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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텁! (1) (264/449)


264. 텁! (1)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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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관심이 온통 왼손과 터져 나온 눈알에 쏠려 있을 때, 소령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허벅지를 당겨 올리고 있었다.

마침내 충분히 권총집이 가까워진 순간, 소령은 놈의 오른팔을 놓아주고 권총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재빨리 권총을 꺼내 놈의 옆구리, 조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놈은 집요하게 스트라이더 나이프를 안구 안에 쑤셔 넣으려 하고 있다.

지독한 고통.

소령은 이를 악물고 글록 19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여섯 발이 순식간에 놈의 옆구리를 사선으로 뚫고 들어가 내장과 폐를 헤집는다.

“크어어억!”

놈은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입으로 피를 왈칵 쏟으며 경련했다. 소령의 눈을 후벼 파고 있던 칼이 놈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뒹군다. 놈의 놀란 얼굴을 마주 보면서 소령은 차갑게 말했다.

“나도 네가 저런 새끼들에게 붙을 줄은 몰랐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세 발을 더 퍼부은 소령은 맥없이 무너져 내린 놈의 시체를 밀어내고 일어났다. 눈에서 붉은 피를 줄줄 흘리며 소령은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드르르륵― 탕탕탕― 투투투투―

아직도 F층 전체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총성이 쉼 없이 울려 대고 있다.

“3시 43분…….”

소령이 시계를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지금쯤이면 B팀이 C4로 벽을 뚫고 엘리베이터 통로를 기어오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내부에 호위 병력이 있다고 해봐야 어차피 제한된 공간에서 응전하는 입장에서는 기습을 막기 어렵다. 그리고 수적으로도 이쪽에 우위가 있다.

씰의 리더가 사망한 지금, 최고 엘리트 병력들끼리 죽고 죽이는, 이 소모적인 싸움을 중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한 교수와 해군 장성들이 항복을 선언하는 것뿐이다.

저 멀리 4.5층의 작전 통제실에서 외부 스피커를 통해 명령이 전달되기만 하면 된다.

삐익―

소령의 바람이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스피커에서 우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전 통제실 내부에서 모종의 결판이 났다는 의미다.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딜레이 동안 소령은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총알이 머리 옆을 스치는 것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순간이었다.

누구의 목소리가 울릴 것인가. 채 장군인가, 한 교수인가……. 그리고 그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소령은 얼굴에 흐르는 피도 닦지 않은 채 오직 청각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삐이익―

한차례 더 마이크가 울리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아, 아, 합참의장 채양균이다.

거기까지 듣고 소령은 남은 한쪽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 끝났다. 승리다. 한 교수와 그 역도들을 처단했다.

채 장군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명령을 내렸다.

― 다들 총 내려놔! 해군 특수전 전단! 해병대! 707특임대! 전부 잘 싸웠다! 이제 새로운 명령을 하달할 때까지 부대 전체 쉬어! 너희는 다 같은 한편이다! 야, 이거 어떻게 끄는 거야? 꺼! 아, 아니다. 누가 한 번 더 복창해라! 해군 참모총장, 당신이 말해. 당신 새끼들도 있잖아.

소령의 입에서 미소가 피어난다.

후후후, 저분은 참…… ‘승남아, 네가 말해!’라고 하시지 않은 게 다행인 건가…….

눈 하나를 잃었지만 아깝지가 않다. 오늘 작전 중에 목숨을 잃은 대원들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군이 이제야 바로 섰으니까…….

치이익―

― 아, 아, 나 해군 참모총장 이승남이다…….

이승남이 같은 말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주변은 총성으로 시끄럽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눈앞의 적에 너무 몰입해 있는 상태여서 귓가에 울리는 늙은 장군들의 목소리 따위 신경 쓸 틈이 없다. 사건은 그때 일어났다.

씰이 창을 깨고 습격해 올 때, 가장 먼저 총을 맞았던 특임대원 중 하나가 의식을 되찾았다.

“크헉! 큭!”

기침을 하자 입안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대원은 내장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플래시를 들어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좁아진 시야. 아마도 출혈 때문인 것 같다. 대원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좌측, 눈을 홉뜨고 있는 동료. 죽었다. 차갑게 식어 있다. 방탄조끼 덕에 몸통은 버틸 수 있었지만, 목을 관통당한 것이다.

“젠장…… 젠장!”

대원은 최루탄 때문에 따끔거리는 눈을 비벼가며 동료가 쏟아낸 피 위를 기었다. 다리는 아무 감각이 없다. 그래도 지독하게 아파서 움직일 수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대원은 생각했다.

드르르륵― 탕― 탕― 탕―

아래쪽에서는 계속 총소리가 울려 대며 아직도 교전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내가…… 끄으으…… 끝을 내주마.”

아군이 이미 승리하였음을 전혀 모르는 대원은 이를 빠득, 갈며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기억하고 있다. C4를 폭파시켜 그가 올라타고 있는 이 단단한 작전 통제실의 귀퉁이를 날리는 것이다.

피격되기 직전까지 그는 동료와 C4의 양을 얼마나 쓸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계산을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2차 폭발을 시도할 수 없는 상황이 된 터, 건물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전부 다 쏟아부으면 된다.

가물거리는 눈처럼 기능이 저하된 그의 뇌는 엘리베이터 통로를 타고 접근할 B팀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원은 자신과 동료의 배낭에 든 모든 C4를 전부 동원해서 한데 모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뇌관을 꽂아 넣었다.

드르르륵― 드르륵― 타타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대는 총소리마저도 아득하게 들린다. 대원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격발장치를 꽉 잡았다. 그러곤 마지막 힘을 다 끌어모아 눌렀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은 대원의 몸과 동료의 시체를 가장 먼저 산산이 흩트렸고, 작전 통제실의 지붕과 건물 전체의 모든 유리를 박살 냈다.

끼우우우웅―

이미 관창이 폭발할 때 약화되어 있던 골조에서 휘는 소리가 난다.

“……안 돼.”

폭발에 놀라 몸을 숙였던 소령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치이이―

― 끄아아아아!

― 뭐, 뭐야!

스피커를 타고 작전 통제실 내부의 아비규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주 보며 총질을 하던 씰과 특임대원들조차 멍해져서 돌가루와 연기가 날리는 작전 통제실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소령은 작전 통제실을 향해 달려갔다. 무슨 계산 끝에 수를 떠올렸기 때문에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저 벙커 같은 구조물 내에 갇힌 채 장군을 구해내겠다는 일념에 본능처럼 내달린 것뿐이다.

콰장창! 우우웅!

호화로운 거대 샹들리에가 대리석 계단 위로 떨어져 박살 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게중심이 뒤로 기운 작전 통제실은 점점 더 건물 외부 쪽으로 가라앉는다.

애초에 설계를 바꾼 게 문제였다. 지지하는 기둥과 벽도 없이 두 층 가까운 건축물을, 그것도 두꺼운 철판으로 벽을 보강한 무겁고 커다란 방을 달랑 바닥만 믿고 얹어놓은 대가가 지금 지불되는 중이다.

“문을 여십쇼! 장군님!”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소리를 지른다. 소령은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다가 시체에 걸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작전 통제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와드드득―

창틀이 뜯겨 나간 틈으로 거대하고 단단한 구조물이 떨어져 내린다.

콰아앙―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소령은 비틀거리며 바람이 휘몰아치는 건물의 잔해 속으로 걸어갔다. 소령은 잘린 철근을 밟고 아래를, 20여 미터 아래의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작전 통제실은 이제 콘크리트와 철근, 그리고 사람의 피와 살이 뒤섞인, 기묘한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저기에서 생존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

“으으!”

갑자기 어찔함을 느낀 소령은 한동안 비틀거린 후에야 겨우 바로 설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봐도 비통함과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최악의 결과다. 이건…… 아군이 모두 죽느니만도 못하다.

소령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가올 모든 비극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이제 군에는…… 대가리가 없어졌다.

***

짹― 째째잭― 째잭―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나무 향기를 맡으며 진우는 잠에서 깼다. 약초꾼들이 지어놓고 잠시 머물렀던 듯한 허름한 움막의 비닐 장판 위가 어젯밤 그의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뱀을 쫓기 위한 백반통과 물기를 머금고 곰팡이가 피어 있는 담요와 베개 등이 거슬렸지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자고 일어났어도 진우는 전혀 슬프거나 괴롭지 않았다.

“잘 잤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소중한 검은 가방들 덕에 진우의 가슴은 아직도 뿌듯하게 뛴다.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던 새 K―2도 믿음직하다.

“아하암~”

진우는 기지개를 켜고 수통의 물을 마신 뒤, 배낭에서 전투식량을 한 봉지 꺼냈다.

우두둑, 우두둑, 딱딱한 빵에 땅콩버터를 발라 꾹꾹 씹으며 진우는 밤새 모기에 뜯긴 팔목을 긁었다.

“어디…….”

입안 가득 빵을 채운 진우는 검은 가방에서 꺼낸 망원경으로 주변의 정세를 살폈다.

먼저 남쪽, 저 멀리 산 아래의 도로 위로 몇 대의 트럭이 이동 중이다. 다음은 동쪽, 망원경의 한계까지 배율을 확대하면 나무 사이로 참호를 쌓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제저녁이랑 비슷한 건가…….”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주변의 산들을 모두 돌아본 뒤,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방이 모두 다…… 아주 골고루 군인들에게 막혀 있다.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과의 거리는 꽤나 멀지만, 어느 한쪽 안전하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보이는 방향은 없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다. 이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최선의 행동이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또 며칠 전처럼 이동 중인 군 병력에 붙잡혀 끌려가서 인간 미끼 노릇을 하게 되거나, 아니면 저격 한 방으로 생을 마감하기 딱 좋다.

예전처럼 맨몸에 배낭 하나 메고 있었다면 빠르게 달려서 주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검은 가방이 잔뜩 실린 들것을 끌고 가야 한다.

어디에서 리어카라도 하나 구해 도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면 한나절 내내 진땀을 쏟아내도 고개 두 개를 넘기가 벅차다.

“너희랑, 너희가 싸울 것 같은 모양새인데…….”

진우는 다시 망원경으로 북쪽과 서쪽의 진영을 살폈다.

하룻밤 사이 더 불어난 양쪽의 군세는 전투가 임박해 온다는 걸 짐작하게 해주었다. 어제 대공 캐논을 쏘았던 서쪽의 산속에는 장갑차와 탱크까지 가세했다.

북쪽의 병력들도 나름 분주하게 움직여 대고는 있지만, 화력이 상대가 안 된다. 막상 충돌이 일어나면 단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북쪽이 먼저 전멸하게 될 거다.

“아, 진짜 좀비도 안 보이는 이 깊은 산속에 대체 뭐 욕심날 게 있다고 그렇게 목숨을 걸어가며 총질을 해 대냐……. 그건 그렇고, 이왕 싸우기로 했으면 좀 서둘러 주면 안 되나……. 서쪽 애들이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점령을 해주면 서울로 가기는 그게 더 나은데…….”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던 진우는, 자신이 이렇게 주위를 살피고 있는 것처럼 사방의 군인들도 정찰을 하고 있으리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면…….

진우는 얼른 자세를 낮췄다. 이렇게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서서 쳐다볼 일이 아니다. 망원경이라는 신기한 물건이 생겨서 너무 흥분해 있었다.

“맞다!”

진우는 움막을 돌아보았다. 비록 색이 바래긴 했어도 붉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붕과 은박 돗자리로 둘러쳐 둔 벽은, 온통 초록색인 이 산속에서 눈에 띄기 딱 좋다.

특이한 게 있으면 아무래도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진우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여기는 은신하기에 좋은 자리는 아닌가 보다. 일단 전망이 너무 탁 트였다.

“옮기자.”

결단을 내린 진우는 움막을 향해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여주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진우는 저격소총의 멜빵을 3점식으로 연결해 뒤로 비스듬히 걸고, 그 위에 배낭을 멨다. 그리고 새로 획득한 K―2 멜빵을 목에 건 뒤, 검은색 하이바를 들어 올렸다.

새 하이바 안에는 예전처럼 핑크 펀치의 사진을 넣어뒀다. 어제 비를 맞아 인쇄가 좀 벗겨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둘 다 여전히 아름답다.

훗, 제니와 테라를 한 번씩 보면서 진우는 가벼운 미소를 지은 뒤, 하이바를 쓰고 끈을 조였다. 927307은 개머리판을 접어서 검은색 가방 안에 고이 넣어놨다.

들것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은 진우는 출발하기 전에 혹시 놓치고 가는 게 없는지 움막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후, 힘차게 걸음을 뗐다.

이 산속의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숨어야 한다. 군인 녀석들이 망원경으로 둘러보더라도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으로.

“덜컹거리느라 힘들었지?”

그 후, 두 시간 동안 진땀을 흘리며 산길을 걷던 진우는 잠시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앉아 숨을 돌리면서 들것과 가방을 향해 말을 걸었다.

검은 가방들은 대답하는 법이 없다. 어지간히 과묵한 놈들이다. 수통을 기울이던 진우가 손을 멈췄다.

쫄쫄쫄쫄―

물이 흐르는 소리다. 그것도 꽤 많이.

어디지?

진우는 사방으로 귀를 쫑긋거려 보며 물소리의 방향을 쫓았다.

주변 군인들의 대치가 얼마나 더 길게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식수원을 확보하는 것은 곧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다.

전투식량 안에 든 이온 음료 가루를 입에 물고 있어봐야 물이 없으면 갈증은 온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이쪽인가.”

진우는 들것을 끌고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씩 커지던 물소리는 잠시 후, 쭈르르르― 쭈르르르― 정도까지 커졌다.

바가지 가득 담은 물을 쏟을 때나 나는 소리다. 물소리가 커짐에 따라 진우의 기대도 커졌다.

“윽.”

먼 곳만 보고 소리에 홀려 걷던 진우는 발바닥에 느껴지는 작은 통증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왼쪽 전투화 바닥에 뭔가 날카로운 돌 조각 같은 게 돌아다니다가 이따금씩 밟힌다.

그렇다고 전투화를 벗을 만큼 거슬리는 것도 아니어서 진우는 며칠째 그저 참고 있는 중이다.

“우와…… 좋구나.”

물소리를 따라 걷기를 20여 분, 진우는 마침내 근원지를 찾아냈다.

3미터 정도 높이의 완만한 폭포.

둥글둥글하게 깎인 바위들 사이로 투명하게 맑은 물줄기가 쉼 없이 쏟아져 내린다.

물이 가득 찬 아래쪽 웅덩이는 웬만한 목욕탕보다도 넓고, 그 주변을 빙 둘러 나무들이 솟아 있다.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친, 전설 속의 바로 그 장소라고 해도 믿을 법한 절경이었다.

“세상에…….”

감탄사를 내뱉은 진우는 들것을 내려놓고 웅덩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침부터 진땀으로 푹 젖어 끈적거리는 얼굴과 목에 시원한 물을 끼얹자 청량감이 가슴속까지 번진다. 맛도 기가 막히다.

“완전히 나를 위한 낙원이네. 밥 있겠다, 총이랑 총알 있겠다, 이제 물도 이렇게 넉넉하면 뭘 더 바라지? 선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진우는 얼른 고개를 저어서 자신이 한 말을 취소했다.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안전을 확인한 진우는 바닥에 앉아 전투화를 벗고 양말을 확인했다. 피가 물든 양말 바닥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있다.

“젠장, 이렇게 된 것도 모르고 며칠을 돌아다닌 거야?”

진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가시를 빼서 던지고 양말을 벗었다. 다행히 상처가 심하지는 않다. 물을 끼얹어 발바닥의 피를 씻어내던 진우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너, 목욕하고 싶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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