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6. 서바이벌의 숲 (4) (236/449)


236. 서바이벌의 숲 (4)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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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 있는 나무 아래 엎드린 진우는 잡초 사이로 총구를 내밀고 숨을 가다듬으며 기척을 죽였다. 그가 매복한 장소는 봉우리 입구로부터 60여 미터 더 들어온 지점.

우측으로 비스듬히 꺾여 있어서 정면으로 뛰어 들어오는 놈들이 무작정 쏴 대는 총알에 맞을 위험은 없다. 울창한 나무숲도 꽤나 든든한 총알받이다.

그의 우측 바로 옆에는 작은 언덕, 더 멀리까지 가면 커다란 봉우리에 이어진 가파른 절벽이 있다. 웬만큼 숙련된 산악인이 아니라면 오르지 못할 것 같은, 험한 산세였다.

왼쪽으로는 울퉁불퉁한 언덕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끝은 맞은편의 완만한 산기슭과 이어진다. 녹색 풀들 사이로 입구를 노려보며 진우는 땀을 훔쳤다.

찌르륵, 짹― 짹― 찌르르륵―

숲의 이편에서는 평화롭게 새가 울고, 저편에서는 총소리와 고함이 점점 가까워진다.

조금 전까지 표적이었던 진우는 이제 저격수로 변신해서 숨어 있고, 저 바위 봉우리를 왼쪽으로 끼고 들어올 누군가가 표적이 될 것이다.

두 명의 표적. 불과 60미터. 노쇠하고 닳아버린 자신의 K―2라고 해도 절대 놓칠 일이 없는 거리였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조금씩 분노로 변하며 머리를 뜨겁게 했다.

그의 분노 중 대부분은 자신을 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지까지 끌고 온 그 중위나 소령이 아니라, 저격수를 향한 것이었다. 몸 위로 떨어져 내리던 화강암 부스러기들……. 죽음이 바로 그의 곁을 스쳐 갔다.

좀비 세상에서 죽을 뻔했다는 게 뭐 그리 새로운 경험인가 하겠지만, 저격수의 총알에서 진우는 분명한 악의와 오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좀비들과 싸울 때는 느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감정이다.

저격수는 자기 목숨을 내걸지 않은 채 아주 먼 곳에 숨어서 진우의 생명을 조롱했다. 당연히 그런 짓을 한 놈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 놈이 자신을 깔본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

하지만 저 봉우리를 돌아 들어오는 맨 앞의 두 놈 중에 저격수가 포함될 확률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아예 없다고 보아도 좋다.

앞장서서 달려가다가 가장 먼저 총알을 맞고 꽃잎처럼 스러져가는 것은 언제나 자신과 같은 평범한 병사들 몫이니까……. 그러니 진우가 꿈꾸는 복수는 실현되기가 어렵다. 그것이 진우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진정해라, 진정. 그 새끼 하나 잡는다고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뭔가 확 바뀌지도 않아. 그러니까 진정하고 네 할 일 깔끔하게 하고 여기서 뜨자.”

진우는 놈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는 자신을 달랬다. 이성적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생존 확률이 높은 방향으로…….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을 다잡았다.

망설이지 마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전쟁이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는 얄팍한 소리 따위는 꺼내지도 마라.

하 중위를 능욕했던 탈영병들부터 오늘의 교전까지…… 너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서, 한 손으로는 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에게서 생명을 빼앗았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너와 함께 트럭을 타고 왔던 수많은 병사들 전부가 저놈들 중 누군가가 쏜 총알에 의해 고통을 받다가 죽어갔다.

총을 사람에게 겨눈 그 시점부터, 빠르고 정확하고 더 독한 놈만 살아남는다는 사악한 계약에 서명을 한 거나 다름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쉼 없이 채찍질하고 있던 진우의 시선에 좌측 언덕의 수풀 사이를 헤치고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일군의 형체들이 들어왔다. 거리는 200 이상. 여섯 마리의 좀비다.

이동하는 속도가 느릿한 걸 보면 아직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진 못한 것 같다. 그저 불길이 올랐던 때의 그 열기에 홀려 멀리서부터 이 부근까지 와버린 좀비들이다.

하지만 깨끗이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놈들은 지금 진우와 봉우리의 중간 지점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다. 여기까지 도달했을 때, 과연 놈들이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제일 좋은 건 이제 불도 다 꺼졌을 테고 열기도 사라졌을 테니 미친 척하고 휙 돌아서 얌전히 사라져버려 주는 건데, 지금 놈들의 분위기를 보면 그래 주지 않을 듯하다.

덕분에 진우는 봉우리 쪽에도 주목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저 좀비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만약 놈들이 너무 접근해 와서 사격으로 처리해야 한다면, 그때는 또 위치를 적에게 들키게 된다.

어쩔까 고민하고 있는 동안, 봉우리 쪽에서 병사 셋이 뛰어 들어왔다. 모두들 어지간히 어리바리한 자세와 몸짓이다.

휙― 바람이 불어 전방의 수풀이 흔들리자마자 셋 중 한 놈이 기겁을 하고 그쪽으로 총구를 돌려 3점사를 퍼붓는다.

투투둑, 투투둑, 투투둑.

놈을 제외한 두 병사는 총소리가 울리자마자 납작 엎드리며 같은 방향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이 방아쇠에서 손을 뗐을 때, 타아아아아아앙―! 마지막 발의 긴 메아리가 화약 냄새와 함께 숲을 가득 메웠다.

“자세 낮춰! 뭐, 뭐야? 뭘 쏜 거야?”

“잘, 모르겠습니다……. 전방에 뭔가가 휙 움직이긴 했는데 말입니다.”

맨 처음 총을 쏜 놈이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힌 채 전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맞춘 건가? 너 맞췄어?”

“그,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제 딴에는 잘 쏜다고 쏜 건데,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지 말입니다.”

총소리가 윙윙 울리고 거리까지 있어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정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대충 그런 대화처럼 짐작되었다.

세 놈은 허리를 낮추고 잔뜩 긴장한 채 숲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놈들의 위치도, 사격한 목표 지점도 모두 진우가 매복한 장소와는 거리가 좀 된다.

진우는 수풀 사이로 놈들이 접근해 오는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지금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 저 셋을 먼저 처치하고 그들의 탄창을 획득한 다음, 좀비들까지 마저 처리하고 후속 병력이 도달하기 전에 이 숲을 떠나면 끝이다.

그런데 진우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셋 중 맨 끝에 선 병사의 얼굴 때문이다. 순진해 보이는 인상에 둥근 안경.

삼척에서 함께 분대를 이뤘던 강 일병님과 정말 닮았다. 얼굴뿐 아니라 체형이나 몸짓도 얼마나 유사한지, 강 일병의 친형제라고 해도 아무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을 수준이다.

헉, 학, 뒤쪽에 처진 강 일병의 클론은 긴장한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무와 잡초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온다.

나머지 두 놈도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전진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진우의 시선은 강 일병 클론에게 고정되었다.

폭풍 속에서 삼척 원전 방어대가 궤멸되던 밤, 그는 강 일병에게 빚진 감정들이 좀 있다. 자신이 밀어치는 바람에 나뭇가지에 팔이 찢겼던 강 일병…….

좀비들의 습격에서 김 상병을 먼저 구했을 때의 미안함, 그리고 거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강 일병은 지하 통로로 들어가기 직전, 좀비들을 저지하다가 그놈들에게 덮쳐졌었다. 그 가여운 마지막 모습…….

조금 전까지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진우의 가슴이 연민 때문에 혼란스러워진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쉽지 않다. 저 녀석은…… 차마 못 죽일 것 같다. 놈들이 차라리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시에 또 한 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 세 놈, 그 누구도 자신들의 오른쪽에서 가까워져 오는 좀비 무리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오로지 조금 전 쏴댔던 그 잡초 더미에만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모양이다.

‘……모르고 있나? 설마…… 이렇게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부쩍 가까운 곳까지 다가온 좀비들은 언덕의 아래쪽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다. 거리는 이제 불과 70미터 정도. 세 명의 추격대가 선 위치에서 우측 하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발견할 수 있는 각도다.

그런데 지금 이 세 놈은 잔뜩 자세를 낮춘 채 전진하고 있으니 아래쪽이 더 잘 안 보일 것이다. 이대로라면 좀비들은 셋의 뒤를 치게 된다.

‘미치겠군. 저 얼굴이 좀비에 물려 죽는 광경을 두 번이나 보기는 싫은데……. 이쯤 다가왔으면 알아채라, 좀!’

진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세 놈의 신경은 무뎠고, 이후로 10초 이상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면서도 반드시 보아야 할 우측 후방만은 무시하였다.

진우로서는 보기 영 갑갑하고 기분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이쪽에서 먼저 위치를 드러내 가며 ‘거기, 좀비 조심해!’라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저 띨띨한 놈들이 깜짝 놀라 진우를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부어 댈 테니까. 그래서 결국 좀비들의 아주 공개적이면서도 느린 습격은 성공을 거뒀다.

그롸아아아!

세 병사보다 먼저 상대방의 존재를 알아챈 좀비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언덕을 뛰어오른다.

아직도 거리는 꽤 되니까 침착하게 대응하기만 하면 제압하는 데 문제는 없다. 물론 침착하게만 대응하면……. 그러나 세 녀석은 다 침착하지 않았다.

“으아아아!”

세 사람 모두 비명과 함께 뒷걸음질을 치면서 총구를 돌려 사격을 개시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개인화기로 무장한 패잔병을 뒤쫓고 있었다는 걸 새까맣게 잊기라도 한 듯 요란스럽고 부주의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명중률도 정말 형편없다. 가만히 서서 조준을 해 가며 쏜다면 충분히 다 잡고도 남을 만큼 여유가 있는데, 울퉁불퉁한 산길을 뒷걸음질 쳐가며 쏴 대는 바람에 정확도가 확 떨어졌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둑― 투두둑―

계속 3점사를 퍼부어 대는데도 어찌 된 게 여섯 마리 중에 네 마리나 언덕을 다 기어 올라와 버렸다. 그중 세 마리는 총알에 단 한 발도 스치지 않아 멀끔하다.

그롸아악―

좀비들은 포효와 함께 군인들을 덮쳤다. 세 병사는 필사적으로 재장전을 하고, 또 총알을 퍼부어 댔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파바박, 어깨와 팔을 맞은 좀비가 뒤로 쿵, 밀려났다가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동안, 세 마리가 덮쳐든다.

투투둑, 한 마리가 다시 골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두 마리의 속도는 줄지 않았고, 나머지 두 마리도 온전하게 처리한 게 아니었다.

전세는 완전히 병사들의 열세로 기울었다.

피잉― 피잉―

빗나간 총알이 좀비 뒤쪽의 나무에 생채기를 낸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병사들의 손과 그들이 들고 있는 총구는 격하게 떨렸다.

밀린다. 언덕의 경사로를 뛰어 올라오는 동안에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으니 빠른 속도로 평지를 달려오는 놈들에게 밀리는 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으으…… 으으으…… 하아…….”

병사들의 긴장된 숨소리가 멀리 숨어 있는 진우에게까지 고스란히 들릴 만큼 커졌다. 당연히 행동에도 실수가 따랐다.

턱, 뒷걸음질을 치다가 나무뿌리에 걸린 가운데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벌렁 넘어간다. 좀비들은 녀석의 몸 위로 덮쳐들었다.

“아아악! 끄윽!”

좀비는 총신을 잡은 병사의 왼팔을 꽉 깨물고 좌우로 마구 흔들어 댔다. 녀석에게 어깨를 잃은 좀비도 뒤늦게 합류해서 첫 번째 희생자의 다리를 물어뜯는다.

끄아아―

비명을 내지르던 병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둑.

정확하게 겨냥되지 않은 총알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세 번째 좀비가 달려와 녀석의 오른 손가락들을 와자작 씹자 총소리는 이내 멎어버렸다.

까끄작― 꽈드득―

꿀럭― 꿀쩍―

찌이익―

솟아오르는 붉은 피와 함께 기분 나쁜 씹는 소리가 숲속에 울린다.

“오 상병님!”

강 일병 클론이 울먹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의 왼편에 서 있던 세 번째 병사는 이미 응전을 포기하고 봉우리 쪽으로 뒤돌아 저 멀리 달아나는 중이다.

그으으으, 네 번째 좀비가, 그러니까 골반에 총알을 맞아 엉망으로 부서진 네 번째 좀비가 덜렁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앞으로 몸을 굽힌 채 세 발로 강 일병 클론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중심이 맞지 않아 계속 몸이 흔들리는 기묘한 자세다.

“어어어―! 으어어!”

혼자 남은 강 일병 클론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방아쇠를 당기고 뒷걸음질을 친다.

하지만 골반 날아간 좀비의 그 기묘한 들썩거림은 자연스러운 회피 동작이 되어 가뜩이나 부정확한 총알들을 모두 흘려 버렸다.

단 한 발만이 놈의 쇄골과 어깨 사이를 맞췄다. 좀비가 푹 앞으로 고꾸라진다. 이제 녀석은 두 발만으로 내달려야 할 것이다.

타타탕―

세 발을 더 쏘자 탄창이 바닥났다. 강 일병 클론은 ‘으아! 아!’ 탄성을 질러가며 달아나다가 탄창을 빼고 전술 조끼에 손을 뻗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빈 탄창이 무슨 중요한 물건인 듯 왼손 끝에 꼭 쥐고 있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새다.

꽈그작― 꽈드득― 꿀쩍― 우드득―

이쪽에서 난리가 나거나 말거나 세 마리의 좀비는 여전히 오 상병의 몸을 한 부분씩 차지한 채 성찬을 즐기고 있다.

두 팔과 다리가 피투성이로 변한 첫 번째 희생자는 거의 의식을 잃은 채 이따금씩 경련을 하는 것으로 아직 실낱같은 숨이 붙어 있다는 걸 알려 주었다.

그르르르―

계속 허물어지던 네 번째 좀비가 겨우 두 발로 중심을 잡고 일어서려 한다.

그사이 뒤늦게 깨닫고 빈 탄창을 바닥에 버린 강 일병 클론은 새 탄창을 장착하려다가 뜨거운 총열에 손을 댔는지 화들짝 놀랐다. 그러는 바람에 탄창은 잡초 더미 사이로 떨어졌다.

급하니까 일단은 다시 새로운 탄창을 뽑아 쓰고 일을 다 처리하고 난 다음 떨어뜨린 걸 주우면 될 텐데, 클론은 그 반대로 행동했다.

놈은 당황해하는 얼굴로 허리를 굽힌 채 풀숲 사이에서 탄창을 집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롸아아아―

좀비가 그런 걸 봐줄 리가 없다.

겨우 팔 하나와 다리 하나로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된 네 번째 좀비가, 쓸 수 없게 된 팔다리 대신 대각선 방향으로 붙은 한쪽 팔과 다리를 기묘하게 질질 끌고 강 일병 클론에게 다가간다.

으어어! 탄성을 내지르며 겨우 탄창을 집어 올린 클론은 또 그걸 제대로 끼우지 못하고 떨어뜨렸다.

쫓아오는 놈이 워낙 느리니까 그깟 탄창 하나 포기해 버리고 틈이 있을 때 도망가 버리면 될 텐데, 그 정도도 생각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러다가는 이제 정말 죽을 일만 남았다.

그 꼴을 더 이상 못 봐 주겠어서 진우가 끼어들었다. 진우는 풀숲 사이로 겨냥하고 있던 총구를 좀비의 머리통에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퍼억―

뒤뚱거리며 기어오던 좀비의 머리통이 터지면서 뒤로 확 젖혀진다.

어! 강 일병 클론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사이, 진우는 벌떡 몸을 일으켜 놈에게 뛰어갔다.

그러고는 아직도 탄창을 장착하지 못한 강 일병 클론의 뒤축을 걸어 바닥에 넘어뜨려 버렸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던 클론은 맥없이 나뒹군다.

좀비에 이어 이번에는 자신이 쫓던 패잔병까지. 예상치 못했던 진우의 등장에 안경 너머 클론의 눈은 더욱더 큰 공포에 빠졌다.

진우는 놈의 총을 밟아 뒤쪽으로 밀어 치워 버리고 총구를 강 일병 클론의 턱에 바짝 겨눴다.

“덤빌 생각 마. 네가 뭘 하든 내 손가락이 더 빨라.”

강 일병 클론은 땀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꽈드득, 우드득.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아직도 좀비들이 식사에 여념에 없다. 클론의 눈동자가 그쪽으로 돌아간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자마자 녀석이 옹알이하듯 웅얼거렸다.

“조…… 좀비가…….”

클론이 떨리는 손으로 좀비 세 마리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걸 무시하고 진우는 자기 할 일을 했다.

“탄창 다 빼. 천천히! 천천히 빼서 내 발밑에 던져.”

명령이 떨어지자 강 일병 클론은 더듬거리며 탄창들을 빼내 진우가 시키는 대로 던졌다.

툭, 툭.

녀석의 전술 조끼에는 세 개의 탄창이 남아 있었다. 강 일병 클론이 탄창을 다 빼내자 진우는 녀석에게 다시 명령했다.

“엎드려. 머리에 깍지 껴. 두 다리 벌리고.”

꽈드득, 꿀럭, 쩝쩝.

살과 뼈를 씹고 삼키는, 게걸스러운 소리.

“끄으으으.”

희생자의 마지막 단말마.

강 일병 클론은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한 번 더 애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흐으으~ 조, 좀비가…….”

때마침 씹어 삼키는 소리가 뚝 끊어졌다. 희생자가 죽어버린 것이다. 세 마리의 좀비는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피가 잔뜩 묻은 얼굴을 들고 진우와 클론을 돌아보았다.

그르르르.

놈들의 시뻘건 주둥이가 벌어지며 낮게 그렁거리는 울림이 터져 나왔다. 녀석들이 진우를 향해 뛰어들기 위해 일어섰다.

탕― 탕― 타, 타앙―

진우는 한 걸음 물러나며 빠르게 네 발을 발사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시 총구를 클론 쪽으로 돌렸다.

풀썩. 세 마리의 좀비가 풀숲 위에 쓰러져 뒹군다. 네 발째 총알은 좀비에게 물려 죽은 병사의 미간을 관통했다. 클론은 순식간에 머리가 꿰뚫린 좀비들의 시체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강 일병 클론의 얼이 빠져 있는 동안, 진우는 놈이 던진 탄창 세 개와 아까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한 탄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진우가 놈의 얼굴이 보이는 쪽으로 돌아가서 물었다.

“너, 나 알아?”

클론은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젓는다.

당연히 모르겠지. 서로 부대가 완전히 다른 졸병들끼리 알 일이 있나.

진우는 놈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탄창을 전술 조끼에 끼워 넣으면서 다시 물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놈인데 왜 이렇게 목숨 걸고 맨 앞에서 쫓아와?”

“전원 섬멸이 목표니까…… 반드시…… 잡으라고 해서…….”

클론이 시선을 바닥에 떨군 채 힘없이 말했다.

후우~ 진우는 한숨을 쉬며 나무 옆으로 고개를 빼서 봉우리 쪽을 돌아봤다. 새로 들어서는 병사의 모습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진우는 좀비에게 물려 죽은 병사 쪽으로 걸어가서 그의 예비 탄창 세 개도 챙겼다. 제자리로 되돌아온 진우는 무릎을 굽혀 클론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댄 후 말했다.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일이면 그냥 하는 척만 해도 돼. 몸을 좀 사리라고. 알겠어?”

강 일병 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는 녀석의 얼굴로 왼손을 뻗었다. 진우의 손이 다가오자 놈은 눈을 꾹 감고 진저리를 친다.

무슨 해코지라도 당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진우는 그의 코끝까지 흘러 내려와 있는 안경을 톡 쳐서 제자리로 올려 주며 경고했다.

“또 마주치면 죽일 거야. 농담 아니니까 잘 생각해서 결정해. 숨어 있든가, 따라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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