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던전 & 아이템즈 (5)
(25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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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던전 & 아이템즈 (5)
2022.05.08.
잘려 나가 땅속에 깊숙이 박힌 프로펠러 조각을 지나친 진우는 자세를 낮추고, 왼쪽으로 약간 기운 채 쓰러져 있는 블랙 호크의 뒷부분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이렇게나 강한 충격을 받고 추락한 헬기 내부에 생존자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접근은 조심스럽다.
내부에 타고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고도로 훈련받은 군인들이고, 당연히 무장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방아쇠 정도는 당길 수 있다.
타닥타닥, 치이익―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헬기의 로터에서는 화염이 쉬지 않고 타올랐다가 이슬비에 맞아 진정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헬기 전체로 불이 번질 위험은 아직 없어 보인다.
진우는 온몸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채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씩을 내디뎠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블랙 호크의 크기가 실감이 된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높아서 꼬리 날개를 제외한 몸통 자체만으로도 버스 크기와 비슷하다.
당장 눈으로 확인한 시체는 둘이다. 열려 있는 오른쪽 문에 걸린 피투성이 상반신, 그리고 헬기 기체에 가려져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또 한 구의 시체가 계곡 물속에 머리를 박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거미줄처럼 금이 간 블랙 호크의 전면 창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든 것으로 보아 조종사와 부조종사도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들까지 치면 넷이다.
원래 몇이나 타고 있었을까?
진우는 헬기 뒤쪽에 바짝 붙어서 신음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였다.
들린다. 있다.
“으으으…… 으으…….”
아주 작은 신음. 신경 써서 듣지 않았더라면 다른 소음들에 묻혀 인지하지 못했을 만큼 꺼져 가는 숨소리가 끊어질 듯 간간이 들려온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다친 거지?
진우는 고민에 빠졌다.
방아쇠를 당길 힘은 있는 걸까?
헬기 내부의 구조도, 내부의 상황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뛰어들기가 망설여진다.
가장 빠르고 간단한 문제 해결 방법은 내부에 총질을 두어 번 갈겨 주는 것이지만, 그런 건 하고 싶지 않다.
자신은 그저 여기에 원래 주인들이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개인화기와 실탄을 훔치러 온 것뿐이다.
부상병을 확인 사살하는 건 계획에 들어 있지 않았다. 총소리를 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텅―
내부에서 뭔가 울림이 들려온다. 사람 몸무게 정도의 질량이 바닥에 쓰러지는 듯한 소리. 그리고…….
턱, 쇠가 쇠와 부딪치는 소리.
그러면서 신음은 더 커졌다. 안의 상황이 대충 상상이 간 진우는 기울어 있는 왼쪽의 문으로 총구를 고정시켰다.
꽤나 크게 다친 누군가가 기어 나오려 하고 있다. 그럴 때는 당연히 아래쪽 경사로를 향해 빠져나오려 할 것이다.
“끄으윽~ 으으으~”
진우의 예상이 맞았다. 독특한 모양의 하이바를 쓴 군인 하나가 피카티니 레일이 달린 신형 K―2 개머리판으로 바닥을 찍으면서 헬기 바깥쪽으로 아주 천천히 빠져나온다.
고통스럽게나마 포복하고 있는 것이 용할 만큼 두 다리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얼굴과 발목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는 그가 지나가는 경로를 따라 흙을 물들이며 선명한 궤적을 만들어 놓았다.
“끄으으…….”
개머리판으로 땅을 짚고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던 부상병이 땅에 나뒹군다. 진우가 모습을 감추고 있던 헬기 뒤쪽과 5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지점이다.
녀석이 바닥에 벌렁 넘어지면서 K―2를 손에서 놓쳐 버리는 걸 확인하자마자 진우는 곧바로 뛰어나갔다. 만약 놈이 다시 총을 집어 든다면 그때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으윽!”
하지만 놈의 부상 정도는 생각보다 훨씬 심했던 모양이다.
진우가 달려오는 걸 보고 놀라 고개를 돌리면서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다. 물론 찰나의 짧은 순간이었다. 진우는 얼른 바닥에 떨어진 신형 K―2를 밟고 놈에게 총구를 겨눴다.
“움직이지 마! 두 손 하늘!”
부상병은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진우를 노려본다. 아직 녀석의 손은 전술 조끼 주변에 머물러 있다. 권총이나 뭔가 다른 무기를 꺼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우는 한 번 더 힘주어 명령했다.
“손들어. 한 대 맞고 들래?”
부상병은 천천히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면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너…… 너 뭐야? 옷 꼬라지며…… 하이바도 없이…….”
진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가슴에 총을 겨눈 채로 바닥에서 자신의 총을 주워 올리는 진우를 향해 부상병은 다시 묻는다.
“……1107 소속이 아니잖아? 그런데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어?”
“글쎄, 나도 그걸 알고 싶네. 어허, 손!”
새 총을 걸쳐 메는 동안 녀석의 손이 슬슬 내려오는 걸 보면서 진우는 재차 지적을 했다.
끄으으~ 부상병은 신음을 토해가며 손을 든다. 90도 이상 돌아간 발목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이바와 머리 사이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우는 부상병의 등 뒤로 돌아가 자세를 낮춘 채 녀석의 몸을 방패로 삼고 헬기 내부를 살폈다.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확인하는 의미에서 물어보았다.
“안에 생존자 더 있어?”
부상병은 대답 대신 다급한 제안을 했다.
“너……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여기 있으면 안 돼. 대공 발칸 쐈던 새끼들이 금방 쫓아올 거야. 끄으으~ 너나 나나 잡히면 죽어. 후우우~ 빨리 여기를 뜨자. 조금만…… 조금만 도와줘. 여기서 벗어나야 돼.”
“쫓아오는 거 알고 있어. 물론 난 그전에 튈 거고.”
진우는 부상병의 왼쪽 어깨를 당겨 바닥에 눕히고 그의 허벅지에서 권총을, 칼집에서 대검을 빼냈다. 부상병을 무장해제시킨 진우는 블랙 호크의 내부로 들어갔다.
치짓! 치지직!
계기판과 조종간에서는 불꽃과 함께 하얀 연기가 조금씩 뿜어져 나온다. 예상했던 대로 두 명의 조종사는 피범벅이 된 채 사망한 상황이었고, 탑승 구역에도 세 구의 시신이 더 있었다.
낯이 흙빛으로 변해 버린 시체들은 다들 척추와 목뼈가 심하게 꺾인 채 죽어 있다. 밖으로 튕겨 나간 사망자는 아마도 기관총 사수였던 모양이다.
“탈영하기 전에는 어느 편이었어? 어디 소속이야?”
“난 내 편이야.”
진우는 차갑게 내뱉고서 어지러운 헬기 안을 살폈다. 내부는 엉망이었다.
바닥에는 피가 잔뜩 튀어 있고, 떨어져 나온 좌석 벨트와 로프, 여러 종류의 수하물, 개인화기들이 잔뜩 널브러져 제대로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가장 먼저 진우의 관심을 끈 것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커다란 검은 가방들이었다. 영화에서 은행 강도들이 돈을 담아 나오는 것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이다.
지이익―
진우는 그중 한 개의 지퍼를 내려봤다. 탄창과 소음기가 달린 기관단총, 정글모가 들어 있다.
가방 하나 가득만큼의 탄창…….
진우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곧바로 두 번째 가방을 열었다.
이번에도 탄창. 5.56㎜ 30발짜리다.
꿈에서도 나왔던 광경. 각기 구경이 다르기는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실탄이 가방 두 개에 들어 있다. 부상병과 블랙 호크 내부를 번갈아 보며 탐욕스럽게 가방들을 열어젖히는 진우를 향해 부상병이 말했다.
“그런 거 말고 저기 저…… 무전기를 챙겨. 실탄 좀 챙겼다고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끄으으…… 아니, 못 가. 저 새끼들…… 사방에 지뢰도 깔아 뒀을걸? 하지만 나는 도와줄 수 있어. 그러니까…… 나를 데려가, 이병. 나는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훈련받아 왔어. 산 두 개만 넘으면 우리 둘 다 안전하다. 그때 서로 제 갈 길 가자. 너는 네 갖고 싶은 거 챙기고…… 나는 무전기만 줘.”
진우는 부상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낭형 무전기는 이미 박살이 나 있다. 하긴 저게 멀쩡했더라도 애초에 도와줄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당신네들…… 우수한 군인이라는 거 아는데, 이 상황에서는 무리야. 걷지도 못하는 사람 끌고 도망가 봐야 결국 둘 다 잡혀. 그 다리로 어딜 가겠다고 그래. 그리고 무전기 박살 났어. 희망을 버려.”
진우는 가방을 블랙 호크 입구로 끌어내면서 무감정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세 번째 가방을 열었다.
또 기관단총과 탄창. 이런 화력을 갖춘 우수한 병력들이, 나라가 이 지랄이 났는데 왜 좀비가 아닌 군을 상대로 투입되고 서로 총질을 해 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철컥, 진우는 자신과 체격이 비슷한 시신을 골라 안전벨트를 풀고 배낭과 전술 조끼를 벗겨냈다.
낡아 다 찢어져 가는 자신의 전술 조끼와 인삼 보따리를 벗은 진우는 검은색 방탄 전술 조끼를 걸쳤다. 그러고는 목이 부러진 시체에서 벗겨낸 검은색 하이바를 자신의 머리에 걸쳐 봤다. 대충 들어맞는다.
“부탁한다……. 여기에 있으면 나는 죽어……. 데리고 가라. 산 두 개만 넘으면 된다니까……. 지금 출발하면 갈 수 있어. 끄으으~”
진우가 새로 획득한 하이바의 끈을 조이는 걸 보면서 부상병은 재차 부탁을 했다. 진우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전기가 망가졌다니까? 그리고 내가 데리고 가봤자 산 하나 넘기도 전에 죽을 거야. 추격대가 오면 그냥 얌전히 항복을 해. 치료해 달라고 하고. 그게 오히려 생존 확률이 높아. 두 손 들고 누워 있는데 죽일 놈 없어. 대부분 그만큼 독하지가 못해.”
몇 개의 가방을 더 확인해 본 진우는 폭발물이나 방독면처럼 쓸모없는 장비들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탄창과 전투식량을 채웠다. 먹어 본 적이 없는 제품이지만, 어쨌든 감자를 캐 먹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테니까.
실탄은 5.56㎜ 위주로 챙겼다. 소음기가 욕심나기는 하지만, 기관단총은 아무래도 근거리용이라 쓰임새가 제한될 것이다. 진우의 대답을 들은 부상병은 이를 악물면서 분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젠장! 이 피! 끄으으…… 니가 인간이라면 지혈이라도 좀 해 주고 뭘 해!”
부상병이 가리키는 곳은 그의 발목과 종아리 부분이다. 두 다리가 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황.
날카로운 것에 걸려 찢어진 살과 뒤틀린 뼈 때문에, 사실 의료 지식이 전무한 진우로서는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진우가 눕혀 놓은 대로 가만히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을 텐데, 부상병은 자꾸 몸을 일으켜 가며 저 난리를 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진우는 그에게 다가가 위험을 자초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전 본인의 입으로 말했듯이, 저 부상병은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거친 엘리트 군인이다. 그런 살인 전용 병기에게 바짝 다가가서 두 손을 다 사용해 가며 치료를 하다가 어떤 위기를 만날지 알 수 없다.
“끄으응~!”
권총집까지 차고 배낭을 짊어진 진우는 바닥에 놓아둔 가방 네 개를 모두 들어 보려고 용을 썼다. 어찌어찌 들어 올리기는 했는데, 너무 무겁다. 끄응~ 아무리 가볍게 잡아도 합이 4, 50킬로그램은 넘는 것 같다.
게다가 등의 배낭, 짊어진 총, 탄창이 주렁주렁 달린 전술 조끼 자체의 무게까지 더하면 총 70킬로그램은 우습게 넘을 기세다.
안 되겠어. 이렇게 들고서는 못 달려…….
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가방을 다시 내려놨다.
‘아…… 젠장, 어떤 걸 버리지?’
진우는 두고 갈 것과 가져갈 것들을 고르기 위해 가방의 지퍼들을 다시 열어봤다. 다시 봐도 너무나 좋은 것들뿐이다.
탄창, 기관단총, 그리고 식량…….
도저히 버릴 것을 못 고르겠다. 진우는 탐욕에 사로잡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쿠욱! 쿨럭쿨럭! 켁! 켁!”
용을 쓰던 부상병이 돌연 마른기침을 해 댄다. 그걸 보고 나서야 진우는 자신도 꽤 목이 마르다는 걸 깨달았다. 실탄과 화기에 대한 욕심 때문에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쩐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더라…….
죽은 병사에게서 수통을 풀어낸 진우는 뚜껑을 열고 몇 모금을 크게 들이켠 후, 헬기 밖으로 나가 부상병에게 권했다.
“하아~”
꿀꺽대며 급하게 물을 마신 부상병이 수통을 바닥에 떨구며 한숨을 몰아쉰다.
진우는 다시 헬기 안으로 들어가 가능한 한 짐을 적게 덜어내고도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궁리했다. 그러다가 좌석의 구석에 놓여 있는 긴 총을 발견했다.
저격소총이다.
아……. 진우는 홀린 듯 다가가 조준경이 부착된 소총을 집어 올렸다.
‘이거였구나. 이걸로 나는 보이지도 않는 까마득한 거리에서 내 머리를 겨눴던 거구나…….’
저격소총을 든 진우는 사격 자세를 취해보고, 조준경의 커버를 벗겨 눈에 대봤다. 순식간에 수십 배의 배율로 확장된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욕심이 난다. 짐을 덜어내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오히려 묵직하고 커다란 총까지 더 가져가고 싶어져 버렸다.
‘일단 가져가자. 버리는 건 나중에 버린다고 해도…….’
진우는 저격소총 멜빵을 사선으로 걸치고 다시 배낭을 멨다. 그러고는 총이 떨어져 있던 주변을 뒤져서 7.62㎜ 탄창이 든 배낭을 찾아냈다.
이제 짐은 또 10킬로그램 가까이 늘어났다. 한 개도 버리고 가고 싶지 않다. 들고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건…….”
헬기 내부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나일론 로프 사이에서 파이프에 둘둘 말려 있는 녹색 직물을 발견한 진우는 얼른 그것을 꺼냈다. 들것이다.
진우는 반으로 접혀 있던 들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 폈다. 길이는 2미터가량, 폭은 50여 센티. 양쪽 끝으로는 플라스틱 커버가 달린 파이프가 길게 튀어나와 있다.
“좋아, 좋아. 이거면 되겠어……. 고정을…….”
진우는 조금 전 획득한 대검을 꺼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격자 구조 나일론 로프들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잘라낸 로프들을 바닥에 먼저 깐 진우는 그 위에 들것을 올렸다. 그리고 들것 위에 총과 탄창이 든 검은 가방들을 평평하게 올렸다.
“나는 데리고 갈 수 없다면서 그걸 다 가지고 가겠다고? 다시 생각해라. 그 많은 실탄 다 사용하기도 전에 죽을 거다. 이병, 네 욕심은 이해하지만, 너에게는 생존 기술이 없다. 하지만 나는 널 도와줄 수 있어……. 도주, 매복, 위장, 저격…… 그리고 너는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하게 되는 거다.”
물 한 모금에 기운을 얻은 부상병이 또 입을 열고 설득을 시도한다.
미친……. 생존 기술이 뭐가 어쩌고 어째? 내가 어떤 아수라장을 헤쳐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곧바로 받아치고 싶었지만, 그래 봐야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다.
진우는 입을 꾹 다물고 오직 나일론 로프들로 가방과 들것을 단단히 고정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바닥으로 기울일 쪽에는 로프를 더 단단히 두 겹으로 감았다. 그러고는 두 줄을 길게 빼서 앞쪽으로 돌렸다.
“끄응차~!”
줄을 어깨에 감고 당겨 보니 정말로 무겁다. 하지만 못 끌고 갈 정도는 아니다. 진우는 들것으로 만든 캐리어를 잡아당겨 가며 완만한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개천을 따라가면 몸이야 편하겠지만 지대가 낮고 시야가 트여 있어 금방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서 아예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추격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봐, 어린 친구…….”
부상병이 은근하게 부른다. 진우가 달아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그의 말투는 더 간절해졌다.
“자네가…… 후우, 반란군 새끼들에게 동조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나를 좀…… 도와줘. 이렇게…… 끄으으, 부탁할게. 간청한다. 네 바로 옆에 덧없이 스러져 간 병사들의 얼굴을 봐서라도 좀 들어줘. 나를 데려가, 제발. 이 싸움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거야. 여기서 잡히면 난…… 죽을 때까지 고문당하게 될 거라고.”
“그럼 고문당하기 전에 다 불어. 끄응차!”
들것 캐리어를 언덕 위로 다 끌어다 놓은 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추격대가 쫓아올 것이라 예상되는 경로 쪽을 돌아봤다. 숲은 고요하기만 하다. 아직 시간이 있다. 애초에 대공 캐논을 쐈던 산은 워낙 거리가 먼 곳이었다.
캐리어를 덤불 속에 숨겨 둔 진우는 땀을 훔치고 헬기에 부딪혀 꺾인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언덕을 내려가 나뭇가지로 비질을 하며 캐리어를 끌고 왔던 흔적을 지웠다.
비가 내린 후의 젖은 흙은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골을 메워 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부상병은 한 번 더 분노를 표출했다.
“너 같은 새끼가 대한민국의 군복을 입고 있다니……. 이 더러운 도망자 새끼! 이기주의자 새끼야.”
진우는 비질을 멈추고 부상병의 근처로 가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중사님.”
부상병도 지지 않고 노려본다. 진우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
“당신들이 얼마나 거창한 걸로 싸우고 있는지 그런 거는 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군인의 의무를 말하고 싶은 거라면, 난 이미 최선을 다했으니까 더 이상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마십쇼.”
“후우~ 네가 그렇게 가면 내가 입을 다물 거라고 생각하나? 내 진짜 동료에 대해 털어놓기 전에 네가 간 방향을 먼저 고자질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내 동료들이 만약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어떤 복수를 할지 상상이 가나? 응?”
“그건 좋을 대로 하세요. 당신 자유니까.”
벌떡 일어난 진우가 새로 얻은 K―2를 꽉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날 잡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