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8. 서바이벌의 숲 (6) (238/449)


238. 서바이벌의 숲 (6)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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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투, 투투둑, 투투둑.
여기저기서 총알이 날아온다. 뒤늦게 진우의 위치를 파악한 일반 병사들이 당황해하며 3점사를 퍼붓고 있다. 그래 봐야 이미 진우는 바위 뒤로 다시 몸을 피한 뒤다.

높은 곳에 숨은 그를 아래에서 쏴 맞춘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군대에서 괜히 고지 선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게 아니다.

진우는 쏟아지는 돌 부스러기와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기다렸다. 어차피 탄창 한 개를 다 쓰면 놈들은 몇 초 동안을 더듬거리며 탄창을 교환해야 한다.

그때를 맞춰 이쪽에서 제압사격을 해 주면 물론 그 공백기는 더 길어질 것이고, 그 정도 시간을 벌면 달아나는 데 아무런 장애도 안 된다.

복수는 성공했고, 위험 요소는 제거됐다. 저격수가 숨어 있던 숲속을 어지럽게 물들이던 그 선명한 빨간색은 아직도 진우의 망막에 진한 잔영으로 남았다. 웅크린 채 탄창을 교환하면서 진우는 틈을 기다렸다.

투투둑, 투투둑.

여섯 발을 끝으로 총성이 잠시 잦아들었다. 진우는 머리 위로 총을 올려 방향을 바꿔가며 3점사를 퍼부어 줬다.

‘읏’, ‘엇!’ 당황한 병사들이 황급히 몸을 숨기면서 내는 신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린다. 이제 뛸 차례다.

진우는 엄폐물 뒤에서 한 번 더 아래쪽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부은 뒤, 나무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시 일어나 언덕의 위쪽으로 달렸다.

자신이 달아나고 있다는 걸 지금쯤은 알아챘을 테지만, 어차피 지휘관 잃은 병사들일 따름이다.

탄창 교환 시기를 조율하지 않는 것만 봐도 삼척에서 이 병장이 이끌던 분대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 따위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핑― 핑―

투투둑, 투투두.

아무렇게나 쏴 대는 총알이 어지럽게 바람을 가른다. 하지만 진우는 여기를 전장으로 정했을 때부터 이미 퇴로를 염두에 뒀고, 그 퇴로는 꽤나 많고 든든한 엄폐물로 보호되고 있다.

급하게 비탈을 올라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진우는 뒤를 돌아 한 번 더 제압사격을 했다.

으윽! 쫓아오던 놈들은 구르듯 언덕 아래로 피하며 엄폐물을 찾았다. 병사들은 진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뒤를 밟고 있다.

명령을 내리는 놈만 조지면 알아서 흩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저 녀석들도 동료의 피를 보고 꽤나 흥분한 모양새다.

덕분에 도주에 걸린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우는 다시 산의 능선으로 돌아왔다. 아래쪽에서 꾸역꾸역 따라오는 추격대와의 간격은 100미터 이상으로 벌어졌다.

반대편의 협곡으로 내려가기 전에 진우는 다시 한 번 탄창을 갈아 끼우고 추격대 놈들이 고개를 들 생각조차 못 하도록 오싹한 위협사격을 가했다.

핑― 핑―

놈들이 숨은 지점 하나하나마다 바로 머리 근처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다시 고개를 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갔던 추격대가 합류해 저 멀리서 이쪽 산기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정말 더 지체하지 않는 게 좋다. 진우는 한 번 더 위협사격을 해주고 협곡 아래로 내달렸다.

탁탁탁탁.

자갈과 흙이 반반씩 섞인 길 위를 뛰어가고 있을 때, 발소리에 섞여 누군가 건네는 말이 들려온다.

- 큭큭큭, 이 새끼……. 심장 콩닥거리는 거 봐라. 사람 죽이고 완전히 신이 났네. 왜? 피를 보니까 좋아? 흥분돼?

젠장, 진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힘들고 심각한 상황만 되면 나타나는 그 목소리. 진우가 ‘개 같은 혓바닥’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자아가 실실거리며 또 비웃어 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온다.

‘닥쳐, 이 개새끼야! 나도 살려고 발버둥친 거야! 쫓아온 건 저 새끼들이었어! 누구를 살인마 취급해?’

진우는 또 다른 자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계속 내달렸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커다란 바위들이 반갑다. 그 뒤쪽으로 숨어서 달리면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니까.

- 길 비켜라! 살인자 납신다! 앞을 가로막는 놈은 다 죽인다!

“지랄하지 말라고! 난 한 놈밖에 안 죽였어! 여섯 놈 중에 제일 위험한 놈 하나만 죽였다고!”

- 나는 휴머니스트다! 여섯 명 죽일 수 있는데 한 명밖에 안 죽였다! 골라서 죽였으니까 죄가 없다! 아아, 그러셨어요? 큭큭크, 그런 논리면 이 세상에 죄인이 어디 있어? 열 놈 죽이고 열한 번째 놈 살려 주면 그것도 착한 일 한 거겠네? 킥킥킥.

‘내가 죽어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 좃 까! 난 살 거야! 꾸역꾸역! 악착같이! 다 이기고 살아남을 거라고!’

미친놈처럼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면서도 진우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는 걸 잊지 않았다. 슬슬 추격대 애들도 산의 능선 위까지 도달할 때가 됐다.

- 다 이기는 것 좋아하시네. 오늘만 해도 그 새끼가 멋 부리지 않았으면 넌 벌써 뒈진 목숨이야. 네가 엄청나게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그 말을 남기고 또 다른 자아는 머릿속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 마지막 말에는 진우도 반박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만일 그 저격수가 단발 헤드샷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아까 총열로 위치를 들켰을 때 벌써 게임은 끝났을 거다.

놈이 연발로 세 발 정도만 훑었으면, 피를 뿌리고 죽는 건 그 저격수가 아니라 진우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진우도 놈을 잡을 때, 모드를 연사로 두고 최대한 많이 갈겼다.

‘그래, 자만하면 안 돼. 오만해져서 허세 부리면 죽는 거야.’

굽이를 돌기 직전 진우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100여 미터 떨어진 언덕의 능선 위로 추격대 병사 한 놈이 올라섰다. 당연히 서로 눈이 마주쳤다. 놈이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사격 자세를 취한다.

진우는 왜 그 녀석이 얼른 자세를 낮추지 않고 서서쏴 자세로 총구를 들어 올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에 대해 답을 찾기 전에 얼른 방아쇠부터 당겼다.

타앙!

진우를 쏘려던 병사는 눈 주위에서 핏빛 안개를 뿜어내며 뒤로 넘어갔다. 원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돌이킬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다.

‘씨발!’

저격수의 피를 보았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어서 진우는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서서 뛰었다.

완만한 굽이를 돌아 더 이상 언덕 위쪽에서 뿌려 대는 총알에 노출되지 않게 되었을 때, 진우는 자신의 이마 주변을 마구 훑었다.

씨발, 바보 같은 새끼! 왜 얼른 엎드리지 않은 거지? 왜 그렇게 멍청하게 사격 자세를 취하냐고! 옆에 서 있는 나무가 보호해 줄 거라고 믿은 건가?

계획했던 것보다 한 사람을 더 죽였다는 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게다가 그놈…… 어쩌면 아까 그 강 일병 클론인지도 모르겠다.

거리가 100여 미터나 되고 단 몇 초 동안만 봤으니 정확하게 얼굴을 인식할 수는 없었지만, 놈이 안경을 끼고 있던 건 분명하다.

‘잊어버리자. 아마 아닐 거야. 안경 쓴 군인이 그놈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생긴 게 닮았을 뿐이지, 걔가 정말로 강 일병님인 것도 아니잖아. 난 분명히 경고도 했어. 또 만나면 죽일 거라고……. 아, 젠장. 안 쐈으면 뭐 무슨 수가 있어? 네가 총 맞게 생겼었다고! 걔는 너 못 맞추라는 법 있어? 좀 전에 다짐했잖아. 자만하면 안 된다니까!’

그렇게 뇌리에서 조금 전의 그 병사에 대한 생각을 애써 지워내며 계속 협곡을 따라 달리던 진우는 40여 분이 지난 뒤에야 처음으로 물을 만났다.

바위틈을 따라 졸졸 흐르는 개울물이 넓적한 큰 바위 위로 잔잔한 수면을 이루고, 그 옆의 흙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하아…… 물……. 아아…… 물이다.”

물을 보고 안심을 하자마자 머리끝이 핑 돈다. 어지럽고, 뜨겁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일단 주변부터 훑어 안전을 확인한 후에 진우는 무릎을 꿇은 채 총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바위에 입을 맞추듯 흙먼지투성이 입술을 내밀어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물을 빨아들였다.

추르릅, 추릅.

수분이 위장과 뇌 양쪽으로 동시에 흡수되는 것 같다. 너무나 시원하고 달다. 바짝 말라 있던 입술과 혀, 그리고 식도와 온몸 구석구석까지 천천히 수분이 충전된다.

“하아~ 고마워.”

족히 1리터는 넘게 물을 마시고 난 뒤, 진우는 옆의 웅덩이에서 물을 퍼 올려 목덜미와 정수리에 부었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 끈적거리고 흙투성이인 데다가 뜨거웠는지 몰랐다. 진우는 눈을 꼭 감은 채 몇 번이나 물을 끼얹어 얼굴과 머리의 흙을 털어냈다.

“어?”

옆머리를 씻던 진우가 손바닥을 보고 놀란다. 말라붙은 피딱지와 함께 붉은 피가 묻어난다.

뭐지?

머리 주변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니, 관자놀이에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위가 찢어져 있다. 아마 아까 수류탄이 터졌을 때 쏟아져 내린 돌에 맞은 게 분명하다.

“아야야…….”

물로 씻어내는 동안 감각이 살아났는지 따끔따끔하다. 보이지는 않지만, 손가락 끝의 촉감으로 재 보니 대충 3센티 정도 쪽 찢어졌다.

뭐, 그리 대단히 깊은 상처는 아니어서 일단 안심하기로 했다. 사실 따끔거리는 건 머리의 상처뿐만이 아니다.

아까 풀을 뜯어내고 헤치고 꺾었던 손바닥은 실처럼 가늘게 베인 상처들이 셀 수 없이 많고, 온몸 여기저기가 긁히고 찍히고 멍이 들었다.

손톱이 빠진 왼손 검지를 싸 뒀던 붕대는 어디로 날아가 버리고, 시꺼멓게 피멍이 든 살이 드러났다. 하 중위가 치료해 준 오른팔의 상처도 심장이 뛸 때마다 욱신욱신했다.

“오늘 죽은 놈들도 있어. 엄살떨지 마.”

한 번 더 물을 마신 진우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총을 집어 올렸다.

그러고는 지칠 대로 지친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숲속의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올무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나뭇가지부터 꺾어 지팡이로 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웁, 너무 지치고 덥고 힘이 들어서 걷는 내내 계속 구역질이 치밀고, 실제로 몇 번은 토사물을 게워내기도 했다. 물론 토사물이라고 해야 거의 다 물밖에 없지만.

“케엑! 켁― 큭! 우욱!”

어지럽다. 뭔가…… 열량을 섭취해야 한다. 하다못해 소금이라도…….

머리가 핑 돌 때마다 진우는 나무를 짚고 서서 한숨을 몰아쉬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이 계속 너무 많은 땀을 흘리고, 벅찬 운동을 한 덕에 긴장이 풀리자마자 극심한 무력감이 온몸을 덮쳤다.

이 상태대로라면 그리 길게 버티기 힘들 성싶다. 하지만…… 근처에 먹을 것이라곤 없다.

또 20분 가까이 땀을 흘리며 언덕을 오르자 지난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도로가…… 사람이 닦아 놓은 도로가 보였다.

뒤쪽에 추격대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하긴 추격대라고 해서 무슨 전문가들도 아니고, 풀숲으로 덮인 이 넓은 산중에서 사람 하나가 어디로 갔는지 수월히 찾아내지는 못할 거다.

후우, 후우…….

산기슭에 도착한 진우는 숲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까맣게 그늘이 진 눈으로 도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별다른 위험 요소가 없다는 걸 확신한 후에 도로와 이어진 평지 위로 내려섰다.

“집이 있을 텐데……. 인가가…….”

완전히 탈진해서 멍하게 중얼거리던 진우는 자신의 발밑을 보았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땅의 울퉁불퉁함이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성하게 자라난 이 녹색 풀은 단순한 잡초가 아니었다.

뭔가 심어져 있다. 흙 묻은 검은 비닐도 보인다. 야생동물들 때문에 엉망으로 파헤쳐져 있고, 주변에 다른 잡초들도 잔뜩 돋아 있어서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지만, 여기는 고랑이 있는 밭이다.

‘먹을 거다. 뭔가 먹을 게 묻혀 있다!’

땅속에 들어 있는 작물의 정체가 뭔지도 모르지만, 일단 침부터 고인다.

대검을 뽑기 위해 대검집이 달린 왼쪽 어깨를 더듬던 진우는 그제야 자신이 오늘 오전에 대검을 포함한 모든 무기를 압수당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아, 젠장! 이 멍청이! 대검!”

진우는 끌탕을 하며 아쉬워했다. 아까 탄창만 빼앗을 게 아니라 대검도 빼앗아 왔어야 했는데! 좀비에 물려 죽은 병사가 있었으니 굳이 강 일병 클론의 것을 빼앗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그때 당시에는 탄창을 다시 획득하는 것과 그 클론을 살려 주려는 마음만 앞서 있어서 대검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었다.

어쨌든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일단 입에 뭔가를 넣고 싶었기에 진우는 나뭇가지 지팡이로라도 땅을 쑤셔 봤다.

별로 능률이 없다는 걸 깨닫고 지팡이를 내려놓은 진우는, 근처에서 넓적하고 단단한 돌을 주워 와 두 손으로 꽉 잡고 땅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부서져 나온 흙더미를 열심히 긁어냈다. 마침내 나타난 것은 뿌리줄기에 달려 있는 둥근 알맹이…… 감자다. 감자가 나왔다.

“우와! 이게! 이게 웬 떡이야!”

돌로 찍어 떼어낸 흙투성이 감자를 군복에 문질러 흙을 털어내고, 서둘러 입으로 가져갔다.

아삭.

특유의 텁텁한 맛. 거기에 흙냄새가 강하게 첨가되어 있다. 하지만 진우는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감자를 씹었다.

우걱우걱, 고소하다. 날감자 한 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우는 곧바로 두 번째 감자를 뜯어내서 흙을 털었다. 그러고는 또 크게 한입을 베어 물었다.

후, 후, 껍질에 붙은 잔 흙을 불어내던 진우의 시선이 도로 너머 저편의 평원으로 향했다. 여러 겹으로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까만색 차양막.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아서 진우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홀린 듯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두 번 이어졌던 태풍의 피해로 까만색 차양막들은 반쯤 부서진 채다.

하지만 그 아래 재배되고 있던 작물들이 망가지지는 않았다. 줄을 맞춰 심어져 있는 이 수많은 녹색 풀들은 인삼이었다.

진우의 손에서 힘이 빠지며 지금껏 소중하게 쥐고 있던 감자가 떼구루루 굴러떨어졌다. 흙 묻은 날감자 같은 걸 씹어 먹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인삼! 파워! 에너지!

진우는 인삼밭을 덮고 있는 가마니를 뜯다시피 해서 들어내고, 손으로 땅을 파헤쳤다.

잘 안 된다. 토양은 딱딱하고, 짚으로 짠 가마니는 쫀쫀하다. 마음이 급해져 도구를 찾던 진우는 옆의 차양 기둥용 각목을 잡고 뜯어냈다. 그러고는 뾰족한 부분으로 가마니를 찍고 땅을 파헤쳤다.

이윽고 파란색 줄기에 흙투성이 누런 뿌리, 무수한 잔털을 가진 손가락 굵기의 인삼이 자태를 드러냈다.

‘인삼……! 인삼!’

진우는 인삼을 집어 옷에 문대고 흙을 털어냈다. 급한 마음에 잔뿌리에 묻은 것들은 대충 손으로 뜯어내 버리고 입에 욱여넣었다.

와작, 와작.

쓰면서도 단맛이 난다. 흙이 씹혀서 도저히 못 삼키겠으면 그 부분만 뱉어버렸다.

켁, 켁…… 이따금씩 사레가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워낙에 맛있다.

진우는 인삼을 꼭꼭 씹으면서 새 뿌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인삼 밭이 여기에 있으니 근처 어딘가에는 이 밭을 관리하며 농사를 짓던 농가가 적어도 하나는 있을 거다. 위장이 조금이라도 차는 대로 찾아 나서 봐야겠다.

적어도 펌프나 우물 정도는 있으면 좋겠는데…….

인삼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진우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연장도, 플래시 같은 것도 없고, 소독약과 물병도 꼭 필요하다. 머리에 쏟아지는 햇빛을 막아 줄 모자도 있어야 하고…….

하지만 인가를 발견해도 거기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다. 혹시라도 추격대 놈들이 뒤를 밟으면 당연히 집부터 뒤지고 다닐 것 같으니까.

뒤를 밟는다라…….

아, 젠장. 그러면 인삼 파먹은 자리, 감자 파먹은 자리도 다시 풀로 덮어서 위장을 해 놔야 하는 걸까? 지팡이로 쓸 나뭇가지 부러뜨린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그리고 여긴 대체 어디야?

그렇게 진우가 상념에 잠긴 채 인삼을 씹고 있을 때, 콰아앙― 콰앙― 멀리서 포격 소리가 울렸다. 인삼을 씹어 삼키던 진우의 입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에 또 콰아앙― 콰콰앙― 쿠, 쿠쿵―!

거리는 꽤 있지만, 이건 뭔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군인들 간의 싸움이 여기 한 곳에서만 일어났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메고 있던 K―2를 꽉 잡으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설마…… 내전인가…….”

***

“몇 개 더 뿌려 놓을까?”

삼식이가 물었다. 해머를 짚고 서서 도로를 잠시 관찰하던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자.”

삼식이는 두툼한 보호 장갑을 낀 손으로 가방에서 ‘덫’들을 꺼내 내려놓았다. 말이 ‘덫’이라 거창하지만, 실은 운동화 끈의 양쪽에 깡통을 달아 놓은 것으로, 발을 묶어 놓을 만한 위력은 없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서, 캔커피 빈 깡통의 2/3 높이 정도에 구멍을 뚫고, 운동화 끈만 안으로 넣은 뒤 매듭을 지어 빠지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리고 연결된 깡통 두 개를 거리를 벌려 세워 두면 끝이다.

물론 캔커피 깡통이 없으면 다른 깡통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음료수 캔, 옥수수 깡통, 후르츠 칵테일 깡통, 스팸 캔……. 종류 따위는 가릴 필요 없다.

공통적으로 안에다가 적당한 추를 좀 넣어 두는 건 필수적이다. 삼식이와 보안관은 철물점에서 가져온 볼트를 넣고 테이프로 입구를 반쯤 봉했다.

이 덫을 도로의 이곳저곳에 지그재그로 장치해 두고 있다. 혹시 좀비가 이 위로 지나가다 줄에 걸리면 양쪽의 깡통이 휘리릭 발목에 감겨서 요란한 소리를 내 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그놈 발목에 착 달라붙어서 계속 따라다니며 고양이 방울처럼 위치를 알려 줄 수도 있다.

“어디…….”

삼식이가 시험 삼아 발을 걸고 당겨 본다.

땡그렁, 깡통이 흔들리고 발목에 걸린 줄은 친친 감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오래 따라오다 떨려 나갔다.

땡그렁, 땡그렁.

볼트가 깡통 안에서 튕기며 소리도 꽤 요란하다. 좀비처럼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놈들에게는 훨씬 효과가 좋을 터이다.

“삼식아, 장난 그만 치고 옆 골목으로 가자.”

피곤한 얼굴로 보고 있던 보안관이 재촉을 한다. 그들의 뒤에서는 제니와 태권소녀가 빨랫줄로 전봇대와 건물 문손잡이를 연결하고 있다.

좀비에게 쫓겨 몇 초의 시간이 간절할 때라면 2~30미터 간격으로 쳐두는 이 가슴 높이의 줄 한 가닥이 생명을 구해줄 수도 있다.

줄을 다 묶고 나면 은박 테이프를 길게 찢어서 세 군데 정도에 붙여 눈에 잘 띄게 해 둔다.

길가의 모텔 옥상에서 망을 봐 가며 송곳으로 캔에 구멍을 뚫고, 볼트를 넣고, 끈을 연결하는 모든 수작업은 신입과 규영이 맡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대로의 좀비 행렬이 지난 걸 확인하고 완성된 ‘덫’을 받아 내려오는 건 유빈의 몫이다.

이 모든 난리는 어제 골목 안으로 들어왔던 좀비들을 다 잡지 못한 까닭이다.

그새 다섯 마리를 더 죽이긴 했지만, 아무리 죽어라 쫓아다녀 봐도 여섯 마리는 끝내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건너편 도로에서 사라진 놈들도 행방이 묘연하고…….

도대체 놈들이 어디까지 가버렸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그것들만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결국 골목 안에 트랩을 설치해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어제 그 사건 이후로 안 그래도 조마조마했던 생활에 미묘한 위험이 더해졌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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