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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청춘, 아름다움, 그렇게 생존 (3) (241/449)


241. 청춘, 아름다움, 그렇게 생존 (3)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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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 나…… 술 안 마실래. 머리 아파서 못 마셔. 컨디션 너무 안 좋아. 지금 막 자려던 참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방으로 들어오려는 삼식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며 유빈은 진땀을 흘렸다.

뭐, 도무지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서 눈앞이 캄캄하다. 불알친구가 방에 좀 들어오겠다는데 그걸 막을 만한 타당한 이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어? 왜 이러지? 이제는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네? 뭐야, 문 잠근 거랑 무슨 연관이 있어? 그러고 보니 이 방, 왜 이렇게 더워? 후끈후끈하네.”

삼식이가 수상하다는 듯 유빈을 위아래로 살핀다. 유빈은 땀이 삐질 솟았다.

하나는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울고, 또 하나는 그 옆에서 당황한 채 머리와 몸이 각각 다른 사유로 열을 내고 있었으니 이 방의 공기가 그사이 더 더워진 건 당연한 일이다.

이놈, 구구단은 못 외우지만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놈. 뭔가 이상한 낌새라도 느낀 걸까?

빨리 보내야 한다. 지금은 그게 상책이다.

“응, 이 방이 좀 더워. 문 잠근 건 그냥…… 훌떡 벗고 시원하게 좀 자 보려고 그랬어. 어제는 옷을 입고 잤더니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잠을 좀 설쳤거든……. 그래서…… 다 벗고 잘 건데 문을 어떻게 열어 놔. 근데 그때 네가 막 문을 두드린 거야.”

“그러니까, 늦게 문을 연 게 옷을 다시 주워 입느라고 그랬다고?”

“응, 응.”

“하하하, 뭘까, 유빈 군? 엄청 수상해~”

어처구니없어 하며 껄껄 웃던 삼식이가 아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헷~ 그거구나, 그거.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 혼자 마시지 뭐. 이따가 경비 서러 나갈 때 보자.”

“응, 그래. 미안해. 내일 같이 마셔.”

삼식이가 말하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납득하고 돌아가 준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상황이 종료되는구나 싶어 유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삼식이가 다시 문을 밀고 들어와 방 안을 훑어보더니 은근하게 속삭였다.

“네 방 달력은 산수화네? 내 방에 맥주 회사 달력 걸려 있던데, 그거 가져다 줄까?”

“맥주 회사 달력?”

“아이, 그런 달력 있잖아. 외국 여자들 수영복 입고 있는……. 뭐, 엄청 야한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볼 게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텐데.”

하하하…….

유빈은 힘없이 웃었다.

‘그거’가 그걸 말한 거였어?

“아냐. 너 그거 오해야. 그냥 정말로 피곤해서 좀 시원하게 자 보려던 거라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긴.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아까 문 열었을 때부터 숨결이 장난 아니었는데……. 난 황소인 줄 알았어.”

“아니라고요. 삼식아, 좀. 사람 추잡스럽게 만들지 말아라.”

그렇게 문을 닫으려는데 삼식이가 한 번 더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로션은? 너 로션 있어?”

“하하~ 어? 너는 그…… 로션 쓰냐? 아니, 그런 이야기는 됐고 쫌! 아으! 상상했잖아, 이 새끼야! 어쨌든 필요 없다고. 그거 아니야! 잘 자!”

유빈은 결국 삼식이를 내쫓는 데 성공했다. 반쯤은 억지였다.

하아아~ 죄짓고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간이 얼마나 큰 걸까? 이 정도로도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다시 문을 잠근 유빈이 진땀을 닦고 돌아서자 침대 옆에 숨어 있던 제니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일어난다.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데 꾹 참는 얼굴이다.

풋, 푸풋, 소리를 죽여 웃음을 터뜨린 제니가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며 말했다.

“우와! 오빠, 거짓말 진짜 잘하네요. 후후, ‘아냐, 삼식아. 나 홀딱 벗고 잘 거야. 아주 홀딱!’ 큭큭큭.”

하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여서 유빈의 말투를 흉내 내던 제니는 다시 또 웃음보가 터졌다. 도저히 못 참겠는지 유빈의 베개를 얼굴에 덮어 소리를 죽이며 끅끅거린다. 유빈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거짓말을 잘한다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삼식이가 코를 골고 방귀 뀌면서 잔다며?”

“아까 내가 찾아갔을 때는 분명히 그랬어요. 아니라는 걸 오빠가 증명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거짓말이라고 단정하면 안 되죠.”

제니는 정색하는 척하더니 곧바로 또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홀딱 벗고 자야만 거짓말을 안 한 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짓말쟁이라는 말 듣기 싫으면 얼른 계획대로 하세요. 후후후, 나는 아무것도 안 볼게요. 자, 이거 봐요. 눈 다 가렸잖아요.”

손가락 틈으로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말을 하며 놀리는데도…… 젠장, 정말 예쁘다.

제니가 들어온 후 켜놓았던 미니 램프의 약한 조명 아래서 그 애를 보고 있자니 꿈을 꾸는 것 같다.

물론 삼식이가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에로틱한 악몽에 가까웠다. 진땀이 뚝뚝 떨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악몽.

어쨌든 그녀가 조금 전의 한껏 과잉된 감정에서 벗어난 것 같아 유빈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이 그녀를 책임질 것도 아닌데 감당 못 할 만큼 깊은 비밀을 알게 되는 건 사양하고 싶다.

“근데 오빠, 맥주 달력 정말 필요 없어요? 내 방에도 그거 걸려 있던데. 푸하하하―!”

말을 해놓고 자기가 부끄러운지 제니는 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맥이 탁 풀려서 소파에 걸터앉은 유빈은 힘없이 말했다.

“비위도 좋다. 베개 그거, 냄새 엄청 날 텐데……. 계속 땀 흘리면서 씻지도 못하고 쓰던 거라.”

킁킁, 냄새를 맡아보던 제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쁜 냄새 안 나요. 그냥 오빠 냄새.”

“칭찬이야, 뭐야? 잘 모르겠네. 땀에 찌든 냄새가 내 냄새라고? 후후, 악취맨인가?”

유빈은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두 다리를 쪽 편 채 침대 옆자리를 두드리며 제니가 또 야릇한 미소를 보낸다. 사람 가지고 놀 때의 그녀로 돌아왔다.

이건 애완견이나 뭐, 그런 취급이구나……. 에휴~

내일부터는 보안관이랑 경비조를 바꿔야겠다고 유빈은 생각했다.

얘가 이렇게 야밤에 노크하는 데 재미를 들렸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매몰차게 못 할 바에야 아예 한동안 피해 있는 편이 좋겠다. 잠이 깊이 들어 있는 새벽에 들어오면 그때는 좀 낫겠지…….

힘들어서 왔다는 애를 외면해 버리는 모양새라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정 무서우면 보안관 방문을 두드리면 된다. 보안관이야 물론 엄청 기뻐할 거고, 그놈이라면 정말로 잠만 잘 재워 줄 수도 있는 녀석이다.

“오빠, 일루 와요. 이렇게 넓은데 왜 불편하게 거기서 자려고 그래요? 자, 내가 이만큼 더 비켜 줄게요.”

그러면서 한쪽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어이쿠, 유빈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어차피 내가 욕심내면 안 될 사람이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이런 추세라면 얘 덕분에 가까운 미래에는 정말 득도의 경지까지 오를지도 모르겠다.

유빈을 마주 보도록 옆으로 기대 누운 제니가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어떤 남자들은 여기 누워 보는 게 소원일 텐데……. 오빠는 그것보다 달력을 더 좋아해.”

“어후~ 제니야, 얼마나 더 놀릴 거니. 나 정말 힘들어.”

더 이상은 스트레스를 못 참겠어서 유빈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애원하듯 본심을 털어 놨다.

이건…… 정말 이상한 형태의 지옥이다. 눈은 즐거운데, 그걸 제외한 나머지가 다 괴로운.

“불쌍해라. 세상에……. 이렇게 착한 오빠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알았어요. 이제 그만 장난칠게요. 자, 여기 와서 편하게 자요. 전 여기 안 넘어갈게요. 정말로! 약속!”

제니는 침대의 3분의 1 지점으로 옮겨 누우며 손으로 선을 쭉쭉 그었다. 유빈이 대꾸하지 않자 제니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하는 게 제가 소파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편할걸요?”

정말 그런 장난을 치고도 남을 애라서 유빈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침대에 눕기 전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각자 방에서 잔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야?”

“없어요. 아까 다 부탁했는데 왜 치사하게 그래요? 자, 얼른 누워요. 에이,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장난은 이제 안 쳐요.”

영 찜찜해하면서도 유빈은 침대에 누웠다. 이따 보안관이랑 교대를 해 주려면 잠을 자기는 좀 자둬야 한다.

뭐…… 환경이 쉽게 잠들 수 있기는 텄지만, 유빈은 침대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투탕카멘처럼 두 팔을 가슴에 모은 채 눈을 꾹 감았다. 제니와 유빈은 침대 가운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처럼 각자 구석에 몰려 있다.

빠르게 뛰던 유빈의 심장이 조금 안정을 찾아갈 무렵, 옆으로 누워 한동안 그를 보고 있던 제니가 속삭였다.

“그거 봐요. 막상 옆에 누우니까 별거 아니죠? 우리, 복지 센터에서는 늘 이런 각도로 누워서도 잘 잤잖아요. 자리도 바로 옆이었고요.”

“……그땐,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었잖아. 다 한 군데에서 같이 잤으니까 이거랑은 다르지.”

“오빠는 나랑 둘만 있는 게 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후후후, 평소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대답이 궁한지, 유빈은 눈을 가리며 ‘장난 안 치겠다고 했잖아’라고 중얼거렸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제니는 질문을 바꿨다.

“몇 시에 경비 보러 나가요?”

“두 시에 교대야. 한 10분 전에 나가면 안 늦어.”

제니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시계를 봤다. 열한 시가 막 지났다.

“어머, 몇 시간 못 자네요. 그때 나갔다가 언제 다시 들어와서 자요?”

“안 들어와. 여섯 시 반까지 쭉 있어.”

“그럼 오빠네만 너무 조금밖에 못 자는 거잖아요.”

“아니야. 다 비슷해. 보안관도 겨우 네 시간 자는 거고, 경비 안 보는 애들은 그 대신에 여기에서 내일 쓸 물건 만들다가 자잖아.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고.”

유빈의 말끝이 조금씩 늘어진다. 정말로 어지간히 피곤한 모양이다. 이쯤에서 놓아주고 재워야 하는 걸 아는데도 제니는 자꾸 말이 걸고 싶었다.

언제 또 이렇게 단둘이서만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한 침대에 누울 수 있을지 아무런 기약이 없으니까.

운이 없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둘 중 한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생각하기도 싫은 불길한 이야기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녀를 포함한 일곱 명의 일행 중 그 누구도 삶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내가 장난치는 거 싫어요? 짜증 나요?”

“……싫은 게 아니라 그냥 힘든 거야.”

반쯤 잠든 목소리로 유빈이 느릿느릿 대답한다. 잠결에 나오는 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무장이 해제된 것처럼 들려서 제니는 귀를 쫑긋 세우며 속삭였다.

“왜요?”

“뭐…… 예뻐서라고 하는 게 제일 맞겠지. 친동생처럼 대해야 하는 거 아는데…… 그게…… 네가 장난을 치며언…… 그게 잘 안 돼. 그래서…… 힘들어. 내가…… 실수할까 봐. 내가 워낙에…… 속물이라서…… 푸우우~”

마지막에 가서는 아예 푸우, 푸우, 숨을 불면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제니는 아주 살살 거리를 좁혀 다가갔다. 마침내 둘의 간격이 30센티 이내로 줄어들 때까지도 유빈은 전혀 눈치 못 채는 것 같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유빈의 떡 진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 주자, 유빈의 입에서는 강아지처럼 낑낑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풋.

그 모습이 귀여워서 제니는 소리 죽여 웃었다. 계속해서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제니가 물었다.

“기분 좋죠? 잠이 저절로 오죠?”

“……”

“오빠, 기분 좋냐고요?”

“……응? 으응~”

대답인지, 무의식적인 반응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목소리로 유빈이 대답을 한다. 짧다.

“내가 가까이 오는 거 안 싫죠?”

“……응.”

대답 옵션이 하나뿐인 모양이다. 그럼 물어보고 싶은 게 더 늘어난다. 제니는 생긋 웃으면서 아주 낮게 속삭였다.

“전에 내가 뽀뽀 한 번 해 주기로 했던 거 기억나요? 빚진 거 있는데.”

“……응.”

“언제인지 정말 알고 있어요? 오빠가 볼라 만들어 줬을 때예요.”

“……응.”

“그거 지금 해 줄까요?”

“……응.”

제니는 잠든 걱정왕의 떡 진 머리카락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그의 베개를 안고서 침대 밖으로 내려섰다. 아직 잠이 오진 않지만, 이걸 끌어안고 있으면 한결 덜 무서울 것 같다.

“나중에 무서워지면 또 와도 되죠?”

잠긴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제니는 침대 위의 유빈을 돌아보며 물었다. 물론 답은 같았다.

“……응.”

제니는 만족한 미소와 함께 아주 살짝 손잡이를 열고 살며시 복도로 빠져나왔다.

***

아침이 밝았을 때, 건대 쉘터 내 자신의 숙소에서 일어난 박 소위는 눈을 비비며 좀처럼 야전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잠이 떨쳐지지를 않는다. 온몸이 노곤하다.

안 그래도 빡세게 돌아가는 근무 일정인데, 거기에 더해 매일 밤마다 가희와 나누는 뜨거운 시간들이 있으니, 아무리 젊고 건강한 몸이라도 슬슬 여기저기서 삐걱거림이 느껴졌다.

“아…… 머리야.”

박 소위는 지끈거리는 골을 감싸 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온몸 구석구석에 어젯밤의 감각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것 같아 가볍게 전율이 인다.

대단한 쾌락이었다. 요즘 들어 그는 자신을 새로 발견하고 있다.

이전에도 몇 번쯤 이성을 사귄 적이 있고, 그중에는 깊은 관계로까지 이어진 드문 경우들도 존재했지만, 가희처럼 이렇게 완전히 사람을 녹이고 빠져들게 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그녀를 안을 때면 너무 황홀하고 뜨거워서 몸 전체가 다 아주 작은 파편으로 부서지는 것 같다. 게다가 일을 다 치르고 나서 그녀가 자신을 바라봐 주는 그 사랑스러운 눈빛.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텅 빈 것이었을까?

박 소위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이전까지 그가 여자들과 나눴던 즐거움을 모두 다 더해 봤자 가희와의 하룻밤에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만큼 체력과 정신력이 소진되는 것은 그가 감수해야 하는 몫이었다.

의무대에서 받아 왔다며 밤마다 가희가 챙겨다 주는 비타민을 먹는데도 사랑을 나누고 나서 몰래 숙소로 돌아올 때쯤이면 반주검이 되어 있다. 하루 종일 계속 몸은 축축 처지고, 생각나는 건 오직 그녀뿐이다.

“아…… 또 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나서 박 소위는 어처구니없어 하며 웃었다.

무슨 중독자가 된 건가……. 사랑 중독…….

그 단어의 어감이 나름 괜찮아서 박 소위는 빙긋 웃으며 일어났다.

자, 나가서 얼른 세수하고 담배 한 대 피운 다음 오늘 하루 시간을 보내야지. 그래야 밤에 또 몰래 옆 건물로 가서 가희를 만나지…….

그렇게 하이바와 개인화기를 챙겨 쉘터 주차장으로 나간 박 소위가 담배 한 대를 막 피워 물었을 때,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형식 대위다.

“박 소위, 지금 시간 괜찮으면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아, 담배 끄지 마. 나랑 같이 한 대 피우지.”

물어보는 것 같지만, 엄연한 명령이다. 게다가 우연히 만난 것도 아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인상이다.

뭐지? 내가 또 뭘 잘못했지? 도로 차단 작업 속도 때문에 짜증을 부리나?

박 소위는 서둘러 담배를 끄고는 그런 걱정들을 하며 문형식의 뒤를 따랐다.

“하하, 이 친구……. 끄지 말라니까. 왜? 내가 불붙여 주는 담배가 더 맛이 있어서 그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박 소위를 데려온 문형식은 직접 담배를 권하고 불도 붙여줬다.

그러고는 자신도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침묵 속에서 두어 번 더 담배를 빨던 문형식이 박 소위의 눈을 보면서 물었다.

“박 소위, 지금 자신과 관련해서 어떤 추문이 도는지 알고 있나? 짐작 가는 건?”

당혹스럽다.

소문?

박 소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니, 굴리려고 노력해 봤다. 하지만 그게 잘되지 않는다. 워낙 잔꾀와는 거리가 있게 타고난 데다가 특히 요즘은 더 멍해져 있어서 뭔가에 집중이 안 된다.

“……잘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게 다였다. 물론 가슴을 짓누르는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지만, 그건 아닐 거다.

가희와는 몰래 만난다. 낮에는 서로 특별히 친밀한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 따로 건물로 와서 달빛 속에서 정사를 나누고, 또 따로 쉘터로 돌아간다. 그러니 소문이 나려야 날 수가 없다.

“그래…….”

문형식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또다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뒤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런 대답을 들어서 기쁘다. 박 소위와 가희라는 여성 수용자가 민망한 사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어서 꺼낸 말인데, 사실이 아닐 테니까 곧 수그러들 테지. 그렇게 진정이 되도록 자네도 노력할 거라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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