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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청춘, 아름다움, 그렇게 생존 (4) (242/449)


242. 청춘, 아름다움, 그렇게 생존 (4)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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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식의 지적은 박 소위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문형식을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 사람이 나와 가희의 일을 알고 있는 거지?

대체 누가…… 어떤 때려죽일 새끼가 소문을 퍼뜨려서 그게 중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단 말인가. 아니, 대체 어디에서 말이 나온 거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렇게 조심해서 행동했는데…….

그리고 그는 곧바로 가희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가희를 볼 때마다 뒤에서 흉을 보며 수군댄단 말인가.

아…… 불쌍한 가희. 그 여리고 가여운 여자가 그런 모멸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우울해져 있을 그녀를 달래주고 싶다.

“이런 준전시 상황에서 기강 문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장교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자기 생명을 맡기고 전투에 뛰어드는 데 주저함이 생겨날 수밖에 없지. 그래서 특히 장교들이 더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박 소위도 항상 그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해. 지휘관으로서도 휘하 장교들이나 부사관들이 안 좋은 소문에 휘말리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이봐, 박 소위. 자네 괜찮나?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문형식이 물었다. 박 소위는 서둘러 아니라고 대답했다. 가뜩이나 이렇게 계속 마주 보고 서 있는 게 부담스럽고 힘든데, 징계라는 말까지 나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문형식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무서운 눈빛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하지만 문형식은 아직 그를 놓아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철책으로 연결된 대로 건너편의 건물들 중 하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문형식이 물었다.

“저 건물인가?”

“네? 잘 못 들었습니다.”

박 소위는 가슴이 뜨끔했다. 문형식이 지목한 건물이 바로 자신과 가희가 매일 밤 찾는 사랑의 도피처였기 때문이다. 박 소위의 표정을 가만히 보고 있던 문형식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 새로 보안 작업 마무리한 건물 말이야. 저기까지 철책을 연장했다고 하지 않았나?”

“아…… 네, 네. 그렇습니다.”

박 소위는 그제야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문형식이 들고 있는 담배는 왜 이리 잘 타들어 가지도 않는지, 저걸 다 피워야 이 대화도 대충 마무리가 될 텐데…….

애가 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박 소위와 달리, 문형식은 느긋하게 이 상황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사용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두나?”

“그…… 저 건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서치라이트 설치와 같은 몇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한데, 현재까지는 동원 가능한 인력들을 도로 봉쇄 작업에 집중 투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작업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저 건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처하겠습니다.”

“음, 그래. 소수 인원만 출입할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 있으면 거기에서 일탈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박 소위가 신경을 써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해.”

“네,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어지간히 대화가 마무리되었을 때, 멀리 쉘터 마당에서 두 명의 병사가 여자 수용자들과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교대해 들어와 휴식 중인 병사들일 터다.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네 남녀의 모습에서 주위 시선에 대한 우려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전 추문이니, 기강 확립이니, 읍참마속의 징계 따위를 들먹였던 문형식조차도 그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박 소위는 그런 문형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박 소위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치졸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저…… 중대장님,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말해 봐. 뭔가?”

“제 눈에는 지금 저기 두 병사가 민간인 여성 수용자들과 불건전한 교제를 시도하려는 것 같은데, 저런 상황을 발견하면 그것도 처벌합니까?”

박 소위는 자신이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다.

아마 건대 쉘터에서 근무하는 군인 중 절반은, 어쩌면 그 이상이 민간인 수용자들과 이성 교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쉘터를 지배하는 분위기인데도 이 도덕 교과서 같은 중대장만은 그걸 모르는 것 같다.

박 소위는 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상관에게 저 많은 애들을 다 처벌할 셈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 덩달아 자신의 허물도 덮어버릴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문형식은 박 소위의 기대와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하하, 무슨 소린가, 박 소위. 쟤들을 왜 처벌해? 자기 근무 시간도 아닌데 젊은 애들이 이성이랑 좀 어울렸다고 문제를 삼으면 되겠나? 그건 너무 가혹하지.”

“네?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중대장님께서 조금 전 제게 추문에 휘말린 장교들은 징벌 대상이 된다고 말씀하신 걸로…….”

“음, 잘 기억하고 있는 거다. 장교들의 이성 교제는 징계 이유가 맞아.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징계는 근무지를 이동시키는 정도겠지. 아쉽기는 하지만…… 다른 쉘터나, 아니면 여타 위수 지역으로 보낼 생각이다.”

박 소위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상관이 대체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똑같은 이성 교제 문제인데 장교들을 대할 때와 병사들을 대할 때 차이를 두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언제나 공명정대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중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박 소위, 병사들은 좋아서 여기에 군복을 입고 있는 게 아니야. 쟤들은 그저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징집되어 온 것뿐이라는 말이네. 군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우리와는 당연히 다른 처우를 받아야지.”

문형식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어서…… 그…… 충실히 의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고…….”

“좋은 이야기야. 일반인이었던 국민들은 잠시 자유를 반납하고 병사가 돼서 규율을 따르며 의무를 수행하지. 그럼 직업군인들의 의무는 뭐지? 박 소위나 나, 더 나아가서는 장성들까지도 포함하는, 군이라는 조직의 상시적 구성원들 말이야. 그런 ‘군’의 의무는 뭐라고 생각하나?”

“국가의 안전보장과 영토 방위라고 알고 있습니다.”

박 소위가 판에 박힌 대답을 하자 문형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일반 병들도 마찬가지지. 그 논리라면 우리는 직업으로 의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말이 되지 않나. 그건 너무 편리한 발상이야. 흔히들 잊고 있지만, 군에도 아주 분명하고 신성한 의무가 있다. 그 의무라는 건 병사들이 안전하게 병역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일반 사회로부터 잠시 빌려온 소중한 국민을 의무 기간 동안 아껴서 잘 사용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라는 이야기야. 그런데 이미 우리는 그 의무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

문형식은 두 개비째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뒤,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군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실패했어. 그 결과가 이거지. 병사들은 돌아갈 사회를 잃었고, 지난 7월 14일부터 국방부 시계는 멈춰 버렸네. 지금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의 전역일은 무기한으로 미뤄졌어. 진급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지. 의무가 늘어난 거야. 그러니 거기에 맞춰 당연히 보상도 조금은 늘어나 줘야 하지 않겠나? 나는 그 추가적인 보상으로 아주 작은 자유를 허용해 주려고 하는 거다. 저들의 헌신에 비하면 내가 줄 수 있는 보상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그 정도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나?”

이쯤에서 수긍하고 대화를 끝내야 하는 게 맞지만, 박 소위는 좀처럼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문 대위의 운용 원칙을 긍정해 버리면 자신은 가희와 더 이상 만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다른 부대로 쫓겨나 버릴 상황이니까.

가희가 없는 삶이라고?

지금 박 소위는 그런 게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단 하루도 그녀를 품에 안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박 소위는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장교들에게는 어떤 보상이 더 주어집니까? 제 짧은 생각으로는 이 난국을 헤쳐 나가고 있는 장교들과 군에도 추가적인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중대장님께서는 오히려 더 엄격한 규율을 말씀하시니…….”

“박 소위,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군은 평시에 계속 보상을 받아왔어. 우리의 봉급, 관사, 병사들의 복종과 존경, 예정되어 있던 퇴직 수당이나 연금까지……. 풍족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부 다 보상이었네. 그렇게 미리 지속적인 보상을 해 줬던 건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우리가 가장 치열하게 헌신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던 거야. 지금은 우리가 쓰여야 하는 때야, 보상을 받을 때가 아니고. 그걸 망각하는 장교가 있다면 병사들의 신뢰는 기대할 수 없네. 신뢰받지 못하는 장교는 무능한 장교고, 무능한 장교는 적보다 더 무섭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꿀 의사도 전혀 없고! 그러니 만약 박 소위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부대로의 이동을 신청하도록. 알겠나?”

문형식은 평소보다 조금 격앙된 어조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이 너무 강렬하게 번뜩여서 박 소위는 더는 반론을 펼 수 없었다.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씩씩거리며 걷는 동안 박 소위는 분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엿 같은 상황이다.

문 대위, 저 철두철미한 인간이 저렇게까지 말했을 때는 이미 꽤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건대 쉘터 최고의 미녀 가희가 자신의 여자라는 것도, 그 가희가 자신과 매일 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도,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어딘지도 다 아는 모양이다. 큰일 났다.

이제 저 건물은 쓸 수 없다. 그럼 당장 오늘 밤부터 어디에서 몰래 만나지? 어디로 피해야 문 대위의 눈을 속일 수 있을까? 젠장, 겨우 둘만의 밀회를 위한 장소를 마련해 놨는데…….

보안 핑계를 대고 건물로 이어지는 게이트 열쇠를 장교들에게만 줘서 가능한 한 사람들의 발길을 차단했는데…….

박 소위는 신경질적으로 이마를 긁으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추문? 씨발, 나와 가희의 이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을 추문이라고? 미친 새끼들.

솔직하게 말을 해, 차라리! 질투가 나고 배알이 꼴린다고 말을 하라고! 사랑은 국경도 초월한다는데, 장교가 수용자 좀 사귀는 게 뭐가 문제냔 말이야!

소문이 만들어지려면 필연적으로 처음에 주둥이를 턴 새끼가 있어야 한다. 어떤 개새끼일까? 소문의 원흉을 찾아내기만 하면 아주 곤죽을 만들어 버리고 싶다.

경비병 새끼들인가? 아니면 옥상에 배치해 둔 저격조 새끼들이 보라는 도로 방향 좀비들은 안 보고 엉뚱하게 저희 상관을 엿봤나?

용의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동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설마…… 강 소위? 그 얍삽한 새끼가?

생각해 보니 말이 된다. 강 소위는 저 건물을 출입할 수 있는 열쇠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새끼는 가희를 어지간히 짝사랑하던 놈이기도 하다.

가희가 나한테 푹 빠져 있다는 것도 모르고…… 바보 같은 새끼가 혼자서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그랬구나.

네가 꿈꾸던 여자를 내가 차지하니까 아주 눈이 돌아갔구나, 강 소위, 이 등신아. 질투도 적당히 해야지, 이건 너무 추하잖아.

박 소위의 마음속에서 이미 소문의 근원지는 강 소위라고 결론이 나버렸다.

어디 두고 보자, 이렇게 하고도 앞으로 내가 네놈을 도와줄 것 같으냐?

박 소위는 언젠가 한번 아주 단단히 강 소위에게 쓴맛을 안겨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도 여전히 화는 안 풀린다. 이런 상황을 만든 문 대위에게 제일 화가 난다.

혼자서만 올바른 척하는 역겨운 위선자, 꽉 막힌 꼰대, 개뿔도 모르는 주제에 잔소리만 처해 대는 인간, 죄수 한 놈 죽었다고 자기 부하 장교에게 눈을 부라리는 등신, 제 식구도 챙길 줄 모르는 밥통…….

나만 헌신하라고? 병사 새끼들은 아무 데서나 계집 끼고 낄낄거려도 되고, 더 계급이 높은 나는 안 된다고?

그게 무슨 개 같은 논리야? 당연히 그 반대여야지! 장교가 더 권한이 커야지! 기강이 어쩌고 어째?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박 소위의 숨결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주변에 온통 다 좃같은 새끼들뿐이다. 이런 멍청이들밖에 없으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있나!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빠르게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던 박 소위는 나오던 고 하사와 부딪쳤다.

“억! 죄송합니다, 박 소위님. 괜찮으십니까?”

비틀거리는 박 소위를 향해 고 하사가 손을 내민다. 박 소위는 그 손을 탁, 후려치며 악을 썼다.

“똑바로 보고 다녀! 비켜!”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의 관사를 향해 가버렸다. 고 하사는 멋쩍은 표정으로 얻어맞은 손등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와, 뭐지? 오늘 기분 어지간히 안 좋은가 보네. 애들한테 조심하라고 얘기해 줘야 되나…….”

고 하사는 박 소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지식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미련한 구석이 있는 데다가, 가끔 저렇게 폭발하면 사고를 친다.

며칠 전에도 저 장교 때문에 수감자가 하나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가희라는 여자와 아주 뜨겁다는 소문도 돌고 있고…….

“저런 사람이 왜 좋지? 하나도 재미없을 것 같은데…….”

가희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 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미인인데……. 하필 남자를 골라도 왜 저런 걸…….

잠시 생각해 보던 고 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흡연 구역으로 뛰었다. 환자들 더 밀려들기 전에 얼른 한 대라도 빨고 와야 한다.

“의사 군인 오빠!”

담배에 불을 붙이던 고 하사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여자가 있다. 초희다.

“아, 안녕하셨습니까? 여전히 그 미모 그대로시네요. 한 대 드릴까요?”

“어머, 이 오빠 매너 좋다아~ 다시 보이네. 아니지, 근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 할 때가 아니고요.”

초희는 고 하사가 내미는 담배를 마다하고 바짝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 강 실장 오빠, 어디 있어요? 네?”

“강 실장 오빠요? 그게 누구…… 제가 워낙 돌보는 환자가 많아서요.”

“아이, 진짜. 이 오빠 왜 이러셔. 강 실장 오빠요. 저랑 같이 잠실에서 온 사람이요. 왜, 그 옆구리에 총 맞아서 빵꾸 난, 성질 더러운 사람. 오빠가 직접 치료하고 그랬잖아요. 붕대도 감아주고. 나한테 최선을 다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소리도 했었잖아요. 바로 여기에서 담배 피우면서.”

일부러 초희가 장황하게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그동안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내뿜던 고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그분, 총상당하신 분, 초희 씨 일행분. 예, 기억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야 알죠. 갑자기 강 실장이라고 막 내지르시면……. 여기 아픈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한 분, 한 분 다 이름을 기억 못 해요. 근데 그분이 왜요?”

고 하사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민구를 잠실로 이송시킨 일에서 자신의 역할을 지우고 싶다.

그래야 그제 밤 민구를 죽이기 위해 찾아왔던 놈인지 놈들인지로부터 주목을 덜 받고, 주목을 덜 받아야 감시하기도 편하다.

이 경박하지만 예쁘장한 여자도 어차피 그 기동인지 뭔지 하는 말썽꾸러기와 일행이다. 그녀를 얼마 정도나 신뢰할 수 있는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왜요는 무슨 왜요예요? 저 건물 병실에 강 실장 오빠 없잖아요. 어디로 보낸 거예요? 헐, 설마 죽었어요?”

“아, 그분 어제 잠실로 되돌아가셨어요. 제가 계속 여기 치료가 약의 질이든 뭐든 더 낫다고 했는데도 자기는 의사한테 치료받고 싶다고 그러더니, 휙 가버리더라고요. 뭐, 저희야 일거리 줄어드니까 더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초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잠실로 돌아갔다고요? 나한테 말도 안 해주고……. 아니, 여기에서 강 실장 오빠 오기만 기다리던 사람들 다 완전히 바보 됐잖아요. 아유~ 웬일이야. 당장 내가 큰일 났네.”

“저한테도 인사 한마디 안 남기고 갔더라고요. 참내, 사람이 그렇게 매몰찰 수가 있나요? 그런데 왜 큰일이 나요?”

“강 실장 오빠 말도 없이 가버린 거 알면 다 나한테 돌아오니까 그렇죠. 어후~ 어떡해. 완전 죽었네.”

“아니……. 이렇게 예쁜 초희 씨를 누가 죽인단 말입니까?”

고 하사는 너스레를 떨었다. 초희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육 회장이 그러지. 아, 진짜 그 앞에 가서 보고할 생각만 해도 후달린다. 의사 군인 오빠, 저도 한 대 줘요. 일단 한 대 빨면서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정말로 무서운지 초희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안에도 이마를 찌푸리며 발을 동동거렸다.

육 회장이라…….

고 하사는 연기를 내뿜으며 그 이름을 머릿속에 입력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골치 아픈 놈들의 대빵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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