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Rush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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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Rush (3)
2022.04.11.
그 시각, 삼식이와 신입은 담배 연기로 누가 더 큰 도넛을 만드는지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뽁, 삼식이가 입안 가득 모았던 연기를 내뿜자 거대한 뭉게구름이 튀어나온다.
신입이 만든 것보다 몇 배나 크고 두툼한 도넛이다. 하지만 곧바로 신입이 이의를 제기했다.
“아니, 아니! 그거는 실격이야. 안 된다고, 씨발! 끝이 벌어져 있잖아. 링이 아니야. 저러면 저게 추로스지, 도넛이냐?”
“하하하, 신입, 너 이제 슬슬 억지 쓴다? 담배 연기니까 당연히 풀어지지…… 엇!”
실없이 웃던 삼식이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낭패다.
“왜 그래, 또? 사람 후달리게. 씨발, 뭔데?”
“아, 젠장. 시계 타이머 세팅 안 했다. 출발할 때 누른다고 해놓고 깜빡했네. 신입, 우리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을까? 10분? 15분?”
“……글쎄다? 모르겠는데…… 15분까지는 안 지나지 않았을까? 대충 10분 정도? 에이, 10분도 아니야. 온 지 뭐 얼마나 됐다고. 근데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그 새끼들 오는 거 여기서 빤히 다 보일 텐데.”
“음, 네 말 듣고 보니까 그것도 그러네. 그럼 앞으로 10분 타이머 해놓고…….”
그렇게 말하며 전자시계 버튼을 조물락거리던 삼식이가 약간 씁쓸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는 이거 약 갈아 끼울 줄도 모르는구나.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한 일일 것 같은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아마 막상 해 보면 굉장히 어려울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배터리 떨어지면 멀쩡한 시계 그냥 버리고 새거로 바꿔 차야 돼. 허~ 누군가 얼마나 공을 들여서 만든 물건일 텐데……. 게다가 새 시계 적응하려면 은근 불편할 것 같기도 하고. 언제 시간 나면 시계 뜯는 연습도 해 봐야겠다. 약만 갈아 끼울 수 있는지.”
“헐, 진짜네? 그러고 보니 나도 손목시계 배터리 갈아 본 적 없어.”
그렇게 노닥거리는 사이, 저 멀리 도로를 꽉 채우고 걸어오는 것들이 보였다. 신입의 눈에는 아직 점처럼 작아 분간이 되지 않지만, 삼식이는 분명하게 알아보고 신입의 어깨를 두드렸다.
“온다, 온다. 가자. 자전거 올라타.”
신입이 허둥거리며 높다란 자전거 안장에 오르는 동안 삼식이는 한꺼번에 담배 몇 대를 더 불붙여 넣고 쿠키 통 뚜껑을 덮었다.
송곳으로 미리 자잘한 구멍들을 뚫어놓은 것이라, 이렇게 덮어 줘야 좀비의 발에 차여 담배통이 엎어져 버리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청테이프를 찢어 단단히 뚜껑을 봉해 놓은 뒤, 삼식이도 자전거에 올랐다. 두 사람은 담배통을 놓아 둔 곳으로부터 200여 미터 떨어진 사거리까지 가서 자동차 뒤에 몸을 숨긴 채 기다렸다.
과연 담배통 앞에서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멈춰 설지, 멈춰 선다면 거기에서 얼마나 시간을 지체하는지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삼식이의 시계 타이머가 세팅된 지 4분 21초 지났다고 표시하고 있을 때, 좀비 무리의 맨 앞줄이 담배통 부근까지 도달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근처에 온 놈들의 걸음이 좀 빨라진 것 같다. 처음에는 선두의 몇 놈이 멈춰 서서 흥미를 보였고, 이내 점점 더 많은 놈들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통 주변을 에워싼다.
“오, 저 개새끼들, 존나 좋아한다.”
신입이 소리 죽여 중얼거렸다. 담배가 좀비를 끌어들인다 어쩐다 말은 있었지만, 저 꼴을 라이브로 보는 건 처음인지라 삼식이도 마른침을 삼키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사이 모여든 좀비들은 더 늘어서, 이제는 원 모양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의 큰 덩어리로 밀집되어 있다.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며칠 내내 코스트코 부근의 모텔 옥상에서 놈들이 행진하는 걸 지켜봤지만, 저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한 지점에 모여 멍 때리는 건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원을 이루는 놈들 중에는 선명한 분홍색으로 온몸이 덧칠해진 좀비도 드문드문 섞여 있어 코믹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놈들을 멈춰 서게 하는 동기가 담배 연기 혹은 그 타오르는 열기에 대한 증오인지, 호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로 분명해졌다.
좀비들은 담배에 끌린다. 흡연자인 둘에게 좋은 소식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안 좋은 소식도 있다.
좀비들 중 꽤 많은 놈들은 담배를 그냥 지나쳐 일정한 속도로 걸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에 끌리려면 아예 전부 예외 없이 끌리든가, 아니면 아예 철저하게 무관심하든가 하지 않고, 확률의 문제로 넘어가 버렸다.
어떤 놈은 끌리고, 어떤 놈은 무관심하고…… 이러면 정 급할 때 담배통을 멀리 던져서 그걸로 놈들의 주의를 끌고 그 틈을 타서 달아나는 꼼수 같은 것도 쓸 수 없다. 여전히 담배는 못 피우면서 말이다.
“이제 가자. 여기 더 있다가는 저놈들이 우리 알아채겠다.”
다가오는 좀비들의 거리가 100미터 이내로 좁혀졌을 때, 삼식이와 신입은 얼른 페달을 밟아서 친구들이 기다리는 코스트코 앞으로 돌아갔다. 공연히 놈들을 자극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어서 와! 이쪽으로 와야 돼. 그쪽은 다 막았어.”
인도의 빨랫줄 함정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유빈이 자신을 향해 오라고 손짓을 한다.
삼식이와 신입은 자전거를 들고 두 줄로 된 트랩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모텔 현관 안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철컹!
보안관이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를 잠갔다.
“어땠어? 좀비들, 담배 보고 멈춰 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는 동안 유빈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삼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흡연의 자유를 빼앗긴 게 어지간히 아쉬운지 한숨까지 푹 내쉬면서……. 신입도 꽤나 실망한 얼굴이다.
“응. 멈춰 서기만 하는 게 아니고, 아예 빙 둘러싸더라. 아, 젠장. 그 새끼들, 그냥 담배 같은 데 끌리지 말지. 좀비가 담배 좋아한다는 거는 헛소문이었다…… 이랬으면 나도 마음 편하게 피울 수 있을 텐데……. 아, 근데 좀 웃긴 게, 좀비들 중에 비흡연자들도 있나 봐. 어떤 놈들은 그냥 앞만 보고 쭉 걸어오더라고.”
“그래? 그건 의외네. 비율이 어떤데? 어떤 놈들이 더 많아? 끌리는 쪽, 안 끌리는 쪽?”
“비슷……한 것 같은데? 처음에 오던 놈들이 담배를 빙 둘러쌌고, 나중에 온 놈들은 그냥 못 본 척하더라고……. 아닌가?”
거기까지 말하던 삼식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정확한 비율을 말할 만큼 오래 보고 있지 않았다.
좀비와의 거리가 너무 줄어들기 전에 이쪽으로 와버렸기 때문이다. 삼식이는 생각을 다시 정리해서 말해줬다.
“음, 비율은 말하기가 좀 그럴지도 모르겠다. 점점 가까이 오는 놈들이 있어서 그냥 얼른 도망쳤거든. 조금 더 서서 보다가 올 걸 그랬나?”
“아냐, 아냐. 잘했어. 괜히 위험한 일 할 필요 없어. 끌리는 놈들이 있다는 건 확인했잖아. 일단은 그걸로 된 거야. 어차피 내일도 또 나가 봐야 하는데, 무리하지 마.”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옥상으로 나가며 유빈이 등을 두드려 준다. 이미 올라와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맞이했다.
내일? 내일 또 나한테 목숨을 걸라고? 왜?
신입이 과장되게 반응하며 인상을 썼다. 여자애들이 보고 있으니 뭔가 더 숭고한 일을 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나 보다. 유빈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몇 번 더 수고해 줘. 내일은 너희 전자 담배에 넣는 그 니코틴 용액 있지? 그 누런 거. 그걸 어느 정도 가져가서 스펀지나 이런 데 뿌려놔 봤으면 좋겠어. 그래 보면 좀비들이 니코틴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에 담배에 끌리는 건지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잖아.”
“그러지, 뭐. 아하, 저렇게 문끼리 묶어 놨구나. 어이~ 꼬마, 망 잘 보고 있었어?”
삼식이가 버릇처럼 규영의 머리카락을 엉클이며 장난을 건다.
아이, 씨, 머리 만지지 말라고!
규영은 또 싫어서 난리를 친다. 보안관은 그 꼴을 보고 껄껄거리고, 잠시나마 아주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지켜보는 일이 남았다.
“저거, 근데 얼마나 무거운 것까지 버텨?”
열 손가락을 총동원해 겨우 머리카락 세팅을 다시 끝낸 규영이 자동차 창문들을 연결한 빨랫줄을 가리키며 묻는다. 음, 유빈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에 옥상에 갇힌 보안관과 삼식이를 구출하러 갔던 날, 제니와 옥상에서 그 두 놈을 만났을 때 경험해 본 바로는 성인 남자 두 명의 무게를 잠시나마 버텼다. 지금 저건 너덧 겹으로 둘러 놓았으니 더 튼튼할 것이다.
“글쎄, 200킬로그램 이상은 충분히 버틸 것 같은데……. 저거, 밀어서 끊기는 정말 어려울 거야. 아마 앞쪽에서 미는 힘 때문이 아니라, 옆쪽의 쇠나 뭐 날카로운 데 긁히면서 빨랫줄의 올이 점점 풀리다가 끊어지지 않을까?”
“그래? 저렇게나 가느다란 줄이…….”
규영이가 감탄하며 지켜보는 동안 드디어 분홍이 좀비들이 코너를 돌아 등장했다. 옥상 위의 일행은 숨을 죽이고 놈들이 트랩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지켜보았다.
퉁, 자동차 사이를 걷던 놈이 열린 문에 부딪치더니, 뒤로 살짝 밀린다.
그리고 그다음 놈들도 마찬가지로 문과 문 사이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한다. 자동차 지붕을 타고 오던 놈들은 걸어 둔 로프에 가슴이 걸려 아래로 나동그라졌다.
‘자, 어떻게 할 거냐? 막혔어. 너희들이 다니던 그대로 가려고 하면 못 가.’
유빈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좀비들을 바라본다.
예전에 복지 센터 아래쪽의 도로에서 자동차 사이를 막아 놈들을 불태워 죽일 때에는 아예 출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촘촘하게 케이블을 쳐 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저 문을 양쪽으로 벌린 뒤 고정시킨 것이 사실상 장애물의 거의 전부라서, 놈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무지하게 많다. 이게 오늘의 세 번째 실험이다.
그르르르르~
정체가 발생한 도로 여기저기서 좀비들이 낮게 그릉대기 시작했다.
뒤에서 밀려오던 놈들이 앞에 멈춰 선 놈들과 부딪치고, 앞에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려던 놈들이 밧줄에 걸려 뒤로 나자빠진다.
쿵, 쿵!
자동차 문짝을 향해 몸통 박치기를 하는 놈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물론 그 정도로는 아직 뚫리지 않는다. 태권소녀가 얼마나 꽉 묶어 둔 빨랫줄인데…….
자동차 창문 사이로 대가리를 들이미는 놈이 나타났다. 녀석은 어깨까지 꽉 낀 상태에서 계속 밀고 나가려고만 한다.
“야, 저거 보고 있으니까 좀 아쉽다. 빨랫줄이 아니라 톱을 걸어 놨어야 하는 건데. 그랬으면 저 새끼들 다 셀프로 모가지 뎅겅뎅겅이잖아.”
신입이 입맛을 다신다. 다른 사람들이 대꾸하지 않자 신입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해서 그런 줄 알고 한 번 더 정식으로 제안을 한다.
“야, 어때? 내일은 저딴 거 말고 아예 톱이랑 칼을 달아 놓자. 얼마나 편해? 저희들 발로 와서 저희들이 다 알아서 썰려 줄 거 아니야?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싹 다 죽여 버리는 거지. 아이디어 쩔지? 이런 생각을 좀 해내란 말이야.”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신입에게 유빈이 대답해 줬다.
“다 못 죽여. 톱을 고정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그래 봐야 몇 마리 못 죽이고 부러질 거야. 피랑 지방이 엉겨서 결국 날이 하나도 안 남아날 테니까. 그러면 그다음엔 톱이고 칼이고 가릴 것 없이 그냥 얇은 쇠판일 뿐이야. 게다가 그 많은 톱은 다 어디서 구하고?”
“그래도 수를 줄이는 게 어디냐. 시작이 반이랬잖아. 하여간 이 새끼, 해 보지도 않고 질투만 많아서.”
“아니, 씨발. 저렇게 많은데 몇십 마리 죽인다고 그게 무슨 표가 나냐? 그냥 조용히 보고 있어, 좀! 정신없게 하지 말고.”
귀찮아서 상대도 해주지 않던 보안관이 더 못 참고 쏘아붙인다. 기세에 눌린 신입은 삼식이 뒤쪽으로 물러나 혼자 입속으로 뭐라고 욕설을 중얼거렸다.
사실 저 많은 걸 다 죽일 수 있다고 해도 큰 문제가 난다.
예전에 복지 센터에서 가시방석으로 몇십 마리를 해치웠을 때도 악취가 풍기는 그 시체들을 치우느라 그 죽을 고생을 했는데, 천 마리가 이 앞에서 죽어 자빠지면…….
만약 그렇게 되면 다른 아지트로 옮겨가든가, 한 달 내내 코를 막고 시체만 들어서 치워야 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어후, 쟤 저거 살이 다 찢어지는데도 좋단다. 어어어, 야…… 어깨 빠진다, 인마.”
삼식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창문 틈새를 억지로 비집고 들던 놈의 쇄골이 부러지고 어깨가 빠진다.
아래로 축 처지며 좁아진 어깨 덕에 녀석은 결국 어찌어찌 창문을 통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놈의 피부와 옷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리고 부러진 어깨 때문에 제대로 땅을 짚고 일어나지도 못한다.
다른 좀비들은 그 녀석보다는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몇 번 트랩에 걸려 뒤로 튕겨 나갔던 놈들은 어찌어찌 두 로프의 사이로 대가리를 들이밀기도 했고, 아니면 힘을 합쳐 자동차 문을 밀어 댔다.
뿌드득, 뿌드득, 자동차 문의 경첩에서 가장 먼저 한계 신호가 들려왔다. 하긴 문짝 하나에 좀비 대여섯 마리가 몰려 온 체중을 실어 대고 있으니, 부서진대도 이상할 건 없는 상황이긴 하다.
바닥을 기는 놈들도 등장했다. 문짝 쪽도 안 되고, 자동차 위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도 줄에 걸려 무산되자 몇몇 놈들이 바닥을 택했고, 자동차의 하체와 도로 사이로 기어 나왔다.
그냥 무작정 정면에서 밀어 대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의외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워낙에 앞에서 자동차로 달라붙은 놈들이 많아 그 사이를 비집고 기어 들어갈 틈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벌레 같네요. 뭘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갈 수 있는 방향은 다 가 보는 모양이에요.”
소름이 돋은 팔을 쓸면서 제니가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처럼 좀비들은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본능처럼 이리저리 계속 움직여 댔다.
대다수의 좀비들이 트랩에 막혀 정체되어 있는 동안, 함정에서 빠져나온 몇십 마리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예전의 루트를 따라 계속 걸어가 버렸다.
어깨가 탈골된 놈도 비척비척 움직인다.
저것들에게는 동료 의식이랄지, 뭐 그런 게 정말 조금도 없는 모양이다. 물론 20여 미터 뒤에는 똑같은 구조의 두 번째 트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놈들은 다시 또 막혔다.
“큭큭, 쟤 좀 봐. 아까는 잘 기어갔으면서 이번엔 또 민다. 그새 까먹었나 봐.”
두 번째 트랩에 먼저 도착한 좀비들이 문짝을 밀며 그릉거린다.
이것들에게는 학습 효과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렀고, 첫 번째 트랩에서는 하나둘씩 빨랫줄이 끊어지고 자동차 문짝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와아아―
트랩이 뚫려 좁게 길이 열린 곳으로 좀비들이 몰리며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우드득, 뿌드득.
마침내 첫 번째 트랩이 모두 파괴되었다. 총 24분 이상이 지난 시점의 일이다. 트랩은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다.
“후달린다. 얼룩덜룩이도 빨리 와 줬으면 좋겠는데.”
유빈은 초조한 얼굴로 두 번째 트랩 앞에 모여 서 있는 좀비들과 시계, 그리고 파랑노랑이들이 등장할 사거리 방향을 번갈아 보았다.
첫 번째 트랩이 예상보다 더 오래 버텨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함이 온전히 가시지 않는 건…… 저 너머에다가는 아무런 보험도 장치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게 만일 맥없이 뚫려 버리면 오늘 한 일 중의 절반은 헛수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드드득, 빠드드득.
로프가 하중을 받아 요란하게 울릴 때마다 가슴이 묵직해진다.
“오, 저기 온다! 어서 와! 어서!”
손으로 빛을 가린 채 사거리 쪽을 살피던 삼식이가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파랑노랑 얼룩이들의 등장이다. 얼룩이들은 태연하게 도로 위를 걸어와 아직도 트랩을 뚫지 못하고 있는 분홍이들 무리의 뒤쪽과 합류했다.
합류하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나 머뭇거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뒤섞이고 있다. 좀비 무리들을 인위적으로 합체시키는 데 성공한, 역사적인 순간이다.
두 배로 늘어난 좀비들이 트랩에 갇히면서 도로 위는 순식간에 혼잡스러워졌다. 냄새도 장난이 아니다.
이제는 빨리 빨랫줄을 끊고 여기서 나가 줬으면 좋겠는데, 맨 앞에 선 놈들이 어지간히 멍청한지, 도무지 한 걸음도 나아가지를 못한다.
수십 미터에 걸쳐 늘어선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자동차 사이를 메운 채 서성이며 포효한다.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어? 저, 저! 저 새끼들! 야! 이리로 오지 마! 너희들 일행 따라가라고, 이 개새끼들아!”
보안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좀비들 무리의 뒷줄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놈들 중 일부가 대열을 이탈해서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으로 와서 그렇게 무리를 벗어나는 놈들을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기다림이 길어져서 지루해진 놈들이었는지, 혹은 이 함정을 만든 범인을 찾기 위해 나선 특공대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모텔 골목 쪽으로 좀비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으아!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만 와! 여섯, 일곱…….”
유빈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탈한 좀비들의 머릿수를 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