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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혼돈 (6) (231/449)


231. 혼돈 (6)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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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고 하사는 민구가 잠실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붕대를 갈아 주기 위해 병실을 찾았다.

“허어~”

병실 가까이 다가갔을 때부터 그의 입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문 주변 복도가 온통 뻘겋다. 누군가 피를 흘렸고, 그걸 닦아 보려고 대충 문댄 흔적이다.

병실 손잡이에도 군데군데 피가 말라붙어 있다. 암만 피 보는 일이 흔한 좀비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건물 내에 이게 무슨…….

- 그놈 조심하시오. 기동이라는 놈인데 질이 별로 좋지 않소.

피를 보자마자 자연스레 어제 민구라는 환자가 했던 말과 철책 부근에서 얼쩡거리던 그 덩치 큰 놈이 떠오른다.

설마…… 당한 건가?

자책감이 가슴을 엔다.

어제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을…….

뭔가 단단히 사달이 났다. 발걸음이 정신없이 빨라진다. 고 하사는 급하게 문을 열었다.

“괘, 괜찮습니까!”

“아, 잘 잤소? 일찍부터도 와 줬군.”

창가에 서 있던 민구가 태연한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너무 태평해서 긴장했던 이쪽이 오히려 바보짓을 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병실의 꼴은 평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복도의 핏자국은 방 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입구 주변 바닥부터 창가까지 온통 붉은 피로 점철이 되어 있다. 그나마 대충 닦은 게 이 정도니,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 그거…… 닦는다고 하긴 했는데…… 미안하게 됐소. 잘 안 되더군.”

고 하사의 시선이 피에 꽂혀 있자 그걸 의식한 민구가 멋쩍게 중얼거렸다.

아니, 이 양반아, 지금 그걸 닦고 안 닦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거, 누구 피냐고…….

고 하사는 고개를 들어 민구를 보았다.

“설마 누가 죽은 건 아니죠?”

“후후후, 우리 둘 다 알잖소. 사람이 어딘가 뚫려서 죽으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피가 나온다는 거. 그냥 체벌 비슷한 거였지.”

민구는 여유로운 척 빙그레 웃고 있지만, 실제 그의 몸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양쪽 옆구리에 각각 혈흔이 있고, 안색은 창백하다. 목숨을 걸고 싸우다 부상을 입은 게 빤했다.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갈아 주며 고 하사가 물었다.

“그…… 기동인지 뭔지 하는 사람 짓입니까?”

“정확히는 내가 한 짓이지. 이 피는 기동이 거긴 하지만.”

“아니, 계단도 못 올라가는 양반이 무슨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지…….”

“그냥, 배운 재주라고 합시다.”

휴, 고 하사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군인들이 바로 한 층 위에서 분대 단위로 잠들어 있는 동안 이 난리를 떨었다고?

이 민구라는 사람도 어지간하지만, 영 골치 아픈 놈이 쉘터 내에 있는 모양이다. 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에게야 별 위협이 되지는 않겠지만, 일반 수용자들은 그놈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 사람, 아직도 베인 상처가 남아 있겠네요? 음, 어쩌지? 그 상처랑 이 피를 증거로 삼아서 체포할 수 있으려나?”

고 하사가 고민하자 민구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봐도 되지만, 아마 핑계는 벌써 다 만들어 놨을 거요. 유리에 넘어졌다든가, 누구 딴 놈들이 증언도 해 줄 거고. 그런 게 생활이니까.”

하긴, 다쳤다는 이유로 체포할 수는 없다. 그런 것보다는 좀 더 확실한 현장을 잡아야 할 거다. 고 하사의 답답한 마음을 아는지 민구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내가 잠실에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항상 그놈을 눈여겨보고 조심하시오. 무슨 변고가 일어나려면 그놈이 앞장서서 난리를 칠 테니까.”

***

진우는 중앙고속도로 북쪽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침 안개가 조금 껴 있고, 주변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지만, 기분은 꽤나 좋다.

씨잉― 씨잉―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아주 기분 좋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자전거와 아스팔트 도로라는 두 가지 문명의 이기 덕에 그는 어제 하루 만에 지난 일주일 동안 이동했던 거리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주파했다.

인가가 많은 곳을 피하기 위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옮겨 타면서 중앙고속도로까지 왔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잘하면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좀 늦어져도 내일이면 화천 부근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차도 별로 없구나.”

빽빽하게 자동차가 늘어서 있던 다른 도로들과 달리 중앙고속도로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자동차들도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어서 도로는 그야말로 시원하게 뻥 뚫려 있다. 페달을 밟을 맛이 난다.

촤악― 촤악―

진우는 신나게 다리에 힘을 줬고, 자전거는 빠르게 그를 앞의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우측에는 산, 좌측에는 평야, 그리고 쪽 뻗은 왕복 4차선 도로뿐이다.

오랜 시간 핸들을 잡고 있다 보니 아직 다 낫지 않은 오른팔의 상처가 땅기기는 하지만, 이 정도 고통은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있을까?”

진우가 혼잣말을 했다. 정말로 만 발이 있을까? 화천이 먼 꿈이 아니라 정말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인식된 순간부터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의 주된 원인은 기대보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혹시…… 이 모든 어려움을 다 뚫고,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와 실탄을 다 쓰고 찾아갔는데, 그런데 구령대 아래의 흙이 다른 곳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죽어라 파 봤는데도 만 발이 든 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김 상병님은 그냥 나를 놀리려고 아무렇게나 던진 농담이었는데, 나는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거면 어쩌지?

사실 김 상병은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만큼 싱거운 사람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감은 자꾸 커지고 가슴 속은 멀미를 하는 것처럼 울렁거린다.

총알이 없다면, 자대 구령대 아래에 만 발이 없다면, 진우는 자신이 그 순간 허물어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아니야, 있어. 반드시 있으니까 일단 거기까지 가기나 해. 이 새끼, 일이 닥치기도 전에 겁부터 내고. 팍팍 밟아!”

진우는 늘어지려는 자신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다그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만 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현실에만 집중하려 해도 자꾸 상상이 된다.

예비 탄창까지 다 쓰고, 겨우겨우 부대 게이트를 통과해서 아무도 없는 연병장을 가로질러 가 삽으로 땅을 파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왠지 시간 배경은 황혼이 질 무렵, 여기에 만 발이 없다는 걸 깨닫는 자신…….

으아아아! 생각만 해도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 뒤의 상황이 전혀 상상이 안 된다는 게 더 두렵다.

“씨발, 근데 만약에…… 구령대 아래가 이미 파헤쳐져 있으면 어쩌지?”

한번 싹을 틔운 부정적인 생각들은 자꾸 쑥쑥 자라나기만 한다. 진우가 그 지독한 심리적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건 오르막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끄으으으~ 끄으으으~”

기어를 바꿔 가며 어떻게든 오르막길을 올라가 보려던 진우는 결국 포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허벅지는 화끈화끈 터져 나갈 것 같고, 무릎이 시큰거린다.

젠장, 이번 오르막은 너무 길고 경사도 가파르다. 나란히 서서 끌고 가려니, 자전거라는 건 은근히 짐이 되었다.

“젠장, 오르막 만든 새끼들은 다 감옥에 처넣어야 돼. 이왕 길을 깔 거면 그냥 평평하게 만들 것이지.”

그렇게 씩씩거리며 그래도 겨우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이상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응? 진우는 이마를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러는 동안에도 소리는 조금 더 가까워지고 명확해졌다.

부르르르릉―

엔진 소리다.

이런! 당황한 진우가 자전거를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려고 할 때, 엔진 소리의 주인공, 레토나와 육공 트럭은 벌써 오르막의 반대편에서 정점으로 올라와 우뚝 멈춰 선다.

하아아~ 하아아~ 여러 대의 군용 트럭이 자신을 굽어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진우는 한 발도 떼지 못했다. 숨을 곳이 없다.

자전거로 속력을 낸다고 해 봐야 자동차를 뿌리칠 수는 없고, 오히려 더 수상하다는 인상만 줄 뿐이다. 물론 지금도 더할 수 없이 충분히 수상하지만…….

길길길길, 정차한 자동차들의 엔진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온다.

젠장, 젠장……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데 왜 몰랐지? 왜 미리 좀 산속으로라도 도망쳐 있지 못했지?

진우의 머릿속에 후회가 솟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느라…… 씨발, 당장 코앞까지 뻗어온 커다란 위험을 몰랐다. 멍청한 새끼…….

“손들어!”

트럭에서 뛰어내린 병사들 한 무리가 그에게 총을 겨누며 다가온다. 진우는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달리 어쩔 방법이 없으니까.

콰창!

갑자기 기댈 곳이 없어진 자전거가 자빠진 뒤, 내리막 쪽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하아아~ 하아아~ 불안함 때문에 커진 자신의 숨소리가 직접 뇌를 울리는 것 같다.

쿵쾅쿵쾅, 뇌까지 전달되어 울릴 만큼 심장 박동이 강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끌려가는 건가? 다시 어딘가를 지키다 닳아 없어지는 소모품이 되어버리는 건가?

눈앞이 캄캄하다. 병사들이 달려와 진우의 총과 배낭, 탄창, 대검, 그리고 실탄이 한 발 남은 권총까지 모두 수거했다. 진우는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머리가 핑핑 돌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 새끼 뭐야? 깜짝 놀랐네. 뭔데 이런 데에서 할랑할랑 돌아다니고 있어? 옷 꼬라지하고는……. 어쭈, 자전거까지 타고? 소풍 나왔냐?”

레토나에서 내린 소령이 진우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더니 진우의 무장에 관심을 보였다.

“총이 두 자루야? 이 권총은 또 뭐고? 탈영병인가?”

“아닙니다! 저는 삼척 원자력발전소 경비 대대 2중대 1소대 1분대…….”

쫘악―

소령의 옆에 서 있던 중위가 끼어들며 난데없이 풀스윙으로 따귀를 날렸다. 눈앞에서 별이 번쩍 튀고,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가리 다물어, 이 개새끼야! 어디서 거짓말을 지껄여? 대가리가 돌았나? 여기서 삼척이 어딘데.”

“하아~ 삼척 발전소가 좀비들에게 뚫려서 경비대가 전멸했습니다. 저는 그걸 알리기 위해서…….”

쫙―

또 따귀다. 이 중위 놈은 어지간히 따귀를 좋아하나 보다. 진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깟 따귀가 문제가 아니다. 이제 자유를 박탈당할 위기에 빠졌다. 어쩌면 없는 죄를 뒤집어쓰고 총살당할지도 모른다.

진우의 입술은 바짝바짝 말랐다. 그때, 소령이 끼어들어 만류했다.

“됐어, 됐어. 김 중위, 중요한 작전 앞두고 쓸데없는 일에 힘 빼지 마. 좀 놀라기는 했지만, 이 새끼를 만나서 좋은 일도 있잖아. 적어도 이 도로는 안전하다는 거야. 이제 슬슬 매복에 신경을 쓸 만큼 가까이 온 거라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야, 탈영병.”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령은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너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른 부대 병사들 본 적 있나? 이 직선 도로에서 말이야. 특히 한 5킬로미터 근방에서.”

“……없습니다.”

“들었지? 내 생각도 그래. 그 새끼들이 만약에 미리 마중을 나와서 매복하고 있었더라도, 이렇게 수상한 새끼가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 뒀을 리가 없잖아. 그냥 한 방 갈겨서 잡아버리고 말지. 좋아, 저기까지는 안전하다, 이거지? 야, 그 탈영병 새끼 일단 태워라. 번거롭게 영창 보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쓸데가 생각났다.”

매복? 한 방? 뭔 소리지? 누가 매복을 하고, 누가 군인에게 총을 쏜다는 거야?

진우는 두 장교의 대화를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트럭으로 끌려가면서 진우는 중위의 눈빛에서 공포를 읽어냈다. 이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난 화를 자신의 뺨을 때리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지?

진우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진우를 태운 트럭은 다른 차량들과 함께 길게 뻗은 경사로를 내려갔다. 조금 전 그가 죽어라 힘을 써가며 올라왔던 그 오르막이 돌아서서 보니 아주 시원한 내리막길이다.

와지끈, 트럭은 매정하게도 진우의 자전거를 짓밟고 지나갔다. 진우에게는 그 소리가 희망이 깨지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진우는 자신의 양옆을 지키고 앉은 병사들의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이들의 얼굴에도 두려움과 경계의 기색이 가득하다.

완전무장. 게다가 위장크림. 좀비 세상이 온 이후에 위장크림 바르는 놈은 그 잘난 척 쩔던 애송이 장갑차장 이후 처음이다. 뭔가 심상치 않다.

“저기 지금…… 무슨…….”

빡!

맞은편에서 곧바로 군화가 날아온다. 호되게 정강이를 차인 진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 좋아. 비밀이다, 이거냐? 마음대로 해 봐라. 어차피 이제 다 끝난 모양이니까.

진우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미숙함을 탓했다.

아까 거기에서 조금만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하긴 근데 더 일찍 알았어도 별로 달아날 만한 데가 없긴 했다. 국도로 옮겨 탄 트럭들은 한동안 더 울퉁불퉁한 흙먼지 길을 내달리다가 멈춰 섰다.

“야, 그 새끼 데려와.”

전 병력이 다 트럭에서 내리고 있을 때, 누군가 진우를 붙잡아 중위 앞으로 끌고 갔다. 끌려가며 진우는 주변을 돌아봤다. 사방이 다 산이다.

산, 산……. 이런 옌장, 또 산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중위는 진우의 멱살을 잡아끌며 멀리 좁은 도로 끝의 표지판을 지목했다.

“저기 저 표지판 보이나? 교차로에 있는 거.”

“보입니다.”

“거기까지 걸어가. 걸어가면서 계속 좌우 경계하고, 그러다가 저 표지판에 닿으면 총구를 돌리면서 사격 자세를 취해. 좌측으로 한 번, 우측으로 한 번. 그런 후에 곧바로 뛰어서 되돌아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나? 야, 이 새끼한테 아까 들고 있던 총 한 자루 들려 줘라. 탄창 다 비워서.”

중위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탄창의 실탄을 빼버린 다음, 진우의 낡은 총을 되돌려 줬다. 빈총을 받아 든 진우는 난감했다.

무슨 일인지 전후 사정은 모르지만, 이놈들이 자신을 미끼로 삼으려 한다는 것만은 이제 분명히 알겠다. 척후병보다도 더 먼저 출발하는 미끼.

씨발, 사람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거냐? 내가 무슨 지렁이도 아니고…….

“이 작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돌아오면 과거의 죄는 묻지 않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조처해 주겠다. 그러니 이번에는 도망갈 생각 하지 않도록. 알겠나? 자, 출발…….”

퍼억!

뻔뻔한 소리를 지껄이던 중위의 가슴팍이 뚫리고, 총소리가 그보다 약간 늦게 들려왔다.

타앙!

진우의 얼굴에는 중위에게서 터져 나온 붉은 피가 확 뿌려졌다.

읏! 진우는 재빨리 피를 훑어내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의 가슴이 땅에 닿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무수한 총성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투투투투투― 탕― 타아앙― 투투둑― 투투둑― 타타타타타―!

방향과 거리, 근처의 지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들리기는 하지만, 꽤나 많은 수의 총구가 그들을 향해 불을 뿜고 있다. 중위와 소령이 말하던 매복이 여기에 있었다.

“으아아아아!”

트럭에서 내려 아직 채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병사들은 거의 무방비에 가까운 상태였고, 그래서 순식간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트럭 주변에는 피가 어지러이 튀고,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어린 병사들이 눈을 홉뜬 채 죽어 있다.

“트럭 뒤에 숨어! 대응사격해!”

지휘관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대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날아드는 총알 때문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파악, 파바박.

응사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병사가 대여섯 발을 한꺼번에 맞고 뒤로 날아간다.

피이잉― 핑― 팅―

진우가 엎드린 자리 부근으로도 총탄이 수없이 날아와 꽂혔다.

그의 얼굴에서 불과 50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자갈이 총알에 맞아 쪼개지며 흙먼지가 어지럽게 날린다. 좌측 산이다. 좌측 산의 중턱에서 쏴 대고 있다.

“으아아!”

투투투투투―

일부 병사들이 용감하게 응사를 했지만, 그들도 이내 엉망으로 꿰뚫린 피투성이 시체가 되고 말았다. 상대가 되지 않는,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당연하다. 저쪽은 미리 총구를 고정한 채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쪽은 저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대강 지향 사격만 하고 있는 것이니까.

털썩, 진우의 바로 옆으로 피투성이 시체가 쓰러졌다. 두 구나! 진우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 몸 앞으로 시체들을 끌어당긴 진우는 시체의 총에서 탄창을 빼 자신의 K―2에 끼웠다.

그러고는 시체들을 엄폐물 삼아 쌓아 놓고, 그 뒤에 숨어 전방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목표는 조금 전부터 그를 노리고 계속 총알을 날리던 산 중턱 소나무 뒤의 누구인지 모를 개새끼.

투투둑― 투투둑―

목표물의 머리통이 박살 난 걸 확인한 뒤에도 진우는 목표를 바꿔 가며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투―

누구에게 소속되어 누구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는 이상한 전쟁에 말려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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