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5. 서바이벌의 숲 (3) (235/449)


235. 서바이벌의 숲 (3)
2022.04.23.


추격대들은 진우의 예상보다 조금 페이스가 빨랐다.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저렇게 아무 고민 없이 곧바로 비탈을 뛰어 내려올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저 위 능선에서는 이 아래 나무숲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좀비들의 움직임이나 대강의 규모가 빤히 다 보였을 거다.

자신이 봤던 걸 저놈들만 보지 못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럼 좀 망설이기라도 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이 병사들의 지휘관은 자기 새끼들에게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라고 명령했다.

‘무조건 잡아! 반드시 죽여!’라는 명령을 받은 걸까? 대체 내가 뭐라고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대가리가 조금이라도 도는 놈들이라면 패잔병 하나를 잡자고 병사들을 여기까지 내려보낼 이유가 없다.

이 숲은 좀비라는 이동형 지뢰가 잔뜩 깔린 지뢰밭이다. 정말 위험한 사지다. 진우에게도, 그의 뒤를 쫓고 있는 저 추적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위험하다.

어쨌든 진우로서는 추적자들의 병력이 둘로 갈린 게 그리 나쁠 것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마 저 비탈 위에도 슬슬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엄호사격을 하고 있는 놈들도 언제까지나 무작정 도망자의 꽁무니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럭을 폭파시키고 불을 낸 덕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좀비들이 하나둘씩 이 주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타타탕― 탕― 탕―

아래로 내려온 추격대 놈들은 아무렇게나 총을 쏴 댔다.

피이잉― 피피잉―

탄두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이 먼 거리에서 이렇게 나무들이 울창한데, 대체 뭘 보고 저렇게 쏘는 걸까 싶을 정도의 난사였다.

근처 나뭇가지에 달린 초록색 이파리들이 모두 멀쩡하게 붙어 있는 걸로 보아 당장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등이 서늘하다. 뒤를 한 번 흘끗 돌아본 뒤, 진우는 계속 나무 사이사이를 누비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몇 개의 구릉을 지나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다. 그것과 비례해서 시야는 좁아지고, 어디에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위험은 늘어난다.

이름도 모를 자잘한 나무들과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이 여름의 햇살을 받고 제멋대로 쑥쑥 자라서 가슴 높이까지 올라와 있다.

덕분에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어떤 지점에서는 바로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진우의 팔은 가시나무에 긁힌 생채기로 가득해졌다.

진우는 머릿속으로 그려 놓았던 루트를 따라가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계획은 계획일 뿐, 막상 내려와 직접 두 발로 달리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들이 많다.

다 비슷비슷한 나무와 바위들이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한다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고, 좀비들의 이동 속도도 그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특히 발목에 착착 휘감겨 오는 잡초들 때문에 죽을 맛이다.

그롸아아악― 그와아아―

사방에서 좀비들의 포효가 울린다. 간만에 사람들이 잔뜩 찾아와 준 덕에 좀비들도 꽤나 흥분해서 속도를 높여 뛰고 있다. 지금은 놈들이 마음껏 활개를 쳐줘야 진우의 부담도 좀 줄어든다.

확실히 추격대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비탈을 내려온 바로 그 순간부터 병사들에게는 모든 것이 미지와 위협으로 변했다. 더 이상 전체적인 판세 조망 같은 건 못 한다.

나무와 덤불, 바위와 언덕이 시야를 가리는 이 상황에서 전후좌우를 파악하는 것만도 꽤 벅찬 일이다. 반면, 소리는 사방에서 증폭되어 더 크고 가깝게 느껴진다. 당연히 공포심이 들고 주춤거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머뭇거리는 동안 진우는 엄폐물이 없는 구간을 지나며 거리를 벌렸다.

핑― 총알이 근처의 땅을 때리는 것과 동시에 타아앙! 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그 저격수 놈이 멀리에서 쏜 거다. 확실히 그 새끼가 제일 위험하다. 모습을 감춘 채 보병들만 앞세워서 토끼몰이를 하는 새끼.

진우는 얼어붙으려는 두 다리를 억지로 채찍질해 가며 지그재그로 내달렸다. ‘어디,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진우에게는 뚜렷한 목표 지점이 있었다. 왼쪽에 높게 튀어나온 바위 봉우리. 비탈 아래로 뛰어내리기 전부터 눈여겨보고 목표로 삼았던 곳이다.

봉우리의 기묘한 모양과 크기, 각도 때문에 저 안쪽으로 꺾어 들어가 버리면 위쪽 비탈의 능선에서 아무리 위치를 바꿔 봐도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일단 저 봉우리의 그림자 안쪽까지만 무사히 가면 잘난 저격수께서도 무거운 엉덩이를 끌고 친히 이 아래로 왕림해 주셔야만 진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리로 놈이 내려와 준다면, 그래서 서로 평지에서 겨루는 거라면 진우도 싸워 볼 만하다.

그롸아아악―

수풀이 흔들리고 악취가 진동하더니, 나무들 사이에서 확 튀어나오는 두 마리의 좀비. 진우는 바위를 뛰어넘으며 놈들의 머리를 겨눴다.

탕― 탕―

한 마리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또 한 놈은 뒤의 나무에 머리를 박고 넘어져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지금 두 발, 아까 제압사격을 위해 3점사 세 번이 아홉 발, 좀비들 다섯 마리에 각각 한 발씩. 도합 열여섯 발을 썼다. 이제 남은 실탄 수는 총 50발. 이 탄창에는 열네 발이 채워져 있다.

투투둑― 끄아아악― 타타타타― 투투투둑―

뒤쪽에서도 요란한 비명과 총성이 뒤섞여, 누군가 좀비와 맞닥뜨렸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잠시 후에 다른 방향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총성이 났다.

가끔 저격수 놈의 총알 때문에 심장이 멈칫멈칫하지만, 그래도 진우는 자신이 세웠던 계획대로 잘 달렸다.
한 가지 문제는 그 역시 저 봉우리 건너편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죽어라 뛰었는데 혹시라도 낭떠러지라거나 나무가 없는 넓은 평원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암담해질 텐데.

스사삿― 사사삭―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푸른 잎과 새로 돋은 가지들이 얼굴을 때려 댔다.

“하아아~ 하아아~”

계속 내달리던 진우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잠시 속도를 늦췄다. 그러고는 역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세 그루의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이제 봉우리까지 그리 멀지 않다.

타타타― 으아악―

뒤쪽에서는 아직도 총성과 비명이 난무하고 있다. 추격대가 상당히 분산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격소총 특유의 그 발사음은 들려오지 않는다.

놈이 자기 아군을 위협하는 좀비들을 저격하는 데 관심을 좀 기울여 주면 그사이를 틈타 진우도 단번에 봉우리 너머까지 뛰어갈 수 있을 텐데, 그쪽으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나 보다. 어지간히 차가운 놈이다.

뒤쪽을 살피던 진우는 다시 그가 가야 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오니 봉우리가 가리고 있던 지역이 보인다.

다행히 절벽 따위가 아니라 나무가 울창한 숲이다. 그것도 꽤나 넓은 숲. 여기에서는 그 끝이 어디인지도 잘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하다. 울룩불룩 수십, 수백 개의 높고 낮은 언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저기까지만 가면…….

진우는 생각했다. 저기까지만 가면 이제 게임의 절반쯤은 이쪽이 가져오는 거라고.

그를 쫓아 내려왔던 게 일곱인지 아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병력들 중 상당수는 좀비에게 당했거나 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중이다.

그러니 저기까지 도달할 때쯤이면 놈들의 수는 얼마 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만신창이가 된 이후일 터였다. 그리고 저 봉우리의 그늘 뒤에 숨으면 그때부터는 저격수에 대한 걱정도 크게 덜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곧 그를 지켜주던 언덕과 숲이 끝나고, 그 뒤로 10미터가량은 큰 나무가 없다.

엄폐물로 삼을 만한 게 전혀 없이 그저 허리 높이로 돋아난 잡초들뿐이다. 잔뜩 도사리고 있는 저격수의 총구를 피해 저 구간을 무사히 주파하는 것이 관건이다.

진우는 나무에 기대 몸을 숨긴 채 비탈의 위쪽을 살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격수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제는 꽤나 멀어져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거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녀석은 조준경을 통해서 나를 쫓고 있겠지. 내가 이 나무 뒤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지…….

그건 꽤나 기분 나쁘고도 오싹한 이야기다.

가까운 나무까지 달려가 숨고, 또 그다음 나무까지 뛰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여름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하늘 높이까지 무성하게 돋아난 저 나뭇잎들이 시야를 가려 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저격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이제 곧 그게 없는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10미터. 뛰어서 가면 몇 초나 걸릴까?’

지금까지의 추격전을 통해 진우가 체득한 정보는 제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라도 방향과 높이를 바꿔가며 달리는 표적을 맞출 때는 실수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어느 특정 지점에 조준을 맞춰 두고 노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롸아아아―

언덕의 끝에 도착한 진우가 고민을 하는 사이, 덤불 틈새로 뛰어나오는 세 마리의 좀비. 진우는 얼른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첫 두 마리는 단번에 이마를 꿰뚫었지만, 세 번째 놈을 노린 총알은 조준으로부터 조금 벗어나 놈의 광대뼈만 날렸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홱 돌아간 좀비는 조금 비틀거리다가 이내 중심을 되찾고 달려들었다.

젠장, 진우는 다시 한 발을 쏘며 혀를 찼다. 실탄이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지만, 자신의 낡은 총…… 벌써 예전부터 한계까지 내몰렸던 총열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하긴 영문도 모른 채 헬기에 태워져 삼척으로 갔던 이래 지금까지 전부 합쳐 몇 발이나 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혹사시키긴 했다.

혹시 지금의 총소리가 아래로 내려온 추격대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킨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잠시 들었지만, 그건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사방에서 총소리가 바쁘게 울리고 있고, 그 메아리까지 더해진 상황이어서 소리로 방향을 특정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물며 바로 옆에서 좀비들이 ‘그롸아―’거리며 튀어나와 혼을 쪽 빼놓는 상황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진우는 다시 저격수와 자신, 그리고 저 10미터가량의 엄폐물 없는 구간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10미터. 아무리 잡초들이 많다고 해도 ‘하나, 둘…… 셋’을 헤아리기 전까지는 주파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2초, 더도 말고 딱 2초만 벌면 된다. 그러다 바닥에 뻗어 있는 좀비들의 시체로 눈길이 갔다.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아, 진짜 그건 하기 싫은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서 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해야 할 일이다. 역겨운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일단 테스트부터 해 보기로 했다.

진우는 잡초들 사이로 넣고 흔들어보기 위해 근처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집었다. 만약에 이게 날아가면 놈이 보고 있는 거다.

“아니지.”

나뭇가지를 집어넣으려던 진우가 손을 멈췄다. 혹시라도 내밀자마자 놈이 총을 쏴서 그게 이 나뭇가지에 맞기라도 하면 잡고 있는 자신의 손에도 엄청난 충격이 전해질 테니까.

그 방법은 별로다. 결국 편한 길은 안 되는 거다. 진우는 가장 가까이 있는 좀비의 시체로 다가가서 발목을 잡았다.

“으…….”

느낌이 이상하다. 예전에 중년 여자의 시체를 끌었을 때의 촉감과도 다르고, 살아 있는 좀비와 뒤엉켰을 때와도 또 다르다.

양말 아래 발목의 살이 뻣뻣하면서도 뭔가 물컹하다. 자칫 너무 힘을 줬다가는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어으, 진우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좀비의 시체를 잡아끌었다. 질질질, 박살 난 뒤통수가 흔들리고, 잡초 더미에 걸려 튕길 때마다 미쳐 빠져나오지 않은 뇌수가 찐득한 피와 섞여 흘러내린다.

“하아~ 하아~ 개새끼…… 넌 진짜…… 따라 내려오기만 하면 아주…….”

두 번째 좀비의 시체를 끌어오면서 진우는 계속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저격수에게로 돌렸다. 저 망할 놈 때문에 정말 별짓을 다 한다. 아주 돌아버릴 것 같다.

두 번째 좀비는 반바지 차림에 양말도 신고 있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신발 뒤꿈치를 잡았더니, 이내 휙 벗겨져 버린다.

진우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첫 번째 좀비의 허리띠를 풀어내 진물이 질질 흐르는 좀비의 발목을 묶어서 끌었다.

좀비 시체들을 근처로 끌어온 진우는 일단 확인부터 해보기로 했다.

끄응차, 축 늘어져 있는 시체들 중 더 가벼워 보이는 놈을 골라 바닥에 눕히고 엄폐물이 없는 공간의 수풀을 향해 이를 악물고 두 발로 쭉 밀었다.

바닥과의 마찰 때문에 단번에 밀리지 않고 위아래로 꿈틀대는 모양새가 되었고, 그게 더욱 그럴듯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좀비의 머리가 잡초 사이로 밀려 들어가고, 빽빽하게 자라난 풀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흔들린다고 느꼈을 때, 퍽! 좀비의 몸통을 관통한 총알이 잡초 더미들을 뿌리째 날려 올린다.

진우가 서 있는 나무로부터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번에도 총성은 총알보다 약간 늦게 도착했다.

“하아~ 하아~ 보고 있기는 했구나…….”

진우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두 가지가 확실해졌다. 하나, 놈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기다리는 중이다.

둘, 저놈의 총은 5.56㎜보다 훨씬 관통력이 뛰어난 총알을 쓴다. 7.62㎜일 거다. 그러니 좀비를 방패로 삼아 앞세우고 이동하는 건 안 된다.

혹시 이걸로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 줄까?

잠시 아주 조금 기대를 하던 진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 바보 같지는 않다. 놈도 나름 긴장해서 보고 있다가 얼결에 방아쇠를 당기긴 했지만, 아마 지금쯤은 엉뚱한 걸 잡았다고 깨달았으리라.

만약 저격수가 저 시체를 정말 나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쯤에는 확인 사살을 위한 한 발이 더 날아왔어야 한다. 자신이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좋아, 이제부터가 진짜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이바를 벗었다.

안쪽에 붙여뒀던 핑크 펀치의 사진을 떼어내서 접은 뒤 건빵 주머니 안에 넣은 진우는, 자신의 하이바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그걸 두 번째 좀비의 머리에 씌웠다.

터져서 두개골이 뭉개진 좀비의 머리에 자기 하이바를 씌운다는 게 뭔가 불길한 거 같기도 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놈과 이런 식으로 이별을 하자니 영 기분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다시 되돌아가서 좀비들과 추격대를 다 죽이고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야 한다.

46발의 총알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저격수의 눈을 피해가며 그 일을 다 수행하는 것보다는 하이바에게 안녕을 고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좀비의 턱에 하이바 끈을 고정시킨 진우는 근처의 풀을 잔뜩 잡아 꺾어서 놈의 웃옷과 등 사이에 꽂았다.

그롸아아아―

그렇게 바쁘고 중요한 일을 하는데 또 좀비 새끼들이 찾아왔다.

아, 정말 가지가지 한다.

진우는 저 멀리서 뛰어오는 두 마리의 좀비를 향해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좀비들이 풀숲 속으로 고꾸라지는 걸 확인한 진우는 다시 좀비에게 위장 작업을 했다.

“그래, 이만하면 절대 분간 못 한다.”

썩은 피부가 보이지 않도록 하이바 씌운 좀비의 온몸을 풀로 뒤덮고 나서 진우는 놈의 옆으로 가 허리끈을 잡았다.

끄응차, 진우는 안간힘을 쓰며 들어 올린 좀비를 수풀을 향해 쭉 밀어 넣었다.

하이바를 쓰고 위장을 한 좀비가 잡초 더미 위로 떨어질 때, 파아아앙― 이번에도 여지없이 총성이 울린다. 하이바가 뚫리고 좀비의 목이 반대 방향으로 완전히 꺾였다.

총알이 날아온 걸 확인하자마자 진우는 두 시 방향으로 내달렸다. 저격수가 보고 있는 조준경의 범위 밖이다. 아니, 범위 밖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방향이다.

파아아앙―

채 두 걸음을 떼기도 전에 한 번 더 총성이 울린다. 오금이 딱 달라붙을 것 같이 무서운 소리지만, 멈춰 서거나 속도를 죽이지 않고 계속 뛰었다.

놈이 확인 사살을 할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만큼 엄청나게 투자를 해서 만든 리얼한 미끼였으니까.

놈의 조준경이 좀비 시체에 가 있는 동안 약간의 거리를 벌리며 출발한 진우는 10미터 구간의 중간 지점을 돌파했다.

아마 지금쯤은 놈도 주변에 피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거다. 감적수가 있다면 목표가 저 위에서 뛰어간다고 일러 줬을 수도 있고.

진우는 허리를 앞으로 굽히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놈의 조준경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자신을 찾고 있는 광경이 상상된다.

하지만 거리는 600미터 이상 벌어져 있고, 놈의 시야는 좁은 조준경 안으로 제한되어 있다. 자존심이 상해서 꽤나 흥분해 있을 테니, 살짝만 방향을 틀어도 보이는 경치가 확확 달라질 거다.

기계라면 모를까, 1초 내에 표적을 다시 찾아내서 방아쇠까지 당길 수는 없다. 제발…… 없어야 한다! 으아아!

진우는 나머지 절반의 구간을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끌어다 쓰며 달렸다.

파아앙, 파앙, 파앙!

저격수도 어지간히 다급한지, 계속 난사해 대고 있다.

저 개새끼 총은 정확도도 높으면서 연발도 되나 보다!

1초가 이렇게 긴 시간인 줄은 몰랐다. 봉우리의 흰 화강암 재질이 눈에 들어왔을 때, 진우는 최대한 낮고 빠르게 슬라이딩을 했다. 지금쯤은 저격수가 자신의 위치를 찾아냈을 것 같아서였다.

촤아아아―

날카로운 풀들이 얼굴을 스치면서 베어 대지만, 그 느낌조차 좋고 반가웠다.

파아앙!

놈이 마지막으로 쏜 총알은 봉우리의 돌을 깨부쉈다.

딱 진우의 명치 높이 되는 지점이 팍 뜯겨 나가며 자잘한 돌 부스러기가 잔뜩 쏟아져 내린다. 사각 안으로 들어온 진우는 돌 부스러기를 뒤집어쓴 채 얼른 다리부터 배 쪽으로 끌어당겼다.

“하아아~ 하아아~”

진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위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구릉과 숲뿐, 비탈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저격수 놈의 총도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수 없다.

하아아~ 살았다…….

기다시피 해서 숲의 안쪽으로 더 들어간 진우는 잠시 눈을 꾹 감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던 진우는 얕은 비탈에 쓰러져 있는 큰 나무를 발견하고 그 뒤에 몸을 숨겼다.

나무 표면에는 이끼가 잔뜩 돋아 있고, 주변은 온통 초록색으로 덮여 있다. 잡초의 키가 자신의 허리보다도 높이 자라서 완전하게 은폐가 가능할 듯싶다.

좋다. 여기서 기다려야겠다. 맨 앞의 저 봉우리 사이로 가장 처음 들어오는 놈, 딱 두 놈만 잡을 거다. 그런 후, 탄창과 총을 빼앗아서 이 자리를 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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