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5. 칠월의 마지막 날 (1) (215/449)


215. 칠월의 마지막 날 (1)
202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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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비슷한 듯 다르게,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낯선 일과들로 각자의 24시간이 채워졌다.

민구는 사경을 헤매며 침대 시트를 땀으로 흥건히 적셨고, 보안관 일행은 뙤약볕 아래서 페인트를 좀비들에게 붓고 계단을 올랐다.

테라는 젠킨스의 탐욕스런 얼굴을 마주한 채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제주도에서는 채 장군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진우는 강원도의 어느 길을 걷고 있었다. 하 중위를 만났던 냇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틀 동안 그는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하 중위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잔인하고 뒤늦은 복수를 끝낸 뒤, 진우는 피가 흐르는 그녀의 시체를 안아 들고 오두막으로 옮겼다. 죽어서까지도 그 네 놈과 한 장소에 같이 있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오두막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하 중위라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더 크고 강렬하게 북받쳐 올라서 진우의 눈에서는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집의 보잘것없는 살림들…….

더러운 벽지와 허술한 집기들, 좀먹은 이불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진우의 눈에 비친 오두막은 삶이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한 공간이었다. 자존이나 행복 따위의 개념들은 아주 깨끗하게 지워 버린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그 대접을 받으면서도…….

진우는 자신에게 안겨 있는, 하 중위의 핏기 없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기는 괜찮으니 어서 가라고 등을 밀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리는 것 같다. 처참한 오두막은 하 중위의 시신을 쉬게 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묻어주자…….

진우는 그렇게 결심했다. 예전에 펜션 옆 농가의 할머니처럼 묻어주자고.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뒤져 봐도 삽이 없었다. 야전삽 하나가 너무나 아쉬워진 상황. 진우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혀를 찼다.

“젠장, 다음에 마을을 만나면 무조건 야전삽부터 챙겨야겠다.”

하지만 여전히 진우는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길을 나설 수 없었다. 개들 때문이다.

올무에 발목이 잡힌 오 대위가 개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진저리를 치던 그 목소리가 가슴속 메아리가 되어 울려온다.

결국 진우는 놈들이 갖고 있던 총의 개머리판과 대검으로 젖은 땅을 팠다. 적합하지 않은 연장이 제대로 기능을 할 리가 없어서,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자리를 마련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진우는 이를 악물고 대검을 끼워 땅을 쑤시고, 개머리판으로 두드리고 긁어내 흙과 돌을 들어냈다. 작은 구덩이를 파는 데만도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그날 밤을 하 중위의 차가운 시신과 함께 오두막 안에서 보낸 진우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냇가에서 자갈을 짊어지고 와 구덩이 옆에 부었다.

자갈들을 쓸어 가방에 담는 동안 손가락마다 크고 작은 피멍이 들었지만, 그 고통만이 상실감과 죄책감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진통제였다.

수십 번 자갈을 길어 와 산더미처럼 부린 뒤, 진우는 하 중위를 어제 파놓은 구덩이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두 손을 모아 쥐고 중얼거렸다.

“미안……합니다.”

아무리 자책하며 사과하고 후회해도 차갑고 뻣뻣해진 그녀의 몸에 다시 온기가 도는 일은 없었다. 진우도 그걸 잘 알기에 더 미련을 갖지 않고 그녀의 시신 위에 자갈을 올리고, 차곡차곡 쌓았다.

자갈이 흔들리지 않도록 사이사이를 흙으로 메우고 물도 길어 와 채웠다. 그런 후, 무덤의 가운데에 그녀의 구급약 상자를 올려두었다.

그렇게 해봐야 막상 개들이 달려들어 파헤치기 시작하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것쯤은 진우도 잘 안다. 횟가루로 다져 놓지 않으면 몇 번의 비바람에 이내 씻겨 버릴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진우로서는 그 정도라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뭔가 몰두해서 단순한 노동을 하고, 자신의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난 이틀 동안 진우가 한 일이다. 어제저녁, ‘이제 가겠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출발해 지금까지 그는 거의 쉬지 않고 걸었다.

멈춰 서기만 하면 밀려드는 후회와 죄책감 때문에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눈물과 땀으로 가슴속에 있는 응어리가 녹아서 빠져나가 주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을 겪고 난 뒤, 살아야겠다는 의지만은 오히려 더 강하고 굳건해졌다.

하 중위가 그 모진 환경 속에서도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삶의 끈과 의지가…… 진우로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 어떻게 해야 했다고?

“하 중위를 붙잡고 있다가 네 명이 모두 내려오는 걸 확인하고 가장 뒤의 놈부터 차례로 머리를 쏴서 사살.”

- 그럼 만약 그 냇가의 상황이었다면?

“두 명을 먼저 제압한 뒤, 하 중위를 데리고 냇가 건너편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나타나는 놈들 먼저 사살하고 기절한 놈들 처리.”

걸어가면서 진우는 계속 자신이 실수했던 그 상황을 되짚어보고 복기했다. 그의 상상 속에서 네 명의 탈영병은 수없이 죽고, 죽고, 또 죽었다.

헤드샷을 당해 머리에 구멍이 난 채 쓰러지기도 하고, 가슴이 뻥 뚫린 채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그 여러 번의 상상 중 놈들이 동정을 받아 살아남거나 부상당한 채 방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진우는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럴 때마다 가장 신속하고 확실하게 놈들을 죽이는 방법을 고안해서 대답했다.

인질이 둘이고, 상대가 다섯이라면…… 인질이 각기 다른 장소에 있다면……. 질문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을 가정해서 만들어졌고, 그럴 때면 진우가 고민을 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 모든 일들이 결국은 자신의 실수를 무효화시키고 싶다는, 실수하기 이전으로 다시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진우는 그 잔인한 문답을 멈추려 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때는 이렇게 아픈 결과와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머뭇거리거나 오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쭐해서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착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는 모습을 보지 않을 것이다.

돌무더기를 나르느라 시꺼멓게 멍이 든 손끝은 슬쩍슬쩍 스치기만 해도 짜릿한 통증을 주었지만, 그 통증이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형벌이라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통쾌하기까지 하다.

생명이 걸린 순간에 선택을 망설였던 자신은 벌을 받아도 싼, 그런 놈이다.

그렇게 자학하며 걷던 오후, 서서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가기 시작할 때, 진우는 널찍한 왕복 4차선 도로를 만나게 되었다. 아주 시원하게 뻥 뚫린 도로로, 중앙분리대가 튼튼하고 넓다.

“젠장, 이렇게 가까운 데 길이 있었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 죽은 오 대위나, 너무 멀어서 엄두가 안 난다고 했던 하 중위나…… 겨우 하루 만에 이런 큰길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나저나 여기가…….

진우는 배낭 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지도를 꺼내 손가락으로 짚어봤다.

계산이 맞는다면 자신은 지금 영동고속도로 위에 서 있는 것이리라. 이 길을 따라 계속 서진을 하다가 원주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화천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길을 가다가 주둔하고 있는 부대를 만나거나, 이동하는 군 병력과 맞닥뜨리게 되면 이쪽에서 피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러면 또 산길을 빙 둘러서 기약도 없이 먼 우회를 감수해야 한다.

근처에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진우는 바닥에 귀를 대봤다.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는 없다. 운이 좋다. 이렇게 근처에 군 병력이 없다면 대로로 가는 게 최고다. 빠르고, 직선이고, 발이 편하다.

“으아…….”

한참을 걷다 보니 불타 버린 자동차들과 사지가 잘려 나간 시체들이 바닥에 흩어진 채 진우를 맞이한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걸 보면, 이미 불이 난 때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진우는 시꺼먼 그을음으로 덮인 자동차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승용차 지붕 위에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을 보니, 일반 소총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게다가 주변에는 뒤집히고 날아간 자동차들과 완파된 흔적까지 보인다.

아마 이 근처에서 대규모의 사격과 폭격이 벌어졌던 듯하다.

좀비들의 행렬을 막기 위해 이랬던 것일까?

새까맣게 탄화된 시체 더미를 피해 걸으며 진우는 생각했다.

수십, 수백 대의 차가 불에 탄 잔해로만 남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한때 사람이었던 숯덩이가 수백 구나 널브러져 있다. 뭐가 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데 휘말리면 죽음뿐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끔찍한 데드 존을 지나 걷기를 다시 20여 분. 1킬로미터 앞에 터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파란색 표지판이 나왔다. 터널 길이를 확인한 진우가 탄성을 내지른다.

“둔내 터널…… 3.3킬로미터?”

터널이 3킬로미터……. 그 깜깜한 암흑이 3킬로미터가 넘게 펼쳐져 있다고? 자동차로 지나간다면 몰라도, 걸어서 40분 동안 거길 지나간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만약에 뭔가가 그 안에 있다면 그때는 정말…….

“어쩌지?”

진우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으면서도 계속 터널을 향해 걸었다. 어차피 좌우에는 다 야산이거나 교량 아래의 낭떠러지뿐이어서 딱히 우회할 만한 길도 없다.

그리고 다시 표지판이 스쳐 간다. 터널까지의 거리가 500미터라는 알림 말이 써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자동차들은 터널 쪽을 향해 머리를 둔 채 도로를 꽉 메우고 버려진 상태였다.

“흐음…….”

이상한 벌레 캐릭터 두 마리가 그려진 감속 표지판 앞에서 진우는 결국 멈춰 섰다. 바로 몇십 미터 너머에는 둔내 터널이 시꺼멓고 커다란 아가리를 떡 벌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젠장, 이거 얼마나 긴 거지?

터널 입구에서 열 걸음쯤 걸어 들어간 진우는 손전등을 켜서 안쪽을 비춰보았다.

물론 끝까지 닿지 않는다.

플래시에서 뻗어 나간 불빛은 얼마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을 가로막고 있는 깊은 어둠 속에 삼켜져 버렸다. 게다가 터널 내부까지도 자동차들이 간간이 가로막고 서 있어서 시야는 더욱 불량하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깨끗하게 사라진다.

퉁― 퉁―

진우는 돌막을 몇 개 집어 와 힘껏 집어 던져 봤다. 어느 승용차의 지붕을 때린 돌이 힘없이 튕긴 뒤 바닥을 구른다. 그래도 터널 안쪽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차라리 그 돌에 맞은 좀비들이 몇 마리쯤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와 준다면 깨끗하게 포기를 할 텐데, 이건 좀 애매한 상황에 처해 버렸다.

“저 위로 해서 돌아갈 수는 없을까?”

터널 측면을 돌아보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타원형의 입구 주변에는 펜스가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는 정말 단순한 구조의 계단식 건축물이 설치되어 있다. 진우는 그 높은 계단들을 딛고 터널의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우아~ 탄식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험하다. 터널 입구의 둥근 천장 부분을 제외하면 그 뒤로는 온통 산과 구릉, 짙은 녹색의 나무숲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광활한 기세에 진우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픽픽 터져 나왔다. 저 험로에서 저만한 거리를 다 돌파하려면 아마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사흘 이상은 잡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운이 좋아 길을 잃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마지막 하루 정도쯤은 식량 없이 주파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저 험한 길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보다는 컴컴한 터널을 관통하는 편이 몇 배나 빠르고 효율적이다.

후우~ 아래로 내려온 진우는 큰 한숨을 내쉬면서 터널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는 벌써 노을이 산을 집어삼키면서 붉게 타오르는 중이다.

터널을 종단하는 것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더 늑장을 부렸다가는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도 밤의 암흑과 또 마주하게 될 테니까.

정말 내키지는 않지만, 여길 통과하면 최소한 사흘이라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터널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데, 언제까지고 그걸 피해서 다니지만은 못할 노릇이다. 가치가 있는 경로니까 마음에 안 들어도 가야 한다. 꼭 가야 한다.

한 가지 그에게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터널의 한쪽 벽에 정비 요원이 지나다니도록 만들어 놓은 보행 통로가 있다는 점이다.

도로면으로부터 1미터 정도 올라와 있는 좁은 길,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날 만큼의 폭이다. 여기로 지나가면 최소한 발밑을 신경 써가면서 움직이지는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안전한 길일까? 이 허술한 철제 난간이 나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을까?

진우는 난간을 잡고 흔들어보다가 개머리판으로 때려봤다.

띠이잉― 위이이잉― 위잉―

난간이 울리는 소리가 터널 저 안쪽까지 진동해서 들어갔다가 작은 메아리를 만들어낸 뒤, 이내 사라진다.

진우는 K―2의 주야 조준경을 켜서 아직 작동하는지 확인해 보고, 일단 테이프로 플래시를 고정시켰다.

처음 200여 걸음은 쉬웠다. 바깥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과 천장을 통해 반사된 빛 덕분에 플래시를 켜지 않아도 될 만큼 주변이 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는 한 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어둠과 압박감이 확확 밀려오며 몇 곱절씩 배가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150여 걸음. 마침내 주변은 완전한 암흑으로 물들었다. 플래시의 둥근 불빛이 닿는 곳만 눈에 들어온다.

나머지는 온통 한통속의 어둠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검정.

우우우우우웅― 고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

정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소리가 아치형의 터널 곡면 전체를 울림판으로 삼아 증폭된 채 쉬지 않고 울려 댄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라고 하기에는 공기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엔진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불규칙하다. 그럼 좀비의 울음소리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어쨌든 기분이 좋지는 않은 소리였다. 신경을 있는 대로 긁으며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바깥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소리건만, 안으로 들어올수록 점점 비례적으로 커진다.

어쨌든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시야는 플래시 불빛 하나만큼의 크기로 줄어들어 있다. 귓가에서는 계속 알 수 없는 웅성거림이 메아리친다.

그리고 이제는 뒤를 돌아보아도 빛이 비쳐 들지 않을 만큼 바깥도 어두워져 있다.

터널 내부의 공기는 무겁고 탁하고 답답하다. 어디서 경유가 새고 있는지 특유의 기름 냄새가 먼지와 썩은 음식물 악취에 섞여 있다.

오감 중에 원거리를 담당하는 세 가지가 거의 70퍼센트 이상 봉쇄당한 셈이다. 자연스레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긴장한 온몸에는 소름이 돋는다.

“하아아~ 하아아~”

두려움에 비례하여 진우의 숨소리도 커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가끔 한 번씩 좌우로 총구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플래시의 각도는 정면으로 15도쯤 아래를 향해 비스듬히. 그보다 위쪽을 비추면 벽에 붙은 반사판이 번쩍여 눈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곤란하다.

버려진 차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지만, 움직이는 것은 없다. 멈춰 서 있는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커다랗고 짙은 그림자는 기계문명의 시체처럼 음산했다.

진우는 스스로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침착하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다……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처음에 터널 안으로 들어서면서 진우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암흑 속에서 거리와 방향감각을 상실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이런저런 장비들을 확인하면서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전화기, CCTV 등 온갖 것들이 눈에 띄었지만,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것은 소화전이었다. 그래서 진우는 각 소화전 간의 거리를 보폭으로 쟀다.

소화전에서 출발해 60걸음을 걸으면 또 새로운 소화전을 만난다. 툭 튀어나온 표지판이 있어서 놓치고 지날 일도 없다.

“미터로 하면 얼마나 되는 걸까? 50? 60?”

진우는 한 발을 떼어놓고 그 거리를 눈대중으로 재면서 중얼거렸다. 그게 50이든 60이든, 혹은 40밖에 안 되든 간에 분명한 거리의 단위가 하나씩 줄어든다는 건 중요하다.

3,300미터라고 하면 까마득한 것 같지만, 그걸 50으로 나누면 66밖에 안 된다. 이런 소화전 66개를 지나면 저 끝에 닿는다는 말이다.

“그래, 씨발. 별거 아니야.”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진우는 허세 섞인 톤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은근히 기운이 솟는다.

소화전을 세기 시작한 이후, 일곱 개를 더 지나고 나자 잠시 차선이 넓어지는 구간이 나타났다.

아마도 정비 구간이나 뭐 그런 종류의, 만일의 사태를 위해 만들어둔 공간일 터이다.

물론 지금은 이 좁은 공간이라도 파고들어 어떻게든 남들보다 빨리 가보려던 자동차가 벽에 코를 박은 채 멈춰 서 있다.

고오오오오― 콰아아아아― 우우우우―

고막을 자극하는 괴이한 울림은 점점 더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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