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8. 칠월의 마지막 날 (4) (218/449)


218. 칠월의 마지막 날 (4)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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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가 끝나는 지점, 폭이 20미터는 족히 될 넓은 방에는 커다란 둥근 금속 기둥이 수직갱을 따라 서 있다. 이 터널의 공기 순환을 담당하는 환기탑이다.

환기탑의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좀비들이 금속 기둥을 에워싼 채 풀쩍풀쩍 뛰고 있었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좀비들이 포효하며 기둥을 들이받고, 그 충격에 금속판이 울리며 괴이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쿠오오오― 고오오오―

놈들이 노리는 것은 기둥을 빙 둘러 부착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금속 회전판들이다. 에어컨의 송풍구와 유사한 구조로 열리고 닫히며 공기의 흡입을 조절하는 장치다.

물론 전기가 끊어진 지금, 인위적인 조절은 되지 않지만, 유입되는 공기의 양과 방향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쉼 없이 여닫혔다.

회전판들이 열릴 때마다 빛이 번쩍이는 걸 보면, 이 금속 기둥은 외부에 돌출된 형태로 햇빛을 투과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놈들은 열린 회전판의 그 좁은 틈새로 빛이 반사되기만 하면 열광하듯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왜? 대체 왜 저렇게 빛을…….’

진우는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번쩍거리는 곳에 뛰어들어 어떻게든 빛을 차지하려는 그 모양새는, 개나 고양이들이 거울에 반사된 빛을 쫓아 뛰어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이놈들은 반사된 빛의 방향에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손바닥만큼 비쳐 드는 빛을 붙잡아두려고 한다.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바로 등 뒤에 진우가, 살아 있는 인간이 와 있는데도 뒤를 돌아보는 놈은 단 한 마리도 없다.

가장 인기가 있는 지점은 회전판이 부서져 꺾인 곳이다.

놈들은 날카로운 회전판의 단면에 이제는 다 말라붙어 버린 살가죽이 찢겨 나가면서도 그 안으로, 장밋빛 햇살이 비쳐 드는 곳으로 뛰어들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다.

삼척에서 원자력발전소 건물을 에워싸고 있던 놈들 이래 이만큼 열정적인 놈들은 본 적이 없었다.

속도나 힘도 여느 좀비들보다는 못하지만, 아까 터널에서 보았던 것처럼 약해 빠진 놈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굉음이 좀비들을 약화시킨다는 진우의 가설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났다.

돌아가자…….

햇빛이 비쳐 드는 금속 기둥을 향해 광기 어린 다이빙을 하는 좀비들을 보면서 진우는 생각했다.

빨리 가자. 이놈들이 여기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그때였다.

반짝― 다시 회전판이 돌면서 햇살이 비쳐 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거짓말처럼 반짝임이 사라지고 주변은 완전한 어둠 속에 묻혔다.

진우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노을로 경고를 해주었던 해가 마침내 서편으로 넘어갔다. 강원도에 밤이 찾아온 것이다.

그롸아아아아―

기둥을 에워싼 채 들이받고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진우를 향해 돌아선다. 햇살 놀이가 끝났으니 이제야 불청객과 놀아주고 싶은 모양이다.

“으아아아―!”

진우는 곧바로 뒤돌아 뛰었다.

저놈들, 그렇게 빠르지 않다. 바깥에 있는 놈들처럼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그런 괴물들이 아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달리기만 하면!

“하아~ 하아~”

문!

발굽으로 고정되어 있던 열린 철창문이 기억난다. 그 문만 잠가 버리면 된다! 놈들의 지능으로는 손잡이에 달린 그 작은 자물쇠를 돌려 안으로 끌어당길 정도가 안 될 거다!

진우는 플래시를 켜고 앞을 비추면서 죽어라 달렸다.

그롸아아아아―

좀비들도 지지 않고 달려온다. 하긴, 얼마 만에 만난 신선한 인간의 피와 살일 텐데…… 당연하다.

탁탁탁탁탁―

수없이 많은 발이 한꺼번에 대지를 두드릴 때에만 나는 그 발소리가 등 뒤에서 울린다.

개새끼들아! 돌아가서 기둥이랑 좀 더 놀아! 잠시 구름이 낀 건지도 모르잖아!

진우는 돌아보고 싶은 욕망을 꾹 참으며 이를 악물고 뛰었다.

검은 핏자국이 잔뜩 묻어 있는 넓은 방을 지나, 급격한 곡선으로 된 복도의 벽을 따라 달렸다. 속도를 못 이겨 몇 번이나 손으로 벽을 밀쳐 내야 했다.

젠장, 총 두 자루를 달고 뛴다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마침내 문이 보인다. 이제 결정의 순간이 왔다. 딱 한 번, 지금은 뒤를 돌아봐도 된다. 아니, 돌아봐야 한다.

진우는 총구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가장 앞서서 쫓아오는 놈들은 다섯 마리. 그 뒤로는 곡선의 복도 벽 뒤에 가려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린다.

투투둑― 투두둑― 투투둑― 투두둑―

총알을 아끼지 않고 재빠르게 갈겼다. 어찌나 서둘렀는지 두 마리는 머리에 맞추지도 못했다. 당연하다. 그냥 복도 전체에 붓 칠을 하듯 갈긴 거니까…….

가슴과 어깨가 박살 난 채 날아간 두 마리가 그륵거리며 일어나려 애쓰는 동안, 진우는 급기 환기실 문의 고정 발굽을 전투화로 걷어차 올리면서 안쪽의 자물쇠 손잡이를 돌리고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롸아아아아―

뒤를 따르던 제2열의 좀비 수십 마리가 코너를 돌아 달려 나오며 뒈진 놈들의 대갈통을 걷어차고 짓밟는다. 진우는 바깥에서 문을 끌어당겼다.

콰당!

두꺼운 쇠문이 닫혔다.

철컥.

자물쇠가 걸리는 이 믿음직한 소리.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아주 살짝 돌려봤다. 잠겼다. 바깥에서 돌아가지 않는다.

쿵!

진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문이 흔들리며 둔중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좀비들이 몸통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다.

그리고 좀비들의 손가락이 철창 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진우는 얼른 손잡이를 놓고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꽉 누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쿵― 쿵―

문은 계속 흔들리지만, 굳건하게 닫혀 있다. 정말 어지간한 행운이 놈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롸아아아―

분을 이기지 못한 좀비들의 포효하는 소리가 쇠문 틈을 통해 들려온다. 이제 이 문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알겠다. 공기 흡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살았다……. 내가 미쳤지, 거기를 왜…….”

이마의 땀을 닦아낸 진우가 탄창을 갈아 끼우고 있을 때, 지금껏 숨죽이고 있던 또 다른 자아가 낄낄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 하여간 너는 멍청해. 그냥 네 갈 길 갔으면 이 고생 안 했지. 너는 가야 할 때 망설이고, 망설여야 할 때 가는 밥통이야.

“지랄하지 마. 그래도 이렇게 잘 막아냈어, 멍청아.”

진우는 이를 바득 갈며 무시했다. 이번에는 정말 괜한 짓을 하기는 했다. 만약 이 쇠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면…….

휴우우~ 그 생각만 해도 아찔해서 한숨이 난다. 그 많은 좀비들이 그렇게 좁은 데서 달려드는 꼴은 정말 어마어마한 박력이었다. 소리로 좀비를 무력화시킨다니, 어리석고 엉뚱한 꿈을 꾸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좀 진정시킨 진우는 정비로를 따라 다시 걸었다.

더 쉬고 싶어도 계속 문을 들이받는 좀비들 때문에 불안해서 그렇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굉음이 끝나니 이젠 저놈의 쿵쿵, 소리. 이 터널은 잠시라도 조용하면 안 되는 곳인가 보다.

“젠장, 여기서 나가도 이젠 깜깜하겠네.”

아까 진우가 발을 돌렸던 그 통풍관들 아래까지 왔다. 통풍관 안쪽, 저 너머에서 좀비들의 포효가 울려온다. 놈들의 악취는 덤이다. 진우는 통풍관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까 그 방이랑 여기가 이어진 건가…….”

사방은 캄캄하고, 등 뒤에서, 그리고 머리 위에서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멈춰 선 자동차들의 시꺼먼 형체뿐. 그야말로 귀신의 집이 아닌가.

라이브 귀신의 집.

등 뒤에서 울리는 쿵쿵, 소리가 문이 닫혀 있음을 보증해 준다는 걸 알면서도 심장이 오싹해져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배기관을 통해 울리는 울음소리도 한몫을 했다. 질린다.

그 뒤로 소화기를 또 여섯 개 지났다. 이제 슬슬 출구가 보여야 하지 않나 싶은 지점이다.

도중에 전기실이라고 써 붙여진 방을 만났지만,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 왔다. 더 이상의 오지랖은 부리지 않을 계획이다.

“급기 환기실…….”

진우는 조금 전 자신이 잠그고 나왔던 방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방금 지나온 곳이 전기실.

아닌데…….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급기 환기실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절로 연상되어야 하는 짝 단어가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 공사하러 다니면서 주워들은 풍월이다. 전기실은 확실히 아니다.

“뭐지? 급기 환기실…… 그 짝이……. 아, 이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나 봐. 수분이 부족해서 그런가?”

진우는 뒤로 손을 뻗어 배낭에서 물을 꺼내기 위해 멈춰 섰다. 잠시 시선이 정면에서 벗어난 사이, 플래시 불빛 저 너머에서 자동차들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휙 스쳐 간다.

“또 나왔냐? 너희는 안 무서워, 새끼들아. 저 환기실 쪽 놈들이 무섭지.”

터널 내에서 세 번째로 그림자들을 만났을 때, 진우는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거리도 있겠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잡아도 된다.

어차피 이놈들도 조금 전 보았던 두 무리처럼 느려 터진 놈들일 테니까.

환기탑 주변에 있던 좀비들과 달리 이 터널 안에 있던 놈들은 두려울 게 없다. 햇빛을 보지 못해 골다공증이라도 걸렸는지 고함도 지르지 못할 만큼 무기력한…….

그롸아아아아악! 그와아아―!

“어?”

전혀 예상치 못한, 박력 가득한 포효에 진우는 물병을 찾던 손을 급하게 되돌려 총을 고쳐 잡았다.

이 좀비들은…… 뛰어온다.

그라아악―

게다가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타앙― 타앙― 타앙―

보닛을 밟고 뛰어오르는 놈부터 대가리를 꿰뚫었다. 그러고는 자동차들 사이로 내달려 오는 놈과 난간을 붙잡고 정비로로 기어 올라오려는 놈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하지만 아직도 더 있다.

타앙―

자동차 지붕을 밟고 겅중겅중 뛰어오던 놈의 머리를 날린 진우는 곧바로 총구를 돌려 2차선 쪽에 바짝 붙어 달려오던 놈들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순식간에 일곱 마리의 좀비를 잡았지만, 그래도 꽤 아슬아슬했다. 가장 마지막에 죽인 놈은 그가 서 있는 정비로에서 채 댓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엎어져 있다.

“하아아~ 뭐야, 이 새끼들…… 환기실 쪽 놈들인가? 한 가지만 좀 하지……. 사람 헷갈리게. 느렸다, 빨랐다……. 하아아~”

혹시 좀비가 남아 있나 싶어 사방으로 총구를 돌리면서 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혹시나 싶어 뒤도 돌아보았다. 조용하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빠르고 힘센 놈들은 조금 전, 그 급기 환기실이라고 적힌 철문으로 막아두고 왔다. 그러니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데 왜…….

“기억났다……. 급기하면 배기지……. 배기 환기실이네.”

영혼이 없는 목소리로 진우가 중얼거렸다. 답이 떠올라 줬지만, 하나도 반갑지가 않다. 공기를 빨아들이는 곳이 있으면 빼주는 곳도 있는 법. 그 환기탑과 이어진 문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의 그 비스듬히 휘어진 복도 모양을 생각하면, 배기 환기실 문이 어디쯤 있는지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칭을 이루며 이 앞쪽 어딘가에 뚫려 있어야 맞다.

그리고 아마도 그 문은…… 열려 있나 보다.

그롸아아아아―!

진우의 예측이 정답임을 알리며 배기 환기실 문을 통해 좀비들이 뛰쳐나온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100여 미터 전방. 너무 멀어서 플래시 불빛이 선명히 닿지도 않는다. 그저 뭔가 검은 그림자들이 휙― 휙― 뛰쳐나오고 있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투두둑― 투두둑― 투두둑―

진우는 문가를 향해 지향 사격을 하며 재빨리 주야 조준경을 켰다. 전원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탄창 하나를 다 소진했다. 하지만 워낙 어두워서 뭐가 맞았는지 아닌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터널을 뒤흔들며 메아리치는 총소리 때문에 고막은 터져 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놈들은 그렇게 깜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진우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하고 있다. 존나게 불공평하다.

“왔다, 왔어!”

탄창을 갈아 끼우는 사이, 주야 조준경의 녹색 화면이 들어오는 걸 확인한 진우는 얼른 플래시를 껐다. 이제야 조금 비슷한 처지에서 싸우게 됐다.

70여 미터 전방, 좁은 정비로를 가득 메우고 좀비들이 떼로 달려드는 게 보인다.

그 바로 옆의 차선에서도, 그 옆의 자동차 지붕 위에서도 좀비들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비슷한 처지에서 싸운다는 말은 취소다.

탕― 탕, 탕탕, 탕, 탕탕탕탕탕―!

정비로, 아래 도로, 자동차 위, 다시 도로, 정비로, 자동차 위…… 그 순서에 따라 쉬지 않고 총구를 움직여 가며 총알을 날리지만, 역부족이다.

개새끼들이 너무 많다. 끊임없이 쓰러뜨리고는 있지만, 좀비들과의 거리는 계속 줄어든다. 이 자리에서 멍청하게 기다렸다가는 죽기 딱 좋다.

화르륵― 퍼엉!

그 순간, 배기 환기실 문 앞에 멈춰 서 있던 자동차 중 한 대가 갑자기 불길에 휩싸이더니 폭발해 버렸다. 처음에 플래시로 비춰보며 아무렇게나 날린 총알이 연료통을 때렸던 모양이다.

뛰어나오던 좀비들 중 몇 마리가 폭발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지고, 다른 놈들은 머리카락과 옷에 불을 붙인 채 달려온다.

화르륵―

구형 쏘나타가 활활 타오른다. 잘된 건지, 더 안 좋게 흘러가는 건지조차 판단하기가 어려울 만큼 진우는 혼란스러웠다. 일단 놈들이 직선으로 달려올 수 있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투투둑― 투투둑―

진우는 계속 뒷걸음질을 치면서 총알을 날렸다. 오직 주야 조준경 안에서만 또렷하게 보이는 좀비들은 진우의 총구가 돌려질 때마다 뇌수를 흩뿌리며 쓰러진다.

안전한 곳, 안전한 곳!

머릿속에는 그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가 안전하지? 어디로 달아날 수 있지?

좀비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욕망은 아주 혹독하게 대가를 요구하며 그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 본능처럼 뒤를 돌아보아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뿐이다.

완전한 어둠. 주야 조준경을 통해 보지 않으면 바로 옆에 뭐가 있는지, 자신이 어디쯤을 지나는 건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플래시를 켜자니, 그러면 주야 조준경이 무력화되고 시야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계속 뒤로만 물러나던 진우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지금 막 지나친 자리의 오른쪽 차선에 나타난, 높고 커다란 차체가 도로 쪽의 시야를 가렸다.

고속버스다. 꽤나 안전한 곳. 넓고, 높고, 폐쇄적인 곳이다. 측면, 후면 모두 유리창이 높이 나 있어서 좀비들이 쉽게 깨고 들어올 수 없는 장소다. 오로지 정면만 신경 쓰면 되는 장소다. 게다가 문도 열려 있다.

이거다 싶어진 진우는 도로와 정비로 위로 달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난사한 후, 곧바로 난간을 넘어 도로 위로 내려섰다.

열린 문을 통해 버스 안으로 뛰어든 진우는 녹색 화면을 통해 내부를 비춰보자마자 곧바로 후회했다.

여기…… 결전의 장소로 삼기에 영 별로다. 그가 상상했던, 그런 공간이 아니다. 양쪽으로 두 개씩 빼곡하게 들어찬 좌석들 때문에 시야는 반 토막이 나고, 움직일 수 있는 복도는 너무 좁다.

그나마도 엉망으로 버려진 짐들과 쓰레기들 때문에 걸어 다니기에 영 불편하다. 게다가 무슨 영문인지 앞문은 닫히지도 않는다.

“아, 씨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진우는 서둘러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후면의 넓은 유리창을 통해 달려오는 좀비들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다. 이제 돌아 나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

버스 맨 뒷자리까지 걸어간 진우는 손으로 짚어 후면 유리창이 온전한 것을 확인한 뒤, 넓은 뒷좌석에 기대앉았다.

퉁― 퉁―

버스 차체에 부딪쳐 가며 좀비들이 달려온다. 그리고 좌우의 창문에도 뻗어 올라와 두드리는 손바닥이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열려 있는 앞문으로 첫 번째 손님이 입장할 것이다.

진우는 탄창을 갈아 끼우고 총구를 정면으로 겨눴다. 녹색 화면 안에 의자들 사이로 덥수룩한 머리가 하나 쑤욱 들어온다.

타앙―

진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첫 번째 좀비가 녹색 뇌수를 흩뿌리며 바닥에 고꾸라진다. 놈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은 버스의 앞 유리에 박히며 커다란 금이 가도록 만들었다. 좋지 않다.

두 번째 놈과 세 번째 놈이 다투듯이 거의 동시에 뛰어 올라온다.

타앙― 타앙―

두 발의 총성. 그리고 두 놈이 쓰러지기도 전에 또다시 다른 놈들이 밀려들었다. 상황은 점점 급박해진다.

탕, 탕, 탕탕탕―

입구에 쌓이는 시체들이 늘어가면서 진우가 느끼는 압박감도 커졌다.

와장창―

여러 차례 총알에 관통당해 이미 박살이 나 있던 전면 유리창이 완전히 부서져 내린다.

턱― 턱―

창틀을 붙잡고 오르려는 손들이 몇 개나 한꺼번에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서너 방향에서 동시에 좀비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거라는 의미다.

- 이제 알겠다. 넌 그냥 뒈지고 싶었던 거구나? 완전히 지쳐서 그냥 죽을 자리랑 방법을 찾고 있었던 거야. 큭큭큭, 그렇다면 아주 잘 골랐어. 잘했어…….

한동안 잠자코 있던 또 다른 자아가 아주 아프게 꼬집는다.

“좀 닥쳐, 이 씨발!”

진우는 욕설을 내뱉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 내부는 최후 결전의 장소로 정말 별로다.

그걸 절감하면서 진우는 다시 탄창을 갈아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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