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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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텁! (2)
2022.05.23.
목요~옥?
꿀꺽!
군침을 삼킨 진우는 음흉한 짓이라도 꾸미는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숲은 고요하다.
‘근데……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닌가? 너 좀 살 만해졌다고 너무 막 나가면…….’
삼가는 마음이 제동을 건다.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큰 욕망이 가슴속에서 꿈틀댔다.
‘이 끈적거리고 땀에 찌들어 온통 소금이 핀 옷을 벗고, 저 차가운 물속에 전신을 풍덩’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멍해질 만큼 좋다. 목욕은 정말…… 황홀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황에서는 대단한 사치인 게 맞다.
누가 망을 봐주는 것도 아니고, 무방비 상태로 물속에 들어갔다가 뭔가 위험한 게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 질문에 진우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게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대단한 것도 아닌, 고작 목욕을 하다가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진우는 일단 주변 정찰부터 마치기로 했다. 아무리 물이 좋아도 처음 와본 곳에서 아무 정보도 없이 함부로 무장해제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발에서 물기를 털어내고 다시 전투화를 신은 진우는 들것과 배낭을 모두 물웅덩이 한쪽에 벗어놓은 채 달랑 K―2와 망원경만 가지고 작은 폭포와 물웅덩이 주변을 넓게 한 바퀴 빙 돌았다.
“하아, 목욕 한 번 하는데 뭐가 이렇게 복잡해? 하아…….”
나무 사이를 비집고 바위들을 오르고 내리느라 땀을 줄줄 흘리면서 진우는 끌탕을 했다. 주변 산세가 험해서 한 바퀴 돌아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정찰을 하는 동안에도 시선은 계속 웅덩이 옆에 놔둔 들것과 배낭이 잘 있나 돌아보게 된다.
물이 흘러오는 길은 양쪽으로 아주 급격하고 좁은 경사로여서 그 위로 사람이 접근해 올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나머지 부분도 그저 산이다.
급격한 비탈과 나무와 바위, 그리고 우거진 잡초들뿐이다. 진지를 구축하는 군인들도 없고, 좀비 특유의 느낌도 없다.
이만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무 숲 사이에 서서 아래쪽을 바라보며 진우는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뒤, 다시 먼 길을 빙 둘러 폭포 아래로 돌아왔다.
목욕이라는 아주 사소한, 일상적 행위를 하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산속을 헤매며 정찰을 해야 한다니…… 좀 우습다.
“가만있어 보자. 이거는…… 아무래도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둬야 할 것 같지?”
물에 들어가기 전, 진우는 배낭과 가방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그는 결국 웅덩이 가장자리의 넓적한 바위 주변을 가방으로 둘러 시야를 막고, 그 가방 위에 나뭇가지를 걸쳐서 위장을 하기로 했다. 벗은 옷과 총, 대검은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 여차할 때 당하지 않도록.
“거의 목욕탕을 만드는 기분인데?”
나뭇가지들을 꺾고 덤불을 뽑아 와서 쌓느라 또 땀을 한바탕 흘리면서 진우는 혼잣말로 투덜댔다. 위장 작업을 한다는 게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아무리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쌓아봐야 자꾸 더 수상하게만 보인다. 짜증스러워하던 진우가 손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아니지……. 여기에서 며칠 잠도 자게 될지 모르는데, 이왕 만드는 거, 이것보다는 좀 잘 만들자.”
마음을 고쳐먹자 일도 더 잘되는 것 같다.
진우는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의 마음이 되어 덤불을 몇 아름이나 잘라 오고, 나뭇가지도 더 꺾어서 그럴듯한 구조로 쌓았다. 큼직한 돌도 몇 개 주워 와 군데군데 받쳐 놓으니, 이젠 제법 그럴듯하다.
정면으로 물러나서 바라보니 웅덩이 안쪽을 상당히 가려준다. 혹시 누군가 지나가더라도 이 각도에서 흘낏 보는 정도로는 목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좋아, 이제 좀 씻자.”
가방이 올려진 들것을 위장 은폐물 뒤에 가져다 놓은 진우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주변을 살핀 후에, 전술 조끼를 시작으로 몸의 일부처럼 달라붙어 있던 군복을 하나씩, 하나씩 벗었다.
벗어놓은 옷과 전투화를 바위 위에 곱게 접어 깔고, 그 위에 K―2, MP5, 권총, 대검, 배낭을 나란히 늘어놓았다.
“실수한 것 없지?”
혹시라도 준비가 안 된 부분은 없는지 결벽증 환자처럼 몇 번이나 재확인을 하고 또 한 다음에야 진우는 속옷을 벗었다. 그러고는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을 천천히 웅덩이 안에 집어넣었다.
“으허어어어~”
목욕탕에 온 노인처럼 입에서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난다.
시원하다. 청량하다. 이 차가운 물의 촉감…… 이거,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건지…….
진우는 물가의 바위를 꼭 잡은 채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이렇게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이 대체 몇 달 만인지 이제 기억도 까마득하다.
발가락을 까딱거리고, 겨드랑이와 다리를 움직이면 사이사이로 물이 휘감고 들어와 그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운다.
진우는 몽롱한 표정으로 간만의 목욕을 만끽했다. 웅덩이는 넓이만큼이나 깊이도 넉넉해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그의 가슴까지 차올랐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걸…….”
맑고 시원한 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얼굴에 끼얹고 마신 뒤에 진우의 입에서 혼잣말이 새어 나온다. 삼척 발전소에서 샤워를 한 적은 있지만, 몸 전체를 담그는 시원한 목욕은 차원이 다른 쾌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 샤워라는 것도 대체 얼마나 오래된 일인가. 기름과 때, 땀, 피, 그리고 온갖 오물들로 범벅이 되어 있던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처음 한동안은 바위에 손을 얹고 바짝 붙은 자세에서 덤불 사이로 숲 바깥을 노려보던 진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과감해져서 마침내는 두 손을 놓고 웅덩이 안에서 가볍게 헤엄까지 쳤다.
뒤로 누운 채 두 팔과 두 다리를 휘휘 젓고 있으려니,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별 근심이 없었다.
몸은 시원하고 햇살을 받는 얼굴은 따뜻하다. 떨어진 물방울들이 만드는 작은 무지개들을 보면서 진우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비누가 없다는 게 아쉽네.”
배낭에서 전투식량을 꺼내 입에 넣고 씹으면서 진우는 웅덩이 전체를 마음대로 헤집고 다녔다.
주르르르르―
떨어져 내리는 약한 폭포에 머리를 대봤다. 그것도 또 아주 좋다.
아푸, 아푸, 계속 입으로 물을 뱉어내면서도 진우는 천연이 만들어준 샤워기에 머리를, 어깨와 목덜미를 맡겼다. 그간 하루도 쉬지 않고 혹사당해 왔던 근육이 조금씩 풀어진다는 게 느껴진다.
“어~ 좋다.”
그렇게 진우가 눈을 지그시 감고 한여름 자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 비릿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를 자극했다.
좀비 특유의 악취도 아니고, 사람의 체취도 아니었다. 이건…… 이건 동물원에서 맡아봤던 냄새다. 진우는 다급하게 얼굴의 물을 훑어내고 눈을 떴다.
으르르르르~
들개다. 열댓 마리나 되는 들개 떼들이 웅덩이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들 한 덩치 하는 놈들이 잇몸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맹수가 아닌 개라고 해도 대형견들이라서 꽤나 위압적이다.
진우는 물을 첨벙거리며 얼른 옷을 놓아둔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무기가 필요해지면 언제라도 손에 집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으르르~
진우가 가까워지자 정면에 있는 놈들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더 커진다. 진우도 지지 않고 노려보며 권총과 대검을 집어 들었다.
- 올무에 걸린 오 대위는 굶주린 들개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어. 비명 소리를 듣고 구하러 갔을 때는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지.
하 중위가 슬픈 표정으로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오르자 호흡이 가빠진다. 진우는 무기를 잡은 두 손을 위로 든 채 뒤로 물러나며 개들에게 말했다.
“나, 시체 아니야. 올무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제발 덤비지 말고 가라. 응?”
들개들이 웅덩이 주변을 빙 둘러싸는 바람에 진우의 고개도 덩달아 바빠졌다. 혹시라도 미친 척하고 물에 뛰어드는 놈이 있을까 봐 두려워서다.
권총의 탄창에는 열세 발이 들어 있다. 두 줄로 차곡차곡 들어 있던 열다섯 발 중에 어제 두 발을 쏘며 연습을 해봤다.
그러니까 정말로 개들과 일대 사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결과가 이쪽의 패배로 끝날 리는 없다.
만약 놈들이 물에 뛰어든다면 느릿느릿 개헤엄을 쳐서 가까이 오는 동안에 머리통을 날려주면 된다. 왼손에 든 칼을 사용해도 되고. 진우가 웅덩이 가운데에 있는 동안에는 전략적 우위가 있다.
하지만 진우는 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정말 추호도, 단 1그램도 없었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인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위선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멀쩡한 개나 고양이를 시체로 만드는 건 아주 다른 차원의 이야기랄까, 하여간 뭐 그랬다.
“근데…… 너희들 왜 이리로 왔냐? 그냥 얌전히 가던 길 가지…….”
들개들이 그저 인상만 쓰고 있을 뿐, 뛰어들 기미는 없다는 걸 확인할 즈음, 진우가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보며 설득을 했다.
들개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개새끼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듣는 척이라도 할 것이지…….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대치가 장기전이 되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제 슬슬 추워지는 것 같아서 물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진우의 입술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물에 체온을 빼앗기고 있는 중이다.
“어쩌지? 더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진우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개들을 돌아보다가 그중 한 마리가 물가로 한 걸음 다가와 머리를 내밀고 혀를 날름거리는 것을 보았다.
첩첩! 첩첩!
물을 마시고 있다.
아하, 그래서…….
진우는 자신이 이 개들에게 둘러싸이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릴 때 TV에서 보았던 동물의 왕국이 기억난다. 사자와 영양이 서로 멀찍이 거리를 두고 강에서 물을 마시던 모습. 개들도 물에 끌려 여기에 온 것이리라.
“그래그래, 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물 마셔. 그래, 얼른 마시고 가. 오줌 안 쌌어.”
진우는 개들에게 열심히 권유했다. 그래도 여전히 놈들의 저 큰 덩치는 신경이 쓰인다. 어쩌면 이놈들이 작은 놈들을 잡아먹으면서 생존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더 바짝 돋았다.
킁― 킁― 킁―
두어 마리가 덤불 속에 숨겨둔 가방들에 관심을 보이려 한다. 놈들이 코와 앞발로 나뭇잎을 헤치자 진우는 화들짝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야! 야! 이 새끼야! 그건 안 돼! 이 개새끼들아! 너희 거 아냐!”
진우가 물을 첨벙거리며 뛰어오자 개들은 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기분이 상한 것 같다. 개새끼들의 주둥이가 다시 열리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난다.
으르르르―
나직하게 으르렁대는 대형견들. 위협적이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빨 하나의 길이가 3센티는 넘어 보인다. 그리고 이번의 으르렁 소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 두려워지는 일이었다.
“어어어, 짖지 마. 너희 위협한 거 아니야. 큰 소리 내지 말자, 우리.”
진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개새끼들은 일제히 짖어 대기 시작했다.
으르렁! 멍! 멍!
월! 월! 웡! 웡!
조용하고 평화롭던 숲 속 작은 물가는 순식간에 개들의 짖는 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덩치에 비례해 목청도 좋아서 아주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아…….
진우는 난감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하니까, 개 짖는 소리가 무섭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이 산과 이 계곡이 다른 군인들의 주의를 끌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이 된다.
“야! 이 개새끼들아! 시끄럽잖아!”
진우는 물속에서 발가락으로 집어 올린 조그만 자갈을 개들 사이로 집어 던졌다.
어린 시절, 동네에 돌아다니던 개들은 이 정도 하면 다들 깨갱대며 도망가곤 했다. 하지만 이놈들한테는 그 방법이 먹히지 않았다.
멍! 멍! 웡! 웡!
으르르르~!
자갈 투척 위협을 받은 들개들은 더 바짝 약이 올라 짖어 댔다. 계속 이러다가는 물에 뛰어드는 놈도 나올 것 같은 기세여서 진우의 긴장도도 올라간다.
어쩌지? 어쩌지?
고민하는 동안에도 점점 더 개새끼들의 짖는 소리는 커지고, 다른 놈들에게 옮아가기까지 한다. 여러 마리가 빙 둘러싸고 짖어 대는 걸 듣고 있자니 머리가 어떻게 되는 것만 같다.
얼!
갑자기 울려온, 굵고 커다란 소리.
다른 개들이 짖는 것보다 두 배는 우렁차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개새끼들은 입을 다물고 낑낑대거나 조용해졌다.
우렁찬 그 ‘얼!’ 소리의 메아리만 남아서 몇 번이나 꼬리를 만들고 울린다. 진우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슴팍과 눈 위의 점이 황토색인, 시꺼먼 개 한 마리가 진우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
“……네가 대장이구나.”
터벅, 한 발 다가오는 검은 개를 보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정말 크다. 넓적하고 둥근 얼굴에 커다란 입, 떡 벌어진 황토색 무늬 가슴팍. 근육이 똘똘 뭉친 것 같은 다리와 몸통.
한마디로 위압적인 투견의 모습이다.
대장 개의 개입 이후 조용해진 나머지 들개들은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웅덩이 구석으로 가서 물을 마시는 데에만 몰두했다.
휴우~
놈들이 조용해졌다는 것과 더 이상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그 두 가지 변화가 진우에게 안도의 한숨을 짓게 만든다.
그런데 아직 남은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이 대장 놈이다. 시꺼먼 대장 개는 터벅터벅 몇 걸음을 더 다가와서 진우의 덤불 위장 부근에 아예 자리를 턱 잡고 앉아버렸다.
놈의 표정은 아주 평화롭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우는 상당히 곤란해졌다. 이제 정말 추워지고 있는데, 저 새끼는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놈이 배낭과 바짝 붙어 앉아 있기 때문에 옷을 집기 위해 팔을 뻗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주둥이 크기를 볼 때, 물리면 그 순간 끝이다.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가는 건 기본이고, 뼈가 부러진대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놈들이 배낭과 가방에 오줌을 갈기지 않는다는 정도뿐이었다. 이 귀찮은 녀석들을 한 방에 쫓아낼 방법은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게 여건상 허락되지 않을 뿐이다.
총소리를 들려주면 놈들은 기겁을 하고 곧바로 줄행랑을 놓을 테지만, 근처 다른 군인들 때문에 진우는 꾹 참고 있다. 여기에 무장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면 안 된다.
“이제 물 다 마시지 않았니?”
상냥하게 말을 걸어봐도 대장 개는 뻔뻔한 표정으로 하품만 크게 할 뿐이다. 또 지루한 대치가 이어진다.
그사이 더 체온을 빼앗긴 진우의 입술은 파랗게 질렸다.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차에, 저 멀리
앞산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온다.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타앙― 타앙― 투투투―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이겠지만, 진우에게는 개들을 쫓을 찬스다. 진우는 얼른 총구를 위로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나무와 폭포로 막힌 공간 내에 커다란 총소리가 울린다.
깨갱― 깽― 깽―
제멋대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던 개새끼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후다닥 뛰어 도망간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는 이 시꺼먼 놈은 고개만 한 번 꿈쩍하고 만다. 엉덩이를 땅에서 떼지도 않았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황당해진 진우는 다시 한 번 더 하늘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타아아아앙―
사람이 듣기에도 어지간히 크고 무서운 소리. 개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장 개는 도망치지 않았다.
진우를 힐끔 돌아보더니 침이 주렁주렁 매달린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고 헥헥거린다.
“너는…… 귀가 먹었냐?”
진우가 놈의 뻔뻔한 얼굴을 보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어쨌든 소리로는 이놈을 쫓아낼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하아~
한숨을 내쉰 진우는 웅덩이의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더는 물속에 못 있을 것 같다. 일단 놈과 거리를 두고 물 밖으로 나가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얼!
대장 개는 짧게 한 번 짖고 나서 천천히 엉덩이를 뗐다. 그러고는 진우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웅덩이 밖을 돈다.
진우가 오른쪽으로 가면 놈도 오른쪽으로 가고, 진우가 왼쪽으로 돌면 놈도 왼쪽으로 돈다. 그리고 이따금씩 경고처럼 얼― 하고 짖기도 한다.
이래서야…… 무슨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후우~ 너 왜 그래?”
진우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물속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뭍으로 나가면 놈의 세계다. 달려와서 확 뛰어들면 목을 물리기까지 단 몇 초도 안 걸린다.
그러니까 각오를 단단히 하기 전에는 웅덩이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여차하면 놈의 머리통을 향해 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겠다는 각오가 필요했다.
“먹을 걸로 꾀어볼 수 있을까?”
녀석의 배가 홀쭉한 것 같아서 진우는 식량으로 로비를 해보기로 했다.
이것도 안 되면 그때는 정말…… 어휴,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진우는 대검을 옷 위에 내려놓고 왼손을 살살 배낭 쪽으로 뻗었다. 대장 개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자, 이거 먹고 얌전히 있는 거야. 알았지? 던진다~”
진우는 전투식량의 초콜릿 바를 꺼내 놈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이렇게 주의를 끌다가 멀리 휙 던지고, 놈이 그걸 쫓아가면 그 틈에 땅 위로 올라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진우의 생각과 좀 다르게 반응했다.
초콜릿 바를 흔들자마자 녀석은 빠르게 몸을 쭉 뻗으며 진우의 손에 들린 초콜릿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텁!
※ 실제로는 개에게 초콜릿을 주면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진우는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실수한 것이니 독자님들께서는 따라하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