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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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텁! (4)
2022.05.25.
진우가 애써 못 본 체하고 있는데도 녀석은 여전히 배를 까고 누운 채로 몸과 머리를 홱홱 비틀어가며 진우를 바라보았다.
저 눈빛…… 부담스럽다. 진우가 묵묵히 전투화 끈만 조이자 놈은 좀 더 본격적으로 보채기 시작했다. 앞다리를 뻗어 진우의 손을 잡아끌더니 제 배 위에 얹어놓는다.
결국 진우는 놈의 배를 만져 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살살 쓰다듬다가 북북, 손가락에 힘을 줘 두터운 털가죽을 긁어주니, 녀석은 천국이 보인다는 듯이 헥헥거렸다. 녀석이 하는 짓 때문에 진우의 입에서도 헛웃음이 터졌다.
“너, 진짜 엄청 붙임성이 좋구나.”
놈을 쓸고 있다 보니 어릴 때 키웠던 개들 생각도 났다. 물론 그 개들의 무게를 모두 다 더해도 지금 이 녀석의 반 정도나 겨우 나갈까 말까 하겠지만.
“그러게. 좋구나, 이런 것도…….”
진우가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삼척 발전소에서 탈출한 이래 그는 늘 외롭고 혼자였다. 하 중위를 제외하면 살아 있는 뭔가와 평화로운 교감을 하는 것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러면…….”
좀 더 다정한 태도로 녀석의 털을 쓸어주던 진우의 손길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었다. 어차피 헤어져야 하는 사이인데 이렇게 정이 들어봐야 곤란하다는 걸 깨달은 까닭이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계속 숨어 다녀야 한다. 소리도 내지 않아야 하고, 모습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먹을 것도 마음대로 구하지 못한다.
이 모든 제약을 수행하는 데 개는 방해되는 존재다. 아무 때나 짖고, 많이 먹는다. 당장은 물이라도 넉넉하지만, 일단 길을 나서면 언제 수통을 채울 수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야 입에 먹을 걸 넣어줬으니까 이렇게 헥헥대고 있지만, 막상 식량이 바닥나 버렸을 때 녀석이 어떻게 돌변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한마디로 지금 진우는 이렇게 큰 개를 거둘 입장이 못 되었다.
“그만하자. 정들면 서로 힘들다.”
냉정해지기로 마음먹은 진우는 녀석의 가슴팍을 톡톡 두드려 주고 손을 뗐다. 대신에 빨리 가라고 등을 떠미는 짓도 그만두기로 했다.
이 산이 자신의 소유물도 아니고, 물웅덩이도 혼자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녀석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이 떠날 수 있을 때, 그냥 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찰을 좀 해야겠다. 혹시 길이 뚫린 곳이 있는지……. 목욕하고 너랑 노느라고,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네.”
진우가 손을 떼고 배낭을 뒤져 망원경을 꺼내자 개도 벌떡 몸을 뒤집고 일어났다.
녀석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진우는 권총집에 권총을 넣고, K―2 멜빵을 멨다. 그러고는 나무 사이로 걸어 나가 산 아래쪽의 동향을 살폈다.
망원경에 눈을 붙인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옆에서 헥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놈, 또 따라왔다.
녀석은 진우의 바로 곁에 아주 의젓한 자세로 우뚝 서 있었다.
마치 원래 자신의 임무가 정찰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경비견이라는 듯이. 그러는 녀석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가 계속 짐 놔둔 데에 앉아 있었으면 나도 불안하기는 했겠다. 가방이고 뭐고 그 튼튼한 이빨로 다 찢은 다음에 전투식량 꺼내 먹을까 봐.”
진우가 자리를 옮겨 다니며 동서남북을 두루 살펴보는 동안에도 녀석은 여전히 쫄래쫄래 뒤를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특별히 신경이 쓰일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진우가 걸으면 따라 걷고, 진우가 멈춰 서서 망원경을 보면 녀석도 같은 방향을 보며 서 있다.
“붙을 거면 빨리빨리 붙고 끝내라. 애먼 사람 갈 길도 못 가게 붙잡아놓지 말고.”
정찰을 마치면서 진우는 서쪽의 병사들을 향해 닿지도 않을 말을 건넸다. 주변의 동향은 그가 아침에 살펴봤을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태다.
지금의 화력으로도 이미 충분히 완전 제압이 가능할 것 같은데, 서쪽 놈들은 계속 뜸을 들이고 있었다.
물웅덩이로 돌아가는 길, 개는 앞장서서 걸어가며 헤딱헤딱 뒤를 돌아본다. ‘이 길로 가야 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 너 길 잘 알아서 좋겠다.”
진우가 건성으로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녀석이 날카로운 척을 하며 고개를 척 치켜든다. 그러더니 전속력으로 산길을 내달렸다.
어? 진우는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며 영문도 모르는 채 녀석을 쫓아 뛰었다.
저 새끼, 저거 왜 저러지? 무슨 일이지?
진우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봐야 대형견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와 녀석의 거리는 순식간에 쫙쫙 벌어졌고, 마침내 놈은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체 무슨 말썽을 부리려고?
진우는 숨 가쁘게 달리며 마음속으로 사정했다.
너, 진짜 내 가방은 안 돼! 차라리 먹을 걸 꺼내 달라고 해! 줄게! 준다고!
얼! 얼!
녀석의 짖는 소리, 그리고 다른 개들의 짖는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진우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웅덩이 부근에 도착했다. 거기엔 개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장 개가 진우의 짐을 등진 채 으르렁거리고 있고, 나머지 놈들은 한쪽으로 몰려서서 이를 드러냈다. 낯이 익은 놈들이다. 아까 진우가 물속에 있을 때, 그를 둘러싸고 있던 그놈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멍!
개중 덩치가 커다란 놈이 한 발 앞으로 몸을 내밀려다가 대장 개의 기세에 눌려 뒤로 물러섰다.
전투력으로는 대장 개 쪽이 월등하겠지만, 상대는 수가 많다. 덕분에 양쪽 모두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팽팽하게 맞서고만 있는 중이다.
철컥.
대치가 길어지는 걸 원치 않은 진우가 권총을 꺼내 슬라이드를 뒤로 당기며 쇳소리를 냈다. 들개 떼들의 시선이 진우 쪽으로 향했다.
진우가 햇빛에 총을 반사시키자 놈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녀석들도 총소리가 났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거다.
얼!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밍기적거리던 녀석들을 향해 대장 개가 달려든다.
후다다닥, 들개들은 아까 총소리를 들었을 때와 똑같이 또 떼를 이루어 숲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헥― 헥―
아직 흥분을 다 가라앉히지 못한 대장 개는 놈들이 달아난 방향을 노려보고 서서 가슴과 배를 들썩이고 있다.
휴우우~
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총으로 위협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발사를 했다면 여기에 더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피도 안 보고, 큰 소리도 안 낸 채 끝을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왜 또 왔지? 저 새끼들…….”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진우가 만들어놓은 은폐물 덤불과 나뭇가지가 엉망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그리고 검은 가방에는 개새끼들이 뜯으려 했던 이빨 자국과 침이 잔뜩 묻은 채다.
다행히 질긴 재질이어서 단번에 뜯겨 나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부근에 숨어 있던 들개들이 진우와 대장 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식량을 훔쳐가 보려고 내려왔던 모양이다. 음식 부스러기를 좀 남겨뒀던 게 실수였다.
“하아~ 저놈들이 온 줄 알고 뛰어온 거야? 이걸 지켜주려고?”
진우는 아직도 우뚝 버티고 서 있는 대장 개에게 다가가 놈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녀석은 금방 온순해져서 진우의 손바닥을 널름널름 핥는다. 진우의 왼손은 녀석의 침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하는 거냐…….
진우는 낑낑거리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겨우 딱딱한 과자 쪼가리 몇 개 얻어먹었다고 이렇게까지 잘해준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생각해 보니까 개들에게 포위를 당했을 때도 이 녀석이 구해줬다. 처음부터 놈은 자신을 주인이나 친구로 대했다.
“혹시 내가…… 개들이 보기에는 엄청 멋있게 생긴 얼굴일까?”
진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리고는 녀석과 함께 짐을 놔둔 바위 앞으로 걸어와 배낭을 벗었다. 그러고는 전투식량을 꺼냈다.
헥헥헥헥.
녀석의 헐떡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고 보니 너는 저놈들처럼 이빨로 가방을 뜯지도 않았었네. 음식이 여기 있는지 빤히 알면서도 내가 꺼내 줄 때까지 기다렸고. 너 엄청 예절 바른 녀석이구나……. 무슨…… 개 학교 같은 곳에서 교육을 받았냐?”
진우는 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녀석에게 던지고, 비닐을 찢어 반으로 나뉜 초콜릿 바 한쪽을 내밀었다.
텁!
녀석은 맨 처음 그랬듯이 진우의 손에서 직접 음식을 받아먹으며 와구와구 씹어 댔다.
“개는 초콜릿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가? 고양이인가? 아, 근데 이 침은 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다.”
개 침으로 범벅이 된 손을 옷자락에 닦아낸 뒤, 진우도 초콜릿 바를 입에 넣었다. 점점 이놈이 좋아지려고 한다. 매력적인 점이 많은 개였다.
헥헥.
진우가 아직 한입도 채 삼키지 못했을 때, 녀석은 벌써 자신의 몫을 다 먹어 치우고 햄에 코를 박고 있다.
“이것부터 뜯으라고? 햄?”
얼!
진우의 물음에 녀석은 짧게 대답한다. 뭐, 어차피 먹을 거니까 순서 정도야 녀석이 원하는 대로 따라줘도 괜찮다.
햄도 절반, 빵도 절반, 강정도 절반……을 먹어야 맞는 건데, 진우의 턱과 이빨은 녀석처럼 강하지가 못했다.
결국 진우는 전투식량의 3분의 2가량을 녀석에게 내줬다. 단지 먹는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칵! 칵!
녀석은 빵을 정말 맛나게 먹으며 아직도 햄을 씹고 있는 진우를 힐끔거렸다. 훗, 진우는 코웃음을 지으며 남은 햄 조각을 내밀었다. 녀석은 혀를 한 번 날름해서 햄 조각을 받아먹는다.
“그래, 그거는 네가 다 먹어라. 나는 인삼 먹어도 되니까.”
진우는 들것의 나일론 그물 매듭을 풀고 가방에 넣어놨던 인삼 보따리를 꺼냈다. 사실 영양학적인 밸런스만 아니라면 인삼이 훨씬 더 고급 식량이다. 먹기도 편하고.
전투식량 따위 개나 주라지.
그런데 진우가 인삼 몇 뿌리를 꺼내자 녀석의 주둥이에는 또 침이 고인다.
“이것도 먹는다고? 이거 써. 무지하게 쓴데.”
아니? 안 그럴 것 같은데?
녀석의 열정적인 얼굴은 그런 말을 아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진우는 시험 삼아 작은 뿌리 하나만 내밀었다.
아작, 아작.
녀석은 아주 맛나게 인삼을 씹었다.
“근데 이게 다야, 오늘은.”
한 뿌리를 더 주고, 자신도 인삼을 씹으면서 진우가 말했다.
“언제 이 산에서 나가게 될지 모르니까 음식을 아껴야 하거든. 그러니까 배가 부르지는 않겠지만, 좀 참아야 돼.”
오늘 하루만 생각한다면 몇 봉지 더 인심을 써도 되겠지만, 처음부터 한계를 분명히 정해두는 게 낫다.
진우가 이제는 음식이 없다는 표시로 손을 탁탁, 털자 녀석은 더 조르지 않고 웅덩이로 걸어가 물을 할짝거린다. 그러고는 진우의 곁으로 와서 다시 엎드렸다.
아무 생각 없이 녀석의 머리와 가슴팍을 쓸던 진우는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고 손끝을 움츠렸다.
이래도 되는 걸까?
말로는 데려갈 수 없다고 하면서 정작 하는 짓은 정반대로 정을 쌓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애교를 부리고, 나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녀석이니까 귀여워지는 게 당연하다. 이제는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투투투투― 타타타타― 투투둑― 탕― 탕― 투투투투투―
그렇게 진우가 고민에 빠진 채 녀석을 쓸어주고 있을 때, 또 멀리서 총성이 들려온다. 이번에는 동쪽이다. 진우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전투지만, 이렇게 총성이 정신없이 울려 대는 동안이 진우에게는 사격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갑작스런 진우의 행동에 멍해져 있는 개를 내버려 두고 저격소총과 탄창, 망원경을 챙긴 진우는 나무숲 밖으로 뛰어나갔다. 당연히 개도 쫓아온다.
“야, 너 이거 아까 그 권총이랑은 달라. 훨씬 더 큰 소리가 나는데…….”
언덕 위 덤불 숲 사이에 양각대를 펼치고 자리를 잡은 진우가 자신의 발치에 앉아 있는 녀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는 아무 대답도 없다. 뭐, 달리 어떻게 설명을 할 방법이 없어서, 진우는 그냥 사격을 하기로 했다.
만일 녀석이 총소리에 놀라 도망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자신은 계속 총성 속에 살게 될 테니까, 그걸 버티지 못하는 놈과는 함께 다니지 못한다.
진우는 망원경으로 건너편 산에서 적당한 표적을 골랐다.
“820미터…….”
진우는 망원경의 윗부분에 표시되는 거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엎드린 곳에서 산 하나를 지나 다음 산의 중턱에 있는 고목이 표적이다. 물론 망원경에서 눈을 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망원경을 내려놓은 진우는 저격소총의 개머리판에 어깨를 바짝 붙이고 볼을 가져다 댔다. 개머리판 측면에는 간단한 정비 도구가 든, 솜 가방 같은 것이 부착되어 있었다.
발사 시 얼굴에 전해지는 마찰과 충격을 줄여주기 위한 장비 같은데, 이놈의 높이가 미묘하게 진우의 얼굴 크기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조준경을 보는 각도가 자꾸 틀어지게 만들었다.
조준경 위치를 조절하는 건 복잡해 보여서 어제 진우는 이 솜 가방 위에 나일론 로프를 두어 번 친친 감아 높이를 올렸었다.
그 조정 효과는 확실해서 조준경 내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사라졌다.
“오늘은 좀 맞춰보자.”
높이를 가늠하는 수평선을 한 칸 아래로 돌린 진우는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투투투투― 타타타타―
아직도 동쪽 산에서는 쉼 없이 총성이 울려오고 있다. 연습할 시간은 충분할 것 같다.
타앙―
첫 번째 발이 날아가고 반동 때문에 잠시 총 끝이 들렸다. 표적에 맞았는지 확인하기 전에 진우는 뒤의 개부터 돌아보았다.
진우의 걱정과 달리 녀석은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 정도면 정말로 귀가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 꽤 많이 어긋났네. 이거, 뭔가 거리 별로 맞추는 요령이 있을 것 같은데…….”
망원경으로 목표물을 확인한 진우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그가 쏜 총알은 표적으로부터 2미터 이상 아래쪽을 때렸다.
800미터에 한 칸 아래 조정은 정답이 아닌 것 같다. 이전에는 한 번도 쏴본 적이 없는 먼 거리여서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린다는 게 영 쉽지 않았다.
“그럼 원래대로 놓고 때려볼까?”
진우는 다시 눈을 조준경에 붙이고 숨을 멈췄다. 아주 조금만 떨려도 표적에 이르러서는 확 궤도가 틀어져 버린다.
타아앙―
또다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총알은 이번엔 그가 정했던 목표의 좌측을 맞췄다. 총구가 흔들리거나 한 건 아니었다.
“바람 문제인가 보네.”
탄피를 주워 주머니에 넣으면서 진우는 목표에서 벗어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그가 엎드려 있는 곳에는 바람이 불지 않지만, 표적 주변의 나뭇잎은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중간 지점의 바람 사정은 또 모른다.
말이 820미터지, 축구장 여덟 개가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엄청나게 멀다. 날아가는 동안 바람의 영향을 받을 게 분명하다.
그런 변수들을 다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이 저격소총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갈 길이 멀구나.”
진우는 다시 조준을 바꾸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요란한 총성과 함께 날아간 총알은 표적에서 50센티 정도 떨어진 곳을 박살 냈다.
무슨 차이지?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뭔가 명확하지가 않다. 역시 이 거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너 진짜 괜찮냐?”
아직도 얌전히 앉아 있는 개에게 진우가 물었다. 녀석이 좋아하는 엉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도 킁킁거리지조차 않고 얌전히 잘도 기다린다.
마치 진우가 지금 하는 게 사격이고, 사격을 할 때에는 사수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개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두 발만 더 쏠게.”
진우는 녀석에게 미리 일러주고 신중하게 조준을 했다. 좀처럼 가져보기 어려운 총을 겨우 손에 넣었는데, 이걸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면 너무 아쉬울 것이다.
후우, 후우, 후우우~
진우는 아주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저녁 다섯 시가 넘어가자 슬슬 서산에 해가 기울었다. 진우는 아직 주변이 보일 때 개와 함께 오늘의 저녁 식사를 나눠 먹었다.
그러고는 나무 은폐물 뒤 바위에 기댄 채 어둠이 산을 덮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헥헥헥.
그의 곁에 엎드려 있는 녀석이 헐떡이는 소리가 낮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뭐랄까, 뭘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니까 좀 무섭다.
“거기에서 자. 더 가까이 오지 말고. 잠은 각자 편안하게 자자, 우리.”
자꾸 다리 쪽으로 달라붙고 싶어 하는 개를 밀어내면서 진우는 거리를 강조했다. 그렇게 하는데도 여전히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이윽고 사방이 완전하게 암흑처럼 변했을 때, 진우는 K―2에 붙은 적외선 사이트를 통해 개를 한번 살펴봤다.
낮의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억지로 헤어졌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연인을 보듯이.
‘잠들어도 되는 걸까?’를 고민하던 진우의 눈꺼풀이 감기고, 고개가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꾸벅꾸벅 조는 그를 보면서 개도 크게 하품을 한다.
그렇게 둘은 잠에 빠져 들었다. 밤이 깊어지고, 기온은 내려간다.
“으으으~”
차가워진 공기 때문에 잠에서 반쯤 깬 진우는 필사적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움츠려 봐도 추위는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다.
그때, 녀석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진우의 옆구리에 머리를 붙인다. 따뜻한 기운이 훅, 전해진다.
자연스럽게 그 온기에 끌린 진우는 녀석의 목을 쓰다듬다가 결국 꼭 끌어안았다. 따뜻하다. 그리고…… 냄새도 정말 무지하게 난다. 잠에 취해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진우가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너…… 내일은 목욕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