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몰락의 유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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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몰락의 유산 (4)
2022.05.29.
민구는 자신의 눈앞으로 갑자기 달려든 옆자리 놈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지, 이놈?”
가뜩이나 몸도 아프고 붕대까지 화를 돋우는데, 이젠 별게 다 신경을 거스른다. 민구는 시선을 다시 붕대로 돌리며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마라, 괜히 두드려 맞고 싶지 않으면.”
민구가 알아듣지 못하자 젠킨스는 아무렇게나 엉켜 있는 붕대 끝을 잡고 흔들며 다시 민구의 주의를 끌었다.
슷―!
민구는 어린아이에게 겁을 주듯 외마디 소리로 경고를 하며 꺼지라는 손짓을 했다.
“허!”
젠킨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나 무례하고 포악한 인간에게 대체 무슨 매력이 있다고 테라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인지, 역시 한심한 인간들에게는 한심한 인간들만의 매력이 보이는 모양이다.
자본주의자인 그는, 그러나 다시 거래를 제안했다. 이번에는 이 짐승 같은 놈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Bandage! I will wind it for you!(붕대! 내가 감아줄게!)”
젠킨스는 붕대를 향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다시 민구를 가리킨 뒤, 친친 감는 시늉을 했다. 가만히 보고 있던 민구가 의심 섞인 눈초리로 물었다.
“네가 붕대를 감아준다고? 왜?”
젠킨스는 민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제안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갔다. 젠킨스는 자신의 가슴을 짚으며 말했다.
“Service! My service!”
“서비스라는 말은 알아듣겠다. 서비스? 훗, 이상하군. 그래, 한번 해봐.”
뭔가 전부 납득이 된 건 아니지만, 그 역시도 슬슬 지쳐 가던 터라 민구는 일단 붕대를 넘겨줬다.
붕대를 건네받은 젠킨스는 가격을 일러준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Charge! One cigaret! Just one.(서비스 가격! 담배 한 개비! 딱 하나.)”
젠킨스는 손가락 하나를 강조하며 담배 피우는 시늉까지 했다. 민구는 금방 알아듣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낸다.
“이거 한 대 달라는 거 맞나? 자.”
젠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구가 내미는 담배를 받아 돗자리 옆에 두었다.
그러고는 알코올을 묻힌 솜으로 자신의 손부터 닦은 뒤, 민구의 상처 쪽으로 다가갔다. 화상 입은 상처를 보며 젠킨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Let me see. Oh, my Lord! What the hack was happened to your right side? Some kind of a fire ball struck on you? Gees, I wonder how you walk around with this serious wound.(어디 보자. 어이구, 맙소사! 오른쪽 옆구리에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화이어 볼이라도 맞았나? 끔찍하군, 이런 상태로 그렇게 멀쩡히 돌아다녔다는 게 더 신기해.)”
붕대를 감기 전, 젠킨스는 꼼꼼히 상처를 살펴봤다. 깊다. 그리고 엉망이다. 이만큼이나 근육이 손상되었고, 그 위를 아무렇게나 지져 놓았으니 완전한 자연 재생은 무리다.
의학의 힘을 빌지 않는다면 이 남자는 평생 옆구리에 움푹 팬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만큼 운동 능력도 상실된다.
뭐, 그래도 워낙 다른 부위의 근육들이 잘 발달해 있어 보조를 해줄 테니 일상생활 정도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갈비뼈 주위와 복부, 왼쪽 옆구리에도 흉기에 찔리거나 베인 흔적이 있었다. 어깨에도 최근 수술 받은 흔적이 보인다.
야위게도 생겼군.
젠킨스는 붕대를 감으면서 생각했다. 고문을 당했다고 해도 수긍할 수 있는 몸 상태였다.
“익―!”
팔을 뻗다가 실수로 민구의 몸에 손이 닿은 젠킨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기분 더럽다. 땀투성이 남자의 몸을 만지다니…….
아무래도 값을 너무 싸게 불렀다. 적어도 담배 두 개비는 받았어야 했던 건데……. 하지만 이 포악한 남자와 재협상을 하는 일은 굉장히 까다로울 것 같다.
“Well, it’s done. Try some move. Comfortable, isn’t it?(자, 다 됐어. 움직여 봐. 편한가?)”
드레싱을 끝낸 젠킨스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 거래를 하려면 고객의 만족이 우선되어야 하니까.
당장 담배가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남자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어두고, 그와 친분을 쌓아놔야 나중에라도 테라를 연구소로 데려가기가 수월해진다.
테라, 널 키드! 나의 보석!
모든 걸 다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신이 내민 구원.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젠킨스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걸린다.
흉터사내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붕대가 감겨진 복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대단한 솜씨라고는 할 수 없다.
당연하다. 젠킨스는 의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해부학적 지식은 가지고 있다. 문외한이 해준 드레싱보다는 몇 배나 편안할 것이다.
뭐, 불편하면 제가 알아서 다시 감으라고 할 테지…….
젠킨스는 민구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물었다.
“오케이?”
몇 가지 동작을 취해 보고 나서 민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 젠킨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담배 한 개비를 소중하게 챙겨서 암시장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보상을 받아야 할 시간이다.
뒤뚱거리며 멀어지는 젠킨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민구는 생각했다.
‘담배가 어지간히 피우고 싶었나 보군. 한 개비 정도는 그냥 달라고 해도 줬을 텐데.’
말도 잘 통하지 않으면서 저렇게 먼저 나서서 거래를 한다는 게 재미있다. 어쨌든 뚱뚱한 아저씨치고는 솜씨가 나쁘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 봐도 어느 한쪽이 특별히 당기거나 느슨해지지 않는다.
시간이 좀 걸린 만큼 공을 들인 게 표가 난다. 양쪽 옆구리가 다 부자연스러운 지금, 자신의 손으로는 도저히 이만큼 단단히 감싸둘 수 없을 것 같았다.
“뭔가 요령을 좀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데, 아까처럼 해서는 영…….”
민구는 화끈거리는 상처를 쓸며 중얼거렸다. 하루 두 번 소독이 이렇게 번거로울 줄은 몰랐다.
조금 전 담배를 대가로 붕대를 감아준 백인이 저녁에도 또 나서준다면 굳이 마다하지야 않겠지만, 자신이 먼저 또 거래를 하자고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에게도 담배는 요긴한 물건이기도 하고, 뭔가를 부탁한다는 건 영 내키는 일이 아니다. 손짓 발짓을 동원해 가며 부탁한다는 상상만 해봐도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기분이다.
오도독, 오도독.
잠시 후, 젠킨스가 돌아왔을 때, 그는 건빵을 오독거리고 있었다. 양쪽 바지 주머니에, 양복 주머니에, 그리고 손안에 각각 건빵 한 봉지씩이 들어 있다.
담배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대신 입 주변은 온통 과자 부스러기다. 민구는 그런 그의 모습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민구가 그러거나 말거나 젠킨스는 쉬지 않고 열심히 입을 놀렸다.
이 건빵, 대단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씹을수록 고소하고 은은하게 단맛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다른 과자에 비해 양이 월등히 많다.
암시장에서의 거래는 성공적이었다. 담배 한 개비를 보여주자 암시장 상인 녀석은 대번에 건빵 다섯 봉지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덤이라는 듯 감자 칩 두 봉지도 얹어 줬다.
이만하면 횡재다. 젠킨스는 일단 여기까지 돌아오는 길에 감자 칩 두 봉지부터 먹어 치웠다. 그리고 지금은 혹시라도 민구가 달라고 할까 봐 등을 돌린 채 아주 행복하게 건빵을 씹고 있다.
그렇지, 이거야!
젠킨스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테라가 주고 가지 않은 과자의 열량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젠킨스는 앞으로 매일 저 사내의 드레싱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적당히 때를 봐서 가격도 좀 올려보고 싶다.
그렇게 많은 것 같던 건빵 다섯 봉지 중에서 순식간에 세 봉지가 바닥이 났다.
이제 두 봉지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젠킨스는 민구와 눈이 마주쳤다. 젠킨스가 건빵 봉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헤이, 네이버! 유 원 잇?”
민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젠킨스는 얼른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해 보이고 두 개의 집게손가락을 서로 교차시켜 가며 수레바퀴처럼 돌려 댔다.
“원 시가렛! 온리 원! 익스체인지.”
“허…… 이놈 봐라? 겨드랑이 냄새만 구린 게 아닌데?”
민구는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는 젠킨스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담배 한 개비를 들고 가서 과자 댓 봉지를 들고 왔으니 누가 봐도 당장 물물교환을 한 모양인데, 그걸 또 부풀리려 든다.
“하하, 어지간히 호구로 보였구만…….”
민구는 대꾸하지 않고 일어났다. 한적할 때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사람들에 치이고 고생하지 않으려면.
제안을 거절당한 젠킨스는 무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얼른 주제를 바꿨다.
“젠킨스, 타일러 젠킨스.”
자신의 가슴을 짚으며 자기소개를 한 젠킨스가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의 통통한 손을 잠시 바라보던 민구가 차갑게 말했다.
“그런 건 됐어.”
***
상봉 코스트코 앞에서는 시체 치우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일단 정문 주변에서 썩어가고 있는 시체부터 치워야 코스트코 내부에 아직 남아 있는 좀비들을 모두 정리할 수 있다.
고글에 모자, 마스크, 앞치마, 고무장갑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시작했지만, 이 일은 단 몇 분 만에 사람을 미치기 직전까지 내몰았다.
부패하고 빗물에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을 들어 올려서 리어카에 차곡차곡 쌓는다……고 말로 하기에는 정말 간단하지만, 이건 정말…… 할 짓이 아니었다.
엎어진 채 죽어 있던 시체를 들어 올리면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내장이 와르르 쏟아졌다.
“쥐가 갉아 먹어서 그런가 봐.”
내장 더미와 썩은 물이 주르르 흘러나온 시체를 보며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유빈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힘들다. 체력이 쭉쭉 빠진다. 작업용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독한 악취가 후각을 괴롭혔다.
지난 7월 14일 이후, 더러운 꼴, 험한 꼴을 어지간히 봤지만, 막상 이 시체들을 만지고 있으려니 또 속이 다 뒤집힌다.
조금만 힘을 주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물컹물컹한 살점을 만지고 있으면, 또 파랗게 퉁퉁 부은 시체의 얼굴과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토할 것 같다.
거기에 시체들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려들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괜히 식은땀이 흐른다.
“유빈아, 괜찮아?”
바로 뒤에서 해머를 짚고 서 있던 보안관이 걱정스레 물었다. 유빈은 손을 들어 멀쩡하다는 표시를 해줬다. 물론 진짜로 멀쩡하지는 않다.
보안관은 이 시체 치우기 작업에서 제외시켰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아직 골목 안에 남아 있는 좀비들이 있는데, 전부 다 시체 나르기에만 몰두해서 뒤를 비워놓을 수는 없다.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보안관은 망을 보며 언제라도 싸울 수 있도록 대비를 해야 한다.
비위가 상하기는 해도 이 일은 위험한 게 아니니까, 그저 인내심으로 참으면 된다. 그리고 시체의 수도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이십여 구. 리어카로 댓 번만 왕복하면 끝낼 수 있다. 유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거기 잡아. 들어 올리자.”
유빈은 시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삼식이가 시체의 발목을 꽉 잡은 걸 확인하고 유빈은 셋을 셌다.
“하나, 둘, 셋! 끄응차!”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심하게 훼손되었다고는 해도 덩치가 큰 남자의 시체는 어지간히 무거웠다. 두 친구는 축 처진 거구의 시체를 좌우로 흔들다가 리어카 위로 던졌다.
쿵!
리어카가 흔들거리고, 시체에서 튄 물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만 실어! 무겁다고! 이걸 어떻게 끌란 말이야!”
리어카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입이 찡찡댔다. 토할 것 같아서 이것만은 도저히 못 하겠다는 놈을 억지로 끌고 왔다.
녀석은 ‘도저히 이것만은’ 못 하겠는 게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일이 비위가 틀어지기는 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니니까, 신입도 뭔가 몫을 해야 한다.
그제 실컷 싸우고, 울고, 토한 제니와 태권소녀는 규영이와 함께 옥상에서 망을 보는 중이다.
“세 구뿐이잖아. 충분히 끌고 갈 수 있어. 나랑 유빈이가 밀어줄게, 신입.”
삼식이가 차분히 설득한다. 신입은 계속 헛구역질을 하면서 뒤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말은 여전히 밉살스럽게 잘도 지껄여 댄다.
“세 구면…… XX, 하나당 70킬로그램씩만 잡아도 200킬로가 넘잖아! 뭐가 충분하다는 거야! 이 새끼야!”
“그렇게 안 나가. 내장 무게는 다 빠지니까. 내장은 여기 바닥에 있잖아. 그리고 피 무게도 꽤 빠질 거고.”
태연하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삼식이의 고글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좀비들이랑 싸우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고역이다.
내장?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본 신입이 또 헛구역질을 꿱꿱, 하며 난리를 친다.
“으아, XX. 저게 뭐야? 어흐, 역겨워! 토할 것 같아. 우욱! 아으, X도!”
“아예 큰 통을 하나 가져와서 거기에 이걸 쓸어 담아가며 할까? 어차피 이것도 또 버려야 하잖아.”
삼식이가 바닥에 흘러내린 내장을 보며 유빈에게 제안을 했다. 딴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괜히 이걸 밟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단순히 기분이 더러운 데서 끝날 일이 아니니까.
악취가 이렇게 심할 때에는 이 주변이 아주 온갖 병균의 온상이라고 보면 될 거다. 유빈이 중얼거렸다.
“통…… 하아~ 무슨 통에다가 하지? 양이 꽤 되는데.”
“큰길가에 보니까 음식물 쓰레기통 큰 거 있던데, 그걸 비워 버리고 거기에 넣자. 아예 통을 자빠뜨려 놓고 삽으로 떠 넣지, 뭐.”
“그래. 이번 리어카 비우고 올 때는 음식물 쓰레기통 하나 주워 오자.”
둘은 내장 치우기 방법에 동의를 하고, 리어카에 실린 시체를 잘 고정시켰다.
지금 조금 귀찮다고 대충 얹어만 놨다가 괜히 중간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일을 두 번, 세 번 해야 한다. 네 구째 시체를 차곡차곡 얹은 후, 삼식이가 신입을 불렀다.
“출발하자, 신입. 뒤에서 밀 테니까.”
“아아~ XX, 이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험한 일 안 하고 살았는데…… 아후, 뒤에 시체가 있다는 생각만 해도 토할 거 같아. 냄새는 또 왜 이렇게 지독한 거야? 허리 나가면 어떻게 하지?”
“그만 찡찡거리고 빨리 끌어. 뒤에서 직접 시체들 주무르는 사람도 있어. 자꾸 그러면 내가 끌고 너보고 실으라고 할 거야. 내가 해보니까, 이거 진짜 못할 짓이다.”
삼식이의 엄포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신입은 끼잉, 하는 맥없는 기합 소리와 함께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유빈과 삼식이가 양쪽에서 밀자 노점상들이 쓰던 리어카는 별 말썽 없이 굴러갔다. 그 뒤로 삽과 해머를 든 보안관이 멋쩍어하며 천천히 따랐다.
리어카는 정문으로부터 20여 미터를 전진한 뒤에야 멈췄다. 거기에 그들이 지정한 무덤, 2.5톤 탑차가 있다.
삐이익―
보안관이 트럭의 짐칸을 열었다. 내부는 텅 비어 있다. 원래부터 태권소녀 일행이 트럭에서 요긴한 물건을 다 빼다 쓰기도 했고, 남아 있던 짐도 어제 다 끄집어내서 버린 상태다.
“안쪽으로 던져.”
유빈과 삼식이는 다시 시체들을 끌어 올려서 트럭 안으로 던져 넣는다.
쿵!
시체의 머리가 트럭 바닥을 때리면서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그 위로 또 다음 시체를 던진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지금 유빈과 삼식이는 이보다 더 예의를 갖추기 어려웠다.
남의 시체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도 될 만큼 사는 게 녹록하지가 않은 세상이 돼버렸으니까…….
“삽 줘.”
보안관으로부터 삽을 넘겨받은 삼식이가 흙 포대를 쭉 찢고 크게 한 삽을 떠서 트럭 안으로 뿌렸다. 흙은 꽃집에서 가져온 배양토다.
시체들 위로 흙을 두 삽 더 퍼부은 삼식이는 소주병을 따서 한 번 휙 털었다.
“근데…… 너 지금 이게 뭐하는 거냐? 이런다고 냄새가 안 나는 것도 아니고, 살균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신입이 못마땅한 얼굴로 묻는다. 삼식이는 담담히 대답했다.
“뭐…… 굳이 따지고 물어보면, 그냥…… 장례 비슷한 거지. 가만히 죽어 있는 사람들 억지로 끌고 와서 아무렇게나 홱홱 집어 던진 게 미안하니까 묻어주는 시늉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좀 편해질까 해서.”
“그…… 그렇게 하면 혹시 복 받을까? 나와봐. 나도 한 번 뿌리자.”
신입은 찜찜한 표정으로 다가와 흙 한 삽을 떠서 던졌다. 요령이 없으니, 반은 트럭 안에 떨어지고, 반은 트럭 바깥에 날린다. 어쨌든 그렇게 하고 나서 녀석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유빈이 바닥에 자빠져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하나 주워 밀고 왔다.
이미 시체 덕에 악취에는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지독한 냄새가 주변의 공기를 물들이며 일렁였다.
일행은 다시 조금 전의 일을 반복했다. 시체를 리어카에 싣고, 바닥에 흘러내린 체액과 내장은 흙을 뿌려 음식물 쓰레기통에 담았다. 그런 후에 그걸 끌고 와 트럭 안에 던져 넣었다.
스무 구를 다 처리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아주 지친다. 피폐해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절절히 느껴졌다.
“그 자리, 락스로 청소도 해야겠더라. 후우~ 코스트코 안의 좀비 시체들을 치울 때도 또 이 짓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
시체로 꽉 찬 트럭의 짐칸 문을 잠그면서 유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도 구역질을 하며 죽어가던 신입이 뿌듯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것만 하면 드디어 코스트코가 다 내 거잖아. 말하자면 대형 마트 사장님이 되는 거라고. XX, 어린 시절 꿈이 이렇게 이뤄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