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5. 마이 프레셔스 (1) (255/449)


255. 마이 프레셔스 (1)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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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으~ 후우우~ 끄으으으!”

안개비가 걷혀가는 산속에서 진우는 안간힘을 써가며 들것을 당겼다. 오르막에 잡초들이 더해지자 전진이 쉽지 않다.

앞, 뒤, 옆, 세 방향에 소총을 매단 채로 배낭을 메고 60킬로그램 가까이 나가는 짐을 계속 끌기를 40여 분. 온몸에서는 김이 펄펄 나고, 입안은 바짝 말랐다.

하지만 진우의 입가에는 광기에 가까운 미소가 가득하다.

흐크크크, 키킥, 자꾸만 웃음이 터진다. 힘이 들어도 좋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것 같아도 그저 좋기만 하다.

엄청난 수의 실탄에 꿈도 꿔 보지 못했던 고급 개인화기까지 잔뜩 얻었다. 뜻밖의 횡재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호흡이 다 가빠질 지경이다.

“로또, 로또에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진우는 들것 가득 실려 있는 검은 가방을 보면서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죽어라 뛰고 나서 곧바로 무거운 걸 끌고 산길을 헤매는 중인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하루 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기뻤다. 태어나 지금껏 살면서 이만큼 풍부하게 원하던 뭔가를 가져 본 기억이 없다. 그것도 가장 간절한 순간에.

“훗, 후후후후.”

두 팔과 다리에 전해지는 무게가 곧 엄청난 실탄이라는 걸 알기에, 낑낑거리며 언덕 위로 들것을 끌어 올리면서 진우는 웃었다.

하지만 몸은 정직하다. 아드레날린 덕에 솟구쳤던 에너지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고, 미리 빚을 내 힘을 쓴 만큼 더 큰 피로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윽!”

수풀 속에서 한 걸음을 더 나가려던 진우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려고 땅을 짚다가 자신의 두 팔과 두 다리에 가벼운 경련이 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육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인삼 파워도 다 소진되어 버린 모양이다.

“하아아~ 하아아~ 그래, 좀 쉬자…….”

진우는 젖은 풀밭 위에 벌렁 누우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체력 게이지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니, 이미 아까부터 들어와 있었는데 실탄과 새 총에 정신이 팔려 미처 모르고 있던 것뿐이다.

“후우우~ 지금쯤은 수색대가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진우는 블랙호크가 불시착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물론 그동안 꽤나 열심히 도망쳐 왔으니 여기에서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데려가 달라고 애원과 협박을 하던 중사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하지만 진우로서는 매정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도와야만 하는 의리도 없고, 그의 부상이 이동을 하기에는 너무 컸다. 뿐만 아니라 100퍼센트의 선의로만 대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자신의 총을 빼앗는 상황이 온다 해도 그것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온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잊어버려. 그 사람들 헬기 타고 날아갈 때, 네가 도와달라고…… 조금만 태워 달라고 했으면 도와줬겠냐? 어림도 없지. 그런데 너는 왜 신경을 써? 그리고 그 다리로는 멀리 도망가지도 못해. 짊어지고 와 봤자 100퍼센트 죽는 거라고.”

진우는 일부러 모질게 말을 하며 마음속에 남은 한 가닥의 가책을 떨어버리려 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진우는 부상병에게 죽음을 남기고 온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진우의 충고대로 투항을 해도 되고, 정 그렇게 용맹과 충절을 자랑하고 싶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총격전을 벌여도 된다.

헬기 내부에는 아직도 여러 정의 개인화기가 방치되어 있고, 여분의 탄창도, 탄통도 꽤나 남겨져 있었다.

부상병 본인의 전술 조끼에도 예비 탄창이 꽂혀 있었으니, 싸우고 싶다면 다시 헬기 내부로 기어 들어가 무장을 하기만 하면 될 테니까.

“끄응~”

억지로 몸을 일으킨 진우는 아직도 부들거리는 팔을 뻗어 들것의 가장 윗부분에 있는 인삼 보따리 속에 손을 넣었다.

지금은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의 일에 값싼 동정을 하는 것보다 내 몸을 챙기는 게 몇 배나 더 중요하다. 이 정도로 체력이 소진됐을 때에는 뭔가 먹어서 보충을 해줘야 한다.

“아, 맞다……. 전투식량. 그걸 먹어 볼까?”

물을 마시고 날 인삼을 우걱우걱 씹던 진우는 배낭에서 오늘 자신의 전리품 중 하나인 전투식량을 한 봉지 꺼냈다.

국방색 밀폐 봉지를 뜯자 딱딱하게 수분을 뺀 음식들이 나온다. 진우는 우선 빵이라고 적힌 비닐부터 열고 안에 든 것을 꺼내 입에 넣었다.

“더럽게 딱딱하네…….”

우둑우둑, 씹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난다.

압착한 빵의 식감은 이게 실제 빵인지, 아니면 빵의 모형인지조차 분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입안에서 침에 불고 잘게 부서지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임을 알게 해준다.

꿀꺽, 억지로 빵을 씹어 삼키며 진우는 나머지 봉지들을 다 뜯었다.

피넛 버터, 초코바, 강정, 햄…….

전부 칼로리를 극대화한 메뉴들뿐이다. 바로 지금 진우의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우는 남은 빵 조각과 피넛 버터를 함께 씹었고, 단내가 나는 초코바도 우둑거리며 모두 먹어 치웠다.

탕― 탕탕― 탕탕― 투투투두―!

햄과 강정을 번갈아 가며 한입씩 잘라 먹고 있을 때, 헬기가 불시착한 쪽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진우는 멍한 표정으로 총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탕― 타타타타―

총소리는 꽤나 오래 지속됐다. 그 부상당한 중사는 블랙호크 안에 들어가 싸우기로 한 모양이다. 그리고 정말로 꽤나 잘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총성이 그 증거다.

“어디, 그럼 나도…….”

진우는 먹던 음식을 봉지 위에 올려두고 새로 얻은 K―2를 잡았다.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려오는 동안이 바로 새로 손에 넣은 무기의 영점을 조절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바닥에 엎드린 진우는 25미터를 대충 상정해서 그 거리에 있는 나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첫 발은 그가 조준했던 곳을 거의 정확히 때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몇 센티인가 좌로 비껴 맞았지만, 가벼운 경련이 온 손으로 처음 잡아보는 남의 총을 쏜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

후우~ 숨을 가다듬은 진우는 곧바로 제2, 제3발을 발사했다.

탄착점은 첫 번째 총알보다 약간 더 오른쪽으로 치우쳐 거의 오차 없이 밀집됐다. 진우는 다시 세 발을 더 쐈고, 점점 더 완벽하게 하나의 점을 만들어냈다.

총은 좋다. 이 정도면 굳이 조준경의 크리크를 돌려 조절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타아앙―

멀리서 들려오는 한 발의 긴 메아리.

그것을 마지막으로 총성이 끊겼다. 부상병의 죽음을 알리는 메아리를 들으며 진우도 자신의 새 K―2 방아쇠에서 손을 뗐다.

이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기척을 숨겨야 할 시간이다. 그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자꾸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제1화기가 될 K―2의 성능을 확인했으니 저격소총도, 그리고 소음기가 달린 기관단총도 주물러 보고 싶어져서 그렇다.

어차피 낯선 무기들이라서 익숙하게 다루려면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진우의 지금 감성은 원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와 비슷한 상태다.

그저 두근거리고 설렌다. 뭔가 무한한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기분이다.

“후후후…….”

진우는 다시 실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들것에 고정되어 있는 가방들에 눈길을 보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일론 줄 틈으로 아주 조금만 지퍼를 내려보았다.

가방을 가득 채운 탄창 묶음들.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가방 안에서 눈부신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하하하하, 으으으, 하하하.”

진우는 가방들을 온몸으로 덮쳐 안으며 소리 죽여 웃었다. 위치를 노출시킬 위험만 없다면 만세 삼창을 100번이라도 외치고 싶다.

이게 다 내 거다! 이게 다 내 거야―!

진우는 단단한 가방을 꽉 끌어안으며 행복감을 만끽했다.

보물을 얻었다. 이제 더 이상 남은 실탄의 수를 헤아려 가며 싸우지 않아도 된다.

927307의 총열이 완전히 마모되었다는 것 때문에 한숨짓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이제 화천의 만 발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걱정하느라 매일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탄창 하나가 얼마나 나갈까? 400그램? 350그램?’

진우는 K―2의 탄창을 빼서 손바닥 위에 올리고 무게를 가늠해 봤다. 고기 한 근보다는 확실히 덜 나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진우는 자기가 힘겹게 끌고 온 검은 가방들을 보며 대강의 수효를 계산해 봤다.

총기의 무게를 제외한다고 했을 때,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0발가량은 되어 보인다. 탄창에 곱게 끼워 놓은 이만큼의 실탄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화천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게 또 기쁜 일이다.

“……곧바로 서울로 갈 수 있다.”

진우는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무 갑작스레 이뤄진 꿈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동시에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면서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다.

“아니야, 정신 차려. 아직 횡성이야. 서울까지는 멀었어!”

눈가를 한 번 훔친 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팔다리가 좀 후들거리지만, 더 멀리 달아나 둬야 한다. 더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으응차! 진우는 나일론 로프를 두 손에 감고 어깨에 걸친 채 당겼다.

지익― 지익―

바닥에 끌리는 들것의 손잡이가 비에 젖은 흙을 움푹 파내면서 자신이 얼마나 묵직한지를 보여준다. 그 무게가 모두 벅찬 기쁨으로 다가와서 진우는 또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

“하아아~ 무거워.”

삼식이가 카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한숨을 내쉬었다.

태권소녀도 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거미베……어, 허억.”

카트의 철망은 좀비의 뇌수와 살점, 식용유, 그리고 세 사람의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유빈은 장갑 낀 손으로 고글을 슬쩍 들었다. 열기와 함께 고여 있던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롸아아―! 그롸아아!

아래쪽에서 발버둥을 치던 좀비가 사납게 포효하고 있다. 하지만 놈은 허리가 반대로 꺾여 버린 터라 더 이상 미끄러운 무빙워크를 기어오를 수 없다.

턱, 턱.

아직도 기름기가 빠지지 않은 바닥을 짚고 기어오르려던 좀비의 몸이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간다.

놈의 근처 계단참에는 열 마리가량의 좀비가 복합 골절을 당한 팔다리로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 애를 쓰는 중이다.

“……이제 더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놈이 없나 봐.”

고글을 들어 올린 삼식이가 장갑을 빼며 중얼거렸다. 유빈의 눈에도 그런 것 같아 보인다.

10여 분 전, 두 층 아래로 떨어뜨려 버린 놈이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마리도 무빙워크를 거슬러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하긴 그 긴 시간 동안 기어오르기만 하면 밀쳐서 떨어뜨리고, 또 올라오면 보안관이 두들겨 팼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암만 좀비라고 해도 팔다리의 관절이 반대로 돌아가고, 척추가 부러져 버린 뒤에는 그저 버둥대는 정도가 전부였다.

“우리, 몇 시간이나 이 짓을 한 거지?”

따끔거리는 눈을 팔목으로 비비며 유빈이 물었다. 이를 악문 채로 좀비들과 계속 씨름을 한 터라 머리가 띵하다. 보안관이 시계를 확인하고 일러주었다.

“네 시간. 거의 네 시간 다 되어간다.”

“……그렇구나. 징그럽게 싸웠네.”

알려주는 목소리도, 답하는 목소리도 모두 쉬어 있다. 어찌나 고함을 지르고 안간힘을 썼는지……. 유빈은 물을 들이켜면서 아래쪽 계단참과 한 층 아래의 무빙워크를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으깨진 채 죽어버린 좀비들의 시체는 수십 구에 달하고, 아직 살아남은 좀비들은 부러져 튀어나온 뼈로 바닥을 짚으며 기어 다닌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터져 나와 있는 뇌수와 체액들, 그리고 흘러내린 내장들…….

그런 광경들이 헤드 랜턴의 불빛을 받을 때마다 과장된 음영으로 어른거린다.

지옥의 한 귀퉁이를 뚝 떼어 와 코스트코 무빙워크에 얹어 놓은 것 같다. 그나마 붉은 피가 낭자하게 흐르지 않은 점만은 다행이지만, 대신에 엄청난 악취가 후덥지근한 공기 가득 퍼져 있다.

“저것들이 못 올라오면 어떻게 다 죽이지? 우리가 저 아래로 내려가는 건 싫은데.”

태권소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 역시 갈라지기는 마찬가지다. 유빈이 대답했다.

“아, 그건 나도 동감이야. 저 좀비 범벅이 되어 있는 데를 내려갈 일은 없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일단 좀 쉴까? 어차피 여기에서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은데.”

유빈의 말에 태권소녀와 삼식이는 등을 옥죄고 있던 특수 장비부터 벗어버렸다. 배낭 위에 걸친 것인데도 어깨와 등의 피부가 다 벗겨진 듯하다.

물론 그 덕에 좀비들과 몸싸움을 하면서도 크게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무겁고, 딱딱하고, 불편한 장비였다.

“하아~”

제니도 벽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꼬박 네 시간 동안 플래시를 들어 올린 채 벌을 섰던 그녀의 가녀린 팔이 덜덜덜 떨린다. ‘오늘 일은 다 끝났다’라고 안도하며 긴장이 풀리자마자 급격한 신체 반응이 뒤따랐다.

“웁―!”

플래시를 내려놓은 제니는 주차장 구석으로 뛰어나가 구역질을 했다. 눈앞에서 4D로 펼쳐지는 좀비 두개골 및 내장 파괴쇼를 장장 네 시간 동안이나 감상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벌써 30분 전부터 몇 번이나 토사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오로지 의무감 하나로 꾹 눌러 참은 거니까.

“우우욱―! 우우욱―!”

제니가 괴로워하며 속을 게워내고 있자 보안관이 나서려 했다. 하지만 태권소녀가 그를 제지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제니의 등을 두드려 줬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걱정시켰다는 걸 깨달은 제니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하아~ 미안해요. 가까이에서 싸운 사람들도 있는데…… 웁!”

“괜찮아…… 다 토해 버려. 긴장해서 그래.”

자애로운 언니 포스로 등을 두드려 주던 태권소녀의 얼굴도 갑자기 파랗게 질렸다. 구토가 전염된 것이다.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역류를 시작한 속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모든 걸 격하게 뿜어내기 시작했다.

“으아…… 너희 괜찮냐? 왜 그렇게 바짝 붙어서……. 내가 등 두들겨 줘?”

별로 든 것도 없을 텐데 계속 구역질을 해 대는 두 여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삼식이가 물었다. 태권소녀는 오지 말라고 손을 들어 보였다.

그녀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유빈과 보안관은 특수 장비와 짐을 빼내고 무빙워크의 셔터를 내렸다. 혹시 올라오는 놈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으아, 좀 쉬자! 두 다리 좀 펴 보자.”

삼식이가 주차장 바닥에 등을 대고 벌렁 누우며 큰소리를 냈다. 햇살이 들지 않던 바닥은 그래도 꽤 서늘하다.

담배까지 한 대 피워 물고 나니 아주 신선놀음에 가까워졌다. 어차피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이 부근에 대규모 좀비는 지나지 않을 테니까 이 정도 호사는 부려도 된다.

보안관과 유빈도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물을 나눠 마셨다. 마치 멍석말이를 당한 사람처럼 온몸이 다 쑤시고 저려 온다. 지난 몇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건 버리지, 뭐하러 가지고 나왔어?”

날카로운 창끝이 온통 좀비의 끈적한 피와 살점으로 더럽혀진 특수 장비를 보며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기진맥진한 유빈이 힘없이 대꾸했다.

“혹시 씻어 놓으면 또 쓸 일이 있을까 해서. 애써 만든 거니까.”

이제 겨우 진정이 됐는지 손바닥에 물을 부어 얼굴을 대강 씻어낸 제니와 태권소녀가 근처로 와서 앉았다. 둘 다 얼굴이 아주 핼쑥해져 있다. 모두를 찬찬히 돌아보며 유빈이 말했다.

“고생 많았어. 이제 위험한 거, 힘든 거는 다 끝난 것 같아. 나머지는 걷지도 못하는 놈들이니까, 오늘처럼 이렇게 땀 뺄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단정해도 돼? 아직 죽은 건 절반 정도밖에 안 돼. 기어 다니는 놈들이라도 사방에서 덮쳐 오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태권소녀가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유빈도 아까부터 허리랑 어깨가 아주 끊어지는 것 같다. 좀비들이 한 번씩 쇠파이프 창에 몸을 던져 박힐 때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과 유사한 충격이 느껴졌었다.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짚어 보니 벗겨진 상처가 따끔거리고, 피가 묻어난다.

“응.”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워낙 기운이 다 쪽 빠진 터라 그건 뜻대로 잘 안 됐다.

“이제 나머지 놈들은 제풀에 죽게 만들 거야. 생각해 둔 것도 좀 있고, 저 정도로 망가뜨려 놨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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