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킬 하우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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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킬 하우스 (1)
2022.05.17.
신상기는 몸에 밴 매운 냄새를 날리기 위해 에어컨을 풀로 가동하고 창문 두 개를 다 열었다. 주차장에서 골프장 정문까지는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지만, 제한속도보다 5킬로미터를 초과해 달리면 금방이다.
묵직한 강철 바리케이드가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있는 정문이 가까워지자 초소를 지키던 병사들 중 하나가 성큼 앞으로 걸어 나오며 세우라고 손을 든다.
여기는 요새 장갑차까지 떡하니 배치되어 있어서 아무 죄를 짓지 않은 상태에서도 지나다니기가 무섭다.
“수고 많으십니다.”
신상기는 억지로 웃는 낯을 만들어내며 출입증을 들어 보였다. 병사도 요리사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 요리사님이시네. 지금 나가십니까?”
“예…… 좀 걸렸어요. 뼈 고아서 육수 우려내느라…….”
“으아, 우리는 똥국 먹는데, 높으신 분들은 이런 때에도…….”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 다른 병사가 거울이 달린 긴 막대기로 차량 밑을 훑고 트렁크를 점검했다. 일상적인 점검 과정이지만, 마음이 다급한 신상기로서는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조금 후면 최루탄을 까놓은 직원 숙소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여기에서 도망가야 한다.
아, 이 새끼들……. 대충 훑고 가라고 좀 하지.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신상기는 두 다리를 초조하게 떨며 가도 좋다는 신호를 기다렸다.
“……많이 넣으셨나 봅니다.”
운전석 옆에 선 병사가 뭐라고 말을 건넨다. 알아듣지 못한 신상기가 ‘네?’ 하고 반문을 하자 병사는 다시 이야기를 해 준다.
“후추 엄청 뿌렸나 보다고요! 지금도 매운 냄새가 장난 아닙니다.”
“아…… 예, 예, 그거…… 그…… 후추 통을 한 번 놓치는 바람에…….”
되는대로 아무 소리나 지껄인 신상기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정말이다. 코를 확 찌른다.
퉁, 퉁.
트렁크 문을 닫은 병사가 차를 가볍게 두드리자 검문하던 병사는 흰 장갑을 낀 왼손으로 가도 좋다는 신호를 해 준다.
신상기는 지그재그 바리케이드 사이를 천천히 통과해서 정문을 빠져나왔다. 자꾸 눈이 백미러로 가는 바람에 앞 범퍼를 긁기까지 했다.
끼긱!
날카로운 쇳소리에 병사들이 돌아본다. 신상기는 얼른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괜찮아요! 기스야!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바꿀 때 된 차니까!”
그러고는 곧바로 속도를 높여 도로를 내달렸다.
휘이이잉―
몰아치는 비릿한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후아아아~ 후아아!”
신상기는 쏟아져 내리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핸들을 꽉 잡았다. 가슴이 두근거려 터질 것만 같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잡혀서 곤욕을 치를 뻔했다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이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나는 몰라…….
신상기는 몇 번이나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야. 이제 집으로 가서 전화를 받고 마누라랑 애만 찾아오면 돼……. 어차피 일주일만 꼭 틀어박혀 있으면 다 해결된다고 채 장군이 말했어. 신세 단단히 갚는다고도 했고…….
신상기는 얼른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 때문에 제주 전체가 폭풍 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란 예측을 하기에 그는 너무도 작고 나약한 인간이었다.
“쿨럭, 쿨럭! 뭐, 뭐야? 어흐.”
직원 숙소에서 잠들어 있던 여급들과 웨이터들은 기침을 쿨룩거리며 각자의 방에서 깨어났다. 문틈으로 스며 들어온 매캐한 냄새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다.
너무 매워 눈을 비볐더니, 더 심하게 화끈거리고 따갑다. 불이 붙은 것 같은 고통이 얼굴 전체를 휘감는다.
“으흑! 크우욱!”
일전에 교수와 농을 주고받던 웨이트리스도 고통 속에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팟.
전기가 들어오자 바닥에서 피어 올라오는 연기가 보인다.
윽, 웨이트리스는 당황한 비명을 내질렀다. 처음엔 불이 났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뭔가 연기의 종류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드르륵.
웨이트리스는 신선한 공기부터 쐬려고 바깥으로 난 창을 열었다.
후우욱,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것은 똑같은, 더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다. 지독하게 맵다.
턱.
서둘러 창을 닫은 웨이트리스는 방문의 손잡이를 조심스레 건드려 봤다. 전해지는 열기는 없다.
그럼…… 열어 봐도 되는 걸까? 복도의 불길이 확 들이닥쳐지면 어떻게 하지?
쿵쿵쿵.
그렇게 그녀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놀란 것도 잠시, 반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부른다. 마담 언니였다.
“야! 지수야! 나와! 나와! 여기 난리 났어! 빨리 나가야 돼!”
“나, 나가요!”
웨이트리스 지수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쿠우우~
눈과 코의 점막을 할퀴는 것 같은 독한 연기가 복도 전체에 퍼져 있다. 속치마 바람의 마담은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방을 두들겨 댔다.
그녀의 뒤에는 같은 요정에서 일하던 웨이트리스 셋이 서 있다. 다들 괴로워 발을 동동 구르며 수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가자! 빨리!”
지수가 다급하게 화장실에서 수건을 물에 적시는 동안 자기 식구들을 다 불러낸 마담이 재촉을 한다. 여섯 명의 여자는 얼굴을 가리고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세상에! 여긴 더해! 어휴~ 맙소사! 쿨럭!”
안개처럼 뽀얗게 연기가 차오른 1층 복도를 보며 마담이 진저리를 친다. 곧바로 현관문을 열었지만, 거기에도 신선한 공기는 없었다.
복도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 재채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최루탄이 두 발이나 터졌으니, 여간 맵지 않다.
그러나 여자들, 그리고 그 곁을 스치며 뛰어나가는 다른 직원들도 무슨 일이 난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때르르르릉! 때르르르릉! 때르르릉!
오지랖 넓은 누군가가 소화 비상벨을 울렸다. 캄캄한 새벽, 자욱한 매운 연기, 거기에 비상벨 소리까지 더해지니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급해진다.
여섯 명의 여자를 포함해 모두 서른 명이 넘는 직원들이 맨발로 잔디밭 위를 전력 질주해 달아났다.
“어푸푸푸! 어푸푸!”
야외에 설치된 수전을 만난 사람들은 앞다투어 수도꼭지와 호스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섯 여자도 수도꼭지 하나를 차지해 물을 뒤집어쓰고, 매운 기운을 씻어내려 애를 썼다.
아무리 별짓을 해 봐도 따끔거리는 기운을 전부 다 털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눈과 코만 좀 나아져도 한결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얘, 이쪽으로 와! 이쪽! 그쪽으로 바람 가잖아! 이쪽!”
수건을 물에 빨아 다시 얼굴을 닦아내고 있는 웨이트리스들에게 마담이 손짓을 한다.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비척거리며 걸음을 옮긴 여자들은 하나둘씩 잔디밭 위에 주저앉았다. 잠결에 뛰쳐나와 맨발로 내달린 탈출이라 꽤 지친다.
멀리 보이는 직원 숙소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마담과 다섯 여자를 시작으로, 마땅히 갈 데도 없던 30여 명의 대피자들 거의 전부가 넓은 잔디밭 위에 무리를 이뤄 군데군데 떨어져 앉았다.
“근데 언니, 이게 불이 맞기는 한 거예요? 뭔 불이 이렇게 매운 연기만 나요?”
“몰라, 얘. 내가 그런 걸 알겠니? 아후~ 자다가 별 지랄을 다 해 본다. 이게 뭔 조화라니? 얘, 내 꼴 좀 봐. 후후, 다 비친다.”
마담이 푹 젖은 속치마 자락을 펄럭거리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따라 웃는 다른 웨이트리스들의 복장도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다들 얇은 실크 속치마나 헐렁한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잠들었다가 날벼락을 맞았으니 당연하다. 지수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언니,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뭐. 계엄령인지 뭔지 때문에 연회 금지 걸리지 않았으면 더 큰일 났을걸요?”
“그러네. 높으신 분들 접대하다가 이런 일 겪었으면 동반해서 아주 빨가벗고 뛰어다닐 뻔했구나. 호호호.”
마담의 농담에 웨이트리스들이 웃어 대는 동안 해군 기지 쪽에서 두 대의 레토나와 두 대의 살수 트럭, 그리고 병사들을 실은 트럭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달려왔다.
“저기 군인 아저씨들, 불 끄러 오네. 에그, 복도 지지리 없지. 이리로 지나가면 눈요기라도 한 번 하고 가는 건데.”
“아휴, 언니는. 어떻게 이쪽으로 와요? 저 뒤에는 절벽이랑 바다인데.”
지수는 고개를 돌려 불이 꺼진 클럽 하우스 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시커멓고 커다란 건물의 윤곽 밖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슥, 튀어나왔다.
“어머, 깜짝이야!”
지수가 소리를 빽! 지르자 다른 여자들도 움찔하며 몸을 일으킨다.
왜? 왜 그래?
마담이 물었다. 지수는 검은 그림자를 가리켰다.
“저기…… 저 사람 보고 놀라서 그런 거예요. 아후~ 뭐야. 가로등 많은 데 놔두고 왜 저런 데서 기웃거려?”
“어디……. 에이, 술 드셨네. 저 비틀거리는 거 봐라, 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높으신 분인가 보다, 얘. 안 그러면 저렇게 대놓고 술 먹고 돌아다니겠니? 요즘 분위기가 어떤데……. 어? 뭐야? 저 사람, 왜 저렇게 뛰어?”
마담이 당황스러워한다. 비척대던 검은 그림자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더니, 이내 전속력으로 잔디밭을 내달린다.
어머!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직각으로 멀어져 가는 검은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검은 그림자는 담배를 피우고 있던 웨이터 무리를 향해 힘껏 몸을 내던졌다. 그러고는 곧바로 등에 올라타서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끄아악― 꺄아악―
근처의 사람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바닥에 뒹군 첫 번째 피해자는 전력으로 검은 그림자를 떨어내고 달아난다.
뒤로 넘어졌다가 벌떡 일어난 검은 그림자는 곧바로 가장 가까이 서 있던 남자를 덮쳤다.
“어어…… 언니, 저거…… 저거 뭐예요?”
지수가 온몸을 떨며 마담을 붙들었다. 어지간히 담이 큰 마담도 이를 딱딱 부딪치며 발을 떼지 못한다. 오금이 달라붙기라도 한 양 자꾸 무릎이 무너진다.
좀비 사태 첫날 아침, 한 교수와 함께 헬기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그녀들은 실제로 좀비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달아나요! 구, 군인들 있는 쪽으로 뛰어요, 언니! 꺄아악!”
마담을 잡아끌던 지수가 비명을 지르더니 손을 놓아버리고 등을 돌려 내달렸다.
왜? 마담은 뒤를 돌아보았다. 지독한 악취와 함께 또 다른 검은 그림자가 확 덮쳐 온다.
으윽! 마담은 들이받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뒹굴었다.
까드득! 까득!
엄청난 고통!
조금 전 물로 씻어낸 그녀의 입술과 코가 좀비의 이빨에 걸려 뜯겨 나간다.
“끄아아! 아아악!”
죽음의 공포와 고통이 지나고 천천히 의식이 사라져 갈 때, 마담의 뇌리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왜? 왜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나는 놈들이 근처에 올 때까지도 느끼지 못했을까? 바람도 등 뒤에서 불어왔는데…….
꽈드득!
목덜미의 살이 또 한 줌 뜯겨 나가고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모로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는 마담의 시야에 조금 전 자신이 떨어뜨린 수건이 들어온다.
그랬구나……. 코가, 마비되었던 거야…….
꿀쩝! 꿀쩍!
요란하게 씹어 대는 소리가 길어질수록 좀비의 주둥이는 피로 물들고, 마담의 눈동자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간다.
“사람! 사람 살려요! 살려 주세…….”
트럭의 불빛을 향해 내달리던 지수의 앞을 또 다른 검은 그림자가 막아섰다.
그롸아아악! 그롸아아!
방향을 틀 여유도 없었다. 좀비는 지수의 탐스러운 머리채를 꽉 움켜잡고 모질게 당겼다.
뜨드득!
머리카락이 뭉텅 뜯겨 나가고, 지수는 잔디 위에 쓰러졌다.
으아아!
풀밭 위를 기며 지수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투투투― 투투―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성.
퍼벅―
살덩어리가 터져 나가는 소리.
‘살았나? 괴물이…… 죽은 건가?’
지수는 무심코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 덕에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쫙 벌리고 몸을 날린 좀비를 정면으로 보게 되었다. 놈의 뻥 뚫린 흉부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관통되어 반짝인다.
와드득!
지수의 허벅지에 좀비의 이빨이 박힌다. 한 교수가 어지간히도 쓰다듬던 바로 그 자리가 뜯겨 나가며 피가 콸콸 흘러나온다.
그르르르―
지수가 발버둥을 치는 동안 그녀의 머리 쪽에서 또 한 마리의 좀비가 다가온다. 놈의 얼굴과 가슴팍은 이미 뜨거운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안 돼! 안 돼! 제발! 꺄아악!”
지수는 좀비의 얼굴을 꽉 잡고 밀어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전력을 다하는 것보다 놈의 힘이 몇 배나 강하다.
으득!
팔목이 반대로 꺾이며 좀비의 송곳니가 목덜미에 박혔다.
쐐애애―
뜯겨 나간 기도를 통해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끄윽! 끅! 끅!
지수는 경련하며 그렇게 서서히 생명을 잃어 갔다.
탕― 타타타―
뒤늦게 울리는 총소리는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불을 끄기 위해 출동했던 병사들도 당혹스럽다는 점에서는 죽어 가는 지수에 못지않았다.
살수차의 호스를 풀어내고 관에 연결하는 작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갑자기 패닉을 일으킨 사람들이 사방으로 내달렸다. 그중에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도 여럿이다.
40여 명의 병사들이 있지만, 무장하고 있는 것은 여섯뿐이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소방 작업을 위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어어, 저기! 저기!”
소방 호스를 잡고 있던 병사가 좀비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다. 강정 기지에서 상주하고 있던 그들 역시 실제 좀비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교전 경험은 없다. 무장하고 있던 병사들이 당황하면서 안전장치를 해제한 뒤, 총을 겨눴다.
그런데…… 뒤엉킨 사람들 때문에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기가 어려웠다. 외등이 밝혀 주고 있다 해도 어차피 깊은 밤.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판단은 느려진다.
“쏘, 쏩니까, 김 중사님?”
“쏴! 쏴! 저기! 여자 덮치잖아!”
탕― 투투둑― 투두둑― 투투둑―
일제히 발사한 총알은 근처의 잔디밭과 좀비의 가슴, 그리고 달아나던 여자의 허벅지를 맞췄다.
끄아아악!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정작 죽어야 할 좀비는 쓰러진 여자를 향해 멀쩡히 걸어가고 있다.
“쏴! 정확히 조준해서 쏴!”
잠시 얼어붙었던 병사들을 향해 지휘관이 악을 썼다.
투투둑― 투투둑―
먼 거리는 아니지만, 좀비의 머리를 맞춘다는 건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총에 맞아 팔이 날아갔는데도 좀비는 꽉 문 여자의 손가락을 놓지 않고 있다.
그롸아악―
반대쪽에서도 좀비들의 포효가 날카로운 비명과 한데 섞여 울린다. 병사들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고, 총구는 심하게 흔들렸다.
풀려 나온 좀비들이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을 때, 골프장 설비 관리실의 지하에서는 한 40대 남자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오랜 숙원이 이뤄지려는 순간이다.
“두루루루~ 두, 두루루~ 뚜뚜 루루~ 두루루루~ 두, 두루루~ 두두두 루루~”
군 병력이 모든 시설을 관리하는 강정 기지와 달리 부속된 골프장의 전원은 이곳에서 통제한다. 관리의 주체도 군이 아닌 공사다. 남자가 걸어가는 복도에는 한 구의 시체가 엎어져 있었다.
뒤통수가 움푹 팬 그 시체는 남자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남자는 시체의 사인을 알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둔기에 의한 두개골 함몰. 방심하고 있을 때 뒤에서 묵직한 스패너가 반복적으로 내려쳐진 것이다. 남자는 잘 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니까.
“두루루루루루~ 두루루루~ 따라, 땃따라라, 땃따라라, 라~”
남자는 배전반의 커버를 열어 바닥에 내팽개쳐 버리고 스위치들을 살폈다.
매캐한 연기를 맡자마자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했고, 총소리를 들었을 때 확신을 얻었다. 이제 자신도 역할을 해야 할 때였다.
‘채 장군님…….’
첫 번째 전원을 차단시키면서 남자는 채 장군을 떠올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저 여부사관 한두 명을 좀 데리고 놀았다는 이유로 군 감옥에까지 수감될 뻔했던 자신을 끝까지 감싸 주고 챙겨주신 분이다.
그분이 여기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시지 않았다면 불명예제대 후에 분한 마음을 못 이겨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씨발, 그까짓 게 죄냐고. 제 년들도 은근히 즐겼다니까!’
철컥, 두 번째 스위치가 내려갔다. 남자는 모든 스위치를 빠르게 꺼버렸다.
끼우웅―
일제히 전원이 꺼진 조명에서 묘한 소리가 울려 나온다.
딸칵, 플래시를 켠 남자는 스패너를 들어 배전반에 힘껏 집어 던졌다.
파시식! 파짓!
박살 난 계기판에서는 푸른 불꽃이 튀어 올랐다.
후후후~ 남자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올라왔다. 3층의 자기 숙소 앞에 도착한 남자는 채 장군이 계실 것이라고 상상되는 방향을 향해 멋들어지게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정점에 서실 그분께서 보름 전 약속을 해 주셨다. 이 작업만 성공하면 다시 군복을 입게 될 거라고.
임무는 완수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제외하면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안전한 암흑 속에 묻힌 강정 기지 골프장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던 사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투투투― 투투투―
멀리서 총성이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