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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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텁! (3)
2022.05.24.
놀랄 만한 스피드.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진우는 손을 뺄 틈도 없었다. 그저 헉, 하고 짧게 숨넘어가는 소리만 터져 나왔다.
‘손가락이 잘리는 건가?’
놈의 벌어진 주둥이가 확 뻗어올 때, 진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녀석은 정확하게 초콜릿 바만을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통째로 받아먹었다.
진우의 손끝, 바로 몇 밀리 앞쪽을 녀석의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이 지나쳤고, 진우의 손가락에는 끈적한 침이 잔뜩 묻었다. 컴퓨터처럼 대단한 정확도다.
“하아~ 하아~”
진우는 놈의 침이 묻은 손가락을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태평하게 초콜릿 바를 씹어 먹고 있는 놈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놀랐잖아, 이 새끼야! 쏠 뻔했다고!”
야단을 쳐봐야 어차피 놈은 듣는 척도 않는다.
아그작, 아그작!
오로지 초콜릿을 씹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하긴 총소리도 못 듣는 놈인데…….
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편 물가로 걸어갔다.
저놈이 처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빨리 옷을…… 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대장 개는 또 자신을 따라 움직인다.
초콜릿으로 새까맣게 물이 든 채 축 늘어진 혀는 입안에 음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벌써 다 먹었다고? 그 딱딱한 걸?”
‘너 암만 대형견이라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고 중얼거리던 진우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리를 늘어놔 봐야 자신만 추워질 뿐이다. 진우는 얼른 두 번째 음식을, 초콜릿 바보다 더 큰 빵을 꺼내 이로 물고 비닐봉지를 찢었다.
헥헥헥, 녀석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이미 한 번 놀라본 진우였기에 이번에는 음식을 흔들지 않고 곧바로 멀리 집어 던졌다.
“자! 얼른 가서 먹어! 빵이야!”
하지만 놈은 움직이지 않는다. 빵이 날아간 쪽으로 고개를 돌려 위치만 파악해 둔 대장 개는 다시 진우를 한 번 보고, 바위 위에 놓인 전투식량 봉지를 쳐다본 다음, 헥헥댔다. 그 ‘헥헥’은 ‘이거 내놔!’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왜 안 쫓아가?”
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묻던 진우가 스스로 답을 냈다.
“……던지지 말라 이거야?”
놈은 여전히 헥헥대며 기다리고 있다. 혀가 삐져나온 입술 사이로는 침이 길게 늘어지다가 뚝 떨어지며 바닥을 적셨다. 배가 고픈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그럼 바닥에 놓을게.”
이번에는 햄과 강정을 집었다. 두 개니까 시간도 조금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봉지를 뜯어낸 햄과 강정을 겹쳐 바닥에 놓으려는 순간…….
텁!
놈은 또 벼락같이 달려들어서 음식물을 받아먹는다.
이번에도 아주 아슬아슬한 데까지 잘도 깨물고 지나갔다. 놈의 입술이 스친 손가락을 보며 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침도 어지간히 많이 나오는 놈이다.
와작! 와드득! 와작!
빠르다. 진우는 놈의 속도에 감탄하면서 재빨리 바위 위로 몸을 끌어 올렸다. 햇살 속으로 나오는 것만 해도 한결 살 만했다.
진우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얼른 팬티와 K―2를 집었다. 그러고는 두어 발짝 뒤로 뛰어 물러났다.
여기라면 놈이 달려들더라도 총을 들어 어찌어찌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두 가지 행동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워야 했다. 언제 놈이 확 덮쳐올지 몰라서 무서웠다.
그런데 정작 녀석은 음식물을 꿀꺽 집어삼키고도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버렸다. 서둘러 팬티를 입느라 비틀거렸던 진우는 개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혼자서 두려워하고 온갖 생 쇼를 다 했는데, 저 개새끼는 그저 세월 좋게 태평하기만 하다.
얼!
놈은 진우를 향해 낮고 짧게 짖은 뒤, 전투식량 봉지를 힐끔 쳐다본다. 봉을 만났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후우~
진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놈을 노려보다가 새 전투식량을 한 봉지 뜯었다. 아까 다른 들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 댈 때 이 녀석이 조용히 만들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 정도 밥값은 이미 한 셈이다.
“일어서지 마. 덤벼들지도 말고.”
녀석이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진우는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비닐을 뜯은 고형 어포를 천천히 내밀자 놈도 천천히 주둥이를 벌리고 다가온다. 서로에게 아주 조금, 신뢰가 생겼다는 의미일까.
텁!
고형 어포의 끝부분을 문 놈은 진우가 손을 떼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그걸 입안으로 당겨 넣고 씹었다.
어제 진우가 먹었을 때는 한동안 입안에 물고 있어야 겨우 좀 씹히던 음식인데, 이놈은 다짜고짜 씹기 시작한다. 게다가 순식간에 다 발기발기 찢어서 잘도 먹고 있다.
“……천천히 먹어.”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지만, 놈이 하도 급하게 씹고 삼켜 대니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진우는 놈이 어포를 다 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단팥 블록을, 강정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형 밥인지 떡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내밀었다. 이것 역시 딱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음식이었다.
와그작, 와그작!
그러나 그 떡조차 놈의 강철 같은 이빨 앞에서는 새우깡처럼 맥없이 부서져 나간다. 그 가공할 씹는 힘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으스스해진 진우는 뒤로 물러나며 바지를 집어 올렸다.
헥헥헥―
바지에 다리를 꿰고 있을 때 녀석은 또 혀를 내보였다. 개들끼리 빨리 먹기를 겨루는 대회가 있다면 출전시켜 보고 싶은 놈이다. 진우는 지퍼를 올린 뒤, 왼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이제 없어. 봐. 다 먹었지?”
놈이 고개를 갸웃갸웃거린다. 진우는 오른손으로 여전히 총을 꽉 쥔 채 왼 손바닥을 흔들었다.
“없다고, 인마.”
납득을 했는지 녀석은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그래, 잘한다. 이제 가라.
진우는 꼬리가 뭉뚝한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주문은 듣지 않았다. 녀석은 아까 진우가 던진 빵을 물고 다시 웅덩이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아예 엎드려서 우둑! 우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딱딱한 빵을 씹어 먹는다.
이상한 놈일세……. 아까 던졌을 때는 거들떠도 안 보더니. 저 빵은 저금해 놓은 셈 쳤던 건가? 뭐, 더 얻어먹을 거 없으면 가겠지…….
진우는 놈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얼른 웃옷을 걸쳤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땀에 찌들어 뻣뻣해진 옷이지만, 그래도 반갑다. 어찌나 물속에서 떨었던지, 이 뙤약볕 아래에서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땀 한 방울이 안 난다.
헥헥헥.
또 ‘헥헥헥’이다. 그새 빵을 다 해치운 대장 개가 해맑은 눈빛으로 진우를 돌아보았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이제 진짜 없으니까 가. 네 부하들 따라가야 할 것 아냐.”
놈이 배낭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다가 진우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없다고? 그럼 이건 뭔데?’라고 묻는 것 같다. 왠지 거짓말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진 진우가 변명을 했다.
“나도 그거 먹고 살아야 돼. 너 배불리 먹이려면 끝도 없어. 거기까지야. 어휴 참, 나 지금 뭐하냐? 개랑 말싸움을 하고 있네.”
녀석을 설득하려던 자신이 바보 같아서 진우가 입을 다물자 개는 천천히 진우를 향해 걸어왔다.
왜 또…….
진우는 도망치고 싶었다.
덩치라도 좀 웬만해야지, 이건 무슨 송아지만 한 게 성큼성큼 다가오니 경계를 안 할 수가 없다. 진우는 총구를 녀석에게 겨누며 가능한 한 위엄 있게 말했다.
“더 오지 마. 거기 서.”
물론 상대는 애초부터 말을 듣는 놈이 아니었다. 놈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한 발짝 더 다가섰고 진우는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놈이 침을 뚝뚝 떨어뜨리며 또 한 발짝 앞으로. 그러면 또 진우는 뒤로 한 걸음.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마침내 놈이 먼저 패배를 인정했다.
끄으응~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앓는 소리를 낸 녀석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목을 쭉 뺐다.
굵고 빨간 가죽 목걸이가 걸려 있다. 목걸이의 질로 보아 누군가 꽤 신경을 써서 키우던 놈인 모양이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주인도 아마 죽었겠구나. 그래도 너는 용케 살아남았네.”
끄으응―
놈은 한 번 더 앓는 소리를 내며 쭉 뺀 목 사이로 발을 올려 목걸이를 긁었다. 그 주변만 가죽이 다 해져 있다. 괴로워 보인다.
“……목걸이를 빼달라고?”
얼!
총소리도 못 듣던 놈이 그 말에는 고개를 반짝 들고 대꾸를 한다.
아, 어쩌지?
진우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보니 놈의 굵은 목에 비해 목걸이가 꽉 조여 보이기는 했다.
저걸 빼주면 놈은 한결 살 만할 거다. 그런데 그러려면 놈의 곁에 바짝 붙어서 두 손을 다 써야 한다.
괜찮을까? 내가 저 새끼를 언제 봤다고…….
진우는 고민했다. 병원도 없고 약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크게 물리기라도 하면 영 골치가 아파질 것이기 때문이다.
끄으응~ 끙, 끙.
녀석은 진우가 갈등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양 더욱 애절하게 낑낑대기 시작했다. 소리만 들어보면 아주 다 죽어가는 것 같다.
조금 전까지 뻔뻔한 얼굴로 음식을 잘도 처먹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좋은 연기였다. 어찌나 애절한 연기였는지, 진우조차도 결국 놈을 돕기로 했다.
“그럼,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안 빼줄 거야.”
진우는 엎드려 있는 녀석을 향해 맨발로 살금살금 다가가며 말했다.
끄응, 끄응.
진우가 천천히 뒤로 돌자 녀석은 눈으로 진우를 쫓으면서 입으로만 건성건성 앓는 소리를 냈다. 이래서 이놈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가 없는 거다.
“……만진다. 놀라서 지랄하지 마.”
놈의 등 뒤로 가서 무릎앉아 자세를 취한 진우가 조용히 말했다. 개는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았다.
놈의 빽빽한 털을 살살 쓰다듬는 동안 진우는 여전히 오른손에 K―2를 꽉 쥐고 있었다. 사실은 쏠 용기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하는 건지, 그 자신도 설명하기 어렵다.
등을 쓸어주자 녀석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헥헥댔다. 진우는 조금씩 목덜미 쪽으로 손을 더 뻗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손이 목걸이에 닿았다.
“어휴, 완전 뻑뻑해.”
놈의 개목걸이는 보이는 것보다 더 꽉 조여져 있었다. 털 안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모양을 보니, 대충 왼손만 써서 풀기는 글렀다. 초조하게 입맛을 다시던 진우는 바닥에 총을 내려놓은 뒤, 두 손으로 목걸이를 잡았다.
“이게…… 뭐에 걸렸기에 이렇게…….”
손가락 끝조차 들어가지 않는 목걸이.
자세히 보기 위해서 진우는 녀석에게 더 바짝 붙어야 했다. 놈의 목을 억지로 들어 올린 뒤, 아래쪽을 살펴보고서야 진우는 이유를 깨달았다.
목걸이가 한 번 꼬여 있는 데다가 그 사이에 굵은 개 줄이 말려 들어가 목을 더 꽉 조이고 있는 상태였다.
제 딴에는 얼마나 풀어내려고 발버둥을 쳤는지, 개 줄이 매듭처럼 친친 감겨 있었다. 풀어내기도 어렵다.
“안 되겠어.”
진우는 풀어내는 걸 포기했다. 손가락을 매듭 사이에 넣을 때마다 개가 입을 벌리고 컥컥댔다.
“너 진짜 대단하다. 목이 이런데 그렇게 잘 먹었던 거야?”
진우는 한숨을 내쉰 뒤 팔을 뻗어 대검을 집어 들었다. 새로 획득한 대검은 국방부 보급품과는 비교가 안 되는 퀄리티여서 뭔가를 정말로 잘 자른다.
가방 안에 든 만능 툴을 꺼내 써도 되지만, 대검 쪽이 훨씬 빨리 일을 마칠 수 있을 거다.
“놀라지 마. 이걸로 목걸이 자르려고 하는 거야. 너 다치게 하려는 거 아니라고. 알았지?”
진우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개에게, 그것도 총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놈에게 자신이 왜 칼을 들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반면, 놈은 태평한 얼굴로 침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엎드린 채 먼 산을 보고 있다.
진우는 일단 꼬인 목걸이를 친친 감고 있는 굵은 개 줄에 날을 갖다 댔다. 그러고는 칼을 톱처럼 사용해 그 매듭을 잘랐다.
비록 목걸이 가죽 위라고는 해도 자기 목덜미에서 칼이 왔다 갔다 하는데 녀석은 태평하다. 간이 큰 건지, 바보인 건지…….
진우는 이따금 한 번씩 놈의 기색을 살피면서 열심히,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칼질을 했다. 이제 슬슬 땀이 난다.
툭―
한참의 칼질 이후, 매듭들이 하나둘 끊어져 나가자 진우는 대검을 내려놓고 잘린 개 줄 조각들을 일일이 손으로 빼냈다. 꽉 조여져 있던 목에 그나마 여유가 조금 생겼다.
“이…… 이게 대체 언제 묶어두고서 안 뺐기에 이렇게 딱 달라붙어 버렸냐……. 어후~ 냄새.”
꼬여 있는 개목걸이의 버클이 좀처럼 빠지지 않아서 진우는 안간힘을 썼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결국에는 개의 목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거리가 좁혀지자 씻지 않은, 야생동물다운 냄새가 코를 확확 찌른다.
“됐다!”
마침내 목걸이를 빼내자 긴 세월 억눌려 있던 자국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놈이 긁어 대던 자리에는 생채기가 꽤나 나 있었다.
얼!
목이 홀가분해지자마자 놈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진우를 돌아본다. 그 모습이 제법 위압적이어서 진우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괜찮아졌지? 이제 가. 치료해 주면 좋겠지만, 나도 약은 없어. 어떤 개새끼들이 내 배낭을 아주 통째로 빼앗아 버렸거든.”
진우가 간청했다. 녀석은 머리를 한 번 부르르 털고 나서 입구의 나무 쪽으로 걸어가 뒷다리 한 짝을 턱, 걸쳤다.
놈이 오줌을 갈기는 동안 진우는 자신의 손 냄새를 맡아봤다.
으아~ 개 냄새 작렬!
기껏 목욕까지 했는데 상쾌 지수가 뚝 떨어진다.
아마 벼룩도 옮았을 것이다. 놈을 보내고 나면 목욕도 다시 하고, 빨래도 한 번 해야겠다고 진우는 생각했다. 그런데 오줌을 다 갈긴 놈은 몸을 돌려 다시 물웅덩이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어이, 어이. 가라고.”
슬슬 짜증스러워진 진우가 큰 소리를 내도 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잘난 척하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걸어온 녀석이 진우의 바로 앞에 와서 섰다. 그러고는 진우의 발가락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킁킁킁, 발에서 시작된 녀석의 냄새 맡기는, 종아리로, 그리고 허벅지로 이어졌다.
수박보다도 커다란 머리통이 그렇게 가까이 달라붙어서 슬슬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니 긴장이 된다. 이제 물릴 것 같은 불안함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이러지 마라…….”
경고인지 사정인지 모를 맥없는 소리를 하며 진우는 몸을 움츠렸다. 진우가 불안해하거나 말거나 놈은 계속 코를 킁킁대면서 나선을 그리며 다리를 타고 올라와 마침내 코를 진우의 엉덩이에 딱 붙였다.
킁킁킁― 헥헥헥―
녀석의 뭉뚝한 꼬리가 바쁘게 흔들렸다. 낯선 개가 자기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치고 있다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진우는 놈의 몸을 밀며 자리를 피했다.
“이러지 마! 나 더러운 사람 아니야! 조금 전에 씻었어. 냄새 안 난다고. 바, 바지를 못 갈아입어서 그런 거야.”
진우가 싫다는 기색을 보였는데도 녀석은 계속 그의 꽁무니만 쫓아다닌다. 진우는 홱 돌아서서 엉덩이를 가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 마, 이 새끼야! 신경 쓰인다고!”
끄응~
녀석은 또 앓는 소리를 내고 갸웃거리더니,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뒤돌아 걷는다.
그렇다고 정말 가버리는 것도 아니다. 녀석은 검은 가방을 가리기 위해 쌓아둔 은폐용 덤불과 나뭇가지 옆에 털썩 자리를 잡고 엎드려 버렸다.
그러고는 눈동자를 위로 뜬 채 진우를 보았다. 그렇게 덩치가 큰 놈인데도 눈꺼풀 위에 박혀 있는 황토색 점 때문에 조금 애교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이런 종류 개가 품종이 뭐더라?
진우는 기억을 더듬어봤다.
마스티프였나……. 아니, 그건 좀 다른 종인데……. 뭔가 독일 냄새가 좀 났는데……. 로슈…… 로드…… 아, 로트와일러였나? 하긴 무슨 종류면 뭐해. 키울 것도 아닌데.
“저기…… 너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 네 주인 아니야. 젠장, 내가 평범하게 생겼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젠 개새끼들까지 사람 구분을 못하네. 그…… 개들은 자기 주인 냄새 평생 기억한다고 하던데, 널 보니까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진우는 그렇게 툴툴거리며 물을 떠 손을 씻고 전술 조끼를 착용했다.
이렇게 이놈이 지키고 앉아 있으니 오늘 목욕을 다시 하기는 텄다. 장비를 갖춰 입는 진우가 신기했던지, 녀석의 뭉뚝한 꼬리가 또 바쁘게 팔락거린다.
“아부해 봐야 소용없어. 나는 네가 부담스러워. 많이 먹는 것도 그렇지만, 네가 갑자기 휙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까 봐 무섭다고. 내가 강아지 때부터 키운 놈이 아닌데 너무 덩치가 커서 그래. 이해하지?”
발바닥에 모래를 털어내고 양말과 전투화를 신은 진우가 허리를 숙인 채 전투화 끈을 묶고 있을 때, 놈이 갑자기 벌렁 드러누웠다.
진우는 자신의 발밑에서 배를 까고 몸을 뒤틀어가며 아양을 떠는, 커다란 개새끼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