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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혼돈 (7) (232/449)


232. 혼돈 (7)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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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창 한 개분의 실탄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진우는 두 시체의 전술 조끼에 손을 뻗어 예비 탄창들을 빼냈다.

퍼억! 퍼억!

시체의 다리와 몸통에는 계속해서 총알이 박히고, 그럴 때마다 크게 흔들리며 총상 부위에서는 붉은 피가 주르르 흐른다.

윽! 총알이 빗발쳐 날아오는 동안 진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다렸다. 침착해야 한다. 어차피 저놈들을 금방 다 못 죽인다. 그러니까 서두르면 안 된다.

타타타타타― 타타타타―

진우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끌어내려는 듯 총성은 쉬지 않고 울리고, 바로 코앞의 땅이 움푹움푹 팼다. 박살 난 뒤쪽의 바위에서 돌가루와 먼지가 쏟아져 내린다. K―3가 긁고 있는 모양이다.

타타타타― 타타타타―

“끄아아악!”

진우의 옆에 납작 엎드려 있던 병사가 허리를 직격당해 비명을 내지른다.

그의 척추에서 뼛조각과 살덩어리, 내장과 신경이 엉망으로 뒤섞여 튀어나왔다. 치치칫, 탄산수 캔이 터진 것처럼 피가 솟는다.

끄으으~ 아직 죽지도 못한 병사의 얼굴과 팔다리에 또다시 총알이 꽂혔다.

젠장, 젠장…….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몸을 숨기고 있는 이곳, 영 좋은 자리가 아니다. 엄폐물이 너무 없고, 시야가 탁 트여서 상대방이 조준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으아악―!

또 다른 희생자의 단말마가 뜨거운 피와 함께 터져 나온다. 비명이 빗발친다. 이미 총에 맞은 병사, 막 총에 맞은 병사, 그리고 총에 맞을까 봐 겁을 먹은 병사까지…… 다들 울부짖고 있다.

하긴 이 상황에서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병사들은 열심히 방아쇠를 당겨 댔다.

투투투―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

겨우 양각대를 펴고 사격 준비를 마친 이쪽의 K―3들이 불을 뿜었다. 빨간 불꽃처럼 빛나는 실탄이 좌측 산의 중턱을 향해 어지럽게 날아간다. 이제야 좀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K―3의 등장 이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싶었을 때, 진우는 다시 총구를 들어 적진을…… 누구인지도 모르는 적진을 겨눴다.

둥근 가늠자에 적병의 윤곽이 들어온다.

투투둑―

낡은 총의 정확도를 장담할 수가 없어서 진우는 세 발을 잇달아 날렸다.

파악!

놈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그리고 또 바로 옆의 놈…….

진우는 세 놈을 더 쓰러뜨리고 난 후,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이만큼 난리를 쳐 놨으니 적들의 관심도 이쪽으로 쏠릴 것이다. 이 자리를 떠야 한다.

진우는 허리를 숙인 채로 트럭 뒤쪽을 향해 뛰었다.

핑― 피빙―

총알이 바로 근처를 스치고 지나가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마침내 트럭 근처까지 도달한 진우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팅, 트럭의 짐받이를 총알이 때리며 불꽃이 인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

대여섯 정의 K―3가 지원사격을 하기 시작한 이후, 이쪽의 병사들은 그나마 조금 기를 펴고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수백 발이 순식간에 산 중턱을 어지럽히고 나면 저쪽의 사격이 주춤해지고, 이쪽의 병사들이 고개를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중대 단위의 병력. 그리 쉽게 궤멸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병사들이 자동차 뒤에 몸을 숨긴 채 열심히 응사를 하고는 있지만, 정확도나 명중 비율은 확연히 떨어졌다. 좌측 산까지는 거리가 꽤 돼서 눈 나쁜 사람은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오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쪽은 이 도로라는 하나의 선을 목표로 하는 반면, 이쪽은 저 산 어딘가라는 커다란 면적을 상대하고 있다. 시작부터 불공평한 싸움이다. 게다가 이쪽의 유일한 엄폐물이라고는 트럭뿐이다.

“하아아~ 후우우~”

진우는 숨을 헐떡이면서 탄창들을 전술 조끼에 채워 넣고, 다시 싸울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왜 여기에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

방아쇠를 당길 때, 그는 분명히 보았다. 좌측 산속에 매복하고 있던 저 병력도 국군이다. 무슨…… 북한군이나 외국의 군대 같은 게 아니다.

그러니까 저 도로 위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피투성이 시체들을 만든 것도 국군, 저쪽 산속 어딘가에 엎어져 있을 시체를 만든 것도 국군이다.

그리고 아까 장교들의 대화에서 엿들었던 것처럼, 이 싸움은 우발적인 사고 같은 게 아니라 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계획적인 전쟁인 것이다.

국군들끼리 서로를 제압하고 죽일 계획을 세웠다고? 씨발,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짓이야? 힘을 합쳐 좀비를 잡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진우는 울상을 지었다.

팅, 티딩― 피잉!

값싼 연민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말하는 것처럼 총알이 날아와서 트럭을 때린다.

푸슈슛―

터져 버린 타이어에서는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다.

병사들은 트럭에 몸을 숨긴 채 팔만 내밀어 대응사격을 하는 중이다. 운이 정말 좋지 않고서야, 보지도 않고 쏘는 저런 총알이 맞아 줄 리 만무하다.

다들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조금 전까지 포로였던 진우가 무장한 채 자신들 사이에 섞여 있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진우는 혹시 달아날 곳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돌아봤다.

바로 지근거리에 있는 우측의 산은 가깝기는 한데, 도로와 인접한 20여 미터 구간에 나무가 너무 적어 몸을 숨기며 올라가기가 어려워 보인다.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어떻게든 저 민둥산 구간을 무사히 돌파하여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시간을.

“중앙이야! 중앙을 겨눠!”

지휘관들은 트럭 뒤에 바짝 달라붙어 움직이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뭐라고 되도 않는 지시를 해 대고 있다.

그때마다 K―3의 조준점이 이동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건 없다. 애초부터 제대로 직시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느낌을 바탕으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뿐이다.

전술은 한심하고 지형은 불리한 데다 병력도 전투에 숙련되어 있지 않지만, K―3의 수가 저쪽보다 이쪽이 더 많은 덕에 그래도 근근이 버텨 낸다.

이만하면 전멸은 아니겠다 싶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돌파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얕은 희망이 고개를 들었을 때, 좌측 산 쪽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왔다.

텅텅텅텅텅― 텅텅텅― 텅텅텅텅텅―

물론 이번에도 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실탄이 먼저 날아와 박혔다.

콰콰콰쾅! 콰쾅!

40㎜ 고폭탄이다. 탄두가 박히는 소리 자체가 다르다. 콘크리트가 박살 나서 사방으로 파편이 튀고, 트럭의 강판도 뻥뻥 뚫린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준비를 철저히 한 매복이었는지, 저 무거운 K―4를 산 중턱까지 짊어지고 올라가 설치까지 해 둔 것이다.

콰아앙―

몇 발을 직격당한 트럭들이 폭발해서 불길에 휩싸인 채 튀어 올랐다.

그 뒤에 숨어 있던 병사들은 졸지에 엄폐물을 잃고 뛰어나와야 했고, 그렇게 무방비로 노출된 병사들은 적 K―3의 먹이가 되기 딱 좋았다.

투투투투투― 투투투―

한 번씩 K―3가 훑고 지날 때마다 병사들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흙먼지가 이는 바닥을 뒹굴었다. 그 시체들 위로 40㎜ 고폭탄이라도 한 번 꽂히면, 살덩이와 피가 튀어 올라 비처럼 쏟아진다. 지옥이다.

“개새끼들아!”

피와 불을 보고 흥분한 병사들이 좌측 산 중턱을 향해 난사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사람 대 사람의 전투를 오늘 처음으로 경험한 신출내기들이다. 당연히 허점투성이고, 그래서 노련한 지휘관이 필요한 것이지만, 지휘관들 역시 실전 경험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이런 매복에 걸려들어 꼼짝도 못 하고 당하고만 있는 것이다. 100명을 훌쩍 넘겨 보이던 병력은 어느새 절반 이하로 확 줄어들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사들 얼굴에는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미 이 싸움은 졌다는 패배 의식이 순식간에 중대 전체로 번져 간다.

투투투투― 투투투―

또 한 번 적의 K―3가 한바탕 총탄을 퍼부어 댄다. 불길을 피해 뛰어나갔던 병사들이 벌집처럼 온몸이 꿰뚫린 채 쓰러져 갔다.

아까부터 줄곧 트럭 아래에 몸을 숨긴 채 놈들의 위치를 살피던 진우는 산의 좌측에서 K―4를 찾아냈다.

물론 바위와 나무에 가려져 정확히 보이진 않는다. 이미 진지를 구축해 놓고 그 안에 들어가 쏴대는 중이어서 보이는 것은 검은 총구와 하이바 정도뿐이다.

텅텅텅텅― 텅텅텅텅텅―

체인이 울리며 발사되는 저 소리가 악마의 웃음같이 들린다. 놈이 목표로 삼은 지역은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그 범위 안에 숨어 있던 병사들은 전혀 대비도 못 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퍼엉―

고폭탄에 직격당한 병사의 상체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처리해야겠다. 진우는 총구를 겨눈 채 K―4의 위치를 좀 더 특정하기 위해 애를 썼다. 검은 총구와 하이바 사이에 아주 작게 존재할 무방비의 공간을 마음속으로 상정해 거기에 총알을 날리기로 했다.

저 K―4 사수에게 아무런 원한도 없고, 의무감 따위는 더 없다.

하지만 저놈이 계속 저 묵직한 고폭탄을 발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얼마 안 가 이 부근이 모두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진우 자신도 살아남기 어렵다.

텅텅텅― 텅텅텅텅―

K―4의 조준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틈을 타 진우는 입술을 꽉 깨물고 정든 K―2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둑―

사격을 하고 있으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육안으로만 보고 쏘는 거라 대강의 위치를 향해 총알을 날리는 것이지, 정확한 하나의 지점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니다.

어쨌든 여러 발을 날리다 보면 적중되는 게 한두 개는 나올 것 같아서, 진우는 계속 비슷한 위치를 향해 총알을 날렸다.

하지만 아직 적중시키지 못했다. K―4가 건재하다는 것을 놈의 그 독특한 발사음이 일러 주었다.

텅텅텅― 텅텅텅텅―

투투툭― 투투투투―

적 편의 K―4, 진우의 K―2. 서로 계속 교차하며 울려 대던 두 화기의 합주가 어느 순간 독주로 바뀌었다.

투투둑― 투투둑―

남은 것은 K―2의 발사음뿐. 힘없이 아래로 축 처진 K―4의 총신과 뒤로 젖혀진 두 개의 하이바가 보인다. 드디어 저 지긋지긋한 놈을 잡아버렸다.

피잉― 티잉, 팅! 팅!

진우가 좋아할 틈도 주지 않고 수십 발이 총알이 날아든다. 하긴 그 귀중한 전력인 고속 유탄발사기를 봉쇄해 버렸으니 놈들도 어지간히 화가 났을 것이다.

몇 차례 맞받아치던 진우는 더 버티지 못하고 낮은 포복으로 물러나 타이어 뒤에 몸을 숨겼다.

하아아~ 하아~ 진우는 긴장을 덜어내기 위해 숨을 골랐다.

좀비들을 수없이 죽여 오면서, 또 네 명의 탈영병과 싸움을 벌이면서 전쟁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나 보다.

서로 총알을 주고받는, 그것도 대규모의 인원이 서로를 향해 난사를 해 대는 이런 전쟁은 좀비들과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무서움을 안겨 준다.

‘언제 내 머리통도 날아갈지 모른다.’

진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남은 병사는 채 30명이 되지 않는다. 반면 저쪽은 진우에게 사살된 몇몇을 제외하면 개전 이후 지금껏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

텄다. 도망이나 쳐야겠다.

진우는 달아날 궁리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투투투투― 투투투―

저쪽의 병사들은 한층 기세가 올라 더 열심히, 맹렬하고도 부지런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견디다 못해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대응사격이라도 할라 치면, 곧바로 놈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이니 난사 후에 달아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진우는 벌써 한참 전부터 타닥거리며 불이 날 거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앙의 트럭 두 대가 폭파되어 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불꽃과 함께 검은 연기가 높이 피어오를 때, 그 짧은 시간 동안이 기회다. 그때를 틈타서 우측 산속으로 도망쳐 들어가야 한다.

치칫― 치칫― 화르르르르―

진우가 기다리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까부터 K―4에 한참을 두들겨 맞은 앞쪽의 트럭에서 먼저 발화가 시작되었고, 불길은 곧바로 뒤차마저 삼켜 버렸다.

화르르르―

두 대의 트럭에서 시꺼먼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시야가 가려졌다. 이제 누군가 지원사격을 해서 주의를 흐트러뜨려 주면 더 좋기는 한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위 한 명이 몸을 일으켜 K―2를 난사했다.

“야, 이 채양균의 개새끼들아! 반란군 새끼들!”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가득하지만, 그 의미 따위를 묻고 있을 여유는 없다.

겁 없이 대드는 소위와 그 주변의 병사들 쪽으로 놈들의 총구가 쏠리는 동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진우는 곧바로 산을 향해 뛰었다.

파바바박―

바로 머리 옆을 스치며 총알들이 날아와 박힌다. 그를 겨냥하고 쏜 것은 아닐 테지만, 정말 뼛속까지 오싹해진다.

돌무더기가 부서져 내리고, 흙먼지가 날리는 오르막을 댓 걸음 정도 뛰어오른 진우는 미리 봐뒀던 바위 뒤에 바짝 몸을 붙였다. 그러고는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 투투투― 투투투―

목표로 삼았던 두 개의 점을 제압한 뒤에 진우는 다시 다리에 힘을 모아 뛰어올랐다. 아래쪽에서 총성이 울리는 동안에 어떻게든 달아나 둬야 한다.

핑―

또다시 근처를 때리는 총알. 진우의 목이 움츠러든다.

자신을 집요하게 노리는 놈들이 모두 처리된 게 아니다. 진우는 곧바로 몸을 돌려 응사했다. 물론 방향은 그저 감으로 짐작하는 것이다.

팅― 팅― 티디잉―

발아래, 옆구리 부근, 하이바 위쪽, 얼굴 근처까지…… 꽤나 가까운 곳에 탄착군이 형성되고 있다. 진우는 눈을 부릅뜨고 흙먼지와 불꽃이 어지럽게 튀는 사이에서 적의 발사 지점을 찾았다.

산 중턱의 바위 뒤, 나무가 주변에 무성하게 우거진 곳. 컴컴한 나무 그늘에서 불꽃이 번쩍거리며 실탄이 날아와 주변을 때린다.

“거기구나!”

진우는 곧바로 총을 들어 올린 후,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탕탕― 탕탕탕탕―

그러고 나서 다시 몸을 돌려 뛰었다. 확인할 것도 없다. 명중했으니까. 아래쪽에서 응사하던 병력의 수는 확연히 줄어서 이제는 총소리가 띄엄띄엄 울렸다.

“끄응차!”

진우는 절벽의 바위 사이에 휘어져 자라나 있는 소나무를 꽉 잡고, 그 위로 몸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단단한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핑― 핑― 피잉―

뒤늦게 쫓아온 총알이 바위를 때리지만, 어림없다. 그 정도에 관통될 크기가 아니다. 이제 진우는 나무도 엄폐물도 거의 없는 20여 미터의 민둥산 구역을 다 돌파했다.

후우~ 후우~ 두 번 크게 숨을 고른 진우는 잠시도 더 지체하지 않고 숲과 바위가 만든 그늘 속을 내달려 더 높은 곳으로, 더 깊숙한 산속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바위를 때리던 총알. 자신이 달아났다는 걸 아는 놈들이 있다. 쫓아올지도 모른다.

진우는 옆구리에 단단히 총을 낀 채 어딘지도 모르는 숲속을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탕탕탕탕탕― 투투투투― 끄아아아― 콰아아앙―

전장의 총소리와 비명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자신의 숨소리와 흙을 밟는 전투화 소리만이 점점 더 또렷하게 울린다. 푸른풀 향기가 콧속에 가득 차 있던 화약 냄새를 밀어내고 들어온다.

“윽!”

허벅지의 근육이 힘이 풀려 쓰러질 때까지 진우는 산속을 달렸다.

하아아~ 하아아~ 바닥에 쓰러진 진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깊은 숲속, 온통 나무와 흙뿐이다.

큭, 크크크큭…….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진우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왜, 왜 나를 이 개 같은 싸움에 끌어들인 걸까? 어차피 다 그렇게 죽을 거였으면서…….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 자전거 타고 제 갈 길 가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프고 화가 났단 말인가.

탈영? 탈영이 죄라고? 아군들끼리 총질하기 위해 출동하던 놈들이? 그래서 내 뺨을 그렇게 갈겼어?

큭큭큭크, 진우는 히스테릭한 웃음을 한동안 멈출 수 없었다.

가장 웃긴 건 배낭이었다. 그 개새끼들이 배낭을 홀랑 빼앗아가는 바람에 물 한 병, 건빵 한 조각 없이 또 이렇게 산속에 던져졌다.

큭큭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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