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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불길한 균열 (2) (244/449)


244. 불길한 균열 (2)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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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양,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이 지독한 운동을 그만하게 해줄 건가? 과자 하나에 너무 심한 걸 요구하는 것 아니야? 이 땀을 보라고. 이러다가 탈진해서 죽어.”

젠킨스가 헥헥거리며 뒤를 돌아본다. 내야석 중단을 한 바퀴 정도 돌았을 뿐인데 그의 얼굴과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다. 2미터 정도 뒤처져서 따라 걷고 있던 테라는 조용히 말했다.

“물을 좀 드세요. 한결 나아질 거예요.”

“아니, 저기…… 당 수치가 떨어진 거야. 물로는 안 돼. 아무거나…… 헥, 좀 줘. 초콜릿이든, 아니면 사탕이라거나. 눈앞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어. 이러다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질까 봐 무섭다고. 이까짓 물로는 안 된다는 말이야!”

젠킨스는 아예 멈춰 서서 무릎을 짚고 애원을 했다. 양복 주머니에 꽂힌 물병 따위 지금 당장이라도 바닥에 내팽개쳐 버릴 기세다. 하지만 테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젠킨스 씨, 지방이 연소되면서 에너지가 생겨요. 수분을 섭취해서 몸을 살짝만 도와주면 돼요.”

사실 조금 전 과자 한 봉지를 다 게걸스럽게 해치웠으니, 아직 지방 분해는 일어나지도 않을 시점이다. 하지만 테라는 그렇게 독려를 해줬다.

“혹시 모아 둔 과자가 다 떨어졌나, 테라 양? 그래서 이렇게 나를 기만하고 가혹행위를 하는 건가? 더 이상 줄 과자가 없다는 걸 속이기 위해서? 아니면 갑자기 과자가 아까워졌나? 내 이야기가 가진 가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헥, 헥…….”

말로는 그렇게 툴툴거리지만, 젠킨스도 알고 있다. 저 가냘픈 계집애의 창고는 비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찬다. 수많은 군인들이 지치지도 않고 찾아와 조공을 바쳐 대는 덕이다.

수천의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으니, 매일 열 명씩 찾아와 과자 한 봉지씩만 준다고 해도 일 년 내내 행렬이 끊이지 않으리라.

물론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

“무슨 말을 하셔도 소용없어요. 전 빈손이잖아요. 사물함에 넣어 뒀다고요. 저기 문을 통과해서 건물 내부로 가신 다음 사물함에 도착하셔야 다음 과자도 있는 거예요.”

“대체 나를 왜 이렇게 괴롭혀? 그냥 아무 데나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과자를 주면 되잖아. 오, 하나님.”

젠킨스가 토실토실한 털북숭이 손을 꽉 맞잡으며 애처롭게 사정한다. 테라는 이미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쭈뼛거리며 다가온 두 명의 군인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젠킨스가 보기에도 그녀의 태도는 예의가 바르고 상냥하다.

잠시 후, 군인들이 수줍게 주머니에서 꺼내 내미는 간식거리를 테라는 두 손으로 받고 정말 고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초코파이! 맛있는 거다! 저건 포기할 수 없지!

젠킨스가 매의 눈을 번뜩인다. 군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선 테라가 과자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젠킨스 씨가 본인의 입으로 말했잖아요. 당신은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 엄청 중요한 사람의 건강이 지금 굉장히 위험한 수준까지 와 있어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계속 자신의 몸을 망치는 걸 그냥 보고만 있고 싶진 않아요. 아무 잔소리도 않고 계속 과자를 제공한다면 저 역시 그 파괴적인 과정에 협조하는 걸 테니까요.”

“그…… 엄청 중요한 사람이 명령한다! 파괴고 협조고 따지지 말고, 지금 당장 초코파이를 내놔! 받은 거 다 봤어!”

젠킨스가 위엄을 부려보려 했지만,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그의 겉모습 때문에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결국 젠킨스는 항복했다.

“그럼…… 조금만, 조금만 쉬었다가 마저 걸을게. 무릎이 너무 아파……. 옆구리도 죄고……. 나는 이렇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젠킨스는 연신 땀을 훔치고 물을 마셨다. 누가 보면 엄청난 하드 트레이닝이라도 마친 사람인 줄 알 만큼 그는 지치고 괴로워 보였다.

어차피 오늘은 시작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한 날이라 테라는 더 잔소리하지 않고 두어 칸 떨어진 좌석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다. 그녀 역시 속이 편치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젠킨스의 말에 의하면, 물렸던 곳 부근이 잘 아물지 않는 건 아나필락시스 진, 다시 말해 단발성 면역자의 특징이라고 한다.

사실 그건 그녀가 기대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 가장 덜 반가운 것이었다.

드물게 타고난 면역자라고는 하지만, 백신을 맞아 항체가 생기는 사람들보다도 못하다. 앞으로 한 번 더 물리면…… 좀비가 되어버린다. 그건 정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녀가 젠킨스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실상을 알고 나니 뭔가 더 비참해져 버렸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있다고 자신을 속이고 싶다. 젠킨스가 말한 백신이나 혈청의 개발이 진행되면 자신 역시 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한데…… 이 모든 고민들의 근원에는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정말로 신뢰할 수는 있는 걸까?

그가 했던 말들 중에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는 말은 딱 하나뿐이었다.

좀비에 물리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신뢰할 수 있다. 테라 본인이 살아 있는 증거인 셈이니까…….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이야기들, 앱테크나야의 비밀 연구소라든가, 세 가지 종류의 면역자라든가, 남극 기지에서의 이상한 사건, 배에 태워 보낸 좀비들 이야기 따위는 정말 일말의 증거물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냥 그가 망상 속에서 마구 지껄여 댄 이야기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두기는 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테라는 옆자리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젠킨스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가 구사하는 어휘나 사치스러운 양복, 매너 같은 것은 분명 꽤나 상류 계층의 느낌이 든다. JL의 간부였다는 말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뭔가…… 증거가 있으면,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증거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희망이든 기대든 포기든 어떤 판단을 내릴 수가 있을 텐데…….

그렇게 테라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 외야석 쪽에서부터 웅성거림이 번지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람들이나 산책을 하던 사람들, 심지어 작업하던 군인들까지도 모두 멍해져서 하늘을 보며 웅얼거렸다.

“어어, 저거 뭐야?”

“풍선인가? 아니면 비행기? 비행기면 얼마나 높이서 날고 있는 거지?”

“저거, 무슨 소리야?”

그 웅성거림은 내야석 구석에 앉아 있던 테라에게도 전해졌다.

테라는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창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비행기와 거기에 매달린 암호문을 보았다.

① RM, KF, FD.

숫자와 여섯 개의 영문자. 그게 전부다. 글자는 선명하게 보이지만,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뭐지? 대체 어떤 메시지인 거지?

생각에 잠긴 테라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비행하는 물체의 움직임을 따라 목을 돌렸다.

그리고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의 고개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마침내 그것이 시야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사람들은 마치 홀린 것처럼 야구장의 지붕을 바라보며 멈춰 서 있었다.

좀비들 외에는 놀랄 만한 일도, 여흥거리도 거의 없었던지라 그 정도만 해도 꽤나 흥미로운 관심사였던 것이다.

“후후후후, 봤지? 하늘에서 신호가 온다고 했지? 내가 주목하고 있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 알려줄 거라고도 했지? 어떤가, 테라 양. 복종하고 싶어졌나? 후후후.”

테라가 다시 고개를 바로 했을 때, 젠킨스가 아주 교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테라는 제일 중요한 것부터 물었다.

“뭐예요? 지금 저거…… 어떤 암호예요? 네?”

“이런이런……. 뭔가 잊은 것 아닌가, 테라 양? 우리의 관계는 애초에 호의의 증여로 형성되어 있지. 그렇게 아무 선물도 없이 물어본다고 해서 내 입이 열릴까? 으히히힛.”

젠킨스는 탐욕스럽게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테라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에서 조금 전 군인들로부터 받은 초코파이를 꺼냈다.

“자요, 이제 말씀해 주세요, 젠킨스 씨. 궁금해요.”

젠킨스는 미동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평소의 그였다면 재빨리 다가와 과자를 덥석 집었을 텐데, 이 순간만큼은 여유를 부렸다. 뭔가 더 큰 걸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테라가 먼저 다가가 의자 팔걸이 위에 초코파이를 올려 주기까지 해도 그의 눈은 테라만을 바라보고 있다.

“발가락.”

계속 뜸을 들이던 젠킨스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했다.

“발가락 상처 보여 주면 기쁘겠어, 테라 양. 여기 앉아서 그 작고 가녀린 손으로 흰 붕대를 살살 푼 다음 상처를 보여 줘. 응? 그걸 보고 나면 나도 기꺼이 저 암호가 뭔지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

테라는 그의 탐욕스러운 눈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니지만, 저렇게 상대방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면 그때는 그게 ‘별것’이 된다.

자존심을 꺾어 가면서 그의 변태적 취향을 맞춰 주는 거래는 하고 싶지 않다. 테라가 거부하자 젠킨스는 어린아이처럼 짜증을 터뜨렸다.

“왜? 왜 나에게만 보여주지 않는 거야? 응, 테라 양? 그 붕대를 받으러 가서 군인들에게는 보여 줬을 거 아니야?”

“의무병들은 보여 달라고도 하지 않지만, 설사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젠킨스 씨처럼 그렇게 숨을 헐떡이지 않아요. 젠킨스 씨, 기분 나쁘니까 앞으로도 그 요구는 하지 마세요. 제 상처는 안 보여 드려요. 과자와 교환하는 게 싫으시면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암호, 어차피 저와는 별 상관 없는 거기도 하니까.”

테라가 초코파이를 다시 회수하려 하자 젠킨스는 솥뚜껑만 한 손으로 얼른 그걸 덮어버렸다. 그러고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푸들거리며 흔들리는 그의 볼살에서는 절대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테라 양, 야비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성인들끼리 협상을 하는 자리인데, 서로 주저 없이 조건을 제시해 볼 수 있는 거라고.”

“전 성인 아니에요. 아직 열여덟 살 생일이 지나지 않았거든요. 어린애라서 변덕스럽죠. 과자를 계속 준다고 했다가도 금방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 계속 친하게 지내다가도 어느 날 모르는 사람 대하듯 차가워질 수도 있고요.”

테라는 주머니 안에 든 나머지 초코파이 봉지를 바스락거리며 웃었다. ‘더 이상 과자를 못 먹게 될지도 몰라’라는 협박이 강하게 전달되는 웃음이었다. 젠킨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와 함께 JL의 연구소로 떠나고 싶은 것 아니야? 하늘에서 온 저 신호를 혹시 놓치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어지간히 신경 쓰일 텐데?”

테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아뇨. 제가 왜 젠킨스 씨를 따라가겠어요. 젠킨스 씨가 제게 협박에 가까운, 기분 나쁜 제안을 했던 것,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제가 여기에서 지내는 게 불편해 보이나요? 그럴 리가요. 여기에 저를 아껴 주는 군인 오빠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JL의 연구소에는 백신이 있고, 여기에는 그게 없잖아. 군인들이 아무리 많아도 좀비에 물린 뒤의 귀하를 보호해 줄 수는 없거든.”

“이 안에 있으면 좀비에게 물릴 일도 없죠.”

젠킨스가 아무리 얼러봐도 테라는 요지부동이다. 그저 저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없이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보고 있는 사람이 왠지 부끄러워지는 이상한 눈으로…….

게다가 젠킨스에게는 또다시 강력한 적이 추가되었다. 배고픔이라는 적이다.

꾸르르륵~

여유로운 척 협상을 시도하던 젠킨스의 배에서 간식을 요구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나온다.

테라와 배고픔, 양쪽의 협공으로 싸움은 2:1의 형국이 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싸움이다.

큼, 큼, 젠킨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후우~ 좋아, 이 과자 값어치만큼의 이야기를 하라는 거잖아. 그러면 되지?”

“저 비행기와 암호에 관해서요. 하늘에서 신호가 온 것까지는 확인했어요. 그런데 젠킨스 씨, 당신은 신호를 보고 나서도 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죠?”

“간단해. 지금의 암호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젠킨스는 벌써 초코파이 봉지를 뜯어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맛은 있는데 너무 작아서 두 번 베어 물면 끝이다. 더위에 찐득하게 녹은 초콜릿을 입 주변에 잔뜩 묻힌 채 젠킨스는 이야기를 이었다.

“그냥 음, 준비가 되었군…… 나를 잊지 않고 있군…… 곧 연구소로 가게 되겠군……. 뭐, 이 정도만 생각하면 되는 신호였다고나 할까?”

“숫자 1이랑 RM, KF, FD가 그런 의미였다는 말씀인가요? 그럼 연구소로 가게 된다는 의미의 암호는 어떤 거였어요? 어떤 규칙으로 읽는 거예요?”

“그것 봐. 귀하는 부정하고 있지만, 관심이 많았던 거야. 그 무의미한 알파벳을 전부 기억하고 있을 만큼. 근데 혹시 그게 무슨 약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테라 양?”

젠킨스는 킬킬대며 웃기 시작했다. 테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발가락을 좀 보여 달라고 할 때에는 냉철하게 거절하는 우리 똑똑한 테라 양이 그 간단한 걸 왜 파악 못 하지? 후후후후, 내가 전에 기분이 좋아서 단서를 어지간히 줬는데. 히히히, 내 이름이 뭐라고? 그런데 약자는 또 뭐라고? 하하하, 어렵지? 음, 어려워.”

지적 우위를 점한 게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지 젠킨스의 입에서는 또 광인처럼 웃음과 말이 섞여 나왔다. 테라는 그가 하는 말에서 단서를 찾으려 노력해 봤지만, 너무 뜬구름 잡는 것처럼 모호하다.

애초에 그녀는 퍼즐을 푸는 전문가도 아니다.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친 젠킨스는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꿔 말하자면 이런 거지. 저 암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야. 내 히든카드라고. 그런데 테라 양은 그걸 이 싸구려 파이와 바꾸자고 하는 거야. JL이 엄청난 돈을 들여 마련해 놓았던 최고 시설로의 탈출 방법을……. 이게 얼만가? 이런 파이가 한 봉지에 얼마나 할까? 뭐, 좋아. 세게 쳐주지. 2달러라고 해 볼까? 2달러짜리 과자 하나를 내밀고서 알려 달라고 하고 있는 거야. 내가 굶주려 있는 약자라는 사실을 이용해서……. 이건 말이지, 붉은 포타쥬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넘기라고 했던 제이콥보다도 더 심하잖아. 어떤가, 테라 양? 지금 우리가 공정한 거래를 하고 있나?”

테라는 한마디만 했다.

“안 보여 드린다고요.”

“뭐, 좋아. 어쩔 수 없지. 그럼 과자라도 줘. 그리고 오늘은 더 걷지 않을 거야. 그거라도 약속해. 사물함에 넣어 둔 과자는 테라 양이 가져와. 그 지긋지긋한 물도…….”

“거기까지만 받아들일게요. 오늘 운동은 끝이고, 과자는 드릴게요. 하지만 물은 꼭 드셔야 해요.”

후우~ 한숨을 내쉰 젠킨스는 테라가 내미는 두 봉지째의 초코파이를 받아 들었다.

와구, 크게 한입을 베어 문 젠킨스는 ‘역시 좋군’ 하는 표정으로 초코파이 내부의 마시멜로를 바라보았다.

“좀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테라 양은 혹시 부메랑이라고 아나? 그 호주 원주민들이 개발했다는 무기 말고, 현대 나토군들이 사용하는 군사 장비인데 말이야.”

테라는 고개를 저었다. 젠킨스는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군. 그럼 간단히 이야기해 주지. 부메랑이라는 건 총격 위치 추적기의 한 종류야.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뭐,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를 말하라면, 군에서 원했어. 그렇다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는 뜻이고,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거든. 적의 저격수라는 건 영 골치 아픈 문제여서 우수한 장비고 뭐고 다 필요 없게 만들어 버리지. 천 야드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잠복하고 있다가 방아쇠를 당기면 행군하고 있던 미군이 픽 쓰러져 버리는 거니까. 즉사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단 말이야.”

“왜 갑자기 전쟁 이야기를…….”

테라가 말을 끊으려 했지만, 젠킨스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한 지질학자의 제안이 주목을 받았고, 스탠포드 같은 곳에서도 연구소를 차렸지. 조건을 다 말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 까다롭지만, 원리는 간단해. 발사된 총알이 음속을 돌파할 때 만들어지는 충격파를 잡는 거였어. 알겠어, 테라 양? 우리 생활 속의 수많은 소음들 중에서, 심지어는 계속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도 특정한 한 종류의 음파만을 잡아내는 거야. 그리고 그 궤도를 역추적해서 발사된 위치를 알려주는 거지. 거리니 방향 같은 걸 말이야.”

목이 메는지 젠킨스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고는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걸 계속 마시라고? 끔찍하군……. 어쨌든 이런 장비 중 하나가 부메랑이라는 거야. 생각해 봐. 이것이 이상적으로 실현된다면 미래의 군인은 생각할 필요도 없어. 그냥 귀에 이어셋을 끼고 있다가 컴퓨터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500미터 전방 11시 방향 2층에 적군이 있습니다’……. 살상용 네비게이션이랄까? 훌륭한 발상인 것만은 분명한데, 몇 가지 제약이 있었어. 그중에 하나가 거리고, 또 하나가 속도였지. 특히 거리가 문제였는데, 총알의 궤도가 이 부메랑으로부터 100야드 내외를 지나야만 해. 그래야 충격파를 감지할 수 있거든. 자, 여기까지 들었는데도 아직 암호가 뭔지 모르겠나? 단서는 꽤나 줬는데.”

테라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젠킨스는 오만한 표정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탁, 치며 말했다.

“그럼 얼른 귀하의 사물함으로 가서 과자를 가져오지 그래. 그 복숭아 맛이 나는 이상한 팩 주스도. 후후후후, 테라 양.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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