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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Rush (5) (225/449)


225. Rush (5)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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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탁탁.

네 명의 발소리가 골목 안에 요란스럽게 메아리쳤다. 주차장까지 1미터쯤 남았을 때, 보안관이 모두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손가락으로 짚어 혜주와 두 친구에게 위치를 정해 준 보안관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인 채 주차장 반대편으로 가서 섰다. 그러고는 해머를 들어 올려 후려칠 자세를 취했다.

이 정도 소리도 내주고 사람이 네 명이나 뛰어와 줬으니 그 성의를 봐서라도 마중을 나와 줄 때가 됐다. 혜주도 배트를 어깨 뒤로 돌렸다.

크롸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포렴이 젖혀지면서 좀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우지끈!

가장 앞서서 뛰어나온 좀비가 먼저 해머를 맞았다. 쇄골과 목, 그리고 안면을 한꺼번에 강타당한 좀비는 골목을 가로지르며 날아가 건너편 건물 벽에 패대기쳐졌다.

두 번째 놈은 태권소녀가 맡았다. 배트를 짧게 잡고 기다리던 태권소녀는 보안관을 노리고 뛰어나오던 놈의 관자놀이에 정확한 일격을 날렸다.

아주 간결한 스윙이었다. 불필요한 동작도 없고, 눈은 끝까지 좀비에게서 떼지 않는다. 야구를 했어도 잘했을 것 같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두 번째 좀비의 뒤통수에 한 번 더 태권소녀의 배트가 들어가 꽂힌다. 쩍!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좀비는 바닥을 뒹굴었다.

카아악―

세 번째, 네 번째 좀비가 잇달아 튀어나왔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한 채 해머와 배트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보안관은 놈의 가슴팍을 쳐서 중심을 흐트러뜨리고 곧바로 해머를 다시 내리꽂아 정수리를 박살 냈다.

태권소녀는 네 번째 놈의 무릎을 때려 넘긴 뒤, 일어서려고 상체를 드는 놈의 목덜미와 뒤통수 중간을 노리고 매서운 스윙을 날렸다.

빠각!

목뼈인지 두개골인지, 하여튼 뭔가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턱이 홱 들린다. 아주 무리한 각도였다. 그로테스크한 모양으로 목이 꺾인 좀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뻗어버렸다.

“어, 어?”

스패너와 망치라는 짧은 무기만 가지고 뒤쪽에서 기다리던 유빈과 삼식이에게는 기회도 오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싸움이 끝나 버렸다.

다섯 번째 놈의 턱을 보안관이 후려갈기자, 팽그르르 돌며 자빠지려는 녀석의 머리통에 태권소녀의 배트가 날아든다.

뻐억!

순식간에 두 번이나 방향을 바꾸며 날아간 좀비가 엉덩방아를 찧을 때, 보안관이 그 대갈통을 말뚝 박듯 때려 버렸다.

와자작!

그 대단한 기세에 수십 개의 뼈가 한꺼번에 복합 골절을 일으킨다. 물론 좀비는 그 자리에서 더 일어나지 못한 채 목과 머리가 납작해져 죽었다.

“훗.”

보안관과 태권소녀가 서로 마주 보며 강자들만이 지을 수 있는 시건방진 표정을 짓는다.

‘꽤 하는데?’, ‘너야말로…… 뭐.’ 이딴 소리를 눈으로 주고받는 것 같다. 벌써 다섯 마리. 이쪽 거리에는 이제 스무 마리가 남았다. 분위기가 좋았다.

……계산에 없던 한 마리가 더 튀어나오기 전에는.

그롸아아악!

여섯 번째 좀비는 포렴 아래로 몸을 날렸다.

방심하고 있던 보안관과 태권소녀가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하고 피하기에 급급한 동안, 놈은 벌떡 일어나서 태권소녀의 다리를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피해!”

삼식이가 큰 소리로 외치며 망치를 휘둘렀다.

빠악!

망치는 좀비의 귓바퀴를 정확하게 때렸지만, 애초부터 그 정도로 죽을 놈들이 아니다.

콰당탕―

타격의 충격으로 날아간 좀비는 광고판을 자빠뜨리면서 함께 나뒹굴었다.

그와아아―

놈이 포효하며 다시 일어서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보안관이 있는 힘껏 휘두른 해머가 놈의 머리를 광고판 속에 박아 넣었다.

빠직!

박살 난 좀비의 머리가 두 겹의 플라스틱판을 모두 꿰뚫고 들어간다. 통, 통……. 놈의 뇌수가 떨어지며 플라스틱 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아~ 하아~ 뭐야? 왜…… 왜 여섯 마리야? 아까 분명히 다섯이었잖아.”

보안관이 숨을 몰아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섯 번째 좀비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는 태권소녀도 마찬가지여서 짧은 커트머리가 다 땀으로 범벅이 됐다. 하지만 삼식이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거, 아까 그놈들 아니잖아.”

“뭐?”

“아까 우리가 보고 쫓아왔던 그 좀비들이 아니고, 다른 놈들이라고.”

삼식이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정말? 그놈들이 아니라고?

세 사람은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좀비들의 시체를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또다시 봐도 이걸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다 똑같이 회색빛 피부에 검은 피딱지가 덮이고, 걸레처럼 찢어진 복장들이다. 하지만 삼식이니까 뭔가 다른 걸 봤을 수도 있다. 보안관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 걔들은 어떤 특징이 있었는데?”

“아니, 그걸 왜 모르지? 지금 잡은 여섯 마리 중에는 분홍색 페인트 바른 놈이 둘이잖아. 아까 이 안으로 들어간 놈들 중에는 하나밖에 없었다고.”

그런가?

기억을 되짚어 봐도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누가 좀비들을 쫓으면서 페인트 묻은 놈들이 몇인지를 헤아리고 있겠는가. 당연히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 주변에 다른 놈들은 없는지에만 관심을 갖게 마련일 텐데…….

“근데 이 페인트 바른 놈들 중에 하나는 아까 우리가 봤던 놈일 수도 있잖아. 그런데 너는 지금 완전히 다른 놈들이라는 식으로 말하네?”

바닥에 널브러져 목이 꺾인 시체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태권소녀가 물었다. 이번에도 삼식이는 답답해하며 일러준다.

“아까 걔는 페인트가 이런 식으로, 이렇게 오른쪽에만 잔뜩 묻어 있었어. 얘들처럼 골고루 뒤집어쓴 방식이 아니야. 한마디로 완전히 다른 놈들이야.”

확실히 삼식이는 장난기가 많고 아무 때나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 진지하고 위험한 일에 거짓말을 할 정도로 사리분별을 못하는 녀석이 아니다.

세 명은 다시 무기를 고쳐 잡고, 포렴 너머 여관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저놈 말대로라면, 아직 이 안에는 적어도 다섯 마리가 더 있다는 거다. 그런데 왜 나오지 않고 있는 거지? 바깥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보안관은 유빈과 눈빛을 교환했다.

들어가 봐야겠지?

응, 그래 보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자세를 낮췄다.

허리를 굽히고 흔들리는 포렴 아래를 통해 안쪽을 들여다봤다. 주차장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당연하다.

만약에 바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도 조금 전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좀비가 있다면, 그런 놈들이랑은 공존까지도 가능할 테니까.

네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차량 네 대 정도나 겨우 나란히 설 만한 좁은 주차장의 한쪽 끝에 여관 후문이 보인다.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거기를 제외하면 따로 갈 만한 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저기로 들어갔나 봐.”

보안관이 후문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음, 어쩌지…….

유빈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이건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까 골목을 막기 위해 작업을 하던 곳에서 여기까지는 20미터 거리밖에 안 되고,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다시 말해 오직 전방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만일 저 문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사방 어느 쪽도 안심할 수 있는 방향이 없어지는 거다.

당장 지금 이 순간만 해도 혹시 좀비들이 뒤에서 덮치는 건 아닌가 싶어 자꾸 포렴 쪽을 뒤돌아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자니 뒤가 영 찜찜하다. 어차피 이따가 다시 이 앞을 지나야만 자신들의 아지트인 파라다이스 모텔로 돌아갈 수 있다.

일곱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두 위험해질 바에는 차라리 지금 정찰을 해서 처리해 버리는 편이 낫다.

게다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규영이가 합류하게 될 귀갓길은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귀찮고 무서워도 지금 해치워야 한다.

“다들 갈 거지?”

유빈의 질문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힐끔, 문밖에서 들여다보니, 여관 내부는 꽤나 캄캄하고 음침하다.

물론 음침하다는 건 철저하게 기분이 반영된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보안관과 태권소녀는 좁은 공간에서 휘두르기 좋도록 무기를 바투 잡았다.

큰 건물이 아닌데도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단번에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네 명은 복도를 좌우로 훑고, 정문 쪽 입구까지 나가 봤다. 조그만 카운터와 계단 사이에 유리문이 있다. 지금은 박살이 나버려서 문틀만 겨우 붙은 채다.

삐죽삐죽 솟은, 날카로운 유리 파편의 여기저기에 찐득한 검은색 액체가 묻어 있다.

유성 볼펜의 잉크처럼 바짝 말라붙은 좀비의 피다. 안으로 들어왔던 좀비들이 아마 이 유리문을 깨고 거리로 나가 버린 모양이다.

“아, 이 새끼들……. 가만히 한자리에 진득하게 좀 있지.”

보안관은 불평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놈들의 뒤를 쫓아 움직였다.

길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검은 핏자국과 부서진 유리 파편, 그리고 썩은 몸뚱이에서 흘렀을 녹색의 체액만 따라가면 되는 것이기에 추격은 쉬웠다.

다만, 돌아가는 길이 점점 길고 멀어지는 게 불안해서 유빈은 자꾸 힐끔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여기서부터는 건물들에 가려져 제니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 각도다. 경보장치가 해제된 거라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난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코너를 도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증폭됐다.

“저기로 들어갔네.”

보안관이 가리킨 곳은 10미터 남짓 떨어진 삼거리 우측의 해물낙지집. 놈들이 흘린 검은 피와 체액이 그 앞에서 끊겨 있다.

전면 유리창이 박살 나 있는 걸 보니, 이번에도 유리를 깨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일행은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해물낙지집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끄롸아아― 끄와아아아!

갑자기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좀비들의 포효가 울렸다.

뭐야, 이건 또?

네 사람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파란색 페인트에 노란색이 점점이 묻은 얼룩덜룩이 좀비 세 마리가 그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분홍색이 아니다. 이놈들은 2차 이탈자였던 열네 마리 중의 일부인 것이다.

또 엉뚱한 놈들을 만난 건가? 그럼 그 다섯 마리는 대체 어디로…….

의아한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와장창! 요란하게 유리창을 박살 내며 원래 그들이 쫓던 좀비들이 몸을 날렸다.

얼굴과 온몸에 유리 파편이 박히고, 살가죽이 다 찢어져 근육까지 들여다보이는 좀비들 중에 한 놈이 유독 눈에 띈다. 삼식이가 말한 것처럼 오른쪽 옆구리 부근에만 핑크색이 칠해져 있는 놈이다.

“으앗!”

네 명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뒤쪽에서 얼룩덜룩이 좀비 세 마리.

옆에서는 그들이 쫓던 다섯 마리의 좀비. 이 상황은 분명 아까 옥상에서 유빈이 말한, 싸우지 말고 도망가야 하는 바로 그 조건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도망가기엔 늦었다는 거였다. 그놈의 빌어먹을 까만 핏자국을 너무 오래 쫓았다.

“이야아!”

보안관이 휘두른 해머가 핑크 옆구리 좀비의 광대뼈와 목뼈를 동시에 박살 냈다. 하지만 그 반동으로 놈의 몸에 박혀 있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튀었다.

윽! 고글을 쓰고 있는데도 유리 조각 공격은 여전히 매섭다.

유리의 예리한 단면이 핏― 하고 스치고 지나가자 따끔한 통증과 함께 볼에서 피가 흘렀다. 주춤하는 사이, 두 번째 놈이 해머의 자루를 잡고 누른다.

유리를 온몸에 박고 있는 좀비들 때문에 애를 먹는 것은 태권소녀도 마찬가지였다.

배트로 놈들의 몸과 얼굴을 때릴 때마다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파이터 둘이 그렇게 고전을 하고 있는 마당이니, 유빈과 삼식이가 겪는 난감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뜩이나 짧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핸디캡이 있는데, 졸지에 둘 다 한 놈씩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됐다.

빠악, 빠악!

삼식이가 망치를 휘두르며 뒷걸음질을 친다.

유빈도 스패너로 좀비가 뻗어오는 손아귀와 팔을 후려갈기고 있지만, 놈의 손바닥에 박힌 칼날 같은 유리 조각이 너무 신경 쓰인다. 저기에 목이라도 베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뛰어온 파랑 좀비 세 마리도 참전했다.

처음 분홍색 페인트 좀비는 보안관이 처리했으니, 이제 4:7의 싸움이 된 셈이다. 해머 자루를 가지고 좀비와 씨름을 하던 보안관이 발을 들어 놈의 배를 걷어찼다.

퍽!

300㎜ 안전화의 일격에 좀비의 몸이 뒤로 밀려나고, 그사이 보안관은 해머를 온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으야압!”

놈의 몸통을 향해 분노의 해머가 날아든다.

우두둑!

갈비뼈 박살 나는 소리가 울리고 명치 부근이 움푹 들어가 버린 좀비가 부웅― 날아가 박살 난 유리창 위로 떨어졌다.

이제 카운트는 4:6!

끈덕지게 해머를 잡고 늘어지던 놈이 떨어져 나갔으니 이제 보안관의 세상이다. 보안관은 달려드는 파랑이 좀비의 얼굴을 향해 해머를 풀스윙했다. 놈의 코가 꺼지고 턱뼈가 몇 개의 조각으로 박살 났다.

얼굴이 다 부서져 버린 놈이 몇 바퀴나 구르며 나뒹구는 동안, 보안관은 그다음 놈의 골반을 후려갈겼다.

으직, 다리뼈가 탈골된 좀비가 휘청거리며 한쪽으로 기운다. 보안관은 다시 한 번 해머를 돌려서 무방비로 노출된 놈의 옆머리를 호되게 때렸다.

끄르으~ 좀비는 이상한 비명과 함께 날아가 벽에 박혀버렸다.

그러는 동안 태권소녀는 자기 몫의 한 마리를 해치우고 더 도울 사람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삼식이와 유빈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무기만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외로 잘 싸우는 중이다. 하지만 동시에 둘 다 좀비를 완전히 압도하지도 못하고 있다.

누구를 먼저 도울까…… 고민하며 한 발을 내딛는데, 뭔가가 발목을 잡아당긴다. 아까 보안관이 명치를 박살 내서 유리창 안쪽으로 날려 보낸 좀비였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아직 죽지 않고 기어와 태권소녀의 발목을 낚아챈 것이다. 치명상을 주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중심만은 확실하게 흐트러뜨렸다.

윽!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으려고 급하게 발을 딛던 태권소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다쳤던 발목, 이제 겨우 조금 회복되나 싶었던 발목이 다시 돌아갔다.

으윽! 태권소녀는 골프 스윙을 하듯 야구 배트를 휘둘러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좀비의 팔을 떼어냈다. 그러고는 곧바로 스윙의 방향을 바꾸어 좀비의 머리통을 몇 번이고 사정없이 내려쳤다.

콰직― 콰직― 콰직―

수없이 정수리에 직격을 당하고 난 뒤, 태권소녀의 발목을 잡고 있던 놈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끄윽! 읏!”

태권소녀는 꺾인 발목을 끌다시피 걸어가 유빈의 맞상대인 좀비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빠작, 발목의 통증 때문에 정확하게 가격되지 않는다. 겨우겨우 목뼈를 때린 태권소녀는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여기까지가 한계다.

“다들 괜찮아?”

파랑이 좀비 세 마리를 모두 끝장낸 보안관이 뒤를 돌아봤을 때, 삼식이도 유빈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자기 몫의 좀비 머리를 깨뜨리는 참이었다.

45도 이상 꺾인 채 덜렁거리던 좀비의 모가지가 삼식이가 휘두른 최후의 일격에 완전히 부서져 버리고, 놈의 머리는 가죽과 힘줄에만 의존해서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다.

물론 목뼈가 다 박살 난 그 시점에서 놈은 이미 죽었다. 4대 8의 싸움이 승리로 끝났다.

“어? 너 왜 그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땅을 짚고 앉아 굵은 땀을 뚝뚝 떨어뜨리는 태권소녀를 발견한 보안관이 놀라서 뛰어간다. 유빈이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다.

“나 도와주려다가 뒤에서 덤벼든 놈한테 발목이 꺾였어. 가뜩이나 발목이 좋지 않았는데……. 괜찮아? 일어날 수 있어? 내가 부축해 줄게.”

“괜찮아. 이 정도쯤이야…… 내 발로 걸어갈 수 있으니까.”

부축하겠다는 유빈을 뿌리치고 태권소녀는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누가 봐도 걷기에는 무리다.

야구 배트를 지팡이 삼아 절뚝거리며 한 발을 뗄 때마다 그녀의 이마에서는 샤워기로 뿌려 댄 것처럼 투두둑, 투두둑, 땀이 떨어졌다.

물론 그렇게 걷는데 속도가 날 리 없다. 보다 못한 보안관은 해머를 삼식이에게 맡기고 태권소녀의 앞으로 가서 등을 들이댔다.

“뭐, 뭔데? 왜 이래?”

“너, 남의 도움 안 받겠다는 마인드는 좋은데, 이러다가 또 좀비들이라도 만나면 우리 전부 다 큰일 난다고! 업혀! 그게 네가 협조하는 거니까.”

고통을 참느라 그런 것인지 태권소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태권소녀가 보안관의 등에 기대며 목을 감았다. 그녀의 배트는 유빈이 받았다.

“……나 때문에 다 위험해지면 안 되니까 업히는 거야.”

“그래, 알았어. 엄청 고맙다, 업혀줘서……. 켁, 켁…… 야! 목은 조르지 마. 내가 네 다리 잡고 있으니까 그렇게 꽉 잡지 않아도 안 떨어뜨린다고.”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보안관과 태권소녀를 앞세우고 걷던 유빈은 삼식이가 갑자기 멈춰 서는 바람에 녀석의 등에 얼굴을 부딪쳤다. 유빈은 코를 문지르며 삼식이에게 물었다.

“아우, 코야. 왜 그래, 삼식아? 왜 갑자기 멈춘 거야?”

“저거 봐. 이상한 게 떠다녀.”

삼식이가 손가락으로 먼 하늘을 가리킨다. 유빈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이상한 게 떠 있었다.

군용 드론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고, 무선조종 비행기라기에는 너무 크다. 그 두 가지의 중간 크기 정도 되는 비행 물체가 하늘 위를 날고 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비행 물체보다도 그것이 뒤에 달고 있는 물건이었다.

배구 네트와 크기도, 모양도 비슷한 물건이 쫙 펴진 채 비행 물체를 따라서 떠다닌다. 그리고 거기에는 숫자 한 개와 알파벳 여섯 자가 흰 글씨로 적혀 있었다.

① RM, KF, FD

보고 있어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단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익히 알려진 약어도 아니다.

태권소녀를 등에 업은 보안관도 뒤늦게 그 괴비행 물체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네 개의 시선이 창공을 향해 꽂혔다. 보안관이 묻는다.

“뭐냐, 저거?”

다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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