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던전 & 아이템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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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던전 & 아이템즈 (2)
2022.05.05.
한 시간 반 뒤, 코스트코 주차장 입구에는 준비를 마친 다섯 사람이 우뚝 서서 어두운 건물 내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셔터가 내려진 진입로 내부는 나선형 구조여서 먼 곳까지 보이지가 않았다.
유빈은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봤다. 확실히 이 주차장 내에서 좀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근데 이거, 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
태권소녀가 등에 짊어진 ‘특수 장비’를 가리키며 쑥스러워하자 유빈이 그녀를 다독거렸다.
“괜찮아. 누가 본다고……. 금방 적응될 거야.”
특수 장비. 유빈이 개발하고 세 친구가 한 시간여 동안 진땀을 흘려 가며 만든 물건으로, 유빈과 삼식이, 태권소녀 세 명이 장착하고 있다.
제작 과정을 설명하자면…….
① 쇠톱으로 150센티 길이의 파이프를 죽창처럼 한쪽 끝이 뾰족하도록 자른다.
② 폭 1미터, 길이 50센티의 철제 격자를 준비한다. = 하수구 덮개를 빼 온다.
③ 하수구 덮개에 쇠창 파이프의 날카롭지 않은 면을 찌그러뜨려 꽉 끼워 넣고 볼트로 양쪽에서 고정한다. 이것으로 특수 장비 완성.
④ 일단 등을 보호하기 위해 배낭을 멘다.
⑤ 배낭 위에 특수 장비를 올리고 끈으로 묶어 몸과 단단히 고정시킨다.
⑥ 합체 성공.
어깨 위로 쇠창이 네 개나 길게 튀어나와 있는 모습은 로봇 코스프레 같기도 하고, 판타지 만화의 악역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로 죽게 되는 역할? 하여간 뭐, 그리 멋지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우스워 보이는 장비가 무빙워크를 무대로 벌어질 싸움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거다.
유빈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세 개나 만들었고, 무거운 걸 꾹 참고 짊어지고 있다.
홀가분한 몸은 보안관과 제니뿐이다. 보안관은 해머와 야구 배트를 들었고, 여분의 무기가 든 배낭을 멘 제니는 커다란 플래시를 꽉 쥐고 있다.
“삼식아, 담배 한 대 피워 봐.”
셔터를 올리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좀비들을 위한 유혹 작업을 했다.
좋지, 삼식이는 담배를 두 대나 물고서 곧바로 불을 붙였다.
후우우~ 삼식이는 아주 멋들어지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동안 금연 구역이었던 곳에서 이러고 있으니 두 배는 더 맛있는 것 같다. 몇 모금을 뻐끔거리던 삼식이는 한 대를 셔터 안쪽으로 던져 넣었다.
그런 후, 남은 한 대를 천천히 다 피웠다. 좀비들이 이 근처에 있었다면 벌써 달려오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조용하다.
“가도 될 분위기인데?”
꽁초를 벽에다 탁, 튕긴 삼식이가 고글을 쓰고 헤드 랜턴의 불을 켜며 말했다. 유빈과 보안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준비를 마쳤다. 보안관이 해머를 힘껏 휘둘러 자물쇠를 부수고, 셔터를 들어 올렸다.
촤르르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험이 시작된다. 일행은 보안관을 앞세워 컴컴한 나선형 진입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보안관의 뒤에서는 제니가 커다란 플래시를 비추며 헤드 랜턴이 비추지 못하는 사각을 밝혀 준다. 나머지 셋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일렬로 따라갔다.
아직 등에 부착된 창이 익숙하지 않아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몇 번이나 벽에 창끝이 부딪치곤 한다. 거기에 두 손에는 묵직한 짐까지 들고 있으니 꽤나 힘이 들었다.
“진짜네……. 없어.”
2층 주차장으로 올라온 보안관이 넓은 주차장을 빙 둘러보고 나서 중얼거렸다. 드문드문 자동차들이 서 있을 뿐, 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살아 있는 좀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대가리가 터진 채 자빠져 있는 놈들이나 아비규환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는 군데군데 눈에 띈다.
“무거워…….”
쿵,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 놓은 삼식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태권소녀도 숨이 거칠어졌다. 유빈은 굴러다니고 있던 카트를 끌고 와 세 사람의 짐을 실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같이 들었어야 하는데…….”
제니가 고개를 돌리며 미안해하자 태권소녀가 손을 저었다.
“아냐. 미안해할 것 없어. 각자 가진 힘만큼 최선을 다하는 건데 뭘. 그런 것보다 앞에 잘 비춰. 사각 때문에 쟤가 못 보는 거 없도록.”
하지만 일단 2층에 올라오고 나니 빛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사방으로 뚫려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 사이로 여름 오후의 화창함이 번져 들어오고 있다. 주변이 안전한 것을 확인한 보안관이 왼쪽 끝을 가리켰다.
“저기지? 무빙워크로 이어져 있다는 데가?”
태권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사람은 자동차와 시체, 카트가 버려진 넓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무빙워크 입구로 걸어갔다.
도르르르륵, 도르르륵―
유빈이 밀고 있는 카트의 바퀴 소리만이 조용한 주차장 안을 가득 메운다. 머리가 깨진 좀비 시체 두 구가 무빙워크 입구 주변에 엎어져 있다.
“이것 봐. 누가 일부러 셔터를 내려 놨어.”
무빙워크로 이어지는 문의 안쪽을 보며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다. 자물쇠를 끼워 둬야 하는 부분에는 카트의 일부분을 떼어낸 것 같은, 가느다란 쇳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대단히 튼튼한 자물쇠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여간 이 셔터를 잠그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보이는 물건이다.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단순히 몸으로 부딪치는 좀비들에게는 꽤나 열기 어려운 자물쇠였을 것이다.
셔터 여기저기에, 특히 자물쇠 부위에는 다량의 피가 묻어 있었다. 검붉게 말라붙은 혈흔을 보면서 보안관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래서 좀비들이 이 밖으로 못 나왔나 보네…….”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잠가둔 셔터 덕에 2층 주차장은 안전했다. 일행은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3층도, 4층도…… 모두 마찬가지로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무빙워크까지 올라오는 놈들이 있다 해도 셔터에 막혀 그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게 해 둔 것이다. 물론 시야도 완전히 차단된다. 4층의 셔터와 그 주변에는 정말 피가 범벅이 된 채 굳어 있었다.
자물쇠에 끼워진 쇠의 모양으로 보아 모두 동일 인물이 해 놓은 일이다. 2층에서 시작해 4층까지 올라와 셔터를 내렸을 때쯤에는 아마 피를 콸콸 쏟아내는 상황이던 모양이다.
“대단하네……. 다 죽어가는 와중이었을 텐데,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셔터맨의 희생정신에 감동한 보안관이 고개를 내저었다. 덕분에 주차장을 통해서 이렇게 용이하게 진입했고, 그 부근을 돌아다니면서도 뛰어내리는 좀비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오늘의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 공의 절반은 당연히 이 지극정성의 셔터맨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 위가 마지막 층이지?”
보안관이 묻자 태권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셔터맨의 핏자국을 따라 걸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나선형 진입로를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부터 빛이 환하게 비친다.
지붕이 없는 옥상에는 오후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야외로 나오자 셔터맨의 핏자국도 사라져 버렸다. 그간 내렸던 비에 씻겨 나갔을 것이다.
“음, 성실해. 여기도 내려놨어.”
옥상의 무빙워크 입구에까지도 셔터는 내려져 있다.
물론 같은 방식의 자물쇠에다 검은 핏자국은 컵으로 부은 것 같이 잔뜩 묻어 있다. 들이치는 비에 씻겨 나가고도 이만큼이 남은 것이다. 옥상이 맨 마지막 작업 장소였던 게 분명하다.
“그럼…… 그 셔터맨은 어디로 갔어?”
유빈이 물었다. 다들 얼굴을 마주 보았다. 누군가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층마다 돌아다니며 좀비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건 이제 알겠다.
그리고 이 정도 출혈이라는 건 좀비에게 어딘가를 아주 단단히 물어 뜯겼다는 뜻이다. 그럼 좀비로 변했어야 했다.
“우리 오기 전에 너희 노리고 뛰어내린 좀비 있었어?”
유빈이 물었다. 태권소녀는 모르겠다고 했다. 2층에서 내려진 셔터와 거기에 묻은 피를 보고 난 후부터 그녀는 뭔가 좀 얼이 빠져 있다.
그때, 보안관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을 들어 조용히 해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니, 아니, 잠깐만. 이거 안 들려?”
보안관의 시선이 넓은 주차장의 가장 끝부분으로 향했다. 자동차들과 카트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곳이다.
“있어 봐.”
보안관은 배트를 짧게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 뒤로 네 명이 따라 걸었다. 거리가 반 정도로 줄었을 때,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좀비다. 보안관 일행의 기척을 느끼고 그르렁대는 것이다.
“이런 젠장…….”
가장 앞서 걷던 보안관이 힘없이 배트를 내리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셔터맨 찾은 것 같다.”
후우~ 보안관은 머리를 긁적이며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애를 썼다. 셔터맨 좀비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맨 채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짧은 머리에 날씬하고 단단한 근육질의 남자 좀비다. 키가 크지는 않지만, 빠르고 강해 보였다. 목덜미와 복부는 피투성이다.
유리창이 깨진 조수석에는 그가 카트에서 철사 조각을 뜯어내고, 유리창을 깨는 일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스패너가 놓여 있다.
그리고 자동차의 전면 유리창에는 피로 쓴 글자 몇 개가 좌우 반전이 된 채 남아 있었다.
- 혜주야, 규
그 뒤의 글자는 다 피범벅이 돼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메시지를 남기던 도중에 좀비가 되어버렸든지, 아니면 너무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엉망으로 짓뭉개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다섯 사람 모두에게…….
“흐윽!”
셔터맨을 보자마자 태권소녀의 눈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설마 했던 우려와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 그녀를 덮친 것이다. 셔터맨은 여전히 고개를 휘두르고 두 팔을 휘저으며 포효하고 있다.
그롸아아악― 그롸아악―
“후우우~”
삼식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코스트코 내부에 있는 좀비들 중에 상당수가 태권소녀의 예전 일행이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모두에게 마음의 빚을 지워 준 좀비를 만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 처리해야 할 그 좀비가 규영이의 형이라는 걸 알고 나니 기분이 몇천 배나 더 더럽다.
“바보같이…… 끄윽…… 끝까지 이렇게 힘들게…… 흐윽…….”
끄왁! 끄롸아악!
운전대를 두드려 대는 셔터맨과 유리창 하나를 마주하고 선 태권소녀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제니도 돌아서서 훌쩍거린다.
꽈창!
셔터맨의 왼팔에 맞은 운전석 유리창이 박살 난다. 벨트로 고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난리를 치고 있으니 언제 풀려날지 모른다. 그러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없다.
등에 메고 있던 특수 장비를 풀러 한쪽에 내려둔 유빈이 삼식이와 보안관에게 눈짓을 했다.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삼식이는 우느라 정신이 없는 태권소녀와 제니를 부축해서 뒤쪽으로 끌고 나왔다.
“후우~”
장비 벨트에서 네일 건을 꺼낸 유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를 콸콸 쏟으며 죽어가는 동안에도 코스트코 내부의 수많은 좀비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자신의 동생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셔터를 잠그던 남자는 여기 없다.
그저 살아 있는 사람을 물어뜯고 싶어 하는 좀비가 있을 뿐이다.
머리로는 그걸 다 아는데, 가슴 한구석에서 자꾸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서 힘이 든다.
“네가 뒤에서 들어갈 거야?”
셔터맨이 벨트를 풀고 나올 경우를 대비하고 있던 보안관이 물었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배트로 좀 고정해 봐.”
두꺼운 작업용 장갑에 네일 건으로 무장까지 했으니 위험하지는 않다. 다만, 한 방에 깨끗하게 보내지 못할까 봐 그게 두렵다. 고글 안에는 송골송골 땀이 차오른다.
보안관이 배트로 셔터맨의 목을 눌러 헤드 레스트에 붙이는 걸 확인한 유빈은 재빨리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 셔터맨에게 말했다.
“……꼭 같이 살아남을게요.”
그롸아아아― 그롸아아―
셔터맨은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악을 쓴다.
뚜청―
못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셔터맨의 아우성도 끝이 났다. 갑자기 찾아온 침묵에 태권소녀가 화들짝 놀란다.
“안 돼!”
뛰어가려는 태권소녀를 삼식이가 옆에서 붙잡았다.
팅-! 두 사람의 어깨 밖으로 길게 튀어나와 있는 쇠파이프 창이 부딪힌다.
“진정해…… 진정해.”
삼식이가 태권소녀의 손을 꽉 잡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달랬다.
끅, 끄윽!
태권소녀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잠시 감정을 추슬러 보려던 태권소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규영이에게 보여줬어야 했던 거 아니야? 걔 형이라고! 왜 너희 마음대로…….”
“진정해……. 지금도 보여줄 수 있어. 그냥…… 훨씬 평화로울 뿐이야. 그게 저 사람이 보여 주고 싶었던 모습일 거고. 너도 알잖아, 돌이킬 수 없다는 거. 진정해…….”
삼식이는 태권소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속삭였다. 태권소녀는 힘없이 울먹였다.
“내가…… 내가 죽은 사람들 화장시켜야 한다는 고집만 안 피웠어도…….”
완전히 감정적으로 소모된 태권소녀는 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옆에서 눈물짓고 있던 제니가 얼른 그녀의 특수 장비를 풀어 줬다.
하아~ 삼식이도 힘없이 한숨을 내쉬고 또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올라왔는데, 정작 싸우기도 전에 힘이 다 빠져 버린 것 같다.
잠시 후, 조용히 돌아온 유빈과 보안관의 얼굴도 흙빛이다.
다섯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글거리는 옥상 바닥만 노려보고 있었다. 시간마저도 찐득하게 녹아버려서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가자, 싸우러.”
30분 이상을 멍하니 앉아 있던 태권소녀가 눈물을 훔치고 일어섰다. 유빈과 보안관은 그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뭐, 당연히 좋지 않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도 시원찮을 판에 저러면 곤란하다.
“물부터 마셔. 세수도 좀 하고.”
보안관이 짐에서 꺼낸 생수 페트병을 건넸다. 그러고는 자신도 한 병을 까서 마셨다. 물병을 받아 든 태권소녀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어. 규영이한테 뭐라고 하지?”
“뭐…… 사실대로 말해. 마지막까지 네 걱정밖에 없었다고.”
“도저히 자신이 없어…….”
물을 한 모금 마신 태권소녀는 또 한동안 멍해 있다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왜…… 저렇게 구석에 있는 자동차를 골라 들어간 걸까? 여기, 셔터 주변에도 차가 많이 있는데……. 가뜩이나 힘이 들었을 텐데, 일부러 저기까지 걸어가서…….”
“나는 알 것 같은데, 저 사람 마음.”
유빈이 대답했다. 잠시 뜸을 들이며 태권소녀의 눈을 보던 유빈은 그녀가 듣고 싶어 한다는 걸 확인하고 이야기를 이었다.
“셔터를 잠그고 나서 떨어져 죽어버리려고 했어. 옥상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면 죽을 테니까……. 좀비가 돼서 자기 동생에게 위협이 되느니 그게 더 깔끔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갑자기 아주 작은 희망이 발목을 잡았던 거야. 혹시…… 혹시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인데. 그래서 난간 아래로 떨어지려다가 바로 곁에 보이는 차 안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해. 안전벨트로 묶어 두면 변해 버려도 남을 쉽게 해치지는 못할 테니까. 뭐, 아주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 보고 싶은 거잖아. 저 사람이 다 못 쓴 편지도, 우리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살겠다고 이런 것까지 둘러메고 여기를 들어온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거기에서 비롯된 거야.”
“희망이라…….”
또 눈물이 나려는지 태권소녀는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젖혔다.
여전히 지쳐 있기는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훨씬 제정신이 든 얼굴이다. 남은 물을 얼굴에 부은 태권소녀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이젠 정말로 괜찮아. 싸우러 가자.”
“응, 힘내자.”
보안관이 그녀의 손을 맞잡고 일으켜 주었다. 자기가 알던 사람도 아닌데 제일 많이 울어서 입술과 눈이 퉁퉁 부은 제니도 뺨을 두드리며 기합을 넣었다.
결전의 장소는 3층으로 정했다. 2층은 너무 가까워서 셔터를 올리고 난 뒤 사전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하고, 4층은 혹시 너무 멀어 좀비들을 제대로 끌어모을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됐다.
3층으로 내려온 일행은 유빈과 태권소녀가 다시 특수 장비를 단단히 고정시키는 사이, 카트 세 개를 빼서 뒤집어 세운 뒤 하나로 연결해 묶었다.
이걸 머리 쪽에 뒤집어쓰고 앉으면 어깨 위로 삐죽 솟은 쇠파이프 창과 더불어 인간 방책이 된다. 카트들을 연결한 이유는 무빙워크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뭐, 됐어. 이 정도면 물리지는 않아. 잘 버티기만 하면 돼.”
셋이 호흡을 맞춰 방책으로 변신하는 연습을 몇 번 해 보고 나서 유빈이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정말 셔터를 열고 좀비들과 마주할 시간이다. 셔터맨이 힘들여 잠가 둔 걸쇠를 빼고 셔터를 들어 올렸다.
촤르르르르―
셔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삼식이는 짐에서 커다란 양철통을 두 개 꺼냈다. 튀김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용유였다.
뽕, 식용유의 마개를 뽑은 삼식이는 무빙워크의 비탈을 향해 기름을 쏟아부었다.
삼식이가 부은 두 통의 기름이 주르르륵 흘러내려 저 아래층 바닥에까지 번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유빈은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