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몰락의 유산 (3)
(270/449)
270. 몰락의 유산 (3)
(270/449)
270. 몰락의 유산 (3)
2022.05.28.
“……뭐라고요?”
테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반응을 두려움이라 받아들인 젠킨스는 재미가 나서 한 번 더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얼굴 거의 전체에 걸쳐서 커다란 흉터가 있다고. 아주 날카로운 것에 한 번에 베인 거야. 그래도 어렸을 때 다친 거라고 할 텐가? 무슨 장난을 치면 그렇게 되지? 얼굴 절단 놀이? 후후후…… 뭐, 그런 걸 하고 놀았을 정도로 멍청한 놈이라면 내 인사를 받지 않은 것도 용서할 수는 있겠군.”
젠킨스가 실없는 농담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테라는 여전히 멍해져서 생각에 잠겨 있다. 그 모습을 본 젠킨스가 정색을 하며 묻는다.
“테라 양, 이제 보니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군.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뭔데 그렇게까지 과한 반응을 보이는 거지?”
“그 남자, 어떻게 생겼던가요? 키는 어느 정도였어요?”
테라는 대답 대신 다른 질문들을 던졌다.
음…… 젠킨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날을 세워 자기의 볼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글쎄…… 나란히 서 있었던 게 아니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5피트 10인치나 9인치 정도 아닐까 싶은데. 한 이 정도? 보통 한국인 남자들보다 약간 컸어. 하지만 6피트 이상은 아니고. 인상은…… 생긴 건 꽤 날카롭고 불손해 보였어.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 사람을 깔보듯이 본달까? 아, 그 얼굴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어. 테라 양,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으면 사탕이라도 하나 줘.”
젠킨스는 안 되도 그만이라는 마음에 한 번 던져 본 제안이었는데, 테라는 정말로 주머니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주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또 물었다.
“옷은요? 짙은 색 슈트를 입고 있었죠? 꽤 고급.”
“슈트? 아니야. 그냥 싸구려 집업 재킷이었어. 물론 내가 처음 봤을 때는 그조차도 입고 있지 않았지만……. 누구에게 뭔 짓을 당했는지 몰라도 가슴이며 옆구리를 붕대로 친친 감고 누워 있더군.”
젠킨스는 대답을 하며 테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붕대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더 복잡해진다. 이러면 오히려 궁금해지는 건 자신이다. 이 미소녀가 대체 왜 이렇게 흉터얼굴에 관심이 많단 말인가.
“젠킨스 씨, 죄송합니다. 잠깐만 여기에서 기다려 주세요. 저 금방…….”
“왜? 그 남자를 보고 오려고? 지금은 자리에 없어. 식사 시간이 끝날 즈음,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으니까.”
젠킨스는 초코파이를 씹으며 대꾸했다. 걸음을 떼려던 테라는 그 말을 듣고 멈춰 섰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테라를 향해 젠킨스가 빙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테라 양, 흥미롭군그래. 우리가 말하는 두 흉터얼굴이 동일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귀하가 얼굴에 아주 큰 특징적인 흉터를 가진 어떤 남자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야. 대체 어떤 관계인가? 후후후, 설마 연인이었어? 공주님께서는 그렇게 야성적인 느낌을 좋아하나? 어흥! 호랑이처럼?”
테라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젠킨스는 다시 채근을 했다.
“응?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대답을 해줘.”
“……젠킨스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냉담한 대꾸에 맥이 빠진 젠킨스는 비꼬기 시작했다.
“흠, 그렇군.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어서 계속 나에게 물어보고 있었던 거군. 아주 논리적이고 타당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그럼 나도 비슷한 핑계를 대고 이제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젠킨스가 어린애처럼 구는 동안에도 테라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가 말하는 모든 정보들 중 양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남자’와 일치한다.
이름도 모르는 생명의 은인. 초희가 ‘강 실장 오빠’라고 부르던 남자.
하지만 그는 분명히 잠실을 떠났다. 그와 다른 사람들을 태운 장갑 트레일러가 출발하는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었다.
그런데 왜 일주일이나 더 지난 지금, 그 남자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그것도 젠킨스의 말에 따르면 커다란 부상을 입은 채로…….
‘혹시 그냥 다른 사람일까? 흉터라는 말에 나 혼자서 착각을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모양의 흉터를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잘 상상이 안 된다. 그것도 하필이면 잠실에. 그런 우연의 일치가 가능할까?
테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사고가 생긴 모양이다.
“……할 거야, 테라 양?”
젠킨스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 아까부터 불렀나 본데, 전혀 듣지 못했다. 테라는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며 되물었다.
“네? 죄송해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못 들었어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 젠킨스 씨.”
너무하는군……. 젠킨스는 삐쳤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계속 여기 서 있기만 할 거냐고. 이게 뭐야? 나는 테라 양과 함께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귀하의 머릿속에는 그 흉터남자밖에 들어 있지 않잖아? 우리가 비록 연인은 아니지만 이러는 건 대단한 실례 아니야? 불쾌하다고. 그…… 최소한 먹을 거라도 좀 주고 생각에 잠기든가.”
“아, 젠킨스 씨 말씀이 맞아요. 제가…… 무례했네요. 이제 다시 산책 시작해요. 더는 귀찮게 물어보지 않을게요. 죄송합니다.”
테라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는 앞서 걸으라고 한다.
에잉~
뒤뚱대고 걸어가면서 젠킨스는 혀를 찼다.
못마땅하다. 이 억지 산책도, 사과한다고 말로만 하면서 과자 한 봉지 내놓지 않는 것도, 아무 맛도 없는 물을 자꾸 들이켜야 하는 것도, 그리고 테라가 다른 남자에게 저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응? 젠킨스는 자신의 마음이 낯설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타일러? 너 지금 설마…… 설마 질투를 하는 거야? 저 어린 여자애가 그리운 눈빛으로 어떤 남자를 생각한다는 것 때문에? 미쳤어? 쟤는 물론 소중해. 하지만 너의 사업 수단이자 재기의 발판으로서 소중하다는 거지, 연애의 대상으로서가 아니야. 무슨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그래? 에이…… 설마 아니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 불쾌한 감정은 질투가 맞는 것 같다.
내가? 질투를?
젠킨스는 뒤를 따라 걷고 있는 테라를 힐끔 돌아봤다. 저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이 천진한 얼굴, 윤기가 흐르는 짙은 검정의 머리카락, 희고 가느다란 팔다리.
이런 젠장, 젠킨스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래, 당연히 그럴 수 있어. 호르몬이 널 속이는 거야. 종족 번식을 위해서 가장 가까이에 있고 성사 가능성이 높은 이성에게 호감이 가도록 뇌가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뿐이라고. 네 감정은 가짜야.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만들어낸 자극일 뿐이야.’
젠킨스는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합리화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좀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질투 같은 건 패배자들의 전유물이다. 그는 언제나 최상단의 왕좌에 앉아서 패배자들을 굽어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싸구려 감정은 용납할 수 없다.
불편한 마음 때문에 심장이 빠르게 고동쳐서 걷기는 어제보다 더 힘들었다. 내야석을 두 번 왕복했을 때, 젠킨스는 타임아웃을 외치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헤엑, 헤엑…….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그를 테라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괜찮으세요, 젠킨스 씨?”
“허억~ 나는…… 후우~ 괘, 괜찮아……. 하아, 하아~ 그냥, 후우~ 조금만 쉬면 돼. 하아~ 그러니까…….”
젠킨스는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는 표시를 하려 했는데, 숨이 너무 차올라서 오히려 꼴이 더 우스워졌다.
“알았어요. 말씀을 하지 마시고 숨을 크게 쉬어요.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흐음~ 코로 들이마시고, 후우~ 입으로 내뱉고.”
테라가 차분하게 호흡하는 요령을 일러준다. 그녀의 동작을 따라 하며 겨우 진정이 된 젠킨스가 물었다.
“무슨…… 전문 개인 트레이너처럼 말하는군. 테라 양도 운동을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계속 운동은 했어요. 안 그러면 체력이 달려서 콘서트를 할 수 없으니까. 자, 물 한 모금 드시고 이제 일어나세요. 어제보다 페이스가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테라의 평가에 젠킨스는 또 은근히 심통이 났다.
너 때문이야! 네가 그 인상 더러운 놈에게만 홀려 있으니까 내가 신경이 쓰여서 그러는 거잖아! 원인은 너라고!
젠킨스는 마음속으로 매섭게 쏘아주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싫다. 하지만 과자를 얻어먹고, 테라와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젠킨스는 계속 꿍얼거리면서도 내야석 통로를 천천히 걸어가 외야석과의 경계를 찍고 돌아섰다. 운동을 재개한 지 30여 분쯤 되었을 때, 멀리 외야석 흡연 구역에 흉터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걷던 젠킨스가 그를 알아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군, 테라 양의 피앙세. 치명적인 남자.”
테라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맞다. 며칠 새 몰라볼 정도로 야위기는 했어도 그 남자다.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남자는 어지간히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어서 어디를 얼마나 다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프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테라는 자기도 모르게 젠킨스의 등 뒤에 바짝 달라붙어 숨었다. 왠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건 너무 비참한 기분일 것이다.
후우~ 테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강했던 사람이…… 도대체 건대 쉘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지금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빚을 진 덕분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빌라에 갇혀 꼼짝없이 죽게 될 것이라 믿고 있을 때 자신을 구해준 군인들, 그리고 여기 잠실을 지켜주고 있으면서도 틈만 나면 한 번씩 간식을 쥐여 주고 가는 군인들.
그녀는 그 고마운 사람들 덕에 아직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강 실장’이라는 사람은 좀 다르다. 그는 테라가 이 세상에서 가장 원치 않은 방식으로 농락당하고 살해당할 뻔했을 때, 구원의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테라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뭐하고 있어, 테라 양? 남자 친구에게 인사를 해야지. 하이~ 하면서 손을 흔들어주라고.”
테라가 숨으려는 걸 눈친챈 젠킨스는 짓궂은 장난을 치려 들다가 멈칫했다. 테라의 눈가가 젖어 있다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젠킨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놀리려고 했던 건데, 오히려 자신이 기분을 완전 잡쳤다. 과다 분비된 바소프레신의 영향으로 독점욕이 끝없이 샘솟았다.
‘위대한 TJ를 바로 앞에 두고 있으면서 저런 시시한 불량배를 위해서 운다고? 나를 위해서 울란 말이다!’
젠킨스의 감정은 뇌 속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런 말들을 내뱉어봐야 자신의 꼴만 우스워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야 이득을 취할 수 없다.
젠킨스는 고함을 치는 대신 아주 자상한 목소리를 꾸며내 속삭였다.
“아…… 많이 안타까운가 보군. 테라 양, 울지 마. 괜찮아. 저 정도 상처는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어. 그렇게 속상해하는 걸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아파.”
“굉장히…… 많이 다친 것 같아서 걱정이 돼요…….”
테라가 반응을 보인다. 젠킨스는 인자한 거짓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중상이야. 이렇게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라면 평생 후유증을 가지고 살아야겠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저렇게 절룩거리며 겨우 걸어 다니겠지. 자세가 불안정하니까 관절은 점점 더 상하게 될 테고. 하지만 JL 연구소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 거기엔 인간을 치료하기 위한 모든 약물과 전문가들이 최고급 설비와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까. 테라 양, 약속해 주지. 내가 저 사람을 JL로 데려가서 치료해 주겠어. 귀하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으로 완벽히 되돌려 놓을 테니까 지켜봐 줘.”
“저분이 가려고 할까요? 젠킨스 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하하,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하면 안 가겠지. 하지만 테라 양도 함께 간다고 하면 그때는 믿지 않겠어?”
그 말을 들은 테라가 눈가를 찍어내더니 젠킨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젠킨스 씨는 정말……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군요. 저는 JL 연구소로 따라가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게…… 사람이 속상해하고 있을 때, 그 약해진 마음을 이용하려고 하지 마세요. 제가 늘 불신하고 있기를 바라세요?”
젠장, 들켰군. 너무 성급하게 접근했던 게 문제였다. 좀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가 그녀가 방법이 없냐고 매달릴 때 미끼를 던졌어야 했는데…….
젠킨스는 혀를 찼다. 하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허허, 난 그냥 거기에 방법이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해 줬을 뿐이야. 내가 테라 양을 JL로 데려간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면역자라서? 이봐, 제발 이러지 말라고. 테라 양도 자신이 어떤지 잘 알고 있잖아. 귀하는 아나필락시스 진이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타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면역자로서는 가장 흔한 케이스라고. JL은 테라 양의 타입보다 더 희귀한 필락시스 진의 데이터조차 추가 수집할 필요가 없어. 이미 충분한 실험 결과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 그들의 항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걸 잘 안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왜 테라 양에게 그런 욕심을 부리겠나? 이건 그냥 순수한 호의였어. 내가 무료하고 배고플 때, 함께 간식과 이야기를 나눈 친구에게 베푸는 호의.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니, 오히려 내가 기분이 상하는군. 어쩌면 테라 양은 저 남자를 돕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어.”
잔뜩 위엄을 섞어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테라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테라가 흡연 구역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젠킨스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물주가 없으면 산책도 없는 거다.
“전 오전 산책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조금…… 정신이 없어서. 이거 드시고 이따가 오후에 또 만나서 걸어요. 그때쯤이면 저도 진정이 될 테니까.”
테라는 과자 봉지 하나를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이건 모자라……. 이 정도로는 점심 식사까지의 그 긴 시간 동안 밀려올 공복감을 못 달랜다고…….
젠킨스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 과자를 받았다. 하지만 테라는 머리를 짚으며 뒤돌아 가버렸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젠킨스는 과자를 우적거리며 걷는 동안 내내 마음속으로 불평을 했다. 이보다 적어도 세 봉지 정도는 더 받아먹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그의 오전 간식이 30퍼센트 이하로 삭감되어 버린 거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고, 그저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는데…….
젠킨스가 그렇게 툴툴거리며 자리로 돌아왔을 때, 문제의 흉터남자는 어느새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네놈이 나타나고 나서부터야!
젠킨스는 원망의 감정을 담아 민구를 노려보았다.
저놈 때문에 테라의 마음이 불편해졌고, 덕분에 자신은 간식을 잃었다. 게다가 이 아늑한 보금자리도 저놈 때문에 더럽혀진 기분이다. 특히 저 담배 냄새.
“푸우~”
젠킨스는 자리에 앉으며 담배 냄새로 괴롭다는 표시를 노골적으로 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코 주변에서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도 놈은 전혀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
미친놈.
젠킨스는 민구를 향해 마음속으로 욕을 했다. 저렇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위해 일부러 그 먼 데까지 가서 그 비싼 담배를 태워 없애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담배는 잠실 쉘터 내에서 대단한 사치품이니까……. 보급되는 물품이 아니어서, 담배를 손에 얻으려면 군인을 통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금은 젊은 남자들이 확 줄어드는 바람에 값이 조금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싸다. 담배 한 개비를 구하려면 건빵 대여섯 봉지 이상은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젠킨스는 안 보는 척하면서 계속 민구를 노려봤다. 과자를 다 먹어버렸다는 사실도 기분이 상하지만, 다른 것보다도 아까 테라의 그 눈물이 가장 화가 치솟는 부분이다.
대체 이놈과 무슨 관계인 걸까?
‘이놈이 발가락의 상처를 보여 달라고 하면 테라는 결국 발가락의 붕대를 풀어 보여줄 테지? 고개를 모로 틀고 부끄러워하면서 말이야. 흥, 더럽고 치사하군. 나는 그렇게 애원을 해도 안 되는데.’
젠킨스가 그렇게 유치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민구는 상의를 벗어놓고 붕대를 풀었다. 하루에 두 번은 소독을 하라고 했으니 낫고 싶다면 순순히 듣는 수밖에 없다.
붕대를 풀어내니 총상이 드러난다. 불로 지져 일그러진 피부는 아직도 속살처럼 불그스름하다.
‘젠장, 어지간히 안 낫는군.’
소독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민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친 부위를 제대로 보려고 몸을 틀면, 반대쪽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붕대를 감는 것은 더 어려워서, 제법 공을 들여 감았는데도 힘없이 아래로 주르르 흘러 내려가 버린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혼자 이 상처를 치료하는 건 처음이다.
양쪽 옆구리가 다 당기는 통에 간단한 동작조차 여의치 않아서 민구는 10분 이상 진땀을 빼며 엉켜 버린 붕대와 씨름을 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이 짜증스럽다. 이래서야 이 짓을 하루에 두 번씩 어떻게 해낼지 막막하다.
“후우우~”
민구는 한숨을 내쉬며 잠시 손을 멈췄다. 붕대도 엉망으로 얽혔다. 그때까지 계속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젠킨스가 더 못 봐주겠는지 몸을 일으켜 다가갔다.
민구의 앞에 쭈그려 앉은 젠킨스가 차오르는 숨을 씩씩거리며 제안한다.
“Ok, Mr. Smoker! That’s it. I can’t stand watching you wrestle with this stupid bandage anymore. It’s…… just driving me crazy. Look at the dirty bandage you’re massed up! It’s not even sterile now. So…… here’s the deal. You pay me a cigaret in advance, then I will put a dressing around your waist. You got me?(됐어, 흡연자 양반! 거기까지. 그 붕대 가지고 바보짓 하는 거 더는 못 봐주겠다고. 보고 있는 내가 미치는 것 같아. 당신이 더럽혀 놓은 이 붕대 좀 봐! 이건 이제 더 이상 살균되었다고 할 수도 없어. 그러니까…… 제안을 하나 하지. 당신이 나한테 담배 한 개비를 먼저 줘. 그럼 내가 허리에 붕대를 감아주지. 알아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