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마이 프레셔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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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마이 프레셔스 (2)
2022.05.14.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너무 시원시원해서 오히려 걱정이 된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태권소녀가 다시 멍해져서 물었다.
“근데…… 규영이한테 형 이야기 해줘야 돼?”
어? 네 사람이 일제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이야기를 시작할지, 어디까지 말을 해줘야 하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머리를 긁적이던 유빈이 의견을 냈다.
“그거, 꼭 오늘 이야기할 필요 없지 않을까? 코스트코 정리할 때까지는 걔한테 신경 써 줄 여유가 없는데, 공연히 상처만 들쑤셔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여기 좀비 다 치우고 이사 와서 숨 좀 돌리고 난 뒤, 말해 주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
“뭐, 그 말이 맞기는 하는데…… 규영이도 자기 형이 코스트코에 갇힌 거 알아. 오늘 돌아가면 나한테 물어볼 수도 있어. 형 봤냐고. 그러면 그때 뭐라고 해?”
물어보는 태권소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묵묵히 담배 연기만 뿜어내고 있던 삼식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걔가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형이 어떻게 했는지 들을 권리도 있고. 그냥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괜히 어설픈 거짓말 꾸며내다가 일만 더 꼬이게 만들까 봐 하는 말이야.”
“어디까지 사실로 말하라고? 100퍼센트 다? 그러니까 셔터맨부터 옥상 주차장에서 유리에 적힌 편지 본 것까지 전부 다 그대로 말하라는 거야? 이미 좀비가 되기는 했어도 마지막에 죽인 게 우리 둘인데…… 우리가 앞으로 규영이 얼굴 어떻게 보라고.”
보안관이 끼어들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빈이 보안관의 말을 정정했다.
“아니지. 확실하게 말하라면, 죽인 건…… 나지.”
유빈은 난감한 표정으로 모두를 돌아봤다. 어차피 좀비가 된 상태니까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나서서 해결해야 하고, 자신이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 사건이 규영이에게 어떻게 느껴질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기 전에 저지른 일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꽤 긴급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보안관의 말을 듣고 보니 형의 머리에 못을 박은 녀석과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잔다는 걸 규영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갑자기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미움을 좀 받다가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규영이가 스스로의 삶을 수치스럽다고 여기게 될까 봐, 그게 두렵다.
“아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왜들 그리 심각해? 너희들이 말하기 껄끄러우면 내가 했다고 해. 내가 그 사람 더 힘들지 않게 하고 싶어서 서둘렀다고 말할게. 이해할 거야.”
‘정직하게 살자’파 삼식이는 여전히 별거 아니라는 투다. 보안관이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네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냐? 걔 사춘기야. 어떻게 반응할지 아무도 몰라.”
“그냥 언니는 못 봤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른 척하고……. 그러다가 우연히 좀비 시체 더미 사이에서 발견한 것처럼 하면, 그래도 충격이 덜할 것 같아서……. 선의의 거짓말이잖아요. 아무도 피해 보는 사람 없어요.”
제니는 ‘거짓말로 좀 꾸미자’는 파다. 태권소녀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죽은 건데? 그냥 죽어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위층에서 떨어지는 좀비에 맞아 죽었다고 하면 안 될까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죽은 좀비도 오늘 꽤 될걸요?”
“그래 봐야 보자마자 표가 확 날 텐데. 목뼈는 멀쩡한데 뒤통수에 못이 박혀 있단 말이야. 게다가 그 사람 죽기 전의 동선이 엉망이 된다고. 셔터를 다 내려 놓은 다음, 자동차 유리에 편지까지 써 놓고, 다시 매장에 들어갔다고 하면 너무 이상해.”
유빈은 특기인 걱정을 꼼꼼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길가의 모텔 옥상에서 초조하게 기다릴 신입과 규영을 생각하면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다. 배도 고프다.
보안관이 해머를 짚고 일어나며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아, 너무 어렵다. 그냥 오늘은 일단 못 봤다고만 하자. 그다음 일은 더 생각을 해보고. 뭐, 무슨 수가 떠오르겠지. 그렇게 다 입 맞추는 거다?”
다섯 명은 임시방편에 합의를 하고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러고는 주차장 진입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싸움에서 이겼는데도 영 발길이 가볍지가 않다.
“누나! 삼식이 형! 다 괜찮아요? 다친 사람 없어요?”
주차장 진입로를 빠져나오자 맞은편의 6층 모텔 옥상에서 초조한 얼굴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규영이와 신입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삼식이와 제니가 두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했다.
“그래그래! 다 잘됐어!”
몇 시간 만에 다시 본 거리는 들어가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일행은 셔터를 열고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혜주 누나! 제니 누나!”
6층에 올라서기가 무섭게 규영이가 휠체어를 밀고 와 두 여자를 꼭 끌어안는다. 신입은 전자 담배를 뻑뻑, 피워 대고 있다. 그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깡통과 빨랫줄로 만든 덫이 몇 개나 뒹굴었다.
“하하하, 이거 뭐야? 둘이서 이걸 만들고 있었어? 어라? 담배꽁초 하나도 없네? 계속 전자 담배만 피운 거야? 하하, 웬일로 이렇게 착한 어린이처럼 행동하지? 너답지 않은데, 신입?”
삼식이가 신입의 입에서 전자 담배를 빼고 담배 한 개비를 물리자, 신입은 이걸 피워도 되는 건지 조금 망설였다.
괜찮아, 괜찮아, 삼식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불을 붙여주었다.
“씨발, 좀비 새끼들 몰려올까 봐 담배도 못 피우고, 불안하기는 존나 불안하고. 하여간 미치는 줄 알았네.”
아직도 불안이 다 가시지 않은 신입의 담배가 가볍게 떨린다. 삼식이는 두 녀석이 만들어 놓은 덫을 들어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이거 만들면서 번뇌를 지운 거야? 큭큭큭, 그러기에 따라오라니까. 우리는 엄청 안전한 데에서 재미있게 놀다 왔는데.”
“새끼야, 너희가 첫 번째 좀비 죽인 다음에 괜찮다는 신호라도 좀 보내 줬으면 걱정을 덜했을 거 아니야. 어차피 거리가 멀지도 않아서 소리만 질러 주면 다 알 수 있는데.”
“하하, 그 생각이 안 났어. 우리라고 경황이 있었겠냐?”
“바빠도 말 한마디를 못 해? 그건 마음가짐이 글렀다고밖에는 안 보여. 아우, 씨발. 좀비 새끼들은 계속 울어 대지, 뭔 놈의 카트는 계속 쿵창쿵창 울려 대지. 너희들은 중간중간에 뭐라고 외마디 소리를 막 지르지. 도는 줄 알았다, 진짜.”
네 시간이 넘게 쌓인 불안감을 삼식이에게 투덜대는 것으로 털어내 보려는지, 신입은 연신 찡찡거렸다.
제니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규영이도 삼식이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보탰다.
“진짜 형네 들어가고 얼마 안 지났을 때, 갑자기 좀비 우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 둘이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옥상에는 좀비가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와, 근데 그 좀비 새끼는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가지고 그 난리를 친 거예요? 형들은 안 놀랐어요?”
“어? 아, 이제 괜찮아. 별거 아니야. 우리 밥이나 먹자. 너희도 배 많이 고팠지?”
자꾸 셔터맨의 이야기가 나오는 게 불편해진 보안관은 대충 얼버무리며 코스트코가 보이는 난간 앞에 섰다.
이쪽은 7층, 코스트코 옥상은 5층이지만, 실제 높이는 코스트코 쪽이 더 높아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문제의 그 사건이 여기에서 보였을 리는 없다.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었더니 배고픈 줄도 모르겠어요. 제니 누나, 무서웠죠? 저는 비록 같이 가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엄청 빌었어요. 그리고 그 첫 번째 좀비 새끼 우는 소리 듣고 저주의 기운을 막 보냈어요. ‘빨리 뒈져! 아무도 다치게 하지 말고 얼른 뒈져! 이 개새끼야!’ 이러면서. 헤헤, 그러자마자 더 이상 그롸아아― 하는 소리는 안 들리더라고요. 꼭 내 저주가 통한 기분이 들어서…… 아휴, 얼마나 통쾌하던지!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요. 그놈은 누가 죽였어요? 어디에 짱 박혀 있었던 거예요?”
규영이 천진한 얼굴로 묻는다. 내색을 하고 싶지 않지만, 규영이가 셔터맨을 저주하는 걸 듣자마자 다섯 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그게…….”
혜주가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을 더듬었다.
에? 영문을 오르는 규영이는 다른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니도, 유빈이도, 보안관도 다들 규영이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규영이는 그 정도의 이상기후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아아~ 하아아~
규영이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제니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초조하게 자신의 양손을 번갈아 쥐어뜯으며 물었다.
“설마…… 설마 그…… 그 울던 좀비가…… 내가 아는 사람이에요? 아후…… 누나, 제발 아니라고 해줘요. 난…… 나는 그냥 형아는 죽었다고 알고 있고 싶어요. 네? 우리 형아 아니죠? 내가…… 내가 우리 형아한테 빨리 뒈지라고 빈 거 아니죠? 흑!”
규영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신경질적으로 쥐어뜯은 손가락은 피가 맺혔다.
“규영아……. 네 말이 맞아.”
제니가 규영의 두 손을 꽉 붙잡아 더 이상의 자해를 막으면서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그거 그냥 좀비였어. 네 형 아니야.”
“……거짓말이잖아요. 흑!”
규영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울먹였다.
“규영아, 날 봐. 누나 눈을 봐.”
제니는 규영의 볼을 두 손으로 잡아 억지로 들게 하고, 그의 눈을 보면서 아주 다정하게 속삭였다.
“너희 형은 마지막까지 멋진 일을 하고 나서…… 혜주 언니한테 너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돌아가셨어. 정말이야.”
“……그럼 오늘 그 좀비는 뭔데요? 흐윽.”
“너희 형을 따라왔던 놈인가 봐. 규영이 형이 눈을 감은 다음에도 미련이 남아서 그 자리를 계속 지키다가 오늘 죽은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울지 마.”
“우리 형아는…… 어땠어요? 어때 보였어요?”
“……편안해 보였어. 자동차 의자에 조용히 기대서 눈을 꼭 감고……. 모르고 보면…… 흑, 그냥 잠든 사람 같아.”
말을 꾸며내는 제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온다. 규영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제니의 어깨에 안겨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젠가 한 번은 아프게 흘려야 할 눈물이었다.
***
평소의 두 배가 넘는 대규모 좀비 무리가 근접해 온 덕에, 건대 쉘터에서는 저녁 식사 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병사들이 악을 쓰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게이트 병력은 증강 배치되었고, 주변 건물의 옥상에 배치된 저격조들은 저지선을 넘으려는 좀비들을 향해 난사를 퍼부었다. 예기치 못한 이상 징후 때문에 다들 패닉 직전까지 몰렸다.
에에에엥― 에에에엥―
요란하게 울려 대는 사이렌도 심리적 압박을 주는 데 한몫 가세했다.
“저게 대체 뭐야? 왜 또 저렇게 색깔이 늘었어?”
쉘터 맞은편 건물의 옥상에 임시 K―3 사대를 구축하던 강 소위가 대로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강 좀비 무리들에 익숙해질 만하니까 이제는 온갖 알록달록한 색깔의 좀비들이 합류해 버렸다. 엄청나게 불어난 규모도 신경이 쓰이지만, 그보다도 인위적이기 짝이 없는 저 채색이 더 거슬린다.
이쯤 되면 누군가 악의적으로 좀비들을 조종하고 있다고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대체 누가?
강 소위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좀비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하필 여기로 점점 더 많이 놈들을 보내는 것일까?
“K―3 다섯 정, 사격 준비 마쳤습니다!”
병장의 보고를 받은 강 소위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들은 어린이대공원역 앞을 돌아 나가는 중이다.
얌전히 빠져나가 준다면 참 고맙겠는데 워낙 수가 많다 보니 자꾸 정체가 생겨나고, 정체된 무리 중에 일부는 쉘터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해서 접근하려고 한다. 그놈들을 몰살시키는 것이 강 소위의 임무다.
“노란 선을 넘자마자 발포한다.”
강 소위의 명령을 받은 K―3 사수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앞이 꽉 막힌 백여 마리의 좀비들이 방향을 돌린다.
놈들의 발이 미리 그어둔 노란 실선 위를 지나는 순간, 옥상에서는 요란한 총성과 함께 다섯 정의 K―3가 불을 뿜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이 건물 옥상에서만 사격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쉘터 주변을 빙 둘러 축조된 저격 사대에서는 수십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모두 이를 악문 채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그래봤자 좀비 무리의 크기에는 별다른 차이를 발생시키지 못한다. 애초에 너무 많다. 중대형 규모 넷의 좀비들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엄청난 압박을 준다.
외부의 군인들이 그렇게 전투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와 정반대 편에 위치한 쉘터 남쪽의 한 건물 내부의 텅 빈 사무실 의자에는 육만배가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군인들이 다들 좀비 때문에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조용히 ‘대화’를 좀 나누려고 하는 중이다.
육만배의 맞은편에는 초희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서서 민구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육만배의 얼굴에 분노가 점점 더 크게 번져 갔다.
다쳤다는 것도 날벼락인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잠실로 옮겨 갔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말 다급하게 이송을 했어야 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허락을 받고 움직였어야 맞다.
그게 만배파의 룰이고, 민구가 사는 방식이다. 이렇게 야반도주를 하듯 달아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래, 강 실장이 너한테 정성껏 치료해 줘서 고맙다고 해놓고서 다음 날 가보니 훌쩍 사라져 버렸다, 이거지?”
육만배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초희를 노려보며 물었다. 초희는 조금 움찔하면서도 미리 준비해 온 거짓말을 태연히 늘어놓았다.
“네. 진짜예요, 회장님. 제가 똥 기저귀 다 갈아주고, 팔다리도 얼마나 열심히 주물러 줬는데요. 정말로요, 제가 다 해 줬어요. 오죽했으면 강 실장 오빠가 저보고 춘향이는 댈 것도 아니라고 했겠어요.”
육만배는 담뱃재를 신경질적으로 털며 잠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이 띨띨한 계집애가 지껄이는 소리를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민구가 갑자기 사라지기로 결심했다는 것.
그렇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 손을 들어 초희의 변명을 제지한 육만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너 체육관으로 돌아가고, 기동이 오라고 해.”
“네. 어휴우~”
책임감을 덜어낸 초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문가에 서서 인상을 구기고 있는 기동이에게 초희가 말했다.
“기동이 오빠, 회장님이 들어오래.”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문을 닫고 들어온 기동이는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를 했다. 녀석의 퉁퉁한 목과 손등에는 두툼한 반창고가 붙어 있다.
으음, 그랬구나…….
육만배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제부터 살살 시선을 피해 숨어 다니던 녀석의 이상한 행동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육만배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며 물었다.
“너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아, 예. 회장님, 부끄럽습니다. 민간인 어린 애새끼들이랑 가벼운 시비가 붙었는데, 살짝 스친 것뿐입니다.”
기동이는 쭈뼛거리며 바짝 다가오지 못했다.
후우우~ 연기를 기동이의 얼굴에 뿜은 육만배가 다시 손을 까딱거렸다. 기동이는 또 마지못해 두 걸음을 다가왔다.
“애들? 어떤 애들이냐? 말썽 나는 건 안 좋은데…….”
육만배가 슬쩍 떠보자 기동이는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회장님께서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아주 단단히 혼쭐을 내줬으니까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
피식거리며 웃던 육만배가 일어났다. 그러고는 갑자기 기동이의 팔목을 덥석 붙들었다. 기동이가 머뭇거리는 동안 육만배는 녀석의 반창고 끝을 잡고 떼어냈다.
찌지익, 피멍이 검게 든 손등에는 두 개의 간결하고도 얕은 상처가 나 있었다. 누가 봐도 애송이들의 솜씨는 아니다.
“애송이들에게 시비를 털다가 칼을 맞았다고? 기동아,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육만배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물었다.
“아…… 회장님, 고정하십쇼. 애들이 여럿이었는데, 버릇만 고쳐 주려다가…….”
쫘악!
기동이의 눈에서 불꽃이 번쩍 튄다. 호되게 따귀를 갈긴 육만배는 담배를 질겅거리며 다시 물었다.
“핏덩어리 애새끼들이 만배파 경호실장의 손에다가 이런 기스를 냈다고? 딱 핏줄만 노리고 땄다, 이런 말이냐?”
“아…… 아닙니다, 회장님. 이건 그저 살짝 스친…….”
쫘악!
다시 한차례 매서운 따귀가 기동의 귓불을 후려갈긴다. 그래도 기동이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잡아 뜯을 듯한 기세로 기동이의 귀를 꽉 움켜쥔 육만배가 목에 붙은 반창고도 떼어냈다.
가늘게 남아 있는 칼자국.
누가 봐도 동맥을 노리고 그은 흔적이다.
눈을 찡그린 채 부들거리며 그 칼자국을 보고 있던 육만배가 중얼거렸다.
“한 번 더 말할 기회를 주마. 이 상처, 어떻게 해서 생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