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 걷히는 안개 (3) (209/449)


209. 걷히는 안개 (3)
20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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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답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테라가 멍하니 쳐다보자, 젠킨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란 게 원래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어. JL도 그 잔인함이라는 측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조직이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는 합리성이라는 게 있잖아. JL에서 중요 임무를 맡을 정도면 더욱 그렇지. 그러니까 잔인함의 이유도, 그 잔혹성이 만들어낸 결과의 범위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거고. 그런데 이건…… 그런 상식의 한계를 넘어선 일이었어. 그렇게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인간이 순식간에 이성을 잃는 경우는 사랑밖에는 없지. 역사적으로 늘 그랬어. 하지만 규모가 달라. 이번 일에 비하면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헬레네와 파리스의 도주는 그냥 불장난 수준도 안 돼. 핵심적인 관계자가 아무도 증언하지 않을 테니까 이게 공식적으로 논의되는 일은 없겠지만, 이번 좀비 사태는 인류의 역사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가장 미친 짓일 거야.”

격한 감정에 도취된 젠킨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연극배우 같은 톤으로 떠들어 댔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그들을 돌아보는 시선이 늘어난다. 원래부터 눈길을 끄는 조합인 데다가 거기에 소음이 더해지니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테라는 굳은 표정으로 다른 방향을 돌아보며 낮게 속삭였다.

“목소리 좀 낮춰요, 젠킨스 씨.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중범죄를 고백하고 싶은 거예요? 화난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맞아 죽기를 원하는 거냐고요?”

흠, 그렇군.

젠킨스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다시 목소리를 원래대로 낮췄다.

너무 급격한 감정 변화라서 슬슬 정상적인 사람이라 보기 어려워진다. 그가 만약 한 번 더 목소리를 높이면 일단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테라는 생각했다.

“넋두리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사랑? 누가 사랑을 했다는 건가요?”

“세상이 멸망하도록 다이얼을 최대로 돌린 사람이지. 뿜! JL 사업의 큰 그림을 아는 사람 중 하나였어.”

“이렇게 계속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싶은 거라면, 저는 이제 이 대화를 그만둘 거예요. 그러니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야기해 줘요.”

“어떤 다이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고. 0부터 맥스까지의 눈금이 있는, 그런 다이얼이지. 물론 비유적인 거야. 하여튼 이 다이얼을 아주 살짝, 눈금 하나만큼을 돌리면 한 사람이 좀비에게 죽는 거야. 좀 더 과감하게 돌리면 그때는 다수의 사람들이 죽을 테고, 더 확 돌리면 여러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겠지. 맥스까지 돌아간다면 그때는…… 인류 문명의 위기가 오는 거고 말이야. 바로 지금처럼.”

손을 허공에 뻗어 다이얼을 돌리는 시늉을 하는 젠킨스에게 테라가 물었다.

“사람이 죽는 다이얼이라니, 그런 걸 대체 왜 만들었다는 거예요?”

“사업의 어두운 단면이지.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단면. 자, JL은 우연한 발견으로 좀비 박테리아에 대해 알게 됐어. 그것이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으며 현존하는 그 어떤 약으로도 치유나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고, 널 키드를 통해 상품도 개발했지. 그러면 그다음엔 이 병의 존재와 그 위험성에 대해 알려야 하겠지? 그래야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쇼크 억제제를 매일 복용할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알리지? ‘우리 연구소에 좀비가 있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리고 그래봐야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아. 철창 안에 있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는 않는 법이니까. 그럼 어떻게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걸까? 아이돌 스타들은 자신을 상품화할 때 어떤 전략을 사용하나?”

젠킨스는 생각을 해보라는 듯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테라는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엄청난 죄인인 주제에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만심을 부리고 있는 이 건방진 남자. 과연 그의 말을 계속 들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좀비를 풀어놓았다는 말이잖아요. 아무도 몰래, 사람들이 무서워하도록.”

“그래, 맞아. 역시 영리하군. 하지만 실제로 어려운 문제는 그다음 단계부터지. 과연 몇 개체를 어디에 풀어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동시에 JL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한꺼번에 인류의 반 이상이 좀비로 변해 버린다면 공포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 줄어든 사람들의 수만큼 JL의 이익도 감소하는 거니까 말이야. 그래서 JL은 널 키드를 발견하기 이전부터 시나리오를 짜뒀어. 백신과 쇼크 억제제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이후에 어떻게 일을 벌일 것인가 하는 시나리오였고, 그에 맞춰 준비도 진행했지.”

“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독을 풀 계획부터 세웠다고요?”

“응, 맞아. 두 가지 작업을 병행한 거지. 사실 시간과의 싸움이었으니까.”

젠킨스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테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시간이요? 경쟁자 자체가 아예 없었는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쟁자가 있는지 없는지 그걸 몰랐지. 우리는 3월 20일 이후 휴슬리와 관련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확보했어. 하지만 휴슬리가 정밀 검진을 위해 뉴질랜드로 이동하면서 발생했던 열흘간의 공백. 그때, 기지 외부에서 머물던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가졌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 그게 가장 두렵고도 골치 아픈 문제였지. 혹시 또 다른 휴슬리가 있는 건 아닐까? 경쟁사에서 이미 좀비를, 혹은 면역자까지도 확보하고 있으면 어쩌지? 불안할 수밖에 없었어. 만에 하나 백신의 특허 등록을 빼앗긴다면 그건 곧 이 거대한 시장에서의 도태를 의미하는 거였으니까 말이야.”

“대단하네요. 그 망상이 우릴 이 지경으로 몰고 왔어요.”

테라가 비꼬자 젠킨스는 살찐 볼을 흔들며 부인했다.

“그렇지 않아.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우수했어. 이 계획대로만 실행되었다면 우리 둘 중 누구도 이런 곳에서 이런 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 거야. 들어봐. 먼저 아주 인구밀도가 낮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 좀비를 한 개체만 푸는 거야. 아프리카나 서아시아의 시골 마을 정도면 적당하겠지.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라고 해도 괜찮아. 그러면 당연히 그 지역 내에 좀비들이 확산될 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에 소개가 되겠지. 굉장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잖아. 좀비라니! 사람의 생살을 물어뜯고, 신체가 훼손되어도 죽지 않는 좀비!”

흥이 나서 몸짓을 곁들이며 언성을 높이던 젠킨스는 테라의 냉담한 시선을 느꼈는지, 다시 차분한 어조로 돌아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인구가 적은 곳에서 그런 일이 있어봐야 곧 진압이 될 거고, 사람들은 금방 그 일을 잊게 되지. 나중에는 누군가 상기시켜 줘야 비로소 ‘아,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겨우 기억이 날 정도로……. 제3세계라는 곳에서는 온갖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바로 그때가 두 번째 포인트야. 서구 사회에서 좀비라는 단어가 여전히 낯설기는 하지만 더 이상 허구로만은 느껴지지 않을 때, 두 번째 좀비 투입이 시작되는 거지. 두 번째 타깃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문명이 발달한 장소여야 했어. 생활수준과 인구밀도가 높은, 그러면서도 지리적으로는 매우 단절되어 있는 곳, 동시에 국제적 항공망의 허브가 아닌 곳. 예를 들자면 코르시카나 카프리, 혹은 산토리니 정도? 하여간 지정학적으로는 유럽의 어딘가로 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 타인들의 공포를 쉽게 동일시하고 겁을 먹는 미국인들과 달리, 유럽인들은 냉담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어서 문제가 그들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우에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거든. 일단 그런 곳에 좀비들을 풀어놓고, 제보를 이쪽에서 먼저 하자는 계획이었어. 좀비가 첫 감염자 셋 이상을 내는 순간 익명으로……. 그러면 공항이나 항만 폐쇄가 이루어질 테고, 대륙 전체로까지 확산이 이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바보 같은 계획이에요. 그렇게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이 출동하는 동안에 좀비들은 엄청나게 늘어나 버릴걸요? 통제가 안 된다고요.”

“지역 봉쇄만 선행된다면 좀비가 늘어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야. 사태를 완전히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도 커질 테니까.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당시에는 좀비 박테리아에 감염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그러니 우리가 경험했던 것 같은 급격한 증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적어도 시나리오상으로는 그랬어.”
“그 시나리오 참 대단하네요. 아직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끝에 가면 어떻게 되나요? 살아남는 주인공이 있기는 한 거예요?”

테라는 진심으로 원망을 담아 물었다. 젠킨스도 그 부분에 이르러서는 적잖이 기가 죽은 모습이다.

“시나리오와 무관하게 일이 흘러가 버렸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잿더미가 된 앱테크나야 연구소에서 널 키드만 사망한 게 아니었거든. 수백 명의 JL 직원들이 죽었지. 그리고 그중에는 본사에서 파견된 안나 크리핀이라는 여자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어.”

“또 이름이 나오네요. 이제 다 기억하기도 힘들어요. 저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잖아요.”

“테라 양에게는 그럴 테지. JL의 간부들도 비슷하게 생각했어. 적당한 지위의 중간 간부를 통해 가족들에게 사망 소식을 통보하고, 소송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상금을 지급하고, 그런 정도의 프로세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그런 다음 안나 크리핀의 데이터베이스에 ‘업무 중 재해로 사망’ 이렇게 기입하면 모든 게 깔끔하게 끝이 난다고 믿었지. 젠장,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한 사람, 앤드루 코링턴에게 그 사건은 그렇게 정리될 일이 아니었지. 세상의 끝이었으니까.”
“또, 또 새 이름이잖아요. 그만해요. JL의 직원들 이름을 전부 알려줄 작정인가요?”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 같아 짜증을 내는 테라에게 젠킨스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기억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나라면 적어도 이름 정도는 알고 싶을 것 같아서 말해준 것뿐이야. 줄곧 궁금해했을 텐데, 아닌가? 아름답던 세상을 이렇게 만든, 그 개 같은 놈이 누구인지.”

“그, 그럼 그 사람이…….”

테라의 눈이 흔들린다. 젠킨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맞아. 다이얼을 맥스까지 돌려 버린 놈이 바로 그 개자식이야.”

“왜? 대체 왜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7월 11일. 여기 시간으로 자정이 다 되었을 때, JL의 간부들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어. 앤드루 코링턴이 안나 크리핀과 깊이 사귀는 관계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었느냐고 묻는 전화였지. 대부분의 대답이 뭐였을 것 같아? ‘No’조차도 아니었어. ‘안나 누구? 그게 누군데?’였다고. 사람들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안나 크리핀이 앱테크나야에서 사망한 직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곧바로 패닉에 빠졌지. 앤드루 코링턴이 다이얼 담당자였기 때문에 무슨 미친 짓을 할지 두려워졌거든. 앤드루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어. 물론 그 시각에 본사에서는 무장한 경비대원들을 긴급 파견해서 앤드루가 있던 뉴욕 사무실을 점거했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어. 늦어도 너무 한참 늦었지. 잠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경비대는 권총 자살한 앤드루의 시체를 확보했어. 그리고 그의 사무실 전면 유리에 커다랗게 적힌 문장 하나를 발견했지.”

“무슨 문장인데요?”

“너흰 전부 좃 됐어!!!”

‘느낌표가 세 개였다고 했어’라며 젠킨스는 비지땀과 과자 부스러기로 엉망이 된 얼굴을 쓸어내리고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지. 앤드루는 안나를 죽인 세상에게 똑같이 파멸로 복수를 하기로 했던 거야. 하지만 대처하기란 쉽지 않았지. 컴퓨터는 다 박살이 난 상태였고, 데이터 자체를 삭제해 버리는 바람에 모든 걸 수작업으로 확인해야 했거든. JL의 최고위 간부들이 네 시간이 넘게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고 사방에 전화를 돌리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알아낸 것은, 이미 예전에 다이얼이 끝까지 완전히 돌아갔고, 돌이킬 수 있는 단계를 넘었다는 거였어. 전 세계에 좀비를 풀어버린 거지. 한꺼번에.”

“……말도 안 돼요. 한 사람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고요?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중간에 누군가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보고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논리에 맞아요.”

너무 믿기지 않는 이야기여서 테라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젠킨스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테라 양, 엄청나게 큰 이득을 안겨줄 것이라 기대되는 불법적인 일을 도모할 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뭔지 아나?”

“몰라요, 그런 거. 평생 불법적인 일은 꾸며본 적도 없어요. 그보다 지금 갑자기 주제를 바꾼…….”

“이 세상에 불법적인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어. 하지만 누군가 물어보면 다들 일단 자기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 왜냐면 대부분 혼자서 몰래 그 짓을 저질렀으니 남들은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아무 증거도 남지 않게…… 그게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니까. 바로 그거야. 그게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지. 비밀 유지.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막아야 하는 입의 개수도 늘어나니까.”

속삭이는 듯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젠킨스는 다시 비통한 얼굴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JL도 마찬가지였어. 좀비 박테리아에 관한 연구 자체는 불법이 아니야.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샘플로 사용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리고 그 좀비들을 일부러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풀어놓는 건 훨씬 더 무서운 범죄고. 그러니까 이 그림 전체의 윤곽을 아는 사람의 수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거야. 예를 들자면 이런 거지. 혈액검사팀은 이 박테리아가 뭔지 정체도 모르는 상태로 항체에 대한 검사만 해. 반대로 샘플 조사팀은 적합 판정을 받은 난민들을 데려오기만 하는 거지. 데려오는 목적도 모르고, 이 사람들이 향후 어떤 취급을 받게 될 것인지 따위도 몰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지. 모르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니까. 그래서 전체 큰 그림이 어떤 형태인지를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JL의 직원들 중 오직 13명만이 그걸 알고 있었지.”

“그런데요?”

“그럴 경우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하면, 어떤 지시를 따를 때 그것이 무슨 결과를 유발할지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모른다는 거야. 그저 명령을 수행했는지 아닌지 하는 것만이 중요해지는 거지. 예를 들어서 내가 이 버튼을 3초에 한 번씩 누르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잔 말이야. 나는 시간을 지켜서 버튼을 누르지. 3초, 삑― 또 3초, 삑― 그렇게 하는 동안에 나는 조금도 불안하지 않고 버튼을 누른 뒤의 결과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지 않아. 왜냐면 누군가 계획을 짠 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이 작업을 배정했겠는가 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기업의 합리성을 믿는 거야. JL의 다이얼도 마찬가지의 원리로 작동했을 뿐이야. 아주 세부적으로 나뉘어서, 하지만 누구도 전체의 구도는 파악할 수 없도록.”

테라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물은 건 세상이 좀비로 뒤덮일 때까지 왜 아무도 그걸 말리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결국은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잖아요. 죽을 걸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요.”

진정해, 진정해.

젠킨스는 테라에게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라는 손짓을 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잘 봐, 이런 식이야. 과테말라의 한 연구소에서 좀비가 된 샘플을 냉동 보관해. 그리고 기계가 좀비를 냉동 컨테이너로 옮기지. 컨테이너에는 라벨이 붙어. 며칠 후, 운송팀에서는 라벨의 바코드를 찍은 뒤, 기계에 뜨는 행선지로 컨테이너를 배달해. 이 사람들은 안에 든 게 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한 창고에 컨테이너가 보관돼. 또 며칠 뒤, 전산으로 컨테이너 전원을 끄고 문을 열라는 명령이 와. 여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개입되지만, 그들 중 아무도 불안을 느낄 사람은 없어. 분업화 사회에서 그건 당연한 거야. 앤드루처럼 전체적 맥락을 아는 극소수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명령받은 그 업무만을 그저 수행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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