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칠월의 마지막 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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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칠월의 마지막 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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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칠월의 마지막 날 (2)
2022.04.04.
그 소리를 그만 듣고 싶다는 스트레스가 은근히 커서 진우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플래시를 위로 비춰보니 공기 순환용 팬은 전혀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건 바람 소리는 아니다.
뭐지? 뭐가 이런 소리를 만들어내는 거지?
상상력을 총동원해 봐도 그 소리를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오싹해지고 공연히 자꾸 등 뒤를 힐끔거리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집중해, 집중! 벌써 소화전 일곱 개 넘게 지났어! 이제 길어봐야 육십 개 정도만 더 지나면 돼.”
점점 커지는 두려움과 달아나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전진을 계속하던 진우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지금 돌아 나가봐야 얻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시간만 허비한 셈이니까. 도로로 나가 버스 위 같은 곳에 기어올라 밤을 보낸다고 해도 어차피 어둠과 마주하는 것은 같다.
그리고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다시 또 이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런 헛짓거리를 하느라 소중한 물과 식량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후우우~ 쿨럭! 쿨럭!”
1킬로미터를 넘어간 시점부터 숨쉬기가 상당히 힘겨워졌다. 제대로 순환되지 못해 고여 있던 공기 중에는 불타 버린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온 유독가스도 섞여 있다. 거기에 기름 냄새와 악취, 이산화탄소…….
진우는 면 티를 끌어 올려 입과 코를 가리고, 가끔 한 번씩 손을 내저어 악취를 흩어내며 기침을 했다. 이러다가 뻗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 그래. 그……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보면…….”
산소가 없으면 불이 꺼진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초등학교 때 배운 지식까지 총동원한 진우는 배낭 안에서 꺼낸 초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런 젠장, 촛불이 영 시원치가 않다. 그럼 산소가 부족하다는 뜻이고, 자신도 아슬아슬하다는 말이다.
후, 진우는 촛불을 끄고, 초를 전술 조끼의 비어 있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러다가는 얼마 못 가 죽는다. 수를…… 무슨 수를 내야 한다. 아니면 다시 되돌아가든가.
진우는 다급하게 사방을 훑었다.
젠장, 어디 산소통 같은 거 없나? 혹시 모르잖아. 소화기 옆에 그런 장비가 있을지도……. 아니, 지나오면서 그런 건 전혀 못 본 것 같은데…….
쿨럭, 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숨이 가빠지고 기분 탓인지 머리까지도 멍해지는 것 같다.
그때, 진우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번뜩이며 아이디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왼쪽의 두 개 차선을 돌아보았다. 가까운 곳에 멀쩡한 공기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진우는 난간을 훌쩍 타 넘어 1미터 아래의 차도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대검을 꺼내 자동차 타이어의 옆면을 그었다. 생
각보다 타이어라는 게 단단해서 단번에 찢어지지 않았고, 진우 역시 한 번에 푹 칼을 찔러 넣을 생각은 없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어서 어떻게 될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몇 번을 긋고 또 긋다가 칼날이 박혀 들어가는 게 느껴지자 진우는 칼을 비틀어 살짝 돌렸다.
취이이이익―
타이어에서 급격하게 바람이 빠져나온다. 고무 냄새가 잔뜩 밴, 그러나 숨쉬기에 충분한 공기가 진우의 팔뚝과 얼굴을 시원하게 만들며 퍼졌다.
하아아……. 그만큼의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진우의 관자놀이에 솟아 있던 핏줄이 가라앉는다. 한결 살 것 같다. 한쪽 바퀴의 바람이 빠지면서 자동차가 기운다. 진우는 그 뒤의 바퀴에도 대검을 댔다.
취이이익―
또 타이어 한 개 분량의 공기가 빠져나온다.
자동차 다섯 대의 바퀴에서 바람을 빼내자 그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진우는 다시 정비로로 올라가 초에 불을 붙여봤다. 멀쩡하게 곧은 불꽃이 올라온다.
큭, 촛불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기쁘게 하다니.
진우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기 전까지 이따금씩 이 짓을 해서 산소를 확인해 봐야 한다.
“스물여섯, 스물여섯…….”
정말 지긋지긋한 길이지만, 발을 멈추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또 소화전 하나를 지났고, 진우는 다시 차선으로 내려가 타이어의 바람을 빼면서 스물여섯이라는 숫자를 되뇌었다. 이 어둠을 절반 가까이 헤쳐 왔다.
이제 되돌아가는 시간이나,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나 똑같다. 그러니 더 용기를 내서 돌파해 버리면 다 지난 일이 되어버린다.
언제 힘들었느냐고 웃을 수도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커지면서 줄곧 스스로를 괴롭히던 죄책감과 후회가 한구석으로 밀려난 것도 싫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주변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후다다닥―
10여 미터 전방에서 주먹 크기의 쥐새끼 서너 마리가 정비로 바닥의 철망 사이로 숨어든다.
쥐는 정말 어디에나 있다. 저놈들을 보고 있으면 좀비들이 동물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저 작고 교활하고 빠른, 그러면서도 어디로든 구멍을 뚫고 돌아다니는 놈들에게 물려도 좀비가 된다면, 그건 또 새로운 차원의 지옥일 것이다.
“서른넷, 서른넷……. 다 왔다. 정말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서른네 번째 소화전 앞에서 진우는 한숨을 쉬며 물을 마셨다. 타이어에 칼을 대려는데, 또 예의 그 굉음이 증폭된다.
구우우우웅― 위이이이잉― 구우오오오―
이제 소리는 더욱 커져서 바로 귓가에서 두꺼운 철판을 때리며 흔드는 것 같다. 궁금증이나 두려움보다 이젠 분노가 훨씬 더 커져 버렸다.
이 소리를 만드는 원인을 찾아내면 반드시 박살을 내버리리라…….
진우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탄창 하나를 다 써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만큼 깊숙하게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많은 자동차들이 각 차선마다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저 많은 수의 버려진 자동차들, 저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길게 계속되는 정체를 겪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다들 좀비를 피해 달아나려고 나선 길일 텐데, 이렇게 폐쇄된 공간 속에 갇혀 버렸을 때 어디로 간 걸까? 다들 어디로들 도망갔을까?
타이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기를 쐬며 진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까 길에서 보았던 불탄 시체들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물병을 기울이면서 진우는 아래쪽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명 저 자동차들을 뒤져 보면 쓸 만한 물건들이 잔뜩 나올 테지만, 그 정도의 심리적인, 또 시간적인 여유는 없다.
지금은 이성을 유지한 채 한 걸음씩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리고 플래시의 배터리도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는지 가늠이 안 된다. 진우는 다시 촛불을 켜보고 산소가 있는 것을 확인한 뒤, 걷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소화전 세 개를 더 지나고 진우의 이마가 찌푸려진다. 앞쪽을 비추던 플래시의 불빛이 닿는 면이 뭔가 지금까지와 다르다. 빛이 뻗어 나가다가 차츰 소멸되는 게 아니라 뭔가에 꽉 막힌 듯한, 그런 느낌이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불안해진다. 진우는 소화전 개수를 세는 것도 잊은 채 뛰다시피 했다. 급해진 마음을 따라 발걸음이 빨라지고, 거리가 줄어들수록 그 사태가 명확해졌다.
슥― 벽면을 스친 팔뚝에 새까맣게 그을음이 묻어났다. 지금까지 줄곧 평탄했던 바닥에도 파편들이 밟힌다.
그리고…… 눈앞에는 커다란 탱크로리 세 대의 잔해가 무너져 내린 돌 더미 속에 파묻혀 있다. 막혔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후우우~”
불타 버린 자동차들의 잔해 옆에 서서 진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운동과 분노 때문에 올라간 심장박동이 좀처럼 가라앉지를 앉는다. 진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폭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터널의 전광판과 공기 순환용 파이프, 조명등, 그리고 커다란 콘크리트 더미까지 무너뜨리게 만든 주범은…… 저 탱크로리들일 것이다.
대체 뭘 운반하고 있던 것일까? 휘발유? 가스?
뭐라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긴급 상황이었던 만큼 이런 피난민들보다 유류 운반차가 더 바쁘게 움직였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것도 전부 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자빠진 채 돌 더미에 깔린 탱크로리를 보면서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로 몇 줄인가의 자동차도 폭발에 휘말렸고, 결국 아무도 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게 돼버렸다.
혹시 뚫고 지나갈 만한 공간이 있을까 싶어 열심히 위아래로 플래시를 휘둘러 보고, 직접 돌무더기를 밟고 올라가도 봤다. 틈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워낙 좁아서 쥐들이나 겨우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이다.
막혔다. 폭발로 주변 구조물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흙더미와 돌무더기에 꽉 막혔다. 사람 키 세 길이 될까 말까 한 천장까지도 모두 다…….
큭큭큭, 진우는 눈가를 문지르면서 헛웃음을 웃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어떤 반응을 보여야 옳은 건지도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40개가 넘는 소화전을 지나쳐 왔다. 불안함 때문에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그 두려운 마음을 이기고 먼 길을 왔는데, 얻은 성과가 고작 무너져 내린 터널의 내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사고가 날 거였으면 좀 입구에서 가까운 데에서 나든가, 사람 고생은 고생대로 다 시켜놓고…….
고오오오오― 쿠우우우우―
그놈의 이상한 울림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막혀 있는 잔해에 부딪혀 되돌아오며 고막을 자극한다.
이래도 화를 내지 않을 거냐고, 주저앉지 않을 거냐고, 도발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흔들리는 영혼을 붙들어 냉철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이기는 거다.
뒤로 물러난 진우는 이를 악물고 뭔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 상황과 괴이한 울림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리라.
20여 미터 뒤쪽으로 되돌아 걸어 나와 눈에 보이는 것 중 가장 고급 승용차를 찾았다. 물론 그러느라 험한 꼴도 좀 봐야 했다. 자동차 안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불길에 휩싸인 사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멀쩡한 에쿠스를 찾은 진우는 타이어를 찢은 뒤,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공기가 빠지면서 조금씩 가라앉고는 있지만, 널찍하고 푹신하다.
갇혀 있던 공기는 좀 답답해도 점점 나아지는 중이다. 진우는 앞좌석 팔걸이에 촛농을 떨어뜨려 초를 고정시켜 두고 한숨을 돌렸다. 진정할 필요가 있다.
“어디……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
배낭을 뒤적거려 음식을 꺼내 씹으면서 진우는 막혀 있는 앞쪽을 노려보았다. 사고를 일으킨 탱크로리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차츰 이성과 추리력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비단 좀비 때문에 대피를 하던 게 아니라도 이런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자동차 두 대만 부딪쳐도 터널은 꽉 막힌다.
그러면 대체 견인을 어떻게 하는 거지? 역주행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한쪽 차선을 아예 못 쓰게 되면 교통 체증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아! 맞다!”
그제야 반대 방향 터널도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입구에 들어오기 전, 좌우를 기웃거리면서 어느 구멍으로 들어갈까 생각도 했었다. 골라도 참 하필 여기를……. 진우는 자신의 불운에 애도를 표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 컴컴한 어둠을 지나 다시 되돌아가야 하나?
그러기에는 너무 멀고 귀찮다.
“중간에 서로 이어진 통로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있어야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 음식과 물로 재충전을 마친 진우는 다시 초를 챙겨 들고 에쿠스 밖으로 빠져나왔다.
만약에 통로가 있다면 그가 걸어왔던 정비로의 맞은편에 있어야 하는 구조다. 그래야만 저쪽의 맞은편 차선에 닿을 테니까.
진우는 이번엔 터널의 좌측에 붙어서 되짚어 가보기로 했다. 아까는 거리를 재는 기준이 소화전이었다면, 이번에는 자동차다.
자동차 하나를 지날 때마다 진우는 카운트를 하나씩 올렸다. 60이 넘었을 때, 터널과 직각으로 뚫린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너를 돌며 ‘피난 연락갱’이라는 글자를 발견한 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셔터가 내려져 있어서 건너편이 보이지는 않지만, 맞은편 터널로 이어진 것 같다.
“그래, 있을 줄 알았어. 하아~ 다행이다. 더 멀리 안 가도 돼서……. 어디, 이거를 어떻게 연다?”
셔터 상부에는 자동 개폐용 센서라 짐작되는 카메라가 붙어 있다. 물론 지금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저것도 작동하지 않을 게 빤하다.
그렇다면 수동으로 열 수 있는 장치도 있을 것이다. 재난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설비가 전기로만 움직인다면 말이 되지 않으니까.
하단부 쪽으로 플래시를 움직이며 개폐 장치를 찾던 진우가 움찔했다.
쿠오오오오― 쿠우우우우―
터널에 들어온 내내 그를 괴롭히던 그 굉음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서 셔터도 가볍게 흔들린다.
출렁― 쿠오오오오― 출렁― 쿠오오오오―
찾았다. 진우의 눈빛에 만감이 교차한다. 반드시 없애 버리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굉음의 장본인을 찾은 것 같다.
이 셔터 너머 어딘가에 있다. 뭘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난리를 칠 때마다 이 셔터까지도 함께 출렁거리고 바닥의 틈새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 나온다.
문제는 탄창 하나로 그 범인을 다 처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지? 그리고 뭘 하느라 이런 소리를 내는 거지?
“후우~ 미치겠다, 진짜.”
어떻게 할지를 정하기 위해 진우는 두 발을 번갈아 떼면서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팔에는 여전히 소름이 돋아 있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불안해서 터널을 걷는 내내 이렇게 소름이 끼쳤던 게 아닌 모양이다.
셔터에 손을 대봐도 직접적인 충격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좀비들이 이 셔터를 들이받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럼 뭐지?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으면 이런 소리가 나지?
진우는 지금까지 걸어오며 봤던 주변의 시각 정보를 되짚어봤다. 하지만 이런 소리를 만들어낼 만한 특별한 장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하행선 터널 안에는 이쪽과 다른 어떤 장치가 있는 걸까?
사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셔터를 열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연다면 건너편으로 갈 수 있고, 거기에서 1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출구가 있다.
드디어 긴 여정을 끝내고 이 지긋지긋한 터널의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좀비들에게 붙잡혀 뜯어 먹히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그게 너무 도박적이라 싫다면, 다시 터널 밖으로 얌전히 되돌아 나가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뒤에 남는 것은 뭔가. 진우는 아까 터널 위의 건축물에 올라가서 보았던, 끝없는 산과 계곡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다시 그런 산속으로 들어가자고? 한번 길을 잃으면 또 언제 이렇게 편한 도로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면서?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만난 고속도로인데……. 그건 싫다.
결국 모험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진우는 양쪽 벽에 각각 하나씩 붙어 있는 크레인 손잡이 중 왼쪽 벽의 것을 붙잡고 천천히 돌렸다.
키리리리― 키리리릭―
크레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게 돌아갔고, 몇 바퀴 돌리지 않은 시점부터 셔터가 올라가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기름칠이 잘되어 있던 듯하다.
물론 그보다 먼저 셔터가 열렸음을 알려준 것은 냄새였다. 지금까지 맡았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악취가 건너편 터널로부터 유입되어 들어온다.
윽, 어후~
진우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크레인을 돌리던 손을 멈추고 살짝 떼어봤다. 힘이 가해지지 않아도 셔터가 도로 내려오려는 기미는 없다. 역진 방지 기어가 장착되어 있는 모양이다.
셔터는 지면에서 30센티 정도의 폭만큼 올라와 있다. 이 정도면 어떤 돌발적인 공격이 있다 해도 이편에서 빨리 방어하기에 더 용이하고, 눈으로 건너편을 확인할 수는 있는 높이다.
진우는 셔터의 꺾여 있는 손잡이에 발을 대고 밟는 시늉을 해보았다.
카랑―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셔터가 흔들린다. 여차할 때 이런 식으로 밟으면 닫힐 것이다.
쿠오오오오― 콰아아아아―
개방된 공간을 통해 굉음은 한층 더 크고 또렷하게 들려온다.
“후~ 그럼 어디 봐볼까…….”
진우는 K―2에 부착된 주야 조준경을 켜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몇 걸음 물러나 낮게 포복하며 열린 셔터 틈을 조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