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던전 & 아이템즈 (3)
(24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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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던전 & 아이템즈 (3)
2022.05.06.
멀리까지 물을 쫙쫙 뿌리는 동안 슬슬 아래쪽에서 반응이 올라온다.
그르르르르―
좀비들이 흥분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름이 제대로 잘 발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보안관은 고무 스토퍼를 떼어낸 카트 하나를 무빙워크 아래쪽으로 쭉 밀어봤다.
스으으읏―
가속도가 붙은 카트는 빠르게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 뒤, 벽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합격이다. 아래쪽에 멈춰 선 저 카트는 앞으로 장애물 역할도 해줄 것이다.
인기척과 빛, 소음에 이어 유혹의 단계를 하나 더 올리기 위해 삼식이는 담배를 세 개비나 한꺼번에 피워 물었다. 그러곤 곧바로 기침을 한다.
“켁― 켁―!”
“야잇! 폐까지 삼키지 말고 그냥 입으로만 빨았다가 뱉어. 불을 붙이랬지, 누가 음미하래!”
“아, 그렇구나. 습관이 돼 놔서…….”
삼식이는 두어 모금 더 빨아 불을 잘 붙인 담배 세 대를 좌측 하단의 무빙워크를 향해 던졌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자, 이제 준비는 다 끝났다. 제니가 비춰 준 플래시 불빛 때문에 아래쪽 벽에는 특수 장비를 멘 세 사람의 그림자가 왜곡된 채 일렁거린다. 뿔이 여러 개 난 마왕의 부하처럼 보인다.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유빈은 슬쩍 보안관을 돌아보았다.
“보안관, 일차로 여기에서 밀칠 테니까, 우리를 타고 넘어오려는 새끼들만 때려! 절대 오버페이스 하면 안 돼. 알았지?”
보안관은 해머를 꽉 쥔 채 어깨의 근육을 풀며 허세 가득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근데 난 오버페이스라는 게 없는데. 무한 파워라서…….”
픽, 삼식이와 유빈이 동시에 웃었다.
하긴 눈에 뭐가 보이겠어, 제니라는 스테로이드가 바로 뒤에서 플래시를 쏴 주고 있는데.
이 작전의 아이디어는 예전에 썩은 야채를 밟고 미끄러져 죽은 좀비에게서 얻었다. 아무리 운동 능력이 뛰어난 놈들이라 해도 미끄러운 바닥을 내달릴 수는 없다. 경사로에서라면 더욱 그럴 테니까.
이 작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슬로우 페이스다. 게임의 속도를 아주 느리게 진행되도록 만들어 좀비들의 물량 공세와 스피드를 다 삭제시키는 게 목적이다.
동시에 사방에서 덤벼드는 70마리는 이길 수 없지만, 2분이나 5분 간격으로 한 방향에서만 한 마리씩 나타나는 70마리는…… 물론 그것도 보통 사람에게는 어렵다.
젠장, 말이 좋아 70마리지…….
하지만 아군에 보안관 정도의 파워 히터가 있으니까 승부를 걸어 볼 수 있다. 슬로우 페이스라는 것은 엄청난 지구력을 요하는 게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5분 간격으로 등장하는 70마리면 다섯 시간이 넘는 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힘을 쓰는 역할을 한두 사람이 다 맡으라고 하면 안 된다.
끄응차, 특수 장비를 멘 세 사람이 일으켜 세운 카트 세 개를 끌고 무빙워크 앞으로 와서 뒤집어쓰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카트 끝부분과 어깨에 장착하고 있는 특수 장비가 부딪치며 쇳소리가 난다. 파이프와 줄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이 카트는 단순히 좀비들의 이빨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다.
세 사람이 타이밍을 맞춰 카트를 밀어 부딪치기만 하면, 뛰어 올라오던 좀비들 중 상당수를 놈들이 출발했던 곳이나 그 아래층 무빙워크로 떨어뜨려 버릴 수 있다.
좁은 무빙워크가 무대라서 어차피 한 번에 한 놈이나 두 놈밖에 못 뛰어오를 테니까 가능한 계획이다.
만약에 난간을 밟거나 해서 카트 위로 뛰어오르는 독한 놈들은 파이프 창에 한 번 걸러질 것이다. 이 모든 저지 계획이 실패하면, 그때 보안관이 나서면 된다.
계획의 관건은 놈들이 저 기름과 물로 잔뜩 코팅이 된, 미끄러운 무빙워크에서 얼마나 곤두박질을 쳐 주느냐에 달렸다.
기름이 다 소모될 경우를 대비해서 삼식이의 발 주변에는 여분의 기름이 또 한 통 있다. 이런 걸 다 들고 오느라 처음에 그렇게 힘이 들었던 거다.
그롸아아아―
담배 냄새에 홀려 다가왔던 좀비들이 가까운 곳의 인간 기척을 느끼고 포효한다. 저 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반갑지가 않다.
쿵탕퉁탕―
2층으로 올라오는 무빙워크를 내달려 온 좀비들이 코너를 돈다. 개전이다.
가장 앞선 놈이 기름 함정 무빙워크에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다.
쭈욱― 놈은 앞으로 미끄러지며 난간에 호되게 얼굴을 찧었다. 괜히 보는 사람들의 코까지도 얼얼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충돌이었지만, 좀비는 이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또다시 두어 걸음 만에 미끄러졌다. 뒤에서 달려오던 좀비들은 자빠진 놈과 카트 사이에서 우당탕거리며 뒹굴고 생난리를 친다.
“……기름 너무 많이 뿌린 거냐, 우리?”
기름밭에서 나동그라지고 자빠지는 좀비들을 보며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놈들이 너무 많이 근접했을 경우를 대비해 네일 건에 전동 드릴까지 챙겨 오기는 했는데, 이거 어째 맥이 빠지는 광경이다.
동시에 초조하기도 하다. 이건 시간을 끈다고 해서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좀비들을 다 죽여야 끝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아냐. 그렇게 건성으로 덤비는 새끼들이 아닌 거 알잖아. 이제 금방 온다.”
유빈의 말은 금방 실현이 되었다. 수십의 좀비들이 좁은 무빙워크 주변을 꽉 메우자 좀 더 높이까지 올라오는 놈들이 늘어났다. 자빠진 뒤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료의 몸을 밟고 뛰는 좀비들도 있다.
우당탕― 쿵―
20여 미터 아래에서 요란한 소동이 벌어지기를 십여 분. 마침내 가장 위에까지 도달한 좀비가 생겼다.
놈은 찍찍 미끄러지면서도 어찌어찌 무빙워크를 기어 올라와 카트를 뒤집어쓴 채 도사리고 있는 유빈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밀어!”
놈이 풀쩍 뛰는 것을 확인하고 유빈이 큰 소리로 외쳤다. 세 명은 카트를 꽉 잡고 30여 센티미터 앞으로 밀었다가 되돌렸다.
콰창―
카트 바퀴에 얼굴을 맞은 좀비는 뒤로 밀려 나갔고, 착지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저 멀리 바닥까지 굴러떨어졌다.
갑자기 굴러온 놈 때문에 뒤따르던 좀비들이 또 한바탕 뒹군다. 그중에 한 놈은 난간 너머로 떨어져 아래층으로 곤두박질쳤다.
뻐걱!
놈의 몸이 난간에 부딪혀 박살 나는, 끔찍한 소리가 울린다.
그놈만 박살이 난 게 아니었다. 비틀대며 다시 일어나는 대여섯 놈의 다리 역시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있다. 저렇게 관절이 부러져 주면 고맙다. 아무래도 스피드가 확 줄어들 테니까.
물론 그래 봐야 아직 한 놈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그리고 좀비들은 계속 뛰어 올라온다. 일관되게 좌절도, 포기도 모르는 놈들이다.
“또 온다! 대기, 대기, 대기…… 밀어!”
콰창―
두 번째 좀비를 후려치고 난 세 사람은 곧바로 한 방을 더 내질렀다. 하지만 미묘하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카트를 피해 뛰어오른 좀비는 삼식이의 파이프 창에 맞고 옆의 난간 쪽으로 뒹군다.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발버둥치는 좀비를 향해 보안관이 달려들었다.
“머리 들지 마!”
엄청난 성량의 경고와 거의 동시에 보안관은 좀비의 머리를 겨누고 힘껏 해머를 내리찍었다.
콰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좀비의 목이 꺾이고, 놈의 시체는 마치 난간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떨어져 버렸다.
털썩, 좀비의 시체가 아래층 복도를 때리는 소리가 요란한 메아리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걸 감상할 시간은 없다. 아래쪽에서는 또 불굴의 의지로 미끄덩거리는 경사로를 뛰어 올라오는 좀비들이 아가리를 쫙 벌리고 포효해 댄다.
유빈은 태권소녀와 가끔씩 서로 눈을 마주치며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서로 너무 잘 알아서 척하면 척인 삼식이와 손을 맞추는 것하고는 다르다. 얘는 내가 뭘 하고자 하는지 미리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른다.
“밀어!”
콰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좀비가 또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놈을 밟고 뛰어오른 다른 좀비가 뒤집어진 카트의 윗부분에 걸렸다.
크롸아아악― 캬아악―
카트를 움켜쥔 놈은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손아귀에 힘을 꽉 주고 당긴다. 어찌나 힘이 센지, 세 명이서 버티고 있는데도 카트가 휘청휘청한다.
바로 머리 위에서 좀비가 아가리를 벌리고 난동을 쳐 대는 압박은 엄청났다.
카트의 철망과 등에 짊어진 쇠파이프 창이 당장 물리는 것을 방지해 준다고는 해도, 그 보호막은 겨우 한 겹뿐이다. 그리고 완전히 폐쇄된 구조도 아니다.
“으아아! 떨어져라, 좀!”
유빈과 삼식이는 카트를 앞뒤로 흔들며 달라붙은 좀비를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철컹!
또 한 마리의 좀비가 바로 옆으로 뛰어오른다. 태권소녀의 쇠파이프 창에 찢겨 목의 반쪽이 덜렁거리면서도 오로지 모든 열정을 카트에만 담아 흔든다.
그리고 잠시 후, 놈들의 등을 짚고 또 한 마리가 뛰어오른다. 여기서 뒷걸음질을 치거나 일어나서 몸을 피하면 안 된다. 그러면 카트 방책이 무너지고, 곧바로 좀비들의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등 뒤에서 해머를 들고 있는 동료를 꾹 믿고 세 사람은 눈앞의 좀비들을 떨쳐 버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보안관은 믿을 만한 녀석이다. 이미 싸움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어딜, 이 새끼야!”
보안관은 날아오른 좀비의 머리를 해머로 힘차게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쩍!
대가리를 맞은 좀비는 옆쪽의 벽에 한차례 부딪친 뒤, 난간을 구르다가 아래층 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곧바로 다시 자세를 잡으며 보안관이 외쳤다.
“앞에만 봐! 앞에만! 뒤는 걱정하지 마!”
그롸아아아―
좀비들의 포효가 워낙 시끄럽게 울리는 중이라 정확한 단어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듬직한 의미만큼은 분명하게 전달됐다. 방책을 담당하고 있는 세 사람은 달라붙은 좀비들과 이를 악물고 힘 싸움을 벌였다.
“이익!”
유빈이 바닥에 눕혀 뒀던 네일 건을 집어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그러고는 카트 위쪽을 이빨로 잘라내려는 듯 갉아 대는 좀비의 머리에 네일 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콰랑―
카트가 한차례 거세게 흔들리는 바람에 유빈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와아아―
달라붙은 좀비의 너머로 또 다른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달려오는 게 보인다. 두 마리가 달라붙었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여기에 한 마리가 더해지면…….
유빈은 다시 서둘러 네일 건을 철망 너머 좀비의 머리에 바짝 가져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뚜청―! 뚜청―!
오늘 끼워 넣은 가스 캔은 전기 점화 신호를 받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피스톤을 밀었고, 거기에 맞아 발사된 15센티 길이의 단단한 콘크리트 못이 좀비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털썩, 두 방이나 못 세례를 받은 좀비는 힘없이 카트를 놓치고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롸아아아―
남은 한 마리가 발광을 하며 카트를 긁어 대지만, 끄떡없다. 버텨야 했던 하중이 두 마리에서 한 마리로 줄어들자 어깨가 다 홀가분해진 기분이다.
“그래, 와라! 물어! 이 새끼야!”
유빈은 왼팔로 카트를 지탱하며 네일 건을 꽉 붙잡은 채로 놈의 얼굴이 철망 쪽에 바짝 붙기만을 기다렸다. 삼식이가 유빈과 태권소녀를 향해 외쳤다.
“왼쪽으로 밀자! 그럼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혜주, 넌 당겨!”
“알았어! 신호 보내!”
“셋에 가자! ‘하나! 둘! 셋!’이야!”
세 사람이 힙을 합쳐 좀비 한 놈을 난간 아래로 떨어뜨려 버리는 동안 조금 전 달려오던 놈이 부웅, 몸을 날린다. 하지만 발이 미끄러져서 놈의 원래 목표 지점과는 다른 곳에 떨어졌다.
푸욱, 좀비는 태권소녀의 어깨에 장착된 창에 복부를 찔린 채 허공에 멈춰 버렸다.
“악! 으윽!”
떨어져 내리는 좀비의 몸무게를 어깨만으로 받아낸 태권소녀의 몸이 휘청한다. 그러나 역시 힘도 좋고 근성도 있어서 이를 꽉 깨물면서도 버텨냈다.
찌지직―
창에 관통된 좀비의 상처가 녀석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찢어지면서 넓게 벌어진다. 그러는 동안에도 녀석은 팔을 휘두르며 난리를 친다. 보안관이 얼른 달려와 도왔다.
“때린다! 가만있어!”
경고가 끝나자마자 보안관은 해머를 힘껏 돌려 좀비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겼다.
빠가각!
얇은 뼛조각들이 부서지는 소리와 목뼈들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소리가 동시에 울린다. 머리가 170도 돌아간 좀비의 사지가 힘없이 축 늘어진다.
“됐어! 잡았어!”
해머의 머리 부분으로 좀비의 몸통을 밀어 쳐서 빼내 주며 보안관이 외쳤다.
주르르륵, 목 돌아간 좀비의 시체도 기름 범벅이 된 무빙워크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달려오던 좀비도 녀석의 시체를 밟고 나동그라져 함께 구른다.
“오빠! 벽! 삼식이 오빠!”
조명을 담당하고 있는 제니의 외침. 삼식이는 자신의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난간과 벽을 짚고 빠르게 달려오는 놈이 있다.
부웅― 난간을 밟고 놈이 몸을 날린다. 삼식이도 지지 않고 허리를 뒤로 젖혔다가 몸을 확 앞으로 숙이며 창을 찔러 넣었다.
찌익, 좀비의 얼굴이 반쯤 찢어져 날아갔다. 하지만 놈은 그대로 떨어지며 삼식이의 카트를 덮쳤다.
콰차창!
삼식이의 무릎이 움찔한다. 세 사람이 함께 버티는 게 아니었다면 엉덩방아를 찧고도 남았을 것이다. 카트 위로 몸이 3분의 1 이상 빠져나온 좀비가 팔을 마구 휘저으며 할퀸다.
그래 봐야 등에 짊어지고 있는 하수구 덮개를 때릴 뿐이다. 물론 좀비가 자기 머리 위에 업혀서 등을 할퀴고 있으니 무섭기는 더럽게 무섭다. 그리고 무겁기도 하다.
“유빈아! 얘, 얘 좀…… 빨리!”
삼식이가 카트의 지붕 부분을 꽉 잡고 버티면서 외쳤다. 유빈은 얼른 팔을 뻗어 네일 건을 놈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콰창― 콰창―
가만히 있어 주면 서로 편하겠건만, 좀비는 계속 얼굴로 카트에 박치기를 해 댄다.
주저하던 유빈은 네일 건을 카트 안쪽에 바짝 붙이고 기다리다가, 놈의 얼굴이 다시 부딪쳐 오는 타이밍에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뚜청―
좀비의 눈을 관통한 콘크리트 못은 안구 저 깊숙한 곳까지 순식간에 뚫어버렸고, 그 너머의 뇌 속에 깊숙하게 박혀 들어갔다. 놈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걸 알면서도 유빈은 얼른 위치를 바꿔 한 방을 더 쐈다.
뚜청―
좀비의 머리가 가볍게 들렸다가 툭, 떨어진다.
“으아아! 진짜!”
자신의 카트 위에 얹혀 있던 좀비의 시체를 밀어 떨어뜨리면서 삼식이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쿠당탕탕―
아래쪽에서는 여전히 뛰어오르려는 놈들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그중에 상당수는 기름을 밟고 미끄러져 버린다.
지금까지 몇 마리나 죽였을까? 여섯? 일곱?
잘 모르겠다. 그리고 헤아린다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애초에 코스트코 안에 들어 있던 놈들의 머릿수를 전혀 모르고 뛰어들었으니까.
이건 움직이는 좀비들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때 비로소 끝이 나는 싸움이다. 하여간 앞으로 갈 길이 아주 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길 수 있다……. 내가 먼저 질리지만 않으면 된다…….’
진저리를 치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뇐 유빈은 주변의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삼식이도 멍해져 있고, 태권소녀도 어지간히 지쳐 보인다. 짧은 커트 머리가 다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발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힘쓰고 버티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마 꽤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좀비들의 공세가 뜸해진 틈을 타서 물을 한 모금 들이켠 태권소녀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거미베어!”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카트를 꽉 잡고 아래쪽의 좀비들을 노려본다. 어안이 벙벙해진 모두를 대표해서 유빈이 물었다.
“거미…… 뭐?”
“아, 목표야, 목표. 내 버릇이니까 신경 쓰지 마.”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던 태권소녀는 유빈의 얼굴을 힐끔 한 번 돌아보고 나서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쑥스러워하며 일러주었다.
“운동할 때 버릇이 든 거야. 훈련하고 있다가 토할 만큼 힘들어지면 자기가 목표로 하고 있는 걸 큰 소리로 외치면서 기합을 빡 주거든. 그러면 왠지 동기부여가 돼서 더 기운이 나는 것 같으니까. 왜 이런 거 있잖아. 금메달! 금메달! 우승! 우승!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마지막 한 바퀴 더 뛰고 그러는 거.”
“근데 이번에 힘든 거 이기고 나면 얻는 목표가 거미…… 그…….”
유빈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자 제니가 끼어들어서 알려 주었다.
“거미베어요, 오빠. 쪼그만 곰 모양 쫀득한 젤리.”
태권소녀가 여전히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여기 뭐 사러 오면 그것만 하나씩 집어 갔어. 감량해야 되니까 많이는 못 먹었지만, 모양이랑 색깔이 좋아서……. 뭐, 그래. 이제는 감량도 필요 없지. 으얍! 거미베어!”
태권소녀가 한 번 더 기합을 주었다. 그게 좋아 보였는지 삼식이도 좀비들을 향해 큰 소리로 악을 썼다.
“양주! 이름도 모르는 비싼 양주! 으얍!”
“육포! 소고기 육포!”
유빈도 지지 않고 따라 외쳤다. 곧바로 제니가 풍부한 성량으로 내지른다.
“목욕! 목욕! 목요∼옥!”
그롸아아―
미끄러운 무빙워크를 용케 거슬러 올라온 좀비들이 포효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섯 일행의 물적 욕망이, 코스트코를 털고 나면 꼭 챙기겠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의 이름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정말로 더 기운이 나는 것 같다.
“거미베어!”
“양주!”
“육포!”
“목욕!”
그렇게 모두가 부끄러움도 다 던지고 외쳐 댈 때, 보안관 한 놈만은 배신을 때렸다. 달려드는 좀비의 대갈통을 힘껏 갈겨 박살 낸 보안관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외쳤다.
“제니의 웃는 얼굴! 으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