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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혼돈 (3) (228/449)


228. 혼돈 (3)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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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테라의 얼굴이 굳는다. 5년이라는 말이 영원처럼 들린다. 그 긴 세월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또 다른 감염자를 찾아 움직인다고?

게다가 그것조차 최소한의 보장 기간이다. 그 뒤로 얼마나 더 좀비들이 살아 움직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모든 게 허탈해지는 것 같아 눈물이 맺혔다.

잠실 쉘터에서 웅크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보호해 주는 군인들, 다들 가슴 한구석에 희망의 조각을 품고 그 온기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꾹 참고 버티면 머지않아 좀비들도 결국은 죽게 될 거라는 기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다는 기대. 그게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 주는 기둥이었다.

“당혹스러운가 보군, 테라 양. 왜? 너무 긴가?”

젠킨스가 물었다. 테라는 순순히 그렇다고 인정을 했다. 후후후, 젠킨스는 아주 교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봐야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채여서 그리 잘나 보이지는 않는다.

“후후후, 그러니까 내가 중요한 사람인 거야. 나의 이 커다란 배는 말하자면 희망으로 가득한 셈이지. 이렇게 물이나 억지로 먹이면서 박해하면 안 된다니까.”

“그……전에 말했던 우리나라의 JL 연구소, 거기에 널 키드의 혈청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죠? 쇼크 억제제인가 하는 약과 같이. 제 기억이 맞나요?”

“음, 맞아. 확실히 테라 양은 영리하다니까. 그렇게 많은 정보가 그저 구두로만 전달되었는데도 필요한 것들은 다 기억하고 있잖아.”

“생각해 보니까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를 제가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혈청이 있다는 건 백신이나 치료제가 있다는 말과 같은 건가요? 그러니까 JL 연구소에는 그런 약들이 있나요?”

고역스럽게 또 물 200밀리리터를 마신 젠킨스가 과자를 요구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 백신은 약화시킨 세균을 주사하는 거야. 그래서 미리 겪어 봤던 몸이 면역 체계를 갖추도록 돕는 거지. 말하자면 예방약이니까 사후적 치료는 못 해. 혈청이라는 건 말 그대로 피를 뽑아 혈액세포들을 침전시키고 남은 세럼이야. 면역자의 경우엔 이 맑은 세럼 내에 항체가 포함되어 있는 거고. 그런데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직 널 키드의 항체만 다른 사람에게도 항체를 만들 수 있도록 작용하지. 자, 한국 JL 연구소에 뭐가 있다고? 널 키드의 혈청! 백신이 아니라 혈청이야.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고.”

“치료가 된다고 하면…… 항체가 백신보다 훨씬 좋은 것 아닌가요?”

테라가 조심스럽게 묻자 과자를 삼키던 젠킨스가 잘난 척하며 킥킥거린다. 그러다가 사레가 들려 곧 죽을 것처럼 기침을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컥! 컥! 콜록!

테라가 등을 두드려 주었지만, 젠킨스의 기침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한참 동안 고생을 한 후에야 겨우 진정이 된 젠킨스의 얼굴은 시뻘게져서 눈물과 콧물, 침, 과자 부스러기로 범벅이 되었다. 꽤나 큰 대가를 치른 잘난 척이었다.

“쿨럭, 끄음……. 어, 죽을 뻔했군. 테라 양, 대체 널 키드에게서 얼마나 많은 피를 빼낼 셈인가? 살아남은 전 세계인들에게 혈청을 제공한다는 건 무리야. 불가능하지. 전 세계인이 다 살아 있었을 때에도 널 키드의 수는 70명이 채 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헬 게이트가 열린 이후에는 그보다 훨씬 더 줄어 있을 테니까. 그 적은 수의 널 키드들을 다 모을 수도 없겠지만, 모았다고 해도 뽑을 수 있는 혈액의 양은 한계가 있어. 또 혈액형도 일치해야 하고.”

“혈청 치료라는 건 혈액형이 맞아야 해요?”

“귀하는 애초에 혈액형이라는 것이 어떤 일을 계기로 분류되기 시작했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하긴, 이제 와서 그까짓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어쨌든 답은 그렇다……야. 수혈할 수 없는 혈액형끼리는 혈청 역시 제공할 수 없어. 정말 운이 좋아서 널 키드의 항체를 제공받았다고 해도 어떤 형태의 면역을 얻게 될 것인지는 몰라. 기억나나, 테라 양? 내가 세 종류의 면역자와 그들이 가진 특성이 각각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는데.”

테라는 그렇다고 했다. 잊을 수가 있을까, 그녀 자신이 그 셋 중 하나일 거라서 엄청나게 집중한 채로 들었는데. 또 애초에 젠킨스와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면역자라는 키워드를 그가 끄집어내면서 시작된 일이기도 했고…….

젠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 세 개를 펼치더니, 하나씩 접어 가며 말을 이었다.

“운과 확률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분명 90% 이상은 아나필락시스 진이 될 테지. 그러면 한 번 물렸을 때의 치료는 가능하지만, 두 번째라는 건 없어. 쇼크로 죽어버린다고. 너무 허무해서 그쯤 되면 사망한 당사자가 아니라 그를 구하기 위해 사용한 혈청이 아까울 정도야. 그렇게 단발적인 항체보다는 JL이 만들고 있던 백신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나? 백신으로 항체를 얻고 나서 쇼크 억제제만 매일 복용하면, 필락시스 진처럼 여러 번을 물리더라도 감염되는 일은 없단 말이지. 뭐, 물론 후자의 방법으로는 널 키드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어떤 걸 고르겠어? 단 한 번의 안전과 무한 반복되는 조금 불편한 안전 중에서. 응?”

“쇼크 억제제는 이미 있다면서요? 아나필락시스 진들도 그걸 복용하면 안 되나요?”

“그걸 설명하자면 또 무지하게 길어질 테니 짧게 하지. 애초부터 이 연구는 변형된 형태의 필락시스 진을 위해 진행된 것이어서 그렇게는 안 돼. 작용하는 대상이 다르니까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겉보기에는 똑같은 쇼크처럼 보이더라도 몸속에서 그게 발생하는 원인은 무수히 많거든. 물론 그동안 축적한 기술과 경험 덕에 개발 기간은 현저히 단축되지 않을까 싶지만……. 어쨌든 그런 일들이 가능하려면 유능한 마스터가 있어야지. 지금 현재의 상황으로는 연구가 멈춰진 상태야. 왜냐면 소중한 혈청을 마스터가 없는 상태에서 허비할 수는 없거든. 이 나라의 JL 연구소 역시 마찬가지고.”

“유능한 마스터? 그게 누구인데요?”

“귀하가 억지로 물을 먹이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라네, 테라 양. 마주 보고 대화하는 사람들은 나를 마스터 젠킨스라고 하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젠킨스라고 부르지. 둘 다 약자로는 MJ이고. 어이쿠, 이거…… 너무 많은 정보를 주었나? 큭큭큭, 괜찮아.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테니까. 히히히히.”

젠킨스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실실거렸다.

그는 대화 도중 종종 이렇게 필요 이상의 조울 증세를 보였다. 어떤 때는 너무 좋아 미치겠다는 듯 벙글대다가, 또 어떤 날은 별거 아닌 말을 하면서도 과장되게 슬픔을 표했다.

날짜며, 이름이며, 지역 따위의 사실관계를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고, 가끔 재확인을 해도 막힘없이 같은 대답을 해주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테라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테라 양의 혈액형은 무얼까? 응? 그 희고 고운 피부 아래의 혈관에서는 어떤 타입의 피가 흐르고 있나? 피도 맑겠지? 후후후.”

그녀의 마음이 어수선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젠킨스는 또 그 특유의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테라의 얼굴과 발을 힐끔거린다.

테라는 과자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면서 지그시 젠킨스를 노려봤다. 그래도 그는 기죽지 않고 물었다.

“알려줘. 나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까짓 혈액형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잖아?”

“이야기에 대한 보상은 이미 하고 있어요, 젠킨스 씨. 당신의 입가에 그 증거가 무수하게 남아 있고요. 자, 이제 고개를 앞으로 돌리세요. 시선이 불편합니다.”

‘어지간히 냉정하구만. 얼음으로 만든 심장인가?’ 따위의 말들을 투덜거리며 젠킨스는 마지못해 다시 앞쪽을 보고 돌아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관심은 테라의 발가락, 다쳤다는 그 새끼발가락에 쏠려 있다.

대체 며칠째 계속 저렇게 붕대로 친친 동여매고 다니는 거지? 그가 아는 것만 따져도 벌써 나흘째다. 가끔 붕대 밖까지 피가 스며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꽤나 큰 상처여야 할 것 같은데, 테라가 걷는 모습을 보면 그리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이상한 점이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저 상처 난 발에 적응이 되어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저렇게 다친 상태로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다.

몸이 적응할 만큼 긴 시간 동안 계속 상처가 아물지 않고 피를 흘린다고? 그건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음, 충동을 억누르던 젠킨스는 가볍게 앓는 소리를 냈다.

저 흰 붕대를 풀어버리고 그녀의 상처를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

물론 관음증을 충족시키기 위한 말초적인 욕구는 아니다. 초조해하던 젠킨스의 눈빛에 광기가 번뜩였다. 제법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쇼크 억제제가 양쪽 모두에게 작용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제대로 말하고 가는 게 좋겠군. 그…… 내가 했던 그 이야기 기억나지? 아나필락시스 진과 필락시스 진의 구분을 하는 방법에 대한 건데…….”

“필락시스 진은 하루 이상 높은 체온에 시달리고 한쪽 눈이 충혈되기도 하는데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했었어요. 혈청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안다고.”

정확하게도 기억하고 있군. 좀 잊어먹고 그래 줬으면 내가 한결 수월한데…….

젠킨스는 속으로 웃었다. 그건 그녀가 좀비에게 물린 사람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니 이렇게 열심히 듣고 흡수하는 거다. 어쨌든 젠킨스는 그물을 걸어 보기로 했다.

“아닌데. 하나가 더 있잖아. 그새 잊어먹은 건가.”

“제가 들은 건 두 가지뿐이었어요.”

“정말? 이런! 내 정신이 그 정도로 맑지 못했다니! 아마 혈당 수치가 낮아져서 그랬던 걸 거야. 제일 명료하면서도 중요한 구분법을 말해 주지 않을 뻔했군. 이래서야 과자를 받는 값어치를 다 했다고 할 수 없지.”

젠킨스는 놀라는 척하며 뒤쪽 측면에 앉아 있는 테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대화하는 동안 눈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테라가 싸늘한 눈으로 젠킨스를 내려다봤다.

“말했을 텐데요, 거짓말은 싫다고.”

“무슨 거짓말? 테라 양, 내 혀는 오직 진실만을 말한다네. 그렇게 오해를 하면 섭섭한데?”

“그럼 혀가 아니라 입술이 왜곡을 하나 보네요. 젠킨스 씨만큼 똑똑한 사람이 그런 걸 빠뜨리고 말해 줄 리가 없죠. 그때든, 지금이든 둘 중에 한 번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고요. 오늘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요. 저는 정직한 젠킨스 씨가 하는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거든요.”

테라는 과자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젠장, 젠킨스는 투명한 비닐봉지 안쪽의 과자들을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걸 다 못 먹게 되다니……. 더 맛있는 것들이 남아 있는데…….

하지만 이 시도는 과자 부스러기보다는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젠킨스는 사과하는 대신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가도 좋아, 화를 내도 좋고. 그러나 나는 기억난 걸 추가적으로 말해 주려는 것뿐이야.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거라고. 그게 죄라고 하는 데야 내가 어쩔 도리가 없지.”

테라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일어섰다. 젠킨스는 다급하게 지껄였다.

“면역자들 중에는 상처가 나면 제대로 아물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물었는가 싶다가도 조금만 충격을 받으면 다시 벌어지지. 몸 전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물렸던 곳 주변만! 그걸로 어떤 부류냐를 알 수 있지.”

말을 던지면서 젠킨스의 눈은 호기심을 가득 품은 채 테라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과연 대스타.

표정으로는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비닐봉지를 들고 걸음을 떼는 속도가 아주 미묘하게 느려졌다.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젠킨스는 결정적인 한 방을 던졌다.

“필락시스 진이나 널 키드는 안 그래. 그건 아나필락시스 진만이 가지는 특징이라고. 단발성 면역자 말이야. 난 테라 양의 상처도 그런 건 아닌가 싶었던 것뿐이야. 만약 그렇다면 아나필락시스 진인 거니까 좀비들을 더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는 거잖아.”

테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 버렸지만, 젠킨스는 이렇게 일부러 거짓말을 지껄여 댄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테라의 옆얼굴에서 아주 미세하게나마 실망하는 기색을 읽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 사람들이 아나필락시스 진이라는 부분을 들을 때였다.

그때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젠킨스는 자신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는 데에 꽤나 높은 확률을 부여할 수 있었다.

후후, 후후후후…….

젠킨스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비비며 웃었다.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이 맞은 듯하다.

저 붕대 밑에는 좀비에게 물린 이후 계속 다시 피를 흘리고, 좀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가 감춰져 있을 것 같은 반응이었다.

만약 정말로 그녀의 상처가 그런 상태라면…… 후우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어 젠킨스는 잠시 숨을 헐떡였다. 엄청난 보물이, 지구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바로 곁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최종 확인 단계가 남아 있으니까. 젠킨스는 테라가 사라져 간 방향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자, 이제 마음을 흔들어놓는 데는 성공했다.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테라는 지금 분명히 두렵고 실망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좀비에 대해 더 나은 면역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떻게 더 어르고 흔들어야 저 작은 천사가 내 앞에서 붕대를 풀어 보일까? 후후후, 후후후후…….

젠킨스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

젠킨스가 기대에 한껏 차올라 있을 때, 태양 그룹 빌딩의 지하에서는 실험체 번호 AX20324가 실험실로 끌려가고 있었다.

AX20324는 열일곱 살짜리 소년으로, A708756으로부터 혈액을 수혈받은 실험 대상이다.

비록 죽은 상태에서 채취한 피지만 심장 정지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상태였고, 최대한의 처리를 거친 것이었기에 혈액은 별 이상 없이 AX20324의 신체에 수용되었다. 그 결과, 그는 오늘 이 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저기…… 이 방, 이상한데요? 정말로 검진하는 방 맞아요? 왜…… 왜 바닥이 이렇게 철망으로 되어 있어요? 지하철 환풍구도 아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AX20324가 두려움에 떨며 되돌아 나가려 했다.

하지만 소년의 힘으로는 건장한 쉐도우 실드 대원들의 완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대원들은 AX20324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팔다리를 꽉 잡아 제압했다.

“왜 이러세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요! 네? 저 아무 잘못도 안 저질렀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침대에 결속당하는 동안에도 AX20324는 끊임없이 애원하고 사정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았고, 이상한 병 같은 것도 없다. 당장 오늘 아침만 해도 오 박사로부터 ‘아주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곳에 묶이는 거지?

AX20324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침대에 꼼짝 못 하게 묶어 둔 대원들이 두꺼운 철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도 끊임없이 살려 달라고 빌던 AX20324는 결국 포기하고 겁먹은 눈동자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 방, 너무 이상하다. 하나뿐인 대형 창문은 검은색 막으로 덮여 있고, 사방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저 바닥의 철망은 대체…….

불길한 예감에 소년의 눈에서는 눈물이 솟는다.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 그만 울어. 너무 흥분해 있는데, 좀 진정해. 그러다가 심장마비 걸리겠다.

오 박사였다. 자신을 아는 사람의 등장에 AX20324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오 박사님? 오 박사님이시죠? 저 좀…… 저 좀 구해 주세요! 저, 저 누군지 아시죠? 저 대형이에요! 김대형!”

― 알지. 오늘 아침에도 우리 만났잖아.

“네! 네! 박사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저를 왜 이렇게 묶어 놨는지 모르겠어요!”

― 대형아, 조용히 해 봐. 그렇게 흥분해서 떠들면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어. 알겠지? 말하지 마. 그만 울고.

아무리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봐도 오 박사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일단 AX20324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입을 꾹 다문 채 다음 말을 기다리려니, 너무 무서워서 자꾸 흐느끼게 된다.

끅, 끄윽, 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켜 보려 애를 썼다. AX20324가 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오 박사가 다시 말을 전했다.

― 무서워할 거 없어. 그냥 주사 한 방 맞는 거랑 비슷해. 따끔하고, 피만 조금 난다고.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울지 마.

“주사요? 무슨…….”

소년이 울면서 물었다.

― 입 다물라니까. 비유하자면 주사 같다는 거야. 아니면 너 혹시 개에 물려 봤니? 그 정도랑 비슷할 텐데.

“아니요……. 흑흑흑, 없어요. 박사님……. 제발 살려 주세요.”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오 박사의 목소리 톤은 흔들림이 없었다.

― 대형아, 우리가 요 며칠 너 검사도 해 주고 치료도 해 주고 그랬잖아.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그게 뭐일 것 같니?

모르겠어요, 소년은 끅끅 울면서 도리질을 했다.

― 우리 대형이가 좀비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았어. 좋지? 그래서 아주 간단한 실험을 하나만 할 거야. 아, 아, 울지 마. 안 죽는다. 그냥 살짝 한 번만 물리면 된다니까. 하하하, 너는 정말 겁이 많구나. 네 동생은 금방 울음을 뚝 그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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