
태권소녀가 물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똑같은 말 같은데, 두 방법이 무슨 차이가 있어?”
“확실히 있지. 장점이랑 단점이 있는데…… 목을 자르는 방식은, 에…… 원형 절단기를 이용하는 건데, 더 속도가 느려. 그래서 놈들이 죽어가는 걸 우리가 느린 속도로 봐야 돼. 물론 이미 죽은 놈들이라는 걸 잘 알아도 어지간히 보고 있기 괴로울 거야. 대신에 몸은 힘이 덜 들어.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실행하는 것도 그렇고.”
“머리를 터뜨리는 방식은?”
“그건…… 실행의 순간만큼은 빨라. 아마 우리는 놈들이 죽는 순간 자체를 제대로 못 볼 만큼 빨리 끝날 거야. 무거운 철판을 단두대처럼 위에서 떨어뜨릴 거거든. 도로 표지판 정도의 크기와 무게면 딱 좋을 텐데. 쿵! 하고 떨어지면 벌써 퍽! 터지고 끝이지. 대신에 이 방법의 단점을 꼽으라면 몸이 힘들다는 거야. 높이 매달린 도로 표지판을 떼어 오는 것도 꽤나 힘든 일이고, 그걸 매번 끌어올렸다가 놓고, 다시 또 끌어올리는 걸 계속 반복해야 돼. 표지판이랑 그 뒤에 고정 기둥…… 무게가 상당할 텐데, 여러 번 하다 보면 고생스러울 거야. 박살 난 머리 파편을 치우는 건 또 다른 문제고.”
다들 유빈의 말을 들으며 심각하게 두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물론 두 가지 다 어지간히 구역질이 이는 이야기였다. 태권소녀가 유빈에게 물었다.
“다 이해한다고 해도 그걸 굳이 우리에게 고르라고 하는 이유는 모르겠네. 여태까지는 다 네 마음대로 정했잖아. 무빙워크에 기름 뿌리는 것도 그렇고, 좀비들 다 한 덩어리로 묶는 것도 그랬고.”
“그거야 그때는 이판사판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거였으니까. 이건 좀 다르거든. 그래서 직접 고르라고 하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다 힘을 모아서 해야 하는 당사자들이니까.”
“그 다르다는 게 대체 뭐냐고? 어차피 좀비를 죽인다는 사실만 떼어놓고 보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
아…… 유빈은 태권소녀부터 시작해서 보안관, 삼식이, 제니, 그리고 신입까지 한 번 죽 돌아보고 보충 설명을 시작했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총살형이 실행될 때 사형수 한 사람을 향해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방아쇠를 당긴대. 그런데 그중에 한두 사람의 총에는 공포탄이 들어 있다는 거야. 그렇게 해야만 다들 ‘내 총은 아니겠지’ 하고 최선을 다해서 목표를 조준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어. 쏘고 나서도 ‘내가 죽인 건 아니야’ 하고 자신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고.”
“이 새끼는 무슨 총살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앉았어? 왜 우리에게 방식을 고르라고 했는지 물었는데.”
신입이 답답해하며 끼어든다. 유빈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상하다는 거 못 느껴? 전쟁에 나서는 군인들에게 ‘너희들 총 중에 몇 개는 공포탄이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적을 겨눠라’라고 말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잖아. 그런데 총살은 그렇게 한다고. 왜일까? 내 생각에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처지의 상대방을 죽이는 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울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죄책감을 안겨주기 때문인 것 같아. 아마 내일, 바닥에서 기어 나오는 놈들을 안전하게 죽이고 있으면 우리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될 거야. ‘이게 뭐지?’ 하고 괴로워질 거라고. 그래서 너희들의 의견을 물어본 거야.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말이야. 죄책감을 덜어내는 거야, 아니면 편안하고 효율적인 거야?”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제니가 물었다.
“안전은요? 어느 쪽이 더 안전해요?”
“안전은 회전톱 쪽이 아닐까? 위에서 떨어뜨리는 단두대는 자칫 하중이 잘못 걸렸을 때, 구조물 자체가 다 박살 날 수도 있거든.”
유빈의 대답에 제니는 단호하게 1번을 골랐다.
“그럼 전 무조건 회전톱이요. 아무도! 아무도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 너는 목을 자르는 방식에 한 표.”
유빈이 제니의 의견을 기록했다.
하지만 사실 얘는 그걸 견디기 어려울 거다. 예전에 좀비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제니는 이미 대단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때는 서로 죽느냐 사느냐를 걸고 싸우던 때였는데도.
“나도 더 안전한 방법 한 표요, 나한테도 투표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규영이 두 번째로 의사 표현을 했다. 다들 ‘당연히 있지’라고 대답한다.
이걸로 2:0.
보안관과 삼식이, 태권소녀는 입을 꾹 다문 채 고민에 빠져 있다. 회전톱으로 좀비들을 죽이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톱날이 목덜미를 스치고 파고드는 동안에도 앞만 보고 울부짖어 대는 좀비들…… 역겹고 속이 뒤틀린다.
“그런데 이거, 사실 물어보나 마나 한 거잖아. 누가 더 힘든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겠어? 자기뿐만 아니라 남의 목숨도 걸려 있는 일인데.”
눈썹 사이에 11자를 그리며 태권소녀가 묻는다. 유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도 그 이유 때문에 이런 방법까지 생각해 낸 거긴 한데……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궁리를 하다 보니까, 떠오른 방법이 너무 잔인한 것 같았어. 내가 이렇게 또라이였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너희들에게 물어보는 거야. 이거…… 사용해도 되는 방법인지, 아니면 한계를 넘어가 버린 건지 말이야. 어쩌면 ‘우리’를 운운하면서 솔직히는 내 책임감을 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좀비라고 해도 저것들이 사람 모양을 하고 있으니까 자꾸 신경이 쓰여서.”
유빈의 말에 태권소녀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너 약간 사이코패스인 것 같기는 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러고는 얕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계획에서 난 뭘 하면 되는데?”
3:0.
유빈은 보안관과 삼식이를 돌아보았다.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공구상에 있던 회전톱이 무슨 방식이었지? 기름 넣는 건가? 좀 있다가 신입 데리고 우리 차로 가서 세녹스 가져와야겠다. 오랜만에 선로 산책이나 해야지.”
보안관도 동의한다는 표시를 했다. 이걸로 방식은 결정은 났지만, 그들이 지켜보게 될 것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내일 그들은 또 새로운 형태의 지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