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서바이벌의 숲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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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서바이벌의 숲 (2)
2022.04.22.
휘익―
야구 배트처럼 돌아간 K―2의 개머리판이 놈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빠악!
머리통을 직격당한 좀비는 중심을 잃고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왼쪽 눈알도 어디론가 튀어나가 버렸다.
하지만 멀쩡히 살아 있다. 두세 바퀴를 구르던 좀비는 타격음의 메아리가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진우를 향해 또다시 쇄도했다. 진우도 다시 한 번 힘차게 개머리판을 돌렸다.
빠악―
첫 타격 때보다 더 큰 소리가 났다. 제대로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좀비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젠장, 역시 무게가 문제인 건가…….
진우는 K―2의 개머리판을 내려다봤다. 이건 애초에 사람의 두개골을 부수기 위한 용도로 만든 물건이 아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눈앞의 좀비보다 큰 소리가 나는 것이 더 무섭다.
한 번씩 총으로 후려칠 때마다 진우는 깜짝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게 된다.
혹시 그 소리가 도로 위에 있던 놈들에게까지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몇백 미터나 떨어져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을 듯도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롸아아악―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자기만 바라보라는 듯 넝마셔츠 좀비가 크게 포효한다.
두 번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동안 부러져 버린 놈의 오른쪽 팔꿈치는 이상한 각도로 돌아가 있다. 보기만 해도 아프다. 하지만 이놈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녀석은 오로지 단 하나, 바로 눈앞에 있는 진우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뭐, 진우도 놈에게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긴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더 세게 정통으로 맞아야 죽어주겠다는 거냐.
미묘하게 뒤뚱거리면서도 빠르게 달려드는 넝마셔츠 좀비를 향해 진우의 제3차 타격이 날아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서의 두 번과 양상이 조금 달랐다.
비탈길을 뛰어오르다 발을 헛디딘 좀비가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 덕에 진우가 휘두른 K―2 개머리판은 놈의 머리가 아닌 팔목을 때렸다.
우득, 팔목 뼈가 골절되는 소리가 났지만, 머리를 때렸을 때처럼 뒤로 날려 보내는 데는 실패했다.
엎어졌던 넝마셔츠 좀비가 네 발로 기며 진우의 다리를 노리고 달려든다. 한쪽 팔은 팔꿈치가 꺾였고, 또 다른 팔은 팔목이 부러져 있는데도 제법 빠른 속도로 뛰듯이 기어온다.
“으앗!”
진우는 가벼운 비명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딱, 딱, 놈의 위아래 이빨이 맞부딪칠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익, 진우는 총구를 잡고 K―2를 골프채처럼 휘둘렀다.
덜컥.
넝마셔츠 좀비의 턱이 들리며 밖으로 삐져나와 있던 혀가 썽둥 잘려 나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녀석은 부러진 팔을 뻗어 진우의 전투화 끈 사이로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으드득, 손가락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진우의 발이 휙 끌린다. 엄청난 힘이었다. 진우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그 바람에 손에서 총을 놓쳤다.
털썩, 엉덩방아를 찧은 진우를 향해 턱이 부서진 좀비가 몸을 날린다.
그러는 동안 전투화 끈 사이에 낀 놈의 왼팔도 180도 이상 돌아가며 뼈가 부러져버렸다. 진우는 놈의 양쪽 어깨를 잡고 옆으로 비틀었다.
그롸아아―
놈이 성치 않은 두 팔을 미친 듯이 휘두른다. 조금 전, 전투화 끈 사이에 끼었다가 겨우 빠져나온 놈의 왼 손가락들은 고문이라도 당한 것처럼 엉망으로 꺾인 채다.
데굴― 데굴― 데굴―
서로 엉킨 진우와 좀비가 빙글빙글 돌며 비탈길을 함께 구른다. 한 번씩 아래 깔린 채 땅에 튕길 때마다 튀어나온 돌과 나무뿌리 따위가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진우는 눈앞의 좀비에게만 집중했고, 결국 마지막으로 멈춰 섰을 때, 놈의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와아아아―!
물론 마운트 포지션을 차지했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놈은 자기 팔이 꺾이고 부러져도 그 잘린 뼈의 튀어나온 단면으로 진우를 할퀴어 보려 애쓰는 놈이니까. 힘은 또 어찌나 센지 허리를 한 번씩 챌 때마다 몸이 휘청거린다.
진우는 무릎을 꿇은 채 두 다리로 놈의 팔을 봉인하고 하이바를 쓴 머리로 놈의 아가리에 박치기를 한 후, 그대로 꽉 눌렀다.
변형된 원산폭격 자세여서 영 꼴사나워 보일 테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거기에 더해 두 팔이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으드득, 우두둑, 놈의 이빨이 안으로 꺾여 들어가고, 이미 덜렁거리던 아래턱도 더 벌어진다. 그러나…… 그러나 이 정도로는 놈이 죽지 않는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진우는 목에 힘을 꽉 주고 버티면서 좌우로 눈동자를 돌려 필사적으로 쓸 만한 물건을 찾았다.
돌, 바위…… 묵직하고 단단한 것. 이 끔찍한 입 냄새를 뿜어내는 좀비 놈의 머리통을 완전히, 그리고 단번에 박살 낼 수 있을 만한 무기.
‘저건…….’
몇 개의 자잘한 자갈 사이에 긴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다. 꽤나 굵고 단단해 보인다. 그의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는 그게 그나마 가장 쓸 만한 도구다. 진우는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움켜쥐었다.
으그르르, 으그그, 위에서 꽉 누르던 진우의 힘이 조금 분산된 틈을 놓치지 않고 좀비는 발버둥을 쳐 댄다. 진우는 얼른 목에 체중을 옮겨 실으며 버텼다.
“하아아~ 하아아~”
으그르르~
서로의 입김이 고스란히 교차할 만큼 가깝고도 치열한 대치 상황. 그래도 진우는 나뭇가지를 손에 넣었다.
당구 큐대보다 좀 더 굵고 길이는 1미터 정도. 진우는 더 뾰족한 방향을 왼쪽에 오도록 잡았다. 그러고는 뒤로 휙― 허리를 젖혔다.
아가리를 꽉 누르고 있던 하이바가 사라지자 좀비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이빨을 드러냈다. 진우는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세워 힘껏 박아 넣었다.
콱!
좀비의 아가리에 나뭇가지가 꽂힌다.
와가각!
이빨과 잇몸, 반 토막 난 혀가 다 안쪽으로 꺾여 들어가고, 입가가 찢어져 옆으로 벌어졌다. 단번에 머리 뒤쪽까지 관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놈의 가장 크고 위협적인 무기가 완전히 봉인됐다.
익! 익! 진우는 나무 끝을 꽉 잡은 채 힘을 주어 누르고, 좀비는 몸을 계속 일으키려 든다. 둘이 힘을 합쳐 좀비 머리를 꿰뚫는 것이다.
“이야! 좀! 죽어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힘을 콱 주려 할 때, 진우는 좀비와 눈이 마주쳤다. 눈알이 빠져 뻥 뚫린 왼쪽 안구가, 그 검은 구멍이 원망하듯 진우를 노려본다.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섬뜩하다. 하지만 진우는 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누르고 있던 손끝에 무게를 실었다.
콰직―!
뼈가 부서지는 느낌, 그리고 그 너머의 뭔가 물컹한 것이 한 번에 뭉개지는 느낌이 손바닥에 전해진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좀비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이겼어…….
“후우우~”
좀비의 입에 박혀 있는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짚고 일어나며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확실히 육박전은 힘들다. 그래서 실탄이 간절한 거다.
어찌나 힘을 주며 누르고 버텼는지, 양쪽 정강이뼈가 다 멍이 든 것 같다. 이놈과 엉켜 굴러떨어질 때 작은 돌에 찍혔던 곳들도 뒤늦게 엄살을 부린다.
진우는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기다시피 비탈길을 올라가 총부터 집어 올렸다. K―2의 총신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다시 멜빵을 어깨에 걸었을 때, 진우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으아, 진짜…… 이런 식으로 할 거냐?”
건너편 비탈 아래, 조금 전 넝마셔츠 좀비가 서 있던 바로 그 위치 부근에 좀비들이 서 있다.
두 마리……. 이거, 육탄전으로 승산이 있을까? 벅차지 않을까? 하지만 총소리가 들리면 너무 위험해지는데…….
진우가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동안 또 한 놈이 나무 뒤에서 불쑥 머리를 내밀며 나온다. 세 마리. 그리고 또 두 놈이 수풀을 헤치고 돌아 나온다. 이제 전부 합쳐 다섯 마리다.
큭, 진우는 미친놈처럼 끅끅 웃었다.
이런 개새끼들……. 차라리 처음부터 이렇게 한 번에 몰려와 줬으면 조금 전 그 피 말리는 몸싸움을 하지 않았어도 되는 거였잖아.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뜬 진우는 곧바로 사격 자세를 취하며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그렇게 총소리를 원해? 그렇게 내가 잘되는 꼴은 못 보겠어?
가장 왼쪽에 서 있던 아줌마 좀비의 부스스한 파마머리가 둥근 가늠자 안에 들어오자마자 진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아앙―
고요한 산속을 온통 뒤흔드는 거대한 총소리. 그와 거의 동시에 파마머리 좀비의 목이 뒤로 휙 젖혀졌다. 나무 위에 앉아 쉬던 새들이 퍼드득거리며 날아오른다.
끄롸아아아아―
네 마리가 한꺼번에 뛰어 올라온다.
칫, 진우는 한쪽 입술을 찡그리며 웃었다.
이것들아, 너희가 무서워서 오지 말라고 빌었던 게 아니야. 저 뒤 도로에 더 무서운 새끼들이 있으니까 그게 신경 쓰였던 거지.
진우는 시계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한 놈에 한 방씩 정확하게 머리를 꿰뚫었다.
타앙― 타앙― 타앙― 타아아아앙―
뇌수가 터져 나온 네 마리의 좀비가 나무 그늘 아래 자빠져 버렸고, 진우는 분하다는 눈빛으로 도로 방향으로 이어진 산길을 돌아보았다.
타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아직도 메아리는 계속 울려 대고 있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듣고 싶지 않은 놈들이라도 들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이제는 신경이 쓰여서라도 분명 쫓아오겠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을 테니까.
‘아우, 젠장! 내 총알! 피 같은 내 총알!’
도로의 반대편 산 쪽으로 내달리면서 진우는 마음속으로 악을 썼다. 분한 마음을 도저히 지워낼 수가 없다.
씨발, 트럭이 불타고 사방에 총알이 박히는 그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도망 왔는데!
사방이 깜깜해진 달밤에 피 흘리고 누워 있는 100구의 시체 사이로 기어 다니며 손으로 더듬어 탄창을 빼낼 각오도 다 했는데!
그런데 저 좀비 새끼들 몇 마리가 기웃거리는 바람에 모든 게 다 허사가 됐다.
내 총알! 정말 욕심 안 부리고 탄창 100개만 챙겨 가려고 했는데!
피잉―
소름 끼치는 소리. 총성이 울린다. 진우는 자세를 바짝 낮췄다. 바로 곁의 나무껍질이 움푹 파여 날아간다.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지금 막 산 위로 기어 올라온 군인들이 새우깡만 하게 보인다. 애초에 300미터 정도만 물러나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진우는 나무 사이사이를 헤집으면서 지그재그로 내달렸다. 이렇게 해야 저격하는 놈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게 대체 어디서 누가 한 말이지? 지금처럼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도 따를 만큼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가?
아까 보았던 그 인원 그대로라면 추격해 오는 상대는 약 열댓 명. 좀비라면 우스운 수겠지만, 쟤들도 다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니 혼자서 그들 전부와 맞서 싸운다는 건 정말 무리한 일이다. 아까 저놈들처럼 매복이라도 하고 있는 거라면 또 모를까.
열댓 명 중에서도 진우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건 아까 보았던 두 명의 특수부대원 중 긴 총을 메고 있던 쪽이다.
그 새끼, 분명 총에 엄청난 광학 장비들을 덕지덕지 달아놨을 것이다. 총 자체도 비싼 외제 고급 저격총일 테지. 지금 나무에 박힌 이 한 발 역시 놈이 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타앙― 타앙―
또 총소리. 진우가 바위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던 순간이다.
팍, 놈이 쏜 총알은 근처의 다른 나무를 스치고 지나갔다. 패턴을 읽히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진우는 왼쪽, 오른쪽으로 미친 듯이 돌며 방향을 트는 주기를 계속 바꿨다.
문제는 그렇게 지그재그로 내달리다 보니 속도가 안 나온다는 거였다.
쫓아오는 놈들은 직선으로 달려오고, 자신은 좌로 갔다 우로 갔다 하면서 도망간다. 당연히 시간이 갈수록 양쪽의 간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응사격을 해서 쫓아오는 속도를 늦추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단 한 번 발이 묶이면 저 뒤 어딘가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을 저격수에게 기회를 주는 꼴이 된다.
미친놈처럼 나무 사이를 헤치고 이리저리 내달리던 진우에게 기회가 왔다. 꽤나 큰 경사의 내리막길이 나타난 것이다. 평지가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 나무 뒤에 뛰어든 진우는 아래쪽을 굽어봤다.
30미터 이상의 길고 가파른 비탈, 그리고 그 너머에는 나무로 빽빽하게 뒤덮인 나지막한 언덕들이 몇 개나 이어지고 있다.
거기까지는 일반적인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다만, 멀리 우거진 수풀 사이로 뭔가 다른 것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좀비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전부 합쳐야 규모 삼도 안 된다. 하지만 놈들은 하나의 무리를 이루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흩어져 돌아다니는 중이다.
그래서 저 아래로 내려가면 안전한 루트라는 게 딱히 없다. 그리고 저 언덕들을 넘어가면 대체 뭐가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도 하다.
타타탕― 탕― 탕―
추격해 오는 놈들의 K―2 소리가 등 뒤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물론 아직은 거리가 있으니 저건 별로 무섭지 않다. 근처를 때리는 총알도 없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 번 브레이크를 걸어 줄 필요는 있을 성싶다. 진우는 총구만 밖으로 내밀고 좌우로 돌리며 세 번 3점사를 날렸다.
투투둑― 투투둑― 투투투―
진우가 두 번째로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온다.
피이잉― 피이잉―
그리고 그가 몸을 숨긴 나무의 귀퉁이가 팍 떨어져 나간다. 어찌나 가까웠는지, K―2의 총열에 놈이 날린 나무 파편이 튀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저격수 놈은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죽어라 자신의 얼굴만을 쫓고 있는 거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이 나무 밖으로 벗어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좌인지, 우인지 고민하고 있나? 미안하지만, 난 옆으로 안 가. 뒤쪽으로 미끄러질 거야.
진우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비탈길 아래로 몸을 날렸다.
촤아아아아―
아무리 흙과 풀로 덮인 부드러운 산길이라고 해도,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안의 마찰로 등과 엉덩이에 불이 나는 것 같다.
진우는 필사적으로 전투화 바닥을 끌며 속도와 방향을 조절했다. 몸이 좀 아프기는 해도 저격수 놈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이 내리막길로 사라져 버린 걸 저격수가 안다고 해도 놈이 있던 곳에서 여기까지 뛰어오려면 또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진우에게는 그 몇십 초가 필요했다.
쿵!
비탈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된 지점에 도착해 내동댕이쳐진 진우는 꼬리뼈를 문지르며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슬슬 어지럽고 목이 탄다.
아침에 자전거를 빼앗기고 뺨을 존나 맞았던 그때 이래, 수분이라고는 전혀 섭취하지를 못한 채 땀만 계속 흘렸다. 눈이 따끔거린다.
탁탁탁, 위에서 보아두었던 루트를 따라 나무 사이로 뛰었다. 벅찬 오르막의 정점에서 점프를 해 그다음 언덕의 중간 지점까지, 또 도움닫기를 한 후 점프를 하고…….
그렇게 죽어라 뛰고 있을 때, 오른쪽 저 멀리서 자신과 거의 나란히 달려오는 좀비를 보았다.
휙― 휙― 좀비의 방향이 슬쩍 사선으로 바뀐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놈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진다.
진우는 속도를 늦추고 놈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그러고는 격하게 뛰는 가슴의 움직임에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탕!
좀비의 왼쪽 귀와 눈, 그리고 뇌의 일부가 사라져 버렸다. 좀비는 달려오던 관성을 못 이기고 앞으로 고꾸라져진 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저기다! 저기!”
비탈 위쪽에 도착한 추격대 놈들이 아래 언덕에 있는 진우의 모습을 찾아내고 고함을 친다. 곧바로 정신없이 총소리가 이어졌다.
타타타타― 타타타타― 투투둑― 투투둑― 탕― 탕―
진우는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며 몸을 숨겼다. 근처를 때리는 총알은 없다. 워낙 거리도 있고, 각도상으로도 사각이니까.
발사하는 쪽에서도 얼마 지나지않아 그런 사실을 깨달았는지, 총성이 잠시 멎었다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는 한결 단조로운 소리로 바뀌었다.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
몇 놈만 제압사격을 하는 꼴을 보니, 아마 지금쯤 몇 명인가는 비탈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럼 이쪽도 슬슬 움직여 줘야 할 타이밍이다. 그 신경 쓰이는 저격수도 잠시 후면 도착해서 다시 자리를 잡을 테니까 그전에 멀어질 수 있는 만큼 멀어져 둬야 한다.
언덕에 몸을 숨긴 채 횡으로 이동하던 진우는 슬쩍 고개를 들어 비탈길 쪽을 돌아봤다.
추우우욱― 촤촤촥―
가파른 언덕을 뛰어 내려오느라 병사들은 다들 애를 먹는 중이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집요함이었다.
훗, 다시 달리기 시작한 진우는 코웃음을 쳤다.
오고 싶으면 와 봐. 근데 조심해라. 여기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